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27일 월요일

 


오전에 일찍 치과에 갔다. 거의 두 해에 걸쳐 치과 수술을 마무리했다. 지난 해에 이미 끝났었는데 턱에 심어놓은 티타늄 픽스쳐가 염증을 일으켜 흔들리고 있어서 그것을 다시 빼어내어야 했다. 그리고 다시 수술, 회복 후 오늘 마무리할 수 있었다.

아직 바람이 서늘한데 꽃들이 서둘러 피어버려서 동네엔 색과 향기가 흩날리고 있었다. 햇빛이 많은 길을 따라 걷다가 걸치고 나왔던 외투를 벗어 손에 들어야 했다. 

2023년 3월 26일 일요일

천안에서 공연


 일요일 정오, 복잡한 길을 여러개 지나서 경부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했을 때 반대 방향 차선은 이미 긴 정체가 시작되고 있었다. 한 시간 사십분 정도 운전하여 천안 예술의 전당에 도착했다. 개관한 지 십 년 되었다더니 과연 깨끗한 새 건물이었다. 건축음향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에서 지었다는 정도만 읽어 보고 갔던 것인데 건물도 멋있었고 무대 위에서 들리는 소리도 좋았다.


나는 그 사이 새로 맞춘 안경을 쓰고 있었다. 어지러운 것이 사라져서 리허설을 하고 공연을 할 때에 편했다. 시력이 너무 빠르게 더 나빠지고 있는 것 같은데 이 정도에서 그만 나빠지면 좋겠다. 안경을 사용하며 잘 적응하는 수 밖에 없다.

공연을 마치고 돌아올 때엔 고속도로에 차들이 많지 않았다. 노랫말이 길고 무거운 노래들을 들으며 운전했다. 운전하는 동안 한 두 시간 전에 무대 앞에서 음악소리에 호응하며 즐거워 해주던 관객들의 얼굴들이 드문 드문 지나갔다. 집에 돌아와서는 갑자기 졸음이 쏟아져 자정에 잠들었다.

2023년 3월 21일 화요일

산보

 


지난 주에 김규하와 만나기로 약속을 했었다. 서로 지하철을 타고 약속 장소로 가기로 했다. 집앞에서 경의중앙선을 타면 중간에 갈아타지 않고 만날 수 있는 장소라며 김규하가 위치를 정해줬다. 조금 일찍 집에서 나왔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고 여유있게 걸었다. Charlie Haden의 앨범 Nocturne이 끝날 무렵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십여분 후에 친구가 나타났다.

조용하고 붐비지 않는 동네에서 나는 지도를 검색하여 미리 찾아두었던 카페에 함께 가자고 그에게 말했다. 익숙하지 않은 마을이어서 검색을 해보았던 것인데, 좋은 스피커와 앰프가 있고 커피가 훌륭하다고, '리뷰'에 적혀있었다. 그것이 방문객의 후기인지 홍보삼아 써둔 글인지는 모르겠으나, 역시 그런 류의 정보는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탄노이 Cheviot 스피커와 Bose 서브들이 있었지만 음질은 나빴다. 선곡은 끔찍했다. 커피는, 다 먹지 못하고 남겼다.

오랜만에 만나 두런두런 대화를 잇는 중에, 그도 나도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이라 조악한 음악 소리에 점점 짜증이 나고 있었다. 차라리 음악을 틀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찾아와 커피 한 잔을 사고 너무 오래 머물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러는 것인가 하는 의심도 해보았다.

커피집에서 나와 지하철역까지 다시 걷고, 지하철역에 있는 간이 커피집에서 핫쵸콜렛을 사서 선채로 한 잔씩 더 마셨다. 다음에 또 보자며 인사를 하고 헤어져 서로 반대 방향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거리에 개나리들이 보이고 오고 가는 사람들의 옷들에 색깔이 많아졌다. 봄이 지나가고 있는 것을 구경하며, 급한 마음 없이 몇 시간 동안 산보를 다녀온 기분이 들었다.


2023년 3월 14일 화요일

전주에서 공연, 장례식

 


금요일 밤에, 아내의 부친이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갑자기 황망하게 떠나신 지 네 해만의 일이다. 장례식장으로 가서 준비를 하고 고인을 안치해 놓았다. 토요일 아침에 공연을 하기 위해 전주에 갔다. 잠이 부족했다. 밴드 멤버들과 함께 승합차를 타고 갔던 덕분에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얕은 잠을 잘 수 있었다.

