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2월 31일 일요일

공연 이틀 째


이틀 째의 공연,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로 어제 보다 힘들었다.
많이 지쳐서 집에 돌아왔다.
어제와 오늘, 리허설 도중에 사진을 찍었다.

나는 이번 공연에서 어쿠스틱 베이스와 어쿠스틱 기타를 쳤다.

2006년 12월 30일 토요일

연말 공연 중.


연말 공연을 하고 있는 중이다.
말일 까지 사흘 동안의 공연이다.
즐겁게 재미있게 여유를 부리며 하고 있다.

연주를 하며 한 해를 보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2006년 12월 29일 금요일

그래미 상.

어릴적엔 정말 훌륭한 상인줄로 알았던 그래미상.
이제는 뭐 그쪽 업계를 위한 그들의 잔치인건가보다... 하는 생각뿐이지만, 그래도 음악상다운 틀은 제대로 갖추고 있다. 비교할 수 없지만, 그런 시선으로 우리나라 TV의 가요대상을 흘깃거리다보면 탄식만 나온다. 거꾸로 가고 있다는 느낌.


리차드 보나의 TIKI가 그래미상 후보에 올랐다.
"Best Contemporary World Music Album"에 후보로 되어있다. 분류는 월드뮤직. 어쨌거나 그가 수상했으면 좋겠다. 그것으로 나같은 팬들은 그의 양질의 음악을 더 들을 수 있는 복을 누리게될지도 모른다. 게다가 보나가 세션으로 참가한 마이크 스턴의 새 음반도 재즈 쪽에서 후보로 되어있다.

2006년 12월 26일 화요일

손가락을 밟혔다.

별로 사람이 붐비지도 않았던 식당에서 학원 원장님이 사주신 갈비를 먹고 있었다.
오래 앉아있으려니 다리가 아파서 양손을 뒤로 뻗어 잠시 기운 자세를 취하고 있었는데, 일하는 아주머니 한 분이 그만 내 손가락을 플라스틱 슬리퍼를 신은 채 밟고 지나갔다.

밟힌 손가락은 왼손 검지였다. 선명하게 신발자국이 찍힐 정도로 밟히고 말았다. 그 아주머니는 숯불이 들어있는 무거운 솥을 든채 내 손을 밟고 잠시 서 있었다.
뒤늦게 알고 놀라며 사과를 하시려는 아주머니에게는 여유있게 웃어보이며, 아유, 가벼우세요... 괜찮습니다, 라고 했는데,
집에 돌아와서까지 욱신거리며 손가락 마디가 아프더니 급기야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오른손 검지도 마디가 아파 파스를 바르고 있는 중이다. 이번에는 왼손 검지손가락이 쉽게 나아주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을 하고 있다. 내가 베이스를 연주할때에 가장 혹사당하는 손가락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붓기가 가라앉지 않고 있다.

2006년 12월 25일 월요일

아침에.

거의 한 시간도 못자고 다시 일어나 부산을 떨며 나가려는데,
내 고양이는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자리를 옮겨가며 졸고 있었다.

연주를 더 많이 하고 싶다.


벌써 연말. 마지막 날까지 열심히 달려야할 일주일을 남겨놓고는 있지만 그래도 연말.
올해엔 첫날부터 연주를 시작해서 참 부지런히도 돌아다녔다.

부디 그런 밥벌이용 시간메우기 식의 연주들 말고, 새해엔 초긴장상태로 365일을 살아도 좋으니 더 좋은 공연들만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배가 고파졌다.


밖에서 누군가가 뭘 좀 먹자고 말해줄때엔,
배탈이 나지 않은 이상 얼싸 좋구나 하고 꼭 먹고 들어오기로 했다.
아까 밖에 있을 때에는 입맛이 없길래 안 먹고 말았다.

새벽에 집에 돌아오자마자 허기가 느껴졌다. 오늘 밤은 그냥 참고 잠을 자려고 했다.
자기 전에 동생의 블로그에 들렀다가 그만 조카 녀석의 국수먹는 장면을 보고 말았다.
그 뒤로 계속 배에서 복잡한 소리가 나고 있다.
너무나 배가 고파졌다.

2006년 12월 23일 토요일

노래

오래도록 연주곡만 즐겨 듣느라 자주 잊고 살기는 하지만, 역시 노랫말이 담긴 좋은 노래 한 곡을 듣고 있을 때가 좋다.

아주 아주 오래 전 어린 시절에 친구의 작은 방에 둘이 앉아서 밤 깊도록 음악을 들었었다. 그 해 가을이던가 '기타가 있는 수필'을 들으며 딴엔 깊은 생각에 골몰했던 때도 있었다.
이 노래, '내방을 흰색으로 칠해주오'를 듣고 있을 때의 느낌은 지금도 생생하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도 흥얼거리면서 뭘 안답시고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했었는데, 사실은 그때나 지금이나 그 노랫말의 속내를 다 알 수 없어서 뭔가 뿌연 느낌이 그대로 있었다. 모호하게 느껴지는 부분들을 이해할 수 없어했다.

이번 연말공연때에 이 노래를 연주하게 되었다. 연습 첫날 매니저님으로부터 이 노래가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구나, 그랬었구나. 죽은이의 말일 수도 죽어가는 이의 말일수도 있는 노래였군. 결국은 살아있는 이의 말이겠지만.
이제서야 무엇인가 뿌옇던 것이 치워져버렸다. 20여년이 지나서야 이 노래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

내 방을 흰색으로 칠해주오
작은 장미 꽃송이와 함께
저녁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릇소리는
초인종으로 달아주오
천정엔 하늘과 구름 그리고 바람
추억을 담은 단지도 예쁜것으로 해주오

시간의 고동소리 이제 멈추면
모든 내 방에 구석들은 아늑해지고
비로소 텅빈 가슴 꼭 껴안아
한없이 편안해지네
돌덩이가 된 내 슬픔이 내려 앉

2006년 12월 18일 월요일

겨울 볕 쬐기.


청소를 하고 빨래를 널어놓았더니 고양이 순이는 창가에서 햇빛을 쬐며 놀고 있었다.

2006년 12월 14일 목요일

겨울비가 내렸다.


성남에서 공연을 했다.


비가 내리는 낮의 냄새가 좋았다. 

순이의 마음 씀씀이.


오래 잠을 잔 것은 아니지만, 최근 들어 가장 깊이 잠들었었다.
잠결에 내가 자주 기침을 하고 몸을 뒤척였다.
그때마다 내 손과 팔을 꾹꾹 누르며 따뜻하게 와닿는 작은 물체를 느꼈다.
잠에서 깨어나보니 고양이는 한쪽 손(정확히는 발)을 침대 위에 올려둔채 선잠을 자고 있었다.
작년 초의 겨울에 독감에 걸려 진땀을 흘리며 자고 있었을때엔 가슴 위에 올라와 입술을 핥아주기도 했었다.
고양이 순이는 저 쬐그만 발로 내가 뒤척일때마다 넌지시 지긋이 토닥거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 조그맣고 따신 체온이 고마왔다.

