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 30일 금요일

선배.


선배다운 사람이 있다.
인생의 기묘한 부분 중의 하나는, 의외성이 가득한 사람들과의 만남이다.
마주 앉아 무엇을 배운 적이 없지만 가르침을 나눠주신 선생님들이 계시고, 어릴 적부터 만나 어깨에 팔을 걸치고 다닌 적이 없지만 평생지기같은 친구들이 있고, 단 몇 번의 대화라든가 연주만으로도 존경심이 생겨지는 선배들이 있다. 
수백일 동안 얼굴을 보았을 학창시절의 교사들이 선생님처럼 여겨지지 않는다던가, 오래된 관계라는 것만으로 친구로 보아줄 수는 없는 관계가 있다던가, 함께 공부했거나 무엇인가를 나누어 겪었다고 해도 도저히 인생의 선배로 모셔줄 수 없는 사람들과는 반대인 경우들이다.

언제나 꾸준한, 인생이 음악으로 가득한 선배 한 분이 책을 냈다.
대뜸 구입하고 서명을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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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요 나누기.



원래는 고양이들끼리 잠들어있길래 '설정' 삼아 나도 곁에 길게 누웠다.
뭔가 평온해져오더니 결국 나도 잠들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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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고양이.




졸음을 참아가며 밥상 위의 생선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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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아픈 고양이.



수술받은 곳은 아물었고, 그 대신 다른 고양이들에게 대들다가 얻어맞는 바람에 눈두덩에 새로운 상처가 생겼다.

얘는 하루 종일 두 가지만 하며 시간을 죽이는데, 잠을 자거나 말썽을 피우거나가 그 일과이다.
이 놈 때문에 잠을 설치기가 일쑤였어서 미워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고양이들끼리의 헤게모니가 정돈되는 형국이 된 모양이다.
두들겨 맞는 꼬맹이에게는 불쌍한 일이겠지만 잠을 자고 싶어하는 집안의 인간들에게는 다행한 일이다.
눈가의 상처가 안스러워서 다시 귀여워해주기로 했다.

2007년 11월 29일 목요일

투입지가 뭐냐.

꼭 8일 동안, 그러니까, 우연의 일치일지도 모르겠지만, 어떤 분의 삼성 관련 폭로가 이슈화될 무렵부터 시작하여 아침마다 주문한 적 없는 중앙일보가 문앞에 던져지고 있었다. 문 앞에 '중앙일보를 두고 가지 말아라' 라고 적어놓았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그 메모 위에 다른 광고를 턱 붙혀놓고 신문을 떨어뜨린채 가버렸다. 

사흘째 부터 배달원이 도착하는 시간을 노려 현관문을 열고 나가보았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말았다. 드디어 오늘 아침, 우연히 신문이 도착하기 전에 잠을 깬 덕분에 배달원을 현장에서 붙잡을 수 있었다.
붙잡힌 배달원에게 무슨 죄가 있겠나. 나는 그저 옷을 얇게 입은채 뛰어나오는 바람에 추워서 인상을 썼을 뿐인데 현행범으로 옷섶을 붙잡혀버린 그의 얼굴에 두려움이 보였다. 연신 사과하며 절대로 신문을 두고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단단히 약속을 받은 후 등을 돌려 집으로 들어가버리는 내 등 뒤에 대고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라고 외쳐주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의 변명 중에 들었던 새로운 단어 한 개. '... 그것은 투입지여서, 상부의 지시에 의해 지국에서는 꼭 하도록 되어있습니다...'
투입지라, 투입지... 삼성아, 쪽팔리지도 않으냐.
투입지가 뭐냐고 물었더니 '무가지라고 보시면 됩니다'라고 대답해줬다.
그런거냐.

올해 초에 며칠 외국에 갔다가 집에 돌아왔을때에, 세 부의 조선일보가 문앞에 뒹굴고 있었다. 그때의 배달원은 내가 시간을 기다려 잡으러 나갈 수고를 덜어주느라 그랬던 것인지, 이른 아침에 초인종을 누르며 직접 찾아와줬었다. 찌푸린 얼굴로 문을 열었더니 몇 달만 공짜로 신문을 보라며 공손하게 말을 꺼냈었지. 선물로 자전거를 준다고 했다. 내가 무슨 말을 했었는지는 까먹었지만 현관문 앞에 서서 굴욕감을 느낀 얼굴로 나를 노려보던 젊은이의 표정은 기억이 난다.

그나저나, 이미 문앞에 접혀진채 차곡차곡 쌓여있는 쓰레기들을 내다 버릴 생각으로 귀찮아하고 있었는데, 낮에 부모님이 다녀가시면서 덥석 집어 가셨다. 그 종이들은 아마 시골로 실려가 고구마라든가 농작물을 위해 흙위에 깔리거나 할테지. 엄마가 요긴하게 쓰시길. 읽지는 마시고.

