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30일 수요일

Deep Purple, Whoosh!


오래 전에 하드록 음악이 팝 음악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빌보드라던가 라디오의 순위 차트에 하드록 밴드들의 이름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시대는 이제 흘러가버렸다.

나는 그 시대에 나의 어린 시절을 보냈던 것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수 많은 록커들의 이름과 음악들은 레코드의 포장을 뜯던 소리, 새 카세트 테이프에서 나는 플라스틱 냄새와 함께 여전히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올해에 옛 하드록 뮤지션들이 발매한 음반들 중, 나는 여름에 나온 Deep Purple의 앨범 Whoosh!가 좋았다. 이미 오월에 나는 그분들이 새 앨범에 실릴 곡을 합주하고 있는 영상을 보았었다. 그 영상에는 이언 길런의 보컬은 없었기 때문에 아직 어떤 노래가 나올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당시 나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혼란해지고 있던 학교의 일정과 함께, 밴드의 공연 마저도 하나 둘 취소되고 있는 상황 때문에 점점 기운이 빠지고 있었다. 1954년생인 기타리스트 스티브 모스를 제외하고 모두 일흔이 넘은 멤버들의 합주 영상을 몇 번씩 다시 보면서 나는 합주실과 공연장의 무대를 그리워했었나 보다.

딥 퍼플의 새 앨범 Whoosh!를 틀어놓고 느꼈던 기분은 반갑다는 것이었다. 그 밴드의 옛날 느낌이 그 음악에 담겨 있었다. 좋은 음반을 많이 만든 캐나다인 프로듀서가 영국인 노인 음악인들을 미국의 내쉬빌로 불러 녹음했다.* 스티브 모스와 돈 에이리의 사운드가 각각 왼쪽과 오른쪽으로 분리되어 있는 것도 정겨웠다. 50여년 동안 활동해온 베테랑들이 자신들의 연주를 즐기며 만들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는 비닐 포장을 뜯거나 카세트 테이프를 다시 뒤집어 재생하는 일은 없지만, 이 앨범은 나의 어릴 적, 하드록이 팝이었던 시절의 향수를 느끼게 해줬다.

첫 곡 Throw My Bones는 '이언 길런이 보컬인 딥 퍼플 노래'의 전형 같았다. 네 번째 곡 Nothing At All은 재미있었다. 스티브 모스는 정말 다양한 것을 잘 하는 기타리스트라고 생각했다. 그 다음 곡 No Need to Shout의 인트로는 오르간 사운드였는데, 그것을 듣는 누구라도 고인이 된 존 로드를 추억할 수 있었을 것 같았다. 프로그레시브 느낌이 섞인 열 번째 곡 Remission Possible도 좋았다. 그리고 열두 번째 곡이 시작될 때에, 나는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반갑고 즐거웠다. And The Address 라는 연주곡인데, 이 음악은 딥 퍼플의 1968년 데뷔 앨범 Shades of Deep Purple에 첫 번째로 수록되어 있는 곡이었다. 이 연주곡은 리치 블랙모어와 존 로드가 아직 딥 퍼플이 완전히 꾸려지기 전에 만들었던 곡이었고, 밴드가 구성된 뒤 가장 처음 완성된 곡이었다. 52년만에 다시 녹음된 새 버젼에서, 원곡을 연주했던 멤버는 이제 이언 페이스 한 분 밖에 없다.

중학생 시절에 나는 딥 퍼플의 앨범 Fireball, Machine Head와 Stormbringer를 카세트 테이프로 가지고 있었다. In Rock, Burn, 그리고 라이브 앨범과 표지가 조악했던 이상한 부트렉은 LP로 가지고 있었는데, 나는 아직까지도 그것들을 내가 어디에서 구입했었는지를 기억한다. 그것들은 모두 내가 태어난 이후에 나왔던 음악들이었지만 이미 그 당시 딥 퍼플은 해체한 것과 다름 없었기 때문에, 마치 아주 오래 전 밴드의 음악처럼 여겨졌었다. 그래서 '84년에 그들이 (잠시) 다시 모여 Perfect Strangers 를 발표했을 때에 나는 꽤 기뻐했었다.

2020년에 딥 퍼플이 선물해준 앨범 Whoosh! 는 내 취향으로는 매우 좋았다. 삼 년 전에 그들이 같은 프로듀서와 함께 작업했던 InFinite 앨범 보다 훨씬 좋았다.

나는 여전히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일부러 옛날 하드록 음악을 들으며 잠을 청할 때가 있다. 분명히 다른 음악들 보다 소란스런 사운드일텐데, 그것을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글을 쓴 김에 오늘은 이 앨범을 틀어두고 누워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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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eve Morse는 미국인이다.

2020년 12월 24일 목요일

옐로우재킷과 빅밴드

 


몇 년 전 펠릭스 파스토리우스의 후임으로 옐로우재킷 멤버가 된 Dane Alderson은 훌륭한 베이시스트이다. 그의 연주가 좋아서 여전히 나는 앨범으로, 동영상으로 옐로우재킷의 음악을 꾸준히 보고 들었다. 올해 연말이 다 되어, 지난 달 첫째 주에 옐로우재킷의 스물 다섯번째 앨범이 나왔다. 그동안 유튜브에서 녹음과 연주 장면이 담긴 짧은 영상을 보아왔는데 드디어 음원이 공개되었다. 기다리고 있던 앨범이어서 반가왔다.

앨범의 제목인 Jackets XL의 XL은 로마숫자 표기로 40이라는 의미이다. 이 밴드의 4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독일 Cologne을 기반으로 오래 활동하고 있는 WDR Big Band와 협연했다. 옐로우재킷의 리듬섹션에 빅밴드 브라스 섹션이 더해졌다. 그리고 열 곡 중 일곱 곡은 바로 멤버인 Bob Mintzer가 편곡하였다. 한 곡은 창단멤버인 Russell Ferrante가, 나머지 두 곡은 Vince Mendoza가 맡았다.

Bob Mintzers는 2016년부터 이 WDR Big Band의 지휘를 맡고 있다. 그리고 이 빅밴드는 작년에 피아니스트 Fred Hersch의 앨범에 참여했는데, 당시 빅밴드의 편곡과 지휘를 맡은 사람은 Vince Mendoza였다. Fred Hersch와 WDR Big Band의 앨범 Begin Again도 아주 좋은 앨범이었다.

옐로우재킷의 스물 다섯번째 앨범은 두 곡을 제외하고 모두 지나온 그들의 앨범 수록곡들을 다시 편곡, 연주한 것이다. 러셀 퍼렌티는 그 중 아홉번째 곡 Coherence를 편곡했다. 이 곡은 옐로우재킷의 2016년 앨범 타이틀곡이었다. 빅밴드 편성으로 다시 연주한 음악 중 가장 정갈하고 숨막히는 편곡이었다. 아름답고 담백하지만 연주자의 입장에서 들어보면 정말 어려운 변박이 군데 군데 나타나고 있었다. 러셀 퍼렌티는 빅밴드 작곡/편곡/지휘자이며 피아니스트인 Maria Schneider 의 편곡을 가져와 사용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것을 위해 그는 마리아 슈나이더의 웹사이트에서 'Hang Gliding'의 악보 패키지를 구입했고, 그것으로 공부하고 연주 동영상을 찾아 보았다고 했다. 이 곡에서는 밥 민처가 실제 소프라노 색소폰을 연주하고 있고, 러셀 역시 신디사이저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정교하게 편곡한 이 음악을 들으며 아주 인상적이고 아름다운 곡으로 변했다고 생각했다.

밥 민처는 대학을 졸업한 뒤 Buddy Rich 빅 밴드와 공연하는 것으로 음악활동을 시작했었다. 80년대에 그는 브렉커 형제와 윌 리, 피터 어스킨, 로저 로젠버그 등과 함께 당시 젊은 재즈 올스타로 구성된 빅 밴드 활동을 했다. 이후 Thad Jones / Mel Lewis Orchestra와 자코 파스토리우스의 Word of Mouth 빅 밴드 멤버로도 활동했다. 빅 밴드 편성으로 이루어진 옐로우재킷의 앨범이라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는 이유이다.

밥 민처는 수십년 동안 EWI도 연주해왔다. 신디사이저 관악기인 이 전자악기(사실은 콘트롤러)를 사용하는 것을 두고 어떤 재즈팬들은 '그것은 재즈가 아니다'라는 말도 해왔다. 전자악기를 사용하는데에 적극적이었던 옐로우재킷의 음악도 '재즈가 아닌' 어떤 것으로 분류하기 좋아했던 그 재즈팬들에게도 이 앨범을 추천해주고 싶다.

이 앨범의 두번째 곡 Dewey는 마일즈 데이비스의 이름 Miles Dewey Davis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 곡에서 들을 수 있는 뮤트 트럼펫 멜로디는 바로 밥 민처가 EWI로 연주한 것이고, 곡의 중간에 나오는 플룻 연주는 그가 EWI의 플룻음색으로 연주한 것을 빅 밴드 멤버들의 실제 플룻 사운드와 섞은 것이다. 러셀 퍼렌티의 신디사이저 솔로가 아주 좋고, 리듬이 현대적으로 바뀐 것도 좋다. 2020년의 빅 밴드 사운드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데인 앨더슨의 베이스 솔로가 빛나는 곡은 첫번째 수록곡 Downtown이다. 알토 색소폰 솔로는 빅밴드 멤버인 Johan Hörlen의 연주이다. 윌 케네디의 드럼 브레이크가 후반부에 나오는데 그 부분도 아주 좋았다. 윌 케네디는 빅 밴드와의 연주를 위해 22인치 베이스드럼을 사용했다고 했었다. 최근 팝음악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라우드 마스터링 - 음량을 크게 하여 음원을 완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앨범의 수록곡들은 상대적으로 볼륨이 작다. 나는 아마도 그 덕분에 드럼의 공간감이 더 좋게 들리고 있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지난 40년 동안 스물 다섯 장의 앨범을 발표했고, 재즈, 팝, 퓨젼, OST, 가스펠 등을 연주해온 옐로우재킷은 맨 처음 기타리스트 로벤 포드의 밴드로 시작했었다. 여전히 그들을 재즈 그룹으로 생각하지 않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도, 이제 옐로우재킷은 역사 속의 어떤 재즈 쿼텟보다도 오랜 기간 활동해온 재즈 밴드가 되었다. 긴 시간 동안 음악활동을 통하여 업적을 이루어 온 이 4인조 그룹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며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더 앨범을 들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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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20일 일요일

재즈 기타 앨범


 

작년에 애플뮤직에서 하모니카 연주자 Toots Thielemans 을 기리는 듀엣 앨범을 발견했다. 이 듀엣 앨범에 담겨있는 연주들이 좋아서 한동안 자주 듣고 있었다. 한동안  새로운 재즈 연주자를 모른채 지냈었다. 자주 찾아보지 않으면 새로운 음악인들의 이름을 하나도 모르게 된다. 나에게는 Yvonnivk Prene이라는 하모니카 연주자의 이름도 생소했지만 기타리스트 Pasquale Grasso 도 낯설었다. 그 음반을 시작으로 나는 이 기타리스트의 연주를 좋아하게 되어 가끔 앨범들을 찾아 들어보고 있었다.

