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31일 월요일

좋은 해가 되면 좋겠다.


사람 곁에 꼭 붙어서 지내는 고양이 짤이가 뭔가를 보고있다. 아내의 발이다.
지난 달에 아내가 발을 다쳤었다. 병원에 다녀온 후에도 계속 통증을 느낀다고 했을 때에 알아차렸어야 했다. 아내는 웬만한 일로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는 성격인데, 내가 그에게 신경을 쓰지 못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다른 병원에 가보았고, 그동안 발가락 뼈가 부러진채로 한 달 가까이 지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 갔었던 병원에서 엉뚱한 진료를 하고 가벼운 말로 환자를 안심시켰던 것이었다.
발에 깁스를 하고 집에 돌아온 아내의 모습을 보며 여러가지 감정이 오고갔다.
무슨 나쁜 일이 생겼을 때에 아무도 뭐라고 말하지 않는데도 나는 어쩐지 나의 탓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그것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에 화도 났다가, 생각을 거듭하면 역시 나의 부주의이고 내가 제대로 챙기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마음에 우울해지기도 한다.
어제는 아내의 발에 붕대를 다시 감아주면서, 나는 왜 제대로 하는 일이 없는가 하여 힘이 빠졌다.

이제 올해가 하루 남았다.
아버지는 지난번 수술에서 떼어낸 조직을 의사가 검사한 결과, 다시 암으로 의심되는 것이 발견되어 재수술을 하게 됐다. 보름 뒤에 다시 입원을 해야한다. 엄마는 내일 입원했던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지속적인 치료를 위해 몇 가지를 예약하여야 한다.
고양이 이지는 잘 먹고 잘 지내기는 하지만 여전히 약에 의지해야하는 상황이다. 어쩌면 계속 약의 힘을 빌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내는 앞으로 3주 이상 절뚝거리며 다녀야 한다고 했다. 그 기간이 지나도 부러진 뼈가 완전히 아물거나 낫는 것은 아니라고 하니, 한동안 고생스러울 것이다.

악기들을 잘 보관하기 위해 내가 지내는 방에는 언제나 보일러를 잠그고 산다. 책상 앞에 오래 앉아있다가 문득 내가 손이 시려워서 자주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방문을 열고 나가보니 고양이들은 아내의 곁에 모여서 따뜻하게 자고 있었다. 한 번 내려서 마신 커피가루가 담긴 필터에 물을 데워 부었다. 연하고 맛없는 커피가 한 잔 생겼다.
달력을 한 장 넘긴다고 하여 무엇인가 변해질 것이라고 믿지는 않는다. 그래도 해가 바뀌면 가족들 모두의 병이 낫기를 바란다. 봄볕을 쬘 수 있을 즈음엔 모두들 산보도 하고 각자 즐거운 여가를 보낼 수도 있으면 좋겠다.

금세 지나가버린 한 해가 아쉽지도 않다. 조금의 미련도 없기는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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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22일 토요일

인천에서 공연.


올해의 마지막 공연은 인천에서 했다.
짧은 리허설을 마치고 첫끼를 먹었다.
공연은 예정된 시각에 시작할 수 있었다.
지난 밤에 베이스에 새 줄을 감아뒀다. 악기의 상태도 좋았고 앰프 소리도 좋았다. 다만 내 몸이 문제였다. 손가락, 팔목, 어깨, 허리가 모두 아팠다. 진통제를 사먹는 것이 좋지 않을까 고민하다가, 역시 먹지 않기로 했다. 연주를 시작하면 통증은 잊혀질 것 같았다. 두통은 없었으니 괜찮았다.

아버지는 이틀 전에 퇴원했다. 나는 병원에서 닷새를 보냈다. 엄마가 시월 중순에 입원하여 42일만에 퇴원한지 보름만에 아버지가 입원했어야 했다. 아버지는 두 번의 수술을 받았다. 부모 두 분이 동시에 입원하지 않았던 것이 다행이었다고 생각했다.
내일은 아픈 고양이 이지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다녀와야한다. 나는 건강보험공단에서 재촉하던 건강검진을 올해에도 받지 못했다. 다음에 하면 될테지.

공연을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엔 도로가 막히지 않았다. 음악을 들으며 여유롭게 운전할 수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울 때에 갑자기 자동차의 전조등 한쪽이 꺼지는 것을 보았다. 그동안 양쪽의 전구가 동시에 꺼지는 일은 없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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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12일 수요일

고된 것.


소박한 일상의 연속이 행복이라고 했다. 전보다 더 마음에 와닿는 말이다.
부모 두 분이 동시에 아픈 일은 남들의 집에도 흔한 일이다. 생색내어 힘들다고 할 일은 아니다. 엄마는 퇴원했지만 앞으로도 절대안정이 필요한 상태이고, 아버지는 또 다른 것이 발견되어 두 번의 수술을 연달아 받아야하게 되었다.
월요일에 이어 오늘도 아버지와 병원에 다녀왔다. 끝없이 막히는 도로를 지나 아버지를 다시 집에 모셔다드릴 때까지 긴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 다시 레슨을 위해 정체가 심한 도로 위에서 시간을 보냈다.

