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19일 토요일

월출산


 숙소에서 나와서 공연장소인 사찰을 향해 운전했다. 도중에 저수지인 대동제에 잠시 멈추어 산길을 따라 걸었다. 다람쥐가 발 앞을 가로질러 뛰고, 머리 위에서 도토리가 툭툭 떨어졌다. 도갑사에 도착하여 무대가 설치된 대웅보전 주변을 둘러보고 천천히 다니면서 구경을 했다. 열매가 떨어지고 있는 감나무 앞에서 멀리 보이는 화강암 절벽을 올려다 보았다.

등산로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산속으로 걸어 석조여래좌상을 보러 갔다.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소리가 듣기에 좋았다. 미륵전 안에는 사람이 있어서 열린 문으로 허리가 긴 불좌상을 넘겨 보다가 나왔다. 그리고는 별 생각 없이 계속 산길을 따라 더 올라갔다.

사람이 다니는 길에는 어김없이 돌을 쌓아놓은 것들이 보였다. 어째서 돌을 그대로 두지 못하는 건지, 라고 혼잣말을 하면서 길이 난 대로 계속 따라 걸었다.

모이는 시간이 가까와져 다시 내려와 절을 돌며 구경을 했다. 사람이 많아서 쉴 곳을 찾지 못했다. 오층석탑과 느티나무를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고 싶었지만 방해가 되는 것이 너무 많았다. 자동차로 돌아가 시트에 기대어 잠시 눈을 붙였다가, 리허설을 했다.

하늘이 어둑해질 무렵 공연을 시작했다. 공연 중에는 상현달이 떠있었다. 한 시간 반 연주를 마치고 났더니 그때부터 피로감이 들었다. 돌아올 때에도 멈추지 않고 운전했다. 네 시간 십 분만에 집에 도착했다. 






2026년 9월 18일 금요일

영암으로

이제 막 해가 지기 직전에 영암에 도착했다. 집에서부터 쉬지 않고 운전하여 네 시간 오십여 분 걸렸다. 숙소 주차장에서 짐을 꺼내기 전에 하늘빛을 보며 팔과 다리를 늘려 펴보고 있었다.

가까운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부근을 걸으며 사진을 찍었다. 길에는 다음날 열리는 밴드 공연을 홍보하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불빛이 가득한 거리에서 골목으로, 다음 사거리에서 마음 내키는 곳으로 한참 걸었다.

걷다가 트래픽콘 사이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나오는 것을 보았다. 걸음을 멈추고 가능한 조용히 사진을 찍었다. 셔터 소리에 고양이가 반대편 길로 멀어지며 나를 흘깃거렸다. 방해하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숙소에 돌아와 모서리 진 창가에 아이패드를 두고 음악을 틀었다. 높이가 맞는 작은 테이블과 충분히 밝은 조명이 있어서 글을 쓰기에 좋았다. 아침까지 서너 번은 깨었던 것 같은데, 그러면 다시 앉아서 공책에 이것저것 쓰고 있었다. 



 

2026년 9월 11일 금요일

대전 호수공원에서

 

이틀 전 청주에 갈 때에 달렸던 중부고속도로 길을 따라 대전으로 갔다. 구월과 시월에는 하늘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여행을 다니는 기분이 든다. 아마 내가 덧없고 힘겨운 먼 여행을 해본 적이 없어서 그럴 것이다.

갑천생태호수공원을 산책하며 풀내음을 맡았다. 새들이 나무를 오가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몇 장 사진을 실패하고, 아무래도 새를 찍으려면 망원렌즈를 한 개 사야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언제나 신뢰할 수 있는 엔지니어 김상현 씨는 한참 전부터 밴드의 모니터 음향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날 공연 모니터도 아주 훌륭했다. 편안하게 연주할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사람이다.

공연 한 시간 전 서쪽 하늘이 아름다웠다. 그 풍경 때문에 잠시 차 안에서 쉬려고 했다가 다시 나와서 주변을 좀 더 걸었다.

너른 공원에 사람들이 가득 모여 음악을 즐겨주어 기분이 좋았다.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주차를 해놓은 덕분에 연주를 마친 후에도 좀 더 걸었다. 어두워진 공원에는 불빛이 반짝거렸다.

깜깜해진 하늘 아래에서 어린이들이 밝은 조명이 비춰지는 곳에 모여 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주차장으로 가는 중에 멈춰 섰다. 양손에 든 짐을 다리 사이에 내려두고 그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갈 때엔 두 시간 반, 돌아올 때엔 두 시간 운전했다. 낮엔 땀이 나고 밤엔 추웠다. 설마 겨울도 이르게 오는 건 아니겠지.