올해에 나왔던 좋은 재즈 음반들 중에서 솔로 기타 연주로 열 두 곡이 담겨있는 Pasquale Grasso 의 이 앨범 Solo Masterpieces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음악을 듣다 보면 특정한 쟝르 음악 연주자에게 매료되는 순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쟝르만의 언어를 그대로 이어 받으면서 자신의 음악성과 악곡에 대한 새로운 태도가 드러나는 연주를 마주치게 되면 조금 바쁜 일이 있어도 우선 잠자코 앉아서 음악이 끝날 때까지 듣게 된다.  이 앨범의 모든 곡이 그랬었다. 파스쿠알레 그라소의 테크닉도 놀랍지만 스탠다드 재즈 음악들을 해석하는 그의 연주는 재즈 기타라고 하면 떠올릴 수 있는 모든 연주자들의 좋은 점을 모아 놓은 것 같았다.

피크와 손가락을 동시에 모두 사용하는 그의 주법은 특별하거나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파스쿠알레 그라소는 완벽한 연주자들이 그렇듯 현을 퉁기는 모든 피킹이 다 자연스럽다. 그는 오른손 새끼 손가락까지 자유롭게 사용할뿐더러 그 힘이 센데, 그 덕분에 순간 순간 더 풍부한 기타 화성을 들을 수 있는 것 같다. 그가 사용하는 기타가 특이하여 검색을 해봤다. 프랑스의 기타 장인인 Bryant Trenier라는 사람이 만든 것이었다. 고전적인 설계로 보이는 외관에 모두 수작업으로 악기를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파스쿠알레 그라소가 사용하는 기타는 트레니에가 그를 위해 만들어 준 파스쿠알레 그라소 모델 (Modello Pasquale Grasso)이었다. 핑거 레스트가 없는 대신에 콘트롤 노브가 브릿지 부분에 달려있는 점이 좋아 보였다. 바디에 따로 구멍을 뚫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간단한 수리가 필요할 때에도 편리할 것 같았다.  http://www.trenierguitars.com/

파스쿠알레 그라소는 2019년 하반기 동안 솔로 기타 음반으로만 네 개의 디지털 EP 를 발표했었다. 그 후에 세 장의 음반들이 더 나왔다고 했다. 나는 아직 전부 다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각 앨범의 제목을 보니 모두 스탠다드 재즈와 위대한 연주자들의 작품들을 연주한 것 같다. 올 겨울에는 그의 연주들을 모두 다 들어보고 싶다. 나는 솔로 기타로 연주되는 재즈 음악은 어쩐지 겨울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왔는데, 그것은 아마 내가 처음 Wes Montgomery의  CD를 구입하고 재즈 기타에 깊이 빠져들었던 계절이 겨울철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파스쿠알레의 이 앨범은 녹음된 전체 사운드도 좋고 악기의 음색도 좋다. 그 사운드는 조 패스처럼 너무 날카롭지도 않고 짐 홀처럼 너무 슬프지도 않다. 어느 날 하루를 골라 스피커로 크게 틀어두고 들어보고 싶은 앨범이다. 그의 스탠다드 시리즈들은 오래된 재즈팬 뿐 아니라, 이제 막 재즈 기타를 듣기 시작했거나 스탠다드 재즈 음악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도 아주 좋은 음반들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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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항상 그랬었지만 음반이나 음원을 유통하는 회사는 일을 대충 하는 경향이 있다. 지니뮤직에서 위의 음반은 '애시드/퓨젼'으로 표시되고 있었다. 틀린 분류이다.

2020년 12월 15일 화요일

겨울, 고양이 생각

 


갑자기 추워졌다. 일기예보가 알려줬던 것처럼 영하 10도로 기온이 내려갔다. 눈이 내렸었고 강원도 북쪽에는 한파경보가 내려진다는 뉴스도 보았다. 감염병은 더욱 확산하고 있다.

4년 전 이 즈음에, 지금 내 곁에서 칭얼거리며 잠투정을 하는 까만 고양이가 나와 아내에게 이제부터 우리와 함께 살겠다고 선언했다. 유난히 추웠던 11월 밤중의 일이었다. 우리 두 사람이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아직 이름이 없었을 어린 고양이를 부르자 얘는 고민도 없이 다가와 우리에게 몸을 부비며 끙끙 소리를 내었다. 결국 고양이를 품에 안고 데려와 병원에서 진료를 받게 하고 몸을 씻기고 키우기로 한 것은 아내와 내가 맞긴 하지만, 나는 그날 밤 이 고양이가 절박한 심정으로 '선언'을 했던 것이었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나는 당신들과 살아야겠다.' 라고. 추워진 11월이 다시 찾아오자 나는 그날 밤 까만 고양이 까미를 만났던 일이 기억났다.

까미는 아주 말이 많고 걸핏하면 투정을 부리는 어린이 고양이가 되었다.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언니 고양이들에게 심한 장난을 걸고 얻어 맞는 일도 매일 하고 있다. 그리고 간식이 생각날 때에는 우리를 만났던 그날 그랬던 것 처럼 단호하고 당당하게 먹을 것을 요구한다. 가끔은 정말 배가 고픈 것이 맞는지 의심스럽다. 어쨌거나 아주 분명하고 강한 어조로 사람에게 간식을 내놓으라고 할 때 마다, 나는 까미가 언변 좋은 대중연설가의 기질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올해 여름에 사랑했던 고양이 꼼이를 잃었다. 아직 반 년도 지나지 않았다. 떠나고 없는 고양이를 매일 매일 몇 번씩 떠올리며 여름과 가을을 보냈다. 꼼이는 내 결혼의 시작과 함께 우리와 살게 되었었다. 고양이 꼼이는 언제나 우리 두 사람을 웃게 했다. 하얀 고양이 꼼이는 애정을 표현할 때에도, 말썽을 부릴 때에도, 즐거워 뜀박질을 하거나 나른하게 마냥 졸고 있을 때에도 귀엽고 예뻤다. 나는 고양이 꼼이에게 행복을 빚진 채 그를 떠나 보냈다.

고양이 까미가 우리와 만났던 그 해 여름에는 고양이 순이가 세상을 떠났다. 순이와 가장 친했던 꼼이는 그로부터 꼭 4년 후에 순이가 떠난 곳으로 갑자기 가버렸다. 지난 달에 나는 예상하지 못했던 일을 겪고 응급차에 실려 병원에 갔었다. 병실에 누워 움직이지 못하며 잠깐씩 잠들었다가 깨어나기를 반복했던 날, 나는 떠나고 없는 내 고양이들을 한참 생각했다. 그리고 새삼, 각자의 시간은 결국 별안간 멈추기 마련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내와 나의 전화기와 시계에는 항상 우리의 곁을 떠난 고양이들의 사진이 보여지고 있다. 곁에 없는 고양이를 그리워 하다가, 지금 곁에 있는 고양이들을 껴안고 얼굴을 부벼 보기도 한다. 나는 더 쓰다듬어도 좋다며 그르릉 소리를 내는 고양이를 안아 편안한 자리에 눕히고 책상 앞으로 돌아와, 이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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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3일 목요일

맥 오에스 업그레이드.

 



맥 오에스를 버젼 11로 업그레이드 했다.

맥 오에스 텐이 나왔던 것이 19년 전의 일이니까, 거의 이십여 년만에 새로운 버젼이 나온 것이다.

업데이트가 아니라 새로운 오에스로 업그레이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선 내가 사용하는 오디오 인터페이스와 제대로 호환이 되는지 확인해야 했다. 나는  https://www.pro-tools-expert.com/ 에서 정보를 얻었다. 그 페이지는 지금도 매일 새로운 정보가 업데이트 되고 있다. 내가 사용하는 기기는 이제 구형인데, firewire 를 애플에서 나온 커넥터로 연결하여 쓰고 있다. 다행히 제대로 잘 작동한다고 나와 있었다. 이제 이것을 마지막으로 오디오 인터페이스를 바꿔야 할 것 같다. 이제는 지나간 과거의 기술인 1394 - firewire 기기들을 엔지니어들이 더 이상 개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는 내가 사용하는 애플리케이션들이 온전히 작동할 것인지 관련 정보를 찾아 봤다. 애플에서 나온 프로그램 외에 내가 따로 구입했던 것들 모두 이미 새 맥 오에스에 호환되도록 업데이트가 되어 있었다.

그러면 이제 백업이 남았다. 타임머신 기능을 쓰고 있으니까 우선 안심할 수 있었고, 맥 오에스 업그레이드는 설치가 끝나도 사용자가 이전에 사용하고 있던 모든 앱들과 설정은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에 너무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도 혹시 유실되거나 없어지는 파일이 생길까봐 필요한 폴더들은 아이클라우드로 백업하고, 작은 파일이 가득 담긴 것들은 외장하드에 넣어 뒀다.

우선 가지고 있는 맥북프로가 업그레이드에 해당하는 기종인지 확인하고, 시험삼아 먼저 맥북에 업그레이드를 설치했다. 다른 일을 하다가 설치가 끝난 후 재시동 되는 맥북을 지켜보았다. 깔끔하게 업그레이드 된 것을 확인하고, 이제 책상 위의 아이맥에 설치를 시작했다. 다음 날 해야 하는 수업 준비를 하던 중이었는데, 아이맥에 오에스가 설치되는 동안 작업하던 것을 그대로 맥북 프로에 가져와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새 오에스는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 직전의 마지막 오에스 텐 버젼이 워낙 답답한 문제가 많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쾌적하게 느껴졌다. 세세한 디자인과 기능들도 괜찮았지만 가장 반가왔던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매킨토시 시동음이 되살아난 것이다. 2년 전에 그 시동음이 사라졌을 때에 적어뒀던 글이 있었다. 그 사운드가 사라진 것이 아쉽다며 시동음 파일도 함께 올려두었었다. https://choiwonsik.blogspot.com/2018/08/blog-post_66.html

오에스 설치가 끝나고 컴퓨터가 재시동 되면서 그 시동음을 들었을 때에 기분이 아주 좋았다. 새 시동음은 피치가 조금 더 낮아진 것 같은데, 그런대로 묵직하게 느껴져서 좋았다. 터미널을 사용하여 굳이 시동음이 나오지 않도록 할 수도 있다고 하는데, 그 소리를 듣고 싶어했던 나에게는 필요 없는 팁이었다.

백업을 하고, 수업 준비물을 만들고, 오에스 설치를 지켜보고 있느라 그만 너무 오래 앉아 있었다. 다시 몸에 통증이 느껴져서 얇은 이불을 깔아 둔 바닥에 길게 누웠다. 이제 밤 새워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 생활도 하지 않아야 좋다고 생각을 했으면서도, 조금 몸이 나았다고 금세 잊고 원래의 패턴대로 하루를 보내버렸다. 지금 고작 컴퓨터 사운드를 듣고 좋아할 때가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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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24일 화요일

선택 지지 편향.

로직 프로 10.6 업데이트

 


로직 프로가 10.6으로 업데이트 되었다.

업데이트 파일이 공개된 것은 내가 낮에 학교에서 쓰러져 응급차에 실려 병원에 드러누웠던 그 날이었다.

이제서야 컴퓨터를 켜고 정리를 시작하다가 뒤늦게 업데이트를 완료하고 추가적으로 필요한 파일들을 모두 다운로드 했다.

몇 가지 좋아진 기능들이 있는데, 그 중에 가장 반가운 것은 훨씬 다양해진 샘플러였다. 나에게는 십 몇 년 전에 구입하고 모아둔 악기 샘플 파일들이 있는데, 그동안 제대로 사용해 볼 수 없었다. 강화된 샘플러 기능 덕분에 하드디스크에 담아두기만 했던 이제서야 나는 그 야마하 드럼 샘플들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결과물의 품질도 좋아서 무척 마음에 들어하고 있다. 아직 책상 앞에 오래 앉아있을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더 많이 다뤄보지는 못하고 컴퓨터를 꺼야 했다.