컴퓨터로 해야 할 일들을 작업실에서 마무리하고 싶었다. 집에 돌아와 다시 컴퓨터를 켜지 않고 잠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집에 돌아왔더니 이미 자정이 다 되었다.
그런데 지하주차장 입구에 주차한 자동차들이 가득 있었다. 겨우 주차장 안으로 들어갔더니 온 동네 자동차들이 모두 모인 것처럼 빈틈이 없었다. 이중 삼중으로 주차해놓은 자동차들 때문에 다시 빠져나올 때엔 후진을 해야했다. 거리가 먼 다른 동 앞의 야외주차장에 가봤더니 빈 자리가 많았다. 그곳에 주차를 할 때까지 나는 그 이유를 몰랐다.
내일의 날씨를 확인하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됐다. 경기 중부지역에 눈이 많이 내릴 것이고, 오후부터 더 추워질 것이라는 소식이었다. 그러니까 지하주차장에 멋대로 세워져있는 그 자동차들은 모두, 눈을 피하고 추위를 피하여 모여든 것들이었다.
이기적이고 염치없는 일이지만,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모두 다 하는 일이니까 죄의식도 없다. '다 그런 것 아니냐'라는 인식, 나는 아직도 여전히 역겹다. 타인의 불편에 신경쓰지 않는 태도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못배우겠다. 그냥 내가 좀 더 걷고, 내가 약간 손해를 보고 마는 것이 낫다.

겨울이니까 춥겠거니 하면 그만일 수준의 날씨라고 하여도, 해마다 추워지면 거리에 살고 있는 고양이들을 걱정한다. 지금 나와 함께 살고있는 고양이들 모두 길에서 만나 식구가 되었다. 독한 겨울이 지나가면 언제나 길고양이 몇은 더 이상 보이지 않고, 다른 몇은 병에 걸려있다. 다시 봄이 되면 살아남은 길고양이들은 소박한 일상의 연속을 잠시 누린다. 모든 생(生)이 아름다운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모든 삶이 고되다는 것은 이제 잘 알 것 같다.

긴 하루를 보내고 삶은 고구마 한 조각으로 허기를 채웠다. 식탁에 앉아 식은 커피를 마저 마신 후 올려다 보았더니 고양이 꼼이 냉장고 위에 올라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곁에 모여 앉아 서로를 쳐다보는 고양이들을 한 마리씩 쓰다듬어주고 나는 등받이가 있는 의자에 걸터 앉았다.

내일은 눈이 쌓인 길을 운전하는 것으로 시작할 것이다. 아주 느린 음악들을 미리 골라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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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7일 금요일

연주.


지난 화요일에는 작년 연말에 공연했던 곳에서 다시 연주를 했다. 평소보다 작은 무대, 객석이 가득찬 아담한 공간의 소리가 좋게 들렸다. 무대는 낮았고 관객의 얼굴 높이에 앰프와 캐비넷이 있었다. PA로 나가는 소리와 별개로, 무대 앞쪽의 사람들이 따뜻한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공연의 절반 이상은 엄지손가락으로 연주했다.

넓고 큰 공간에서 연주할 때의 즐거움도 있지만, 작은 무대에서의 공연은 언제나 좋다. 나는 좁고 작은 클럽에서 음악을 시작했다. 팔을 뻗으면 닿을만한 거리에 있는 관객들은 손가락이 줄에 닿는 감촉까지 느끼며 음악을 즐길 수 있다.
하고싶은 일을 직업으로 삼아 살고있는 일이 쉽지는 않다. 어깨는 늘 무겁다. 다만 악기를 챙겨 무대에서 내려올 때까지는 잠시 일상의 시름을 잊는다. 더 나이를 먹어도 내가 처음 그랬던 것처럼 작은 공간에서든 어디에서든 자주 연주를 하며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공연을 마치고 잠시 건물 밖으로 나왔을 때에 찬 바람이 모질게 불고있었다. 바람때문에 더 빨리 타버리고 있던 담배 한 개비가 아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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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3일 월요일

더블 앨범.


밴드의 십주년 기념음반이 나왔다.
비닐 레코드로, 두 장짜리 더블앨범이 되었다.
오랜만에 만져보는 LP였다. 다시 턴테이블을 사용할 계획이 없었었는데...


표지도 좋았지만 음반을 열었을 때에 시원하게 보이는 이 그림이 무척 좋았다. 모두 밴드의 리더님이 크레용으로 그리신 것.

부모 두 분의 병원일들로 시간을 내지 못하다가 드디어 자리를 잡고 들어봤다. 한 곡씩 지나갈 때마다 그것을 녹음하던 날의 풍경이 떠올랐다. 연습실에서의 소음도 기억나고 녹음을 마치고 밤중에 도로를 달려 돌아오던 일들도 생각이 났다.

음반을 다시 자켓에 끼워넣다가 문득, 여전히 그 동작이 손에 배어있다는게 신기했다. 아득히 어린 시절에 매일 했던 동작이었다. 자전거 타는 법을 잊지 않듯 손이 기억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레코드에 그 사이 달라붙은 고양이의 털을 후후 불어 떼어내고 음반을 비닐 포장에 고이 담아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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