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29일 수요일

일기장


나는 이 일기장 프로그램의 오래된 버젼을 쓰고 있었다. 제작사에서 새로운 앱을 팔기 시작하면서 내가 사용하는 버젼은 더 이상 지원하지 않겠다고 한지 오래 되었었다. 나는 그들의 새 제품을 구입하지 않고 맨처음 구입했던 오래된 버젼을 고집했다. 내가 사용할 기능은 이 버젼의 것으로 충분했기 때문에 컴퓨터와 모바일의 오에스를 업데이트할 때마다 잔고생을 하면서도 꾸준히 이 프로그램을 사용해왔다.
그런데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더 이상 지원하지 않을뿐 아니라 아예 새해의 캘린더를 볼 수 없게 해둔 것이었다. 이럴줄은 몰랐다. 최신 버젼의 것을 다운로드 할 것인지 고민해봤지만, 제작사는 이제 이 앱을 '구독 형식'으로 바꿔버렸다. 잡다한 많은 기능이 담겨있어 훌륭해보이긴 했는데 그것을 구입하여 새로운 호구가 되고싶지는 않았다.
아직 이 앱만큼 기기간의 동기화나 사용하는데에 편리한 프로그램은 보지 못했다. 더 쓰지 못하는 것은 아쉬웠다. 그대신 거의 이십여년 만에 종이 일기장을 구입했다. 다시 손으로 적는 일기장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 새해부터는 공책 일기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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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27일 월요일

귀여운 개들, 성격검사


시골에 갔다가 부모님 두 분과 함께 식당에 들러 점심을 먹었다. 식사를 마칠 즈음 아내가 먼저 밖으로 나갔고, 조용히 챙겨둔 고기 몇 점을 문 밖에 있던 개들에게 주고 있었다. 우리에겐 늘 있는 일이다. 둘 중에 더 똑똑해 보이는 개는 아내에게 빨리 달라고 재촉하지 않고 자존심을 지키며 아내의 손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내는 나에게 MBTI 검사를 해보라고 권하고 있다. 자신의 결과를 알려주며 내것도 궁금하다고 했다. 나는 웬만하면 해볼 수 있을 일인데도 하지 않고 있다. 그런 것으로 사람의 성격을 구분하여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도 하고, 어쩐지 그것이 새로운 혈액형 종교 같은 기분이 들어서 별로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요즘처럼 그 검사가 인기있기 전에 어떤 계기로 이미 해본 적이 있었다. 네 개의 알파벳 전부가 기억나지는 않는다. 그대신 처음 몇 줄에 적혀있던 나에 대한 설명은 기억한다. 그것에 의하면 나는 '동물을 싫어하고 사업과 이윤에 밝은 사람'이라는데, 어딘가 평행우주 속의 다른 나에 대한 이야기인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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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23일 목요일

매트릭스: 부활을 보았다.

 



극장에서 상영을 시작한다는 소식을 듣고 오늘 서둘러 가서 영화를 보았다. 영화가 시작할 즈음 다른 손님들이 몇 분 들어오긴 했지만 적어도 광고를 하고 있는 동안까지는 상영관 안에 나와 나 때문에 함께 따라와버린 아내 두 사람 뿐이었다. 이십년 전에 처음 나왔던 영화의 뜬금없는 새 시리즈를 관객들은 그다지 흥미있어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물론 나는 두 시간 동안 혼자 킬킬 웃으며 아주 재미있게 보았다.

래리 워쵸스키 (모두 워쇼스키라고 하는데, 키아누 리브스가 인터뷰에서 '워쳐우스키'라고 하길래 나도...) 로 시리즈의 처음을 시작했던 감독은 이제 라나 워쵸스키가 되어서 마지막 시리즈를 내놓았다. 당시에는 형제였던 앤디 워쵸스키와 함께 세 편의 시리즈를 만들었는데, 지금은 자매가 된 그 릴리 워쵸스키 없이 이번엔 라나 워쵸스키 혼자 감독하였다. 나는 영화가 개봉하면 꼭 보러갈 생각으로 그 사이에 앞의 세 시리즈를 다시 보아뒀었다.



이십여년 전에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이 영화에 빠져들었던 나는 2003년에 마무리했던 세번째 시리즈 레볼루션의 결말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사실은 그 이후 한참 시간이 흐른 다음 영화를 몇 번이나 다시 본 다음에야 그 이야기의 흐름을 납득할 수 있었다. 그래서 뭔가 끝내지 못한 결말을 보충해주는 마지막 회가 세상에 나와주기를 기다렸었다. 드디어 세상에 나온 네번째 시리즈를 나는 사용설명서를 미리 읽어둔 게임을 하는 것처럼 쉽게 따라가며 볼 수 있었다. 많이 웃고 아주 재미있었지만, 좌석에 앉아 스크린을 바라보면서, 아이구 이 영화는 손익분기점까지 못 갈 수도 있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가는데, 너무 관객이 없으니 계속 의자에 붙어서 마지막까지 앉아있겠다고 떼를 쓰기엔 심야에 고생하는 직원들의 눈치가 보였다. 나중에 크레딧 뒤에 쿠키영상이 있다는 이야기를 읽고 꺼지지 않은 스크린을 지나쳐 나온 것을 후회했다. 주차장에 가기 전에 화장실에 들렀더니 이십대로 보이는 친구들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아직 화가 나지는 않았지만 어딘가 사기를 당한 기분인 듯 불평을 하고 있었다. '영화가 재미있었다'라고 끼어들었다가는 나쁜 경험을 할 것이 틀림없어서 나는 얌전히 볼일을 마치고 나왔다.

2021년 12월 20일 월요일

스티브 스왈로우

 


기타리스트 존 스코필드의 2020년 앨범 Swallow Tales를 한 해가 지난 이 즈음에야 듣고있었다.

기타리스트의 기타 트리오 편성 음반이지만 이 앨범의 주인공은 베이시스트 스티브 스왈로우이다.  아홉개의 오리지널 곡은 모두 스티브 스왈로우 작곡이다. 믿음직한 드러머 빌 스튜어트의 완벽한 리듬연주 앞에서 선생과 학생으로 만나 수십년 동안 우정을 가꿔온 두 명인의 연주를 듣다보면 50여분이 언제 흘러갔는지 모른다. 세 사람의 연주는 튀어오르지도 너무 가라앉지도 않으면서 모든 곡에서 깊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듣다보면 저절로 탄식이 나오는 순간이 많은 앨범이다.

세 사람은 같은 또래의 동료들은 아니다. 스티브 스왈로우는 '40년생, 존 스코필드는 '51년생, 빌 스튜어트는 '66년생이다. 스티브 스왈로우는 존 스코필드의 1980년 앨범 Bar Talk 이후 스코필드의 앨범 여서 일곱 장에서 베이스 연주를 했다. 빌 스튜어트는 스물 네살 때에 존 스코필드의 Meant To Be 앨범에 참여한 이후 스코필드의 앨범 열 다섯 장에서 함께 연주해왔다. 이 앨범은 스왈로우 선생님과 각별한 친분이 있는 존 스코필드가 오랜 세월 자기들끼리만 연주해보았던 스티브 스왈로우의 곡을 녹음하자고 제안하여 만들어졌다고 한다. 앨범 전체가 차분하고 정갈한 기분이 드는데 그것은 혹시 ECM에서 만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선곡과 연주가 담백하여 ECM에서 내기로 한 것일지도.

베이시스트 스티브 스왈로우에게는 어떤 신비로움 같은 것이 있다. 그가 아주 젊은 시절에 이미 '잘 나가는'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였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나는 그가 '70년대 중반 이후 악기를 바꿔 연주해온 것을 들으며 나이를 먹었다. 긴 세월 내내 그는 어떤 범주에 집어넣기 힘든 고유한 일렉트릭 베이스 연주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가진 일렉트릭 베이스기타에 관한 관점이나 생각에 동의하지 못한다. 굳이 새로 고안하여 이상한 모양의 악기를 완성하고 직접 연주하고 있는 것에도 나는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그의 연주를 따라해보거나 솔로를 듣고 베껴 연주해볼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언제 어느 음반에서나 그의 연주는 특별하다.  그의 연주를 듣고 있으면 매순간 스왈로우 세계의 어떤 풍경이 새롭게 펼쳐진다. 완벽하고 아름다운 triad 사용법이라던가, 그가 기타피크를 쥐고 탄현하는 길고 짧고 세고 여린 모든 음들이 들려주는 깊이라던가 하는 것은 다른 누구에게서도 들어볼 수 없는 소리이다. 나는 아마 그의 연주를 따라해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그런 일을 시도해볼 엄두를 내본 적이 없었던 것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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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22일 월요일

고마왔어요, 할머니.

 


내 외할머니. 스물 네살에 내 엄마를 낳았다. 내 엄마는 스물 네살에 나를 낳았다. 할머니는 마흔 여덟살에 외손주를 보았다. 그는 첫 손자인 나를 많이 귀여워했다.

나는 내 엄마의 부모,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좋아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 못지 않게 나를 예뻐했다. 나에게 다정했던 외할아버지는 너무 일찍 돌아가셨다. 
할아버지가 돌연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그는 갑자기 아내를 데리고 단둘이 남산에 놀러가자고 했단다. 계획도 없이 할머니의 손을 잡고 남산에 올라간 외할아버지는 그곳에서 아내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외할머니는 그 기억을 언제나 행복하게 이야기했다. 그 사진은 외할머니 집에 항상 놓여있었다. 고운 옷을 입고 있는 흑백 사진 속의 중년 부부는 활짝 웃고 있었다. 나는 외할아버지가 로맨틱한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할머니는 여생 동안 내내 일찍 자신을 떠나버린 남편을 그리워했다.