내가 우리나라에서 윈도우즈 컴퓨터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매킨토시만 써온지  삼십 년이 다 되었다.  MS-DOS 시절 이후 나는 당시 매킨토시의 오에스 이름이었던 맥 시스템이 나에게 잘 맞는 오에스인 것을 알았고, 지금까지 매킨토시 이외의 컴퓨터는 사용하지 않고 지냈다. 그것을 자랑할 일은 아니다. 

어떤 도구를 꾸준히 사용하려면 그것을 다루는데에 능숙해져야 한다. 컴퓨터의 오에스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도구라면 꾸준한 공부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에 시간을 쓰고 때로는 몰입하여 배우지 않으면 불필요한 낭비가 발생할 수 있다. 보통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불평만 하는 사람들은 말하자면 망치질을 하다가 제 손을 때린 후 화풀이로 도구를 집어 던지는 사람과 비슷하다.

또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하고 나면 그것이 가장 옳은 선택이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경험에 갇힌채 새로운 것에 대한 공부가 모자란 경우에, 사람은 자신이 틀렸을 가능성을 조금도 인정하려 하지 않게 된다. 그렇게 되면 어떤 것을 결정하여 실행에 옮긴 다음 그것이 망쳐졌을 때에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화를 낼 대상을 먼저 찾고 그것을 희생양으로 삼는다.

'맥 오에스는 제 때에 업데이트 하지 않는 것이 진리', '맥 오에스를 최신으로 업데이트 하면 사용하던 것을 하나도 못쓰게 된다' 와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그 결정이 옳다고 스스로 굳게 믿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도 자꾸 전파하려고 한다. 조금 비약하자면 지구평면설을 주장하거나 비이성적인 광신도의 처음도 그렇게 시작되는 법이 아닌가 한다.

나는 맥 오에스를 항상 최신으로 유지하고 있고, 그것은 보안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오에스가 지속적으로 업데이트 되어지는 것은 이제 주기적인 일이므로, 사용하고 있는 써드파티 프로그램들이 새로운 오에스에 잘 호환되도록 함께 업데이트 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항상 필요하다. 더 이상 새 오에스를 지원하지 않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그것을 위해 오에스의 업데이트와 업그레이드를 보류하거나 포기해야 할 수도 있지만, 더 나아진 성능으로 매일 하는 작업을 계속 하고 싶다면 언제나 새로운 선택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에는 당연히 물질적이거나 두뇌를 사용해야 하는 비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이 언제나 최신 부품으로 컴퓨터를 조립하려고 하는 성실함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게임을 즐기기 위하여 시간과 비용을 아끼지 않는다.

내가 매일 사용하는 컴퓨터 오에스는 이제 모바일의 iOS와 가능한 닮아가기 위해 변화 중이다. 점점 컴퓨터는 덜 켜게 되고 iOS 기기는 이미 항상 몸에 지니고 있기 때문에 기존의 지식만 가지고는 변화하는 도구들을 문제 없이 다루기 어렵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떤 오에스나 어떤 기기가 더 발전하고 나아진다고 하더라도 '업데이트 하면 망한다' 라는 말을 복음처럼 전파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2020년 11월 23일 월요일

퇴원.



열흘 만에, 다시 내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지난 주 목요일, 나는 오후 수업 도중 허리 통증 때문에 쓰러져 바닥에 길게 누운채 신음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도움으로 구급차에 실려 근처 병원에서 하루, 다음 날 서울의 병원, 집에 옮겨져 이틀 동안 누워있었다.

나는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여 누운 채로 나흘을 보내고 월요일에 병원에 입원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부모 두 분의 병간호를 하면서 나 자신이 그렇게 병실 침상에 드러누워 있게 될 줄은 몰랐다. 정맥혈관에 카테터를 꽂고 오래 누워 있었다. 내가 이렇게 오래 누워서 시간을 보낸 것은 아마 이번이 처음 아니었을까.

처음에는 드러누운채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상황 때문에 걱정과 강박으로 힘들었다. 하루 하루 지나고 통증이 조금씩 가라앉으면서는 천장만 바라보며 내가 지나온 이력을 되짚어 볼 수 있었다. 애플워치와 아이폰으로 잠자는 것을 체크해왔었다. 기록을 보니 지난 한 달 동안 내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은 2시간 55분이었다. 그렇게 생활할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했다.

이제 퇴원은 했지만 아직 혼자 힘으로 일어나 활동할 정도로 회복하지는 못하였다. 날짜가 계속 지나갈 수록 조급한 마음은 사라졌다. 그보다 완전히 나아져서 다시 움직이고 일하고 싶다. 이번에 제대로 경고를 받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제 이후의 생활은 그 이전과 같을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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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8일 일요일

대구 클럽 연주

대구 클럽에서 연주했다.

 


토요일 아침, 일찍 서둘러 고속도로를 달렸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길이 많이 막혔다. 거의 다섯 시간 동안 운전을 하여 대구에 도착했다. 공영주차장을 찾아 차를 세우고 뒷자리에 누워 한 시간 쯤 잠을 잤다.

처음 가보는 대구의 라이브 카페 '시카고'에서 연주를 했다. 약속했던 시간에 친구들이 모두 모였고 잠깐 리허설을 해보았다. 계속 잠이 부족했던 나는 리허설을 마치고 다시 자동차에 가서 사십여분 동안 잠을 더 보충했다.

밤 아홉시에 시작하여 약 두어 시간 동안 공연했다. 잠깐 잠을 잤던 것 때문이었는지 피곤하지 않았고 집중이 잘 되었다. 무대 앞에 자리를 메워주신 관객들이 호응을 잘 해줬던 덕분에 그랬을지도 모른다.

올해에는 김창완밴드의 모든 공연이 취소되었다. 언제나 연말에 가까와지면 밴드 일정으로 분주했었던 것이 아주 오래된 옛날 일처럼 느껴진다. 대신 친구들과의 공연을 하나라도 더 하려고 마음 먹고 있다. 다음 주 토요일, 그 다음 주 토요일에도 작은 클럽에서 계속 연주를 할 예정이다.

대구에서 새벽에 출발하여 집으로 돌아올 때엔 졸음을 견딜 수 없었다. 휴게소가 나타날 때 마다 차를 멈추고 잠시 시트를 눕히고 졸거나 차에서 내려 스트레칭을 했다. 아침 여덟 시가 다 되어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아주 푹 잠을 잘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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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24일 토요일

여덟 달.

펜더 베이스 건전지를 교환했다.

 


지난 주 밤중에 오랜만에 합주를 했는데, 도중에 악기의 소리가 사라졌다. 급히 패시브로 바꾸고 연주를 계속 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확인해보니 다시 소리가 나고 있었고, 그 다음 날 학교에서 수업을 할 때에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수업을 마칠 무렵 액티브 소리가 희미해지더니 완전히 사라졌다. 건전지를 다 쓴 것이다.

바로 다음 날 밤, 공연에서는 다른 악기로 연주했다. 연주를 시작한 뒤 한참이 지나서야 무대 위에 서있는 것이 덜 낯설어졌다. 무대에 오르고 공연을 하는 것이 일상이었던 적이 먼 옛날의 일 처럼 여겨졌다.

오늘 아침, 열흘만에 여섯 시간 이상을 자고 일어났더니 몸이 개운했다. 악기를 뒤집어 건전지를 새 것으로 교환했다. 액티브 악기에 건전지를 넣을 때에는 날짜를 써두는데, 적어둔 날짜를 보니 지난 번에 건전지를 넣은 이후 여덟 달이 지났다. 지난 2월에 건전지를 교환하고 악기를 정비해 둘 때에는 약속되어 있었던 모든 공연들이 취소될 것이라는 것을 몰랐다. 전염병이 세상 사람들의 일상을 바꿔버린 것이 여덟 달이 지난 것이다. 그런데 마치 그 보다 훨씬 더 긴 세월이 지난 것만 같다.

내가 쓰고 있는 이 악기의 전기 부분이 특별히 건전지 소모를 덜 하는 것이어서 여덟 달 만에 건전지를 교환하게 된 것은 아니다. 올해 내내 그만큼 공연할 일, 연주할 일이 없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언제 다시 연주를 하러 다니는 생활을 할 수 있을지 이제는 알 수가 없다.

다음 건전지를 교환할 날짜가 금세 다가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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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16일 금요일

연주


 알람을 기기마다 오 분 간격으로 맞춰뒀었는데, 알람이 울리기 몇 분 전에 저절로 잠에서 깨었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서둘러 집에서 나와 편의점에 들러 커피를 샀다. 한참만에 편의점 커피를 먹어보았는데 아주 맛이 없었다. 그 사이 내 미각이 예민해진 것일까, 아니면 무뎌져서 맛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부모 두 분을 만나서 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갔다. 병원 정문 앞에 두 분을 내려드리고 나는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갔는데 주차를 할 수 있을 때까지 한참 걸렸다. 정말 붐볐다.

예약시간 그대로 병원 일들을 마칠 수 있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저녁에 연주할 곡들을 반복하여 들었다. 집에 돌아와서는 다시 알람을 몇 개 맞춰둔 다음 잠들었다. 반듯하게 누워서 자려고 노렸했다. 한쪽 어깨의 통증이 심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알람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었다.

오후 네 시 반, 커피를 내리며 수면측정앱을 보았더니 오늘 모두 합쳐서 네 시간 동안 잠을 잤다고 표시되어 있었다. 커피를 보온병에 담고 악기 가방을 둘러메고 집에서 나왔다. 도로가 무척 막힐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지하철을 타기로 했다. 오랜만에 옥수역도 지나가 보고 공덕역도 지나가 봤다. 악기를 등에 메고 그 동네의 길을 한참 걸어볼 수도 있었다. 여전히 어깨와 목에 통증이 느껴져서 조금 더 오래 걷고 싶었다. 몸을 많이 움직이면 나아질 것 같았다.

한 시간의 공연을 잘 마쳤다. 몇 달 만에 무대에서 연주를 하니까 몸이 쉽게 풀리지 않았다. 마지막 곡을 연주할 때가 되어서야 감각이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무대 연주를 못하면서 지냈던 것을 체감했다.

오늘만큼은 아주 깊이 잠들고 싶었다. 일주일 내내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내일 모레 아버지가 입원하기 때문에 그 날부터 다시 한 주일 동안 나는 잠이 부족한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쉽게 잠들지 않아 눈이 아파 견딜 수 없을 때까지 유튜브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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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28일 월요일

하루.


알람을 듣고 깨었다. 세 시간 정도 잔 것 같았다.
전화와 애플워치를 충전기에 연결하고, 욕실에 들어가 정신을 차리기 위해 찬물로 세수를 했다.

준비를 마쳤더니 여섯 시 이십 분이었다. 출근시간에 도로가 얼마나 막히는지 잘 알고 있다. 서둘러 출발했다. 라디오를 들으며 꽉 막힌 도로를 느리게 느리게 달려야 했다.

길가에서 부모 두 분을 태우고, 다시 강을 건너 병원으로 달렸다. 겨우 예약시간에 마춰 도착할 수 있었다. 지난 주에는 아내의 부친이 병원에 계속 계셨다. 이번 주에는 내 부친이다. 이런 생활에 이제 익숙해졌다.

내 아버지는 여섯 가지의 검사를 했다. 다음 주 수술을 앞두고 하는 검진이었다. 마지막 진료를 기다리며 병원 복도의 의자에 잠깐 앉았다가, 나는 그만 벽에 등을 기대고 잠이 들어버렸다. 내가 졸아버렸던 곳은 4층이었는데 그 사이에 엄마가 아버지를 데리고 2층 마취과 진료를 마친 후 내가 앉아있는 곳으로 돌아와 잠을 깨웠다.