짐을 꾸리고 나가는 길에 순이가 좋아하는 통조림 깡통을 한 개 따줬다.
아직 잠들어 있는 고양이를 깨우지 않으려 조심 조심 현관문을 닫고 나왔다.
집에 돌아오니 그릇이 말끔히 비워져있었다.
나는 순이를 한참 동안 안아주었다. 순이는 좋아하는 소리를 점점 크게 내고 있었다.


2006년 12월 9일 토요일

환청에 시달렸다.

어떤 행동의 선택은 당연히 이후의 행동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인간은 항상 선택을 하고 선택에 의한 새로운 상황에 자기자신을 새롭게 구속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은 어떤 상황에 처해서도 그 한계 내에서 자유롭게 행동을 선택할 수 있고, 숙고한 행동 그 자체는 물론, 상황을 무시한 것과 자유를 버려두고 돌보지 않은 선택까지도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선택과 책임따위는 이제 그만 두고 그냥 좀 편하게 살고 싶다.
자신을 몰아세우지 않으면서 적당히 살아보고 싶다. 

억지로 잠이 들었는데 환청에 시달렸다.
기분나쁘게 반복되는 타악기와 베이스의 분절음이 계속 들렸다.
처음엔 잠속에서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거나 뭔가를 집어던지는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너무나 현실적으로 들려오던 그 소리들은 스네어 드럼, 킥 드럼의 분별없는 음들이었다.
사람을 녹초로 만드는 저음들도 분명하게 들려오며 귀를 괴롭혔다.
결국 다시 잠을 깨어 비틀거렸다.

다시 잠들었다가 지독한 꿈을 꾸고 또 깨어났다.
이번엔 살인을 하고 개를 죽이고 무엇인가를 훔쳐서 달아나는 꿈이었다.
시계를 보니 겨우 한 시간 남짓 잠들었었다.
이대로 오늘 공연장에 나간다면 낭패를 볼 것이다.

다시 자야했는데, 결국 밤을 새웠다.

2006년 12월 5일 화요일

겨울 맞이 목욕.


이틀 전에 집에 돌아오면서 오늘은 고양이를 씻겨야겠다고 생각했었다가, 귀가 후에 내가 목욕을 하고 나니 모든게 귀찮아져서 그냥 침대에 누워 자려고 했었다.
그런데 잠이 들 무렵 갑자기 욕실에서 풍덩하는 물소리가 나더니 순이의 비명이 들리는 것이었다. 두 번 세 번 큰 소리로 야옹거리고 물에서 버둥거리는 소리가 들렸을때야 나는 위급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욕실로 달려갔다.

변기에 빠진 것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욕실의 불을 켜고 보니 고양이는 내가 욕조에 받아놓았던 물에 빠져서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었다. 너무 난감해하고 불쾌해하는 표정으로, 도움을 청한다기 보다는 원망하거나 수치심의 표현처럼 들리는 목소리로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모양이 얼마나 우스웠는지 나는 물에서 꺼내주는 것도 잊고 그만 킬킬 웃고 말았다. 순이는 내가 꽤 얄미웠나보다.

그 바람에 결국 새벽시간, 갑자기 고양이를 목욕시키는 일을 벌이게 되었다. 순이는 목욕을 좋아하는 편인데 이번엔 항의를 하는건지 심술이 난 것인지 유난히 많이 투덜거렸다.


2006년 11월 29일 수요일

밤 마다 연주를 했다.


연주를 하고 있는 동안만 괜찮다.
도로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 지루했다.


2006년 11월 27일 월요일

추워져서 책을 읽었다.

추천받았던 몇 편의 단편을 읽었다. 박형서씨의 논쟁의 기술은 재미있었다. 구효서의 명두, 김세라의 얼굴, 박혜상의 새들이 서있다, 정미경의 시그널레드들도 잘 읽혀져서 좋았다. 이젠 누군가가 넌지시 일러주지 않으면 읽을만한 것들을 잘 찾아내지도 못하게 된 모양이다.
50헌장도 읽었다.

몇 사람을 만나고 다시 몇 사람을 보냈다. 몇 주 사이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신 분, 다른 곳으로 떠난 친구, 불쑥 나타났다가 다시 없어진 친구, 십여년만에 연락을 주고받은 분,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우연히 만나 반가와했던 분들이 있었다. 

시간이 남아서 억지로 뒹굴어야할 때엔 모두들 작정한듯 연락이 없다가도, 작은 일들로 바빠지고 있으면 역시 모두들 모의라도 한듯 전화가 걸려오곤 했다. 나는 아직도 한번에 몇 가지의 일들을 동시에 할줄을 몰라서 땀을 흘리며 당황해야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해 죄송합니다, 미안해요', 라고 말하는 것을 반복하다보면 사과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리는 기분이 든다.

2006년 11월 25일 토요일

복잡했던 날에 연주를 했다.



뭐가 그리 길고, 뭐가 그리 피곤하고,
뭐가 그리 복잡하느냐고 핀잔을 들으면서도...
신경쓰이는 일들이 자꾸 떠올라 어지러웠던 하루였다.

이십여일 동안 제대로 잠을 못잤더니 가슴이 답답해서 숨을 내쉬기가 힘들었다.

이렇게 '복잡할 때'에 편한 마음으로 연주하고 있는 순간이 반가왔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황구하와의 연주가 즐거워서 음악이 흐르는 동안 만은 복잡하지 않을 수 있었다.

2006년 11월 21일 화요일

고양이에게 미안했다.

내 고양이 순이는 수다도 많고 샘도 많다.
바빠서 너무 자주 집에 혼자 놔뒀더니 어제 오전엔 유난히 치근댔다.
집에 혼자 있는 동안 얼마나 외로왔을까 생각했다. 나는 고양이를 껴안고 미안하다는 말을 여러번 해줬다.

나는 참 여러사람에게 미안해 하고 고양이에게도 미안해 해야 하는구나.


2006년 11월 16일 목요일

옛 사진을 보았다.

다른 사진을 찾다가, 더 오래된 사진들 (언젠가 스캔해둔 것들)을 만났다.
요즘 나는 레슨을 하고있는 어린 학생들을 자주 만났다. 
갑자기 이렇게 스물 몇 살의 내 모습을 구경하고 있는 것이 재미있었다. 손모양은 엉성하고 표정은 더 건방지다. 그런 주제에 당시의 나는 스스로 아주 연주를 잘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우습기 짝이 없지만 나름대로는 뭐 대견했다. 어찌되었든 지금에 와서는 창피하다. 지금 만나게 된 학생들중에도 훗날 악기를 메고 다닐 사람이 생길지도 모르겠지만, 이상한 굴곡들이 많았던 나의 어린 시절과는 아주 많이 다르겠지.