나는 육년 전 할머니의 생일에 이 사진을 찍었다. 갑자기 할머니는 낙상을 하여 정형외과에 입원했었고 그 뒤로 건강이 점점 나빠졌다. 나중에는 요양병원에 계셔야 했다. 할머니는 지난 금요일 새벽에 급히 연락을 받고 달려간 큰 딸과 두 아들을 만난 후 돌아가셨다. 임종을 지킨 내 엄마에 따르면 할머니가 마지막 숨을 거두실 때에 감겨진 두 눈에서 양볼을 타고 눈물 한 줄기가 길게 흘렀다고 했다.
가족 모두가 모여 사흘 동안 장례를 치렀다. 나는 할머니의 유골함을 가슴에 안고 할아버지가 묻힌 묘지로 갔다. 할아버지의 묘에 할머니의 유골이 합장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장례를 모두 마치고 돌아와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꿈을 꿨는데, 작은 새 한 마리가 지저귀며 한참을 날고 있었다. 아마 내가 피아노 독주 음악을 틀어둔채로 자고 있었기 때문인가 하였다. 

아흔 아홉살 우리 할머니, 편안히 쉬셔요. 많이 고마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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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10일 수요일

지나가버린 가을.


 그동안 멈춰야했던 것을 앙갚음이라도 하듯 바쁘게 시월을 보내고 나서, 다시 학교의 일과 집안의 허드렛일들에 시간을 쓰다보니 그만 가을이 지나가버렸다. 피곤한 몸으로 돌아와 손과 얼굴을 씻으려는데 고양이 깜이가 내 곁에 뛰어올라와 쳐다보고 있었다.


아내가 만들어주고 사다준 장난감이며 쿠션들은 본체만체하고 고양이들은 저렇게 빈 종이상자를 오가며 놀고 있다. 날씨가 추워지니까 슬슬 사람 곁에 붙어서 잠을 자려고 한다. 올 가을은 단풍이 물들었는지 낙엽이 떨어졌는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없어져버린 것 같다.

올 겨우살이도 고단할 것이고 큰 선거가 다가올수록 공해에 가까운 것들도 자주 보게 되겠지. 오래도록 그랬던 것처럼, 외출 후 집에 돌아오면 반겨주는 고양이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식구가 있다는 것이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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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26일 화요일

부산에 다녀왔다.


 길고 긴 열 네 시간이었다. 나는 두 시간 전에 집에서 출발하여 서울역으로 향했다. 일찍 도착하여 햄버거를 사먹으며 시간을 보내겠다고 아내에게 말했었다. 내비게이션 앱이 평소와 다르게 한강을 건너 돌아가는 길을 안내했을 때에, 나는 그것을 무시했다. 가끔 아이폰 앱은 불필요한 경로를 안내할 때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곧 나는 내 판단이 틀린 것을 알았다.

끔찍한 도로정체를 겪었다. 내비게이션 앱은 서울역에 도착할 예정시간을 점점 늘리고 있었고 꽉 막힌 도로는 뚫리지 않았다. 한 시간 십여분 동안 길 위에 갇혀 있었다. 손에 땀이 나고 입이 말랐다. 겨우 정체구간을 벗어난 뒤에는 정신없이 차를 달렸다. 몇 년 만에 과속도 했고 차선을 위반하기도 했다. 그러나 제 시간에 역에 도착하여 기차를 타기에는 무리였다.

아내에게 전화하여 도움을 청했다. 아내가 빠르게 판단하여 다음 기차를 예약해줬다. 매니저님에게 급히 전화하여 사정을 설명했다. 아내가 기차표를 예약해주기 전까지 나는, 그대로 차를 돌려 고속도로를 달려 부산까지 갈 마음을 먹고 있었다. 

아내가 급하게 예약해준 기차는 몇 군데 들르지 않는 급행이었다. 나는 앞서 출발했던 일행과 큰 차이 없이 도착할 수 있었다. 리허설을 마치고 저녁 여섯 시가 다 되어 하루의 첫끼를 먹었다. 굶고 있다가 먹었기 때문에 맛있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부산의 돼지국밥은 이제 높은 수준으로 평준화가 되어있는 것이리라고 생각했다. 맛있는 국밥으로 허기를 채웠다.



부산의 따뜻한 기온과 굶다가 먹은 뜨거운 국밥의 온기 때문에 졸음이 쏟아졌다. 대기실에서 가만히 앉아 있으면 그대로 드러누워 잠들어버릴 것 같았다. 악기를 걸쳐메고 괜히 선채로 서성거리다가 의상을 갈아입은 염민열과 사진을 한 장 남겼다.

일정을 마치고 부산역에서 다시 기차에 올라탔다. 좌석에 앉으니 몸이 의자 아래로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나는 에어팟을 귀에 꽂고 Fourplay와 Chuck Loeb의 음악을 들었다. Mendelssohn의 바이올린 협주곡 앨범도 들었다. 다시 서울역에 도착하니 한 시 반. 낮과 달리 텅 비어있는 강변북로를 달리며 큰 음량으로 멘델스존의 음악을 다시 들었다. 음악이 끝날 무렵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루가 참 길었다.

집에 돌아와 찬물로 여러번 세수를 하고, 내일 학교에서 수업할 자료를 완성했다. 지난 주에 만들어두긴 했었으나 내용이 부실했기 때문에 조금 더 시간을 들여 준비해야 했다. 모든 것을 마치고 알람을 서너 개 설정한 다음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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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22일 금요일

밤중에 옥상 위에서.

 


부평에 있는 어느 극장의 옥상에서 연주했다. 부평 뮤직플로우 페스티벌이라는 새로운 음악 축제에 참여하는 것이었는데, 친구들과 함께 연주하는 것을 촬영했다. 우리는 지난 해에 이정선 형님과 그분의 노래를 다시 녹음했었다. 오늘은 그분을 가운데에 모시고 두 곡을 연주했다.

금요일 저녁에 도로 정체가 심할 것을 각오는 했었다. 하지만 정말 막혀도 너무 많이 막혔었다. 한참 동안 외곽순환도로를 지나 부평에 도착했지만 그곳에서부터 약속장소까지 가는 데에 다시 한 시간이나 걸렸다. 두 시간 반을 운전하여 겨우 부평 문화센터에 도착했다.

무대를 마련하고 촬영과 녹음을 맡은 스탭들이 어두운 옥상 위에서 분주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낮부터 계속 촬영이 이어지고 있었다고 들었다. 옥상 위에는 바람이 많이 불었다. 나는 당연히 외투를 벗고 연주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웃옷을 벗었고, 촬영이 끝날 때까지 벌벌 떨며 연주했다. 며칠 전 전주에서 야외공연을 했던 것보다 더 추웠다. 손가락 끝에 감각이 없었다.


일을 마치고 짐을 챙겨 주차장으로 향하면서 이 장면을 찍었다. 춥고 손이 시려워 고생스러웠지만 연주하며 밤하늘에 떠있는 고운 달을 계속 볼 수 있었다. 달무리 주변에 별도 빛나던데, 하늘이 맑았던 모양이었다. 모든 일이 끝난 뒤 어둡고 고요한 옥상 위에서 부지런히 정리하고 짐을 챙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움직이는 그림자들처럼 보였다.

집에 돌아올 때에는 강변북로를 따라 쾌적하게 달려올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작은 사고들이 많아서 다시 도로 정체를 경험했다. 그래서 돌아올 때에도 다시 두 시간 가까이 운전. 그런데 생각해보면 길 위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평범한 일상이었던 때가 있었다. 다시 악기를 싣고 운전하고 연주하러 다닐 수 있는 것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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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17일 일요일

전주에 다녀왔다.

 


아침 일찍 일어나 고속도로를 달렸다. 전주에서 공연을 했다.

공연장은 4년 전에 공연했던 야외무대였다. 건물도 풍경도 낯이 익은데 다만 사람들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고 공연장에 들어가기 위해 백신접종을 마쳤다는 증명을 확인받아야 했다.

정해진 시간 안에 리허설을 마치고 대기실로 돌아와 악기를 한 번 살펴봐야했다. 부쩍 기온이 낮아졌기 때문에 짧은 시간 무대 위에서 연주했을 뿐인데도 악기의 튜닝이 심하게 달라져있었다. 밤이 되어 공연을 시작했을 때에는 손이 차가와져서 내가 힘을 조절하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근육을 다친 손가락에 통증이 너무 심했다.

관객들도 함께 추위를 견디며 야외공연장에 모여 앉아있었다. 아직은 예전처럼 일어나 호응을 하거나 마음껏 즐기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지긋지긋한 판데믹은 여전히 끝나지 않고 있다.


주차장에 세워둔 자동차 안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몸을 따뜻하게 하느라 가지고 온 옷을 모두 입었다. 공연 전에 도시락을 먹으러 대기실에 갔더니 아무도 없는 방에 리더님의 기타가 놓여져 있었다.

짧은 공연을 마치고 다시 세 시간을 달려 집으로 돌아왔다. 영하의 기온도 아니었는데 몸이 얼어 덜덜 떨었다. 고속도로에 접어들면서 자동차의 히터를 세게 틀었다. 지난 주에 울산에 다녀올 때에는 기차를 탔는데도 피로했었는데, 오늘은 야간에 장거리 운전을 하느라 더 힘이 들었다. 안경의 돗수를 다시 맞춰야할지도 모르겠다. 눈이 흐릿하여 피로감이 더 생긴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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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9일 토요일

울산에 다녀왔다.


