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28일 일요일

부평 공연

 

어제 토요일, 공연하는 날 새벽에 마감에 쫓겨 어쩔 수 없이 타이핑 하는 기분으로 페달보드를 꺼내어 정리하기 시작했다. 한 달 전 제주도에 갈 때 보드에서 컴프레서 페달 한 개만 떼어 가지고 갔었다. 전기잡음 문제를 일으켰던 일렉트로 하모닉스 페달 대신에 MXR 베이스 옥타브 디럭스를 보드에 붙이고, 프리앰프와 컴프레서의 위치를 바꾸어 연결했다. 그것이 공연 무대에서 아주 잘 작동해줬다. 리허설 할 때에 이미 좋은 소리가 나고 있어서 마음 편하게 연주할 수 있었다. 길게 고민했던 것이 아니라 하기 싫어서 버티다가 어쩔 수 없이 새벽에 급조했던 것인데, 결과가 좋았다.

가져간 악기들의 상태도 좋았다. 사실 한 달 넘게 쓰지 않았으니 상태가 나빠질 일도 없었다. 어제 공연에선 절반 분량을 펜더 엘리트 5현으로 연주했다. Passive 모드로만 썼다.

펜더 '64 재즈는 연말에 제주도에서 돌아온 후 두어 주 동안 줄을 풀고 가습기 앞에 세워져 있었다. 평소에 정확하게 조율한 상태에서 오래 두면 넥에 무리가 생기곤 했었는데 어제는 사운드체크부터 공연을 마칠 때까지 거의 여덟 시간 동안 두었어도 멀쩡했다. 올해의 첫 공연은 이렇게 시작했다.



2024년 1월 26일 금요일

The Boxer

며칠 머리 속에서 노래가 재생되고 있었어서 Smokie를 듣고 있다가 유튜브에서 그들의 영상을 찾아 보고 있었다. 중학생 무렵엔 카세트 테이프에 접힌 채 끼워져 있던 속지에서나 볼 수 있었던 사람들이 노래하고 연주하는 것을 구경할 수 있었다. 스모키에서 이어져 지금도 유럽, 러시아에서 공연하고 있는 크리스 노먼의 영상을 보다가, 어떤 무대에서 그가 통기타를 가지고 자기가 좋아하는 곡이라며 The Boxer를 부르는 걸 보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사이먼과 가펑클의 The Boxer를 틀어보았다.

노래를 들으며 또 한 번 가사를 찾아 읽어보았다. 나는 오랜 동안 'for a pocketfull of mumbles' 라는 구절을 'for a pocket for a numbers'로 잘 못 알은채 지냈었다. 어느날 그 노래를 듣다가 이상하잖아, 라는 생각이 들어 가사를 검색해 보고 내가 엉터리로 알고 있었다는 걸 알았던 것이다. 그 전까지 나는 어릴 적 서점에서 샀던 '팝송책'에 나와 있던 것을 그대로 외운 채로 있었다. 그 이전에 듣고 있을 땐 몰랐다는 것이 더 창피했다.

폴 사이먼과 아트 가펑클이 그 곡에서 주인공이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너무 외로왔을 때 7번가에서 호객하는 창녀들로부터 위안을 얻곤 했다는 부분을 노래하고 있었다. 나는 그 구절이 그 노래의 문학적, 음악적 완성도를 높였다고, 어릴 때부터 생각해 왔다. 마지막 절에 갑자기 등장하는 권투선수 비유보다 훨씬 좋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2024년 1월 24일 수요일

애플 뮤직 클래시컬

 

 애플뮤직 클래시컬이 한국 서비스를 시작했다. 앱을 미리 다운로드 해놓고 "이제 사용할 수 있다"는 알림이 보이자마자 이어폰을 연결하여 들어보기 시작했다. 기돈 크레머, 주빈 메타, 마르타 아르헤리치, 빈 필하모닉 등의 이름을 오랜만에 보았다. 애플뮤직에서 기획한 것으로 보이는 몇 개의 목록에서 음악을 골라 듣기도 했다.

마리아 주앙 피르스의 음반을 들었다. 2006년에 나온 여섯 장짜리 시디, 여섯 시간 반이 넘는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집이다. 작년에 손열음 씨가 낸 앨범과 같은 곡 구성이다. 손열음의 모차르트 컴플리트 소나타엔 한 곡이 없고, 그래서 전체 시간은 여섯 시간 이십 사분이었다. 두 사람의 연주는 질감이 다르고 호흡도 다른데 짚어내기 어려운 정서적인 닮은 점이 있다. 하루를 잡아서 한 악장씩 두 앨범을 비교하여 들어보면 재밌겠다고 생각했지만, 열 세 시간을 쉼 없이 집중하여 음악을 듣기란 어려울 것이다. 한 번에 시디 한 장씩, 그렇게 들어보면 좋겠다.

