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월 30일 수요일

형님 한 분이 돌아가셨다.


좋은 형님 한 분이 세상을 떠나셨다.
소식을 듣고 자세한 이야기를 몇 번이나 확인도 했지만 믿고 싶지 않았다.
화가 나고 자꾸 욕이 새어나왔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헤어질때에는 내 건강이 좋지 않았던 때여서, 손을 잡아주며 다음에 얼굴 볼 때엔 반드시 팔팔해져 있어야 한다, 라고 하셨었다.
그냥 마음이 답답하고 자꾸 화가 났다.
그날의 공연이 그 분의 마지막 연주였다는 것도 안타깝다. 자꾸만 그날 밤의 그 북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명복을 빕니다, 라고 말하고 나서는, 동생을 잃은 분의 심정을 헤아려보게 되었다.
무슨 말로 위로를 해야 좋을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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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28일 월요일

손으로.


평소엔 학생들에게 컴퓨터로 악보를 출력하여 나눠준다. 그런데 컴퓨터에서 만든 악보는 바보스러워서, 속도는 빠르고 힘이 덜 들지만 학생들에게 나눠준 뒤 설명하고 수정해주느라 바빴다.

학생들의 공연을 위해 몇 곡을 새로 편곡하여야 해서, 오선지를 쌓아두고 악보를 그리기 시작했다. 한 곡에 쓰여질 악기별로 모든 악보를 손으로 그렸다. 내가 이것을 맨 처음 했었을 때가 생각났다. 오래전에 다음날 연주할 클럽에서 쓰일 곡 하나를 악기별로 한 장씩, 내딴엔 열심히 악보를 그려서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들고 갔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미처 리허설을 할 시간이 없었어서 그저 테이블에 앉아 고개를 뜨덕이며, 음, 여기에서는 이렇게 하면 된다는 말이지? 어쩌구... 하면서 사람들과 의논만 했다. 그리고 무대에 올라갔을때에,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었다. 
내가 그려간 것이 얼마나 엉터리 악보였는지, 도저히 음악이라고 할 수 없는 소음만 나고 있었던 것이었다. 동료들의 임기응변으로 곧 악보를 무시하고 눈치껏 곡을 끝낼 수 있었지만, 나는 창피하고 화도 나고 부끄러워서 죽고 싶었다. 그 다음날 기보법 책을 몇 권 사서 한참을 넘겨보며 공부했었다. 그래도 그날의 망신이 두려워서 한동안은 악보를 그려서 가지고 나갈 생각을 못했었다.

나처럼 음악교육을 받지 않은 연주자들이 더러 있을 것이다. 실제 나의 rocker 친구들은 악보를 전혀 쓰지도 보지도 않으면서도 복잡하고 긴 여러 곡들의 전체를 다 암보하고 있다. 그들의 연주를 보면 즐거워지고 감탄하게 된다. 왜냐면 이미 악보라는 것에 의존하지 않으므로 연주하는 음악의 본 모양을 제대로 외고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소리와 기분에 훨씬 더 충실해질 수 있으므로 악보를 펴두고 연주하는 이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feeling이 있다.

나의 경우에도 악보는 시놉시스 정도의 개념일 뿐, 기본적으로는 음악을 외는 것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공연중에 악보를 읽으며 연주한다는 사람들을 불신하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악보에 충실해야하는 클래시컬 음악과 같이 광대하고 드넓은 음의 바다를 헤엄치는 것도 아니면서, 길어야 몇 분 되지 않는 곡들 조차 일일이 악보에 의존하는 사람들은 험하게 말하자면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런데 좋아하는 음악, 몸담고 있는 밴드에서만 연주하며 지낸다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직업연주자에게는 악보를 읽어내야만 하는 것이 생활이 된다. 아무 것도 모르던 시절, 방송 연주에 불려갔을때에 많이 당황했었다. 방송사에서 내민 악보에는 코드 네임이 없었다. 베이스의 음들을 전부 음표로만 그려놓은데다가 분명히 컴퓨터 따위로 출력했던 모양이어서, 네 줄의 베이스에서는 낼 수 없는 낮은 C음이 마구 찍혀 있었다. 부랴 부랴 리허설 도중 각 마디의 첫 음을 유추하여 대충의 코드를 그려놓고, 몰래 화장실에 가서 자세한 코드 네임을 또 그려놓았다. 그러나 방송 녹음이 시작되기 직전에 또 한 번 큰 낭패를 보았었다. 그 사이에 몇 가지가 수정되어서 새 악보를 나눠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결국 나는 코드네임 없이 초견으로 연주해야했다. 그날의 연주는 TV에서도 방영되었는데, 나는 그것을 시청한 후 심각하게 자살을 고려할 뻔 했었다. 아무도 몰랐을지도 모르지만, 내 베이스 소리는 주눅이 잔뜩 든채로, 거의 모든 부분에서 틀리게 연주되어지고 있었다.

나이 많은 선배형님들에게 참 많은 것을 배웠다. 평생 연주해온 그 분들은 심지어 빈 오선지를 가져다놓고 둘러 앉아서, 각자의 맡은 부분을 의논하며 몇 개의 음표를 그려놓는 것 만으로도 리허설이 가능했다. 여러 분의 선배형님들과의 연주를 거치면서 나는 슬쩍 슬쩍 그분들의 악보를 얻어와서는 집에와서 열심히 베껴그리는 것을 수업으로 삼았다. 그런 덕분에 이제는 겨우 읽고 쓰는 것이 가능한 악보문맹 신세를 벗은 모양이 되었다.