두 노인을 다시 모셔다 드리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오후 시간에도 길이 막혔다. 병원에서 잠시 졸았던 것 덕분이었는지 그다지 피곤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자 갑자기 졸음이 쏟아졌다. 침대에서 아침과 똑같은 모습으로 뒹굴고 있던 고양이 깜이를 한 번 어루만져주고, 나도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었다가 날이 저문 다음 깨었다. 나는 낮에 내가 어디에 자동차를 주차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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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2일 수요일

태풍, 온라인 수업

 


태풍 '바비'가 지나간 다음, 다른 태풍 '마이삭'이 왔다.
이번에는 태풍이 제주, 경남, 강원도에서 동해 북쪽으로 지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 동네에는 비가 조금 내렸고 센 바람이 부는 것 같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어제까지는 습도가 높았는데 지금은 조금 나아졌다.

2학기 첫 수업은 온라인으로 시작했다. 학교에서 4주 동안 '비대면수업'을 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지난 학기와 달리 온라인 수업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자료를 새로 만들기 위해 시간을 더 들여야 했다.

긴 플레이리스트가 끝나기 직전에 블루투스 이어폰의 배터리가 끝나버렸다. 마지막 곡은 어차피 귀기울여 듣고 있지도 않았으니까 괜찮다, 라고 생각했다. 에어팟을 매일 많이 사용했더니 이제 배터리가 오래 가지 못한다.

태풍, 전염병, 그리고 온라인 수업으로 시작하는 올해의 하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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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23일 일요일

쿼텟

 


Joshua Redman 쿼텟의 새 음반을 들었다.
사진은 그의 트위터에서 가져온 것이다. 나는 애플뮤직으로 듣고 있다.
과거의 명반을 다시 발매하는 것 말고, 새로 만들어지는 음반들 중에서 좋은 것을 찾는 것이 점점 어렵다. 재즈 뿐만이 아니라 다른 쟝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앨범은 정말 좋았다. 조금 과장하면 감격같은 기분이 들었다.

1993년에 조슈아 레드맨의 두번째 앨범이 나왔을 때에 무척 놀라고 좋아했었다. 나는 군복무 중 휴가를 나왔을 때에 대학로에 있었던 레코드가게에서 그 음반을 샀다. 음반이 나온지 2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처음에는 Pat Metheny와의 라이브 트랙들이 포함되어 있어서 얼른 CD를 집어들었던 것이었는데, 이내 젊은 색소폰 연주자의 멜로디에 사로잡혔다. 그 이듬해에 조슈아 레드맨 쿼텟이라는 이름으로 다음 앨범 MoodSwing 이 나와있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그 음반은 내가 군복무를 마친 후에 살 수 있었다.  그 쿼텟의 앨범을 들으며 나는 재즈라는 것이 전설로 남아있는 나이 많은 연주자들의 유산에 그치지 않는, 계속 진행하고 있는 음악이라고 확신했었다. 당시 네 명의 젊은 연주자들의 연주는 이미 노인이 된 베테랑들의 그것과 닮아있으면서도 동시에 새로왔다. 그래서 그 이후에도 계속 그 멤버들 그대로 쿼텟이 유지되기를 바라기도 했었다. 그 두 장의 앨범은 Pat Metheny Group의 Imaginary Day와 함께 나의 기억 속에서 '90년대 말의 풍경 중 하나였다.

그 후 스물 여섯 해가 지났고, '94년의 그 앨범 구성원이 다시 모여 연주한 것이 새 앨범 RoundAgain 이다. 네 명이 한 앨범을 위해 모두 모인 것은 MoodSwing 이후 처음이다. 이미 어렸을 때에도 좋은 연주자들이었던 그들의 연주는 이제 어떤 수준 위를 날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 완전히 무르익은 연주를 듣다가 가끔 정신을 차리면 그제서야 연주자들의 테크닉이 들린다.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고 잔가지를 모두 쳐내어 완벽하게 다듬어진 나무들이 조화를 이룬 정원을 구경하는 것 같았다.

세 곡은 조슈아 레드맨, 두 곡은 Brad Mehldau, 나머지 두 곡은 한 개씩 Christian McBride와 Brian Blade가 썼다. 수록된 모든 곡이 좋지만 Brad Mehldau의 Moe Honk 와 조슈아 레드맨의 곡 Silly Little Love Song 이 제일 먼저 좋아졌다. 지금의 재즈음악이 어떻길래 그러느냐고 물으면 잘 표현할 수는 없는데, 이 앨범은 어쩐지 이십여년 전의 향수같은 것도 느껴졌다. 2020년에 나오고 있는 재즈음반들에서는 들어보기 힘든 공기가 그 안에 있다.





2020년 8월 10일 월요일

장마

 


아주 긴 장마가 지나가고 있다.

태풍 '장미'도 남쪽에서 다가오는 중이라고 했다.

비가 끝이 없을 것처럼 내리고 있다.

눅눅해진 바닥에 고양이들이 더워하며 드러누워 있었다. 에어컨을 켜줬더니 고양이 이지가 편한 모습으로 낮잠을 잤다.


낮에 떡볶이를 먹었다. 요즘 며칠 동안 하루에 한 끼를 먹고 있다. 배가 고파지면 고구마를 먹거나 우유를 마셨다.


밤중에 심야 극장에 다녀왔다. 점심 이후 먹은 것이 없어서 극장에서 파는 소세지 빵을 먹었다. 집에 돌아오니 주차할 자리가 없었다. 빙빙 집 주변을 돌다가 지하 2층에 핸드브레이크를 풀어두고 주차했다. 전화번호를 자동차의 앞 유리에 올려뒀다.

집안이 습했다. 비는 다시 쏟아지고 있었다.

2020년 7월 23일 목요일

흐리고 비.

 


잔뜩 흐리고 비가 내렸다.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 대한 생각들, 일에 관련된 생각들로 새벽에 잠을 깬 후 계속 깨어 있었다.

그리고, 순이가 죽은지 네 해가 되었다. 이제 곁에 고양이 꼼이도 없는 장마철을 보낸다.

어릴 적 부터 어떤 우연이 반복되어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되고 관심을 기울였던 것에 접근하는 경험을 해왔다. 올해에 모든 공연들이 취소되고 더 이상의 음악 일정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더니 악기를 쥐고 무엇을 연습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린 시절 음악에 빠져들었을 때의 곡들을 다시 듣기 시작했다. 임시로 플레이 리스트를 만들어 두고 반복하여 들었다.

며칠 음악을 듣다가 우연히 그 음악에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찾게 되기도 하고 악기를 점검하려고 렌치를 찾다가 엉뚱한 곳에서 오래된 CD를 찾게 되기도 했다. 그런 것이 사소한 것을 다시 배우게 하고 나에게 동기를 주기도 한다.

손톱을 깎고 오래 그냥 세워져 있었던 악기를 집어 들었다. 손가락을 풀기 위해 연습을 시작했다. 
조용했던 집안에 악기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니 고양이 깜이가 내 얼굴을 올려다 보며 표정을 살폈다. 마주 앉아 잠시 쓰다듬어줬다. 고양이는 금세 골골 소리를 내며 드러누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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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22일 수요일

비가 내린다.


순이가 떠난지 네 해가 되는 날이었다.
꼼이가 단짝이었던 순이를 따라 가버린지 겨우 이십여일이 지났다.
바람이 불고 비가 많이 내리기 시작했다. 창문을 닫고 집안을 청소하는데, 구석마다 떠나고 없는 고양이 두 마리가 마치 조금 전까지 드러눕거나 뛰어 놀았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이제 실없는 농담으로 웃고 아무 음악이나 틀어두고 흥얼거리기도 한다.
다시 만날 수 없는 고양이들을 보고싶어도 하고 가끔 아무 것도 없는 곳을 향해 없어진 고양이의 이름도 불러 보았다.
같이 있을 동안에 힘주어 행복하려고 하고, 헤어진 후에는 적당히 슬퍼한 후 오래 그리워하면 되는 일이다. 오늘은 그런 생각을 더 많이 했었다.

2020년 7월 11일 토요일

세브란스 병원.


지난 새벽에 아내를 위해 병원에 갔다가 딴지 총수가 모친상을 치르고 있는 장례식장까지 갔었다.
사실은 나 혼자 들렀다가 집에 가려고 했던 것이었는데 종일 부친의 병간호만 하느라 심심했던 아내가 따라 왔다. 장례식장 로비에 있는 화장실에 들러 볼일만 보고, 나는 아내에게 그냥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무엇을 구실삼아 이유를 말하지는 않았다. 나 혼자였다면 모를까, 아는 사이도 아닌 사람의 모친상에서 아내의 시선 앞에 내 감정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아내와 벤치에 앉아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혼자 집으로 돌아왔다.

아침에 알람소리를 들은 고양이 깜이가 깨워줘서 일어났다. 나는 이제 세 마리만 남은 고양이들에게 사료와 물을 챙겨주고 서둘러 다시 병원으로 갔다. 오늘 아내의 부친은 퇴원하시게 되었다. 두 번의 수술을 받았고, 며칠 사이에 많이 회복을 하셨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올 때에 차가 많이 막혔다. 토요일 오후 경기도 외곽 도로는 지독하게 막혔다. 사람들이 과연 전염병에 대한 경계심을 가지고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생각하다가, 반대로 그 전염병 때문에 일부러 자가운전을 많이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봤다.

고양이들이 한참만에 다시 만나는 아내를 일제히 반겨줬다. 나는 서둘러 청소를 하고 커피를 새로 내려 놓았다.
오랜만에 식탁에 마주 앉아 늦은 점심 한끼를 먹었다. 나는 침대에 드러누웠다. 고양이 깜이가 얼른 달려와 내 곁에 베개를 함께 베고 누웠다.

평화로운 순간은 언제나 짧다. 지금은 이 고요함을 고마와하며 한숨 자고 일어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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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6일 월요일

병원 응급실.


지난 밤에 아무래도 기분이 좋지 않아서, 조금 전 친오빠와 전화를 끊은 아내를 독촉하여 아내의 본가로 달려갔다. 도착해보니 장인이 매우 위급한 상황이었다. 아내가 구급차를 부르고, 나는 따로 출발하여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새벽 한 시 반, 부친에게 발열이 있어서 코로나 바이러스 검사를 위해 선별진료소로 모시고, 아내는 발열 없음으로 체크가 완료되었다. 노인은 몸을 가누지 못하고 얼굴에 열꽃이 피어 있었다.

두시 오십 분. 환자는 흉부 방사선 촬영 후 계속 휠체어에 앉아 대기 중이었다. 선별진료소에서 그렇게 기다리다가 응급실 침상으로 이동했다. 보호자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나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세 시 이십 분. 아내와 의논하여 나는 혼자 집으로 출발했다. 집에 가서 고양이들을 살피고, 아내의 옷가지와 필요한 것들을 챙겨 다시 병원으로 돌아오면 된다. 아내는 불편한 곳에서 불편하게 밤을 지낼 것이다. 우리는 각각 서로 이런 일들을 반복하여 겪고 있다.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할 수 있는 일이 되었다.
아내는 끝이 나지 않을 것처럼 이어지는 불행한 상황들, 사람과 고양이를 돌보느라 돈과 기운을 소모하고 있는 상황이 나쁘다고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아내에게 말했다. 그래도 한번에 몰아서 닥쳐오지 않은 것을 고마와하는 편이 낫다고. 그것은 진심이다. 동시에 고양이가 위독했고, 노인이 위급했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네 시 오십 분. 집에 도착하여 고양이 세 마리에게 깡통 한 개를 열어서 나눠 줬다. 고양이 화장실을 청소했다. 내다 버릴 쓰레기 봉투를 한 손에 들고, 아내의 옷과 충전기 등을 챙겨 가방에 담아 다른 손에 들었다.

