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로 가는 동안 내내 비가 내렸다. 자동차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음질이 참 좋다고 생각했다. 토요일 아침에 비를 맞으며 고속도로를 달리는 기분이 좋았다. 출발하면서 프레디 머큐리의 1985년 솔로 앨범 <Mr. Bad Guy> 를 틀어놓았다. 열 여섯 살 봄에 막 새로 나온 그 앨범을 LP 로 사서 스테레오 앞에 쭈그리고 앉아 듣고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커텐 사이로 들어오고 있었던 햇빛과 품질 나쁜 턴테이블의 노이즈까지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마지막 곡이 끝나고 난 후 한 시간 쯤은 음악을 듣지 않고 운전만 했다. 문득 프레디 머큐리의 나이가 내 엄마의 나이와 같았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다가오는 수요일은 엄마의 팔순이다. 조금 전 듣고 있었던 프레디 머큐리의 목소리처럼 내 엄마도 그 무렵 참 젊었구나, 하고 생각했다.2년 만에 다시 가본 김해 문화의전당. 오후 다섯 시에 시작하여 두 시간 공연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 바람을 좀 쐬었다. 아직 해가 지지 않아 하늘이 밝았다. 사흘 전 대구에서보다 좀 더 긴 공연이었다. 극장도 좋았고 모니터 사운드도 좋았다. 즐겁게 연주를 했다. 잘 마쳤으니 기분 좋게 집에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2026년 6월 20일 토요일
2026년 6월 18일 목요일
대구에서
꼭 24시간 전에 나는 대구에서 돌아와 이곳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차를 세우고 짐을 꺼내고 있는 중이었다. 오전에 공연하여 한낮에 일을 마치니까 집에 돌아와 주차할 자리가 있어서 좋았다. 어제처럼 에너지를 다 써버리고 온 날에 주차 공간이 없어서 또 아파트 안을 빙빙 돌고 있어야 했다면 아주 힘이 들었을 것이다.
어제에도 내가 힘들었던 원인은 수면 부족이었다. 잠을 잘 수만 있었다면 거뜬히 일정을 마치고 대구 시내를 걸으며 산책이라도 했을 것이다. 새벽 네 시에 출발할 때부터 이미 졸음을 견디느라 애쓰며 운전해야 했다. 돌아올 때엔 두 군에 휴게소에 들러 방전된 배터리를 급하게 충전하는 것처럼 짧게 잠을 자고 깨어나 다시 고속도로를 달렸다.
지난 달 광주에 갔던 날에도 새벽 네 시에 출발하여 하루 종일 극심한 피로에 힘들어 했다. 이런 짓은 삼가자고 지난 달 블로그 글에도 써놓았었다. 같은 짓을 또 했던 이유는 이번엔 오전 공연이었으니 일을 마치고 얼른 돌아와 쉬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2026년 6월 4일 목요일
선거
어제 아침에 투표를 한 후에 아직은 선선한 바람이 일렁이는 동네 길을 산책했다. 밤까지 개표 중계를 보고 있다가 잠들었다. 괜히 또 이른 시간에 혼자 깨어 선거 결과를 확인해보고 있었다. 뉴스와 트위터, 게시판 같은 데를 보고 있다가 일곱 시가 됐다.
뉴스공장을 틀어놓고 커피를 내렸다. 어떤 결과는 어처구니 없고 받아들이기 괴롭지만 어디 역사라는 것이 시원하게 달려가는 적이 있었나, 라고 생각했다. 뒤로 물러나거나 거꾸로 굽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너른 바다로 향하는 물줄기라는 표현은 정말 통찰력 있는 말이다.
