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29일 토요일

고양이 행렬.


아내가 만든 고양이 인형들.
고양이 꼼은 인형을 보고 있었다.
자꾸 사진을 찍으니 싫어했다.

고양이 꼼이 재미있어할 줄 알았는데, 잘못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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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23일 일요일

오래된 아이팟.


내 오래된 아이팟. 저 모델이 시판되기 시작했을 때에 구입했는데 벌써 4년째가 되었다.
언제나 이 녀석과 함께 외출했으므로 습관적으로 손에 들고 집을 나선다. 몇 주 전에는 똑같은 모델의 아내의 아이팟을 내것으로 착각하고 들고 나갔다가 운전하는 내내 쿠와타 케이스케의 노래를 들어야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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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리퍼.


요즘 집안에서 누군가에 의해 제작되어지고 있는 고양이 모양을 붙인 슬리퍼. 아직 미완성.
슬리퍼 한 켤레가 완성될 즈음이면 다시 철사와 양털을 모아 인형 제작을 시작하고, 인형이 한 개 또 생겼구나라고 생각되어지면 이번엔 다른 사이즈의 슬리퍼가 만들어지기 시작하고...
아내의 가내수공업이 한창인 마룻바닥에는 고양이들이 봄을 맞아 뒹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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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방.


삼월의 첫째날, 시골에 내려가서도 여전히 바쁘신 어느 대통령의 지난 삼일절 기념사도 생각나고해서(...이건 조금은 거짓말.) 그가 자전거를 타고 있는 그림을 컴퓨터의 배경으로 삼았었다.

지난 밤에 우연히 화가의 그림을 보게 되어 배경화면을 그가 그린 그의 방으로 바꿔놓았다.
빈센트 반 고호의 그림을 처음 구경했던 기억은 꽤 선명하게 머리속에 남아있다.
아주 어릴적에 이문동에 살고 계셨던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 부모님과 함께 들렀다가 늘 친하게 지냈던 막내삼촌의 방에서 책을 구경하며 놀고 있었다. 지금은 전업작가인 막내삼촌은 자주 나에게 책을 소개해주고 읽게 해주고 선물해줬었다. 대부분은 당시엔 몹시 재미없어했다가 몇 년 후에 손에 들어온후 처음으로 책장을 펼치게 되곤 했는데, 거의 모두 시작하면 밤새워 읽으며 재미있어했다.
젊은 막내삼촌의 방에서는 항상 퀘퀘한 냄새와 방안에 가득 차있는 책 냄새가 섞여있었다. 나는 그 냄새를 좋아했었다.

그 방은 어두운 편이었지만 넓은 창문이 있었다. 방이 어두웠기때문에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은 유난히 밝게 느껴졌었다. 그 방에서 삼촌은 불쑥 두꺼운 그림책을 펼쳐 보여줬었다. 그 그림은 고호의 감자를 먹는 사람들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기억할 수 없지만, 나는 그 그림을 한참 동안 구경했다. 미학적인 관점은 전혀 없었을 것이었고, 그림 속의 사람들이 어떤 시대의 어떤 이들이었는지에 대해서도 (곁에서 삼촌이 설명해줬다고 해도) 별로 알아듣지 못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그림을 보고 어느 정도 충격을 받았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고호의 방을 보았었다. (그 책에는 한자로 고호의 침실이라고 써놓았었다.)

여기서부터는 기억이 아니고 지금에 와서 재편집하고 있는 창작이지만, 막내삼촌은 나에게 해바라기도 보여줬고 별밤도 보여줬고 농부와 구두도 보여줬을 것이었다. 아마 그랬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내 기억에 너무 강하게 남아있던 그림은 그렇게 두 개였다. 나중에 나에게도 그 그림이 담긴 책이 생겼는데, 이상하게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삼촌의 방에서 펼쳐보았던 그 그림처럼 느껴지지 않았었다. 무슨 원본을 감상했던 것도 아니고, 생전 알지도 못하던 화가의 그림을 컬러 인쇄술 덕분에 겨우 구경했었을 뿐이었는데 내가 가진 책의 그림은 어쩐지 가짜처럼 여겨졌다. 더 새 책이고, 인쇄도 잘 되어있었을테고, 색감도 나름 좋았을텐데도 그랬었다.