날이 밝았다. 긴 대기 시간. 다행히 장인어른은 코로나 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나왔다.
응급실에 도착한지 열 네 시간만에 노인은 심혈관 병동 3층 시술실로 들어갔다. 중재술실이라고 적혀 있었다. 위중한 상태였어서 시술 후에 중환자실로 옮기겠다고 담당의사가 말해줬다. 중환자실에는 지금 보호자도 들어갈 수 없으므로 보호자 역시 집에 가서 전화를 기다리라고 했다.

지금은 오후 네 시. 아내는 내 옆의 의자에서 졸고 있다. 상황 모니터에는 계속 '시술 중'이라고 표시되고 있다.

졸음을 이기려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다가, 문득 문득 이제 죽고 없는 고양이 꼼이를 보고싶어했다. 지금은 가엾게 죽어버린 고양이를 그리워하고 슬퍼할 여유 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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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30일 화요일

꼼이가 떠났다.

나의 고양이가 세상을 떠났다.

오후 두 시에, 꼼이가 떠났다.
가여운 고양이는 우리의 품에서 죽었다.
이렇게 죽을줄 몰랐다. 석달 동안 꺼져가는 생명을 지켜보면서 나도 아내도 꼼이가 죽을 것 같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란 것일 뿐이었다.

고양이를 화장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에 나는 혼자 생각했다. 그렇게 힘겨워 하다가 숨을 멎게 될 때까지 우리는 고양이를 쓰다듬고 입 맞추며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옳은 것이었을까, 아니면 더 이상 가망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안락사를 했어야 맞았던 것이었을까. 나는 여전히 어느 쪽이 옳은지 모르겠다.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이 슬프고 마음이 아프다. 나는 숨이 멎은 고양이 꼼이의 털을 여러번 빗질해주고 있었다. 순이가 죽을 때에 엉크러진 털이 입과 몸에서 나온 진액에 굳은채 차갑게 말라붙었었다. 그것이 나는 너무 미안했었다. 꼼이는 단정하고 빛나는 흰 털을 가지고 생전에 내내 그랬던 것처럼 잘 생긴 고양이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눕혀져 있었다.

나는 무지개다리, 고양이 별과 같은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 것으로 포장해보았자 현실은 그냥 고양이가 죽어버린 것이다. 허무하고 무기력하게 만드는 그 상황을 억지로 예쁘게 꾸미는 말이 나는 싫었다.
하지만 나는 꼼이 덕분에 무척 행복해했었다. 꼼이는 아름다왔고 사랑이 많았다. 감정이 풍부하고 착했다. 순이도 꼼이도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고양이였다.
그래서 나는 그런 것을 믿지 않는데도, 4년 전에 먼저 떠났던 내 고양이 순이가 오늘 꼼이를 만나서, 반갑게 서로 몸을 부비고 뛰어다니는 모습을 상상해봤다. 제대로 상상이 되지는 않았어도, 그래도 그런 동화같은 이야기라도 머리 속에서 꾸며내고 싶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못 견딜 것 같아서, 그랬다.

꼼이에 대하여 뭔가 더 적어놓고 싶었는데, 지금은 무엇을 쓰지도 읽지도 못하겠다.
내일도 비가 내려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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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27일 토요일

무력감.


꼼이의 상태가 점점 더 나쁘다.
세번째 수혈은 효과가 없었다.
이제 너무 비틀거려서 똑바로 걷지 못한다. 화장실에 들어가 오줌을 누는 것도 힘겨워 한다.

사료를 먹이고는 있지만 그것이 고양이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약도 먹이고 있지만 그 약으로 꼼이의 빈혈을 막아줄 수가 없다.
점점 더 빠르게 이별이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아내가 수의사 선생님과 지난 번에 안락사에 대한 대화도 했었다고, 오늘 나에게 처음 말했다.
이성적인 척, 합리적인 척 한다면 그런 선택을 해야만 할 상황에 대해서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대답하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그렇지 못하다.

꼼이는 베란다 구석에서 편안히 눕지도 못한채로 있었다. 새벽에 사료를 먹인 후 이동장 위를 천으로 덮어줬더니 그 안에 들어가 있었다. 아침까지 그 안에서 자고 있기를 바랐는데 잠시 후 확인해보니 다시 작은 방에 있는 붉은 캐비넷 아래에 숨어들어가 있었다.

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을까.
하루를 더 살더라도 고양이가 덜 아프게 해줄 방법은 없을까, 그 생각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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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26일 금요일

몸이 안 좋았다.


고양이 꼼이의 상태가 하루가 다르게 나쁘다. 더 나빠지고 있는 것이 틀림 없다.
꼼이는 이틀 전부터 자꾸 방구석에 있는 붉은색 캐비넷 아래로 숨어 들어갔다. 집에서 가장 어두운 곳을 찾아 다니다가 발견한 곳이 거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사실은,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했다. 4년 전 고양이 순이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똑같이 그 캐비넷 밑으로 숨어들어가 나오지 않으려 했었기 때문이다.

구석진 곳에서 나와 몇 걸음 걷더니 그 자리에 다시 누워버리는 것을 보게 된다. 눕고싶어서가 아니라 어지럽고 기운이 없어서 그런 것이었다. 나는 꼼이를 부축하여 물그릇이 있는 곳까지 옮겨주고 조금 뒤로 물러나서 지켜 본다. 꼼이는 비틀거리며 느리게 걸어가 이번에는 베란다의 제일 끝 구석에 가서 누웠다. 나는 새 그릇에 물을 따라서 그 자리에도 한 개 가져다 놓았다.
지금은 다시 나에게 다가오더니 이마로 내 다리를 건드리고 얼굴을 부볐다. 고맙다는 뜻인지 아니면 혹시 기운이 좀 생겨서 그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의자에서 내려와 앉아서 꼼이를 안고 쓰다듬어줬다. 고양이는 다시 엉금 엉금 기어서 또 붉은색 캐비넷 아래로 들어갔다.

기온이 조금 떨어지고 비가 내렸다.
어쩐지 내 몸이 조금 안 좋다. 추위를 느껴서 집에 돌아올 때에 자동차 시트의 열선을 켰다.

오전에 아내가 꼼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서 세번째 수혈을 받도록 했다.
어제 나는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곧 동물병원으로 가서 수혈을 마친 고양이를 데리고 오기로 했었다.

밤 아홉시에 병원에 도착하니 꼼이는 우리를 보고 반가운 얼굴을 했다. 그러나 이내 다시 표정이 좋지 않았다. 꼼이는 집에 돌아오는 동안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고 움직이려고 하지도 않았다. 집에 돌아와 물을 많이 마시더니 고양이는 그대로 드러누워 자고싶어했다. 거의 여덟 시간 동안 병원에 있느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것 같았다. 꼼이의 발바닥이 모두 차가왔다. 물을 많이 먹은 후에 피가 섞인 오줌을 누었다.

나는 잠들었다가 땀을 흘리고 깨었다. 곁에 고양이 깜이가 나에게 몸을 바짝 붙이고 자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꼼이를 확인했다. 고양이가 너무 오래 굶은 상태였다. 계속 더 자고싶어하는 것으로 보였지만 조금이라도 사료를 먹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털을 빗겨주고 사료를 조금 먹였다. 그제서야 차가왔던 발바닥도 따뜻해지고 코에 붉은 기운이 조금 돌아와 있었다. 수혈했던 것이 이제야 몸에 돌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는지 다른 이유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첫번째 수혈을 받았을 때처럼 활발하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우리가 고양이 꼼이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수혈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수혈이 반복되면 그 효과도 떨어지고 부작용의 위험은 더 생긴다고 수의사가 말해줬었다.


2020년 6월 19일 금요일

다시 동물병원에.


아픈 고양이를 낫게 해줄 수 없다면, 아프지 않게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어제 저녁에 집에 왔을 때에 꼼이가 다시 많이 아파보였다.

밤중에 꼼이가 물을 마시는 것을 보고 그릇의 물을 새로 갈아줬다.
꼼이가 방에 들어가더니 내 침대의 머리쪽에 드러누웠다. 편하게 보였다. 다가가 쓰다듬어줬다. 이제 꼼이는 눈을 마주칠 때에 더 이상 그르릉 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강제로 사료를 먹이거나 약을 먹일 때에 한 번도 화가 난다고 물거나 할퀸 적이 없었다.

아침 일찍 고양이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도착했다. 아내와 고양이를 병원에 두고 나는 학교로 출발했다. 운전하며 아내와 통화했다. 아내가 수의사 선생님과의 대화 내용을 전해줬다.

꼼이의 빈혈수치는 지난 번 긴급히 수혈을 했던 때 보다 더 나빠져 있었다. 지난 번에 -14, 오늘은 -12. 방광염 수치가 나빠져 있었다. 스테로이드 장기 복용이 문제일 것인데 그렇다고 그 약을 끊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수혈을 위한 혈액은 내일 도착 예정이지만 병원에 혈장혈액 50cc 가 있었기 때문에 우선 그것을 수혈하기 시작하기로 했다. 하루 입원하며 다음날 오전에 주문했던 혈액이 도착하면 다시 100cc 를 추가로 수혈하기로 했다.

고양이는 몸을 가누지 못하여 비틀거리면서도, 화장실을 사용하기 위해 아픈 몸을 억지로 일으켜 볼일을 보았다. 그 모습이 안스러워 다가가 몸을 붙잡아 주면, 볼일을 마친 후에 굳이 변을 화장실 모래로 덮어보려 애쓰기도 하였다.



2020년 6월 16일 화요일

다시 심각하다.


여섯 시 무렵부터 꼼이에게 사료와 약을 먹이기 위해 공을 들였다. 점점 더 음식물을 먹이기 힘들어지고 있다. 고양이는 인상을 쓰고 틈만 나면 도망가려고 했다.
사료를 거의 다 먹인 후 아침 약을 먹일 때에 그만 한번에 고양이 입에 알약을 넣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아내가 기운이 빠진 얼굴로 힘 없이, '전부 다 토해버렸다' 라고 말했다.

나는 고양이가 아직 침을 흘리며 구석에 누워 힘들어하는 것을 보았다. 바닥을 닦고 고양이 꼼이의 턱과 발을 닦아줬다. 아내는 다시 사료를 물에 섞어 꼼이에게 먹이기 시작했다. 아무 것도 먹지 않은 상태로 너무 오래 둘 수 없기 때문이었다.

꼼이가 사료를 억지로 받아 먹은 후, 창틀에 드러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이번에는 토할 것 같지 않아 보였다. 기운이 없어서 늘어져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아픈 고양이는 두어 달 사이에 모습이 많이 변했다. 그 종양이라는 것이 더 커지지 않고 빈혈이니 췌장염이니 모두 더 나빠지지만 않아도 좋겠다.

오늘 화장실 타일 구석진 곳에서 고양이 꼼이를 여러 번 찾아내어 안고 나왔다. 기운도 없지만 고양이의 표정도 좋지 않다. 많이 아픈 것이 틀림 없다. 계속 물그릇에 발을 넣고 있어서 앞발 양쪽이 적어 있다.