나는 거의 놀러다녔던 기억이 없다. 이십대의 전부를 밤이 새도록 음악소리가 들리는 곳들을 찾아 부지런히 돌아다녔던 것 밖에 없었다.
그 시절이 그립다기보다도... 별것 아닌 일들 앞에서 즐거워하고 당황하고 기뻐하고 낙심하며 보냈던 어릴적 기억들이 많이 생각났다. 별로 소중하다고 하기도 뭐하지만 그렇다고 의미없지도 않다.

우연히 어떤 사람들과 처음 만나 인사를 하다가, 스물 몇 살 시절의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만났던 적이 있었다. 나는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을 기억 못한다. 그런데 그들이 무슨 카페, 무슨 클럽, 어느 동네의 무슨 길 앞이 어쨌다거나 하며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일들을 늘어놓고 있으면 많이 난처해졌다.

다음에 또 오래 전에 알고 지냈던 사람을 마주치게 되면 당시의 나의 모습에 대해 물어보고 싶어졌다. 내가 기억하는 나와 남이 기억하는 나는 얼마나 달랐던 것일까.


2006년 11월 12일 일요일

늦가을 공연.


지독한 수면부족으로 힘들어 하고 있다.
지난주의 목요일 공연. 화, 목, 금의 공연 모두를 수면부족상태에서 할 수 밖에 없었다.
공연을 시작하기 전까지 차에 들어가 몸을 접고 짧은 잠을 잤다.


성공회의 교회 건물 안은 천장이 높고 잔향이 많았다. 거의 모든 소리가 벽에 부딪혀 시간차를 두고 다시 돌아왔다.
나는 내가 몽롱하기 때문에 어지러운 것인지 공간 때문에 어지러운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낮 공연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여섯 시간 동안 잤다. 오랜만에 푹 잠들었으나 꿈을 많이 꾸었던 것 같았다. 피로가 풀리지 않았다.

그리고 블루스를 연주하러 다녀왔다. 작은 공간에서 차분하게 익숙한 곡들을 연주하고 다시 귀가하는 길에는 어쩐지 덜 피곤한 기분이 들었다.

2006년 11월 8일 수요일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몇 주 사이에 갑자기 찾아온 허리통증, 우연이 거듭되었던 기묘한 인연들, 피곤한 며칠 후의 나태한 하루 등등이 꼬리를 물었었다. 그런 것들이 뭔가 활력이 되는 것 처럼 느껴졌지만 자주 우울해지기도 했다. 계절의 탓이었던 것일까.

지난 해 겨울의 공연을 끝으로 이제 그만하려고 했던 블루스 밴드의 세션을 '어쩌다보니' 다시 하고 있게 되었다.

내일 오랜만의 긴 공연을 할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져있다.
처음 그 음악들을 연주했던 밤의 기분을 떠올려 보았다.

새로운 일에 대한 기대와 방향을 잡지 못하는 일상이 섞여 있다.
나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2006년 10월 30일 월요일

굶기로 했다.

새벽에 배가 고프면 들렀던 밥집이 있다.
주인이 바뀐 후에 점점 위생상태가 나빠졌다.
그러더니 결국 주방아줌마가 바뀌었다.
항상 깊은 밤에 혼자 들르고는했던, 남양주에서 제일 깔끔했던 24시간 식당이었는데 많이 아쉽다.
경영하는 사람이 바뀌자, 그 식당은 정말 도저히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맛이 형편없어졌다. 
언제나 깔끔했던 곳이었는데 이제는 한눈에 봐도 절대 깨끗하지 않아 보이는 사람들이 음식을 만들고 나른다.  내어 놓는 물컵에는 심지어 립스틱 자국, 고추가루가 묻어 있고 숟가락에는 심지어 밥풀이 덜 닦여져 있었다. 새로 바뀐 주인으로 보이는 아저씨는 입구 바로앞의 의자에 다리를 꼰채 앉아서 발가락을 만지다가 그 손으로 반찬을 덜어다 내놓았다. 그 식당 주인은 사람들이 음식을 먹고 있는 탁자 사이를 지나다니며 비질을 하고 있었다. 음식 옆으로 뽀얀 먼지가 오르더니 공기를 따라 떠다녔다. 그는 쓱쓱 쓰레받이에 내용물을 담고 식당 문을 연 다음 바깥에 휘리릭 버리고 만다. 정말 미칠 것 같았다.

이 모든 것은 나에게 이제 더 이상의 야식생활을 용납하지 않으려는 하늘의 뜻일 수도 있다고 여기기로 했다.
이,삼년 사이에 엄청나게 살이 붓고 배가 나와버린 원인들 중 하나는 새벽에 먹어댔던 질나쁜 음식때문일테니, 이 기회에 밤에는 뭘 먹지 않는 생활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내가 야식을 먹지 않는 것은 그렇다고 치고, 그 음식점은 정말 더러워졌다. 주인이 바뀌기 전에는 한번도 깨끗하지 않은 모양을 본 적이 없었다. 아주머니들은 모두 흰색 옷에 깨끗한 모자를 쓰고 있었고 바닥에는 작은 먼지 하나 없었다. 나는 그동안 그런 것을 일일이 따져보며 드나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갑자기 나쁜 상태로 바뀌고보니 사소했던 것들이 비교되고 생각나게 되었다.

2006년 10월 25일 수요일

순이가 자고 있었다.


집에 돌아왔더니 순이가 새로 사준 고양이 침대 안에서 잠들어 있었다.
내가 내는 소리에 잠이 깬 고양이 앞에 다가가 앉아서 늦게 들어온 것을 사과했다.
고양이를 안아주고 새로 물을 떠줬다.
순이는 내 어깨에 매달려 그르릉 소리를 한참 동안 내었다.


2006년 10월 24일 화요일

찬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기온이 차가와졌다.
고양이 순이는 내 곁에 다가와 바짝 붙어서 함께 자기 시작했다.


나가야 할 시간이 되어 씻고 옷을 챙겨 입는 동안에도 순이는 이불 위가 따스하고 편했던 모양이었다. 그대로 누워서 고개만 돌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빈 집에 자주 혼자 두게 되어서 언제나 미안하다. 순이는 잠이 깨자 마자 외출을 하는 나를 책망했을지도 모르겠다. 함께 다닐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할 수 없어서 언제나 미안하고 안타깝다.

2006년 10월 18일 수요일

이상한 일들.