2026년 9월 9일 수요일

학교


청주에 다녀왔다. 오 년 전에 증축하고 리모델링을 했다는 예술고등학교 건물이 아름다웠다. 일을 하러 간 것이어서 천천히 주변을 걸어볼 시간은 없었다. 겨우 서너 장 사진을 찍었을 뿐이다. 건물은 적벽돌 외장에 크기가 다른 중정이 두 군데, 사방에 세로로 낸 창이 여러 개 있어서 어디에서나 빛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복도를 오가는 학생들의 얼굴이 밝고 환하게 보였다. 그들의 사정은 하나도 모르지만 그들이 일상을 보내는 공간과 환경이 주는 좋은 기운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2026년 9월 8일 화요일

늦여름

 


낮에 강변에 좁게 난 길을 잠시 걸었다. 살에 닿는 햇빛이 따갑게 느껴졌다. 청명한 늦여름 하늘, 한낮에는 아직 가을이 저만치 멀리 있었다. 이 길엔 길고양이들이 둘셋씩 어울려다니며 낮엔 볕을 쬐거나 그늘 아래에서 쉬거나 하는데, 오늘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 보름 정도 후엔 이 길에도 낙엽이 떨어져 구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금세 겨울옷을 꺼내어야 하겠지. 

2026년 9월 5일 토요일

임진각 포크페스티벌

 

날씨가 좋았다. 아내와 함께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 갔다. 외곽순환도로에서는 터널마다 정체가 심했다. 일찌감치 출발한 덕분에 약속시간 한 시간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장소에 도착하니 드넓은 하늘에 흰구름이 아름답게 떠 있었다. 구월이 되자마자 성큼 다가온 가을이 느껴졌다. 언제나 여름은 길게 느껴지고 가을은 갑자기 와 있다.

파주 포크페스티벌에 마지막으로 왔던 것은 2023년이었다. 그동안 몇 번 그곳에 갔었지만 공원 전체를 빙 돌아 걸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멀찍이 서서 무대쪽을 바라보며 바람을 맞고 걷기도 했다.

이날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서 운동을 하고 온 아내는 나보다 체력이 좋다. 그가 풍경을 즐기며 언덕을 성큼성큼 오르는 바람에 나는 뒤쳐졌다. 이따가 공연을 해야 하기 때문에 기운을 아끼느라 느리게 걷는 중이라고 변명을 하고 싶었다.

리허설을 준비하는 데 삼십 분이 걸렸고, 실제 리허설은 십여 분 만에 끝났다. 이날엔 무대 위에서 아예 앰프를 쓸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있었는데, 전날 가로 뉘인 앰프 캐비넷 앞에서 음량 조절을 해본 것이 연습이 되었다. 보스 멀티페달에 XLR 케이블을 직접 연결하고 인이어에서 들리는 소리만으로 연주했다.

리허설을 하기 위해 무대에 있을 때에 반가운 분들을 만났다. 앞 순서 가수들의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왔다고 했다. 리허설을 마치고 다시 찾아가 짧은 인사를 더 했다. 꼭 십 년 전에도 그곳에서 오래 전 함께 연주했던 분들과 인사했던 기억이 났다. 서로 건강을 묻고, 안부를 전했다. 

공연을 시작하고 리허설 때와 달라진 소리를 듣게 됐다. 첫 곡을 연주하는 중에 모니터 믹서에서 음량을 다시 조정할 여유가 있었다. 그 후로는 편안하게 공연을 할 수 있었다.  

공연을 마치고 자동차로 돌아와 시동을 걸었다. 아직 푸드트럭에서는 음식을 팔고 있는 중이었다. 하루 종일 많이 걸었던 아내는 피곤해진 목소리를 냈다. 다시 자유로, 외곽순환도로를 달려 집에 도착했다.






2026년 9월 4일 금요일

청계천에서

 

을지로 CKL 스테이지에서 공연을 했다. 금요일 오후에 내비게이션이 알려준 길은 강변북로, 금호동 금남시장, 장충체육관을 지나 청계천을 지나는 경로였다. 도착하여 짐을 내리고 밖으로 나왔다. 푸른 하늘 아래 건물들 사이로 센 바람이 불고 있었다. 건너편 동아빌딩의 유리 벽면에 빛이 닿아 다동빌딩 벽에 물결처럼 반사되고 있었다.

광통교에 기대어 서서 풍경을 보며 가을이 좀 성급하다는 생각도 하고.

리허설을 하고 첫 끼를 먹은 후 음식점 거리의 한구석에서 쉬고 있는 고양이와 인사했다. 복집과 고기집 사이를 오가며 살고 있는 동네 아이인 것 같았다.