2024년 1월 23일 화요일

물건

 

 사람은 도구로 생각한다. 솜씨는 손을 놀려 하는 재주다.

어떤 물건을 쓰느냐는 것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드러내어 준다.

사람은 물건으로 사유한다는 말이 오늘은 많이 생각 났다.

2024년 1월 22일 월요일

음악

중학생 시절 나는 매일 긴 시간 음악을 듣고 살았다. 그 시절 똑같은 음악을 끝없이 반복하여 듣고 있던 것이 정말 얼마 전의 일처럼 느껴진다. 무손실 음원, 리마스터 된 음악을 스트리밍으로 듣고 있는 지금과 비교하면 또 멀고 먼 옛 이야기라는 게 체감된다. 사십년 전 자주 듣고 있던 음악을 지금 좋은 음질로 다시 들어보고 있으면 중학생 때 카세트 테이프로 듣고 있었던 시절 그 음악들도 음질이 좋았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분명 어떤 테이프는 소리가 먹먹하거나 트레블이 지나치게 들려서 힘들어 했었는데 마치 지금 깨끗한 음질로 듣고 있는 이 음악 그대로 과거부터 듣고 있었던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오늘 아침엔 Joe Henderson의 'Lush Life'를 듣고 있었다. 1992년에 나는 이제 막 나온 시디를 사서 그것을 양손으로 쥐고 집에 돌아와 경건하게 비닐을 벗겼었다. 어딘가 저 높은 곳에 있는, 도저히 다다를 수 없을 수준의 연주를 듣고 있다고 생각했다. 애플뮤직에 고해상도 무손실 음원으로 올려져 있고, 좋은 음질로 다시 듣고 있다. 그런데 애플뮤직에 어째서 'So Near, So Far' 앨범은 없는지 모르겠다. 오래 전 내가 m4a 파일로 변환해둔 것이 보관함에 간신히 남아 있는데 도저히 원본 시디를 찾지 못하겠다.
 

2024년 1월 13일 토요일

고양이 이지

 

방 안에 햇빛이 들어오고 어렴풋 소리가 들렸다. 그릇 소리, 고양이를 어르는 말 소리가 들리고 있어서 잠이 덜 깬 채로 밖으로 나갔다. 아내가 이지에게 밥을 먹여주고 있었다. 아내와 이지 앞에 다리를 접고 앉아서 고양이가 고개를 흔들어 여기저기 뿌려둔 습식사료 파편들을 닦아 치웠다. 이지의 입 안에 곱게 갈은 습식사료를 일일이 손가락으로 떠먹여주는 일을 하루에 세 번, 아내가 혼자 맡아서 하고 있다. 그렇게 일곱 달째 고양이를 먹이고 있고 여전히 이지의 혈당 수치는 백 몇 십이 나오고 있다. 스스로 먹지 못하는 나이 든 고양이에게 건조사료 대신에 깡통사료를 먹이기로 아내가 결정하고 실행하지 않았더라면, 이지의 당뇨병은 악화되었을 것이다. 비싸고 힘든 비용과 노력을 들여 고양이를 보살피고 있는 중이다.

베란다에도 햇빛이 잔뜩 들어오고 있었다. 창유리 앞에 서서 겨울 한 가운데에 있는 바깥을 내다 보았다. 이 집에 이십 년째 살고 있는데 처음 이사했던 날처럼 아직도 아파트 10층은 너무 높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떠난지 8년이 된 순이를 아직도 그리워 하고 있다. 찬 바람에 선뜩한 기분이 들 때처럼, 문득 보고싶어지고 가끔은 슬퍼진다. 애정, 교감, 좋아하는 마음은 생의 대부분을 힘들게 만든다. 함께 숨 쉬고 서로 체온을 느낄 수 있을 때 그 잠깐의 기억을 달이고 고아 마시며 대부분의 시간을 살아 낸다.

2024년 1월 11일 목요일


무슨 꿈을 꾸고 깨었다. 그리고 잊어버렸다.