학생들에게 줄 악보들을 그리면서도 나는 복잡해졌다. 악보가 연주될 음악의 모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줘야 하기도 하고, 동시에 작곡/편곡자의 의도에 충실해야 할 의무도 말해줘야 한다. 그들중 대부분은 귀찮아하고 어려워한다. 귀에 의존하고 feeling에 따라야 한다면 뭐하러 이런 악보를 나눠주는거냐고 묻는 친구도 있고, 음표를 정확히 읽겠다고 어설픈 배우가 희곡을 읽는 것 처럼 바보같은 연주를 하는 아이들도 있다. 그래서 개인이 알아서 해야할 부분을 항상 비워두며 그려주는데, 용케도 이것을 간파하는 학생들을 만날 때도 있다.

지난 해 마지막 달에, 친구가 프로듀스한 음반을 녹음하러 갔을때에 그가 나에게 보내준 악보들이 기억났다. 가장 친절하고 세심하게 그려진 악보였는데, 보내준 악보들을 보며 연습을 해서 녹음실에 갔다. 그런데 녹음을 시작하기 직전 내 친구가 넌지시 말해줬다. '알지? 악보는 됐고, 잘 알아서 만들어 쳐보라구.'
부담은 몇 배로 증가했지만, 듣기 좋은 요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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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고양이.


성격은 만들어지는 것일까, 아니면 선험적인 것일까.

꼬마 고양이를 데려온지 아직 석 달 열흘도 되지 않았는데, 그동안 꼬마 야옹이의 성격이 거의 형성되었나보다. 이들에게 한 달이란 우리의 한 달과 같지 않을테니 금세 부쩍 몸집이 커진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집안의 다른 어른 고양이들은 여전히 낯선 사람들이 방문하거나 하면 몸을 숨기고 조심스러워하며 경계를 늦추지 않는데, 꼬마 고양이는 아예 뛰어나와 인사도 하고 놀아달라며 사람들 곁에 다가가 장난을 청하기도 한다. 집안의 네 마리의 고양이중 유일하게 손님 접대에 적극적이어서 우선은 걱정부터 된다. 고양이의 털을 싫어하는 분들이 대부분일테고,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을지도 모르겠고, 동물이 다가와 친근하게 구는 것에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도 있으니까 그런 것인데, 꼬마 고양이는 모든 것에 아랑곳 없다.

약속없이 불쑥 방문했던 옛 친구들이 돌아갈 때까지 뛰고 구르며 그들 앞에서 장난을 치다가보니 피곤했었는지, 슬그머니 이불 속에 들어가 얼굴만 내밀고 졸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건강해졌고, 그나마 조금은 어른스러워지기도 했고, 언제나 즐거워하고 행복해한다. 절대로 변하지 않을 식탐과 미친듯이 놀겠다는 강한 의지는 꺾이지 않을듯. 그래, 그렇게 잘 살아라, 꼬마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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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친구들이 찾아왔다.


밤중에 갑자기 전화가 걸려오더니, 그들이 집에 방문했다. 나에게 내 집 근처로 올테니 밥을 먹으러 나오라길래 알았다고 대답한 뒤 옷을 입으려다가, 생각이 바뀌어 집으로 와서 함께 식사를 하기로 했다. 아내는 부랴 부랴 음식을 만들어줬고, 친구들은 어떻게 알았는지 마침 떨어지고 없었던 계란이며 뭔가들을 사왔다.

같은 날 낮에는 학생들중 한 명이 손을 다쳐서, 내가 침을 맞으러 가는 길에 두 명을 함께 태워 침 놓아주는 집에 데려갔었다. 그리고 함께 점심을 먹었다. 아직은 때묻을 구석이 때묻은 구석보다 많은 아이들이어서, 나는 그들끼리의 대화를 보며 문득 내 옛 친구들을 떠올렸다. 그런데 마침 그날 밤에 중학시절 친구들이 찾아올줄이야.
반갑게 만나고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꼬마 고양이는 우리 집에 잘왔다며 낯선 남자들에게 같이 놀자고 엉겨붙어 있었다.

나는 학교를 한 해 일찍 들어가서, 내 친구들은 나보다 한 살씩 많다. 나는 늙어진 그들을 보고 깜짝 놀라는데, 제 나이 먹는 것은 모르고 남의 모습으로 세월을 가늠하는 꼴이다. 
나이가 들어도 어릴 적의 친구들이란 낮에 만났던 고교 아이들의 그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 다만 시시콜콜한 어린 시절 이야기들을 끄집어내어 웃음지으면서도, 서로 다르게 지내온 이십여년의 세상 일들은 기억을 못하는 것일까. 나는 가끔씩 친구들을 만나면 같은 시절을 같은 나라에서 보내온 것이 맞던가 하는 의문도 든다.
그들을 배웅하고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오면서 생각해보니, 어쩐지 항상 나는 사람들과 깊게 어울리지 못했던 녀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시절 어느 친구들과도 조금씩은 물과 기름처럼 따로 부유하거나 가라앉는 태도로 살아올 수 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그것의 격차를 줄여서 덜 외롭게 살아보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고, 그저 사람을 반가와하면서도 곧 혼자만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 되어버리는 성격인가 보다, 했다.
큰 수술을 받고 있는 녀석이 쉽게 건강해지면 좋겠고, 언제나 후덕하게 살아가는 친구가 그 넉넉함을 잃지 않고 늙어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다시 제 집에 들어가 문을 잠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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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27일 일요일

손가락.


주사쇼크로 응급실에 실려갔던 적이 있었다. 이것을 핑계로 주사를 맞거나 침을 맞는 일을 두려워한다고 우겨보았자 그다지 동정을 해줄 사람도 없을 것 같아서 그 때의 일을 핑계삼아본 적은 없다.
어쨌든 무엇인가 좋지 않은 기억이 남아있거나 부정적인 정보가 머리 속에 심어져있기 때문인 것 같은데, 나는 병원과 동물병원들을 기본적으로 불신하는 쪽인가보다. 사실은 무서워하는 것이겠지만...

