2008년 12월 25일 목요일

노래.


지난 한 주 동안은 녹음과 공연들 덕분에 어지럽게 밀려있던 레슨들을 보충하느라 바빴다.
몇 시간 전에 잠을 자다가 내 잠꼬대 소리에 내가 깨어버리고 말았다. 일주일 내내 약장수처럼 레슨을 하다가 보니, 꿈속에서도 누군가를 가르치고 있었다. '옥타브를 동시에 눌러봐'라고 내가 소리내어 말하고는, 깜짝 놀라서 잠을 깨어버리고 말았다. 어휴.

언제나 불면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 대부분이었다. 요즘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서 비교적 잘 자는 편이 되었다. 여전히 밀린 잠을 몰아서 자버리는 날도 있기는 하지만 예전의 것과 비교하면 행복한 수면생활을 하고 있다. 다만, 자꾸 잠결에 노래가 들려서 깊이 잠들지 못한다. 악기소리와 겨우 싸워 이겨서 잠에 빠지고 나면 꿈결인지 뭔지 모르겠으나 자주 노래가 들린다. 무슨 노래들인지도 모르겠고... 노래를 부르다가 놀라서 깨어나거나, 음악 이야기의 통화내용을 큰 소리로 말해버리다가 벌떡 일어나 잠꼬대를 멈추는 일이 점점 잦다.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고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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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24일 수요일

무대 위에 재떨이를.


지치고 배고프고 추웠던 새벽의 파티.
맥주와 소세지로 배를 채우고 몇 시간을 더 연주하고 있었을즈음 어느새 서너 대의 담배를 입에 물고 있었다. 나중에서야 노래하던 분들이 불편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슬쩍 지나갔던 화면이었지만 기분좋아했던 장면들을 기록해줘서 변감독님께 고마왔다. 방송에 담배 물고 연주하는 것이 보이면 안된다는 나라가 되었다니 그것이 웃겼다.

처음 시작할 때 부터 연주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무대 위 앰프에 놓여있는 재떨이에 담배를 놓아두고 피우며 연주했었다. 한참 후에 서교동에 갓 새로 생겼던 클럽에 갔을 때에,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담배를 물고 버드와이저 깡통을 한 손에 든채로 무대에 올랐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에 대한 관객의 손가락질이었다는 것을 튜닝을 다 마치고 돌아서보았을 때에서야 알았었다. 오히려 문화적 충격을 받은 것은 나였었는데, 씰룩거리며 나를 비난하던 사람들의 얼굴은 더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지금은 그 모든게 우습고 웃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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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15일 월요일

다 커버린 고양이.


지금도 내 곁의 책꽂이 위에서 나를 물끄러미 보다가, 졸다가, 장난하다가...를 반복하고 있는 어린 고양이.
이 집안에서야 어린 고양이일뿐, 징그럽게도 다 커버렸다.
몸집만 커져버린채로 아직도 장난꾸러기 어린 고양이.
몽고반점처럼 어릴적에만 이마 위에 남아있게 된다는 검은 줄은 이제 다 없어졌다.
저 쬐그만 녀석이, 집안의 다른 두 어른 고양이들 사이에서 양쪽의 비위를 맞추기도 하고 함께 놀아주기도 한다.
그뿐 아니라 집안의 두 인간들 사이를 오가면서도 열심히 맡은바 소임을 다하고 있으니, 알고보면 가장 바쁜 고양이일지도 모르겠다. 엄청난 식욕과 식사량의 이유는 역시 그렇게 일을 많이 하고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더 많이 먹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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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 악기.


김창완 밴드의 '우두두다다'라는 곡의 간주 부분은 음정이 맞지 않는 멜로디가 기타의 솔로와 섞여서 들리게 되어있다. 이것은 Matrix Synth, 혹은 그냥 Mini Analog Synth라고 불러줄 수 있는 장난감 키트 제품의 소리를 더빙한 것이다.
정식 이름은 가켄 SX 150으로, 장난감이라고는 했지만 연주자의 아이디어와 쓰임새에 따라서 범위가 넓은 연주도 가능할 수 있는 악기이다.