2026년 6월 3일 수요일
부재 不在
아침 일찍 일어나 강을 바라보다가 주인들이 떠난 자리에 남겨진 오래된 캣타워 곁에 다가가 서있었다. 여기 층층마다 고양이들이 한 마리씩 올라가 놀던 때가 있었다. 제일 높은 곳에서 털을 고르고 있던, 꼬리를 축 늘어뜨리고 편안히 낮잠을 자고 있던 내 고양이들이 사이 좋게 공유하고 있었던 가구가 이제는 덩그라니 혼자 나무처럼 서있다. 고양이들이 주둥이를 문지르고 몸을 부비곤 했던 캣타워 기둥을 어루만져보다가 먼지도 없는데 괜히 걸레를 적셔 가져와 닦았다.고양이 깜이도 저 캣타워에서 시간을 보내길 좋아했었다. 지금도 가끔 캣타워에 올라가 드러누워 쉬기도 하지만 언니 고양이들이 멀리 떠나고 난 후에는 전처럼 자주 쓰지 않는다. 한밤중에 모처럼 저 위에 올라 혼자 먼 곳을 보고 있는 깜이를 보았는데, 그것도 잠시였다. 이내 내려와 맨바닥에 앉아서 멍하니 있었다. 고양이가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도 없는 캣타워에 혼자 있던 깜이가 내 눈에는 쓸쓸하게 보였다.
2026년 6월 1일 월요일
이지, 안녕.
이지가 28일 목요일에 죽었다. 일주일 동안 펜을 쥐고 무엇을 쓰지 못했다. 블로그에 글을 적을 수도 없었다. 대개는 나중에라도 그 날짜에 맞추어 공연하러 다녀온 이야기 등을 써두는데, 지금은 그렇게 못하겠다. 올해 오월은 그대로 비워 둘 생각이다.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흐릿해질까 봐 다이어리 공책에는 그날의 일들을 기록해 놓았다. 건조하게 한 줄 두 줄 적혀 있는 문장이 한 주 동안의 이야기들을 전해주고 있다. 3월에 짤이가 죽고 두 달만에 이지가 떠났다. 혼자 남은 고양이 깜이는 토요일까지 종일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불안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우울해 보이기도 했다.
이지는 2009년 4월에 태어났다. 그해 7월 말에 우리와 만나서, 그 후로 17년을 함께 살았다.
이지, 안녕.
2026년 5월 11일 월요일
광주에 다녀온 이야기
새벽에 평소와 다르게 유난히 고양이 깜이가 소란스럽게 소리를 내며 다녔다. 두 번 일어나 먹을 것을 주고 겨우 잠들었으나 세 번째엔 자는 것을 포기하고 일어나야 했다. 고양이에게도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그래서 새벽 네 시에 집에서 광주로 출발했다. 차라리 일찍 도착하여 차 안에서 눈을 붙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공연장 앞에 도착해보니 정해진 주차 구역엔 그늘이 없어서 볕이 내리쬐고 있었고 도로의 소음은 이어폰을 귀에 꽂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아서 잘 수가 없었다. 뒤척이다가 바로 앉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차에서 내렸다. 자는 것은 그만 두고 밖으로 나가 5.18 기념공원을 산책하기로 했다.이른 아침, 긴 숲길을 따라 걸으며 초록으로 우거진 그늘 아래에서 공기를 들이 마셨다. 잠을 못자서 어지러웠던 것인지 갑자기 큰 숨을 쉬는 바람에 그랬던 것인지 살짝 몸을 휘청거리기도 했다.