다동, 무교동, 을지로입구역을 걸으며 산책을 했다. 나는 이 길을 많이 걸어다녔었는데 이제 내가 기억하는 모습은 너무 옛날 일이 되어있었다.

무대는 높고 서있는 관객들의 위치는 낮아서 그랬겠지만 눕혀져 있는 앰프 캐비넷 앞에 오랜만에 서서 연주했다. 리허설을 할 때에 베이스 음량을 여러번 고쳐 만져서 편하게 연주할 수 있게 하는 데 잠시 시간이 걸렸다. 인이어를 귀에 꽂고 있어도 언제나 등 뒤에서 울리는 앰프 소리와 진동을 느끼는 데에 익숙해져있었기 때문이다. 밴드 단독공연의 절반 정도 분량이어서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시작부터 계속 뛰고 있던 관객 몇 사람을 보면서 체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2026년 8월 31일 월요일

광화문, S Theatre

 

28, 29일에 세종문화회관 S Theatre 에서 이틀 동안 공연했다.

이틀 동안 펜더 엘리트 5현 베이스를 썼다. 이번에는 페달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 악기를 공연에 쓴 것은 5월 광주 공연이 마지막이었다. 몇 달 만에 무거운 베이스를 메고 연주를 해보았다.

금요일엔 긴 시간 리허설을 하느라 공연 전에 힘이 빠져있었다. 그래서 토요일엔 무대 위에 의자를 놓고 앉은채로 리허설을 했다. 공연 후에 허리가 아팠지만 집에 와서 스트레칭을 한 후 통증이 사라졌다. 이제 내 몸이 묵직한 악기를 써도 괜찮은 상태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극장 옆 공원길에 키 작은 배롱나무가 있었다. 아직 많이 덥고 습했다. 진한 분홍색 배롱나무 꽃이 예쁘게 피어있었다. 배롱나무 꽃이 다 져버려야 가을이 시작한다고 했던 것이 기억났다.


2026년 8월 21일 금요일

세종 만년필

 

겸손몰 세종 만년필 스틸닙 두 자루를 받았다. 주문한지 일 년 만에 도착했다. 베럴이 정말 가볍다. 디플로마트, 파버카스텔 알루미늄 펜보다 더 가벼운데, 그립은 스테인레스로 되어 있어서 아래쪽으로 묵직하다. 쓰는 데 안정적이고 손에 힘을 주지 않게 되어 편안하다. 아주 좋다. 피스톤필러도 훌륭하고 닙과 그립에 PVD 코팅을 한 것도 마음에 든다. 잉크를 넣을 때 닙 파트에 묻은 잉크가 쉽고 깨끗하게 닦인다.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만족스럽다.

2026년 8월 20일 목요일

고양이 발치

고양이 깜이를 치과동물병원에 데려가 이빨 치료를 받게 했다. 열 살이 된 고양이는 전부터 이빨에 치석이 많이 있고 잇몸에 염증이 생겨있었다. 치석을 제거하고 잇몸 염증을 치료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많이 상하여 그대로 두면 안 되었던 이빨을 여러 개 뽑아야 했다. 더 일찍 치료를 받게 했으면 좋았을 것을, 마취에서 깨어나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치료를 받고 나온 고양이를 받아 안으며 미안해했다.

하루가 지나자 깜이는 부드러운 음식을 먹고 건조사료도 먹었다. 아직 침에서 피가 섞여 나오고 있고 물과 항생제 약을 먹이고 있다. 마취 때문에 전날 하루 종일 굶었으니 고양이도 힘들었겠지만, 이른 아침부터 개 율리를 맡아 돌보기 위해 동네를 뛰어다녀야 했던 아내도 고생을 했다. 집에 돌아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힘들었던 고양이와 아내는 깊이 잠들었다.

의지와 상관 없이 병원에 따라간 개 율리는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이 행복한지 즐거운 표정으로 하루를 지냈다. 차를 타고 긴 시간 기다리는 것이 재미있는 일은 아니었을 텐데도. 지난 달에 그곳에서 수액 주사를 맞으며 발바닥이 젖도록 땀이 나고 있을 때에도 율리는 의연하게 있더니, 이날에도 얌전하고 착하게 깜이가 수술을 마칠 때까지 기다려줬다.



2026년 8월 15일 토요일

영월에 다녀왔다


 영월 관풍헌에서 열린 행사에 다녀왔다. 무척 덥고 습한 날씨였다. 리허설을 한 후에 악기를 무대 위에 그대로 두었더니 세 시간 동안 물기를 머금어 옷에 쩍쩍 달라붙고 있었다. 습기 때문에 손끝이 점점 아파오고 있었던 바람에 중간에 몇 곡은 피크로 연주했다.

