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30일 화요일

웃기는 신문

내 막내삼촌은 소설을 쓰시는 작가이다.
가끔 아는 분의 집에서, 혹은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삼촌의 책을 만나게 되면 (아직도) 반갑다. 오랜 세월 쓰고 계신 까닭에 새삼스럽긴 하지만 집안 어른의 일이니 반갑다.
삼촌과 그 분의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친인척의 관계를 떠나서 나는 최소한 '그 작가'가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글을 쓰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해오면서도, '어떤 신문'에는 글을 싣지 않았다는 것을 고마와한다.

신간이 나와도 그 신문에 광고를 내지 않고, 청탁이 들어와도 그 지면에는 글을 쓰거나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 사회에서는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닌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그 신문에 글을 쓰고 광고하려는 분들을 반대편으로 세워 다르게 생각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개인의 선택일 뿐이다.

오늘자 그 신문에는 제가 참여하고 있는 어떤 공연의 기사가 실렸다.
구글의 뉴스검색 서비스 덕분에 기사를 읽게 되었는데, 우스운 것이 눈에 보였다. 연습실에서 찍은 공연 출연진들의 단체 사진을 싣고 그 아래에 사진 설명을 써놓은 것 때문이었다.


너무 사소한 일이어서, 굳이 트집을 잡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적어두고 싶었다. 위의 사진 설명에는 사소하고 불필요한 사실 왜곡의 문장이 있다.

그 사진은 공연에 출연하는 16인이 모두 모여서 연습을 끝낸 직후에, 미처 악기들을 챙기기도 전에 즉석에서 양해를 얻어 촬영한 것이었다. 사진에 담긴 12명이 '먼저 모여' 연습을 하기전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라는 것은 완전 구라이다.
뭐하러 그런 문장을 집어 넣었을까. 사진 속에 담겨있는 인원이 왜 12명인지 독자들이 궁금해할까봐 한 문장 짜리 소설을 쓴 것이다.

실제는 이러했다.
내 개인의 일이 아니고, 여러 사람들이 땀흘려 준비하는 공연의 홍보를 위하는 일이라고 하니,  나는 소극적인 협조를 했다. 다만 사진에 찍히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너무 드러났던 모양이다. 
이 사진의 원본을 나는 가지고 있다. 나는 제일 가장자리에 서있었는데, 표정이 아주 안좋았다. 나는 표정을 숨기는 재능이 정말 없다.

나는 뷰파인더에 겨우 잡힐 정도로만 거리를 두고 악기를 든 채 앉아있었고, 그것이 보기에 좋지 않다고 판단했는지 기자는 내 모습을 오려내어 트리밍을 했다. 사진에 등장하지 않은 두 사람은 별도의 분장이 필요하여 촬영하지 않았던 것이고, 나머지 한 사람은 연습이 끝난 직후에 화장실에 갔던 것이었다.
전혀 필요없는 창작의 문장 한 줄만 없었어도 참 깔끔했을텐데.
이런 것을 기사를 쓰기 위한 관행이므로 납득해야한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것은 그냥 거짓말이다. 사실이 아닌 것을 의도를 가지고 창작했기 때문이다.

'내 책이 그만큼 안팔려도 뭐 할 수 없지 않냐. 그래도 거기에는 글 안쓴다.'라고 했던 막내삼촌을 문득 만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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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29일 월요일

순이는 순이셔츠 위에.


아침에 일어났더니, 고양이 순이가 이렇게 하고 있었다고 했다.


자신의 초상권을 주장하는 것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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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28일 일요일

고양이 그림 셔츠.


고양이들이 그려진 셔츠를 얻었다...
순이 셔츠.


새로 그려지고 있는 꼬맹이 셔츠.
그림이나 무늬가 없는 빈 셔츠들을 보이는대로 사와서, 이것 저것 그려달라고 주문할까 생각했지만 그리는 사람 쪽에서는 꽤 귀찮을 것 같아서 말을 꺼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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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24일 수요일

고양이 순이의 눈.


순이를 병원에 데려갔을때 한 수의사가 했던 말....

"어머, 너는 눈알을 모으는 재주가 있구나"
어쩐지 카메라를 들이대면 더 모으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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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구경하는 고양이들.