감기.


감기는 나아가고 있다. 아직은 콧물이 남아있고 기침도 하고 있지만. 병원에 가라는 말을 고집피우며 외면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 정도로 병원에 갈 나이가 아니야,라고 우기고 있지만 더 바빠지는 다음 주가 되면 버티지 못할지도 모른다. 내일은 병원에 다녀올지도 모른다.

손가락을 다쳤는데, 벌써 4주가 되었다. 역시 고집을 피우며 병원에 가보지도 않고 저절로 나아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드디어 악기를 만지고 있지 않아도 아프기 시작했다.

커피가 떨어진 상태로 사흘을 보냈는데, 집안의 사람 두 명의 상태가 멍청해진 것 같았다. 각각 다른 커피로 세 봉지를 사와서 느리게 내려 마셨다. 지금은 잠들었다가 꿈을 꾸고 깨어나버린 새벽, 다시 커피 석 잔 분량을 만들어 단숨에 마셔버렸다. 집안은 잠들어있는 사람과 고양이들의 숨소리로 가득하다. 방안에는 커피 냄새로 그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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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28일 수요일

커피


어쨌든 동네에 커피 콩을 볶아 팔고 있는 집이 있다는 것은 다행이다.
어째서 '어쨌든' 인가 하면, 그다지 로스팅이 훌륭하지도 않았고 원두가 특별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허술하고 엉성했다.
동네에서 커피를 팔고 있는 곳은 없기 때문에 그나마 반가운 장소가 되었다.
아침 일찍 커피집에 가서 몇 봉지의 커피를 샀다. 마루바닥에 커피 콩 자루들이 군데 군데 앉아서 졸고 있었다. 쌀처럼, 커피도 포대자루째로 집에 두고 퍼먹어도 되는 것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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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히 누워있었다.


추워져서 전기담요를 깔아뒀다.
그랬더니 고양이들이 제일 반가와했다.
밤중에 마루에 뭔가가 줄을 맞춰 놓여있는 것 처럼 보였다.
불을 켜봤더니 이런 모양으로 잠들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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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전공.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입장에서 하지 않아야할 말인줄은 알지만, 음악을 전공한다는 것은 그저 여러가지 중의 한 가지 길일 뿐이다. 지름길도 아니고 유일한 출구도 아닌 것인데 그것에 목숨을 건 것 처럼 여긴다. 실제로는 대부분 인생의 아무 것도 걸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학생들은 계속 자기 암시만 하고 있다. '나는 뭔가를 하고 있다'라고 하는.

문예창작과를 졸업해야만 소설가가 되는 것도 아니고 미술대학을 거쳐야만 화가가 되는 것이 아니다. 열정이라는 것이 생겨나지 않는 이상 아무 것도 될 수 없다.
실용음악이라는 이상한 이름을 가진 입시 과목을 놓고 그것에 매진하고 있는 학생들을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우선이 되어야 하는 것은 정말 음악을 좋아하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의 여부일테다. 무엇을 위해서 연습을 하는지도 모르는 젊은이들이 대학에 입학하겠다고 레슨을 받으러 다니는 것을 보면서 나는 자꾸만 염증이 난다.

그들에게 어떤 음악을 좋아하고 있는지 물어보아도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 왜냐면 세상에 어떤 음악들이 있는지도 여지껏 모르기 때문이다. 음반을 구입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사람도 있다. 이런 것들을 들어보라고 종이에 가득 적어줘도 듣지 않는다. 이유를 물어보면 어디에서 그 음악들을 다운로드해야하는지 몰라서라고 말을 한다. 그런 주제에 부모에게 악기를 사달라고 조르고 있는 것이다. 용돈을 아껴 공연을 보러 간 적도 없고, 인터넷을 뒤져 음악을 찾아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왜 학원을 수강하며 젊은 날을 보내는 것일까. 연애할 시간도 없을텐데.
왜들 그렇게 하향평준화를 향해 치닫고 있는 것일까.

대학의 수시입시라는 것 때문에 또 한 주 강의를 쉬게 되었다. 수없이 많은 학생들이 실용음악과 (도대체 어디에 실용된다는 것인지)에 지망하며 시험을 치르러 다니고 있는데... 부디 그런 경험들이 그들의 인생에 실용적인 무엇으로나마 남아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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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27일 화요일

겨울용품


아내가 며칠간 대나무 바늘과 실을 가지고 열심히 뭔가를 하더니, 목도리와 모자를 만들어줬다.
아주 따뜻하다. 색상별로 몇 개 더 만들어달라고 할까 궁리중이다. 귀찮아할지도 모르지만, 뭐 뚝딱 만들어내던 것으로 보아 손쉽게 더 만들어주지 않을까.