2026년 4월 26일 일요일
이른 아침
일요일 이른 아침에 동네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사찰에 가보았다. 역사 깊고 오래된 곳이라고 들었다. 한강 쪽이 아니라 동네의 내륙 쪽 산길에서 아침 산책을 해볼까, 하는 생각이었다. 사람이 보이지 않는 절 마당에는 마음에 드는 것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사찰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리며 괜한 기대를 했었는가 보다, 하며 오래 머물지 않고 돌아서려고 했다. 그때 어디에선가 고양이가 나타나더니 단숨에 내 앞으로 뛰어 왔다.한 마리가 아니라 이쪽 저쪽에서 고양이들이 튀어나와 꼬리를 높이 들고 반가와 했다. 검색을 해보니 그 절은 고양이들이 여러 마리 살고 있는 것으로 유명했다. 고양이들을 만나는 바람에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인사하고 쓰다듬어 주며 시간을 보내게 됐다.고양이들은 전부 한쪽 귀 일부가 잘려져 있었다. 모두 중성화 수술을 받았다는 표식을 해둔 것이다. 나이 어린 고양이들은 건강하고 즐거워 보였다. 배가 고파서 사람을 반기는 게 아니라 간식, 별식이라도 가지고 왔느냐고 하며 관심을 보이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 것도 가지고 오지 않아서 미안하구나, 라고 말을 해줬다.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고양이들에게 친절했던 것 같다. 애들이 다 구김 없고 편안해 보였다. 넓은 마당을 가로질러 뛰고, 계단을 달려 오르다가 볕이 드는 곳에 멈춰 몸을 핥고 있기도 했다.
2026년 4월 23일 목요일
아내의 그림
감정, 느낌, 그리움은 기억 속에 있다. 어느날 자아를 잃으면 기억은 그 모든 마음들을 다 끌어 안고 사라질 것이다. 나는 그 형체도 없는 지나 온 세월들을 품에 품고 싶은 것인지. 그것들이 물건 속에 담겨 있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벌써 오래 전에 떠나버린 고양이들이 아직도 선반 위에 뛰어 오르고 볕이 가득한 날엔 베란다 타일 위에서 뒹굴거린다. 한 집에 오래 살고 있다보니 집안 구석 어디에도 고양이들이 없는 자리가 없다. 이제는 보이지 않는 식구들이 이 방 저 방 어디에나 있다. 그러다가 문득 아내가 그린 고양이들이 눈에 들어 오면, 아, 그렇지, 쟤들이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건 아니지, 라고 생각하곤 한다.
2026년 4월 21일 화요일
화요일에
2026년 4월 20일 월요일
봄비
2026년 4월 18일 토요일
안산에서
안산에서 공연을 했다. 사 년 전에는 여기 안산 예술의 전당 바로 옆 극장에서 공연했었다. 그곳은 달맞이 극장, 오늘 갔던 곳은 해돋이 극장이라는 예쁜 이름을 갖고 있었다. 어차피 실내 무대이므로 해도 달도 보이지는 않지만 이름은 곱다. 오늘은 한 달 만에 펜더 울트라 II 재즈를 가지고 갔다. 지난 밤에 악기를 가방에 넣기 전에 스트링을 새로 교환하려고 했다가 무슨 일인지 상태가 좋아서 그대로 두었다. 십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악기의 스트링을 자주 갈아야 했었다. 연주를 마치면 언제나 악기를 관리하는 습관이 되어있기도 하고, 이제는 손에 땀도 나지 않아서 베이스 줄을 더 오래 쓰게 되었는가 보다.공연을 마치고 극장 바로 옆 종합병원 길을 지나면서 오륙 년 전 그곳 장례식장에 두 번 연이어 갔었던 기억이 났다. 그 맞은 편에는 단원고 4.16 기억교실이 있다. 이틀 전은 세월호 참사 12주기였다. 이 년 전에 10주기 기억문화제에서 공연을 했을 때 하루 종일 비가 내렸던 것도 생각났다.
2026년 4월 11일 토요일
익산에서
꽃이 가득 핀 봄날 토요일에, 오전 일찍부터 고속도로 정체가 극심했다. 나는 일부러 조금 더 먼 거리로 경로를 정했다. 경부고속도로보다 가는 길은 좀 길지만 시간은 덜 걸린다고 내비게이션이 알려주고 있어서 중부고속도로를 선택했다. 두 번이나 긴 정체가 생겨서 도착 예정시간이 자꾸 뒤로 늦춰지고 있었다. 그런데 결국엔 처음 내비게이션이 알려줬던 시각 그대로 약속시간 한 시간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연인지 아니면 기계의 예측이 맞았던 것인지.