영월까지 가는 길은 도로정체가 심했다. 두어 시간이면 가는 거리를 네 시간 넘게 운전했다. 운전하는 내내 하늘이 흐리고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도착한 후 잠깐 하늘이 개었었다. 봉래산 별마로 천문대 쪽에서 동강 쪽으로 날아오는 패러글라이더들이 보였다.

약속 시간 한 시간 전에 도착하여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다. 너무 오래 운전을 해서 일어나 걷고 싶었다. 정겹게 보이는 극장이 궁금하여 안에 들어가 구경도 했다. 극장 창유리에서 내다본 관풍헌의 뒷면을 보고, 팝콘 냄새를 맡다가 나왔다.

공연 시각이 될 때까지 주변을 산책하고 사진을 많이 찍었다. 나중에 쓸만한 것을 추리고 보면 몇 장 남지 않긴 했지만 돌아다니며 사진과 눈에 담은 모습들이 기억에 남았다.
이제 피해를 입은 자동차를 수리하고 한 주일에 두 번 세 번씩 예정되어 있는 밴드 일정을 시작하게 됐다. 여름이 길게 느껴지다가도 아직은 찬 바람이 불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고.



2026년 8월 13일 목요일

또 당했다.


 이른 아침에 모르는 휴대전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몇 초 망설이다가 전화를 받으면서 직감했다. 전화한 분은 아파트 경비원이었다. 지상에 주차해 놓은 내 자동차를 누가 긁어버렸으니 지금 내려와달라고 했다. 어째서 나에게 이런 일이 자주 생기는 거지.

이번에도 내 차 옆에서 차를 빼다가 뒷범퍼를 긁고 지나간 사건이다. 꼭 2 년 전 7월 31일에 같은 일이 생겼었다. 그날 일보다는 가벼운 피해다. 플라스틱 범퍼만 긁혀서 피니쉬가 벗겨졌다. 도색만 하면 될 일이다. 사고를 낸 이에게 보험회사에 사고 접수를 하시라고 말해주고 인사를 했다.

오후에 공업사에 갔다. 수리할 차량이 많아서 오늘 맡기면 토요일에나 찾아갈 수 있다고 했다. 토요일엔 공연하러 영월에 가는 날이다. 17일 월요일은 '대체 공휴일'이다. 수요일은 깜이 치과병원 진료를 예약해 놓았다. 다음 주 목요일 아침에 다시 오겠다고 그곳 직원에게 말하고 돌아왔다. 다음 주가 자동차를 수리할 수 있는 유일한 때다. 그 다음 주부터는 매주 두 번 세 번씩 먼 거리를 다니는 일정이 시작한다.

오래된 아파트에 좁은 주차공간, 과포화 상태인 자동차 수를 생각하면 이런 일은 일어나기 쉬운 것이 맞다. 그렇다는 것은 알지만 나는 이와 같은 일을 정말 많이 겼었다. 이 아파트 지상 주차장에서 겪은 것은 세 번이다. 지하 주차장에서 두 번, 오래 전 여주대 주차장에서 무려 세 번, 서교동에서도 한 번 똑같은 일을 겼었다. 가해자가 내빼어서 내 돈으로 차를 고친게 절반은 넘는다. 삼십 년 전에는 역주행 하던 오토바이가 내 차를 들이받고, 교차로에 서있을 때 음주운전 차량에 들이받혔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자주 생기느냐고 해도, 된다.
공업사에서 돌아오면서 다이소에 들러 배수관 세척제를 샀다. 500 ㎖ 를 세면대 구멍에 따라놓고 삼십 분 후에 물을 가득 받아 부었다. 막혔던 세면대가 시원하게 뚫렸다. 그래서 조금 기분이 나아졌다.


2026년 8월 9일 일요일

여름


 어제 바람이 불더니 오늘 아침 기온은 23 ℃ 가 되었다. 한낮에는 다시 높은 기온이 될거라고 하지만 지독하게 더웠던 여름이 그만 물러가려는가 보다. 입추가 지났으니까 당연하다고 해야 할까.

바람이 불고 있는 건 남쪽 멀리서 태풍이 옮겨 오고 있어서다. 강릉에는 갑자기 많은 비가 쏟아졌다고 했다. 풍랑주의보가 제주에 폭염주의보가 전남에 내려졌다. 어제 오후에는 여전히 무더웠지만 바람이 불어 구름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파란 하늘이 시원하게 보였다. 시계를 보면서 일몰 전에 산책을 하러 나갔다. 내집 앞은 동쪽에 산이 있고 서쪽으로는 너른 한강이 흐르고 있다. 일몰 때 빛이 근사하다.

