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29일 목요일

순이가 다 나았다

순이가 다 나았다.
오후에 병원에 가서 수술한 곳의 실밥을 제거했다.

고양이 순이도 기분이 좋아졌는지, 집에 돌아올 때에 표정도 밝고 수다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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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28일 수요일

순이가 회복하고 있다.

순이는 일주일만에 빠르게 회복한 것 같다. 이틀 후에 배에 남아있는 실을 풀으러 갈 예정이다. 하루 하루 몸이 나아지는 모양이더니 어제 아침엔 일어나자마자 깡통 사료 한 개를 다 비우고, 기지개도 늘어지게 폈다. 그리고는 집안의 고양이들에게 시비 걸고 툭툭 치며 다니기 시작했다. 마치 밀렸던 일을 하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상처를 자꾸 핥으려고 하여 다시 갓을 씌워놓았다. 잘 먹고 편안한 표정으로 잘 잔다. 고생을 시켜서 참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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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25일 일요일

윤기형님과 함께

드러머 강윤기 형님의 합류.
나는 윤기 형님과의 첫 만남을 특별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 분과의 연습과 공연은 짧은 몇 주였지만 그 경험으로 나는 배운 것이 많았다.

육 년 전의 이야기...

몇 년이 지나서 세션이나 녹음도 아니고 이 분과 함께 밴드를 하게 되었다니, 현실감 없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데 주저함이 없으신 55세의 베테랑 드러머인 이분은, 우리들과 함께 만났던 첫 날 부터 아이폰에 무척 관심을 보이더니 이제는 아래와 같은 그림이 되어버렸다.

윤병주, 이상훈, 최원식, 강윤기
커피집에 모여 앉으면 늘 양손으로 주물럭 주물럭 아이폰질을 하는 모양이 되어버렸다. 이것은 윤기형님의 표현이다.
대기실에서도 음악 이야기, 공연 후 식당에서도 음악 이야기, 아이폰 이야기, 다시 심야의 커피집에 모여서도 음악 이야기, 연주 이야기.
밴드 생활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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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22일 목요일

고양이의 정(情)

고양이 꼼은 작은 몸집이었던 어린 시절에 순이를 만났다. 지금은 순이보다 두 배나 몸집이 커져버렸다. 
꼼은 순이가 입원한 뒤로 쓰레기통, 가구 아래, 방석 밑 (그런곳에 고양이가 숨을 수 있을리 없잖아, 바보. ) 을 들쑤시며 순이를 찾아다녔다. 방문 열고 들어가 구석 구석 들여다보고 두리번거리다가 다른 방으로 뛰어가보기도 했다. 자다가 일어나서 소리내어 불러보기도 했다. 순이를 찾느라 꼼의 표정이 초조해져있었다.

이 넘이 퇴원한 고양이를 그루밍해주려다 실밥을 풀어버릴까봐, 얘한테 갓을 씌워줘야하는가... 고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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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가 수술을 받았다

고양이 순이는 수술 잘 받고 회복중... 배에 바느질자국을 하고는 집에 가겠다고 떼를 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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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21일 수요일

순이가 아팠다

나는 아둔하고 무뎌서 자주 눈치도 없다. 그런데 고양이가 몸이 아프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몇 해 전 꼬마 고양이가 집에 새로 왔을 때에도 어쩐지 어딘가 불편해보여서 쓰다듬다가 뭔가 많이 아파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알고보니 서두르지 않았으면 심각했을 수도 있었던 피부 종양이었다. 어린 고양이 주제에 길게 바느질 자국을 얻은채 집에 돌아왔었다.