그리고 이제는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돌아가셔서 계시지 않고, 두 따님이 훌쩍 자라 결혼을 할 나이가 되어버린 막내삼촌의 방도 더 이상 그 동네에는 없다. 이제는 아무리 나 혼자 기억을 조작하여 품게된 환상이라고 해도 고호의 방을 처음 구경했던 그 느낌을 다시는 가져볼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언제나 친절하게 해주셨던 동네 책방에 들러서 다른 책에 실린 그림을 보았을 때에도 그 느낌은 없었다. 인터넷 시절이 되어서 그림 파일들을 잔뜩 불러내어 화면 가득 띄워놓아보아도 그 느낌은 이제 없다. 물감이라든가 잘 마른 침구에서 배어나올법한 퀘퀘한 냄새가 날 것 같았던 그림.
지금은 고작 컴퓨터의 배경화면이 되어버린 고호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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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와 쿠로.


순이는 쿠로가 움직이는 것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문득 자신과 움직임이 다른 쿠로의 모습이 낯설었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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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21일 금요일

그림 옆의 고양이.


아내의 화실 (사실... 화실 같은 것은 없지만) 에서 까만 고양이 녀석이 그림 앞에 앉아 있었다.
아내가 그려놓은 고양이 그림은 집안 여기저기에 여러 장이 있다.

까만 고양이 쿠로는 어쩌다가 급한 사정이 있어서 아내 친구의 부탁으로 맡게 되었다.
그 후로 7개월이나 함께 살았다. 이제 그쪽의 일이 잘 정리가 되어 다음 주말이면 까만 고양이는 본래의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제 주인에게 돌아가는 것을 축하해주고 건강하고 재미있게 잘 지내줬어서 고맙다고 쓰다듬어줬다. 조금은 서운하기도 했다.

더 정들면 안되니까, 까만 고양이 놈이 돌아갈 때까지 절대로 더 잘해주지 말아야겠다. 조그만 것이라도 흠을 잡아 혼을 내고 윽박지르고 그래야겠다, 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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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16일 일요일

봄이 온다.


두꺼운 외투를 입고 집을 나서면 조금 더운듯 하다가도 밤중이 되면 여전히 춥고 쌀쌀하다. 서른 번이 훨씬 넘게 계절을 보내왔으므로 얄미운 초봄 추위에 농락당하지 않는다. 절대로 감기에 걸리지 않을 것이다.

석 달 정도, 공연을 쉬었다. 물론 쬐그만 무대는 있었지만 공연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올해의 첫 공연은 교육방송의 음악프로그램 녹화로 시작하게 되었다.
결국 겨우내 하고 싶었던 클럽 공연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오래 전에 분실한 뒤에 다시 구입할 기회가 없었던 Steve Kuhn의 앨범을 구하게 되어서, 조금 전 앰프를 켜고 틀어두었다. 확 하고 그리움이 생겼다. 에디 고메즈의 베이스도 정겹고 음질이 좋지 않았던 카세트 테이프로 여러번 들었던 넘버들은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가왔다. 팻 메스니의 새 트리오 음반도 듣고 있다. 클럽에서 스탠다드를 연주하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 올해에는 뭔가 기회가 생길지도 모른다.

몇 달을 각자의 일로 바쁘게 지냈을 멤버들도 다시 모여 연습을 시작하게 될텐데, 공연이 시작되고 연습이 이어지게 되면 또 분명히 다른 일은 할 겨를이 없을 것이다. 그저 매일 연습하고 공연하고 자주 녹음하고 그러면 좋겠다.