결국 몸이 아프면 병원에 의지하여야만 하니까 신뢰하든 말든 병원에는 가는 수 밖에 없다. 전과자들이 모여있는 다음 정부에서 의료보험 민영화를 해버린다고 하니 이젠 아프면 개인은 몰락할 가능성도 생겼다. 조금 아플 때에 수리를 잘 받아둬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손가락의 통증은 없어졌는데 마비 증세가 있는 것 처럼 손가락이 무겁고 둔했다. 그것을 극복해보겠다고 조금 심하게 연습을 하다가 결국 또 한 번 찌릿함을 느꼈는데, 그날 저녁 부터 아파왔다.
그리하여 다시 침을 놓아주는 곳에 다녀왔다.

기왕 시간을 내어 다녀오는 김에 아직 완전히 낫지 않은 발목에도 침을 맞았다.
덕분에 통증도 없어지고 좋지 않은 증상도 호전되었다.
이번에는 별로 겁을 먹지 않았는데, 손톱 근처에 침을 지긋이 돌려 꽂아줄 때엔 정말 싫은 느낌이었다. 이건 고문할 때에 사용하는 방법 아닐까요, 라고 물으려다가 더 고약한 곳에 놓아줄까봐 얌전히 있었다.

밤이 깊었다. 그런데 이번엔 오른쪽 손이 뻐근해온다. 팔목도 저리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펜을 잡고 쓰는 일을 장시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손가락만은 몇 십 년 더 멀쩡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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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26일 토요일

부담.


꿈을 꾸고 선잠을 깼다. 시계를 보았더니 잠든지 겨우 한 시간 남짓.
부담감이 있다. 일어나서 하드디스크의 정리할 것들을 정리하고 백업시디를 구워놓고, 악보를 출력하고, 음악 파일들을 가지런히 정돈했다.

일찍 나가야할 것이어서 다시 누워 조금이라도 더 자두려고 누웠다. 아이팟에는 음악을 흐르게 해두고 이어폰을 귀에 꽂은채로 눈을 감았다. 잠시 후 툭 하고 한쪽 귀에서 이어폰이 빠져나갔다. 눈을 떠보니 꼬마 고양이가 이어폰의 케이블을 손에 쥐고 장난을 하고 있었다. 빼앗아서 다시 한쪽 귀에 꽂고 고양이를 멀리 밀어놓았다. 잠자코 있을 것처럼 얌전해보이길래 다시 눈을 감으면 이내 다시 달려와 귀에 꽂힌 이어폰을 뽑아내고 케이블을 감고 물어뜯었다. 세 번 네 번 실랑이를 벌이다가 나는 잠들기를 포기하고 다시 일어나버리고 말았다.
결국 다시 일어났더니 몸은 더 피곤했다. 퍼져서 잘 때엔 열 시간도 잘 수 있는데, 다음날 뭔가 약속들이 있으면 잠을 못잘 때가 많다. 그래서 집밖에서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항상 피곤해보이고 부어있는 얼굴만 구경하게 된다. 알람을 맞추어두었던 시각이 한 시간 정도 남았다. 나는 오늘 못잘 것이다.

물 한 잔 마시고, 담배를 한 대 피웠다.
악기를 가지러 다른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바닥에 고양이가 보였다.
이 녀석은 아이팟을 가지고 놀다가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여전히 한쪽 손에는 이어폰의 케이블이 쥐어진채로. 나를 깨워놓고 자신은 잠들기... 샴고양이 순이에게 여러번 당했던 일을 다시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도 귀엽기만한 고양이. 저렇게 잠든 모습이 더 귀여워 보여서 몰래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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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북 추가.

어쩌다보니, 두 개의 맥북이 되어버렸다.
거의 새것인 맥북과 내 것을 번갈아 만지고 있다보니 내 컴퓨터의 트랙패드는 닳고 닳아 맨질맨질해져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직 채 일 년이 되지도 않았는데 너무 쉽게 닳아버렸다. 

아내의 큰 (그리고 비싼) 맥북을 열고 만져보았는데, 내것보다 오래되었는데도 심하게 닳아있지는 않았다. 왜 이렇게 되었을꼬, 생각하며 오른손을 들어 손가락을 살펴봤다. 그럼 그렇지. 연주를 하느라 언제나 오른쪽의 두 개의 손가락에는 굳은살이 있었던 것이구나. 플라스틱 표면이 맨질거려질만 한 것이었다.

몇 개의 외장하드를 정리하고, 백업할 것들을 모아 DVD와 CD에 담았다. 다른 맥북에는 난데없이 이것을 보내온 사람이 급히 개인파일을 지워보겠다고, 난잡하게 삭제해버린 폴더의 찌꺼기가 담겨있었다. 포맷을 하고 새로 맥오에스 레오파드를 설치했다. 빌어쓰고 있었던 것이든 아니었든간에, 장터에 내다 팔거나 심지어 걸인에게 버리는셈 치고 줘버린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되어먹지 않게 하는 것이 아니다. 못되어먹은 짓을 자신의 내세울만한 개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행동은 으례 그렇게 나타난다.

여자들의 우정이라는 것에 대하여 몇 달 전에 써둔적이 있었는데, 나는 이런 것에 씁쓸해하기도 하고 괘씸해하기도 하는 것에 반해 아내는 언제나 담담하다. 나로서는 쉽게 납득되지 않는 아량이 있는 것인지 타인에 대한 관용이 지나치다. 그래서 늘 나는 나쁜 녀석이 되고 아내는 뭔가 인격이 갖춰진 것 처럼 여겨질 때가 있어서 나는 억울해했다. 사실, 느끼는 것은 똑같지 않겠는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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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21일 월요일

눈 내리던 아침.


이른 아침에 선잠을 깨었더니 가는 눈가루가 불고 있었다.
하늘이 흐릿하여 기분이 좋아져서 오랜만에 창문을 열고 방충망도 열었다. 고양이들을 위해 일년중 거의 열어본적이 없다.