한 주 전 공연에 썼던 내 오래된 펜더 재즈를 다시 가져갔다. 지난 해 내내 새로 산 베이스를 치고 있었는데 그 악기의 넥이 아주 약간 길어서 그 사이 거기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 바람에 지난 주에 연주 도중에 그만 순간적으로 프렛 한 군데를 잘못 짚고 말았었다. 이 악기를 나는 내 몸처럼 다루었었는데 이럴 수가, 했었다. 오늘은 실수 없이 잘 했다.
돌아오는 길은 경부고속도로를 선택했다. 갈 때엔 거의 네 시간이 걸렸는데 돌아올 때엔 두 시간 사십 분 운전했다. 오늘은 고속도로에서 쉬었던 적이 없었다. 휴게소 라면을 먹지 못했기 때문에, 어쩐지 라면 생각이 나서 집앞 가게에서 라면을 사가지고 왔다. 아직 잠들지 않은 아내를 꼬드겨 라면을 나누어 먹었는데 뭐라고 할까, 아주 맛있게 먹었다.
2026년 4월 9일 목요일
시대
책을 눈에 드는 곳에 놓아두고 사나흘을 보냈다. 저것을 읽어봐야겠다, 라고 생각하고 첫 장을 펼쳤다가 그 자리에서 화장실에 한 번 다녀온 것 빼고는 일어나지 않고 죽 다 읽어버렸다. 지난 한 세기의 미시사가 한 인물의 생애에 골고루 묻어 있었다. 내가 읽어서 얼핏 알고 있었던 역사와 내가 몸으로 기억하고 있는 시대의 사건들이 영상처럼 보이는 책이었다.
이 책은 어제 오후에 읽었다. 일부러 날짜를 맞춘 건 아니었는데 오늘은 인혁당 사법 살인이 일어났던 그날이었다. 친구에게 덕분에 좋은 책을 잘 읽었다고 메시지로 감사 인사를 보냈다.
2026년 4월 4일 토요일
용인에서
용인에서 공연했다. 잠을 잘 잤고 긴 시간 운전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었겠지만, 몸 컨디션이 근래 들어 가장 좋았다. 64Audio 인이어로 듣는 소리도 아주 좋았다. 아픈 데도 없고 몸이 가볍게 느껴졌다. 그래서였는지 첫 곡부터 기분 좋게 연주를 시작했다. 공연 후에 동료들이 눈에 띄게 즐거워 보였다고 말해줬다. 안 아팠기 때문이었던 것이었는데, 잘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오늘은 내 생일이었다. 생일에 몸 상태가 좋았던 것은 다행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조금은 우울했을 거다. 건강이 중요하다고 새삼 생각했다. 몇 년 만에 함께 외출한 아내는 리허설을 마치고 와보니 그 사이에 대기실에 음식을 한 아름 차려 놓고 있었다. 멤버들이 모여 앉아 맛있게 식사를 했다. 나는 가지고 싶은 것이 하나도 없으니 선물 같은 것은 준비하지 말아달라고 했었는데, 아내가 마음을 써주어 사람들과 음식을 나눠 먹고 공연 후엔 친구들 부부와 저녁식사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여전히 생일이 부끄럽다. 십여 년 전에도 부끄러웠는데 아직도 그렇다. 더 나이가 든 다음엔 생일이 부끄럽지 않아지며는 좋겠다. 나는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늘 묻고 있는데, 언젠가는 거기에 대답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2026년 3월 27일 금요일
밀양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오기로 하고 일찌감치 집에서 출발했다. 두 시간 쯤 달리고 있을 때에 도로정체 구간을 만났다. 짐작했던 대로 사고가 났던 것이었다. 오십여 분 달리지 못하고 있는 동안 내비게이션이 예측해주는 도착 시간도 정확하게 오십 분 뒤로 미루어지고 있었다. 일찍 나오길 잘 했다, 라고 생각했다. 긴 정체구간을 빠져나올 때에 보았더니 터널 안에서 사고가 난 대형 차량을 쉽게 견인하지 못하고 있었다.약속 시각 한 시간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리허설 전까지 혼자 소리를 좀 내어보고 싶었지만 다섯 시간 운전을 하고 났더니 어깨와 허리가 뻣뻣해져 있었다. 대기실에 있는 낮고 긴 의자에 누워 스트레칭을 했다. 월요일부터 집에서 연습할 때 쓰고 있었던 Moollon 재즈 베이스를 가지고 갔다. 겨우내 습도 조절을 잘 했던 덕분에 상태가 좋았고 소리도 좋았다.