아프던 왼손은 지난번에 침을 맞은 이후 깔끔하게 나았다. 이번엔 오른손의 집게 손가락이 말썽이다. 통증은 없는데 자주 붓고 움직이기 거북할 때가 있다. 마디를 꺾으면 뭔가 뻑뻑하다. 이런 것은 무슨 운동으로 치유가 가능한 것인지, 김규하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봐야겠다.

작년 말에 잔뜩 베이스줄을 사뒀는데 벌써 다 쓰고 한 세트 남았다. 우리나라는 올 가을이 오기 전에 몹시 힘든 상태가 될 것 같다. 컴퓨터도 작동하는데에 열흘 넘게 걸리는 사람들이 청와대에 들어간 이후 온 국민이 신나는 열차를 타고 추락 준비를 하는 것 같다. 돈을 아껴야할텐데 연주 핑계 음악 핑계로 이것 저것 사고 싶은 것들만 생각난다. 책가게에도 가고 싶고 음반가게에도 가고 싶고. 악기가게에도...

음악 일을 하는 주제에 뭐 그렇게 정치에 관심을 기울이느냐고, 언젠가 선배 한 사람이 꾸짖듯이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십여년을 빨갱이 타령을 하셨던 그 분은 지난 선거 때에 투표를 안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이제 기타줄값이 오른다거나 자신의 밥벌이가 시원치않게 된다거나 하면 그때는 누구를 욕을 하실지 궁금하다. 여전히 퇴임한 분의 탓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존 스코필드와 몇 몇의 재즈 뮤지션들이 생활이 어려워 의료보험 조차 가지지 못한 연주자들을 위한 자선공연을 벌였다는 기사를 읽었다. 사실은 나도 여전히 넉넉한 생활은 꿈꾸지 못하는 입장이지만, 사회가 더 어려워진다면 누군가들을 돕는 일이라도 나서야 옳지 않을까. 저녁 무렵에는 부쩍 어두운 표정의 행인들이 눈에 많이 들어온다.


아내는 털실 미니추어 베이스가 덜 완성되었다고 말하면서 여전히 펠트에 관련된 온갖 정보를 뒤지고 있는 중이다. 하여튼 대단한 몰입이다. 빠듯한 살림이어서 그다지 여유롭지 않은 탓에 자꾸 집안에서의 소일거리만 찾게 되는 것은 아닐까. 혼자 뜨끔해하며 미안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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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15일 토요일

내비게이션.



이것은 map이라고나 할까, 연주할 음악의 순서를 학생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적었던 것이었다.

이미 자세하게 그려진 악보를 나눠줬었지만 어떤 학생에게는 여전히 알쏭달쏭 복잡하여 간단한 마디 마디들이 모두 혼동이 되고 있던 중이었다. 나는 모두를 불러 앉혀놓고 그 앞에서 커다랗게 그렸었다. 공연을 바로 앞둔 즈음 이런 정도의 대본읽기, 혹은 작전회의를 했다고 하면 공연날에는 아무 문제없이 연주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람은 다양하다. 공연 직전 한 친구는 나에게 '아무 것도 기억이 안난다'라며 초조해했었다. 그럴 수 있다. 음악을 모두 외고 있다고 해도 기억나지 않을 수 있다. 걱정하지 말고 어떻게든 될테니 무대에 나가서 잘해보렴, 이라고 해줬다. 그 학생은 썩 잘 해냈었다.
모든 것을 자세하게도 기억하고 있었던 한 학생은 긴장했던 탓이었는지 다른 사람들은 아직 연주중이었는데 그만 저 혼자 음악을 끝내고 말았다. 사소한 실수, 녹화된 영상을 다시 보니 그런 실수가 오히려 재미있었다.

나는 이 사람들중 누군가들이 정말로 음악 연주인이 되어서, 언젠가 어떤 무대에서 우연히 마주치거나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고작 몇 분짜리의 음악 순서는 지도를 그리듯 일러줄 수 있지만 어떻게 해야 미래를 그려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주거나 도울 능력이 나에겐 없다.
그저 소중한 것을 지켜가며 즐겁게 열심히 살게 되길 바라고 있다. 좋은 책, 좋은 음악, 좋은 친구들이 인생의 map이 되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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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14일 금요일

고양이와 아내의 인형들.