이틀 전 몸이 천근만근 무겁고 너무 피곤한 상태로 집에 왔을 때에 일곱살짜리 고양이 순이가 나를 쨘 올려다보고 있었다. 보통은 그냥 인사를 하고 반가와해주거나 하는데 한참을 눈을 맞추고 뭐라고 하는듯 나를 쳐다보았다. 그땐 뭐 그냥 '일찍좀 다녀라.' 정도의 의미였나 했었다. 그런데 새벽에 순이를 토닥토닥해주고 잠을 자러 방에 들어가려는데 느낌이 이상했어서 아내에게 그랬었다. "얘가 어디 아픈 것 같아. "

다음 날 낮에 볼일을 위해 밖에 나왔는데 전화기 너머로 다급한 아내 목소리... 순이가 많이 아프다는 것이었다.
동물병원에서 검사를 하고 약을 받고 수술을 예약했다. 고양이에게 약을 잘 먹이는 아내 덕분에 순이는 항생제를 받아먹고 열이 조금 내리기도 했다.
몇 시간 전, 고양이를 입원시키고 집에 돌아왔다. 수술은 내일 낮. 나는 밤중이 되어서야 돌아올테니 회복하고 있는 순이를 보러 가게 될테지.

집안은 철없는 어린 고양이가 철이 들다만 다른 고양이와 이리 저리 뛰느라 잠시 소란하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그러고보니 칠 년 동안 언제나 나갔다 돌아오면 샴고양이 순이는 반가와하며 인사를 했었다. 순이가 집에 없으니 많이 허전했다.

순이는 수술하기 위해 열 두 시간을 굶어야했다. 입원하러 간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듯, 순이는 저녁에 평소 안먹던 깡통사료를 남김없이 먹고, 화장실에 가서 볼일도 다 보았다고 아내가 말해줬다. 자, 준비 끝~ 이라는듯이 이동장 안에 걸어들어가 앉은 것을 사진찍었다고.

수술 잘 받고 어서 나아라,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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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19일 월요일

스페이스 공감

공감 공연. 밴드가 숨을 다듬고 한 바퀴 돌아가는 동안의 기록이 되었다.
그리고 인연인지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현실성 없을 것 같았던 일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나이 들면서 별로 신기하게 여겨지지도 않는 데자뷔의 연속.
리허설을 마치고 관객석에 앉아 쉬면서 지난 몇 년의 일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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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15일 목요일

통기타

아침 출근길에 조동진, 시인과 촌장, 어떤날의 노래들을 계속 들었다. 언젠가 한 개 사야지, 하면서도 계속 미루고 있는 통기타. 지나가다 소리가 좋을 것 같은 느낌의 어쿠스틱 기타를 보면 붙들고 앉아서 쳐보고 싶어한다.

깊은 밤, 한쪽 다리에만 심한 통증이 계속된 것이 벌써 한 달 째. 가만히 앉아있어도 무릎 밑으로 발목까지 통증이 떠나지 않으니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졸리우면서도 못자고 있는 중에 그 옛날 '우리노래전시회' 음반들이 무척 생각났는데 들을 수가 없다. 아직 재고를 가지고 있는 레코드점이 있을만도 한데... 웅얼거리며 다리를 주물러보기도 하고.

노래가 해주는 얘기들을 다시 들으며 밤을 보내고 있다. 새로 만들기 귀찮아 다시 우려먹은 재탕 커피의 향기가 꼭 통기타 냄새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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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7일 수요일

그린룸에서

마지막 공연에 큰 도움을 주신 산울림의 둘째, 김창훈님.

공연 도중 이 분은 무대 위 막 뒤에 서신채로 노래를 따라부르고 몸을 움직이며 우리와 함께 공연을 치르셨다.
연주 도중 그쪽을 바라보면 얼마나 즐겁게 웃고 계시는지 싱글벙글... 그러다 물기 많은 눈빛도 보이고.
그 진심과 순수한 표정이 기억에 남는다.

그 공연에서 우리가 연주했던 곡들 중에는 그분들 세 형제가 오래전 만들고 녹음했던 것들이 많았다.
아무리 그 마음을 가늠한다고 해도 젊은시절의 시간들과 먼저 세상을 떠난 형제에 대한 감정을 우리들이 그대로 느껴볼 수는 없을 일...