음반에 담긴 소리는 밴드 리더님의 연주였다.

이것을 연주하는 장면이 TV의 화면에 나오게 된 후 그것을 궁금해하는 분들이 있었다. 음반의 속지에 이 악기의 명칭이 적혀있다. 웹을 검색해보면 간단한 회로도와 미디로의 연결 요령, 쓰임새 등등이 자세히 설명되어있고, 유튜브에는 동영상들도 있었다.

위의 사진은 https://www.flickr.com 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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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14일 일요일

또 한 해가 저문다.


한 주일 동안은 재즈 음악에 묻혀 지냈다.
다음 주 부터 연말의 공연까지는 록 음악을 연주하며 지낼 것이다.
또 한 해가 지나가버리고 있다.
지난 열 두 달 동안의 크고 작은 연주들을 기억해보니 아쉽기만 하다. 어째서 나는 동시에 두 세 가지 일을 잘해내지 못하는 것인지... 하고 싶었던 것들은 다른 일들에 밀리고 밀려 결국 수 년째 제대로 시작도 못하고 있다. 남들은 여러가지 복잡한 일들을 잘도 거뜬히 해내며 사는 것 같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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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12일 금요일

태도


일상에서의 태도라는 말을 들었을 때에, 맞다... 그것이었군, 하는 생각을 했다.
익숙해져있거나 낯설거나간에, 마음과 몸이 편안하거나 남의 옷을 입고 있어서 불편하거나간에 드러나 보이는 것은 살아가고 있는 모양일뿐. 그 모양이 소리가 되었든 침묵이 되었든 상관없이.

사흘 전 부터 완전히 엉망이 되어버린 수면리듬 때문에 며칠 동안 정신이 멍청하다.
낮에 들었던 음악이 자려고 눕기만 하면 귓속에서 자기들끼리 엉겨붙어 소란을 피운다.
이래서야 뭐 일상이 어쩌고 태도가 어떻고 말할 여유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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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사진.


관객석 사이에서 나의 학생들 얼굴을 보았다.
그날 구경하러 와줬던 그들이 무대 맨 앞에 모여서 내 이름을 불렀을때 '선생님'이 아니라 '형'이라고 해줘서 고마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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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10일 수요일

공연 사진.


스페이스 공감의 공식사진. 
사진을 찍어주신 이미지 님의 다른 사진들을 보니 공연장의 느낌을 잘 찍는 분이신 것 같았다. 나도 묵직한 카메라를 손에 들고 공연 무대의 사진들을 찍어보고 싶다.


이 장면들은 다른 곳에서의 무대였다.
다른 장소에서 다른 분이 찍어주신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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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사진.


잡지에 사진이 나왔다길래 밴드의 이야기인줄 알았더니 TV 프로그램 이야기였다.
정작 잡지라는 것은 구경하지 못했다.
누군가 스캔해두신 것을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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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9일 화요일

내가 아끼는 음반.


우연하게 좋은 음반을 발견할 때가 있다. 아무 정보도 가지고 있는 것이 없어서 고민을 하다가, 직감을 믿어보자, 하고 덜컥 사버리는 경우이다. 어차피 확률은 반이다. 좋거나 나쁘거나.

무려 15년도 더 전의 일이었다. 재즈 음반을 많이 가지고 있던 단골 레코드점에서 스웨덴의 색소폰 연주자 Arne Domnérus와 그의 기타리스트 Rune Gustafsson의 듀엣 음반인 Sketches of Standards를 골랐을 때에, 나는 한참을 망설였다. 음악을 많이 알고 있던 직원 분은 마침 자리를 비우고 없었고, 누구에게 이 음반에 대하여 물어볼 수가 없었다. 연주자들의 이름은 발음하기도 어려운 먼 이국의 것들이고 거기에다 이렇게 마이너 레이블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자켓이라니.
그런데도 골라서 손에 쥐고 망설이고 있었던 이유는 뒷면에 적혀있던 열 세 곡의 곡명들 때문이었다.