아내가 만든 인형들이 여러개가 되었다.
함께 살고 있는 우리 고양이들을 모델로 하여 태어난 인형들도 있다.
아내는 모델이 되어줬던 우리집 고양이들과 새로 만든 인형들을 나란히 앉혀두고 사진을 찍어뒀다.

반응이 각자 달랐던 것이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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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11일 화요일

취미.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 그것을 취미趣味 라고 한다... 라고 국어사전에 적혀있다. 말의 의미를 처음부터 이상하게 정의해둔 덕분에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생각도 이상하게 되어버렸다고 생각한다. 영어사전에 적혀있는 뜻풀이가 나는 더 바른 의미라고 여겨진다. 영영사전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즐거움을 위해 여가 시간에 규칙적으로 (regularly) 하는 활동.' regularly를 규칙적으로...라고 해석할 수 밖에 없는가의 문제는 조금 복잡하겠지만. (그래도 '정연하게'라고 하는 것 보다는 낫다.)

취미라는 것은 결국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짧게 말하면 될 일이다.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전문적일 필요는 없다라는 것이 아니라, 실력과 질을 재어보기 보다는 정말 즐거워서 열중할 수 있는 어떤 일이라고 생각되어져야 맞지 않을까. 그런 생각의 시작이 필요하다.

지난 주에는 '취미일뿐인데 이런 것까지 꼭 해야하나요'라고 말했던 학생 하나를 붙잡아 앉혀두고 으르렁거리며 한참 동안 혼줄을 내었다. 태만, 무책임, 그런 주제에 이죽거리기, 거기에다 돼먹지 않은 삶의 태도를 일찍부터 체득하고 있었다. 결국 그 녀석은 학원을 그만뒀다. (그 이유가 나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마땅하고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꽤 오래 부모의 돈을 받아 음악학원을 다녔던 모양이었는데 그 학생의 본래의 취미란 시간죽이기였을 뿐이었으므로, 아마도 다른 어떤 곳에 또 '취미'를 붙여 다니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취미라는 것이 결과와 질에 책임지지 않아도 좋다는 의미로만 통용된다면 그런 사회는 저급해지기 쉽다. 좋아서 하는 일조차 저급할진대 밥벌이를 위해서 하는 일은 보다 더 나을 것인가를 생각해봐주면 좋겠다. 개념과 가치가 엉망인 탓에 생계를 위해서 하는 일 조차 취미보다 못한 사람들이 수두룩하지 않은가. 하는 일의 결과에 대한 책임에 있어서 보다 가볍고 한 걸음 물러날 수는 있다고 하더라도, 좋아서 즐기며 하는 일이므로 대충, 대강이 되어도 괜찮다고 여겨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엇이 전문專門 이라는 것일까. 돈을 벌어오는 일이 전문인가, 그것은 그저 생업일 뿐이다. 정말 좋아서 열중할 수 있지 않으면 전문적이라는 것도 되어질 수 없는 것 아닌가.

깊이 관련있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곳의 언론 - 기자라는 분들은 혹시 취미로 기자생활을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식으로 본업에 종사하고 있어도 월급을 받아 생활할 수 있는 것이냐고 묻고 싶다. 물론 국어사전의 의미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어서 몹시 저질이다. 여기는 대체로 저급한 취미의 사회이다. 그것이 지금 우리나라.


2008년 3월 8일 토요일

아내가 뭔가 만든다.



아내는 어느날부터 갑자기 털실, 털실, 실이 필요하다...라며 혼잣말을 했다.
며칠 후에는 실과 바늘이 배달되더니 하얀 고양이를 한 마리 만들었다.
그리고 이어서 집안에 있는 고양이들을 모델로 하여 차례대로 인형들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엔 자루에 담긴 털실이 배달되어오더니, 샴 고양이 순이의 인형과 얼굴도 한 개씩 생겼다. 자석을 넣어서 냉장고 따위에 붙일 수 있도록 만든 모양이다.