얼마전엔 철제의자가 갑자기 뚝 부러졌었다. 내가 조금(?) 체중이 불었다고는 하지만, 일반적인 상식으로 볼때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오늘낮에는 어처구니없이 자동차의 앞유리가 쩍 소리를 내며 금이 가버렸다. 어이없는 일이기도 했지만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현상이어서 할말을 잊었다. 내 일상에서는 이런 일들이 항다반사恒茶飯事인건가 보다. 
주차장에서 잠시 내차에 올라탔던 만 세 살짜리 조카 아이가 내가 틀어놓은 음악소리를 듣고 좋아하며 단 한 번 제자리에서 뛰었을 뿐이었다. 아주 절묘한 각도로 조카녀석의 머리와 유리가 부딛혔던 때문인지 그만 유리가 깨어져버렸다.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약간의 통증도 없었던 모양이어서 들이받은 직후에도 그냥 생글거리며 놀고 있는 것이었다. 오히려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계속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몹시 놀랐던 내 모습을 보며 이상하다는듯 바라보며 천진하게 '무슨 걱정해?'라고 했다.

밤중에 집에 돌아와서야 비로소 지난밤 꿈을 기억하고 나는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너무 사실적으로, 꼬마 계집아이가 내 이름을 부르며 웃다가 병을 깨뜨리는 꿈을 꿨던 것이다. 아까는 전혀 생각을 못하고 있다가, 아침에 잠을 깨어서 도대체 또 무슨 꿈인가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나버렸다. 


2006년 10월 10일 화요일

녹이 잔뜩.


내일은 오랜만에 녹음을 하러 가게 되었다.
녹슬었던 브릿지를 큰맘먹고 분리하여 라이터 기름으로 깨끗하게 닦았다.
그러나 닦아서 다시 조립한 후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다시 전처럼 녹이 슬었다.
결국 부식이 심했던 나사 대가리 한 개는 어느틈엔가 그냥 바스러져버리고 없었다.
지금은 당장 사용하는데에 지장이 없어서 내버려두고 있지만 이것도 머피의 법칙이라고, 이러다가 반드시 다급하게 브릿지를 조정해야만 하는 급한 순간을 만나게 될까봐 걱정하고 있다. 미리 여벌을 사두어야겠다.


2006년 10월 9일 월요일

조카 남매


한 동네에 살면서도 자주 만나지 못하는 동생네 식구들. 
연휴때에 한번 만나보려 했는데 또 못보고 지나가버렸다.
내 동생의 블로그에 들러서야 사진으로 조카들을 구경해야 했다.
사내아이는 자꾸 제 외할머니에게 삼촌의 흡연을 고자질하고, 꼬마 여자아이는 밝고 활발하다. '내가 이렇게 아이들을 좋아했던가, 정말 귀엽기만 하구나.'라고 말했더니 곁에 있던 동생이 툭 뱉듯이 대답을 했다.

"직접 키우는게 아니니까 그렇게 쉽게 말하는거지." 라고.


2006년 9월 30일 토요일

고요한 바닷가.


한참만에 다시 찾은 강릉.
옥계에 들렀을때 가을 바닷가의 고요함에 충격을 받았다. 언제나 소리에 시달리며 살다가, 더할 나위 없이 조용한 바닷가 해송들 사이에 서서 잠깐 아득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집에 항상 책상앞에 앉을때 편안하게 몸을 쉬던 바퀴달린 철제 의자가 있었다. 어제 아침에 잠시 앉았다가 일어서려는데 거짓말처럼 목이 부러지고 말았다. 무거운 쇠붙이 의자가 칼로 베어버린듯 부러질 수 있는건가.
만일 생각없이 의자에 앉으려했을때 부러졌다면, 그리고 그 아래에 (자주 그랬었으니까) 고양이라도 누워있었다면 큰일이 날뻔했다.

의자가 툭 부러져버렸지만 나는 많이 놀라지 않았다. 황당한 우연이 반복되다보면 점점 살면서 놀랄 일들이 적어지는 것 같다. 그런식으로, 아무 인과관계도 없이, 내가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어떤 우연으로 해송들이 촘촘히 서있는 이런 바닷가에 숨어들어와 살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옥계는 지난 봄에 돌아가신 할머니의 고향이었어서 갔던 것이었다. 옥계의 고즈넉한 바닷가 국도를 따라서 안목을 지나 주문진항에 들렀다. 길을 따라 계속 고요한 바다, 조용한 파도가 이어졌다. 여름내내 수영복 차림의 사람들이 온갖 배설의 장소로 사용했을 모래밭 위에는 갈매기들이 이제야 좀 살만하다라는 투로 떼지어 앉아있었다. 같은 자세로 같은 방향을 향해 조용히 앉아있는 수백마리의 갈매기들을 보고 있자니 어지러워졌다.

우리나라 해변에서는 아직도 오징어를 이까라고 부른다고 들었다. 강릉이 고향인 내 아버지도 오징어 보다는 이까라는 말을 먼저 배우셨겠지. 같은 대상을 부르는 같은 말이지만 일본인들의 일본어 이까와 동해 앞바다 주민들의 일본어 이까는 다른 느낌이다. 흐릿한 날씨의 그날 바닷가에는 주렁주렁 내장이 뽑혀진 오징어들이 같은 모양으로 펼쳐진채 말려지고 있었다. 주문진 식당에 들어가 강원도 소주에 몹시 신선한 회를 먹었다. (정말 맛있었다.)


세 시간도 못잔 상태에서 차를 타고 멀리 돌아다녔더니, 다시 집에 돌아와 밤중의 일정을 시작하기가 힘들었다. 잠들 수 있었는데, 한 시간 간격으로 전화를 받다가 그만 다시 잠들지 못했다. 결국 새벽에 전화를 받고 집을 나와서 아침에 돌아오게 되었다. 피로하고 몸도 아픈 것 같이 여겨졌다.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닌데... 집에 돌아오는 길에 음악도 듣지 않고 바람소리가 싫어서 창문도 단단히 닫은채 운전을 했다. 고요한, 끝없이 고요한 그날 낮의 옥계의 바닷가가 계속 생각이 났다.

2006년 9월 17일 일요일

말 좀... 좀.

예전에 나이 드신 분들은 기타를 '키타'라고 말했었다.
그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것을 발음할때에, 기타아-(강세가 뒤에 있다)를 기타라고 말하는 것보다 키타라고 말하는 것이 더 분명하고 쉽게 발음되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그것은 외국의 말을 우리식으로 말하기 편하도록 발음했을뿐이어서 키타라고 부르는 것이 기타를 지칭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의 어린 친구들은 기타라는 말의 철자를 알고 있을텐데도 엉뚱한 말을 사용한다.
최근 돌아다니다보면 여기저기서 쉽게 듣고 있는 말중의 하나인데, 전기기타를 '일렉'이라고 말해버리는 것이다. 나는 이런 일이 반갑지 않다.