찬 공기도 기분좋고 살짝 얼어있는 강을 보며 담배를 한 대 피우는 것도 좋았다.
원래는 모래사장으로 테두리를 삼았었을 강가는 해가 바뀔수록 시멘트와 콘크리트로 단단해져간다. 주민들을 위해 이것 저것 만들어 놓고 있다는 취지인가본데, 내버려두면서 주민을 위해줄 묘안을 떠올릴 공무원들은 적어도 경기도에는 없는가보다.
운하 어쩌구를 파헤치기 시작한다는 인간들의 계획이 현실화된다면 지금 보이는 곳도 마구 더럽혀질텐데, 산으로 에워싸인 곳을 찾아 이사를 가버린다면 모를까 그런 꼴을 잠자코 보고 있을 도리는 없을거야, 따위의 생각도 했다.
곧 다시 잠들 수 있을줄 알았더니 꼼지락거리며 컴퓨터를 만지느라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아이팟을 손에 쥔채 다시 잠을 청했다. 어쩐지 이런 날엔 일하러 가기는 몹시 싫고 놀러가고 싶은 마음만 생긴다. 곧 나가야할 시간, 어디로 도망쳐 놀러나갈까. 일이고 뭐고 그만두고 커피나 마시자고, 친구나 꾀어내볼까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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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오는 아침에.


눈 내리던 아침, 흐릿한 빛이 스며들어오는 집안에는 온통 잠든 존재들의 숨소리뿐.
꼬마 수컷 고양이 녀석은 남의 아내와 나란히 쿨쿨 잠들어있었고.


착한 고양이 순이는 혼자 넓은 소파 위에 몸을 웅크린채 자고 있었다.


평화로운 아침, 눈은 마을에 소리없이 쌓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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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18일 금요일

고양이들의 관심.


고양이 순이가 어릴적에 (이 홈페이지의 옛날 글중 어딘가에 있다) 악기를 손질할때만 되면 어찌나 곁에 와서 치근대는지 그 모습이 우스워 나 혼자 재미있어했다.
꼬마 고양이도 악기를 만지고 있을 때엔 언제나 옹알거리며 다가와 관심을 보인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잠깐 졸던 것도 잊고 일어나 사람을 귀찮게 했다.

내 베이스는 이제 완전히 고물처럼 보이게 되고 말았다. 녹슨 곳도 많고 플렛들은 많이 주저 앉았다. 그나마 가끔씩 잘 닦아줘서 깨끗하다. 소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좋아졌다.

꼬맹이 고양이와 함께 투닥거리며 악기손질을 마쳤다.
새 줄을 갈아주고 튕겨보았더니 꼬마 고양이가 더 좋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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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나의 새 음반.



새해의 보나 음반은 라이브 앨범이었다.
3월 10일에 출시된다는 그의 음반 소식에 보나의 팬들은 벌써부터 좋아하고 있다. 보나의 음악을 듣고 좋아는 했지만 조금 덜 팬인 사람들에게는 이상한 일일테다. 이미 발매되었던 음반들에 다 수록되어있는 곡들이 담겨있고, 게다가 프랑스 라디오에서의 음질 좋은 라이브 음원이 이미 유포되어 돌아다니는 덕분에 그들에게는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는 음반 소식일 것이다.
그런데 자칭 리차드 보나의 왕팬으로서의 기대는 다르다. 미리 주문해두고 기다리고 싶어서 열심히 검색해보고 있다.

보나의 밴드는 여러번 구성원의 일부가 변화되어가면서 진화했다. 오래 함께 연주해온 색소폰 주자 Aaron Heick이 나간 자리에 뉴 햄프셔 출신의 트럼펫 연주자 Taylor Haskins가 참여하고 있고, 한동안 기타가 없는 채로 연주해왔던 그의 곁에 브룩쿨린 출신의 기타리스트 John Caban이 함께 하고 있다. 보나의 음악에 걸맞는 동료들이라고 여겨지는 이유는, 그들 모두 다양한 음악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고 손쉽게 카테고리에 넣어두기 어려운 연주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충실한 파트너 Etienne Stadwjick와 타악기 주자 Samuel Torres가 함께 하고 있다.
그들과 함께한 작년 7월의 부다페스트 공연 실황은 분명 최근 보나 밴드의 절정기의 한 순간이었을 것 같다. 그 부다페스트 라이브를 구경했던 사람들의 리뷰를 읽었던 기억도 난다. 재밌었던 것은 '정말 좋았다'라는 말보다 '고마왔어요, 보나'라는 인사들이 많았던 것. 작년의 여름에 그의 밴드는 거의 쉬는 날이 없이 순회공연을 하고 있었다. 일정표만 보고 있자면 너무 빠듯한데다가 이동하는 거리도 제법 멀었어서, 정말 빡빡한 일정이었을 것이다. 그러고보니 뭐 여름뿐이었던 것이 아니라 그들은 일 년 내내 순회공연을 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이 사람 저 음반의 세션도 했었으니 과연 대단하다.
밴드의 멤버가 바뀌지 않았던 동안에도 그는 같은 곡을 똑같이 연주하며 다니지 않았었다. 항상 조금씩 다른 템포, 조금씩 다른 편곡과 진행으로 변화를 주고 있었는데, 그랬던 그가 트럼펫과 기타를 보강한 뒤에 여섯 명의 구성으로, 물이 오를대로 오른 순간의 라이브 음반이라면 틀림없이 신날 것이다.
모두 여덟곡이 담겨있고 보너스로 Ekwa Mwato의 비디오가 들어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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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13일 일요일

순이의 응석.


우습게도, 다른 고양이들과 함께 있을 때엔 점점 더 말도 없어지고, 장난도 하지 않고 뭔가 나이든체하며 거닐더니, 다른 녀석들이 모두 잠들어있을 때엔 내 곁에 다가와서 응석을 피운다.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그르릉 거리더니 무릎 위에 올라와 한참을 앉았다가 어깨에 올라와 자기를 태우고 이리 저리 걸어주기를 채근했다.