힘들었던 11월.

감기로 절반을 보내고, 쓸모없는 일에 치이고, 불규칙한 수면으로 무기력했던 11월, 빨리 지나가라.
항상 일이라는 것은 함께 몰려다닌다. 다음 달의 연습일정들이 모두 정해졌는데, 아주 빠듯하다. 연습과 레슨, 공연, 녹음 등의 일들이 따로 모여 약속이라도 한듯 서로 날짜를 피해 하루씩 차지하고 앉았다. 모처럼 연락해준 친구의 녹음과 공연연습들이 반갑다. 그 사이 클럽에서의 연주도 있고 레슨의 강행군도 있다.

어서 숨가쁘게 겨울의 거리를 뛰어 다니고 싶은 마음과, 계속 방안에서 고양이들과 굴러다니며 잠이나 자고 싶은 마음이 왔다 갔다 하고 있다.

다음 달은 반드시 다른 생각을 할 겨를 없이 바빠야만 한다. 다행이다. 선거라든가 세상의 일들에 가능한한 무뎌져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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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의 퇴원.

그동안 계속 입원해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마지막으로 병원에 가서 실밥을 뽑고 상처를 치료하고, 더불어 수의사의 손에 발톱으로 자상도 남겨준 꼬마 고양이.
집에 돌아오는 길에 자동차 뒷자리에 앉아서도 까불고 있었다.
매우 긍정적이고 활력이 넘치는 꼬마 고양이.
얘를 보고 있으면 좋은 기운이 생기는 것 같았다.
어서 말끔하게 낫고, 잘 먹고 잘 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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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24일 토요일

모여서 잠들었다.


고양이들과 소파를 나누어 사용하고 있다.
순이와 내가 둘이서만 쓸 때엔 넓었었는데, 이제 소파 한 개가 더 있어야 좋을 지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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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썽꾸러기.


이렇게 심한 장난꾸러기, 말썽꾸러기 고양이가 있을줄이야.
나는 고양이 정신과 상담이 필요한 약간의 조증 증세가 있는 녀석이라고 규정지었는데, 아내는 그저 활발하고 장난 좋아하는 어린 고양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너무 많이 빨리 뛰어다니고 노는 바람에 정신이 없다. 드디어 수술한 곳의 실밥을 풀어내고 머리에 쓴 갓을 벗을 날이 되었는데, 걱정이다. 얼마나 더 신나게 뛰어다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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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19일 월요일

넘겨다 보기.


큰 언니를 넘겨다보는 꼬마 고양이.


큰 언니 (?) ....를 넘겨다보는 다 큰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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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18일 일요일

괴발.

肉球.
고양이의 발을 일본에서 일컫는 단어라고 들었다. 肉球는 발가락들을 말하고, 발바닥을 이야기하는 것은 다른 이름이 있다고 했었다.

우리말에는 특별히 고양이의 발에 이름을 붙혀준 것이 없다. 단지 고양이의 발을 괴발이라고 말했었는데, '괴발개발 썼다'라고 말하면 형편없이 못쓴 글씨를 흉보거나 하는 말이었다. 이것이 변하여 요즘에는 주로 '개발새발' 이라는 말을 쓰게 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괴발딛고 걸었다, 라고 하는 표현도 있었다. 고양이가 발을 딛듯이 조용히 소리내지 않고 걷는다는 뜻이었다. 이런 말들을 나는 재미있다고 생각하는데, 점점 쓰지 않으므로 사라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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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고양이 퇴원.

동물들을 자동차 안에 함께 태우고 이동할 때엔 반드시 이동장 안에 넣어서 좌석벨트를 채워준다거나 그래야 한다. 
꽤나 위험한 짓이었지만 가방 안에서 꺅꺅거리며 어찌나 소란을 피우던지 잠시 앞유리 앞에 앉혀줬다. 시간이 지나자 저 좁은 자리에서 잠도 자거나 했다. 

회전하거나 자동차가 멈출 때에 눈을 감고도 잘 알아서 균형을 잡는 것은 고양이로서는 쉬운 일인 것인지, 얘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이 자세로 앉아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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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나는 귀찮아서 병원을 가지 않고 버텨보려하다가 드디어 두통과 기침까지 시작되었다.
이렇게 게으름만 피우는 사내와 함께 있으려면 참을성이 아주 많아야할 것 같다....라고, 뻔뻔하지만 나는 생각했다. 아내가 약을 사다주고 뜨거운 국을 해줘서 그것을 받아먹고 겨우 나아가고 있다.

눈이 시리고 몸은 으슬거려서 운전은 커녕 집 밖으로 나가기도 싫었지만, 배를 꿰맨 채로 낫기를 기다려야하는 꼬마 고양이를 태우고 동물병원으로 나섰다.