잠을 충분히 잘 수 없었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은데, 하루 종일 눈앞이 흐릿하게 보여서 리허설을 할 때부터 힘들어했다. 무대 위에서는 어지러워서 중심을 잘 잡고 서있기 위해 힘을 주고 있어야 했다. 다리에는 힘을 주고, 어깨와 팔에는 힘을 빼고... 라고 속으로 계속 말하고 있었다. 연주는 잘 해내야 하기 때문이었다. 누군가 돌아가셨을 때에 연주하는 일은 낯설지 않다. 몇 번이나 경험 했던 일이기도 했고 특별한 경우도 아니다. 할 일은 해야 하는 것일 뿐. 다만 혼자서 하루 동안 장례식장을 지키고 있었을 아내가 힘들어했을 것이 걱정되었다.

자정을 넘겨 차를 세워둔 곳에서 멤버들과 인사를 하고, 자동차 시동을 걸었다. 외부순환도로를 달려 새벽 한 시 반 쯤에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아내가 말하길 조금 전에 밴드 리더님이 혼자 다녀가셨다고 했다. 낮에 공연장 대기실에서 그는 나에게 "서울에 도착하는대로 갈게"라고 하셨었다. 고단하고 피곤하셨을텐데, 죄송하고 감사했다.



다음 날, 장례식장 주차장 담벼락에 기대어 종이컵에 담은 커피를 연거푸 마시며 바람을 쐬었다. 벽제 화장터에 자리가 없어서 하루를 더 보내고, 월요일 아침 일찍 발인을 했다. 장모님이 모셔져 있는 곳에 고인을 모셔두고 다시 장례식장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아내와 함께 집에 돌아왔다.

오후부터 누워서 깊이 잠들었다. 긴 시간을 자고 새벽에 일어나서 소음이 나지 않도록 손으로 원두를 갈아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책상 앞에 앉아있는 중이다.

2023년 3월 5일 일요일

워크맨

 

오래된 160기가 아이팟 클래식은 여전히 잘 작동하고 있었다.

이미 제대로 지원하지 않는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해가면서 나는 아이팟으로 음악을 듣고 있었다. 애플뮤직이 시작한 뒤에는 아이폰과 아이팟을 번갈아 쓰고 있었다. 애플뮤직이 무손실 음원을 지원한지는 두 해도 되지 않았지만 아이팟은 처음부터 애플 losless 파일, AIFF 파일을 재생할 수 있었다. 돌아다니며 좋은 음질로 음악을 듣기엔 여전히 최고였다. 아이폰은 다른 할 일이 많아서 음악을 듣는 데까지 쓰고 있으면 쉽게 배터리가 닳았다. 그러면 종일 충전하느라 바빠야 했던 것이다.

애플은 지난 해 아이팟 제품군의 마지막 모델마저 단종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뭐, 놀랍지 않은 선언이었다. 나처럼 작은 디스플레이와 휠 컨트롤만 있는 아이팟 클래식이 계속 나와주길 바라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겠지만, 시대가 변했고 애플도 변했다. 음악만 들을 수 있는 아이팟 클래식의 명맥을 계속 이어가면 어때요, 라는 사람들이 애플 안에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무슨 소리야, 에어팟을 팔고 애플뮤직 구독료를 받아내야지", 라는 사람들이 아마 이겼던 것이리라.

고민하고 망설이다가, 나는 가장 최근에 나온 소니 워크맨을 샀다. 워크맨이라고 불러도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처음 가져본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는 소니 WA-55였다. 열세 살 이후 이십여년 동안 소니, 산요, 아이오와 플레이어들을 사느라 남대문시장과 세운상가를 쏘다녔다. 맨 마지막 것이 산요였는지 샤프였는지 기억이 흐릿하다. 어쨌든 소니에서는 오랜 전통을 이어 '워크맨'이라고 광고하고 있으니까 새 기기도 그렇게 불러주기로 했다.

아이팟으로 계속 버텨보고 싶었으나 간단한 동기화를 하는 데 언제나 애를 먹였다. 30핀 케이블을 바꿔보아도 컴퓨터와 제대로 연결이 되지 않았다. 아이팟에 담겨있는 음악들은 이제 그안에 그대로 남아서 어느 쪽으로도 옮겨지지 못하고 화석처럼 굳어지고 있다.