 오전에 서울역에 가서 기차를 타고 울산으로 갔다. 기차역에 내려 다시 사십여분 걸려 공연장에 도착했다. 가는 비가 계속 내렸다. 그리고 긴 시간 동안 리허설을 했다. 오랜만의 첫 공연을 우리는 잘 하고 싶었고, 한 시간 반 동안 거의 모든 곡을 전부 연주해봤다.


다시 긴 시간을 기다려 공연을 시작했다. 공연을 오래 쉬었지만 몸이 음악을 기억하는 기분이 들었다. 듬성듬성 앉은 관객을 보며 다시 연주를 하는 것이 기분 좋았다.


그리고 다시 기차역으로. 예전엔 일상처럼 했던 공연하는 하루의 일정이 부쩍 힘들게 여겨졌다. 악기도 무겁게 느껴졌고, 운전을 하지 않았는데도 피로감이 심했다. 체력의 문제일까.

새벽에 서울역으로 돌아와 주차장에서 자동차 시동을 걸고, 강변북로를 따라 집까지 오면서는 음악도 틀어두지 않았다. 가끔 차창을 열면 서늘한 공기가 마스크 안으로 들어왔다. 내가 사는 곳도 심야가 되면 주차하기가 어려워진지 오래됐다. 집에 도착했더니 지하 주차장에 좋은 자리가 한 군데 비어있었다.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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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6일 수요일

공연을 위한 합주.


거의 두 해 만에 밴드의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한 달 전에 사전 연습을 했었지만 공연을 며칠 앞두고 준비하는 기분은 새로왔다. 약속장소에 일찍 도착하여 악기를 튜닝하며 집에서 체크해뒀던 메모들을 다시 살폈다. 첫째날에는 여섯 줄 베이스를 가져갔다. 이 악기의 소리는 이번 공연에 적합하지 않겠지만 다른 악기들과 이 베이스의 사운드가 어떻게 섞이는지, 큰 음량으로 듣고 싶었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프리앰프의 노브들을 모두 플랫하게 해두고 테스트 했다. 경험이 쌓이면 더 좋은 사운드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둘째날 합주에는 펜더 다섯줄 베이스를 사용했다. 역시 이 형태의 베이스가 우리 밴드의 사운드에 잘 맞았다. 패시브 모드에서도 배음이 잘 나와줬다. 액티브 상태에서는 기본 음량이 너무 세어서 오히려 볼륨 노브를 줄여야 했다. 이 달의 공연들은 이 악기와 원래의 재즈베이스로 해볼 생각이다. 울산과 전주와 부산에서 공연을 할 예정이고 그 사이에 친구들과 함께하는 팀의 일정도 기다리고 있다. 얼마만의 일상인지, 모든 약속들이 귀하다.


합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야 애플워치에 표시된 알림을 보았다. 워낙 큰 음량으로 연주하다보니 소음 레벨이 109까지 올라갔었다. 아이폰에는 '일시적인 청각장애가 있을 수 있다' 라고 설명이 나왔다. 하루 종일 이어폰을 귀에 꽂고 다녔던 나는 이미 이십대에 귀의 성능을 일부 잃었을 것이다. 섬세한 음악을 틀어놓으면 내가 듣지 못하는 음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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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1일 금요일

그냥 견뎠다.


 사람들로 붐볐던 종합병원. 자정이 지나자 텅 비어있는 것처럼 조용해졌다. 입원할 때에는 주차장이 혼잡하여 제대로 주차를 하지 못했었다. 한밤중에 좋은 자리로 자동차를 옮겨 놓을 수 있었다. 소독제를 듬뿍 손에 담아 문지르며 서둘러 병실로 돌아갔다.

노인 곁에서 이틀 밤을 새우는 것, 자리를 비울 수 없어서 환자의 옆에서 선 채로 편의점 도시락을 먹거나 끼니를 거르는 것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다. 얼마든지 더 할 수 있다. 나는 완전히 익숙해져서 병원에서의 보호자 생활은 눈 감고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김없이 일어나는 노인의 난동, 폭언, 행패와 의료사고에 가까운 행동들을 견디는 일은 힘들었다. 항상 힘들었지만 거듭 할 수록 더 힘들다. 감정이 없는 것처럼 대처하느라 애를 썼지만 이미 임계점을 넘어선지 오래였다. 결국 환자는 또 다시 사고를 일으켰다. 젖은 시트를 갈고 옷을 갈아입히고 병실 바닥에 뿌려진 피와 주사액들을 닦으면서는 오히려 화가 누그러뜨려졌다. 별 수 없이 그냥 견뎠다.

나는 스트레스에 취약하다. 가능한 버티고, 그 이상이 되면 적어도 내가 스스로에게 스트레스를 더하지는 않도록 하려 했다. 마스크 안에서 입을 다물고 그냥 견뎠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다음, 나는 화장실에서 기절하여 쓰러져버리고 말았다. 오랜만의 일이었다. 각성상태가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인지 그 이후에도 깊은 잠을 잘 수 없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완료했다. 내 나이 때문에 이종 백신을 교차접종할 수 없었다. 지난번 접종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백신을 맞은 후 아무런 증상이 없었다. 심지어 주사 맞은 자리에 약한 통증조차 남지 않았다. 주사를 맞은 후에 오히려 한 시간 정도 산책삼아 걸었다. 잠이 모자라서 여전히 피로했지만 기분이 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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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25일 토요일

고양이 친구들

 


잠을 세 시간 밖에 못자고, 하루에 일곱 시간을 운전해야 했다. 소모적인 하루가 될 줄 알면서도 아침 일찍 출발해야만 했다.

후미진 골목에서 귀여운 아기 고양이를 만났다. 다른 고양이들과 놀고 있었던 작은 고양이는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잠깐 망설이더니 어느 집 파란대문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자신의 집 안에 들어가자 안심이 되는 듯, 바른 자세로 앉아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밥을 주는 사람이 있는 것으로 보였고 잘 먹고 잘 놀며 크고 있는 것 같았다. 배도 통통하고 털에 윤기도 있고. 나는 어린 고양이를 더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몇 시간 후 부모 두 분과 이모를 모시고 도착한 식당에서 이번엔 나이 든 고양이를 만났다. 아내는 식사를 마치고 음식을 잔뜩 챙겨 고양이에게 먹였다. 얘는 식당에 세들어 사는 고양이답게 잘 먹고 지내는 것 같았다. 가장 맛있는 것만 받아먹고 그 외의 음식은 거절했다.


아내가 준 음식을 조금 먹고 볕이 있는 곳에서 쉬려던 고양이에게 내가 다가갔다. 한참 어루만져주고 엉덩이를 두드려줬더니 고양이는 누워서 뒹굴기도 하고 나에게 장난도 걸었다.



떠날 시간이 되어 이 고양이와도 인사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이 모자라 정신이 없었던 나는 날씨 좋은 가을 볕 아래에 오래 있는 것이 힘들었다. 그래도 고양이 친구들을 만나서 즐거웠던 금요일 오후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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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23일 목요일

기타 트리오


 

지난 해에 세 장의 앨범을 냈기 때문에 금세 또 새로운 녹음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었다. 부지런한 파스콸리 그라쏘의 새 앨범은 듀크 엘링턴의 곡들을 연주한 것이었다.

이번 앨범도 물론 정말 좋다. 그는 이제 내 마음 속에서 믿고 듣는 기타리스트로 되어 있다. 기타 트리오를 기본편성으로 구성한 것도 좋았다. 트랙 사이에 기타 솔로로 연주한 곡도 있고 기타와 베이스 듀엣으로 연주한 곡도 있다. 이 앨범을 들으며 나는 1957년에 바니 케슬이 레이 브라운, 셜리 만과 함께 녹음했던 Poll Winners 앨범을 떠올렸다. 짐 홀, 조 패스, 탈 팔로우도 생각이 났고 오래 전 평일 저녁에 야누스에서 지혁이 형이나 방병조 형님이 연주하는 것을 혼자 구경했던 것도 기억 났다. 왼쪽에 베이스, 오른쪽에 드럼이 나오도록 스테레오 패닝을 해둔 것도 좋았다. 이제는 흘러간 옛날의 유산처럼 여겨졌던 담백하고 활력이 넘치는 스탠다드 기타 트리오 사운드를 새것으로 들을 수 있다니, 듣는 내내 고마왔다.

파스콸리 그라쏘의 연주에는 결점이 없는 것 같다. 음색과 테크닉은 말할 것도 없다. 그가 곡을 해석하는 것과 연주로 풀어내는 이야기에는 어두운 면이 없거나 암울한 장면도 밝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 앨범을 듣고 있으면 계속 기분이 좋아져서 56분의 시간이 금세 지나가버리는 것 같았다.

올해 초에 Samara Joy 라는 스물 한 살의 가수가 앨범을 냈었는데, 그 음반의 세션을 파스콸리 그라쏘가 맡았었다. 베이스는 파스콸리 트리오의 Ari Roland 였고, 드러머는 무려 케니 워싱턴이었다. 젊은 보컬리스트의 노래도 좋았지만 뒤에 흐르는 파스콸리의 기타가 좋아서 즐겨 들었었다.

사마라 조이는 "Pasquale Plays Duke" 앨범의 네번째 트랙에서 'Solitude' 를 불렀다.