택배 배달 아저씨가 집에 방문했을 때 고양이들이 하고 있는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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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22일 월요일

연습실이 붐볐다.

'
대규모공연'을 앞두고 연주자들이 넓은 연습실에 모두 모였다.
제법 큰 방이 사람들로 채워져 비좁았다.
덥고 습했던 날이어서 냉방이 되어있는 방 안에서도 더웠다.
공연이 잔뜩 있는 올 여름에는 별 수 없이 체중이 줄 것 같다.
연습이 끝나고 땀을 닦는 사람들 틈에 베이스 세 개가 나란히 세워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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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와 놀았다.


멀리 강 건너편이 깨끗하게 보였던 맑은 날의 오전에, 고양이 순이와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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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놀았다.


아담한 마당이 있는 집에서 개와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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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자코 셔츠가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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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18일 목요일

5월말에 했던 공연.


사람 많았던 낮 공연과 소박했던 새벽 공연.


낮은 온도와 높은 습도 탓이었는지는 몰라도, 차라리 새벽의 공연이 더 소리가 좋았다.
음향장비는 낮 공연에 사용되었던 것들이 훨씬 비싸고 좋았다.
소리가 왜곡되고 있는 연주자도 가엾지만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한채 입장료를 지불하는 관객들도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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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17일 수요일

Time To Rock 공연.


퉁퉁 부은 얼굴로 갔었던 타임투락 공연.
그리고 그날 밤 출발하여 새벽안개를 맞으며 춘천으로 갔었다.
춘천의 공연장 뒤에서는 연주를 하러 오셨던 광석형님을 만나 반가와했다. 그런데 사진 한 장 남겨두지 못했다.
몇 년만에 드러머 재욱이도 그곳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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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14일 일요일

그림이 담긴 티셔츠를 얻었다.


흰 옷 위에 그림을 그려주겠다고 하기에, Jaco Pastorius Big Band의 음반 일러스트를 내놓았더니 정말 그려줬다.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같았다.


곁에서 힐끔거리며 엿보다가 그림이 완성되자마자 옷을 걸쳐 입고 집을 나섰다.
자코 셔츠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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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9일 화요일

길어질 유월.


지난 23일 이후, 블로그에 글을 쓴다거나 메일의 답장을 한다거나 하는 일을 하지 않고 지냈다.
하고 싶은 말은 입속에서 꾸물거리다가 쉽게 삼켜지고, 내가 살고 있는 사회라는 것이 새삼 싫어졌다.
그가 스스로 목숨을 버리던 그 시간에 피곤한데도 잠이 오지 않아서 이것 저것 낙서처럼 글을 올리고 있었다. 하필 그 때에 사진을 올려두고 신변잡기의 글을 적고 있었다는 것도 어쩐지 부끄럽고 미안했다.
보름 남짓 타이핑을 할 줄 아는 세상의 온갖 듣보잡분들이 듣보짓을 벌이고 있는 것을 구경했다. 상관하기도 싫고 그냥 신경을 쓰기도 싫었다.

그리고 영결식날에는 다음날 공연을 위한 리허설로 분주히 움직여야했다. 다시 무대가 있는 곳을 오가며 공연하고 연주하는 생활이 되었다. 야외무대의 한쪽 구석에 앉아 개인사정을 이유로 삼아 공연에 참가하지 않은 어느 밴드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살면서, 나의 개인사로 힘들었던 날에도 연주할 일은 다 했었다. 새삼 민감한 체, 예민한 체 할 이유는 없다. 그래서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은 대개 방관자의 입장으로 살아가기 쉽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사태에 대해서도 그저 남의 일인듯 하고 있는 작가, 연출가, 연극인, 음악인들의 글과 말을 읽고 보고 있었다. 그런 것을 읽고 있으면 마치 내가 이유없이 욕설이라도 들은 모양으로 화가 치밀어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이내, 창피해졌다. 나도 어찌해보았자 방관자들 중의 하나일 뿐이어서 그렇다.
어쨌든 계속 연습하고 음악을 듣고, 연주하러 다닌다. 그리고 시간과 졸음을 이길 의지가 허락하는한, 세상의 일들을 많이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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