다시 수혈을 받아야만 하는 상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
너무 가엾고, 마음이 아팠다. 오늘은 종일 저렇게 힘들어 했다. 수혈을 받아도 일시적일 뿐, 빈혈을 완전히 낫게 해주지 못하고 있다. 다른 방법이 없다고 하니 속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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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12일 금요일

금요일.


고양이 꼼이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갔다.
병원에는 금요일이었던 오늘도 사람들과 개들로 붐비고 있었다.

검사가 지연되어 거의 한 시간 동안 기다려야 했다. 고양이 꼼이를 곁에 두고 수의사 선생님과 대화를 나눴다. 빈혈 수치가 더 많이 떨어진 것이 나쁜 소식이고, 복수와 종양은 줄어있는 것이 좋은 소식이었다. 그나마, 좋은 소식.

꼼이는 부쩍 늙어 보였다. 항암제와 위장관의 출혈을 막아보고자 의사 선생님이 아이디어를 낸 다른 약물을 사왔다. 집에 돌아와 아내가 사료를 물에 개어 꼼이를 타이르며 먹였다.

꼼이가 의자에 드러누워 졸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나는 알람을 맞춰두고 잠을 청했다. 저녁에 지난 번 녹음했던 것을 믹싱하기 위해 녹음실에 가기로 했다.

나는 고단함이 없어지지 않고 있었다.
수술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지만, 결국 아프던 치아를 모두 뽑아내었다. 하는 수 없는 일이었다. 그 후 잇몸 수술을 한 번 더 했다. 아내도 마찬가지이지만, 나도 길게 잠을 자본지 아주 오래 되었다.

알람을 듣고 벌떡 일어나 강변북로를 달려 녹음실에 갔다.
믹싱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기 전에 편의점에 들러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샀다. 지난 번 아버지가 입원 중일 때에, 둘째 날 밤중에 혼자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사먹었었다. 오랜만이어서 그랬는지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나서 다시 먹어보고 싶었다.  집에 와서 그것을 먹고 드러누워버렸다.

깊은 밤, 고양이 꼼이에게 항암제를 먹이고, 빗질을 해주며 어루만져줬다.
아내는 아예 마루에 나와 고양이 근처에서 이불을 몸에 감고 잠들었다.
고양이 깜이와 짤이는 내가 앉아 있는 책상 곁에 와서 나란히 누워 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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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6일 토요일

고양이 진료.


고양이 꼼이를 데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동물병원에 다니는 중이다.
토요일 오후, 동물병원은 개와 고양이와 사람들로 붐볐다.

주치의 선생님이 검사결과를 알려줬다. 빈혈수치가 아주 조금이지만 더 나빠져 있었다. 림프절의 크기가 커진 부분이 나타났다. 그러나 종양 자체는 더 커지거나 하지 않았고 오히려 복수도 줄어있었다. 체중도 줄지 않았다. 의사의 소견으로는 빈혈이 내부출혈 때문이라기 보다 영양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강제로 사료를 먹이느라 아내는 고생스런 나날을 보냈는데, 그나마 그렇게 했기 때문에 이 정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한 달 전에 의사 선생님이 우리에게 꼼이의 상태가 길어도 3~4주 밖에 남지 않았다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었던 것을 기억하면, 그래도 아주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고양이 꼼이는 케이지에서 나와 아내의 품에서 놀기도 하고 창 밖을 구경하기도 했다.

조금 긴장이 풀렸는지 저녁 무렵부터 졸렸다.
저녁 밥은 따로 먹지 않았다. 일을 많이 하고 몸을 많이 움직인 날이 아니면 굳이 끼니를 챙겨 먹을 필요가 없다고, 아직은 그렇게 생각하며 지낸다.

집안의 고양이들이 장난을 하고, 칭얼거리며 간식을 보채기도 하였다. 꼼이가 아파하지 않고 어딘가 편안해 보여서 조금 더 근심이 줄었다. 더 오래 아프지 않고 함께 살기를 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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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4일 목요일

심야에 녹음.

밴드 녹음, 베이스 녹음

밤중에 서교동에서 녹음을 했다.
여러 번 해볼 필요 없었다. 소리를 조정하고 연습삼아 한 두 번 맞춰 본 다음, 그 직후의 연주를 그대로 녹음했다. 거의 한 번에 끝난 셈이다.
기분 좋게 녹음을 마쳤다.

학교에서 수업을 마친 후 곧장 고속도로를 달려 녹음실에 가느라 무엇을 먹지 못하였다. 녹음을 마치고 남아서 근처에 문을 연 식당에서 만두를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생각처럼 음식이 쉽게 입에 들어가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편의점에서 커피를 큰 컵으로 사서, 그것을 마셨다.

하루가 길었다. 많이 고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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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22일 금요일

고양이 수혈.



여섯 시에 마치는 수업을 하고 있는 중에 아내로부터 소식을 들었다.
고양이 꼼이가 비틀거리며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어서 택시를 타고 병원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꼼이는 수혈을 받기 위해 항히스타민과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고 있다고, 일곱시에 아내와 통화를 했다. 고양이를 치료실에 들여보낸 후 아내는 주치의와 긴 이야기를 했다고 했다. 꼼이의 빈혈수치는 사흘 전 보다 더 나빠졌다. 지금은 철분제 조차 전혀 체내로 흡수하지 못하고 있었다. 유일한 방법은 수혈 뿐이었다. 그 수혈이라는 것도 몸무게와 건강상태를 가늠할 때에 기대할 수 있는 효과는 겨우 12일 뿐이라고 했다. 열흘 남짓 지나면 다시 수혈을 반복하여 받아야 한다. 그렇게 빈혈 수치를 겨우 붙잡고 있는다고 하여 병이 낫는 것은 아니다. 이미 몸 안에 있는 종양들은 제거할 수도 없다. 수술을 통해 체내의 출혈을 바로잡으려 한다고 해도 그 결과가 좋을지 어떨지 알 수 없다. 무엇보다 고양이의 몸이 개복수술을 견뎌낼 수 없을 가능성이 크다.

아내가 수의사와 긴 이야기를 나눈 내용은 결국 어떻게 고양이를 치료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꼼이를 떠나보내는 것이 더 좋을까였을 것이었다. 그것을 말하는 줄 알면서도 나는 그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 자꾸 다른 이야기를 물어보았다.

고양이 꼼이와 이런 식으로 헤어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수혈하는데에 네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들었다. 여전히 나는 잠이 부족하고 잇몸은 아프고 치아는 흔들리고 있었다. 미열이 나던 것은 겨우 사라졌다. 지금 내가 아프면 그야말로 최악이다.

밤중에 중요한 합주를 하러 가야했다. 합주실로 가는 길에 동물병원에 들렀다.
합주를 마친 후 지하에서 계단을 올라 밖으로 나왔을 때에, 두통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계속 어지러웠다.

다시 동물병원에 들러 수혈을 받고 수액을 맞는 중인 고양이 꼼이를 만났다. 꼼이는 방을 옮겨 더 조용한 곳에 있었다. 수액이 연결된 관에 아직 피가 남아있었다. 당직 의사가 다가와 관에 남아있는 혈액이 수액에 밀려 조금씩 더 들어가는 중이라고 알려줬다. 내일 데리러 오겠다고 고양이에게 말해주고 집에 돌아와 잠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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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에 이미 아내는 혼자 동물병원으로 출발한 후였다.
오전에 동물병원에 도착했는데 오후 세 시까지는 기다려야 고양이를 퇴원시킬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 사이에 아내는 주치의 선생님과 긴 논의를 했고, 복용하는 항암제를 시도해보기로 했다고 했다. 그 방법과 순서를 전해들었다. 내 상태가 안 좋아서 잘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았다. 어지러운 것이 계속 되었다. 약 오십여분, 나는 자동차 안에서 눈을 붙였다.

꼼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고양이에게 더 많은 양의 스테로이드 약을 먹여야 하고, 조영제를 먹이고, 항암제를 나흘간 먹여야 한다. 그것으로 몸 안의 출혈을 막고 종양이 더 커지는 것을 억제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렇게 하더라도 기대할 수 있는 시간이 길지는 않을 것을 알고 있다. 고양이가 아프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머지 않아 지금보다 더 나쁜 상태로 앓다가 떠난다면 어떻게 해줘야 더 좋은 것일까, 잠깐 생각했다. 그것은 아직 눈 앞에 닥치지 않은 일이다. 지금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내 몸이 아프다는 말을 아내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는 없는 일이다. 아내의 손가락은 꼼이에게 사료와 약을 먹이느라 자주 이빨에 물려 구멍이 많이 났다. 늘 소독하고 약을 바르는 것만으로는 상처가 잘 낫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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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20일 수요일

추운 봄.


어제 밤에 이상한 꿈을 꾸고 일어나 몸은 피곤한데 다시 잠들지 못했다. 동이 틀 때에 다시 잠들었다가 그만 낮이 다 되어 깨었다.

꼼이가 하루 하루 더 아파 보였다. 안스러워 쓰다듬다보면 더 슬퍼졌다.
커피를 만들어 한 잔 가득 마셨다. 봄인데 마음은 한겨울 같다.

지난 화요일 이후 한쪽 잇몸이 다시 부었다. 사흘을 잠을 못 잔 상태로 꼼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가 벼락같은 진단결과를 들었었다. 그 다음 이틀을 학교에 다녀왔는데, 피로를 제 때에 풀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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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병원에 가서 고양이 꼼이의 혈액검사 결과를 수의사, 아내와 함께 보고 있었다.
거의 모든 수치가 빨간색으로 표시되어있는 것을 보고 있어야 했다. 올해 2월부터 여덟 번의 검사결과들이 모니터에 보여지고 있었다.
지금은 꼼이에게 빈혈이 제일 심각했다. 빈혈이 무섭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렇다고 다른 수치들이 심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스테로이드 투약 덕분에 장기 내의 종양이 더 커지지는 않았고 복수도 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 뿐. 위장관 쪽에서 출혈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아내는 꼼이를 위해 보조제를 구입하고 주사기와 피하수액을 주문했다. 우리는 무엇이라도 더 해줄 수 있는 것을 찾고 있다.

작고 하얗고 예쁜 어린 고양이를 안고 집에 돌아왔던 그 해의 겨울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순이가 어린 고양이를 며칠 혼내기도 하며 훈육했다. 천방지축, 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후 금세 몸집이 커져버린 고양이 꼼을 순이는 자주 핥아주고 데리고 다니며 놀았다. 둘이서 함께 껴안고 자주 잠들기도 했다. 순이의 제대로 된 첫번째 친구, 고양이 가족이었다.

꼼이는 내 책상 곁에 놓여진 순이의 사진 앞에 웅크리고 있었다. 다시 깊은 밤이 지나가고 있다. 집안은 조용하고 창문 밖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너무 추운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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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13일 수요일

너무 심하다고 생각했다.


퇴원 수속 후 아버지를 집에 모셔다 드리고 졸음 운전을 하여 집에 돌아왔다.
아내에게 꼼이가 구토를 계속 했는지, 상태가 좋아지지는 않았는지 물어봤다. 아내의 말에 따르면 고양이 꼼이가 혈변도 쌌고 구토도 계속 했다고 했다. 그래서 다시 병원에 진료 예약을 했다고 말했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시간을 확인한 후 한 시간 정도 외출복을 입은채로 잤다. 알람을 듣고 깨었을 때에 숨을 쉬기 위해 여러 번 심호흡을 해야 했다. 사흘째 잠을 거의 못 자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한 상태로 다시 자동차의 시동을 걸었다. 동물병원까지 가는 동안 아내도 나도 아무 말이 없었다.