이런 식의 줄임말이나 조어들은 아무래도 일본어투의 습관이 우리말로 다시 옮겨온 것 같다. 아무렇게나 단어를 자르고 끊어서 그냥 새로 만들어버리는 일. 그렇게 만든 짧은 단어는전문적인 말이나 은어가 되어 사람들 사이에서 쓰이게 된다. 

일본인들이 일렉트릭 피아노, 키보드를 엘렉톤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런 말을 흉내내서는 안되는 것 아닌가. 일본인들은 일렉트릭 베이스를 '이레베''에레베'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본어는 원래 신속한 조어가 가능한 말이이므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전기기타'의 '전-'쯤에 해당하는 '일렉'이라는 말만으로 '일렉트릭 기타'를 지칭한다는 것이 조악하다고 여겨졌다.. 

그리고 점점 인터넷에, 음악학원의 간판에, 아무데나 '일렉강사' '일렉레슨' 과 같은 글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게 되었다. 나는 어째서 통기타 강사를 뜻하는 '통선생', '어쿠레슨'이라는 말들이 아직 안만들어졌는지 잘 모르겠다.

2006년 9월 16일 토요일

iTunes

여러 사람들의 블로그에서 새 iTunes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더 이상 아이튠스와 아이팟은 매킨토시 사용자들만의 궁금거리가 아닌 것이 되었다. 이런 현상이 내 눈에는 아직 낯설게 보였다.

지금은 80기가의 하드디스크에 음악을 넣어두고 있다. 그 파일들은 내 아이팟에도 담겨 있다. 음악을 잘 분류하기 위해서 파일 마다 장르를 분류해 뒀다. 머리를 굴려 선택한 방법은, 재즈, Rock, 그 외의 어중간한 것들은 모두 뭉뚱그려 Pop, 우리말 가사인 곡들은 다 모아서 그냥 가요, 그리고 Classical... 이렇게 설정했다. 그렇게 해버린 바람에 메탈리카와 카디건즈가 Rock 안에 모여 지내고 있고 Scott Hederson 과 Jim Hall 이 나란히 Jazz 안에서 살고 있게 되었다.

어디에도 구겨 넣을 수 없는 음악들도 있다. Béla Fleck & the Flecktones 의 음악을 어느 장르에 넣어둬야 좋을지 아직도 결정을 못했다.

2006년 9월 13일 수요일

명상 중인 고양이


동이 틀 무렵 물을 마시기 위해 냉장고를 향해 가다가 멈칫했다. 내 고양이 순이가 창가에 앉아 어딘가를 응시한채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가까이 가면 방해가 될 것 같아서 그냥 되돌아 왔다.
한참 후에 다시 일어나 보았더니 여전히 저렇게 하고 있었다.

내가 늘 밤을 새우는 바람에 고양이도 해가 뜨면 자는 것으로 한 것인지, 아니면 원래 고양이와 나의 시간은 남들과 반대였던 것인지.

이제 내가 잠들기 위해 누우면 곁에 와서 먼저 골골거리며 잠을 잘 것이다.
나와 내 고양이는 서로에게 잘 적응하며 살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2006년 9월 12일 화요일

녹 슬었다.


작년 10월의 베이스 브릿지 모습이었다. 이 때에도 녹이 슬어있군, 하며 사진을 찍어 뒀었다.

내 손과 발은 일년 내내 뜨겁다. 언제나 손바닥에 열꽃이 필 정도로 뜨거워져 있어서 여름철에 운전하는 것이 위험했던 적도 있었다. 손이 뜨거우니 땀도 많이 나는 바람에 운전대에서 손이 미끄러지거나 했기 때문이었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베이스 줄이 내 손 때문에 금세 못쓰게 되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다.
낮에 오랜만에 브릿지를 조정할 필요가 생겨서 브릿지의 나사를 돌려보았다. 그런데 그만 나사의 대가리 일부가 투두둑, 가루가 되어 떨어져 버렸다.


오늘 낮의 베이스 브릿지 모습이었다. 이제 그냥 빨갛다.

나는 자주 브릿지에 손뼘을 대고 연주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이 빈티지 스타일의 브릿지가 좋아서 녹슬지 않는다는 다른 브릿지는 쓰고 싶지 않다. 이 브릿지의 가장 큰 단점은 너무 빨리, 많이 녹슬어버린다는 것이다.

라이터용 휘발유로 잘 닦아서 말려두고 있다. 머지 않아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면 전체를 교환하는 수 밖에 없을 것이다.

2006년 9월 11일 월요일

구 일일.

수 년 전 그날, 뉴스를 지켜 보고 있었다. 희생자들에게 애도를 표했다...라고 쓰고 싶지만, 누구에게 애도를 표현해야 할 지 몰라서 혼자 애도했다.
그 사건이 나기 아홉 달 전에, 미국인들의 이상한 대통령선거에서 고어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법원의 판결에 반대하지만 받아들이겠다고 했던가, 그런 말이었던 것 같다.

고어가 대통령이 되었다면 그 9월 11일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그 후 기다렸다는 듯 이어졌던 이라크 침공도 없지 않았을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 즈음 나는 자코 파스토리우스의 전기를 읽고 있었다. 그 해의 9월에 영주 형님의 스튜디오에 인터넷 방송을 하러 다니고 있었는데 마이크 앞에 앉아서 음악을 틀어놓고 프린트 된 자코의 이야기를 보다가 1987년 9월 11일에 그가 나이트 클럽 앞에서 두개골이 부서진 채로 발견되어 병원에 옮겨졌다는 부분을 읽고 있었다. 무서운 뉴스가 나오고 있던 9월 11일에 비범했던 연주자의 어이없는 죽음과 관련된 오래 전의 9월 11일 이야기를 읽고 있었다는 것이 신기하였어서 그 일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다.

또 9월 11일이라고 하면, 3년 전 그날 하루 아침에 내 세간살이가 모두 다른 곳으로 옮겨진 후 텅 비어있는 집안에 남겨졌던 일이 (아무리 기억하지 않으려 해도) 기억이 난다. 정확히는 9월 1일의 일이었고, 내가 완전히 망가져있다가 비로소 밥을 챙겨 먹으며 어떻게든 살아봐야겠다고 분주하게 돌아다니기 시작했던 날이 열흘 뒤인 11일의 일이었다. 이 홈페이지의 기록을 다시 보니 12일에 '모든 일을 다시 시작...' 어쩌고 라며 써두었던 기록이 있었다.

서로 전혀 관계없는 9.11 이야기, 끝.


2006년 9월 6일 수요일

내 고양이의 생일.


샴고양이 순이가 두 살이 되었다.
세상에 태어난 직후의 모습은 본 적이 없지만 나와 함께 살기 직전의 모습을 담아뒀던 것이 있어서 꺼내어 보았다.