과거엔 잠에서 깨어나면 꿈을 기억하고 그 꿈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생각하곤 했다. 때때로 꿈풀이를 검색하여 읽어보기도 했었다. 꿈이라는 것이 기억을 정돈하여 뇌에 저장하는 과정일 뿐이라는 것을 안 다음부터는 자고 나서 꿈을 떠올려보지도 않게 됐다.

그 대신에 조금 전의 꿈 내용을 완전히 잊기 전까지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것을 기억하려 하고 있는지 추측해 볼 수는 있게 됐다. 아직 뇌와 꿈에 관한 과학적 성과에 대해 읽거나 배우기 이전에도 나는 꿈 꾼 것을 내가 현실에서 경험한 것과 관련지어 보는 습관이 있었다. 꿈이 미래를 예측한다던가 상징한다고 믿기 보다는 두서 없고 무논리적인 그 스토리를 기억하여 곱씹어 생각해보곤 했었다. 어릴 적 읽었던 책의 내용이나 영어 어휘들, 음악 등을 기억하는 데 꿈 꾼 것을 연관시켜 기억해온지 오래 됐다. 그것은 기억을 엉터리로 저장해버리기도 했다. 현실의 것과 꿈의 내용이 섞여서 소설의 이야기나 낱말들, 노래 등등이 실제 경험과 다르게 기억되기도 했던 것이다.

꿈에 대하여 중요하지 않게 여긴 이후로 나빴던 경험에 대한 기억이 덜 생생하게 기억되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사실을 기억하긴 하면서도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 같은 것은 우선 순위 밖으로 저장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자주 힘들고 기분 나쁜 꿈에 사로잡혀 은연 중에 정신적 피로를 많이 느껴왔다. 이젠 힘들게 하거나 우울하게 만드는 꿈은 꾸지 않고 있거나 빠르게 잊어버리거나 둘 중 하나로, 거의 기억하지 않을 수 있게 됐다.

2024년 1월 10일 수요일

잉크


 같은 브랜드의 잉크를 쓰는 것이 좋다고 듣긴 했었다. 오래된 만년필 회사는 기본적으로 잉크를 같이 만든다. 펠리칸은 잉크를 만들어 파는 것으로 시작한 회사였다. 요즘 펜을 만드는 회사는 전부 자사 브랜드의 잉크도 생산한다. 그렇다면 잉크만 제조하는 회사의 잉크는 어떤 만년필에 넣어 쓰면 좋은 걸까. 예를 들어 지금 내 디플로마트 만년필엔 다이어민 잉크가 들어있는데, 30ml 짜리 디플로마트 잉크를 진작에 다 써버렸기 때문이다. 다이어민 잉크는 이 펜에서 아주 잘 흐르고 써진다. 오토후트 펜에도 다이어민 잉크를 넣어 쓰고 있다. 파버카스텔 펜에는 그동안 여러 브랜드의 잉크를 넣어 써오고 있다. 그래서 같은 브랜드의 잉크를 써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지냈다. 펠리칸 펜에도 다이어민, 파커, 카랜다쉬 잉크를 번갈아 넣어 쓰고 있었다.

지난 달 말에 펠리칸 잉크를 몇 병 샀다. 그동안 다이어민 잉크를 넣어 쓰고 있었던 M200 브라운 마블에 빨간색 펠리칸 잉크를 넣어 보았다. 놀랍게도 필감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냥 잘 미끄러지고 잘 흐른다는 것만이 아니라 펜 끝이 종이에 닿아 그어지는 기분이 완전히 변한 것이었다. M200 파스텔 블루엔 파커 블루블랙이 들어 있었는데, 그것 대신에 새로 산 펠리칸 Türkis 를 넣어 보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펠리칸 펜에 펠리칸 잉크를 넣으면 그것만으로도 펜의 닙이 바뀌기라도 한 것처럼 좋은 느낌으로 써지고 있었다. 남들은 다 아는 사실이었는지도 모르지만, 나에겐 신기한 경험이었다.

안개

 

새벽엔 짙은 안개가 바깥에 자욱했다. 베란다에 나가 밖을 내다 보았을 때 건너편 건물은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강쪽은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최근 눈이 많이 내린 것은 한반도 주변에 수증기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날씨 예보 기사에서 읽었다. 꼭 수증기나 대류현상 때문이 아니어도 이 동네에 안개가 가득한 것은 드물지 않은 일이었다. 조용한 새벽에 바깥의 모든 것이 안개에 가려져, 마치 고립되어 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일은 전에도 몇 번 경험했었다. 아주 오래 전 고양이 순이를 품에 안고 안개가 자욱한 밖을 바라보며 베란다 창유리 앞에 서 있던 날의 기억이 최근에 본 영화의 한 장면처럼 눈 앞에 지나갔다. 부드럽고 윤기있는 순이의 털과 갸르릉 거리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순이의 눈동자가 생생하게 떠올랐다.