고양이는 주사를 몇 대 더 맞고, 회복이 빠르니 더 이상 병원에 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한 주일 후에 실밥을 제거하러 한 번 쯤 병원에 들러보면 된다고 하니 다행이었다.

아내는 팔기 위해 진열해놓은 (아무리 잘 포장해서 말한다고 해도 결국 그런 것이다) 새끼 고양이들 앞에 선채로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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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워졌다.


아침 일찍, 나는 주차해둔 자동차를 옮겨 놓기 위해 밖에 나갔었다.
어제밤에 자리가 없어서 다른 차를 가로막아 놓았었다. 그대로 두고 아침에 잠들었다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을 것이어서 적당한 빈 자리가 생겼을만한 시간을 기다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두꺼운 유리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코 끝에 겨울 냄새가 훅 하고 들어왔다. 추워졌다. 몸살 기운으로 갑자기 몸이 떨리기도 했지만 기분 좋았다. 여름에는 속절없이 비가 계속 내려야 좋고 겨울에는 추워야 나는 좋다. 그런데 비가 내리고 추워지면 곤란을 겪는 분들이 있을테니 마냥 좋다고만 하는 것도 죄스럽다.

집안에 다시 돌아오니 따뜻한 공기가 그윽했다. 고양이들은 밖의 사정이 어떤지도 모른채로 사이좋게 흩어져 잠자고 있었다. 환자 고양이 꼬맹이는 제일 따뜻한 방 안에서 길게 늘어져 자고 있었다.

이 집의 사람 여자 한 명은 잠을 설치며 고양이의 약을 네 번 먹이고 사람 사내의 약을 챙겨 먹이고, 사료를 여러 번 덜어주고 밥을 여러 번 차려 주느라 휴일을 다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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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자국

꼬맹이 녀석의 배에 남겨진 바느질 자국.

아내가 꼬맹이 고양이 녀석을 가리켜 '옆구리 터진 넘'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건 좀 심했다고 생각했다.
옆구리 꿰맨 놈이라고 해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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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17일 토요일

엉겨붙는 고양이.


함께 살기 시작한지 불과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큰 일들만 만들어내고 있는 꼬맹이 고양이.

갑자기 입원하고 수술을 해야했던 날의 장면이다. 자꾸만 사람의 베게를 차지하고 잠을 자는 바람에 녀석을 번쩍 들어 다른 곳에 놓아두고 누워야하는데 그러면 아예 사람 위에 올라와 치근대다가 잠들곤 했다. 배에 실밥자국이 주루룩 생겨버린 지금도 그 버릇은 여전하다. 은근히 무거워서, 반드시 잠을 설치게 된다.

'기존 질서 개무시'를 삶의 자세로 삼고 있는 꼬맹이 녀석은 이제 어른 고양이들의 잠자리도 제 멋대로 차지하고 잠을 잔다. 어른 고양이들은 뭐라고 하지도 않고 자리를 비켜주거나 함께 엉덩이를 대고 자거나 하고 있다.

내 고양이.


깊은 밤이 되면 나는 혼자 한 쪽 방에 틀어박혀 있는 경우가 잦다.
가능한 소란스럽지 않게 하기 위해 방문을 닫아두고 창문도 닫는다. (사실은 요즘 추우니까)
다른 사람과 고양이들은 집안의 다른 곳에서 각자의 자리를 잡고 잠을 자고 있다.
다만 고양이 순이는 나와 함께 방에서 밤 시간을 보낸다. 내 곁에서 졸다가, 일부러 가까이 다가와 참견을 하다가, 장난을 걸다가, 다시 근처에 누워 잠을 청하더라도 늘 함께 있어준다. 음악소리가 거슬리면 구석에서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잠을 잔다. 몸을 길게 펴고 편하게 자는 것을 좋아하는 고양이인데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함께 있는 것을 보면 미안하기도 하고 좀 미련해보이기도 한다.

커피를 만들어 놓으면 적당히 식을 즈음 발로 찍어 먹어보거나 한다. 요즘은 대담하게 컵에 머리를 박고 훌쩍 훌쩍 마시기도 한다.
기타를 치고 있을 때에 무릎 위에 올라와 앉는다.
하던 일을 멈추고 순이야, 하고 부르면 눈을 마주치며 그르릉 소리를 낸다.
나와 함께 지내는 몇 년 동안 고양이 순이는 하루도 어김없이 내 곁에 함께 있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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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어둠 속에서 iPod과 맥을 연결하기 위해 커넥터를 꽂았더니 잠시 밝아졌다. 작은 화면 위에 피크가 있었어서 예뻐보였다.