그리고 오늘은 또 이런 것을 만들고 있었나보다. 아직은 미완성.
내 악기의 미니어처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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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6일 목요일

음악 듣기.

며칠 만에 다시 찾은 경천형님의 가게에서 리차드 보나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Ekwa Mato라는 곡인데, 순간 몇 년 전 살인적으로 더웠던 그 해의 여름날이 생각났다. 아스팔트 위에 온몸이 녹아내리는듯 하여 발을 끌면 뒤꿈치가 조금씩 땅에 달라붙는 것 같았던 여름이었다. 좁은 집에 돌아와 고양이 순이를 에어콘 곁에 앉히고 찬 물을 퍼마시며 그 음반을 들었었다. 
경천 형은, 몇 년 전 부터 내가 그렇게 자주 보나의 음악을 이야기했었는데 이제서야 (뒤늦게) 하루에도 몇 번씩 듣고 계신다고 했다. 기억을 못하시고 나에게 신이 나서 설명하고 알려주려고 했다. 카메룬이 어떻고 아프리카의 음계가 어떻고... 나는 어휴, 그거 다 제가 말씀드렸던 거잖아요, 라고 했다.

꼭 일 년 전에 The Bad Plus의 Film을 듣고 깜짝 놀라서 하루 종일 들으며 흥얼거렸었다. 그 곡을 당시에는 얼굴도 몰랐던 아내에게 보내주고는 좋은 곡 아니냐고 감상을 강요했었다. 지하 주차장에서 자동차의 시동을 걸고 일터로 출발했을 때에 랜덤으로 설정해둔 아이팟에서 이 곡이 흘러나왔다. 그 음악 때문에 컴퓨터 화면을 사이에 두고 먼 곳에서 서로 대화를 나눴던 시절이 생각났다. 음악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들린 후에는 누구와도 똑같지 않은 모양으로 기억속에 심어지는가보다.

경천 형님과 블루스를 듣고, 버디 가이의 쇼를 구경하고, 모던 재즈 쿼텟을 들었다. 젊은 잭 부르스와 에릭 클랩튼을 들었고, 한 마디 두 마디씩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허비행콕이 상을 받은 음반의 곡이 끝나갈 무렵 맥주병은 모두 비워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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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기.


졸음이 오길래 시계를 보았더니 벌써 아침이었다. 그런데 왜 바깥은 아직 어두운가 했더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일기예보대로 눈이 오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 때문에 방금 전 하려던 일을 또 잊어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무엇이든 잊어먹어서야 정말 큰일이다.

점점 더 두꺼워지는 수첩으로도 해결이 되지 않는다면 나는 결국 녹음기를 들고 다녀야겠다.
카메라를 연결해야지, 라고 생각하며 연결케이블을 쥐고 외장하드 디스크에 꽂는다던가 '물을 한 잔 마셔야겠다'라고 혼잣말을 하며 걸어가서는 칫솔을 들고 양치질을 시작한다던가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상 속의 멍청함이 꼭 나쁜 작용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별로 마주치기 싫은 사람을 불쑥 만났을때 잘 기억이 안나서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고 돌아선다던가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도저히 표정을 숨기는 재주가 없는 탓에 좋고 싫은 기색이 얼굴에 그대로 나타나기 때문에, 생각없이 인사를 하고 돌아서서야 아차, 그 사람이었군, 하더라도 뭐 웃고 미소지었던 것이 다행 아닌가, 하였다. 상대방으로서는 과연 이상한 녀석이로군, 하겠지만.

