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30일 수요일

고양이 식구들

 


당뇨병을 앓는 고양이 이지를 치료하고 돌보느라, 우리는 여름 내내 집에서 보냈다. 이지는 이지대로 회복하기 위해 혈당을 재고 주사를 맞느라 고생을 했다. 그러는 동안 다른 두 마리 고양이들은 무더운 여름을 각자 알아서 지내야 했다.


나는 외출해야 할 때에 나가기도 하고 하루 이틀 집에 들어오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아내는 여름 전체를 집안에서 긴 잠을 못 자면서 고양이를 돌보았다. 사람은 고된 일과를 몇 달 째 보내고 있는데 언제나 곁에 '엄마'가 있으니 고양이들은 좋은가 보다. 다 큰지 오래된 막내 깜이는 부쩍 응석만 늘었다.


열 네 살 고양이 이지는 느릿느릿 낫고 있다. 최근의 혈당수치와 진료를 보면 머지 않아 remission 으로 되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나면 신나게 뛰기도 하고 깊은 밤 살금살금 나와 동생 고양이들의 밥을 몰래 먹어보기도 하고 있다. 혈당을 관리하기 위해 아내는 결국 다른 고양이들의 밥그릇도 모두 거두었다가, 모두에게 정해진 시간에만 먹을 수 있도록 하였다. 고양이들도 나도 어차피 살을 빼야하니까, 불만을 가지진 말자고 말해주고 있다.


2023년 8월 23일 수요일

마스크를 벗지 않는다

 


지하철을 타거나 공연장에 도착하여 몇 걸음 걸을 때에도 나는 여전히 마스크를 쓴다. 집 앞 편의점에 다녀올 때도,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느라 아파트 담장 안에서 다닐 때에도 나는 마스크를 벗지 않고 지낸다.

나에게 결벽이 있는 것은 아닌데, 그 이전에도 마스크를 쓰고 다니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귀찮기도 했고 남들이 이상하게 볼까봐 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판데믹을 거치면서 마스크를 쓰는 것이 기이하게 보이지 않게 된 후 나는 계속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닌다.

더구나 지금의 정권은 사람들의 안전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그런 무리들을 선출할 수도 있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한다면, 그 세력들을 계약기간을 채우기 전에 끌어내릴 수도 있는 게 민주주의일 것이다. 이미 해보지 않았나. 그 전까지는 우선, 살아남고 보아야겠다.

2023년 8월 13일 일요일

펜타포트 페스티벌

 



일주일 전에 펜타포트 페스티벌의 마지막 무대에서 연주를 하고 왔다. 아주 더웠고 습한 날이었다. 사흘 내내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은 분명히 체중이 줄었을 것 같았다.

펜타포트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건 오랜만이었다. 나는 해가 진 다음에 도착했는데 행사장 주변에서 아지랑이가 필 만큼 열기가 느껴졌다. 무대 뒤에 있는 대기실 컨테이너들이 친숙하게 보였다. 공연 직전에 사운드 체크를 할 때엔 그 사이 아파트가 많이 생긴 것이 낯설긴 했지만 익숙하고 아늑한 기분이 들었다.

펜스에 팔을 걸치고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지쳐보였다. 무대 위에선 많은 사람들이 공연을 위해 일하고 있었다.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여 연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스탭들이 믿음직스러웠다. 리허설을 더 짧게 할 수도 있었는데 중간에 문제가 생겼다. 그 때문에 시간을 다 써버려서 공연 직전에 화장실도 다녀오지 못했다. 괜찮아, 물을 안 마시면 되지, 라고 생각했다.



무대 앞에 사람들이 가득 모이고 우리는 약속했던 시간에 연주를 시작했다. 관객이 많으면 많을수록 연주하기에 편안한 마음이 든다. 페스티벌의 맨 끝 무대에 공연을 봐주러 모인 사람들은 조건 없는 호의를 베풀 준비를 마친 사람들이다. 그들은 아직 힘이 빠지려면 멀었다는 듯이 환호해 줬다. 음향도 좋았고 앰프의 사운드도 좋았다. 시간은 느리게 흘렀고 공연을 즐기며 연주할 수 있었다. 끝나고 났더니 너무 짧게 한 것 같았다. 보통 두 시간씩 공연을 하다가 한 시간 이십분을 연주했으니 짧게 느껴졌을 것이다. 거기에다 연습 때에 가늠해뒀던 시간보다 일찍 셋리스트 전체를 마치게 되었는데, 아마 앞 부분의 너댓곡을 너무 빠른 템포로 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았다.