좋은 오디오를 사놓고도 마음껏 들어본 적이 없다.
언제나 한밤중이 되어서야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생기니까, 음량을 마음대로 크게 할 수가 없다. 결국은 헤드폰을 쓰거나 컴퓨터 앞에서 작은 음량의 모니터 스피커를 켜두거나 해야하는 사정이다.
팻 메스니 그룹의 The Way Up 같은 음반을 처음 부터 끝까지 적당히 큰 음량으로 주욱 들어볼 수 있으면 좋겠다.
아파트의 10층에 살고 있는 이상 어쩔 수 없는 일.
제법 방음 공사를 해놓았다는 건물인데도 심야시간 집안의 어떤 벽 쪽에서는 이웃집의 대화마저도 들을 수 있다. 벽에 귀를 대면 내용을 알 수 있을 것 같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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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16일 금요일

환자들의 하룻밤.


감기 기운이 가득했는데 며칠 불량한 수면을 취했던 것이 좋지 않았다.
이 정도의 기온에 두꺼운 옷을 입는 것도 거추장스러워서 부실하게 입고 다녔던 것도 나빴다.
감기 몸살 때문에 힘이 빠졌다.

밤중에 나는 어린 고양이의 몸에 상처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큰 고양이들에게 두들겨 맞아서 생긴 상처인줄 알았다. 자세히 보니 피부 안쪽에 염증이 생긴 것 같았다. 급히 병원에 데리고 가서야 피부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종양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갑작스런 일이었지만 24시간 동물병원이 그나마 있었다는 것에 고마와했다.


혈액검사를 하도록 허락하고 수술을 위해 입원을 시켰다. 이 꼬마 고양이가 그동안 얼마나 아팠을까. 신경이 많이 쓰였다. 고양이를 병원에 둔 채로 돌아오는 길에 맥이 풀렸었는지 몸살이 심해졌다. 환절기마다 감기로 고생을 했다가 올해엔 그럭 저럭 넘어가는 것 같았어서 너무 방심했었던 탓이다.

아내가 죽을 만들어줘서 겨우 배를 채우고 일하러 나갈 수 있었다. 밤중에 일을 마치고 고양이를 데려오기 위해 다시 병원으로 갔다. 아내는 주기적인 통증이 심하여 힘들어하고 있었고 나는 감기 몸살에, 어린 고양이는 4cm가 넘는 피부종양 수술을 마친 뒤 기운이 빠진채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꼬마 고양이 녀석은 병원의 의사 앞에서는 힘 없이 축 늘어진채로 불쌍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자동차에 데리고 올라타자마자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불평을 하는 정도였다. 자동차가 달리기 시작하자 그것이 심한 불만이 섞인 목소리로 바뀌었다.
나중에는 아예 욕설을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자동차 안에서 난동을 피우기 시작했다. 운전하기에 위험할 정도였다. 아내는 안간힘을 쓰며 꼬맹이를 달래려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우리는 꼬마 고양이가 왜 그러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고양이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뒤이어 아내가 조용한 목소리로 새로운 소식을 말해줬다.
"얘가 아무래도 오줌을 누고 있는듯한 기분인데... "
자동차를 잠시 세우고 실내등을 켰다. 뒤를 돌아보았더니 과연 졸졸졸 아내의 바지 위에 오줌을 누고 있는 중이었다.
꽤 많은 양의 오줌을 누고있던 어린 고양이의 얼굴에는 긴장과 갈등이 해결되는 다양한 표정이 지나가고 있었다.
생리욕구를 해결하자 금세 다시 수술을 마치고 하루를 굶은 어린 고양이로 돌아와 축 늘어져서 금세 졸기 시작했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그 난리를 떨었던 것을 우리 두 사람은 알아들어주지 못하고 있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꼬마 고양이는 두 손으로 어떻게든 머리에 씌어진 기구를 벗겨내려 애를 쓰다가, 화를 내며 고양이 화장실에 가서 한 번 구르고는 그 꼴을 한 채로 졸졸졸 뛰어가 밥그릇을 찾았다. 내일 아침까지는 더 굶어야 한다는 의사의 처방이 있었으므로 밥그릇을 빼앗았다. 솜에 물을 적셔 조금 먹도록 한 다음, 더 뛰어다니다가 수술한 상처가 덧나기라도 할까봐 고양이 이동장 안에 넣어주었다. 그 안에서 얌전히 있을 꼬맹이 고양이가 아니겠지만, 어쨌든.

다른 고양이들은 그들대로 감정이 상한 녀석, 일상이 깨어져 뭔가 불안한 녀석, 어린 놈이 아파하는 것 같아 걱정해주는 녀석으로 나뉘어 집안을 정신없게 했다. 그리고 아내는  통증으로 고생을 하고 나는 감기 몸살이었다. 아내는 고양이 이동장을 끌어다놓고 제일 심한 환자인 꼬맹이를 지켜보랴 다른 고양이들 돌봐주랴 고생스러웠던 밤을 보냈다.

