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30일 목요일

가내수공 피크

밴드 리더님의 호기심이 발단이 되었다.
검색해서 이런 상품이 있다는 것을 알려드린게 내 잘못이라면... 잘못이었다.

집안의 쓰지 않는 신용카드, 무슨 회원카드들이 모두 구멍이 뚫린채 쓰레기통에 들어간 대신... 몇 달 분의 피크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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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28일 화요일

좋은 음향


요즘 공연에 사용하는 악기 두 개.
나름 곡 마다 순서에 따라 용도에 맞게 쓰고 있다. 그런데 비슷한 색상이어서 그게 그것 같은데 왜 굳이 악기를 바꿔 연주하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도 있나보다.
음성 문화예술회관에서의 음향은 정말 아주 진짜 좋았다.
프리사운드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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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27일 월요일

제 집을 찾은 고양이


길에서 살던 고양이. 밥을 주고 있던 아내에게 다가와 스스로, '나, 아무래도 가족이 필요하다'라며 입양을 신청했던 고양이. (정말이다.)

당시의 글 참조 -> http://aulait.tistory.com/1743

지난 주말에 이 고양이가 입양되어 갔던 충청도의 음성에서 공연을 했는데, 아내가 지난 달 부터 고양이의 새 가족이 되어주셨던 부부를 초대하고 싶다고 말했었다. 내심 정작 그 분들은 공연 같은 것에 관심이 없는데 아내의 초대 때문에 귀한 시간을 쓰시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는데, 직접 만나 인사드리지는 못했지만 즐겁게 구경하고 가셨다고 전해 들었다.

그리고 이 녀석의 최근 사진을 아내가 받아왔다. 아이고, 너 정말 행복하게 잘 살고 있었구나.
초췌하고 지저분한 모습인 주제에도 자존심 세고 주눅들지 않는 성격이었던 어린 고양이였다. 걸음걸이도 제법 늠름하게 보이고 싶어하듯 보여서 참 귀여웠다. 털에서 윤이 나도록 잘 보살피며 함께 살고 계신 분들에게 드렸다는 것이 겨우 공연 티켓이었을 뿐이었어서 죄송했다.

고양이야, 행복하게 잘 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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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19일 일요일

새벽에 커피 한 잔


아내가 사왔던 보온병. 아주 잘 써먹고 있다.
친구와 함께 시장을 걷다가 눈에 띄길래 집어들었다고 말해줬었는데, 생김새를 보자면 아내의 눈에 들어오지 않을 수도 없고 사오지 않을 도리도 없었겠지. 따뜻한 커피를 담아두었다가 따라 마시기 위해 고양이의 귀를 붙잡고 살짝 돌리면, 시선이 명확하지 않은 눈을 하고는 "왜, 한 잔 드실라우?" 하는 것 같았다.

지금 새벽 다섯 시.
열 두 시간 후에는 이천의 어느 공연장에서 첫 곡을 시작하고 있을 예정.
심리적인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갓 내린 커피 한 컵을 마시고 가볍게 양치질을 하면 곧 잠든다. 괜히 음악을 틀어두고 뒤척이다보면 갑자기 할 일들이 더 생각나고 하루 종일 초각성 음료로 버티게 되어 좋지 않다.
낮의 연습시간에 밴드의 사운드가 좋게 들렸다.
내일 공연은 평소보다 품질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피곤함에 적셔진듯 잠들어 있는 아내의 방을 잠시 살펴보고... 해가 뜨기 전에는 나도 자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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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17일 금요일

형님 한 분.


2004년에 처음 직접 뵈었던 드러머 강윤기 형님.
대기실에서 찍었던 사진이 두 장이나 남아있었다.

당시엔 일회성 공연과 행사로 만나서 함께 연주할 수 있었는데, 합주 연습 몇 번과 무대 위에서의 연주 서너번을 겪은 후 나는 집에 남 몰래 혼자 아주 많이 힘들었었다.
내 타임키핑은 전부 앞으로 먼저 나가고 있었고, 느린 곡에서도 비트를 맞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 선명하게 들렸다. 이유는 한 가지, 드러머가 너무 정확했기 때문에. 다르게 설명하자면, 그 이전 까지는 윤기 형님과 같은 드럼 연주자를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모르고 지나갔던 것이었다.
그 뒤로 한동안 나는 메트로놈은 쓰지 않고 가능하면 미디파일로 드럼 리듬을 만들어 연습했다. 정확한 타임키핑은 드러머로서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런 연주자는 사실 드물다. 그리고 지금은 꼭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어쨌든 당시에는 나에게 윤기 형님과의 연주가 아주 큰 자극이 되었었다.