예상은 했었지만, 마지막 곡을 마치고 대기실로 향하던 멤버들이 무대 뒤에서 일제히 뒤돌아 걸어왔다. 나는 내가 마시던 물병을 챙기느라 맨 뒤에 따라가다가 1차선에서 유턴을 하듯 그들을 따라 다시 무대쪽으로 걸었다. 소음이 많아서 무슨 곡을 더 할지 말해주는 것을 정확히 듣지 못했다. 어차피 인트로가 시작되면 금세 연주할 수 있으니까 별 상관은 없었다. 조바심도 없고 큰 긴장도 없는 것. 오래 해서 좋은 점은 여유롭게 할 일을 할 수 있는 것 정도다.

연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하루, 이틀, 그리고 목요일까지 할 일을 하고 나서야 천천히 그날의 일을 검색도 해보고 그 공연을 즐겼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읽었다. 모든 것이 엉망진창인 시절이지만, 그날 그 시간에 거기에 있던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올해의 여름 한 조각이 귀여운 모습으로 기억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일요일 밤에 밴드의 리더님이 이전보다 더 정성껏 연주하는 것을 곁에서 보았다. 그는 바쁜 일정 속에서 공연을 준비할 때에도 성의를 다 해서 연습하고 고민했다. 현장에 있던 관객들이 보내준 환호는 리더님의 정성에 대한 화답처럼 들렸다. 록페스티벌에서 순서와 시간이 주어졌다면 호응해줄 준비, 즐길 준비를 먼저 마친 쪽은 언제나 관객이다. 공연의 절반은 청중들이 해주는 것이다. 공연하는 사람은 정성껏 연주한 뒤에 겸손하면 된다.



2023년 8월 10일 목요일

잉크

 


만년필이 여러 개가 되었지만 쓰는 사람은 나 혼자이니까 잉크 소모가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일년 반 동안 62.5ml 펠리칸 잉크와 57ml 파커 잉크, 그리고 30ml 디플로마트 잉크를 다 비웠다. 아직 쓸 잉크는 많이 남아있지만 이렇게 빠르게 빈 잉크병들이 생길 줄은 몰랐다.


지난 달부터 펜에 잉크를 새로 담을 때마다 기록을 하기 시작했다. 7월에만 열 한 번 잉크를 충전했고 이 달 들어서는 이미 일곱 번이나 만년필에 잉크를 새로 채웠다. 뭘 이렇게 많이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여전히 글씨는 비뚤고 글은 조잡한데. 남아있는 잉크로 내년까지 충분히 쓰겠지만 다음 해에 잉크가 몇 병 정도 남을지는 계산하기 어렵게 됐다.


펜으로 매일 글을 쓰는 것에 열중하는 사이에 내 홈페이지에 사진과 글을 올리는 양은 줄었다. 키보드를 두드려 글을 쓰는 것에 흥미를 잃은 것은 아닌데, 남이 읽어도 좋은 내용으로 글을 다듬는 것에 공들이지 않게 되어버린 것 같다. 몇 해 전만 해도 펜을 쥐고 매일 뭔가를 쓰고 있는 생활을 하게 될 줄 몰랐다.
다 쓰고 난 빈 잉크병들은 버리지 못하고 책상 위에 놓아뒀다. 비어버린 잉크병을 특별히 쓸 데가 없을텐데 그냥 먼지가 앉도록 놔두고 있다.



2023년 8월 4일 금요일

식구 돌보기


고양이 이지는 회복하는 데 속도가 붙지는 않고 있지만 잘 낫고 있다. 병원 진료를 다녀와 힘들었는지 시원한 바닥에 몸을 대고 아내의 팔을 베고 누워있었다. 매일 귀를 찔러 몇 번씩 혈당을 재고 하루에 두번은 인슐린 주사를 맞고 있으면서도 짜증이나 불평을 하지 않으니 미안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햇볕이 가득 들어오는 낮에 아내는 고양이 이지를 품에 안고 발톱을 깎아주고 있었다. 나는 책상 앞에 있다가 또깍 또깍 발톱 깎아주는 소리를 듣느라 잠시 음악을 끄고 문 너머로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