강쪽 자전거도로에 내려가 물이 불어 맑게 흐르는 월문천에 햇빛이 가득 번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오래 걷지 않았는데 땀으로 옷이 젖었다. 바람이 불면 뭐 해. 아직 여름은 한창이구나.

2026년 8월 3일 월요일

팔월


 팔월이다. 하루, 한 달이 빠르게 지나간다. 벌써 월말이야, 라고 말하며 달리는 자동차 뒷자리에서 한숨처럼 후, 소리를 내던 엄마가 생각난다. 낮에는 잠깐 외출했다가 뜨거운 기온과 높은 습도 때문에 나도 후, 소리를 내었다.

책상 위에 줄지어 누워있는 만년필들이 너무 많아서 한 개씩 세척하여 보관하기로 했다. 잉크를 다 쓰게 되는 순서대로 하나씩 파우치에 담아 서랍 안에 넣어두고 있다. 다섯 개짜리 펜트레이 한 개가 치워지자 책상 위에 공간이 생겼다. 새 로이텀 공책도 펼쳤다. 앞의 것은 반 년 넘게 썼다. 값이 비싸지만 한 해에 두 권 정도라면 괜찮은 가격이다. 쓰기 편하고 언제나 안정적이어서 제일 좋아하는 공책이 됐다. 새 공책을 다 쓸 즈음이 되면 벌써 연말인가, 하고 있겠지.

2026년 7월 30일 목요일

화보 촬영

 

이 달 4일에 밴드 멤버들은 잡지 화보 사진을 찍었다. 이제 그 사진과 인터뷰 기사가 실린 잡지가 발행되어서 그날의 얘기를 지금 쓰고 있다.

오후에 시작한 촬영은 밤 늦게까지 이어졌다. 좋은 스탭들로 구성된 팀들이 훌륭했다. 옷을 갈아입고 분장 수준으로 화장을 하고 사진을 찍었던 작업에 비하면 오래 걸린 것이 아니었는데 모두 그곳에 모였던 스탭들 덕분이었다. 나를 비롯한 멤버들은 여전히 어딘가 어색한 표정에 엉거주춤 서있었지만 리더님은 역시 어떤 동작을 하여도 자연스러웠다. 

나는 누구에게도 말은 못하였지만 그날 하루 종일 굶고 있었다. 촬영을 다 마치고 돌아와 신 김치에 라면을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몇 주가 지났는데도 기억이 날 만큼.

2026년 7월 29일 수요일

고양이 깜이


 고양이 깜이는 여름날을 좋아한다. 추운 것을 못 견뎌하고 따뜻한 것을 좋아하는 고양이가 십 년 전 그 겨울에 길바닥에서 얼마나 고생스러웠을까, 자주 그 생각을 한다. 에어컨을 켜놓았는데 깜이는 굳이 햇볕 드는 베란다 창유리 앞 캣타워에 올라가 꼬리를 축 늘어뜨리고 쿨쿨 자고 있었다. 걱정이 되어 가끔 다가가 살피면 잠을 방해하지 말으라고 낮게 소리를 냈다. 일몰 시간이 되어서야 캣타워에서 내려온 깜이는 기지개를 켜더니 비어있는 밥 그릇 앞에 앉아 사람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2026년 7월 24일 금요일

사진미술관

 

창동역 앞에 있는 시립사진미술관에 가보았다. 층마다 천장이 높고 재미있게 설계하여 지은 건물이었다. 전시 중인 영국인 사진가의 사진들은 대충 보았다. 맨 먼저 들른 제일 윗층 도서관에서 사진집들을 구경하다가 시간을 다 보내버렸기 때문이었다. 전시는 시월까지라고 들었다. 조만간 다시 가서 볼 생각이다.

경계에서


 나는 소설을 읽지 않은지 오래 됐다. 그대신 인물의 전기, 평전은 자주 읽는다. 한 사람의 일생은 그가 살았던 몇 십 년의 역사가 그 무대가 된다. 모두의 일생은 그 시대가 지나가며 흘린 부스러기다.

잘 쓰여진 전기는 사람의 차이를 교묘하게 드러낸다. 작가가 경계에서 치우치지 않고 인물을 관찰하고 학습해 준 덕분일 것이다. 타인은 내 선생이 아닌 사람이 없다. 그런 생각으로 현실 세계에서도 남을 보려고 노력한다. 큰 차이에서 시작하여 작고 사소한 다른 점들을 구별하기 시작할 때 이해가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