한참 재즈를 배우고 싶어 안달이 나있었지만 도움을 받을 사람이 없었던 나는 거의 대부분의 용돈을 시디를 구입하는데에 다 써버리기 일쑤였다. 우선은 스탠다드 곡들이 많이 담긴 음반을 고르는데에 열중하고 있었는데, 이 값싸보이는 음반에는 재즈 스탠다드가 가득 담겨있었던 것이다.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첫번째 트랙인 Blowing In The Wind로, 밥 딜런의 노래였다. 그 곡을 기타와 색소폰이라는 악기 두 개로 연주했다... 궁금해서 견딜 수 없어하고 있었다.

아직도 이 두 연주자에 대해서 자세히는 알지 못한다. 겨우 인터넷의 도움으로 몇 개의 사이트를 찾아 읽었을 뿐이고, 이미지 검색을 통해 그동안 두 분 모두 많이 늙어버린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연주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Rune Gustafsson을 Arne Domnérus의 기타리스트라고 했던 이유는, 그가 Arne 아저씨의 밴드에서 오랜 기간 연주를 했던 파트너였기 때문이다.
두 사람 모두 1950년대 초반 부터 밴드의 리더로서, 세션 연주자로서 활동해왔으므로 능숙한 연주는 비길데 없다. 밥 딜런의 곡 외에 Rune Gustafsson의 오리지널 곡이 한 곡, 그 외엔 모두 듀크 엘링턴의 음악들 위주의 스탠다드 재즈 넘버들로 채워져있다. 여유롭고 따뜻하며 능글맞을 정도로 원숙한 두 연주자의 조화로운 멜로디를 들으며 눈을 감으면, 오래된 살롱에서 실내악을 듣는 것 같기도 하다가, 한 여름에 풀밭에 누운채 거리의 악사들이 연주하는 음악을 듣는 것 같기도 하다.
모든 곡이 아름답게 표현되고 살랑거리고 있으면서도 스윙하고 있다. 색소폰 연주자 Arne는 자주 클라리넷으로 바꿔 불기도 하고 있는데 그 음색과 호흡이 사람을 편안하게 하고 슬프게 한다. 화음과 워킹베이스, 솔로 멜로디를 자유롭게 오가며 연주해주고 있는 Rune Gustafsson의 기타는 노련하지만 상냥하기 그지 없다.

생각난 김에 이 음반에 대하여 알고 싶어서 검색을 해보고 있었는데, 덴마아크에서 만든 이 음반은 이제 더 이상 재고가 없는 모양이었다. 아마 처음부터 많은 갯수의 카피를 찍어두지도 않았던 것 같다. 두 사람의 다른 음반이 보이던데 역시 리뷰의 평도 좋고 음질도 좋다고 하여, 구입할 음반 목록에 넣어두었다.
안개가 자욱했던 밤길, 귀가하며 기억해낸 이 음반을 시디플레이어에 걸어두고 볼륨을 높였더니 몸과 마음이 푸근해져왔다. 한 시간 가까이의 조용한 기쁨이 필요하면 다시 걸어둘 음반이다.

2008년 12월 8일 월요일

문 열고 들어가 눕기.



방 귀퉁이에 나이 많은 장이 한 개 있는데, 아무리 문고리를 걸어 두어도 누군가의 손에 의해 열리곤 한다. 분명히 닫아 놓았는데 문이 열려있는 것이 보이면 어김없이 용의자와 공범, 혹은 배후조종자들이 그 안에 들어가 잠들어있다. 곱게 개어놓았던 장 속의 내 옷은 고양이의 털로 범벅이 되어버린지 오래가 되었다.



따뜻하고 편안하게 잠들어버린 고양이들... 사이좋게 누워서 쿨쿨 소리내며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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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7일 일요일

리허설.