2026년 3월 20일 금요일
짤이가 떠났다.
지난 화요일 아침에, 갑자기, 고양이 짤이가 죽었다. 꼭 끌어안은 아내의 품 안에서 세상을 떠났다. 열흘 전 동물병원에 갔을 때에 다시 심장이 나빠져 있다고 듣긴 했었다. 그러나 이렇게 별안간 가버리고 말 줄은 몰랐다.
아내는 아직 짤이를 안은 채 쓰다듬으며 속삭이고 있다가, 외마디 소리를 지르듯 가늘고 짧게 울음을 터뜨렸다. 우리는 고양이를 편하게 뉘이고 집안을 대충 정리했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 생긴 동물 장례장에 짤이를 태우고 가는 동안 우리는 아무 말도 서로 하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슬퍼한다고 한들 수 년 동안 자기의 일상 전부를 고양이를 돌보는 데에 바치고 있었던 아내의 마음만 할 리가 없었다.
어제 낮에 동네 꽃집에 가서 장미 열 송이를 샀다. 짤이의 재가 담긴 단지 곁에 꽃을 놓아두었더니 깜이가 몹시 궁금해했다. 깜이를 번쩍 들어올려 꽃 향기를 맡게 해줬다. 십 년 전에 순이가 떠났던 날, 고양이 꼼이는 집안을 돌아다니며 순이를 찾다가 나를 올려다보며 뭐라고 말하듯 울기도 했다. 깜이는 꼭 그날 꼼이처럼 이쪽 저쪽 방을 옮겨 다니며 짤이를 찾다가 불안한 눈으로 나를 보며 낮고 길게 야옹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지는 베란다 문을 열어달라고 하더니 뭔가를 찾는 듯 다니고 있었다.
십오 년 세월을 거슬러 짤이가 담긴 사진들을 찾아 보았다. 사진 속에서 어리고 천진한 고양이가 즐겁게 놀고, 이제는 먼저 떠나고 없는 고양이들과 몸을 대고 낮잠도 자고 있었다. 짤이는 또래인 고양이 이지에게는 장난도 먼저 걸며 친하게 지내면서도 언제나 양보하고 져주곤 했다. 지난 십년 동안엔 자기처럼 아파트 길에서 우리집으로 들어와 식구가 되었던 깜이를 보듬어주고 마음씨 좋은 형의 역할을 맡아 해줬다.
아내는 유리 꽃병에 장미를 담아 짤이가 들어있는 단지 곁에 놓아두고 그 옆에 조명을 켜놓았다. 진하지 않은 꽃내음이 밤새 그 주변에 떠다니고 있었다. 짤이, 안녕, 이라고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인사를 해줬다.
2026년 3월 15일 일요일
강릉에서
2026년 3월 11일 수요일
강변에서
저녁에 강변을 걸으면서 음악을 듣다가 잠시 멈추어 섰다. 십여년 전에는 자전거를 타고 밤낮 없이 달리고 있던 길 옆에서 곡선을 그리며 흘러가는 강을 보다가 다시 걸었다.