고양이 꼼이의 검진이 평소보다 오래 걸렸다. 나는 진료실 벽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고 있었다. 이윽고 수의사 선생님으로부터 내 고양이 꼼이가 심각한 암에 걸렸고, 이제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들었다.
지난 번까지 발견되지 않았던 종양이 이미 간 근처와 소장, 대장에 모두 전이되어 있다고 했다. 복수가 생기기 시작했고 림프절로 보이던 것들이 암세포로 빠르게 커지고 있다고 했다. 나도 아내도 의사의 말을 그저 듣고만 있을 뿐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다시 몇 개의 질문과 대답이 오가고, 수의사로부터 차분하게 이야기를 들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약 4주 안에 고양이 꼼이가 죽을 것 같다고 하고,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통보를 듣고 있었다.

집에 돌아왔을 때에, 문득 이 집의 천장이 이렇게 낮았던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긴 침묵, 창문으로 들어오는 강바람이 피부에 싸늘하게 닿았다.

이건, 너무 심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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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10일 일요일

병원.


이른 아침, 알람을 듣고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짐을 챙겼다.
아픈 고양이를 살피고 곁에 앉아 오래 쓰다듬어줬다.

수술을 받아야 하는 부친을 모시고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 입구의 검역이 더 엄격해졌다. 이틀 전에 돌아다니며 감염을 전파했던 사람에 대한 뉴스를 본 것이 기억났다.

밤중에 잠시 병원 밖에 나와 사람 없는 곳에 서서 마스크를 벗고 숨을 쉬었다. 집에 설치해둔 웹캠을 들여다 봤다. 고양이들이 모두 돌아다니며 놀고 있었다. 나는 이가 빠진 미완성의 직소퍼즐처럼 여러 개의 찰나의 행복했던 기억들을 떠올렸다. 비어있던 퍼즐의 자리에 슬프고 화가 났던 기억들도 빠르게 지나갔다.

다시 병실로 돌아오는 길에는 응급실이 있다. 지난 번까지는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장모님 생각을 했다. 오늘은 어쩐지 그 기억들이 아득히 먼 옛 일들처럼 여겨졌다.

다시 병실로 돌아와 누워있는 부친을 살폈다.
지난 번에도 그는 몸에 연결된 주사 등을 뽑아버리는 바람에 병실 바닥을 피투성이로 만들었었다. 수술을 잘 마치고 집에 모셔다 드릴 때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나는 부친이 헛기침만 해도 벌떡 일어나 침상 위를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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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27일 월요일

병원.


월요일 아침, 출근시간.
도로는 정말 막혔다. 꼬박 한 시간을 운전하여 부모님 집에 도착했다.
두 분을 태우고 내비게이션이 시키는대로 옛 강변로를 따라 갔다. 금호동을 지나고 반포 다리를 건넜다.

진료를 받고 약을 사오면 끝나는 일정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난 주에 했던 혈액검사와 소변검사의 결과가 좋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은 만일 아버지의 암세포가 여전히 펴져있다면 방광을 절제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곁에 앉아있던 모친과 환자인 아버지 두 분이 동시에 손을 내저었다. 더 수술을 계속하고 싶지 않다고 하고 있었다. 의사가 시선을 나에게 돌려 설명을 이어나갔다. 우선 방광경 검사를 하고, 그 결과를 본 다음 다시 진료를 하자고 했다.

방광경 검사를 마치고 진료실에 다시 들어갔다. 나쁜 것은 또 다시 무엇인가가 발견된 것이었고,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크기가 아주 작다는 것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내시경을 이용한 수술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나는 곁에 있는 두 노인이 다시 이상한 말을 할까봐 급히 달력을 꺼내어 의사와 함께 수술 날짜를 약속했다.

입원을 위해 협진을 받기 시작했다. 갑자기 예정에 없던 일들을 해야 했다. 내분비과에 들러 진료를 받고, 혈액검사를 다시 했다. 순환기내과에 들러 진료를 받고, 각각 한 시간 간격으로 심뇌혈관과에 들르고 마취과에 가서 협진을 이어 받아야 했다. 심혈관과에서 지난 번 스텐트 시술을 했던 것에 문제가 있는 것이 발견되어 며칠 후 심장초음파 촬영을 새로 예약했다.

많이 걷고 오래 기다리느라 두 노인의 얼굴에 피로가 가득했다. 나는 일부러 계속 선채로 있었다. 결국 심장초음파 촬영과 재진료를 마친 후에 마취과 협진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수술동의서는 다음 주에 코로나 바이러스 검사를 한 뒤에 쓰기로 했다. 아침 아홉시에 도착했는데, 해가 저물 때가 되어서야 병원에서 나올 수 있었다.

부모 두 분을 다시 집에 모셔다 드리고 집에 돌아올 때에는 퇴근시간이어서였는지 도로의 정체가 지독했다.
집에 돌아왔더니 고양이들이 한 마리씩 뛰어 나와 반겼다. 몸이 편하지 않은 꼼이는 방안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손을 씻고 꼼이에게 다가가 안아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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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25일 토요일

나쁜 봄.


몇 달 만에 미용실에 갔다. 점심시간이라고 입구에 손으로 쓴 안내문이 붙여져 있었다.
가게 바깥에 의자 두 개가 보였다. 나는 그곳에 앉아 음악을 들었다.

잠시 후 직원이 문을 열고 나오더니 나에게 뭐라고 말을 했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어서 정확히 듣지 못했지만 음식 냄새가 나고 있으니 조금 후에 들어오라고 했던 것 같았다.

미용실 의자에 앉기 전에 마스크를 벗었다. 갑자기 다양한 냄새가 느껴졌다. 음식 냄새는 잘 모르겠고, 어떤 기억들을 순서 없이 불러 모으는 냄새가 났다. 마스크를 착용하는 생활 덕분에 후각이 둔감한 나는 외출하여 마스크를 벗을 때가 생기면 새로운 냄새를 접하는 기분이 든다.

짧게 머리를 깎았다.
경기도에서 지급해준 재난지원금을 다 썼다.

고양이 짤이가 봄볕을 느끼며 드러누워 뒹굴고 있었다.
따뜻한 봄이 되었지만 마음은 춥다.
올해의 봄은 나쁜 봄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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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24일 금요일

동물병원


정오에 고양이 꼼이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갔다.
혈액검사와 초음파 검사를 했다.
주치의 선생님이 말하길, 꼼이의 상태가 좋아졌다고 했다. 체중도 늘었고 췌장염 수치도 안전한 상태가 되었다. 아직 림프절이 여전히 보이고 있었다. 항생제를 일주일만 더 먹이고 한 달 뒤에 다시 검사를 하면 좋겠다고 했다.

집에 돌아와 꼼이는 식욕이 생겼는지 사료 그릇을 핥았다. 다른 고양이들이 먹다가 남겨둔 간식을 핥아보는 것은 꼼이의 버릇일 뿐, 무언가 배부르게 먹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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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15일 수요일

선거일


늦게 잠들었던 바람에 아홉시가 다 되어 일어났다.
청소를 하고 커피를 내렸다.
열두 시부터 온라인 수업을 시작해야 했다. 아내는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사전투표를 했기 때문에 아내가 투표를 하러 갈 것을 깜박 잊고 있었다. 나는 아내에게 수업을 마친 후 오후에 함께 투표장에 다녀오자고 했다.

첫번째 수업을 마친 후 방문을 열고 나와보니 아내는 그 사이에 투표를 하고 집에 돌아와 있었다.

온라인 수업을 마친 후 늦은 첫 끼 밥을 먹었다. 이후 개표방송을 한쪽에 틀어두고 수업자료를 정리했다.
저녁에 동물병원에서 전화가 왔고, 고양이 꼼이의 검진을 위해 병원 예약을 했다.
아프지 않은 고양이 두 마리는 아내가 심어둔 캣닢을 앞에 두고 한참을 뜯어 먹으며 놀고 있었다.

오늘은 세월호 사건 여섯 해가 되는 날이었다.
선거결과를 다 보느라 새벽까지 깨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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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12일 일요일

바람이 많이 불었다.


아침 일곱시에 깨었다.
오전에 커피를 세 번 내렸다.
열 시 쯤 아내는 고양이 꼼에게 사료를 챙겨 먹였다. 스스로 먹지 않고 있어서 사료를 물에 개어 조금씩 입에 넣어줘야 한다. 먹지 않으려는 고양이에게 음식을 억지로 먹이는 일은 쉽지 않다.

오후에는 고양이 깜이가 자다가 일어나 야옹거리며 간식을 달라고 보챘다.
아픈 고양이 꼼이는 좀처럼 이동하지 않았다.

밖에는 센 바람이 소리를 내며 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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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10일 금요일

온라인 수업



바이러스, 전염병...
이렇게까지 심각하고 기간이 길어질 것을 예상 못했다.
결국 4월 한 달 동안 '비대면 수업'이라는 명목으로 온라인으로 수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처음에 유튜브 스트리밍을 준비했다가, 그것은 결국 나 혼자 동영상을 만들어 배포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zoom.us 를 이용하기로 했다. 아마 그 회사는 이번에 수요가 아주 많아졌을 것 같다.

수업자료를 만들고 원고를 썼다. 처음 해보는 일이기도 했고 영상을 통해 수업을 진행할 때에 시간을 허비하면 안된다는 생각에 더 신경을 써야만 했다.
사용한 플랫폼은 화상회의 전체를 녹화해주는 기능이 있었다. 수업을 마칠 때 마다 기록된 영상을 확인하고 iMovie 로 편집하여 용량을 줄였다. 학교 측에서 증빙자료로 삼아 영상파일을 정해둔 곳에 올려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학생들에게 제공할 PDF 파일도 따로 만들었다. 음원 샘플을 조각 조각 만드느라 시간을 많이 보냈다. 학생들에게 과제를 내주고, 첫 주의 온라인 수업을 마쳤다.
뒷정리를 하며 생각해보니, 그냥 출퇴근 하는 것 보다 더 일이 많았다. 책상 위에 기기들이 어지럽게 굴러다녔다. 모든 사람들이 이전에 없었던 경험을 하고 있는 시기일 것이다.

다음 주 수업 시간은 선거일과 겹친다. 행정지침에 따르면 온라인 수업은 임시휴일이라고 해도 진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했다. 학생들에게 투표하는 데에 지장이 없는지 확인해달라고 메세지를 보냈다. 나는 사전투표를 하기로 했다. 나는 항상 선거일에 투표를 했었기 때문에, 이것도 처음 해보는 일이다.

2020년 3월 16일 월요일

연주.


지난 주 금요일, 서교동 클럽에서 공연을 했다.
이번에는 전날 밤에 합주를 할 수 있어서 연주하는데에 편했다. 합주라고 해봤자... 대충 한 번 맞춰보는 것이었지만.

감염병에 대한 소식은 넘쳐나고 한국의 언론은 여전히 마스크 타령인 중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공연을 보러 와준 분들이 많아서 뜻밖이었다. 사실은 무관중 공연이라고 해도 기꺼이 할 생각이었다.

하루 전 합주할 때에는 의자에 앉아있었기 때문에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스트랩이 조금 늘어난 것인지 내 체중이 조금 줄어버린 것인지 서있을 때에 악기의 위치가 약간 낮게 느껴졌다.
다음 주에 남아있는 한 곡이 마저 발표되면 또 공연을 하게 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짧았던 공연 시간이 근래 석 달 중 제일 마음이 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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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8일 일요일

어려운 시절.


새해의 첫달에는 그동안 읽으려 기록해뒀던 책들을 주문했었다. 책상 한쪽에 책을 쌓아놓고 음반을 한 장씩 틀어둔 다음, 책을 읽다가 앨범 한 개가 끝이 나면 잠시 일어나 쉬며 소일했다.