베란다 문을 닫으며 집안으로 들어와 잠 자는 고양이 짤이를 쓰다듬어 주고 내 의자 위에서 몸을 말고 잠든 깜이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볼을 갖다 대었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찰나의 순간을, 기억해두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지와 아내가 자고 있는 방에 다가가 잠깐 귀 기울였다가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어 한 모금 마셨다. 나는 음악을 듣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더 오래 조용한 공기를 느끼고 싶기도 했다.

2024년 1월 9일 화요일

겨울

 기온이 다시 내려갔고 오늘은 눈이 또 내릴 거라고 했다.

나는 어제 야외에 세워두었던 자동차를 지하 주차장으로 옮겨 세웠다. 나흘 동안 야외에서 눈을 맞은 차엔 얼음이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앞유리에 얼어붙은 눈이 녹지 않았고 오래 낮은 기온에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이 기어가 작동하지 않았다. 내 오래된 자동차는 추운 곳에 오래 있다가 시동을 걸면 자동변속기가 작동하지 않아 바퀴에 힘이 전달되지 않곤 한다. 엔진은 움직이는데 차는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다. 기어를 반 수동으로 바꾸어 확인하면 기어 단수가 표시되지 않는다. 시동을 껐다가 몇 초 후에 다시 켜면 기어가 정상으로 작동했다. 그 문제는 영하의 기온에서만 일어났다. 다시 추워지고 또 눈이 내린다고 하니 내 차를 좀 녹여 둘 필요가 있었다.

이 아파트엔 자동차가 과포화 상태를 넘어선지 오래 되었다. 주차장은 모자란데 차는 계속 늘고 있다. 차가 많아지면서 겨울이 되면 어디에도 주차를 하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지하주차장엔 다른 차를 가로막아 세워둔 차들 때문에 이동하기 조차 어렵다. 여유 공간 따위는 무시하고 길을 막은 차들을 밀어 치워놓고 차를 뺄 수도 없게 됐다. 세대가 변했기 때문인지, 이곳 주민들은 이웃에 대한 생각은 점점 못 한다. 자기의 이익과 손해에 예민하면서 공익적인 것에는 무심하다. 외출했다가 돌아올 때면 언제나 깊은 밤 시간일 수 밖에 없는 나는 주차할 자리가 없어서 아파트 담을 끼고 몇 바퀴씩 돌며 헤메인다. 이번엔 날씨 예보를 보다가 늙은 내 자동차가 생각나서 아직 자동차들이 돌아오기 전에 지하 주차장으로 옮겨 둔 것이다. 어쩐지 이런 정도의 행위 조차도 내가 약삭빠르고 이기적인 행동을 한 것 같아서, 기분이 개운하지 않았다. 어쨌든 오늘 밤엔 내 차에 붙은 얼음이 녹을 것이고 다음 날 엔진과 기어도 이상없이 작동하게 될 것이다.

2024년 1월 8일 월요일

성격과 취향


 음악을 듣고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매일 글을 쓰는 것이 나에겐 휴식이고 편안한 일상이다. 유약하고 보잘 것 없는 소일거리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나는 대여섯 살 때부터 지금과 같은 취향이고 성격이었다. 밖에서 또래들과 노는 일은 거의 없었다. 흙장난을 해본 적도 없었고, 친구의 집에 가서 방 안에 틀어박혀 시간을 보내는 정도가 가장 사회적인 행동이었다. 오히려 내 일상이 평화롭지 않게 된 것은 학교에 입학한 후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도록 강요 당하면서부터였다.