나는 우연히 전쟁이 끝나고 십오년 후에 태어나 부모 덕분에 궁핍과 가난을 겪지 않고 자랐다. 나를 둘러싼 사회에 온갖 부조리와 폭력이 시꺼먼 기름때처럼 묻어있던 십대, 이십대를 지나서, 그래도 반 걸음 나아졌다가 다시 몇 걸음 후퇴하곤 했던 땅에서 용케 살았다. 나는 성공하지 못하였지만 그렇다고 망하지도 않았다. 운이 좋았고, 찾아오는 기회를 쥐기 위해 무척 애쓰기도 했다. 모든 것은 우연히 이 시기에 여기에서 생겨나 살고 있던 덕분이다.
그러는 동안 먼 나라에서 들려오는 침략과 전쟁 소식을 듣지 않았던 적이 한번도 없었다. 지금 바다 건너 저쪽에서 죄없이 사람들이 죽고 도시가 폐허가 되어가는 뉴스를 보는 것이 힘들고 괴롭다. 특별히 기쁜 일이 없었어도 저렇게 고요하게 흐르는 강처럼 평안한 일상을 보낸 것이 큰 혜택처럼 느껴져서, 한번 더 힘들었다.
2026년 2월 27일 금요일
프리버드에서
2026년 2월 26일 목요일
태안에서
지난 주말에 갑자기 어깨에 심한 통증이 생겼다. 치료를 받고 겨우 팔을 쓸 수 있게 되었지만 다 낫지는 않은 상태였다. 하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정이 있었던 때에 아프게 되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예상하지 못한 통증, 갑자기 어딘가가 아픈 것에 언제나 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그래서 리허설을 한 다음 차에서 계속 드러누워 쉬어야 했다. 오늘 공연은 평소보다 짧은 것이니까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 시간 동안 거의 자세를 바꾸지 않고 연주해야 했다. 인이어는 그동안 쓰고 있던 Galdiolus 커스텀을 가져갔다. 몇 달만에 들어보니 어딘가 소리가 부산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마 내 상태가 불안정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2026년 2월 17일 화요일
말띠 해
오늘은 설이다. 고양이 이지는 열 일곱 살이 됐다. 당뇨를 다 이겨내고 건강하게 잘 지낸다. 그 뒤에는 두꺼운 공책에 가득 시간과 횟수를 기록해가면서 고양이에게 약과 밥을 손가락으로 떠먹이고 있는 아내의 고단함이 있다. 벌써 몇 년째 나이 많은 고양이들을 돌보느라 아내는 긴 시간 외출도 해본 적이 없다. 이지와 아픈 짤이가 편안하게 잘 지내주고 있는 것이 아내의 고생에 대한 유일한 보상이다.짤이는 열 다섯 살이 됐다. 이 고양이는 작년에만 동물병원에 스무 번 다녀왔다. 이제 한쪽 뒷다리를 완전히 쓰지 못하고 있어서 아내는 밥과 약을 먹이고 피하수액을 주사해주는 것 뿐 아니라 시간에 맞춰 화장실에 데려가 오줌과 똥을 누고 있는 동안 고양이가 서있을 수 있도록 두 팔로 감싸 안은 채 돕는 일을 매일 여러 번 하고 있다. 짤이는 도움이 필요하면 고개를 들어 사람을 찾지만 그렇다고 소리 내어 부르거나 하지 않는다. 아내나 내가 근처에 보이지 않으면 영차, 하고 일어나서 쓰지 못하는 다리를 끌고 어떻게 해서든 화장실로 간다. 그러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용변을 보면서 힘을 주고는 그만 철푸덕 쓰러져버리기도 하지만, 우리가 달려가 뒤늦게 부축이라도 해주면 다시 기운을 내어 제 자리로 걸어가려 애를 쓴다. 자기연민이나 칭얼거림은 하나도 없다. 나는 고양이 짤이가 그런 모습을 보일 때 늠름하다고 생각한다.거기에다 이제 아내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개 율리까지 낮 시간에 돌보고 있은지 일 년이 넘었다. 아내의 형제와 살고 있었던 율리는 지난 해 여름부터는 평일이면 매일 낮에 이 집에 와서 지낸다. 아내는 정해진 시간에 맞춰 나이 많은 고양이 두 마리를 돌보다가 그 사이 비는 시간에 개를 데리고 나가서 몇 번씩 산책을 시키고 돌아와 개에게 밥과 물, 간식을 주고 있다. 개 율리는 고양이들이 있는 집을 어린이집처럼 다니면서 표정이 더 밝아졌다. 살이 오르고 건강해지기도 했다. 열 살 짜리 동갑내기인 고양이 깜이는 여전히 개가 함께 있는 것을 마뜩해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미워하는 법도 없다. 개는 개대로 고양이들 사이를 조심조심 다니고 나이 많은 고양이들은 의도적으로 개를 무시하는 듯 관심을 두지 않는다. 심심한 깜이만 율리에게 다가가기도 하고 놀자고 해보기도 하는데, 정작 율리는 까만 고양이와 그다지 친해지고 싶어하지는 않아서 깜이가 다가오면 가만히 벽을 보고 돌아 앉는다.