녹음기를 들고 다니는 것이 낫겠다라고 하는 아이디어도 조금 더 생각해보니 효율적이지 않을 것 같다. 결국 녹음된 내용을 정리하기 위해 또 수첩이 필요할테고, 그렇게 되어지면 수첩을 손에 들고 내가 뭘 쓰려고 했더라... 하고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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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5일 수요일

모두 웃어보였다.

해가 바뀐 후 처음 한 자리에 멤버들이 모였다.
불과 한 두 달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세상의 모양도 변했다.
여름까지의 일정을 점검도 했고, 무엇보다도 푸른 하늘에서 눈송이 한 개가 툭 떨어지듯, 갑자기 아무렇지도 않게 던져진 결혼발표도 있었다.

돌아가신 막내 형님의 이야기도 커피콩을 가는 소리도 테이블 위에 올려진 연주하는 사람들의 손가락들도 모두 잔잔한 현실세계의 한 장면일 뿐.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을 평화로운 공기 속에 앉아 있었다.
사진 한 장 찍어둘까요, 라며 매니저님에게 카메라를 건네어 부탁을 드렸다.
조용한 실내에 문득 아저씨의 느릿한 한 마디.

'여어~ 우리, 웃으며 찍자.'
그래서 모두 소리없이 웃어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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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든 어린이.


'들어봐, 들어봐' 라고 말로는 하지 않으셨지만.
맛있는 음식냄새처럼 방안이 기타소리로 채워졌었다.
그리고 이 분은 잠시 어린이가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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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3일 월요일

딴청부리는 순이.


심드렁, 관심없는 척, 못 들은체...하고 있는 순이와 곁에 놓여진 인형이 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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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클론들.


아내가 뚝딱 만들어 놓은 고양이 인형들.
집안을 거닐고 있는 고양이들의 클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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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 인형.



아내가 털실을 가지고 일주일 넘게 바늘로 쿡쿡 찌르더니 네 마리의 고양이 인형들을 만들었다. 신기했다.

샴 고양이 순이의 인형은 얼핏 순이의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했다.
나는 좋아하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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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리스트 경천 형님.


인사라도 드려야겠다고, 지나는 길에 경천형님에게 들렀다가 사진을 찍어왔다.

'형님, 사진 한 장 찍을게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진 찍히기 좋은 각도'로 자세를 잡고 미소를 살짝 지어보이셨다.
어떻게 그렇게 언제나 촬영되어질 준비가 되어있는 분.

그런 이유로 고양이 사진만 가득해진 내 홈페이지에 경천 형님의 사진은 한 해에 한 두 장씩 꼭 올려져있다.
짧은 시간만 뵙고 다른 곳으로 가야했지만 형님의 연주를 또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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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1일 토요일

고양이 꼼.


고양이 꼬맹이가 건강하게 잘도 자라고 있어서 기분 좋다.
그런데 슬슬... 한참을 더 자라고 클 것 같은 불길한 예감도 든다.
제일 작은 녀석이어서 꼬맹아, 꼬맹아, 라고 불렀던 것이었는데 점점 제일 큰 고양이가 되어가고 있다.
이미 조금씩 무거워지고 있는, 꼬맹이 고양이.
결국 이름은 꼬맹이가 되어버렸다.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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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실 상자 안의 고양이들.


얘들은 사소한 것에 집착하며 다투기도 한다.
단지 먼저 들어가 앉아있었을 뿐이면서, 꼬마 고양이가 상자 속을 넘보는 것까지 뭐라고 나무라고 있는 샴 고양이 순이.
하얀 꼬맹이 녀석은 상자 안에 너무 너무 너무 들어가보고 싶었나보다.
우는 얼굴을 하고 떼를 쓰다가 순이가 비켜주자 얼른 들어가 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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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실을 보내준 사람은 fatcat 이었다. 고마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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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뭉치 속의 순이.


순이가 실뭉치가 담긴 상자 안에 들어가 앉더니 정말 좋아하고 있었다.
화장실도 참으며 나가지 않고 있었다.
아마 꼬맹이 고양이에게 상자를 빼앗기기 싫어서 버티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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