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30일 월요일

소록도에서 공연했었다.


2012년 오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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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작은 일들을 꾸준하게 반복하는 것이 지속되면 규칙처럼 된다.

그런 것들이 언제나 일정할 수는 없고, 다양한 이유로 변해지거나 멈췄다가 다시 시작하게도 되지만, 이름을 붙이자면 그것이 일상의 리듬이랄까.

작은 비트가 어긋나면 당시에는 모르고 넘어갈 수 있어도 결국 리듬을 해치게 된다. 그러면 멈추고 곧 다시 시작해야 좋을 때가 많은 법이다.

잠시 멈추고 어서 또 시작하라는 뜻이었는지 마른 기침에 코감기가 시작되었다. 아직 몸살 기운이 없으니 이렇게 알아차렸을 때에 잘 관리를 하면 될 일이었는데... 잠자는 시간을 잠깐 조절하지 못한 탓에 좋지 않은 상태로 춘천에 도착했다.

리허설을 마치고 춘천 어린이회관이었던 이곳을 카메라를 들고 서성거렸다. 꼭 무엇을 찍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고, 붉은 벽돌로 이루어진 건물들이 평소에 자주 생각이 났어서 몇 장 메모리에 담았다. 비탈진 공터에서 어린이들이 몇 개의 공을 아무렇게나 차고 받으며 뛰고 있었다. '몹시 재미있다거나 즐거워서 공을 차는게 아니야, 이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일 뿐이야'라고 하는듯, 소리도 내지 않고 비탈을 오르내리며 뛰고 있었다.

리듬이니 일상이니 말을 해도, 고된 순간들은 매일 있다.

강가에 서서 잠깐 군복무 시절을 또 떠올렸다. 이 고을에서 군화를 신고 지냈던 그 당시의 나는 앞날을 두고 마련해둔 대책도 비결도 이렇다할 희망적인 계획도 없었다. 다만 복무를 마치면 어떻게 해서든 연주자가 되겠다는 생각만 하며 지냈었다.

작년 늦가을 이곳에서 녹음을 할 때에도 감기에 시달렸었다. 그때엔 너무 아팠어서 다른 생각을 깊이 할 수 없었다. 오늘은 그 정도로 아프지는 않으니까, 가벼운 반팔 셔츠를 입고 조금 더 홀가분하게 연주해보자고 생각했다.

스물 몇 살의 내가 꼭 해보고 싶었던 일들은 여러가지가 이루어졌다. 그 수준의 높낮음이나 성취한 것들이 뭐 얼마나 괜찮은 일인지는 역시 상대적인 일일 뿐이다. 군인이었던 내가 지금의 내 모습을 살짝 미리 볼 수 있었다면, 속사정은 모르고 그저 미리 기뻐하기만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 뭐 그 정도면 됐지.

매일 시간을 정해두고 산책을 했다는 분들은 대단히 부지런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겨우 십여분 어슬렁거리다가 이내 지루해져버려서, 주차해둔 자동차 뒷자리에 몸을 접어 넣고 삼십분이나 잠을 자고 일어났다.


피로하고 고단하고, 마음 가볍고 개운했던 춘천에서의 공연.

2015년 3월 29일 일요일

공연 사진.


춘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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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28일 토요일

밤샘.

어제 낮 레슨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잠을 푹 자버렸다.
그 바람에 밤중에 손님들이 찾아왔을 때에 졸립지 않았던게 나빴다. 친구들을 배웅한 뒤 몇 시간, 결국 밤을 새우고 동이 트는 것을 보았다.

오늘 저녁 삼월의 마지막 공연은 춘천에서.
이달엔 무대 위에서 늘 붉은 옷만 입었다. 똑같아 보이지만 나름 다 다른 옷, 다른 모자. 일부러 그랬던 것이 아니라 그냥 입을 것 궁리하기 싫어서 그랬던 것.

오늘 공연은 길텐데, 이제부터 몇 시간이라도 억지로 자둬야 한다. 몸에 덕지 덕지 네 장의 파스를 붙여놓았더니 누워서 뒤척일 때 마다 피부에 이물감이 느껴진다.

2015년 3월 25일 수요일

숨표.

집 앞에 강을 굽어보는 나무가 있는데, 이틀전 아침에 나가보니 빈 의자가 놓여있었다.
앉아보려다가, 임자가 있는 자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그냥 지나왔다.

자주 쉬면서, 숨도 고르면서 쉽게 갈 수도 있을텐데 평생을 그렇게 못한다. 할 수 없는 일이다.

벽화라니...

아침에 트윗에서 읽을 수 있었던 동피랑의 페인트칠 기사를, 열차에 오르자마자 찾아서 읽어봤다.
이렇게 해놓고 벽화마을이라고 부르다니, 너무 폭력적이다. 유구하다던 내 나라에는 키치만 남게 될건가.

2015년 3월 16일 월요일

한라봉.



한밤중에 방문했던 친구가 주머니에 넣어 왔던 한라봉 두 개.
나란히 테이블에 내려 놓으니 귀여워서 한 장 찍어뒀었다. 맛도 있었다.

이 한라봉은 나중에 찾아 읽어보니 일본에서 수십년 전에 서로 다른 품종을 교배시켜 만들었던 것이라고 했다. 90년 즈음에 한국에 도입되어 제주도의 특산물이 되었다니, 그런 것인줄은 몰랐다. 모르던 것을 알고 보면, 다르게 보인다.

멧돌 손잡이의 원래 이름이었다는 명사를 가지고도 다른 의미로 우리는 말하곤 한다. 뜻밖이거나 한심해서 기가 막힐 때에, 어처구니 없다라고 하는데... 점점 얼척없는 경우들을 겪어야 할 때가 잦아진다.

이달 초에 이명원 교수님의 글에 좋은 표현이 있었다.
"주관적 판단을 객관적 사실로 오인하고, 거기에 확신과 신념이 덧붙여지면 '관념의 만능', 그러니까 외부 현실과 무관하게 머릿속에 구성된 이데올로기적 현실을 명백한 사실로 역설하는 오류가 나타난다."

그 문장 뒤에 설명도 해주시고 있지만 보통 저런 오류라는 것은 타자들의 비판을 통해 수정되거나 조율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모르던 것을 알게 되어도 다르게 볼 줄 모르는 병은 생각보다 위중한 증상이어서 쉽게 나아지기 어렵다. 어찌할 도리가 없을 때엔 그냥 내버려둬야만 한다.


그날 밤, 친구가 가져다 준 한라봉을 한 개씩 나눠먹었다. 달고 맛있었다.
쓴 커피를 여러 잔 마시고 있던 중이었어서 그 기억이 더 달게 남았다.

2015년 3월 6일 금요일

고양이 세수.

아침 일찍 일어나 세수하는 중.
오늘은 다른 장소로 이동할 때 마다 그 시간이 빠듯하다.
한 군데도 늦지 않을 수 있을까.

2015년 3월 2일 월요일

Annie Lennox 의 노래를 듣고 있었다.



Annie Lennox 의 작년도 음반, Nostalgia 를 틀어 놓았다.
흘러간 가요들을 불러서 열 두 곡을 모아 놓은 앨범이다. 아름다운 노래이고 가수이다.
이 분은 54년생, 우리 나이로 예순 한 살.

그들은.. 나이 육십 넘었다고 전설이라고 부르거나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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