별로 배고픈 것 같지 않은데도 밥을 달라고 끄응대기도 하고 물그릇에 신선한 물이 담겨있는데도 괜히 내 컵에 고개를 박고 커피를 몇 모금 훔쳐갔다. 이윽고 순이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근처에 앉아서 계속 쳐다보며 그르르릉 거리고 있는 중에, 어느덧 나도 느슨한 느낌으로 되어버려 졸음이 밀려왔다.

내 고양이 순이. 몇 년 사이 식구가 많아져서인지, 나와 둘만 남으면 응석을 부리는 일이 잦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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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방꾼.


밤중에 녹음을 하고 있느라 헤드폰을 쓴채로 열심히 집중하고 있었다. 같은 곡을 네 번째 다시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고양이들은 모든 종류의 줄에 유혹당한다.

매우 빠른 곡이었어서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데, 활발한 꼬마 고양이가 자꾸만 헤드폰의 가느다란 케이블을 잡아 당기고 있었다. 연주하면서 잠깐 내려다보니 양손을 허우적거리며 헤드폰 줄을 잡고 신나게 놀고 있었다. 나와 눈이 딱 마주쳤을때,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올려다보며 계속 놀고 있는 모습이 귀여워서 결국 녹음을 멈추고 악기도 내려놓은채 쓰다듬어줬다.

다시 다섯 번째 녹음을 시작하려는데, 내려다보니 이 녀석은 이미 내 발밑에 자리를 잡고 헤드폰줄에 한쪽 손을 가져다 대고 있었다. 마치 음악에 맞춰 놀기 시작하겠다는 것 처럼. 그런 실랑이를 한참 동안 하였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나의 실수로 처음부터 다시 해야만 하게 되었다.
분명 내가 실수한 것인데 고양이의 방해로 그렇게 되었다고 우기고 싶어서 이 녀석을 붙들어 마구 괴롭혀줬다. 그러자 천진난만한 이 꼬마 고양이는 내가 드디어 작정하고 놀아주는 것으로 알았는지 갸르릉거리며 어깨에 올라타고 핥고 물고 야단을 떨었다. 이제는 도저히 신경질도 화도 낼 수 없는 상태가 되어지고 말았다. 급기야 꼬마 고양이의 소리에 잔뜩 궁금해진 어른 고양이 두 마리가 달려와 책상 위의 악보를 마구 짓밟고 바지에 매달려 야옹거리고... 나는 미칠뻔 했다.
종이 한 장을 공처럼 구겨서 내던졌다. 꼬마 고양이가 신이 나서 종이뭉치를 쫓아 달려나갔다. 겨우 고양이들을 내보내고 문을 걸어 잠근 후에야 하던 일을 마칠 수 있었다.


문을 열고 나와보았더니, 괴물처럼 날뛰던 고양이들은 따뜻한 담요 위에서 각자 널부러져 잠을 자고 있었다.
매우 피곤한 일요일 아침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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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10일 목요일

투정.


시간이 흐를수록 세상의 일이 명확해지는 것인줄 알았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하고싶은 것과 하고 있는 것의 거리는 언제나 유지되는 것 같고, 불만은 해소될줄 모른다. 어찌하여 올해의 시작은 한가로우면서 빠듯한걸까. 시간을 쓰고 싶지 않은 일에 할 수 없이 얽매여있는 것이 답답하다. 바쁘지도 않고, 재미도 없다. 그러나 시간은 모자르다.
친구의 커피가게에서 베이스를 쳐보고 있노라니, 이렇게 한적한 곳으로 멀찍이 숨어들어와 연습이나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일하기 싫고 하고싶은 것이나 했으면 좋겠다는 투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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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고양이의 하품.


꼬마 고양이가 하품을 하고 있었다.
요란하게 보이지만 아주 조용하게 하품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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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밤, 옛 친구.


다른 약속장소가 그 근처였다는 것을 구실삼아, 커피가 떨어져가고 있으므로 원두를 사두면 좋겠다는 것을 핑계삼아, 몇 개월만에 친구의 커피집에 갔다. 그 사이 서울에 있는 다른 분점에만 마실가듯 들락거리다가 오랜만에 찾아가 보았다. 각자의 시간을 살아가느라 못만나고 짐작으로 안부를 상상하며 지내는, 어정쩡한 나이의 사내들이 되고 말았다. 한참만에 얼굴을 보아도 언제나 어정쩡하게 인사를 하는 듯 마는 듯.

밤중에 길에서 구입한 것을 테스트해보느라 작은 앰프에 플러그를 꽂고 베이스를 쳐보고 있었다. 비어있는 심야의 커피집에서 베이스 소리가 좋게 들렸다.


2008년 1월 9일 수요일

동물 친구들.

워낙 동물들을 좋아하는 나와 아내는 어디에 가든지 동물 친구들과 쉽게 친해진다.

나는 어릴적부터 개들과 금세 친해지고 조금 더럽다거나 몸집이 크고 사납더라도 덥썩 덥썩 안고 뒹굴곤 했었다.  아내의 경우에는 아마도 나의 정도를 넘어선 것 같다. 이성을 잃는다고 해도 좋을만큼 동물들을 만나면 좋아서 만지고 볼을 부비는 바람에 걱정될 때가 많다.

내 경우엔 한번도 개에 물려본 적이 없고 고양이에게 할큄을 당해보지 않아서 두려움이 없는 것일 수도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아내를 옆에서 지켜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어서, 틀림없이 어릴적에 이상한 여자아이였음에 틀림없다, 라는 심증이 있다. 그는 어릴적 개에게 심하게 물려본 적도 있었다고 하고, 고양이에게 할퀴어 얼굴에 상처를 입은적도 있었다. 그런데도 동물만 만나면 껴안고 손을 내민다. 길에서 만나는 개와 고양이들이 더럽건 못생겼건간에 그에게는 모두 '데려와 함께 살고 싶은' 존재인 모양이다. 왜 그렇게 동물들을 좋아하는걸까, 라고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이런 대답을 했었다.

