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2월 24일 화요일

나는 날건달인가.

몇 주 전보다는 조금 시간이 나서 읽고 쓰며 보낼 수 있는 것이 좋다.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는 있다.
나는 자신의 일에는 신중하지 못하면서 남의 잘못과 허물 앞에서 너무 가혹할 때가 있다.
반드시 한 마디씩 던져줘야 직성이 풀린다.
부당한 것을 견디지 못한다.
사실은 그것이 부당한 것인지 당연한 것인지를 남이 판단하도록 하기 싫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때로는 사람이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는 일도 마지못해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불행하게도 최근 나에게 그런 일은 바로 연주하는 일이었다.

뭔가 잘못 된 것 같지만, 그냥 하루씩 출근하면 돈이 모아지는 그 편안한 일을, 시작한지 일주일 만에 그만뒀다.
그것은 음악도 뭣도 아닌 똥같은 일이었다.
엉터리같은 사람에게 휘둘려 부당함을 참으며 버틸만한 가치가 없는 일이었다.
고작 그런 일을 하고 싶어서 내가 주변 사람들을 신경쓰게 하고 내가 고생을 자처하며 지금까지 음악을 하려고 애썼던 것이 아니었다.

나는 손익을 따지지 않는 경우에는 누구에게나 친절한 말 한 마디 정도로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 있다. 가증스럽다고 해도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돼먹지 않은 일, 돼먹지 않은 사람 앞에서 입에 발린 아첨과 맹목적인 순종을 할 수가 없다. 손익을 계산하며 처신하는 것이 제일 싫다.

팀의 리더에게 새 베이스 연주자를 구하라고 했지만, 그쪽에서도 사정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결국 자신에게 손해가 되기 때문인지 묵묵부답 말이 없었다.
이미 그만두겠다고 통보한지 일주일이 지났다.
오늘 저녁에는 내쪽에서 독촉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남자가 만일 나를 해고하는 입장이었다면 아마도 나에게 잔혹하게 굴었을 것이었다.
내가 그만두겠다고 했기 때문에 지금처럼 난감해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새해엔 내가 조금 더 나아졌으면 좋겠다.
나쁜 일을 겪는 이유는 우선 내가 못났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쁜 놈이 나쁜 이유는 당하는 사람이 스스로를 자책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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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2월 23일 월요일

한 해가 저문다.


2002년을 보내면서, 의미있었던 연주라고는 몇 주 전의 블루스 공연이 유일했던 것은 아니었나 싶으니 한숨이 나온다.
부끄럽기도 하고 기운이 빠지기도 한다.
새 해엔 더 열심히 해서 좋은 음악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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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2월 18일 수요일

저열한 인간.

低劣하다는 말을 책에서만 보아서 알다가, 살아 움직이는 대상들을 보게 된다.
어쩌면 항상 주변에 있었지만 잘 모르고 있다가 이제서야 알아보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수준이 낮고 열등하더라도 자존심은 있는 줄 알았는데.
비열한 수작, 습관이 된 계산벽이 초 단위로 읽혀진다.
모든 결정은 누군가의 등 뒤에서 비누를 갉아 먹는 쥐처럼 한다.
그러다가 상대방이 먼저 결정해버리면 열등함이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 바들거린다.

새삼 화를 낼 일도 아니고, 역겨워할 것도 아니다.
단지 그들로부터 세상을 조금 더 배운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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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2월 12일 목요일

혐오감.

세상의 구석에 언제나 박혀있는 인종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마초, 비열함, 개깡다구, 몰염치, 물욕, 명예욕, 혼자 가로채기, 위험할 때에 먼저 도망가기.
강한 자 앞에서 납짝 엎드리기, 약한 자에게 잔혹하기, 여성 경멸론자.
그러면서 늘 여자들에게 당하기.

기본적으로 쪼다.
그 쪼다를 감추기 위해 잔인한 성격 드러내기.

마지막으로는,
결국 끝까지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지르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

나는 혐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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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2월 9일 월요일

블루스 공연.


12월 7일. 블루스 공연을 재미있게 마쳤다.

나는 연주했던 순서가 끝나자마자 다시 밤에 연주하는 일을 하기 위해 급히 공연장을 떠나야 했다. 함께 연주했던 사람들에게 미처 인사도 못했었다.
다행히 공연 다음 날에 함께 공연했던 야마다 씨, 케니 씨와 인사를 나누고 밥도 한 끼 같이 먹었다.

언젠가 더 좋은 공연을 함께 또 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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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2월 3일 화요일

게임 보이.


이른 아침, 좀처럼 이 시간에 외출을 할 일이 없었던 나는 오랜만에 아침 안개를 휘저으며 비몽사몽 집을 나섰다.

새로 일을 시작한 장소에 악기들을 설치해야 하는 일 때문이었다.
함께 차를 타고 가기로 약속한 드러머 친구 집 앞에서 그를 기다리던 중에 기이한 소리가 나서 돌아보았다. 그것은 바로 저 아이가 게임을 하며 입으로 웅얼거리고 있던 소리였다.

작은 아이는 게임 화면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의 대사와 외마디 소리,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음향 효과와 심지어 가상의 소품들이 내는 소리들을 모두 입과 손과 발로 내주고 있었다.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게임에 열중하고 있던 그 아이가 얼마나 실감나게 소리를 내고 있었는지, 나는 그것을 구경하며 함께 열중하고 있었다.
분명히 심부름과 관련된 것임이 틀림없었을 오른쪽의 검정 비닐봉투는 이 아이에게 아무런 참견도 못한채 주저앉아 있었다.

아이를 구경하면서 자동판매기에서 커피 한 잔을 꺼내어 마시고 났을 즈음 나는 비로소 잠이 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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