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5월 16일 금요일

조카.


동생의 아들은 세 살이 조금 안된 나이이다.
지금보다도 더 어릴때부터 내 집에 올때마다, 조카는 내가 베이스를 치고 있는 것을 구경했다.

요즘은 우리집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앰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끊임없이 소리를 내줄 것을 요구한다. 앰프에 연결하지 않으면 짜증도 냈다.
번거롭긴 하지만 앰프에 악기를 연결하고 둥둥둥 베이스를 쳐주기 시작하면 흐뭇한 표정으로 춤을 추다가, 이내 관심없어하며 자기 할 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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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5월 15일 목요일

경천 형님.


내 하드디스크에 경천 형님의 사진이 몇 장씩 있는 이유는, 그 연세의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달리 이 형님은 일단 카메라를 들이대면 그 즉시 적당한 자세를 잡고 포즈를 취해주기 때문이다. 촬영한 사진을 꼭 보여달라고 하지도, 인화해서 가져다 달라는 말씀도 없다.
주소록에 쓰일 얼굴 사진만 필요로 했던 것인데, 이 사진을 찍을 때에도 자연스럽게 촬영을 유도하셔서 다 함께 크게 웃었다.
연달아 몇 장을 찍은 다음 내가 카메라를 가방에 넣으려니까, 이렇게 말했다.

"밖에 나가서 더 찍을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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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5월 12일 월요일

일이 된 음악.

친구들과 연습을 하며 서로의 이마를 맞대고 음악을 듣고, 의논하고, 고민해보았던 것이 언제적 일이었을까.
땀냄새 맡으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연습했던 일, 공연을 준비했던 일들이 아주 오래 전 기억이 되었다.
나는 연습을 싫어하지 않는다. 긴 연습을 즐거워할 때가 오히려 많다.
하지만 에너지가 없는 사람들과의 연습은 즐겁게 참여할 수가 없다.
의논할 것도 없고 뭔가 새롭게 만들어갈 것도 없고, 심지어 더 잘 하면 안되고, 무엇보다도 매일 똑같은 연주를 반복 훈련하려는 사람들과 연주하는 것은 최악이다.

그런데 이제 음악은 일이 되었고, 언제나 즐기면서 좋아만 하면서 할 수는 없게 되었다.
다양한 사람들과의 연주와 연습들이 나에게 좋은 경험들이 되도록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것이 아니면 너무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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