'사람보다 좋잖아.'
그건 그렇다.

얼마전 제 자식의 손을 잡고 길을 걷다가 어미 고양이와 함께 지나가고 있던 새끼 고양이를 발로 차버린 인간의 이야기를 읽게 되었었다. 머리를 심하게 다쳤고 귀가 찢겨 나갔던 그 새끼 고양이를 그 자리에서 거두어 병원에 데려가 치료를 하고 정성껏 살려낸 분의 블로그를 구경하느라 외출 시간에 늦고 말았었다. 그 고양이의 최근 모습을 보니 건강하고 예쁘게도 자라있었다.
작은 동물에게 폭력을 사용하는 인간들은 여럿 보아왔었다. 대부분 열등감이 가득한 바탕 위에 비열한 계산벽이 엿보이는 성격이었다. 나는 맹수 우리 안에 그들을 넣어놓고 커피나 한 잔 마시며 그들이 천천히 찢기고 짖이겨 다져지는 걸 구경하면 재미있겠다는 상상을 해본적이 있다.
몇 달 전 사람들을 모아놓고 그 앞에서 새끼돼지를 묶어 네 부분으로 찢어죽였다는 여주 이천 지역의 어르신들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 그 사건으로 몇 분들이 푼돈의 벌금형을 받았다던데, 실례가 되는 말이겠지만 그런 경우엔 벌금은 됐고, 그냥 몇 군데를 찢거나 잘라내는 형벌이 적용되면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봤다. 어차피 인권이란 차별적으로 적용되어도 좋다고 하는, 그분들의 신념과도 잘 맞는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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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6일 일요일

자코 공원


플로리다의 오클랜드 파크는 샌프란시스코의 어느 항구마을이다. 자코가 태어나 어린시절을 보냈던 곳이었다.
그가 불행하게 세상을 떠난지 20년이 되었다. 오클랜드 파크는 오랜 회의와 검토를 거쳐 마을의 이름을 바꾸기로 했다. Jaco Pastorius Park. (지명이므로 사실은 자코 공원이라고 말하면 안될지도 모른다.)
유투브에 올려져있는 오클랜드 파크 주민들의 공청회와 회의장의 모습들을 보면 흐뭇한 장면들을 구경할 수 있다. 물론 그들에게도 관광수익이라든가 지역의 이득과 손실에 대한 논의가 있었겠지만, 자코 파스토리우스 공원에 찬성하는 서포터들의 의견발표장면들은 짐짓 순수한 음악팬 주민들의 커밍아웃 모임처럼 보였다. 재즈맨으로 살아온 남편의 이야기와 함께 고장의 음악인들이 자코의 음악 덕분에 얼마나 행복하게 살아오고 있는지, 버버리 코스트를 틀어놓고 평결의회의 책상 앞에서 어깨를 들썩이고 그의 음악이 마을 사람들과 미국인들과 세계의 다른 음악팬들에게 얼마나 감동을 주었었는지를 말하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들은, 단지 재즈 영웅 한 사람을 기려서 자기 동네를 위해 뭔가 해먹고자하는 저의가 아니라는 것을 얘기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정말 행복해했고 자랑스러워했다.

플로리다 오클랜드 파크 호텔은 이름을 바꾸지 않아도 될테지만, 이제 오클랜드 파크는 자코 파크가 되었다. 그 마을에 대하여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언젠가 꼭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쪽 동네의 어느 오래된 마을에는 일해공원이라는 것을 만들었던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 되어먹지 않은 인간도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세상이 (다시) 되자, 그 공원의 이름을 반대했던 사람들을 엿먹이려하는 분들이 판을 치고 있다는 소식이다. 공원은 원래 그들의 의도대로 전두환을 찬양하도록 되어질지도 모르는 일이 되었다. 나는 일개 베이스 연주자였던 자코가 불행하게 죽은 것이 안타깝고, 대통령이라는 것을 해먹었던 학살자가 아직도 살아있는 것이 역겹다. 역사도 정의도 없는 동네에 좋은 음악이며 예술이 있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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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는 졸고 있었다.


순이는 악기 곁에서 졸고 있다.
나는 쓰는 일이 뜻대로 안되어 머리속이 엉킨듯 하더니, 그만 잠시 엎드려 졸고 말았다.

저녁에, 학생들의 단체학습 - 앙상블 수업을 마치고 다음 약속시간이 빠듯하여 서둘러 주차장에 나왔다. 문득 아이팟을 지하연습실에 두고 온 것을 깨닫고, 시동을 걸어둔채로 뛰어 올라가 열쇠를 빌려 지하로 뛰어내려갔다. 허둥지둥, 이중으로 되어있는 쇠문을 열고 닫으며 물건을 찾아서, 다시 2층으로 뛰어가 열쇠를 돌려드리고,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차문을 열고 자동차에 올라타려다, 이번엔 케이블을 두고 나온 것이 생각났다.

다시 뛰어올라가 열쇠를 빌려서 뛰어내려가 문을 두 개 열고 케이블을 챙겨들고 또 뛰어가서 열쇠를 돌려주고... 헉헉거리며 주차장으로 돌아왔더니 몸이 더워졌다. 출발한 후에는 결국 복사해뒀던 악보를 몇 장 잃어버린 것을 알게되었다. 나는 기운이 빠졌다. 클러치를 밟다가 통증을 느껴서, 그제서야 아직 다 낫지 않은 발목으로 계단을 뛰어다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자꾸만 기억력은 떨어지고, 언제나 물건을 잃어버리고, 나빠지는 머리때문에 손과 발이 고생을 하는 것이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글을 쓰거나 단순한 문장들을 옮기는 일도 쉽게 망쳐버린다. 쓰고 나서 확인해보면 문장도 안되고, 윗줄과 아랫줄의 내용이 연결도 되지 않는다. 무의식의 흐름도 아니고 원... 분열증에 가까운 상태다. 악보를 그릴때엔 어디에 넋을 놓고 있는 것인지 높은음자리표에는 베이스를 그리고 낮은음자리표에는 멜로디를 그린 적도 있다. 허무한 실수의 반복으로 시간을 잡아먹은후 비로소 뭔가 시작하려고 하면 진이 빠지고 머리속은 텅 비어버린다.