그런데 이 앨범의 일곱번째 곡을 노래한 가수는 Sheila Jordan 이다. 이분은 1928년생이니까, 아흔 세 살이시다. 재즈의 역사와 함께 늙으신 분이나 다를 바 없다. 베이스와 보컬 스캣 듀엣을 처음 시도했던 가수로 알려져있기도 하다. 사마라 조이와는 거의 한 세기 정도 나이차이가 나는 셈이다. 파스콸리 본인도 음반으로 접했을 역사 속의 재즈 거장들과 함께 노래했던 이 보컬리스트가 이 앨범에서 불러준 곡은 'Mood Indigo' 이다. 이제까지 들어보았던 Mood Indigo 중 최고라고 하기에는 두렵지만, 정말 아름다왔다. 민망하지만 조금 과장하여 표현하자면 그가 끝 부분에 가성으로 처리한 높은 Bb 음이 귀에 들어와 콕 박혔다. 노래 두 곡과 열 곡의 기타 연주. 내 취향으로는 최근에 나온 스탠다드 재즈 앨범 중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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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에 블로그에 썼던 글에서는 기타리스트의 이름을 파스쿠알레라고 표기했었는데, 아무래도 그 이름을 어떻게 읽는지 궁금하여 검색해보았더니 '파스콸리(아)' 정도가 가장 흡사한 표기 같았다.

2021년 9월 22일 수요일

밤새 함께 있는 고양이


 옛날 내 고양이 순이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막내 고양이 깜이는 자주 내 곁에서 밤을 함께 새운다. 졸리우면 아내의 곁에 가서 눕거나 하면 될텐데 굳이 나의 옆에 다가와 불편한 곳에 자리를 잡고 졸음을 견디고 있다. 가끔씩 손을 내밀어 얼굴을 만져주면 그르릉 거리며 좋아한다.

떠나버린 순이, 꼼이와 다른 점은 있다. 고양이 깜이는 내 옆에서 졸음을 참고 참다가, 시간이 너무 지났다고 생각하면 그 때부터 칭얼거리며 나를 방해하기 시작한다. 이제 그만 하고 잠을 자러 가자는 신호이다. 내가 컴퓨터를 재우고 책상을 정리하기 시작하면 바닥으로 내려와 침실로 가는 길에 앞장서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덕분에 오늘도 날이 밝기 전에 잠들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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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1일 수요일

합주.

 


거의 이태 만에 밴드 멤버들이 모여 합주를 했다. 약속이 정해진 후 나는 긴 목록의 셋리스트를 들여다보며 매일 다시 연습을 해보았다. 그동안 수백번 연주했던 곡들이었을텐데 전부 새롭게 느껴졌다. 휴업상태와 같았던 밴드활동을 다시 시작한다는 것만으로도 지금으로서는 고마왔다. 마지막 공연과 합주가 아주 먼 옛날 일처럼 여겨졌다. 오랜만에 하는 합주를 나는 잘 하고 싶었다.

연주를 하지 못하며 지냈던 동안 내 연주에 나빠진 것이 있었다. 작년부터 허리통증으로 한참을 고생했고, 최근에는 왼손 검지손가락에 염증이 생겨서 한동안 악기를 잡아보지 못하기도 했다. 합주를 위해 혼자 연습하며 내가 박자와 비트감을 잃고 있는 것을 느끼고 일부러 모든 곡을 녹음하여 들어보았다. 두어 번 그 일을 반복하며 어느 부분에서 내가 부정확하게 손가락을 쓰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오래 걸리지 않아 문제가 되었던 부분들을 바로잡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왼쪽 검지손가락의 통증은 엄지손가락의 위치를 적절히 바꿔주는 것으로 해결하기 시작했다.

합주약속은 밤시간이었는데, 나는 일찍 가서 미리 연습을 더 하고 싶었다. 약속 한 시간 전에 내가 그 장소에 도착했을 때 낯익은 자동차 세 대가 내 앞에 이미 주차되어있는 것을 보았다. 다른 멤버들도 모두 나와 비슷한 마음이었구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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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30일 월요일

알랑 카론, 듀엣 앨범


 캐나다의 베이시스트 알랑 카론은 좋은 연주자이고 선생님이며 작곡가이다. 그것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유튜브에서 구경할 수 있는 그의 연주 영상 대부분은 여섯줄 베이스로 16비트 슬랩 테크닉을 쉴 새 없이 보여주거나 악기 편성이 가득차서 세고 질량감이 높은 라이브들이었다. 이전에 그의 앨범 몇 장을 들어보았던 나의 인상은 그 정도에 머물고 있었다.

2007년에 나왔던 베이스와 피아노 듀엣으로만 구성한 이 앨범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이 연주자의 참모습을 구경한 것 같았다. 열 두 곡 중 두 곡에서는 멀티 연주자 Jean St-Jacques의 비브라폰과 둘이 연주했고, 나머지 열 곡은 네 명의 피아니스트와 번갈아 연주한 앨범이었다. 베이스와 건반악기의 듀엣이라니, 바람직하다. 알랑 카론은 플렛리스 베이스로 연주하고 있는데, 건반과 베이스 두 악기만의 사운드로 한 시간 십오분 동안 마음껏 스윙한다. 모든 베이스 라인이 아름답고 솔로의 구성은 풍부하다. 이렇게 좋은 연주자였다니, 감탄하며 감상할 수 있었다.

열 곡은 알랑 카론 자신의 오리지널, 나머지 두 곡은 찰리 파커의 스탠다드와 이반 린스의 곡이다. 셀린 디온의 앨범에 참여했던 멀티 연주자 - 키보드, 비브라폰, 베이스, 기타 신디사이저를 다루는 Jean St-Jacques 가 버드의 Confirmation를 함께 연주했다. 자신과 비슷한 또래인 캐나디언 피아니스트 François Bourassa, Lorraine Desmarais, 베네수엘라 피아니스트 Otmaro Ruíz 와 연주한 곡들도 훌륭했다. 내가 뽑고 싶은 가장 좋은 넘버 두 곡은 캐나다의 전설같은 피아니스트 Oliver Jones와 함께 연주한 Strings of Spring과 Scrapper이다. 클래시컬이나 재즈 쪽의 거장 피아니스트들은 고희를 넘긴 나이가 되면 그 사람 자체가 피아노로 변해버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정교하지만 서두름이 없고 날이 서있는데도 따뜻하다. 피아니스트들의 맞은편에서 음반 전체의 사운드를 결정해주고 있는 알랑 카론의 음악적 능력은 대단하다. 그는 어째서 이 앨범 이후 다시 이런 시도를 해주지 않는 것인지.

따스하고 조용한 분위기 때문에 자려고 누웠을 때에 이 앨범을 머리맡에 틀어두었다가 몇번 낭패를 보았다. 음악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잠이 깨어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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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29일 일요일

여름을 다 보냈다.

 


아주 더웠던 여름을 다 지나보냈다.

내 기억 속의 제일 더웠던 여름은 아니었지만, 올 여름은 무덥고 뜨거웠다.

여름이 시작할 무렵 아내의 부친이 다치셨고, 우리는 다시 응급실, 병원 입원, 수술로 이어지는 일들을 겪었다. 그렇게 두어달을 다 보내고 장인을 요양원에 모시게 되었다. 환자의 곁에서 긴 병원생활을 했던 아내는 계속 먼 거리를 다니며 부친을 돌봤다. 아내는 그렇게 계절 하나를 다 보냈다.

그리고 여름이 다 지나갈 무렵 내 아버지가 다시 병원에서 진료, 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주치의의 판단에 따라 또 한 번 입원하여 수술을 받으시게 되었다. 아내가 자신의 아버지를 돌보는 일이 지나가자 이번에는 내가 내 부친의 곁에서 병원에 며칠 있게 되었다. 올 여름 아내와 나는 병원에서 환자보호자의 역할을 하기 위해 코로나19 검사를 번갈아 받았다. 예약되어있던 날짜가 있었지만 우리는 일부러 서둘러 잔여백신을 찾아 1차 접종을 했다. 그 사이 밴드의 리더님과 매니저님은 감염병에 확진되어 보름 가까이 입원 치료를 받기도 했다.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학교에서는 새 학기가 시작했다. 나는 주말에 아버지와 함께 코로나19 검사를 한 번 더 받은 뒤 다음주 월요일부터 부친을 모시고 병원에서 사흘을 보낼 예정이다.

사람 두 명이 가족들의 일로 자주 집을 비우는 동안 고양이 가족들이 더운 여름을 잘 견디고 보내줘서 고마왔다. 이 블로그를 만든 후에 글을 가장 조금 남긴 한 해가 될 것 같다. 전화기에 자주 적어두는 메모는 온통 할 일, 해야할 것, 하지 못한 것들로 범벅이 된 짧은 기록들 뿐이었다.

열어둔 창문으로 찬 바람이 들어오고 있다. 이제 짧고 아쉬울 가을이 좋은 계절로 지나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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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30일 수요일

떠나고 변하는 것들.

 



고양이 꼼이가 우리 곁을 떠난지 일년이 되는 날이었다. 작년 오늘, 비는 정말 추저분하게 내리고 있었다. 재가 되어버린 꼼이를 작은 단지에 담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는개와 같은 비가 흩뿌려지고 있었다.