그런데 전염병이 시작되었고, 매일 뉴스를 보면서 점점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할 즈음 2월의 공연은 취소되었다. 언론은 스포츠 중계를 하듯 공포를 퍼뜨리고 있었다. 이제 학교의 개강은 무려 한 달이나 미뤄졌다. 3월에 약속되었던 공연이 다시 취소되었다. 나는 아무런 일을 하지 못한 채 새해의 첫 석 달을 수입 없이 보내고 있다. 이렇게까지 어려워질 것을 나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한가롭게 음악을 틀어두고 책이나 읽고 있었을 무렵에는 이제 곧 다시 바빠질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분들의 소식을 들었다. 그들 중 어떤 이는 나와 똑같이 당장 일거리가 없어져 곤궁해진 사람도 있었다. 어떤 분은 사업을 시작하였다가 지금 큰 낭패를 겪는 분도 있었다. 남의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큰 금액의 월세를 당장 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니까, 무슨 고생이라고 말을 할 수준이 되지 못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공연과 합주가 취소되고 연초부터 말로만 약속했던 모임도 소식이 없어졌다. 집 근처에서 한 번 만나자던 사람들에게는 지금의 감염병이 잠잠해지면 보자고 했다. 매일 외출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을 자주 대하는 일과도 없으므로 나는 마스크 따위를 새로 구입하지 않았다. 다만 평소 보다 더 자주 손을 씻고 있다. 하도 자주 손을 씻어서 그만 손이 건조해졌다. 손이 끈적거리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로션을 발라본 적이 없었는데 요즘은 손에 땀도 나지 않고 있어서 피부가 갈라지는 기분이 든다.
고양이 꼼이가 아파서 동물병원에 급히 데려갔다가, 입원도 시켰어야 했었다. 집에 사뒀던 일회용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 고양이는 입원 후 어느 정도 회복은 되었지만 아직 다 낫지 않고 있다. 병원에 계속 데리고 다니는 중이다. 아내는 일정한 시각에 고양이에게 물에 개인 사료를 먹이기 위해 몇 주 동안 긴 잠을 자보지 못하고 있다. 나는 아내가 고양이를 돌보기 위해 공책에 기록해둔 시간을 확인하며 약을 먹이거나 다른 고양이들의 간식을 챙겨주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는 전염병 보다도 고양이 꼼이 어서 말끔히 낫는 것이 더 중요한 듯 보인다.
더 어려운 시절을 맞지 않으면 좋겠다. 아마 모든 사람이 바라고 있을 것이다.




2020년 3월 2일 월요일

촬영.


친구와 함께 하는 밴드 멤버들이 오랜만에 악기를 가지고 모였다. 지난 해에 녹음했던 음악 중 한 곡이 발매되었다. 밴드는 '윤병주와 지인들'이라는 이름으로 정해졌다.
오늘은 공개하고 있는 곡들을 위해 비디오 촬영을 했다.

서교동 거리는 온통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걸어다니고 있었다. 주차를 한 뒤 차에서 내려서는 나도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 사람들은 전염병 때문에 두려움이 생겼고 간혹 맨 얼굴로 상점에 들어가면 직원 분들이 인상을 찌푸리기도 하였기 때문에, 남들을 불안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메르스라는 전염병이 창궐했던 것이 불과 사, 오 년 전이다. 그것이 지금의 코로나 19라는 것 보다 훨씬 지독했었다. 다만 그때와 달리 지금의 행정부는 일을 너무 잘 하고 있고, 지금의 언론은 그때와 달리 신이 나서 아무 말이나 하고 있다.

오랜 시간 촬영이 계속되니 슬슬 허리가 아파왔다. 그런데 나만 힘들고 아픈 것 같아서 내색하지 않으려 힘을 주고 서있었다. 알고 보니 다른 사람들도 피로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차라리 네 시간 동안 공연을 하는 것이 낫지, 같은 곡들을 여러 번 촬영만 하는 것은 고된 일이었다.

수고를 아끼지 않아준 감독님과 잘 준비해준 친구 덕분에 즐겁게 일을 마칠 수 있었다. 오가는 사람이 줄어버린 밤거리가 유난히 춥게 느껴졌다.

2020년 3월 1일 일요일

낫고 있는 고양이.


아픈 고양이는 조금씩 낫고 있다.
원래 오늘 오전에 주치의 수의사님과 진료 약속을 했었다. 아침 일찍 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와 수의사 선생님이 아파서 출근을 못한다고 알려왔다. 하는 수 없이 오늘은 병원에 데려가 피하수액과 주사만 맞추고 데려왔다.

까다롭고 예민한 성격인 고양이인데 의외로 병원에 다니거나 약을 먹고 주사를 맞는 스트레스를 잘 견뎌주고 있다. 오늘은 어제 보다 조금 더 나아 보여서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곧 완전히 낫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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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27일 목요일

고양이 꼼이 아프다.


열 두 살 하고 여덟 달 나이가 된 고양이 꼼이가 아프다.
부쩍 뼈가 만져질 정도로 말라서 그동안 우리는 고양이에게 강제로 사료라도 더 많이 먹이려고만 했었다. 지난 주에 병원에 데려가 검사를 했고 진단을 받아 한 주일 동안 통원치료를 했다. 동물병원에도 사정이 있었어서 빨리 입원을 할 수 없었다. 매일 병원에 다니는 치료로는 나빠진 수치가 좋아지지 않았다. 시간을 더 허비할 수 없는 것으로 보고 엊그제 진료 후 고양이 꼼을 동물병원에 입원 시켰다.

이틀 정도 지나자 얼굴 표정이 조금 나아졌다. 병원에서는 우리가 찾아가기 전에 직원 분이 직접 사진을 찍어서 아침 일찍 보내줬다.
함께 살고 있는 고양이가 아플 때 마다, 고양이가 아프다는 것을 더 일찍 알지 못했던 것이 항상 미안하고 후회스럽다. 이번에는 늦기 전에 치료할 수 있어서 다행인 결과가 되어지길 바라고 있다.

뉴스 화면은 온통 바이러스, 전염병, 이상한 종교와 더 이상한 정치집단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고양이 꼼을 돌보러 동물병원에 가면 여러 마리의 강아지들과 사람들을 만난다. 사람들은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고 함께 데려온 동물들은 너무 발랄하거나 간혹 가여운 상태가 되어 있었다. 처음 보는 동물들과 사람들이지만 그들 모두 건강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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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14일 금요일

봄이 일찍 오는가 보다.


올해엔 겨울이 조금 일찍 끝나려나 보다.
새벽 공기가 덜 추워서 잠깐 밖에 나가 산책을 했다. 강가에는 안개가 느리게 흐르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조용히 열었더니 고양이 꼼이 높고 좁은 곳에 올라가 나를 내려다 보았다. 깜깜하면 고양이가 뛰어 내려올 때에 다치기라도 할까봐 전등을 켜둔 채로 놓아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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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11일 화요일

영화.


지난 몇 달 동안 내가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에 관한 소식들이 풍성했었다.
새해의 첫 달에는 봉준호 감독의 수 많은 스피치들을 찾아보며 재미있어 했다. 통역가라기 보다는 문학인에 가까운 샤론 최라는 분이 유명해지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다.
그리고 오늘 미국에서, 감독과 그 영화는 오스카 상을 여러 개 받았다. 기분이 좋았다.

영화는 주관적이고 비타협적인 경험이다. 남들이 역겹다고 하는 영화가 나에게는 아름다울 수도 있고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열광하는 영화가 나에게는 참고 봐주기에 고통스러운 경우도 많다. 그래서 영화가 나올 때 마다 평론을 하고 대중들을 대상으로 리뷰를 해주는 분들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객관화된 특별한 능력인 것 같다.
올해 그 시상식에 한국영화 한 편과 함께 후보에 올랐던 영화들을 대부분 보았다. 내 취향으로 본다면, 나는 타란티노 감독의 슬픈 동화가 상을 한 개 쯤은 더 받을 줄 알았다. 원테이크처럼 보이도록 찍은 그 영국 전쟁영화는 유치했다. 와이티티 감독의 것은 진부했다. 스콜세지의 영화는 재미있었지만 두 세 번 볼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미국의 시상식 방송으로 생중계가 다 지나간 다음에서야 뒤늦게 보았다. 집에는 TV가 없고, 있었어도 굳이 그 종편 방송에서 보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말 오랜만에 오스카상 중계 전체를, 그것도 레드 카펫 인터뷰 부터 몇 시간 동안 보았다.
내가 어렸던 시절에는 일본어의 흔적이었던 '방화' (邦畵) 라는 명칭으로 '국산 영화'를 불렀었다. 큰 극장에는 주로 당시에 화제였던 미국영화를 보러 다녔다. '방화'는 주로 한적한 동네에서 '동시 상영'을 하는 극장으로 보러 다녔었다. 그랬던 시절을 떠올리면 지금의 한국 영화인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무엇보다도 우리 말로 만들어진 좋은 영화들을 볼 수 있는 것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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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촬영.


친구들과 함께 하고있는 밴드의 사진이 필요하여, 사진을 찍으러 오전에 남산으로 갔다.
평일 오전에 남산 도서관 앞은 한산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사람들이 계속 지나다녔다. 하늘은 오랜만에 맑았다.

촬영을 마치고 근처에 있는 기사식당에서 양이 많이 나오는 그 돈까스를 멤버들과 함께 먹었다. 나는 삼분의 일 정도를 남겨야 했다. 명동과 퇴계로를 자주 쏘다니던 어린 시절에는 어떻게 그 큰 접시를 싹싹 비웠는지 모르겠다.

사진 찍는 일을 마쳤고, 이제 다음 주에는 지난 가을에 녹음했던 음악이 발매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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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3일 월요일

겨울을 보낸다.


귀여운 식구들이 아침 마다 창가에 모여 앉아 새를 구경한다.
비둘기와 참새와 직박구리들이 베란다 창가에 매일 비슷한 시간에 찾아 오고 있다. 막내 고양이 깜이는 새들을 보는 것이 정말 재미있는가 보다. 오늘 아침 깜이는 굳이 내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자다가 반쯤 열어둔 커텐 사이로 새들을 구경하느라 잠을 깨었던 것 같다. 나는 잠결에 이 장면을 찍어 놓고 다시 눈을 감고 조금 더 자버렸다.

어릴 적에 나는 겨울을 좋아했던 적도 있었는데, 이제 추운 날들이 싫어졌다.
집안의 화분에는 새로 싹이 나는 여린 풀들이 보인다. 어서 따스한 바람 들어오는 계절이 시작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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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31일 금요일

햇볕.


내가 사는 집 앞에는 이제 막 시작한 강물이 한강이 되려고 달리고 있다. 맑은 날 아침에는 높이 떠오른 해가 강이 달려가는 방향을 따라 지나가며 낮 시간 내내 볕을 만들어 준다. 고양이들은 햇볕이 좋은 날에는 전날 밤에 미리 일기예보라도 확인한 것 처럼 일찍 자리를 잡고 누워서 오후까지 잠을 잔다.

고요하게 쏟아지는 햇빛을 받으며 자고 있는 고양이들이 재미있어서 사진을 찍었다. 막내 고양이 깜이는 눈을 뜨고는 기분이 좋은지 이상한 모습으로 갸르릉 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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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5일 일요일

2020 년이 되었다.


새해가 밝았고, 새해 첫 일요일 저녁 내내 고양이들은 내 침대 위에서 함께 잠을 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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