함께 연주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돌아가신 분도, 막의 뒤에서 두 시간 반을 넘게 선채로 지켜 보셨던 분도, 마이크 앞에서 얕은 흐느낌 섞인 음성으로 노래하던 분도 모두 그자리에 모여 공연하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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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6일 화요일

커피집

시애틀의 커피집에서 상훈씨가 팔을 뻗어 셔터를 누른 한 컷이다.
너무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닥쳐도 함께 하는 동료들을 믿고 걸어간다.
이젠 좀 좋은 일들만 만들어보자고 생각하며, 웃어보였다.
명색이 시애틀이었는데... 커피의 맛은 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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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4일 일요일

리무진 타고 맥도날드 가기

시카고의 공연 주최측에서는 멤버들의 이동용 차량으로 리무진을 빌려주셨다.
이것은 정말 '오바'다.
그 비용을 듣고 깜짝 놀랐다.
혹시라도 다음번엔 그럴 돈으로 소음 없는 하이브리드 차를 빌려주셨으면.

시카고 시내를 보러 가겠다고 길을 나섰는데 그때도 리무진이 대기중이었다.
어디에 잠깐 정차를 해도 길 가던 사람들모두 쳐다보았다.
그렇다고 타고 내릴 때 마다 "저희의 의지가 아니었어요. 이거 할 수 없이 타는 겁니다"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 상황은 재미있었다.

압권은 리무진으로 호텔에 남은 분들께 김밥을 배달하고 오셨어야 했던 매니저님의 일화와,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근처의 맥도날드 앞에 그 길고 긴 차를 세우고 우루루 들어가 쉬~를 하고 나왔던 일이었다.

아무도 뭐라고는 안했지만 어쩐지 미안해서 저마다 맥 카페 한 컵씩 사들고 나왔다.
리무진 타고 맥도날드 가서 커피 한 잔 사먹고 왔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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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부족하고 몸은 엉망이다.

리허설 때의 피곤한 두 사람의 모습이 사진에 담겨있다.

어제는 아주 잘 잤다고 생각했는데 오후부터 다시 잠이 밀려왔다. 밤이 되자 아무데라도 드러누워버리고 싶었다. 얼굴은 점점 인상을 쓴 표정이 되었다.

밤에 연주했던 곳에서도 피곤이 쏟아지는 바람에 마지막 곡에서는 깜박 졸아버렸다. 아차, 하는 사이에 도돌이표를 두 번 돌아가고 있었다. 연주를 마치자마자 얼른 집으로 가고 싶어서 자동차에 올랐다. 졸음운전을 하지 않으려고 음악을 크게 틀었더니 하필이면 낮에 듣다가 그대로 꺼뒀던 곡이 다시 흘렀다. 조동진의 '차나 한 잔 마시지'였다. 밤길에 흐르고 있던 그 노래는 사람을 더욱 졸립게 만들었다.

개운한 느낌, 맑은 머리속의 상태가 필요하다. 이제 잠들면 낮까지 깨어나지 않으면 좋겠다.
가벼운 몸으로 깨어날 수 있다면 조용히 볕을 쬐며 차나 한 잔 마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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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시카고에 도착하여 담배 한 개비를 피웠다. 그 자리에 운 좋게 인터넷 신호가 잡혔다. 덕분에 메일을 확인하고 뉴스를 읽었다.
햇빛은 밝고 바람이 많은 맑은 외국의 하늘 아래에서 국내 소식을 읽고 가슴이 답답해졌었다.
입을 벌리면 한숨과 연기가 섞여서 나왔다.
몇 시간 후 시작될 공연준비를 위해 바삐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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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3일 토요일

참새와 방앗간

아무리 바빠도 그냥 지나치긴 섭섭하니까. 뭐 더 볼 것이 없다고 해도 안들러보면 개운치 않으니까 꼭 가보게되는 악기점.

그런데 이번엔 눈에 들어오는 것이 전부 덩치 큰 하드웨어들이었다. 가격이 좋았던 앰프와 콘솔들을 바라보며 입맛만 다시다가 나와야했다.