순이는 여전히 곁에서 불편하게 졸고 있다.
내가 일찍 잠을 잤으면 순이도 편한 자리에서 몸을 펴고 잘 자고 있었을 것이다.
고양이에게 미안하고, 언제나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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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5일 토요일

아는 사람들.


언제 만나도 편안한 친구가 있고 그렇지 않은 친구도 있기 마련이다.
나는 술주정뱅이도 알고 밤낮없이 읽기만 하는 책벌레도 안다. 형제를 끔찍이 위하는 친구도 알고 오직 잇속을 챙기느라 인간관계 따위는 팽개치고 사는 친구도 안다. 아는 사람들이 모두 멋있는 친구들과 예쁘장한 언니들일 수는 절대로 없겠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사람들과 알고 지내고 싶은 마음은 당연하다.

사느라고 서로 바쁘다가 마침 시간을 내어 만났던 친구와는 반갑기만 했지만,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러서 냄새를 풍기는 존재도 있기 마련이다. 그저 인사 정도 나누었으면 제 할일이나 하러 자리에 돌아가주면 좋으련만 쉬지 않고 다가와 참견을 하고 말을 건네는 바람에 기분이 상하기 직전이었다. 이것은 나의 이상한 결벽일 수도 있고, 그저 나의 됨됨이가 이 정도밖에 안되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싫은 인간이라는 것은 존재한다. 길에서 우연히 마주치기도 싫은 사람과 알고 지낸다는 것은 곤란할 때가 있다.

약간의 두통이 있었는데, 맥주를 마시고 수다를 떨었더니 더 심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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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밤 늦게 전화를 받고 한참만에 찾아갔던 곳.
경천형님은 건강해 보이셨고 이제 그곳엔 내가 아는 사람들이 없었다.
오랜만에 만났던 친구도 한결같았다. 실내는 따뜻하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 낯익은 얼굴들의 음악인들이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가벼운 눈인사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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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4일 금요일

바깥 구경.


고양이들이 창문틀에 올라가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다.
습기가 가득한 겨울날의 오후, 꼬물거리는 지상은 그들에게 어떤 재미가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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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 배우기.

나는 그들에게 불친절한 선생일 것이다.

그들을 소비자로서 간주할 때에, 나는 언제나 내가 부실한 상품은 아닌지 반성해 본다.
가끔은 이들처럼 진지한 소비자들이 있어서 나는 더 자주 자신을 되돌아본다. 이 친구들은 무엇이든 흡수가 빠르다. 그리고 단지 일러주는대로만 하지 않는다. 이런 친구들에게 음악은 그들의 인생에 중요한 어떤 부분이 될 것이 틀림없다. 적당히 게으르고, 적당히 열심이며,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고 하려고 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혼자 배울줄 안다.

악기를 하나 배워볼까 하는데, 어떨까요, 라고 하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주로 지금까지 악기를 해본 적 없는 분들의 질문이다. 부실한 선생으로서는 궁색한 대답만 해드리게 된다.
그런데 악기를 가르치고 있는 사람으로서 말하지 않는다면 몇 가지의 말을 해드릴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악기에 취미를 가져볼까, 라고 생각을 하여 한 가지의 악기를 선택하게 되었다면, 일단은 자리에 앉아 어떤 음악에 취미를 가져볼 것인지를 고려해는 것이 좋을 수 있다. 이런 말은 자칫, 음악도 잘 모르면서 무슨 악기를 배우시려는건가요, 라는 뜻으로 오해될 여지는 있다. 그렇지만 이것이 순서가 되어야 맞다, 라고 생각한다. 우선은 자신이 좋아하는 취향의 음악이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어느 누구에게라도 근사치의 답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음악을 들어야하는 것이다. 음악을 들으며 정말 스스로 즐거워하고 있는지, 저런 소리를 나도 꼭 내보고 싶다는 갈증이 생기는지에 대한 물음이 먼저가 된다면, 악기를 선택하는 것과 악기 배우기를 시작하는 일은 결심할 필요 없이 이루어지게 된다.

악기의 연주를 취미로 하는 분들이 전부 그래야만 한다는 주장은 아니다. 왜냐면 원래의 취미활동에 따르는 부속의 의미로서, 도구로서 악기를 다루는 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음악을 워낙 좋아해서 악기를 시작하는 분들도 있을테고, 어쩌다가 악기 다루기를 배우다보니 음악을 좋아하게 되어가는 분들도 있을테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림에 취미가 없는데 그림 그리기를 배운다는 것이 답답한 일인 것 처럼 악기도 마찬가지이다.

만일 베이스라는 악기를 시작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신다면, 우선 지금 현재 듣고 즐거워하는 음악에서 베이스 소리에 귀기울여 보시길 바란다. 몇 번을 들어도 질리지 않고 무척이나 흥미롭다고 하면 악기를 시작하는데에 큰 도움이 되실 것이다. 경험상 이런 분들은, 표현이 경박하기 이를데 없지만, 마치 늦바람을 피우는 것처럼 음악에 매진하게 된다. 연세 지긋하신 몇 분이 생각나는데, 그 분들은 결국 어른들의 밴드를 만들어 지금도 연습실에서 즐겁게 연주하고 가끔은 공연도 하고 계신다. 그런 장면을 보면 흐뭇하고 부러울 때도 있다.