두 분 모두 나를 붙잡아 앉혀두고 레슨을 해주셨다거나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음악적인 지시를 해주신 적은 없지만, 기타 연주자 김광석 형님과 함께 이 분을 나는 마음 속의 선생님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몇 년의 세월이 흘러서, 이렇게 되어있으리라고 그때에는 생각하지 못했다.
재미없게 말하자면 확률의 문제인 것이고 사실은 내 인간관계의 반경이 좁은 것일 뿐일지도 모르겠지만, 사람은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는 인연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 법인가. 나는 뭔가 인연이라는 것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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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2년여 만에 스페이스 공감의 공연과 녹화를 하고 왔는데, 첫 날 방송녹화를 했다. 변명부터 하자면 그날 나는 잠을 충분히 못 자두었던 탓에 컨디션이 별로였다. 공연 직전 대기실에서 윤기형님이 평소와 다르게 한 마디 던지셨는데...
"너 아까 리허설 때에 보니까 많이 늦더라. 소리가 잘 안들리는거냐, 뭐냐. 모니터 스피커 확인해봐라..."

모니터를 다시 확인해보았지만, 내심 가슴이 덜컥했다. 기계 탓일리가 있나. 그날 뭔가 손가락도 둔하고 정신이 맑지 않았던 것이었는데. 게다가 연습 부족. 몇 주 간 자전거 타느라 악기를 자주 만지지 않았다. 금세 티가 나기 마련 아니던가.
공연이 시작되고 나서도 계속 내 박자가 뒤로 밀리거나 틀리고 있지는 않는지 몹시 신경이 쓰였다. 연주 도중에 스탭 분에게 손짓을 하여 드럼 소리를 조금 더 올려달라고까지 했었는데... 결과를 말하자면 그 날 나는 모든 곡에서 실수하고 틀려버리고 말았다. 진땀이 나고 다음 곡이 걱정되고 정말 수 백 번은 연주했던 것 같은 노래들이 갑자기 기억이 나지 않기도 했다.

이튿날이었던 (녹화하지 않았던) 공연은 멀쩡했다.
전날의 상태는 반복되지 않았지만 뭐 이미 엎지른 물.
그런 일은 이제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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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가고 있다.


자전거 페달에 끈을 달았다.
그날 반나절 달려본 것을 마지막으로, 그후로는 계속 비가 왔다.


지금 내리는 비가 다 그치고 나면 이제 곧 바람이 불고 선선해질 것 같은데.
땀흘리고 햇볕에 그을리며 달려보던 올해의 여름에게도 인사를 해야할 때인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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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16일 목요일

고양이의 어린시절


집에서 제일 작은 고양이 (...라고 해도 다 큰지 오래된 고양이이지만) 이지가 이동장 안에 들어가 있었다.
상자가 눈에 보이면 우선 들어가보는 녀석들이니까.

이 이동장은 벌써 만 여덟살이 넘은 고양이 순이의 것이다. 이 사진 때문에 생각이 나서 어린시절 순이가 이 안에 들어가 있는 장면을 뒤져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아마 이 블로그의 8~9년 전 글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함께 집안에서 부딪히며 살고, 함께 나이를 먹고 있다가 가끔 서로가 몇 살이 되었나 생각해보면 놀란다. 집안의 큰 언니 고양이는 아내 계산에 따르면 열 여섯 살, 그 기준으로 따지면 순이는 열 살.


어린 시절 순이 고양이의 귀엽게 나온 사진을 찾지 못한 대신에 음흉하고 사악해보이는 어린이 순이의 사진을 찾아 볼 수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고양이들의 어린시절에 볼 수 있는 다양한 표정에는 그 고양이의 성격이 잘 담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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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13일 월요일

미사리


낮에는 햇빛이 쨍쨍하여 일을 마치는대로 자전거를 타야지, 라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웬걸 집에 돌아오던 시간에 동네엔 비가 퍼붓고 습도는 백 퍼센트.
눅눅해져있는 자전거와 악기들을 번갈아 보면서, 그냥 손질하고 닦는 짓이라도 할까 망설이다가 그만 잠시 잠들었다.
밤 열 한시에 송 형님 전화. 하늘에 별이 보인다는 말씀을 듣고 눈 비비며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입고 나왔다. 한참 달리고 있는데, 마침 그 시간이 전기절약을 위해 가로등을 꺼두는 시간이었는지... 몇 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일제히 불빛이 꺼지고 있었다. 마치 이 시간에 왜 기어나오느냐는 훈계를 듣는 기분이었다.
평소 들러서 차 한 잔 마시던 가게는 오늘따라 일찍 문을 닫기로 했어서 그곳에서도 앉자마자 불이 모두 꺼졌다. 주인의 배려로 따뜻한 커피를 마실 수는 있었다.

뭐 먹어둔 것이 없어서 배가 고팠다. 강변의 차도쪽으로 나아가 음식점을 찾아보기로 했다. 마침 불켜둔 냉면집을 발견, 신나하며 들어가보았더니 냉면은 낮 시간에만 먹을 수 있다고. 아, 그런게 어디있어. 심야에 각종 국수류를 먹을 권리를 보장하라...라고 말할 처지는 아니었어서 그냥 국밥 한 그릇. 고기류는 잘 먹지 않는 탓에 빈 국밥 그릇에는 인심좋게 듬뿍 넣어주신 고기점들이 그득하게 남았다.