가격이 많이 오른 베이스줄이 그곳엔 삼 년 전 가격 그대로이길래 눈에 보이는대로 몇 세트씩 사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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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없으면 후지다


설마 공항에서는 인터넷이 될줄 알았다.
일행 모두가 아이폰.
이동할 때 마다 인터넷 신호를 확인하느라 바쁘고, 운좋게 와이파이 신호를 붙잡게 되면 그 자리에 서서 아이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안되더군. 미국 후지다.
미국에서 WIFI를 사용할 곳이 없었다. 서울에서는 운전 중에도 인터넷 신호가 잡힌다.
동료들과 시애틀, 시카고 거리를 걸어 다닐 때엔 유리창에 Free WIFI가 적혀있는 커피가게를 찾느라 애먹었다. 기껏 찾는다고 해도 속도가 너무 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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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리허설

시카고의 공연장은 이번 투어에서 제일 준비가 잘 되어있었던 곳이었다.
모든 악기가 제 위치에서 대기중이었고 엔지니어는 필요한 준비를 모두 끝내고 우리를 기다려줬다. 그게 당연한 것인데도 안도하고 기뻐해야했던 현실이었다.
기타 앰프에 문제가 생겼었지만 그것도 곧 해결할 수 있었다. 이번 미국행에서 가장 빠르고 완벽한 리허설을 마쳤다.
소리가 좋으면 똑같은 분량의 연주를 마치더라도 기진맥진하지 않게 된다. 당연히 공연의 결과도 좋을 수 밖에 없다.
성의를 다해서 준비하고 도와주신 시카고의 분들께 감사 인사를 여러번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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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자의 모습

우리들 중 제일 늦게 아이폰을 장만한 상훈씨.
늦게 배운 뭐뭐로 밤 새는줄 모른다더니.
며칠 만에 놀라운 검색 능력과 학습량으로 단번에 고급 사용자로 변신했다. 새벽에 와이파이 신호가 잘 잡히는 호텔 로비로 나가면 반드시 그가 있었다.
귀국행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는 동안 시카고 공항의 어느 기둥에 콘센트가 있는 것을 발견, 내가 말해줬더니 맥북과 아이폰을 충전하며 자리잡고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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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함 견디기


공연 장면의 사진을 보니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동료들의 얼굴에도 피곤이 가득 보였다.
힘든 일정에 수면부족이어서 피로한 것이야 어쩔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불필요한 진행의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고 견뎌내어야했던 피곤함은 치명적이었다. 그런 것에도 털털하게 웃어넘기고 요령껏 잘 해나갈 수 있으려면... 도를 닦아야할 것 같았다.
공연 사진들이 도착하면 그제서야 기억이 날 것 같은데, 공연마다 체력이 손실되어서 자세한 기억이 없다. 웃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들만 파편처럼 떠오른다. 좋군. 그게 어디야. 일그러진 인상들이 기억나는 것 보다야 훨씬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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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2일 금요일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외국의 도시를 세 군데 돌아다니고 돌아오느라, 그쪽의 국내 항공사를 이용할 일이 있었다.
그곳에서 짐을 부리는 분들이 악기를 거칠게 다루지는 않았기 때문에 고마왔지만 무게에 상관없이 짐의 갯수에 따라 돈을 받고 있는 항공사는 미웠다. 그런 줄을 알았다면 하드쉘케이스에 이펙터를 잔뜩 채워서 갔을 것이다.
유나이티드 에어라인은 30일 내에 다시 출국하는 고객에게 별도의 짐값을 물리지 않기도 했다. 버진 항공사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드 케이스는 그동안 숱한 비행에, 아니면... 마구 던져진 덕분에 그만 너덜너덜해졌다. 악기가 과연 보호는 될 것인지 의심스러운 상태가 되었다. 더 견고한 제품으로 장만해야 좋은 것일까.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장기 주차장까지 짐을 들고 밀고 걷는 동안 트렁크의 바퀴소리가 조용한 새벽에 성글게 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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