함께 살고있는 세 마리의 고양이들이 더 애틋하여 날마다 어루만지고 껴안으며 생활하기 때문에 더 그런 것이겠지만, 매일 나는 이제 죽어서 곁에 없는 내 고양이 순이와 꼼이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은 적이 없다. 날마다 고양이들이 놀던 곳, 숨어있던 곳, 장난치던 구석, 잠자고 있던 자리를 청소하면서 이제는 만져볼 수 없는 손끝의 느낌을 기억하고 그리워한다. 그런데 그것은 감정의 남은 부분일 뿐, 사실은 그 감촉도 느낌도 점점 가물가물해지고 있다. 사람을 바라보던 예쁜 눈망울이나 활력이 넘쳤던 장난꾸러기 고양이들의 모습은 이제 다시 볼 수 없다.

사람들은 자주 '고양이 액체설'과 같은 Meme으로 고양이들의 재미있는 모습을 공유하며 재미있어하고 귀여워 한다. 나는 한 번도 그런 것에 반응해보지 않았다. 고양이가 숨을 멈추면 제일 먼저 몸이 축 늘어지면서 정말로 뼈가 없는 액체처럼 흘러내린다. 반듯하게 조심히 눕혀놓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차갑게 굳어져버린다. 미리 힘주어 눈을 감겨주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 것을 경험하면 고양이 액체설 따위의 문장만 보아도 바삐 화면에서 눈을 돌리게 된다.

모든 생명의 생과 사는 어처구니 없고 허망하다. 생사의 찰나를 경험했던 사람들은 삶의 가치라던가 죽음의 의미 같은 것들이 모두 무의미하게 여겨진다고 했다. 전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심정을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다가 내가 병원신세를 졌던 반년 전에, 심하게 아파보았던 이후에도 나는 세상을 보는 시각이 조금 더 달라진 것 같다.

자전거 타기를 좋아했던 나는 2016년 그 여름부터 거의 자전거에 손을 대지 않았다. 고양이 순이가 암 판정을 받은 후에, 내가 자전거 타기에 미쳐서 몇 년을 보내며 고양이의 건강을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순이의 병을 미리 발견하지 못했고, 결국 고양이가 죽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 더 이상 자전거 위에 앉아 땀을 내며 바람을 쐬는 것이 즐겁지 않아졌다.
꼼이가 갑자기 아프기 불과 몇 주 전에는 영상을 찍어뒀었다. 유난히 민첩하고 운동신경이 좋았던 그 고양이가 높이 도약하고 어려운 동작으로 뛰어내리는 장면들이 담겼다. 그랬던 고양이 꼼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아팠고, 병을 이기지 못하여 세상을 떠났다. 순이가 죽은 뒤에 집안의 고양이들을 자주 병원에 데려가 검진하고 미리 건강을 확인하며 지냈는데도 꼼이가 병들고 죽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나는 이제 집안의 고양이들이 우습고 재미있는 행동을 하여도 구태여 영상을 찍어 남기거나 하고싶지 않아졌다. 그냥 그 순간 웃어주고 다가오면 끌어안아 쓰다듬어주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라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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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29일 화요일

John Pizzarelli, Better Days Ahead

 


존 피자렐리의 새 앨범 Better Days Ahead를 듣고 있다. 제목을 보고, 아직 부제로 붙어있는 내용을 읽기 전에 나는 이미 이 음반이 팻 메스니의 곡을 연주한 앨범이라는 것을 알았다. 지난 밤에 잠을 청하며 무선 이어폰으로 듣고 있을 때에는 리버브가 너무 많은 것 아닌가 따위의 불평을 하며 듣다가 잠이 들었었다. 오늘 깨어나 커피를 마시며 맑은 정신으로 스피커 앞에 앉아 다시 들으면서는 기분이 좋아졌다. 오후에 치과수술을 위해 병원에 다녀오는 길에도 도로 위에서 계속 듣고 있다가, 지금 굳이 블로그에 써두고 있는 중이다.

작년 4월에, 아흔살이 넘었던 그의 부친 버키 피자렐리가 그만 코로나바이러스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이 지독한 전염병 기간 중 많은 희생자들이 생겼다. 유명한 사람들도 판데믹 기간 동안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의 부친은 오래 활동한 기타리스트이기도 했고, 아흔이 넘도록 연주활동을 멈추지 않았던 음악가였다. 존 피자렐리의 새 앨범 표지는 기타를 안고있는 그의 얼굴에 마스크가 씌워져 있다. 나는 그 앨범 자켓이 시대를 반영하고 있기도 하거니와, 그의 돌아가신 부친에 대한 생각도 있었을 것 같다고 혼자 상상해봤다.

솔로기타로 연주했고 모두 열 세곡이 담겨있는 이번 팻 메스니 특집(?) 앨범은 훌륭하다. 그냥 훌륭한 뮤지션의 음악을 커버한 수준이 아니라, 팻 메스니의 음악을 정말 좋아했던 것이 분명한 이 기타리스트의 예술적인 해석이 잘 담겨있다. 그는 이 앨범에서 대부분 팻 메스니 그룹으로 발표됐던 곡들을 연주했는데 그룹 편성으로 이루어진 원곡의 섬세한 부분들을 빼먹지 않으면서도 한 개의 기타로 표현할 수 있는 음악적 재미를 고루 담았다. 예를 들어 Last Train Home, April Wind/Phase Dance와 같은 곡에서는 베이스 라인과 특정한 화음들이 아주 잘 살아있는데, 그것은 피자렐리가 그의 7현 기타를 멋지게 활용하고 있는 덕분이다. 저음 한 줄을 추가하여 일곱줄로 되어있는 기타를 사용한 것은 그의 부친 Bucky Pizzarelli가 먼저였다. 버키 피자렐리는 같은 고향인 뉴저지 출신 선배 기타리스트 George Van Eps로부 7현 기타를 배우고 계승했다.

과거의 Pat Metheny Group 편성이 아닌 곡으로는 앨범 Secret Story에 실렸던 Antonia와 작년에 발매된 팻 메스니 앨범의 타이틀 곡인 From This Place가 수록되었다. 좋은 작곡에 훌륭한 원곡, 그리고 아름다운 재편곡과 해석으로 아주 듣기 좋았다.

존 피자렐리는 수십년 동안 다른 거장들의 음악을 커버하여 연주해왔다. 냇 킹 콜, 폴 매카트니와 비틀즈,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 등의 음악을 연주한 앨범들이 있었는데 나는 그 음반들을 그다지 꾸준히 듣고있지 않았다. 나의 취향 탓이겠지만, 어쩐지 팻 메스니 특집인 이번 앨범은 유난히 밀도가 높고 좋아서, 아마도 앞으로 계속 듣고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아예 아이폰에 저장해뒀다. 애플뮤직에서 무손실 음원으로 지원하고 있으니까 유선 헤드폰이나 오디오 장치로 꼭 들어보길 권하고 싶다.

이 음반 덕분에 이어서 Pat Metheny Group의 Still Life (Talking) 앨범을 듣고 있다. 애플뮤직에 팻 메스니 그룹 시절의 부트렉들이 계속 업로드 되고 있는데, 예전과 달리 그런 것에는 점점 관심이 없어진다. 잘 만들어 놓았던 본래의 앨범들이 완성품처럼 느껴지고, 그 사운드를 좋은 음질로 다시 듣거나, 좋은 연주자가 잘 해석해놓은 새 앨범을 듣고 있는 것이 지금은 더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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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25일 금요일

평가

 


음악을 배우고 악기를 전공하는 대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한 것도 어쩌다 보니 십오년째가 되었다. 그 이전에 입시생들을 가르쳤던 것을 더하면 어린 학생들을 마주하며 지내온지 이십여년. 무슨 명예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더 많이 벌 수도 없는 일인데 왜 나는 계속 하고 있었을까. 아마 나는 연주를 하는 것만큼 학생들에게 설명하고 가르치는 것을 좋아했나 보다.

자신이 즐겁게 생각하고 좋아하는 것을 일로 삼으면 더 이상 즐겁거나 좋아하기만 할 수는 없다. 그리고 해야만 하는 '일'도 있어서, 매 학기를 마칠 때마다 항상 괴로운 업무를 피하지 못한다. 그것은 바로 학생들을 평가하고 채점하여 등급을 정하는 일이다.

물론 다른 어떤 분야와 마찬가지로 음악과 악기연주라는 것도 평가할 수 있고 각자의 성과를 숫자로 매길 수 있기는 하지만, 학생들의 과제와 시험답안지들을 눈 앞에 두고 깊은 밤 혼자 앉아 있는 시간은 무겁고 힘들다. 그들만의 목소리가 있듯이 그들만의 음악도 있는 것이고, 그 개성을 기록과 수치로만 판가름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이상 학생들의 테크닉과 실력의 차이를 점수로 줄 세운다는 것이 과연 음악적인 일인지 나는 의심한다.

그러나 이곳은 학교이고, 어떤 학생이 한 학기 동안의 학업을 해온 과정과 결과를 평가해야 하는 것 또한 가르치는 사람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 평가의 결과가 충분히 공정하려면, 우선 가르쳤던 사람이 성실하였어야만 한다. 나는 학생들의 점수를 합산하기 위하여 내가 만들어 놓은 스프레드 시트의 수식을 보완하면서 수업시간마다 기록해 둔 학생 개개인에 대한 문서들을 열 번 스무 번 읽는다. 내가 항목별로 작은 숫자들을 입력해나가면 맨 끝에 그 학생의 총점이 계산되도록 해두는 이유는 어쩌면, 내 손으로 직접 그 합산된 점수를 입력하지 않아도 좋도록 하여 괴로운 업무의 마지막을 회피하기 위한 비겁한 마음 때문일 수도 있다.