그 겨울밤을 기억한다.
우연하고 즉흥적인 동기로 어린 고양이를 외투 주머니에 넣어 집에 돌아왔었다. 그 때엔 몰랐었는데, 내가 고양이 순이를 데려 온 것이 아니라 내 고양이 순이가 나를 선택했던 것이었다. 고양이와 함께 살 아무런 마음의 준비가 없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조그만 고양이가 나를 졸졸 따라와서 물끄러미 올려다보더니 내가 내민 손 위에 뛰어 올랐던 것이었다. 내 몸과 마음이 피폐했던 시절을 반대로 틀어 놓는 시작이 되었던 눈 내리는 겨울밤이었다. 내 외투의 주머니에서 고개만 빠금 내민채 내리는 눈을 신기하게 바라 보던 고양이 순이의 모습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순이는 많이 컸다. 점점 더 칭얼대고 다양한 요구를 하고 있다.
심술도 부리고 가끔씩 짜증을 내기도 한다. 그런데도 어딘가 (나와는 다른) 의젓함을 잃지 않는다. 고양이를 먼저 길러 보았던 야옹이 선배들의 증언들이 모두 옳았다. 고양이는 길러지는 동물이 아니라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동거생물이었다.


순이에게 두 살 생일을 축하해주면서 간식 깡통을 따주었다.
내가 멍청하고 앞가림을 하지 못하는 것이 불안하므로, 부디 내 고양이가 스스로 알아서 건강하고 즐겁게 지내주면 좋겠다.


나는 고양이 순이에게 고마와 하며 한쪽 팔에 순이를 안은채 방 안을 돌아다녔다.
순이, 생일 축하.


2006년 9월 5일 화요일

재즈 공연

Linley Marthe

빅터 우튼의 공연이 식상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올해 자라섬 페스티벌은 가보지 않아도 되겠다고 마음 먹었었다. 그런데 태선이의 배려로 티켓이 생기고... 랜디 브레커 밴드의 드럼 세션으로 스티브 스미스가 오신다는 소식에 마음이 흔들리던 중이었다.
드러머가 스티브 스미스라면 그 밴드의 베이스 세션은 James Genus 일 가능성이 컸다. James Genus 는 매력있는 베이스 연주를 하는 사람이다. 그의 솔로도 훌륭하지만 워킹베이스도 좋다.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기대가 더 크다.

그런데 정말 볼만한 것이 더 있었다. 조 자비눌 어르신의 Zawinul Syndicate의 공연이 마지막 날 밤에 준비되어 있다고 했다.
베이스를 연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빅터 우튼의 쇼를 놓지고 싶어하지 않겠지만, 내 생각에는 그 보다도 이번 페스티벌에서 현재 Zawinul Syndicate 의 베이시스트인 Linley Marthe 의 연주를 볼 수 있으면 행운이다. 아직 이번 공연에 그가 참여하는지는 모르고 있지만.

조 자비눌이 그동안 고용했던 베이시스트들은 모두 최고의 연주자들이었다. 말 할 필요 없이 Jaco Pastorius 가 있었고, Victor Bailey, Gerald Veasley, Miroslav Vitous, Jimmy Haslip, 그리고 Richard Bona의 동향 출신 선배인 Etienne MBappe 가 있었다. Etienne MBappe 의 후임으로 리차드 보나가 참여했던 것이었고, 그 후에 합류하게 되어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는 사람이 Linley Marthe이다.

Linley Marthe의 연주는 비교적 전통적이고, 약간은 노골적으로 보일만큼 자코의 것을 가져와 쓰고 있다. 피크가드를 떼어내고 Badass 브릿지를 부착한 '70년대 펜더 재즈베이스를 사용하고 있다. 그의 동영상을 구경한 적이 있는데 무서운 테크닉이었다.
지금 Zawinul Syndicate의 편성은 키보드 외에 기타, 보컬, 드럼, 두 명의 타악기 연주자까지 있어서 그의 베이스만을 듣고 즐기기엔 버거울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번에는 꼭 찾아가서  직접 공연을 보고 싶어졌다.

매년 가을 초엽에 며칠 동안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재즈 페스티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2006년 9월 4일 월요일

잡지를 구경하다가...

2006년 9월호 베이스플레이어지에 리차드 보나의 기사와 인터뷰가 실렸다. 사진에서 보이는 마흔 살의 보나는 훨씬 더 원숙해지고 자유롭게 보인다.
인터뷰 내용에 흥미로운 것들이 가득해서 보나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선물이 될 것 같다. 올 여름의 빅터 우튼 베이스캠프에도 참여했었고, 뉴욕 대학에 강의를 하기 시작했다는 내용도 있다. 또 그의 팬들이 서로 억측을 주고 받으며 궁금해하던 악기와 보컬과 음악에 대한 이야기들도 있었다. 내가 멋대로 추측했던 내용들이 사실과 달랐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앨범 Tiki에 실려있는 Ba Senge라는 곡에 사용된 베이스를, 나는 의심하지도 않고 당연히 포데라 임페리얼 5의 소리라고 믿고 있었다. 그의 공연에서 들었던 소리와 똑같으니까,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가 밝히기로는 그 앨범에서 그 곡만 '66년도 펜더 재즈베이스로 연주했다는 것.

bassplayer.com


우리는 잠꾸러기


내 우울한 증세는 회복이 더디다.
종류가 다른 스트레스들 때문인지 잠을 길게 못 자고 있다.
날씨가 조금 선선해졌다고, 고양이는 새벽 마다 침대에 숨어 들어와 수건이나 이불을 둘둘 말은채로 잠을 잔다.

오늘은 아침 일찍 일어나 세수를 하고 돌아왔더니 저 모습으로 앉아서 여전히 졸고 있었다.
일어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아직 잠이 깨지 않았거나, 더 자고 싶은데 내가 부스럭 거리는 바람에 선잠을 깨었던 것이었나 보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웃을 참다가 그만 터뜨리고 말았다.

고양이 순이는 결국 이불을 몸에 감은채로 한참을 더 자다가 일어났다.

2006년 8월 31일 목요일

밤길을 쏘다녔다.


비가 내려서 갑자기 운전을 하고 싶어했다.
심한 무기력감, 우울한 느낌이 계속되고 있었다.
감정을 잘 제어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자동차 지붕에 쏟아지는 빗소리가 마음을 편하게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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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8월 29일 화요일

구름 구경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
이른 시간에 집을 나왔다가 아주 늦게 귀가했더니 많이 피로했다.
여러군데를 다녔고 뭔가 많이 했는데도 마음이 답답하다.
영 기운이 나지 않을때엔 그냥 기운내지 않는 것도 좋다.
그래도 오전에 구름을 구경했던 일이 좋았다.


2006년 8월 26일 토요일

고양이 순이.