2026년 2월 11일 수요일
포항에서
나흘 전 공연에서 악기의 출력이 약하게 들리고 있었다. 한 달 동안 집에서 연습할 때에 페달에 헤드폰을 연결하여 쓰고 있었다. 그 때문에 이펙트 페달의 볼륨이 많이 줄여져 있었는데 리허설을 할 때에 괜찮은 것 같았어서 그대로 했더니 공연할 때에 좀 부족하게 들렸다. 이번엔 원래 했던대로 출력을 조정했다. 줄의 액션도 미세하게 조정하여 연주하기에 편했다. 새로 산 인이어들도 모두 좋은 소리를 내줬다. 오늘은 Ziigaat 이어폰을 썼다. 새해 두번째 공연은 앞의 것보다 좀 더 좋았던 것 같았다.
공연을 잘 마치고 집을 향해 출발했다.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갑자기 졸음이 쏟아졌다. 틀어둔 음악의 음량을 크게 해보기도 하고 잠시 꺼두어보기도 했다. 창문을 열면 금세 공기청정기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지난 번 대구에 다녀올 때처럼 졸음 운전을 하게 될 것 같아서, 졸음 쉼터에 멈추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아주 작은 볼륨으로 음악을 들으며 잠들었는데, 그만 한 시간 넘게 자고 일어났다. 그 덕분에 개운한 상태로 집에 올 수 있었다.2026년 2월 7일 토요일
연세대 대강당 공연
올해 첫 공연. 기온이 뚝 떨어졌다고 들었지만 추위를 만만하게 보고 나갔다가 덜덜 떨면서 리허설을 했다. 아무리 지어진 지 육십 년이 넘었다고 하지만 대강당 무대 위에 마치 바람이라도 부는 듯 추웠다. 사운드체크를 하는 중에 대기실에 달려가 외투를 다시 걸쳐입고 돌아와 리허설을 마쳤다.
리허설을 할 때에 새로 구입한 64 Audio 인이어를 써보았다. 한 시간 남짓 써본 후 지난 일년 넘게 사용해왔던 커스텀 인이어는 꺼내어보지도 않고 다시 가방에 담았다. 64 Audio를 착용하고 두 시간 넘는 공연을 잘 했다. 가볍고 착용감이 거의 없어서 편했다. 볼륨을 많이 올려도 귀를 자극하는 소리가 없었다. 귀가 편하였어서 공연을 마친 후에 몸도 피곤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공연에서 처음 연주해보는 새 노래도 무대 위에서 잘 표현되었던 것 같다. 첫 공연을 잘 해서 기분이 좋았고, 얇은 옷을 입고 갔던 바람에 너무 추웠다. 손이 시려울 지경이 되어서 공연 뒷 부분은 피크로 연주했다. 내가 겨울 날씨를 우습게 본 것이었다. 다음 주에는 포항에 가는데, 기온이 오른다고 해도 두꺼운 옷을 가지고 가기로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