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0월 24일 일요일

참을성.

한 해 동안 뭔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조금 더 참을성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사람에게든 사물에게든 웬만한 일로는 화가 나지 않는다. 흥분하는 일도 적다.
인격이 더 나아졌을리는 없다. 좀 더 멍청해졌거나 무감각해진 것 같다.
참을성은 늘었지만 똑똑해지지는 못하였다.
판단은 언제나 늦고 여전히 어리석다.

심야에 약속이 취소되었다. 그냥 집으로 돌아오고 싶었는데 자주 들르는 바에 잠깐 머무르기로 했다.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음악을 듣다가 집에 돌아오고 싶었었다.
그런데 평소에 상대하기 싫고 성가셔하던 사람들이 들어와서 부어라 마셔라 술을 먹기 시작했다.
상관하기 싫었다. 작은 소란이 일어났고 나는 창피했다.
아무도 나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창피했다.
예전에는 어울리고 싶지 않은 사람들 곁에는 앉지도 않았고 말대답도 하지 않았었다. 내가 언제부터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사람들을 대했다고, 그렇게 사람들에게 일일이 응대를 했던 것일까.
스스로에게 화가 나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레슨생이 사정이 생겼다고 하며 화요일로 약속을 옮겼으면 좋겠다는 전화를 했다.
다행하게도 아직 집을 나서기 전이었다. 오전 즈음에라도 전화를 해줬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날씨 좋은 가을 오후를 자는 것으로 보내버렸다.
몇 달 전부터 같은 꿈을 반복하여 꾸고 있다.
친구인지 누구인지의 집에 모임이 있어서 초대를 받아 참석한다. 아는 얼굴들도 있지만 대부분 모르는 사람들이다. 듣고싶지 않은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다. 밖으로 잠시 나와 혼자 산책을 한다. 그러면 어김없이 얼굴이 똑같이 생긴 두 녀석이 (꼭 한 놈은 키가 작다) 내 앞에 나타나 가로막더니 내 얼굴에 가루를 뿌린다. 그러면서 '다 너를 위한거야'라고 말한다. 가루는 흰색일 때가 많다.

이상한 꿈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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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23일 토요일

다급했던 이야기.

약속 한 시간 전에 지하 3층 주차장에 내려갔다.
자동차의 시동을 걸고 운전을 하며 들을 음반을 골라 틀어놓은 뒤 유유히 출발했다. 시간은 충분했다.
그런데 지하 3층 주차장 출구가 사라졌다. 하나뿐인 주차장 출입구에 셔터문이 내려져있었던 것이었다.
지하 3층에서 1층 수위길까지 뛰어 올라갔다. 관리해주시는 분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리고 다시 지하 3층에 내려가 직원이 와주기를 기다렸다. 1분이 아까왔다. 만일 10분이 지체된다면 지각을 할 것이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가 한참 동안 11층에 머물러있었다. 십여 분을 기다린 후에야 엘리베이터가 움직였다. 그러나 엘리베이터는 1층까지 왔다가 다시 올라가버렸다. 나는 다시 1층 수위실에 뛰어 올라갔다. 관리인 아저씨는 인터폰으로 누군가에게 아까와 똑같은 말을 다시 했다.

직원이 내려와서 셔터문을 열어준 것은 아홉 시 오십 분이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왜 늦게 오셨느냐고 했더니 간단한 대답을 했다. '밥 먹느라고요.'

나는 미친듯이 도로를 달렸다. 분명히 과속단속 카메라에 촬영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5분 늦게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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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15일 금요일

리듬이 망가져있다.



이틀은 아침 일찍 잠들었다.
뒤이어 이틀은 아침 일찍 일어났다.
정말 정신이 없다.

지하 주차장에 도착한 후에 비로소 차 열쇠를 두고 나온 것을 알았다.
다시 10층까지 올라가 방을 뒤지다보니 차 열쇠는 등에 매고 있던 악기가방 안에 있었다.
한숨을 쉬며 다시 지하 3층 주차장으로 가던 중, 이번엔 확실히 전화를 두고 나온 것을 알게되었다. 다시 10층으로 올라가 전화기를 찾아내고 더 잊은 것은 없는지 확인을 했다.

두 개의 악기를 들고 나와야 했던 탓에 이마엔 땀이 맺혔다. 연주를 두어 시간 앞두고는 '아파서 못 오겠다'는 전화를 한 드러머 때문에 진땀을 흘렸다.

새벽까지 이어질 음악 소리를 생각하며 저무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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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14일 목요일

이번엔 감기에 걸렸다.

지난 해에는 앓았던 적이 없었다.
정신적으로는 바닥을 기어다녔는데 긴장상태가 지속되었던 탓이었는지 몸이 아프지는 않았다.
올해 여름부터, 자주 많이 아팠다.

어제 밤에는 며칠 고생하던 배앓이가 낫는 듯 하였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생겨 새벽에 옷을 얇게 입고 어두운 거리를 뛰어 나갔었다.
그것이 나빴나보다.
얇은 외투를 다른 곳에 벗어두고 반팔 셔츠만 입은채 되돌아와야했다.
또 배탈이 나서 중간에 택시에서 내려야했다.
정신을 추스리겠답시고 몇 킬로를 걸어서 돌아왔다.
결국 감기에 걸렸다.

이제는 버텨보겠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날이 밝으면 꼭 약을 사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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