어떤 음악을 들어야하나요, 라는 질문도 받는다. 나는 항상 그런 것은 없어요, 라고 대답해드린다.
즐거워한다면, 들어야하고 듣고 싶어지는 음악은 세상에 흘러 넘친다. 평생을 모아도 채워질 수 없는 것이 음반이고 음악이니까. 게다가 음악에 대한 과잉정보들은 이제 (어쩌면) 실제 음악보다도 더 많다.
악기를 배워볼까, 라고 생각하고 계신 분들은 우선 오늘 오후에 레코드점에 들러보시면 어떨까. 그곳에 세상의 모든 교재들이 다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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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3일 목요일

말썽꾸러기.


정말 지독하게, 몸을 불살라서 놀기를 즐기는 꼬마 고양이 녀석 때문에 집안의 여러가지가 온통 엉망이다. 그렇다고 무슨 사고를 저질러서 집안 물건들이 못쓰게 되어버렸다던가... 그런 정도는 아니지만, 너무나 신경이 쓰인다.

세워둔 악기들을 가로질러 뛰어다닐 때엔 가슴이 철렁할 때도 있다. 기타 한 개 넘어져봤자 수리하면 그만이지만, 만일 넘어진 기타에 고양이가 맞기라도 한다면 큰일이다. 미친듯이 뛰고 정신없이 놀고, 모든 일이 즐겁고 매순간이 활기찬 녀석이어서, 보고 있으면 물론 귀여웁고 즐거웁다. 하지만 나도 따라서 미칠 것 같을 때가 자주 있다. 조금 전에는 아내의 컴퓨터 위에 온몸을 던져 뛰어내리기를 두 번 연속... 결국 밖으로 쫓겨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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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 구입.


수 년 만에, 프린터를 새로 구입했다. 사용중이었던 프린터는 결국 수명을 다했다. 기괴한 기계 소리를 끝으로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았다. 수리하면 사용할 수 있겠지만, 수리와 유지비를 계산하면 새것을 구입하는 편이 더 낫겠다는 심사였다.

새 프린터를 사와서 책상에 올려놓았더니, 고양이 순이가 올라가 자세를 잡고 앉았다. 마음에 드는 자리가 새로 생겼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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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1일 화요일

어린 고양이와 순이.


무척이나 잘 놀고, 잘 먹고 잘 자는 꼬마 고양이 녀석은 소유의식이 없다.
다른 고양이들의 밥그릇과 잠자리는 근본적으로 모두 자신의 것이라는 생각이므로 온 세상이 편하다.
재미있게도 어른 고양이들은 녀석을 심하게 나무라지도 않고 까탈을 부리지도 않는다. 밥이 되었든 잠자리가 되었든, 쉽게 양보를 해준다.
옆구리의 종양으로 수술도 받았고, 살집도 없었던 녀석이 몇 주 사이에 부쩍 몸집도 커지고 건강해졌다.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 이제는 걱정이 될 지경이 되었다. 낯선 방문객이 현관 앞에 서있어도 즐거워서 달려나간다. 호기심은 너무 많고 주의와 경계는 부족하다. 곤란한 일을 겪으면 어쩌지라는 따위의 두려움도 없다.

순이의 배에 기대어 코를 골며 잠을 자거나, 검은 고양이 쿠로의 꼬리를 베고 잠들거나 하는 일도 다 제멋대로이고 자기 맘대로이다. 어른 고양이들은 꼬마 녀석을 특별히 귀여워해주는 것도 아니지만 괴롭히거나 두들겨 패거나 하지도 않는다. 나는 고양이들의 흐뭇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아졌다.


순이의 겨울오후.


집 옆에 강이 있어서, 강바람이 심하다.
부쩍 쌀쌀해져서 종일 집안에 보일러를 켜놓았다. 조금 춥게 지내야지...라는 생각은 하면서도 점점 따뜻한 구석을 찾아 드러누워 뒹굴고 싶어한다.
따뜻한 곳 좋아하는 고양이들은 집안이 뜨뜻하니 표정이 밝다.
고양이 순이는 길게 뻗은채 누웠다가, 쬐그만 녀석이 몰래 다가와 못된 장난을 시작할까봐 고개를 번쩍 들었다.

집안의 고양이들은 따뜻한 구석 구석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가, 가끔씩 자기들끼리 자리 교환도 한다. 약속에 의한 순서라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불 속에 들어가 눕고 싶다던가 따뜻한 담요 위에 앉고 싶다던가 할 때엔 언제나 바닥을 조심해야만 한다. 나는 바닥에 누운채 깜박 잠이 들었다가, 쿠션으로 착각하고 순이를 잡아당겨 베게로 사용한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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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펙터 페달.



연말의 공연들에서는 가지고 있는 이펙터를 모두 사용했다.
페달보드의 내용물들을 전부 사용했던 공연은 아직 없었었다.
이번엔 오히려 이펙터가 부족했다. 공연 전에 몇 개를 구입해서 준비해둘까 망설이다가 그만뒀다.
공연들이 끝나고 난 뒤 시간이 좀 생기니까, 자주 악기장터를 뒤져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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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무대.



그해 겨울의 공연. 뭔가 바뀌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추위와 고질적인 감기 몸살에 시달리고 있었고, 밥은 하루에 한 끼를 먹거나 말거나 했었다.
그래서 고양이 순이는 하루의 대부분을 혼자서 집을 지키고 지내야했었다.
순이에게 그점이 언제나 미안했다.

그 즈음을 지나 작년이 되어버렸고 불과 몇 개월 사이에 많은 것이 달라져버리게 되었다.
평소에는 거의 잡아보지도 않는 악기 한 개를 오랜만에 소리내어보다가 이날의 공연이 생각났다.
인생은 묘한 일들의 연속일 수가 있다. 따분할 틈이 없다.
해가 밝았다. 뭔가 재밋거리가 그득한 한 해가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