학생들이 완성한 과제물들, 때로는 레포트들을 반복하여 듣고 읽다보면 수업시간의 내가 보인다. 과연 내가 그 수업들을 매 시간 성실하게 준비했는지, 학생들에게 바르게 길을 알려주고 필요한 순간에 해줄 수 있는 말을 전할 수 있었는지, 그보다 앞서 어린 학생들 앞에서 나의 태도는 바르고 진실했는지를 스스로 비판해보고 반성한다. 그래서 학생들을 점수 매기는 그 시간은 나 자신에 대한 평가의 시간이기도 했다.

자기자신에 대한 평가와 반성은 타인에 대하여 너그러운 자세를 가지게 해준다. 나는 학생들이 터무니 없는 이유로 결석을 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럴 수 있다. 내가 힘주어 여러 번 했던 말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나무라고 싶지 않다. 그럴 수도 있다. 그들로부터 기대했던 수준의 과제물을 받지 못하여도 그것은 학생들의 탓이 아닐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 절반은 나의 탓일 테니까. 그리고 대학에서의 한 가지 과목 정도는 그들의 인생에서 그다지 큰 일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 지금 모자란 배움은 언젠가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스스로 충족시킬 수도 있을 것이니까, 다 괜찮다. 나의 '일'이기 때문에 점수는 매기고 있지만, 겨우 학점이란 것으로 학생들이 자신에 대한 가치를 주제 이상 높게 여기거나 낮게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심지어 일찌감치 공부하기를 포기하고, 수업은 제껴버리고, 임기응변으로 변명을 늘어놓고, 때로는 거짓말로 선생을 기만하는 것도 괜찮다. 약속을 어기거나 모든 일에 핑계를 만드는 것도 좋다. 거기에서부터는 자유의 영역이다. 아직 어릴 때에는 그럴 수도 있는 법이고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해하는 것이 곧 그 태도와 살아가는 방식을 납득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학생일 때에 자신의 일을 그런 수준으로 밖에 해내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것은 모르겠으나, 음악을 잘 할 수는 없다. 음악을 잘 할 수 없을 사람에게 나는 가혹하게 점수를 매긴다. 그것도 지금 내가 성실하게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2021년 3월 20일 토요일

Dave Grusin

 


내가 스무 살, 이십대 초반에 들었던 음악 중에는 그 무렵 인기 있었던 GRP 레이블의 음악이 많았다. 당시 새로운 기술이었던 디지털 레코딩, 디지털 믹싱, 디지털 마스터링으로 제작했다고 하여 시디에 DDD 마크를 표시해두기도 했던 레이블이었다. 나는 나보다 음악을 많이 알고 있었던 친구집에 찾아가 음악을 듣기도 하고 LP나 시디를 빌려오기도 했었다. 그 중에 데이브 그루신의 1977년 앨범 One Of A Kind 도 있었다. 데이브 그루신은 그 이듬해인 1978년에 Larry Rosen 과 함께 GRP Records 를 시작했다. 나는 이 앨범을 친구가 가지고 있었던 LP로 빌려와서 카세트 테잎에 담아 카세트 플레이어로 들으며 다녔었다. 그 음반은 1984년에 GRP 에서 다시 발매했던 리이슈였다. 

그 즈음 어디에선가 우연히 만났던 여자아이가 한 명 있었다. 그 친구는 자신이 음악을 아주 좋아한다면서, '가요'는 안 듣는다고 했었다. 보사노바 얘기를 하고 스팅을 좋아한다고 했었는데, 어느 날 내가 그에게 데이브 그루신의 Modaji 를 들려줬었다. 음악이 시작된 후 1분 쯤 지났을까,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노래는 언제 나와?' 라고.

그 다음에 한 번 더 만났었는지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한 것으로 보아 아마도 서로 별로 호감이 없었던 것 같다. 어쨌든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 그 친구는 나에게 '가요를 싫어하며 데이브 그루신 음악에 노래가 없어서 실망했던' 사람으로 남았다.

빌려왔던 LP를 카세트 테잎에 옮겨 담은 다음 친구에게 음반을 돌려줬다. 그래서 오래도록 그 앨범을 들었으면서도 앨범에 참여했던 연주자들을 알지 못했었다. 알려고 했다면 찾아볼 수 있었을텐데 나는 귀찮았던 모양이다. 이십년 전에 나온 데이브 그루신의 베스트 앨범을 듣다가 생각이 나서 '노래가 나오지 않는' Modaji 의 베이스 연주자를 검색해봤다. 프란시스코 센테노라는 사람이었는데 나에게는 낯선 이름이었다. 이미지 검색을 해보니 오래 전 대학로 카페에서 틀어주던 뮤직 비디오에서 봤던 연주자였다. 유튜브 링크를 찾아보니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함께 연주하며 노래도 하던 그분이었다.

앨범 One Of A Kind 에 수록되어 있던 다른 곡 중 Playera 의 베이스는 론 카터였다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됐다. 드럼은 스티브 갯. 나는 그 베이스 소리가 론 카터였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린 시절 그 곡을 들으며 그 베이스 사운드는 분명 일렉트릭 플렛리스 베이스일 것이라고 상상했었다. 그 앨범의 베이스 연주자는 프란시스코 센테노와 론 카터 두 사람이 맡고 있었다. 드럼은 모두 스티브 갯, 색소폰은 그로버 워싱턴 쥬니어였다. 

그러고보니 나는 데이브 그루신의 GRP 음반인 조지 거쉬윈 커넥션이라는 앨범도 가지고 있었는데, 시디와 함께 들어있던 두꺼운 책자와 종이로 되어있는 겉표지만 있고 플라스틱 케이스와 시디는 보이지 않고있다. 봄이 되면 방안의 물건들을 모두 끄집어 내어 꼭 한번 정리를 해야겠다.


2021년 3월 19일 금요일

Chrlie Parker Jam Session


 나는 이 음반을 26년 전에 샀다. 아무 정보 없이 음반가게에서 시디를 고르다가 겨우 네 곡이 들어있는 이 앨범을 보자마자 얼른 구입했다. 겉면에 어마어마한 연주자들의 이름이 빼곡히 들어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이 녹음 시리즈에 대해 읽고, 나머지 음반들을 구하기 위해 돌아다녔는데 결국 찾지 못했다. 그 후에는 그것에 대해 잊고 지내다가 얼마 전에 생각이 나서 시디를 꺼내어보았다. 그런데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시디가 훼손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됐다. 시디의 뒷면에 흠집이 크게 났는데 첫번째 트랙에서 계속 튀는 잡음이 들리고 있었다. 왜 그랬는지 이 음반은 그동안 컴퓨터에 옮겨 담아둔 적이 없었다. 아마 시디에 상처가 난 것이 먼저였고, iTunes 가 등장한 것이 그 이후였기 때문이었을 것 같다.

혹시 음악파일로 변환을 하면 괜찮아지지는 않을까 기대했는데, 그럴 리가 없었다. 나머지 곡이라도 음원파일로 바꾸어 컴퓨터에 넣고, 애플뮤직에 이 음반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처음에는 발견할 수 없었다. 역시 없는 것인가 생각하다가, 내가 계속 찰리 파커의 이름으로만 검색하고 있었던 것을 알았다. Norman Granz 의 이름을 검색했더니 애플뮤직에 이 녹음의 전체 시리즈가 쨘, 하고 나타났다. 급히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틀었다. 선명한 모노 사운드가 멋지게 들리고 있었다.

이 녹음은 한반도가 전쟁으로 망가지고 있던 1952년 7월에 로스앤젤레스에서 진행되었다. 노만 그란쯔는 수완이 좋은 프로듀서였을 뿐만 아니라 당시의 연주자들에게 깊은 신뢰를 얻고 있었던 사람이었나 보다. 이 연주자들을 동시에 모아놓고 녹음을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 레코딩에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재즈의 전설들이고, 그 무렵에도 이미 각 악기의 최고들이었다. 그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한 것이 스스로도 꽤 자랑스러웠던지 노만 그란쯔가 쓴 음반해설을 보면 신이 나있다. 애플뮤직에 음원들이 모두 있는 덕분에 며칠은 이 시리즈들을 계속 듣고 있는 중이다. 앨범 표지 그림이 내가 가지고 있는 시디보다 조금 못난 것을 빼면, 곡마다 참여한 뮤지션들의 이름을 모두 잘 적어놓은 점도 좋았고, 내 시디보다 음질도 좋았다.

애플뮤직에서 찾은 같은 앨범.

그래서 플라스틱 상품인 내 오디오시디는 기념품처럼 벽 한 구석에 다시 놓여지고, 69년 전의 기념할만한 녹음을 방금 다운로드한 음원으로,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꽂고 기분좋게 듣고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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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서야 이 시리즈들을 모두 듣고 보니 네 장의 디스크마다 블루스가 있고, 모든 연주자가 한 곡씩 골라 솔로를 진행하는 긴 발라드 메들리도 두 트랙이나 더 있었다. 누군가 도중에 엎질렀는지 물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여유롭게 연주하고는 있지만 무서운 실력자들끼리의 긴장감도 느껴진다. 템포가 빠른 곡에서 각자 네 마디씩 순서대로 주고받는 솔로는 매우 즐겁다. 어느날 오후 내내 옛 재즈를 쉬지 않고 듣고 싶다면 추천할만하다. 

2021년 3월 8일 월요일

iPod Classic.