재작년 애플뮤직에서 고해상도 무손실 음원을 제공하기로 한 뒤에는 점점 아이폰에 다운로드 하여 음악을 듣는 일이 더 많아졌다. 맥에서 파일을 다운로드 하여도 어차피 애플뮤직에서 받은 음원은 아이팟에 담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벌써 육년 넘게 새로 나오는 음악들은 아이폰으로만 듣고 있고, 스트리밍 서비스를 사용하면서 시디를 구입하여 아이팟에 담기 위해 리핑하는 일은 거의 해보지 않았다.

애플뮤직은 안드로이드에서도 쓸 수 있으니까 용량이 큰 외장 메모리에 가지고 있는 음악들을 모두 담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에 새해에 이 기기가 나올 것이라는 기사를 읽었었다. 발매를 시작한 후 매뉴얼을 다운로드 하여 읽어보았더니 이 기기는 지금 내가 필요로 하는 용도에 딱 맞는 것이었다. 구실을 만들었으니, 구입하기로 했다.

 
우선 512기가짜리 마이크로SD 안에 컴퓨터 하드 디스크에 있는 음악들을 모두 담았다. 그것을 마치는 데 열 여섯 시간이 걸렸다. 아이팟을 자주 동기화했어야 했던 이유는 용량이 모자라 이것을 지워 공간을 만든 뒤 저것을 담는 식으로 해왔기 때문이었다. 이제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
 
소니 플레이어는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로 움직이도록 되어 있다. 와이파이와 블루투스는 가능하지만 전화기가 아니니까 통신 데이터는 쓸 수 없다. 나는 애플뮤직 앱을 설치하고 이동 중에는 아이폰에서 개인 핫스팟을 켜서 테더링하여 쓰기로 했다. 통신 데이터에서도 고해상도 무손실 음원을 스트리밍으로 들을 수 있지만, 데이터를 많이 소모한다. 가지고 다니며 듣고 싶은 음악은 미리 다운로드 해두는 것이 좋다. 나는 아이폰에서 설정해둔 것과 같이 통신 데이터에서는 24비트/48KHz lossless 파일까지 들을 수 있도록 해뒀다. 와이파이로 스트리밍을 하거나 다운로드 할 때엔 24비트/192KHz 음원을 들을 수 있다. 여기까지는 아이폰과 마찬가지이지만 이 기기는 음악 재생만을 위한 것이어서, 더 좋은 음질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고해상도 스트리밍' 기능을 켜놓았을 때 32비트/192KHz 의 품질로 음악을 들을 수 있다고 했는데, 애플뮤직에서는 지원하지 않는다.)

음악만 듣기 위한 기기가 필요했던 것이므로, 소니 뮤직플레이어와 애플뮤직 외에 사용할 일이 없는 다른 앱들은 지웠다. 그리고 며칠에 걸쳐 오래 전에 저장했던 낮은 비트율의 파일들을 lossless 파일로 바꾸는 작업을 틈틈이 하고 있는 중이다. 저장 공간이 충분해졌으니 AAC로 리핑해뒀던 것들을 지우며 시디를 찾아내어 먼지를 털고 한 장씩 새로 하드디스크에 옮기고 있다. 그것을 다시 소니 플레이어에 넣은 다음 새 시디를 샀을 때처럼 차분하게 들어보고 있다.

소니 워크맨으로 시작하여 카세트 플레이어들로 이십년, 아이팟으로 이십년, 이제 새로 소니 DAP를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2023년 3월 3일 금요일

TV Show


일부러 그런 적은 없는데, 이 장소에 오는 일이 생길 때마다 전날 잠을 못 잔다. 지난 번엔 알람을 무시하고 늦잠을 자던 나를 도왔던 전등이 이번엔 새벽 세 시에 저절로 켜졌다. 스위치를 교환해버려야 할 것 같다. 새벽에 깨어 아침까지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티브이 쇼라는 것을 하는 날엔 언제나 피하고 싶은 일들이 순서대로 기다리고 있다. 항상 급하고 분주하고 정신 없는 리허설. 분장. 거기에다 기자들이 초 단위로 사진을 찍어 송고하는 데에 동원되어 '손가락 하트 해주세요'라는 요청을 받는 등의 일들. 어떤 사람들에겐 아무 것도 아닌 일이 나에겐 힘들고 고되다.

오늘 좋았던 것은 녹화가 아니라 생방송이라는 것이었다. 연주하는 것이야 늘 하는 일이니까 편했다. 힘든 일을 한 것은 하나도 없었는데 집에 돌아와 몸을 씻고는 그대로 잠들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