밥을 먹고 있었던 식당은 미사리의 라이브 클럽 부근이었다. 창문 너머로 보이던 클럽은 십오년 전 나도 일했던 그 곳. 금요일 밤에 이 길의 대부분 업소들은 모두 불이 꺼져있고, 을씨년스럽게 새어나오는 그 동네에서 노래 잘하는 가수의 음성이 들렸다.
한참 성업중이었던 당시의 미사리 시절, 나는 이 길에서 세 군데의 클럽을 초저녁에 '돌고', 일산까지 악바리처럼 달려 두 군데에서 더 일한 다음 지금 국밥을 먹고 있을 이 시간 즈음에는 화정의 한 무대에서 마지막 연주를 마친 다음 늘 졸음 운전을 하며 집에 왔었다.
딱, 그 기억만 남아있다.
좋은 사람들, 함께 일을 하다가 교통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나버리신 분의 얼굴 정도는 기억하고 있지만, 숱한 욕망과 과잉된 자존감의 아귀다툼들은 다 잊고 말았다.

텅 빈 미사리의 넓은 길을 달려 팔당대교를 향해 가고 있을 즈음에, 다니던 라이브 클럽에서는 익숙하지만 듣고 싶지 않은 노래의 반주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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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8일 수요일

올 여름의 사치


십 년이 넘게, 나는 휴가를 가져보거나 놀기 위해 어디론가 떠난다거나, 운동을 한다며 집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을 사치로 여기고 지냈다.
그 결과 휴가라는 이름을 붙인 시간을 마련한 적은 없지만 결국은 피곤해서 쉬어야했고, 만성 스트레스로 괴팍한 성격을 점점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인간이 될 수 있었다. 당연히 운동으로 땀을 흘린 것 보다는 몸살과 위경련으로 식은땀을 흘린 횟수가 더 많았다.

올 여름의 사치는 어느 공연장 대기실에서 상훈씨의 기습 제안으로 시작되었다. 자전거 이야기에 늘 시큰둥한 반응이었던 내가 그날 아주 솔깃하게 상훈씨의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의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이상훈이라는 인물이 아무래도 남을 설득하거나 자신의 주장을 말하는 기술이 고도로 발달되어있을 것이라는 의심을 하고 있다.

그 날 부터 시작되어서, 자전거에 대하여 검색하고 읽고 공부하게 되었다.

그리고 3주 만에, 아내의 손목을 잡고 끌다시피하며 함께 자전거 가게에 가서 아내 것 까지 두 대를 덜컥 사왔고, 그날 밤 일을 마친 직후 부터 야간 라이딩을 시작했다. 지난 한 달 반 동안, 비가 종일 내렸던 며칠을 제외하고 매일 자전거를 타고 밖으로 쏘다녔다.
밤중에는 보통 이런 모습을 하고 출몰하여, 불꺼진 남양주 도로를 벗어나 한강의 다리 갯수를 세어보며 돌아다녔다.

강을 건너다니며 잠시 쉬기도 했고,


집에 돌아올 때 즈음이면 해가 떠오르는데, 서울에서 동쪽으로 달리며 보이는 일출 장면에 눈을 빼앗겨 녹조 가득한 강물에 몸을 담글뻔 하기도 했다.

올 여름의 사치는 그대로 끝나지 않았다.

몇 주 만에 몸의 컨디션이 항상 좋아진 상태가 되었다. 보상을 바라고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체중도 조금 줄고 뱃살도 제법 없어졌다. 뭐 이런 재미있는 것이 다 있었냐며 계속 좋아하고 있는 가운데, 악기 연습 시간은 당연히 줄어들었다. 어서 겨울이 와주지 않으면 나는 다시 베이스 초보자가 될 지도 모른다.

악기 연습을 게을리했던 대신에, 무대 위에서 연주를 할 때에 더없이 몸이 가벼워졌다. 피로해서 픽 쓰러져 잠드는 일은 점점 없어졌고, 조금 격하게 자전거를 타고 돌아온 후 깊이 단잠을 자는 일이 많아졌다.

핑계를 더 길게 쓸 수도 있으나 군색하고 궁색해지므로... 아무튼 위와 같은 타당한 핑계로 한 달 반 만에 덜커덕, 이번엔 로드 자전거를 사버렸다.


이렇게 되어버려서...
아침 일찍 일어나 이십여 킬로미터 산책을 하기도 하고,


체감 기온 40도라는 요즘의 날씨에, 대낮에 어지러워하며 돌아다니기도 하는 생활을 하고 있게 되었다.
이것이 올 여름의 이변이고 나의 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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