 


1월 중순에 아이팟 클래식을 다시 사용해보려고 했다가 컴퓨터에 있는 음악들을 제대로 채워넣지 못했었다. ( 아이팟 얘기 )

오래 사용하고 있는 내 아이폰의 전지가 점점 쉽게 방전되고 있기도 했고, 음악을 들을 때에는 방해받지 않으며 음악만 듣기 위해 이 구형 아이팟을 다시 쓰고싶었다. 지난번 실패 이후 곰곰 생각하다가 내가 애플뮤직을 사용한 이후 컴퓨터에 담아뒀던 음악파일들이 iOS 기기들과 동기화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애플은 맥오에스에서 iTunes를 없애고 Music 이라는 어플리케이션으로 음악을 관리하도록 해놓았다. 내가 가지고 있던 음악들은 모두 어딘가에 있는 (어디에 있는지 나는 모르는) 애플의 서버에 올려져 있었고, 그것을 다시 모두 다운로드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었다.

문제는 파일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맥의 내장 하드디스크에 보관했던 음악파일들은 백업 하드에 따로 옮겨둔 다음 모두 지웠다. 그리고 Music 앱에서 내 파일들을 전부 다운로드 하기 시작... 꼬박 이틀동안 파일들의 대부분을 다시 내려받았다. 다시 아이팟 클래식을 연결하여 동기화를 했고, 거의 한 시간 가까이 걸려 음악파일들을 담을 수 있었다.

그나마 재즈만 옮겼을 뿐인데 가득 차버렸다.

SSD 시대에 하드디스크로 수 많은 작은 파일들을 전부 내려받고, 그것을 다시 오래된 소형 하드디스크로 옮겨 담아야 했으니 시간이 오래 걸린 것은 납득할만 했다. 그런데 맥 오에스와 옛 iTunes 를 계승한 Music 앱에는 문제가 너무 많았다. 우선 모든 동작이 느리고, 뭔가 불합리했다. 같은 앨범의 다른 버젼을 애플뮤직에서 구독했을 때에 내 파일을 삭제해버리기도 했다. 수 많은 에러가 속출하고 음악의 정보는 뒤섞였다. 애플뮤직에서 구독하고 있는 음원들은 어차피 아이팟 클래식에서 재생할 수 없다고 해도 원래의 내 파일들은 올바르게 보관되었어야 했다. 그 음원들은 내가 가지고 있는 CD들에서 모두 리핑해뒀던 것들이었다. 별 것 아니긴 하지만 나름 긴 세월 동안 완벽하게 정리해뒀던 것들이는데, 쟝르의 명칭도 멋대로 바뀌어버렸고 어떤 파일들은 정보가 누락되어 트랙 넘버가 맞지 않는 것들도 있었다. 또, 컴퓨터에 새로 넣어둔 음원들은 제때에 클라우드로 업로드되지도 않았다. 나는 백업해뒀던 내 파일들을 다시 가져와 '보관함에 추가'하는 작업을 일일이 수동으로 하여 바로잡아야했다. 역시 걸핏하면 에러, 속도는 물론 느리다. 아무리 너그럽게 생각해준다고 해도 매달 돈을 지불하는 서비스인데, 이것은 너무 바보같은 체계이거나 아니면 그들 중 아무도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 애플은 지난 이십 년 동안 너무 규모가 커져버린 것 아닐까. 누구의 잘못도 아니기 때문에 아무도 잘 해내지 못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애플을 흉보며 동기화를 마친 아이팟을 손에 들고 음악을 틀었다. 그리고 나는 곧 그 불만들을 금세 잊어버렸다. 12년이나 지난 옛 기계는 새것처럼 잘 작동했다. 여전히 아이폰보다 음질이 더 좋았다. 갑자기 마음이 너그러워져서, 그래, 애플이 옛날에는 언제 뭐 멀쩡했었던가, 하는 생각도 하고.





2021년 2월 23일 화요일

치과 수술.


나는 치과 의자에 누워 여러 번의 마취주사를 입안에 맞은채 기다리고 있었다. 입천장을 찌르는 주사는 괜찮았는데, 주사바늘이 혀를 두 세 번 찌를 때에는 몸이 움츠러들었다. 병원에 환자손님이 조금 많아 보였었다. 그 때문이었는지 나는 마취주사를 맞은 후 삼십분이 넘도록 혼자 누워 있었다. 이윽고 CT 사진 을 한 장 찍은 다음 다시 십여분을 기다린 후 수술이 시작됐다.

나는 주사라던가 병원을 무서워 하는 겁쟁이이다. 처음 경험하는 수술때문에 많이 겁이 났다. 지난 달에 픽스쳐 한 개를 심는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졌다. 이번에도 일부러 수술에 관련된 것들을 읽어보고 수술 동영상도 몇 개 찾아서 미리 보아뒀다. 알고나면 조금 덜 두렵기 때문이었다.

오른쪽 잇몸을 절개한 뒤 의사는 내 윗 잇몸뼈 측면에 구멍을 뚫고 있었다. 그 과정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그리고 내 상악동 막을 뼈로부터 박리한 뒤에 골이식재를 채워넣는 과정이 이어졌다. 이 과정도 오래 걸렸다. 아주 한참동안 내 뼈에 뚫어놓은 구멍 안으로 골이식재를 넣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중간에 의사는 곁에 있던 간호사에게 '엄청 많이 들어가네'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시간이 꽤 흘렀다. 직원 한 분이 나에게 CT 사진 한 장을 더 찍어야 한다며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했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아직 잇몸이 봉합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그 상태로 걸어다닌다는 것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두 번째 CT 촬영 후, 원장님인 의사 선생님이 나에게 두 개의 임플란트 fixture를 더 심겠다고 말했다. 나는 '안돼요' 라고 말할 처지도 아니었지만 이미 아까부터 벌리고 있던 입 안에 수술도구들이 들락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어차피 아무 말도 할 수는 없었다. 뼈이식을 많이 해야 했던 맨 끝 부분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우선 두 개만 먼저 하겠다고 의사는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다시 드릴 소리가 이어졌다. 직경 3.8밀리에 길이 10밀리짜리 한 개와 직경 4.3밀리에 길이 12밀리짜리 한 개가 다시 내 뼈에 박혀있게 됐다.

잇몸을 꿰메어주는 것도 조금 오래 걸렸는데 그것이 내 기분 탓인지 아니면 너무 긴 시간 누워서 턱을 벌리고 있었기 때문인지는 잘 알 수 없었다. CT 사진을 한 장 더 찍고, 직원 분으로부터 주의사항을 들었다.

집에 돌아와 오뚜기 스프를 끓여 먹고, 아내가 만들어준 고구마 샐러드를 먹었다.

내 침대 위에는 고양이 이지가 아주 편한 자세로 잠들어 있었다. 나는 고양이에게 내 사정을 설명하고 침대에서 내려가주도록 엉덩이를 떠밀었다. 그리고 나는 침대에 드러누워 베게를 높이 하고 한 시간 쯤 눈을 감고 있었다. 잠이 오는데 잘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온몸이 가려워서 일어나버렸다. 내 등과 가슴 전체에 심한 두드러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얼음팩으로 문대어보기도 하고 연고를 발라보기도 했는데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 않더니, 두어 시간 후에 두드러기가 저절로 사라졌다. 수술한 부위는 뻐근한 정도의 느낌이더니 마취가 풀린 후부터는 신나게 통증이 밀려왔다. 얼굴은 한쪽만 퉁퉁 붓기 시작했다. 몸에 열이 나고 춥게 느껴졌다. 욱신거리는 느낌을 잊기 위해 머리맡에 블루투스 스피커를 두고 음악을 들으며 한참 누워 있었다.


2021년 2월 11일 목요일

섣달 그믐.

 


새벽에 깨어 계속 뒤척이다가 거의 못 잤다.

무슨 꿈을 꾸었었고 꿈 속에서 나는 아주 고된 일을 겪었었다. 밤중에 잠들기 전에 우연히 16년 전 고양이 순이의 동영상을 보았다. 영상 속의 순이는 몸집이 작은 어린 고양이였다. 순이는 화면 속에서 나를 바라보며 그르릉 소리를 내고 있었다. 천진한 표정으로 장난을 치고 카메라에 얼굴을 가져다 대기도 했다. 그 영상을 찍고 있었을 때의 기억이 살아나 계속 내 머리 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작년에 고양이 꼼이가 세상을 떠나고, 벌써 순이가 죽은지도 5년째가 되었다. 잊고 지낼만 한데도 하루에 몇 번씩 더 이상 곁에 없는 고양이 생각이 난다.

음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날. 종일 맑지 못한 정신으로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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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30일 토요일

봄은 언제.

 



아직은 겨울이지만 햇빛이 밝고 기온이 영상인 날 집안에 머물러 있으니, 봄이 오는 것 같다. 영상이라고 해도 겨우 섭씨 4도 정도. 아직은 얇은 옷을 입고 외출하기는 어렵다.

치아와 잇몸을 수리하러 매주 두 번씩 치과에 가고 있고, 허리의 통증은 조금만 방심하면 찾아와서 괴롭힌다. 악기를 관리하는 일도 컴퓨터를 좋은 상태로 유지하는 일도 점점 귀찮아진다. 글을 읽고 쓰는 일도 하기 싫어서 그냥 방치해두고 있다. 과거의 나를 돌아보면, 이럴 때에 내가 해야 할 것과 삼가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데, 지금은 굳이 돌아보기도 알고싶지도 않다.

오늘은 갑자기 몇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아서, 긴 통화를 여러 번 했다. 통화를 마치고 나서, 모두 혼자만의 삶이라는 것을 견뎌가며 가끔씩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싶어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2021년 1월 26일 화요일

병원

 


어제 아침에 일찍 외출했다. 아버지의 병원 진료가 예약되어 있었다. 그 병원이 한산했던 적은 없었지만 이른 시간에 꽤 사람이 많고 자동차가 붐볐다. 주차를 하는데에 20여분이나 걸렸다.