이쯤되면 좀 누워서 엄살을 부리며 몸살을 앓고도 싶긴 한데, 종일 죽만 먹었더니 배도 고프고 잠들어버리기엔 시간이 아까왔다. 이런 저런 환자들의 만 하루가 지났다. 꼬맹이 고양이는 곧 건강해질테고 나머지 고양이들의 기분도 이내 풀어지면 좋겠다. 나는 내일 낮이 되도록 나아지지 않으면 병원에 다녀와야 할 것 같다.

이제야 고양이들은 각자 자리를 잡고 누워 잠을 자기 시작했다. 집안은 새근 새근 조용한 숨소리로 가득하다.

꼬마 고양이.


꼬마 고양이가 수술을 받은지 며칠이 지났다.
목에 갓을 두른채 지내려니 장난을 좋아하는 꼬마 고양이는 매일 따분하다.


머지않아 실밥을 풀고 상처가 아물면 다시 집안을 폭주하며 뛰어 놀 것이다.
귀여운 고양이가 어서 낫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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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이 빠른 고양이.



여전히 감기몸살 기운이 그득한 나와, 여전히 통증을 견디고 있는 EG는 수술한 환자 꼬맹이 때문에 잠을 설쳤다.

병간호 때문이 아니고, 어찌나 떼를 쓰고 놀아달라고 하는지. 조금만 방심하면 아무데나 올라가고 아무 곳에나 툭 떨어진다. 배에 바느질 자국이 있는 주제에 별짓을 다하고 있어서 이동장 안에 가둬놓으면 구르고 울며 소란을 피웠다.

결국 침대 위에 눕히고 약을 먹이고 한참을 쓰다듬어줬더니 그르릉거리며 만족해했다. 회복이 빠른 것 같아서 기분은 좋다. 하지만 너무 얄미워서 상처가 다 나은 다음에도 한동안은 머리의 갓을 계속 씌워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꼬맹이의 팬티.


아무리 가벼운 수술이었다고 해도 피부를 쨌다가 꿰멘 일을 겪은 것인데, 꼬마 고양이는 활기차기만 하다.
워낙 움직임이 많아서 조금씩 흘러내려와버린 탓에, 병원에서 정성껏 감아준 붕대는 꼴사나운 빤쭈처럼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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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15일 목요일

꼴 좋다, 꼬맹이.

몇 시간 전에 수술을 받은 생후 5개월 지난 고양이라고는 믿을 수 없다.
지치도록 뛰어다니려 하고 장난을 걸고 돼지처럼 먹어대고 있다.
배에 감아준 붕대는 엉덩이로 흘러내려 원래의 기능을 상실했다. 적당히 팬티처럼 보이기도 하고, 적당히 '어쨌든 환자입니다'라는 표시 정도로 되었다. 얼굴의 갓 때문에 시각이 좁아져서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짓을 혼자 다 하고 있다.
마침내 졸음이 쏟아지면 아무데나 털썩 누워 그르릉 거리며 잠을 잔다.
나는 아주 꼴 좋다, 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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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순이의 고독.

집안에 고양이가 득실(겨우 네 마리이지만)거리다보니 가끔은 발에 치인다.
사실은 서로 조심하며 살고 있어서 심각하게 부딪히거나 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살다보니 밖에서 돌아오면 한 녀석씩 이름을 불러보며 멀쩡한지를 살피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꼬맹이의 수술에서도 확인했지만 고양이들은 매우 아픈 것이 아니면 통증을 호소하지 않는다. 커텐의 줄을 가지고 놀다가 다리에 감겨 위험할 때도 있고 뛰어다니다가 타박상을 입는 것은 일상다반사이다. 전기줄을 가지고 장난을 한다거나 악기들이 세워진 틈을 뛰어다닌다거나 하는 것을 목격한 이후로는 언제나 걱정이 많다. 한 녀석도 아프지 않고 게으름 피우며 잘 살아줬으면 좋겠다.

밖에서 돌아오면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달려나와 반겨주는 고양이가 한 마리 있다.
내 고양이 순이이다.
내가 집에 오면 방구석에서 잠을 자다가도 뭐라고 웅얼거리며 뛰어나와 맞아준다. 다른 고양이들은 내가 들어오든 나가든 그다지 반응하지 않는다.