나도 내멋대로인 나만의 기분의 주기가 있지만, 고양이의 기분상태는 좀처럼 가늠하기 어렵다. 함께 살다보니 적당히 행동을 예측해 볼 뿐, 고양이의 감정을 알아차리는 일은 아직 쉽지 않다.
밤중에 쓰레기봉투를 버리러 문을 나서는데 고양이는 높은 곳에 올라가 표정을 찡그리며 원망하는 얼굴로 나를 내려다봤다.
내가 언제나 밖이 어두워지면 나가버리니 순이는 이번에도 내가 외출하는줄 알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가 쓰레기봉투를 버리고 이내 다시 집에 들어왔을때, 고양이의 당황하는 얼굴과 마주쳤다. (그 표정을 정말 사진 찍어두고 싶었다.) 서로 멈칫, 그 자세로 잠시 정적.
분명히 내가 집에서 나오기 전까지는 뭔가 우울한 표정이었는데 이 녀석, 종이봉투들을 몇 개 끌어다놓고 신나게 놀기 시작하고 있었던 것. 내가 금세 돌아올줄을 몰랐던게지. 몹시 당혹스러워하더니 냉장고 위에 올라가 몸을 핥기 시작했다.
그렇군.... 역시 사람이든 고양이든간에 보여지는 것이 전부가 아닌거야. 내가 늘 집을 나선 뒤에 나를 바라보던 고양이의 눈빛을 기억하며 측은해했었는데, 속고 살았던 건지도 몰라.

따뜻해진 앰프 위에 올라가 나를 올려다 보는 모습이 무척 귀여웠다.
다시 혼자 남게 된 것인 줄로 알고 했던 행동일 것이라고 생각하니 미안했다.
나는 순이를 한참 쓰다듬어 줬다.


2006년 8월 24일 목요일

악기 손질

처서가 지나고 있다. 반드시 절기 때문은 아니겠지만 조금 덜 덥고 습도도 낮아졌다.
아직도 음력으로는 7월이다.
경험상 이렇게 계절이 지나갈 때에 한 번 쯤 네크를 바로 잡아주면 마음 편한 가을, 겨울을 보낼 수 있었다.
네크를 분리해서 줄감개도 닦고 몸뚱이도 슥슥 닦아줬다.
귀찮아서 하지 않았던 레몬오일도 발라줬고, 약간 뒤로 누워있던 네크의 상태도 잡아놓았다.
새 줄을 감고, (고양이 순이의 방해를 적절히 막아내면서) 튜닝을 마치고 튕겨보니 기분이 상쾌해지는 그 느낌.


이틀 전에 김락건과 통화하게 되었는데, 전에 이야기했던 그 스테인레스 줄이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줄을 기다리다가 도착하지 않아서 대신 다다리오에 적응하고 있었다.
스테인레스 이야기를 듣고 또 솔깃해져서, 궁금해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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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며칠 전의 쌍무지개를 못봤단 말야?"
눈을 뒀다 뭐하고 있느냐는 표정으로, 동생이 물었다.
당연히 볼 수가 없었지, 잠들어 있던 시간인데. 계속 밤하늘만 보고 살았더니 해가 떠있는 풍경을 까먹을 지경이다.
사람들이 말하길 그 날 서울에서도 두 개의 무지개가 한동안 하늘에 떠있었다고 했다.


2006년 8월 22일 화요일

Spain Again

미셀 카밀로 Michel Camilo의 모습을 볼때마다 상상을 해보는 것이 있다. 존 파티투치, 칙 코리아와 함께 양아치 분위기 물씬 풍기는 모양의 정장을 입혀서 나란히 거리에 세워두면 영락없이 마피아의 무리처럼 보일 것 같다는 것.

얼마 전에 친구의 커피 가게에 들렀을때, 그가 음반들을 뒤적거리면서 나에게 이 앨범에 대해 물었었다.
그런데 나는 올해에 미셀 카밀로와 토마티토 Tomatito의 두 번째 앨범이 나왔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베이스가 없는 음반들은 우선순위 아래로 미뤄 두고 들어보려고 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친구가 물어보았던 앨범은 이것이었다.

그날 밤에 일부러 운율을 맞춘 것처럼 이름붙인 미셀 카밀로와 토마티토의 두 번째 시리즈 Spain Again과 키스 자렛의 두 장짜리 재즈 거장들에 대한 헌정음반을 알게 되어 당장 구매했다.


스페인 어겐 앨범은 행복한 소리들을 모두 모아 꾹꾹 눌러 담은 듯이 알차다. 악기라고는 기타와 피아노 두 개 밖에 없지만 전혀 빈틈이 없다. (그들에게는 당연한 얘기인가) 이번에는 작정을 하고 피아졸라 Astor Piazolla 특집이라도 꾸민 듯, 피아졸라의 곡이 세 곡 담겨있다. 당연히 'Libertango'가 들어가 있고, 'Fuga y misterio' 와 'Adiós Nonino'가 함께 들어있다. 그리고 스탠다드로 'Stella By Starlight'도 있고, 칙 코리아의 'La Fiesta'도 연주해줬다.(A key로 연주한 이유는 기타를 위한 것이었을까) 그리고 팻 메스니에게 헌정하는 곡이라고 하는 'A los nietos'가 있다. 평소에 칙 코리아, 조지 벤슨, 팻 메스니를 좋아하여 연구하듯이 듣고 있다는 Tomatito의 아이디어가 아니었을까 추측했다.

미셀 카밀로는 앨범의 첫 곡은 피아졸라에게 바치는 곡 'El Dia Que Me Quieras Tricuto A Piazzolla'으로 시작하여 그 곡을 프롤로그로 삼고, 마지막 곡은 이 음반의 이야기들을 마무리하듯 에필로그로 삼아 노래를 넣고 싶었다고 했다. 그런 식으로 만든 시작과 끝이 근사하다. 마지막 곡 'Amor De Conuco'에서 노래를 불러준 Juan Luis Guerra는 사실 대단한 플라멩코 기타리스트이기도 하다. (이 사람도 마피아처럼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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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연주자

지난번 마이크 스턴의 DVD를 보다가, 포데라 베이스의 픽업을 고안한 사람 중 한 명인 Lincoln Goines의 연주를 처음 구경하면서 의문을 가졌었다. 분명히 흠잡을 곳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연주인데, 밋밋하고, 느낌이 부족했다. 그가 사용하는 모델의 포데라 역시 좋은 소리를 내주는 베이스였는데, 내 취향으로는 전혀 알맹이가 없는 납작하기만한 소리였다.