아버지는 몇 가지 검사를 해야 했는데, 다행히도 더 나쁜 것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 석 달 후에 정기적인 진료 예약만 하는 것으로 병원 일을 마칠 수 있었다.

내가 약을 사러 병원 앞을 걸어갔다가 오는데, 정문 앞에 어떤 노인이 몸의 앞 뒤로 크게 인쇄한 간판을 걸고 보도 위에서 소리 높여 말을 하고 있었다. 그냥 지나가려다가, 그가 주장하고 있는 내용이 참신하여 읽어보게 되었다. 그 내용은 길지만 요약하자면 '미국 바이든은 부정선거' 이며, '문재인은 박근혜를 사면할 것이 아니라 사죄를 해야 한다' 라는 것이었다. 그 곁에 있는 현수막에는 '박근혜 대통령님의 쾌유를 빌고 어쩌고...'가 써있었는데, 벌써 몇 년 동안 보여지는 그 천막은 어째서 치워지지 않고 있을 수 있는지 의아했다. 감옥에 있어야 할 전직 대통령이 그 병원에 입원 중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노인이 들고 있는 문구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어서 웃음도 났다.

아버지의 검사 결과가 좋아서 가벼운 기분으로 집에 돌아왔다. 고양이 두 마리는 방금 들어온 나를 흘깃 보기만 하고 다시 나란히 앉아 계속 창 밖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아마 새들을 구경했던 모양이었다.

오늘. 나는 치과 수술을 시작했다. 티타늄 픽스쳐가 내 턱뼈에 박혀졌다. 첫번째 수술을 마치고 간호사의 설명을 들은 후에 밖으로 나와 약국으로 향했다. 가느다란 는개비가 뿌려지고 있었다. 흐린 날씨였기 때문인지 벌써 어두워지고 있었다. 이제 몇 개월 동안은 거의 죽만 먹어야 할 것 같다. 앞으로 남아있는 수술이 여러 번이기 때문에, 아내를 귀찮게 하지 않고 내 끼니 정도는 혼자 해결할 방법을 찾기로 했는데... 기껏 생각해 낸 것은 오뚜기 스프와 죽을 여러 봉지 사가지고 온 것 뿐이었다. 

밤중에 갑자기 몸살 기운이 심해졌다. 입안의 통증 보다 근육통이 더 힘들었다. 감기는 아닌 것 같고, 아마도 치과에서 긴 시간 동안 눕혀지고 앉혀졌던 바람에 그랬던 모양이다. 어쩌다 보니 새해가 되어도 나는 줄곧 병원만 다니고 있다. 

2021년 1월 21일 목요일

비가 내렸다.


 아내가 운전을 하여 여주에 있는 그 병원에 다녀왔다. 두 달 전에 내가 구급차에 실려 갔던 병원이었다. 실손보험을 청구하는데 서류 한 장이 더 필요하다고 하여 그것을 핑계로 외출을 했다.

내가 구급대원들의 도움으로 들것에 실려 가서 하루 동안 입원했었던 병원의 모습을 처음 보았다. 그곳에서 다시 나올 때에도 나는 움직이지 못했기 때문에 병원과 구급차의 천장의 모습만 기억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차장도 낯설고 병원의 모양도 생경했는데 안으로 들어가 응급실 쪽의 천장을 바라보니 어렴풋 그때 내가 눕혀진채 실려갔었던 동선이 보였다.

필요한 서류를 발급 받고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음식이 좋았다. 맛있고 배부르게 먹었다. 내친 김에 그곳을 떠나 건대병원으로 가서 나머지 서류들을 확인하고, 보험 청구를 마쳤다. 집에 돌아오니 거의 여섯 시가 다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내가 운전을 했다. 고양이들은 날씨가 흐렸기 때문인지 각자 따뜻한 이불 위에서 늘어지게 자고 있었다. 바깥에는 비가 많이 내리고 있었다. 나는 고양이 깜이 곁에 누워서 병원에서 교육받은 운동을 한답시고 다리를 몇 번 들어올리다가, 그만 그대로 잠시 잠을 자버렸다.


2021년 1월 16일 토요일

아이팟


서랍을 정리하다가 옛 모델 아이팟을 꺼내어 충전을 했다. 불과 6년 전까지도 매일 들고 다니며 사용했던 기계였는데 더 이상 쓰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새 맥오에스에서 이제는 제대로 동기화가 되지도 않았다. 나는 애플뮤직을 사용하고 있고, 아마도 그 이유로 컴퓨터 하드디스크의 보관함을 바르게 싱크로나이징 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이제는 제조한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지원하지 않는 구형 기계가 되었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멀쩡히 작동하는 기계를 사용할 수도 없게 해놓았다니.

내 아이폰은 벌써 4년이나 되어서, 이제 슬슬 배터리가 빠르게 닳아 없어지고 있다. 배터리를 교환하면 더 쓸 수 있겠지만 굳이 그렇게 하고싶지는 않고, 자동차 안에 두고 다니며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하드디스크 아이팟에 음악을 새로 담아두고 싶었다. 결국 동기화가 되지 않는 기계를 다시 서랍에 넣어두고, 해결방법은 나중에 찾아보거나 하기로 했다.

가끔 선잠이 들었을 때에 나는 어릴적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수십 년 전에, 나는 어두운 방에서 손끝으로 더듬어 오디오의 시디 트레이를 열고, 음악 시디 한 장을 용케 집어넣어 작은 음량으로 틀어둔채 잠들고는 했다. 지금 내 자동차에는 시디 플레이어가 있긴 하지만, 나는 마지막으로 시디라는 것을 트레이에 넣어본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매일 음악을 들으면서 작은 전화기 한 개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고맙기도 하면서, 어딘가 서운하기도 하다. 케이블을 모두 분리하여 방 한 쪽에 가구처럼 놓아둔 오디오를 다시 연결해볼까 생각하다가, 지금은 필요없이 분주한 일을 벌이지 않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집안의 가구도 다시 배치해보고 싶은데, 아직은 못하겠다. 봄이 오고 몸이 조금 더 나아지면 하기로 한다.

2021년 1월 11일 월요일

겨울

 


엄마를 모시고 시골집에 다녀올 일이 있었다. 바깥은 추웠다. 나는 요즘 부쩍 더 추위를 느껴서 몸이 덜덜 떨렸다.

갑자기 산 위에서 검은 개 한 마리가 내려왔다. 그 개는 사람들을 슬쩍 쳐다보더니 개의치 않고 무슨 약속이라도 있다는 듯 성큼 성큼 걸어서 지나갔다. 목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제 집을 찾아가거나, 아니면 잠시 마실을 나온 것 같았다. 나는 너무 멀찍이 있어서 다가가 인사를 할 겨를이 없었다. 흰 눈 위에 낯선 개의 발자국이 가지런히 찍혀 있는 것을 보니 재미있었다.

통증 때문에 허리에 파스를 자주 붙여야 한다. 아내가 그것을 도와주다가 밝게 불을 켜고 내 허리를 살펴보더니 멍이 들어있다고 알려줬다. 계속 통증을 느끼는 오른쪽 허리 부분을 나 혼자 주먹으로 심하게 문질러댔더니 그만 멍이 든 모양이었다. 멍든 피부 보다 통증을 느끼는 안쪽이 더 거북하여 나는 오늘도 혼자 여러 번 그곳을 문질러 댔다. 

무엇이라도 해야 하고, 하고싶은데, 아무 것도 못하며 겨울을 보내고 있다. 무기력해지는 기분을 그대로 두기 싫어서 볼일이 없어도 자꾸 움직이려고 하고 있다. 낮에 보았던 무심한 개처럼, 사람들은 아랑곳 없이 겨울이 심드렁하게 지나가고 있다.

2021년 1월 6일 수요일

눈이 많이 내렸다.


이틀 전에는 병원에 가서 진료를 하고, 내과에서 권해준대로 간염 예방접종을 했다. 통증이 조금 없어진 것 같아서 운전을 조금 오래 했더니, 집에 돌아와 그만 바닥에 누워버리게 되었었다.
큰 눈이 내렸다. 도로에 눈이 가득 쌓였다. 뉴스를 보니 도로가 많이 막히고 차량이 눈길 위에서 미끄러지고 있었다.

늦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아내는 그 사이 밖에 나가서 눈을 치우고 있었다. 외투를 입고 나가 보았다. 사람들은 밖으로 나와 쌓인 눈 위에서 놀고 있었다. 어린 아이를 데리고 나온 어떤 젊은 남자는 기껏 다른 사람이 치워 놓은 눈을 아이에게 뿌리고 던지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아내가 다가가서 그 사람에게 그러면 안된다고 알려줬다. 그는 얼버무리는 투로 대답은 하였지만 별로 알아들은 눈치는 아니었다. 사실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의 사람이었다면 처음부터 그런 짓은 하지 않았을 것 같았다.

내일 아침 일찍 다른 과 진료를 위해 병원에 또 가야 한다. 아침이 되어 도로 상황을 본 후 필요하다면 지하철을 이용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고양이 깜이가 방 구석에 저런 자세로 앉아서, 나와 아내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앞에 다가가 앉아서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었지만 나는 겨우 그런 정도의 동작도 아직은 쉽게 하지 못하고 있다.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고양이도 우스웠고, 허리 통증 때문에 간단한 움직임도 느리게 하고 있는 내 모습도 우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