순이 때문에 내가 양쪽 어깨에 악기를 걸쳐메고 가방이나 무거운 이펙터 케이스라도 들고 있을 때엔 현관 앞에서 집안으로 들어가는 일이 어려울 때가 있다. 신발도 벗지 못하고 이 녀석을 안아올려 아는체를 해주지 않으면 이내 곧 엘리베이터까지 뛰어나가 응석을 부리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 둘이서 살고 있던 순이에게는 몇 년 사이에 가족이 많아졌다. 당연히 온 집안이 혼자만의 공간이었던 시절은 지나가버렸다. 점점 자신만의 영역이 좁아지더니 지나치게 활발하게 싸돌아다니는 꼬마 고양이까지 들어온 다음에는 아예 은둔자의 모습처럼 되어버렸다. 가장 어두운 구석으로 숨어들어가기도 하고, 뭔가 표정에 넉넉함이 사라졌다. 눈빛은 자주 불편해지기도 하고 만족스럽지 않은 고개짓도 하기 시작했다.
워낙 질투가 많은 샴고양이였는데 이제는 시샘을 드러내는 일도 사치가 되어버렸다.

나는 어쩌다가 고양이 네 마리와 여자 한 분과 살게 되었으며, 순이는 어쩌다가 고양이 세 마리와 사람 둘과 지내게 되었는지는 불가사의한 일이다. 모든 일들은 우연이거나 인연의 연속이었다. 동물들에게 헌신적인 아내의 덕분으로 이들은 모두 평화롭게 뒹굴며 먹고 자고 노닐고는 있지만, 고양이 순이에게는 점점 자신의 것을 잃은 느낌이 되었다.

소외감을 느꼈을 순이는 사뭇 어른이 되어버린 얼굴로 변해졌다. 걷는 모양과 사소한 몸짓도 어딘가 의젓해졌다. 아기처럼 굴던 응석도 그만둔 모양이다. 언제나 뛰어나와 나에게 반가운 인사를 해주는 일 정도는 가끔씩 잊어도 좋으니 나는 순이가 부디 건강하고 행복한 고양이의 일생을 누려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고양이, 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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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준비.



바쁜 아침시간, 까만 고양이 쿠로는 서둘러 세수를 하고 출근준비를 한다.


물론.... 거짓말이다.

2007년 11월 14일 수요일

큰언니 고양이



이 집의 큰언니 고양이. 만 열 살.
그 뒷쪽으로... 해가 중천인데도 퍼져 자고 있는 인간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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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기를 든 아이.


조카의 생일을 앞둔 어느날 밤 동생의 집에 들를 일이 있었다. 마땅한 생일선물이 없어서 (사실은 미리 생각해두지도 않았었다) 내 닌텐도 게임기를 선물로 줬다. 마리오와 그 일당들이 날이 새도록 뛰어다니는 게임팩 한 개와 함께.

그걸 두 손에 받아들고 어찌나 좋아하던지, 내가 쓰던 중고제품이라고 말해줄 시간도 없었다. 새것이었든 아니었든 그 녀석에게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까지 좋아할 줄은 몰랐었다. 어쨌든 흡족해하니 뭐 잘 되었네, 라고 생각했다.
며칠이 지난 후 동생의 블로그에서 그들 가족이 함께 식사하는 모습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사진 속에서 나는 게임기를 두 손에 꼭 쥐고 웃고 있는 조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샘이 많은 둘째 녀석의 생일이 다가올텐데, 갑자기 걱정이 되었다. 제 오빠 정도의 선물이 제공되지 않는다면 아주 오래도록 나를 미워할텐데, 걱정이 되었다.

램프 곁에서 조는 어린 고양이.

꼬마 고양이 꼬맹이를 잘 챙겨주지 않으면 어느날 전기 고양이가 되어버릴까봐 걱정이 되었다.

얘는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따뜻한 전등 곁에서 털이 눅는줄도 모르고 잠을 자기도 했다.
재미삼아 전등의 전선을 물고 뜯으며 매달려 놀으려하기도 했었다.
다른 고양이들은 그 정도의 장난을 벌였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정말 말썽꾼 한 마리가 들어왔구나, 생각했다.


2007년 11월 13일 화요일

순이가 꼼을 야단쳤다.


오후에 순이가 꼬맹이를 심하게 두들겨 패는 것을 보았다. 
내가 보기에는 무슨 잘못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아마도 순이가 여러 번 경고했던 것을 잊었거나 무시하고 또 반복했던 모양이었다.

위의 장면은 그저 겁을 주고 으름장을 놓는 정도였다. 그런데 당돌한 꼬마 고양이는 그 정도로는 겁을 먹지 않았다. 결국은 정말 눈물 찔끔 나도록 얻어맞고 말았다.
까닭을 모른채 돌연 두들겨 맞은 후에, 이제 꼬맹이는 순이 앞에서 지나치게 고분 고분해졌다.
순이 앞에만 가면 예의바른 남학생이 되어버렸다.