지난 주에 칙 코리아의 가장 최근 일렉트릭 밴드 공연을 봤다. 멋지게 나이 먹은 프랭크 갬벨도 좋았고, 각자의 이름들 만으로도 청중의 마음을 설레이게 하는 구성원들의 연주들은 정말 최고라고 느꼈다. 그런데 여기에서의 베이스 연주자는 포데라 베이스의 일렉트로닉을 고안했다고 하는 마이크 포프 Mike Pope였다.
링컨 고인즈의 연주를 들으면서 느꼈던 것과 흡사한 기분... 아니, 그렇게 능숙하게 연주하고 있는데 이렇게도 감흥이 없을 수 있다니. 정말 나무랄데 없이 현란하고 멋진 연주인데, 아무 감동이 없다. 왜 그런 것일까. 그의 포데라도 역시 정말 듣기 좋은 음색이었지만 뭔가가 빠져있었다. 드레싱은 충분히 담겨있지만 정작 신선한 채소를 씹는 맛은 사라져버린 샐러드와 비슷했다.

Mike Pope, Chick Corea Elektric Band
그 전에 마이크 스턴과 데이브 웩클, 제프 앤드루 Jeff Andrew 트리오의 연주를 역시 비디오 파일로 본 적이 있었다.
링컨 고인즈, 마이크 포프와 굳이 비교하자면 약간은 투박하고 덜 세련된, (그렇다고는 하지만 아주 높은 수준의 연주이다) 그의 플레이를 보면서 깜짝 놀라했다. 그의 연주에는 음 하나 하나에 모두 의미가 실린 듯 느껴졌다. 재즈의 언어를 충실하게 지켜가면서도, 변박과 변주의 연결에는 모두 당위성이 있었다. 혹시 그날의 공연이 그의 가장 좋은 연주였을 수도 있겠지만, Steps Ahead 시리즈 중에서 그가 참여했던 세션 역시 그 비디오에서의 연주처럼 정말 훌륭했었다.
그의 악기는 60년대 것으로 보이는 프리시젼 베이스에 싱글 픽업을 두 개 억지로 부착하고 나무를 뚫어(틀림없이 그랬어야 했을 것 같다) 프리앰프를 내장해둔 프랑켄쉬타인 베이스였다. (네크는 다른 연대의 것 같았다.) 그 베이스의 소리야말로 '제대로'였다는 것. (포데라보다 옛 시절에 제조된 펜더가 더 좋다, 라는 따위의 단순비교가 아니다.)

어제 친구가 추천해준 아마추어 작가들의 단편을 읽다가 기분이 상했다. 혹시 내가 미처 놓치고 읽어내지 못한 것이 있지는 않을까 해서 다시 한 번 읽어봤지만 마찬가지였다. 심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소설의 수준이 안되는 문장들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느낌이 최근의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읽고 화가 났던 기분과 서로 닿아 있었다. 아마추어라고는 하지만 소위 '등단'을 하지 않았을 뿐 잘 읽히게 썼고, 특별히 어느 부분을 지적해서 이것은 엉터리, 라고 할만한 구석도 없었다. 그러나 소설이라는 것이 스토리의 나열일 뿐이라면 뭐하러 소설을 쓰느냐고. 영화 시놉시스를 쓰지.

이런 것들은 단지 취향의 차이이거나 감상자 입장에서의 나라고 하는 사람의 편견과 독단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만일 그렇지 않고 내 시각이 비교적 객관적이고 거의 옳다고 한다면, 능숙하지만 뭔가 모자란 느낌을 주는 그들의 것에는 어딘가 본질적인 것이 결여되어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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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게 나이를 든 프랭크 갬벨은 내 친구 김규하를 닮았다.
김규하도 저렇게 늙어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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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8월 19일 토요일

고양이의 밥.


몇 년 전 수입된 개 사료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어서, 그 사료를 사다 먹인 전국의 많은 개들이 한꺼번에 죽어버렸던 사건이 있었다. 나도 그 기사를 읽었지만 저런 쯧쯧... 하고는 잊고 있었는데, 두 해 전이던가 자신이 직접 그 일을 겪는 바람에 어느날 아침에 일어나 잠들기 전 인사했었던 몇 마리의 강아지들을 쓰레기 봉투처럼 주렁주렁 들고서, 뒷산에 파묻어야만했다던 친구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는 몇 달에 한번씩 인터넷으로 고양이 밥과 화장실용 모래를 주문하고는 하는데, 가끔은 갑자기 건조사료 한 봉지만 구입해야하는 일도 생긴다. 정해두고 다니는 가게가 없어서 그런 때 마다 동네 부근의 사료가게에 들르게 되는데, 이 동네의 동물병원과 애완동물가게들은 정말 가관이다. 쓸모 없는 것들이 필요한 상품보다 많기도 하고, 인터넷 쇼핑몰의 두 배 가격인 제품들도 있다. 어떤 곳은 아주 지저분해서 문을 열고 들어서면 갑자기 토할 것 같은 냄새가 나는 가게도 있다.
너무 심하게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사실이다. 게다가 고양이라는 것을 집에서 키우고 있다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양이 사료가 따로 안나오니까, 개 사료를 사다 먹이면 됩니다'라고 말하는 아줌마도 있었다.
동네에 새로 개업한 동물병원이 보이길래, 그곳에 들러 고양이의 사료를 검색(?)해 봤다. 그곳에는 고양이 사료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내가 무슨 수색을 하고있는 것 같았다. 한 개의 영양제와 두 서너 가지의 건조사료를 발견했는데, 그중 영양제 한 개는 유통기한이 2002년까지라고 되어있었다. 조금 어이가 없어서 주인을 쳐다봤더니 '그게 조금 오래된 거니까 할인가격에 드릴게요. 먹여도 이상은 없어요'라고 했다. 그가 제안한 가격은 무지 싼 값이었는데, 나는 그것을 들고 바라보다가 다음날 아침에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내 고양이를 묻으러 가는 장면을 상상할 수 밖에 없었다. 심지어 화가 치밀기까지 했다. 그러나 아무 말도 안하고 그저 불쾌한 얼굴로 상점 문을 열고 나와버렸다. 주인아저씨가 무섭게 생겼기 때문은 절대 아니었다.

지금 집에는 내 고양이가 결코 입에 대지 않는 생선 통조림이 있다. 그것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내가 보기엔 생선과 새우가 가득 들어있어서 제법 먹음직스럽다고 생각하는데, 이 녀석은 그것을 먹느니 차라리 쥐를 잡으러 다니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관심도 두지 않는다.
버리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어서 어제 밤중에 아파트 부근 길고양이들이 가끔씩 모여 회의를 하는 공터(라고 해봤자 아주 좁다)에 두어개 뚜껑을 열어 놓아두고 외출했었다. 아침에 집에 오다가 생각이 나서 깡통들을 주워다 버리러 다시 그곳에 가봤더니 놀랍게도 깨끗하게 비워져있었다. 누군가가 설거지를 해서 반듯하게 다시 놓아둔 것 처럼.
부디 그 깡마르고 까만 어린 길고양이들이 먹어치운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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