5일 저녁의 리허설. 녹화가 있었던 하루 앞의 날에는 재즈베이스를 사용했다. 사흘 중 녹화가 없었던 첫날과 마지막 날에는 Moollon의 5현을 썼다. '열 두 살은 열 두 살을 살고...'를 위해 플렛이 없는 프레시젼을 사용했다. 앰프에 마이크를 설치해줘서 고마왔다. D.I.를 따로 연결해둔 것으로 보아 편집과정에서 소리를 섞을 것이다. 수 년 동안 수많은 공연을 경험한 스페이스 공감 팀에게는 이제 매뉴얼을 몇 권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기술과 요령이 쌓여있는 것은 아닐지.
이틀 동안에는 Big Muff 퍼즈를 사용했다. 공연 1분 전에 갑자기 짧은 베이스 솔로를 해보라는 주문이 있었다. 퍼즈를 사용해서 연주... 그 장면이 방송분에 담겨있게 될지 모르겠다.

심야에 이어진 클럽의 파티에서 어느 밴드의 한 친구가 허락도 구하지 않고 내 베이스를 사용했다. 그것이 그들 사이에서는 관용될 수 있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무례한 행동이었다. 거기에다 피크를 쥐고 마구 연주를 해버리는 바람에 나무 재질로 되어 있는 5현 베이스의 픽업 커버에 흠집이 나버렸다. 나는 그 베이스의 피크가드를 떼어낸 채로 사용하고 있는데, 그것은 내가 아무리 큰 동작으로 연주를 해도 바디에 손끝이 닿지 않게하는 요령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피크가드가 있어야할 부분의 바디에도 흠집이 나버렸다. 내 악기를 간수하지 못하고 아무데에나 세워뒀던 나의 잘못이었군, 이라고 생각하고 넘기기로 했지만, 이제부터 그 흠집들이 눈에 보일 때 마다 신경이 쓰일 것이다.

타인의 악기를 두렵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자신의 사운드와 연주에 민감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생각한다. 내 속이 좁은 탓이겠지만 흠집을 볼 때 마다 그날의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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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6일 토요일

공감 공연.


재미있게 연주했으니 그것으로 좋다, 라고 할 수는 있지만, 이튿날의 것은 너무 재밌게 하려고 했던 느낌이 들었다. 몰입되었던 느낌을 놓치거나 멤버들간의 교감이 흐트러지거나, 몇 개의 음의 실수도 생겨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하필이면 그 날의 연주가 방송에 쓰이기위해 녹화되어버렸다.

그 다음날의 비공개 공연은 훨씬 차분했어서 연주의 질만으로 보자면 사흘 중 제일 좋았다. 이미 흘러간 물이었다. 흥이 넘치던 하루 전의 그림 위에 오버더빙을 할 수도 없는 것이니까.
솔직한 게 최고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즐거웠고, 연주상의 결함이 보인다고 해도 날것 그대로 기록된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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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허설, 공감.


곡마다 악기를 바꾸기 귀찮아서 그냥 모두 플렛리스로 해버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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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중독.


고백하자면, 나는 그냥 클럽 같은 곳에서 매일 밤 연주하는 것이 꿈이었다. 여전히 그렇다.
연주하고 음악 일을 하는 것으로 살고 있으니 절반은 비슷하게 되어진 것일지도 모르지만, 여전히 꿈은 멀다. 연주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다 비슷할지도 모른다.

지난 밤에는 약속되지 않은 연주를 즐기며 재미있어하기도 했고, 적당히 취한 동료들의 소리를 들으며 흔들거리기도 했다.

모르는 얼굴들, 새로 인사하게 된 친구들 할 것 없이 즐거워하기 위해 모였던 자리였으므로 편안했다. 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 못하는 것은 치명적이기도 하지만 인사를 할 때마다 새롭기도 해서 뭐 괜찮은 것이군, 했다. 지난 밤에는, 사이 마다 쉬기도 하고 마시기도 했지만... 일곱 시간 정도는 계속 연주를 한 셈이었다.
무대 위에 맥주와 재떨이만 계속 준비된다면 열 두 시간 정도는 계속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겨우 그 정도로도 사실은 고단했다. 피로하고 지쳐서 그만 많이 자버렸다. 그렇지만 또 전화가 걸려와서 연주하러 나오라고 한다면, 얼른 악기를 들고 나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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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새워 놀았다.