집안에 고양이가 네 마리가 있는데도 네 마리 모두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한 두 시간을 제외한다면 하루 종일 조용하기만 하다. 순이가 꼬맹이를 마구 때리고 있을 때에도 너무나 소리없이 조용해서 충격적으로 보였다.
우스운 것은, 혼이 나고 두들겨 맞는 경험이 반복될 수록 꼬맹이가 순이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고 있다. 그리고 순이의 여러가지 행동을 흉내내고 배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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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12일 월요일

어린 고양이.


꼬마 고양이가 우리집에 와서 지금까지 했던 일들을 적어보았다.

남의 밥 빼앗아먹기
남의 물그릇에 네 발 담그기
흠뻑 젖은 발로 화장실 모래 파헤치기
화장실 파헤친 후 뒹굴다가 잠들기 (건져서 씻겨야한다)
그렇게 자다가 화분의 흙 퍼내기
집안에 있는 식물 뜯어먹기 (작은 화분 한 개 조졌다)
겁없이 으르렁 거리며 언니 고양이들에게 싸움걸기
사람이 남긴 음식 뒤져서 훔쳐먹기 (단숨에 멸치 일곱 마리를 해치웠다)


그런 주제에 따뜻한 물로 목욕하는 것을 즐긴다.
심지어 드라이어로 털을 말려주는 것도 좋아한다.

고양이 가르치기.


샴 고양이 순이가 아무리 알아듣게 가르치려해도 소용이 없었다.
이제는 여유가 생겨서, 팔짱을 끼고 앉아 태연하게 마주보며 건방을 떨고 있었다.
기존의 질서를 우스운 것으로 여기는 고양이 앞에서는 언니 고양이들의 다양한 가치들이 별 쓸모없게 되어진다.
타이르기도 하고 으름장도 놓던 순이는 결국 꼬맹이 녀석을 크게 한 번 내다꽂으며 때려주었다.

그 후로 꼬마 고양이는 순이 앞에서만 눈에 띄게 행동이 조심스럽고 착해졌다.


두 배로 심심해하는 꼬마.


다 큰 고양이들도 하루 종일 심심하다.
이렇게 심심할 바에야 거리로 뛰어나가 길고양이들과 노는 것이 덜 무료할거야,라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어린 고양이는 어른들보다 두 배로 심심하다.
아무도 놀아주지 않아서 기운이 빠져있었다.
하지만 어른 고양이도 어른 사람들도, 얘와 계속 놀아주다가는 탈진하고 말 것 같았다.
두 배로 심심해하는 꼬마 고양이는 떼를 쓰다가 그 자리에서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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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일요일 아침.


내가 주문했던 프로그램은 도착하지 않았다.

아침에 동네의 식료품 가게에 다녀오면서 낙엽과 단풍들 사이를 걸었다.
길에 서서 주머니에 있던 카메라를 꺼내어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컴퓨터에 담으며 생각해보니 사진을 정돈하는 정도의 일은 iPhoto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았다. 습관처럼 다른 에디터를 찾고 있었던 것이었나 했다.
iPhoto 만으로도 쓸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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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와 쿠로.


쿠로가 화장실에서 변기를 들여다 보고 있었다.
순이는 그것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순이는 어릴적에 변기 뚜껑이 닫힌줄 알고 뛰어 올랐다가 그만 그 안에 빠져버렸던 적이 있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외치는 것 처럼 긴박하게 소리를 질렀었고, 나는 밤중에 달려가 순이를 꺼내어 다독이고 씻겨주며 무척 웃었었다. 젖은 몸을 말리고 다시 그루밍을 하고 나서야 안도하는 표정을 보였던 것이 계속 기억에 남아있다.

신중한 쿠로는 반대편에서도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흥미를 잃고 나가버렸다. 어쩐지 순이는 조금 아쉬운 표정을 했다. 쿠로가 변기에 빠졌다면 순이는 킬킬 웃으며 놀려주고 싶어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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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가 경고를 했다.


정신없이 까불고 있던 꼬마 고양이에게 순이가 낮은 음성으로 꾸짖고 지나갔다.
'계속 버릇없이 군다면....' 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매우 근엄하고 무서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고양이들 끼리이긴 하지만 어딘지 상당히 어두운 기운이 느껴졌다.
고양이 순이에게 저런 면이 있었다니, 나는 꼬마 몰래 순이에게 다가가 칭찬을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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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는 자주 앉아있다.


고양이 순이는 자주 벽에 등을 기대고 앉는다.
식탁 앞 의자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올라가 자세를 잡고 앉아있곤 했다.
나와 둘이만 살고 있을 때엔 아침에 각자의 자리에 사료그릇과 사람 밥 그릇을 준비하고 함께 식사를 하고는 했다. 물론 거짓말이다...

순이가 의자에 앉아 두리번 거리는 것을 아내가 보고 즐거워했다. 사진을 찍어주고 있으려니 순이는 같은 자세에서 고개만 돌려 사람을 바라보며 함께 재미있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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