사흘 동안의 공연을 마치고, 거의 이삿짐 수준의 악기와 짐들을 자동차에 나눠 싣고, 꽉꽉 막히고 밀리는 도로를 뚫고 아늑한 클럽에 도착했다.

그리고 새벽 다섯 시 까지 다시 또 연주의 연속. 나로서는 술을 마시고 큰 소리로 대화하는 것 보다 그 편이 훨씬 좋았다. 다시 악기를 챙기고 겉옷을 걸쳐 입고 있을 때가 되어서야 손가락이 많이 아프기 시작한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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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5일 금요일

겨울의 느낌.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땀으로 흠뻑 젖은 옷을 뽀송뽀송한 옷으로 갈아입고,
외투를 뒤집어 쓰고 밖으로 나가 담배를 한 대 물었다.
그 순간의 기분이야말로, The Happi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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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재 중..


공연 직후 '싸인회'.
민우씨는 정성껏 또박 또박 서명하느라 자꾸 결제서류가 밀리고 있었다.
한 분씩 고맙습니다, 라고 인사를 하고 이름을 적고 있었는데, 어쩐지 스물스물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요즘 쉬지 못하였기 때문인지 손목과 손가락들이 많이 아팠다.
다 끝나고 악기를 들고 나왔더니 부쩍 차가와진 바람이 콧속에 슥 들어왔다.

피아노 음악을 듣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하며 자동차의 시동을 걸고 아이팟의 셔플을 눌렀더니 Brad Mehldau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강변을 달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내내 Keith Jarret과 Wynton Kelly를 들었다. 운전할 때에도 손가락엔 계속 통증이 사라지지 않았다.
제법 고단하여 하루 정도는 쉬고싶어졌다.
그러나 내일도 공연이다. 
연말 공연을 대비한 엄격한 리허설인 셈인건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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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4일 목요일

스페이스 공감.


몇 달 만에 다시 찾은 스페이스 공감.
리허설 때에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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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


야외에서 스탠다드 재즈 연주를 하는 도중에, 어떤 남자가 지나가면서 반말을 했던 적이 있었다.
'신나는 노래는 언제 나와?'

멍멍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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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1일 월요일

헬로 루키 공연.


춥고 바람이 많이 불었던 토요일. 리허설을 마치고 무려 일곱시간... 지루하게 기다리다가 무대에 올랐다.
그때쯤 나는 반쯤 졸고 있었어서 그만 달랑 베이스만 들고 올라갔다가, 이크, 케이블과 페달보드를 대기실에 두고 와버린 것을 무대에 올라가서야 알았다. 느릿느릿 다시 대기실로 돌아가 이펙터들을 챙겨서 다시 무대로 나왔더니 이미 다른 멤버들은 준비 끝. 맨 앞의 관객 몇 분이 티를 내지 않으려하며 허둥거리고 있는 나를 보고 웃었다.

무대에서 바라본 청중들의 얼굴들. 무려 세 시간이 넘게 선채로 구경하고 있었을텐데도 피로해하기는 커녕 잔뜩 집중해있었다. 축하공연을 하는 입장으로 그곳에 섰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나이 어린 밴드들에게 보답하고픈 마음이 있었다.

앞서 연주했던 밴드들의 편의상 그렇게 되었었던 것인지, 모니터 스피커의 음량이 너무 컸었다. 그것을 피하느라 케이블의 길이에 신경쓰며 왔다 갔다... 소리가 좋은 위치를 찾느라 바빴다. 물론 그 정도면 불만을 가질 정도의 사운드는 아니었다. 훌륭했던 편이었다.
진지한 청중들, 열정 가득했던 출연팀들, 부럽기도 했고 보기좋았다. 나의 이십대에는 그런 시절이 없었다. 겨우 두 곡만 연주해야했지만, 그날의 주인공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 보다는 마음을 담아 축하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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