나처럼 지내어도 괜찮은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그 반대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이가 들고 각자의 생활이 또래 집단과 달라진 이후에도 여전히 어울려 세월을 보내는 친구들을 여럿 본다. 역시 성격과 취향이 개체로 하여금 평생 똑같은 선택을 반복하게 하는 것이다. 내가 트위터에 글을 적지 않게 된 데에는 수다스런 사람들이 하루에 수십개씩 올리는 글에 어느 순간 질려버렸기 때문이었다. 얼굴 모르는 사람들이 올리는 글까지 더해져 때로는 자기분열적 혼잣말들을 보고 있는 것이 점점 힘들어졌고, 정리되지도 다듬어지도 않는 생각을 낙서하듯 쓰고 있던 내 모습을 돌아보니 부끄럽게 느껴졌다. 지난 몇 해 동안 남들이 읽을 수 있는 글을 블로그에만 쓰고, 트위터는 일회성 정보를 찾거나 미리 만들어 놓은 리스트를 통해 뉴스를 읽는 용도로 쓰고 있다.


2024년 1월 6일 토요일

쥐가 났다


 아침에 자고 있다가 오른쪽 종아리에 경련이 나서 고통스러워 하며 깨었다. 처음은 손으로 주물러 보려고 하다가 통증이 심해져서 신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아파지고 있어서 신음은 저절로 비명이 되기 직전이었다. 좀 더 침착하게 해결해 보고 싶었지만 그 대신 끙끙 앓는 목소리만 크게 나오고 있었다.

방문 밖에서 이지에게 밥을 먹여주고 있던 아내가 방문을 열고 들어와, 발로 내 오른발을 꾹 밟아 뒤로 꺾어줬다. 그리고 급히 다시 돌아가 이지에게 밥 먹여주기를 계속 했다. 일단 아내가 발복을 뒤로 젖혀 준 다음엔 거짓말처럼 통증이 잦아 들었다.

내가 막 통증을 느끼고 신음을 내기 시작했을 때부터 내 곁에서 자고 있던 깜이가 크게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내 신음 소리가 커지면 고양이는 더 크게 소리를 냈다. 고양이가 거의 고함을 치듯 소리를 내고 있어서 나는 아파하던 중에 팔을 뻗어 깜이를 쓰다듬었다. 아내가 뛰어와서 '조치'를 해주고 돌아간 다음에도, 통증이 가라앉아 내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킬 때까지도 깜이는 계속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제서야 돌아보았더니 고양이의 표정은 놀랐다거나 당황했다기 보다는 비장하고 용감해 보였다. 내가 팔을 뻗어 안아주자 깜이는 비로소 외치기를 멈췄다. 그 모습이 너무 우습고, 가여웠다. 한동안 고양이는 곁에 앉아 얼굴을 올려다 보며 나를 살피고 있었다.

밖에선 이지에게 밥을 먹여주느라 아내가 허리 통증을 참으며 웅크려 앉아 있었다. 깜이는 내 뒤를 따라 방에서 나오더니 제 밥그릇 앞에 앉아 늠름한 자세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아내에게 들키지 않게 치킨텐더 덩어리를 꺼내 잘게 쪼개어 그릇에 담고 사료 몇 알을 섞어 고양이에게 주었다. 나는 조금 전 일이 식구들 앞에서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2024년 1월 4일 목요일

통기타

 쇠줄 통기타를 자주 치지 않았으니까 손가락 끝이 아픈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 이유 보다도 가지고 있는 기타들이 결함이 많아 제대로 연주를 하지 못 하였다. 한 개는 넥이 뒤로 누워버린 뒤 복원되지 않고 있고 그나마 칠 수 있는 다른 한 개는 프렛을 잘라 낸 단면을 제대로 마감하지 않아 손을 움직일 때마다 날카로운 프렛 절삭면에 손가락이 긁힌다. 너트는 홈 깊이가 들쭉 날쭉하여 첫번째 프렛에서 줄이 눌리는 강도가 다르다. 버리기엔 아깝고 굳이 돈을 들여 수리하기엔 애매한 기타들이다.

통기타를 쥐고 줄을 뜯다 보면 중학생 시절 엄청나게 몰입하여 기타를 배우고 익혔던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손가락 끝엔 퍼렇게 산화된 니켈 때가 물들어 있었고 기타줄 모양으로 살 위에 자국이 나 있었다.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그 기억이 되살아 난다. 기타의 사운드 홀에 종이를 덮고 이불을 뒤집어 쓴 채로 연습하다가, 결국 폭발하여 방문을 열며 나무라던 엄마의 모습도 생각난다.

좋은 통기타 한 개를 언젠가 가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2024년 1월 3일 수요일

지금 어디에 있는지


 사람들은 지금 매일 사용하는 물건들, 먹는 음식들, 생활을 제어하는 제도와 관습이 필요에 의해 생겨났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그 반대이다. 없던 것이 만들어지게 되어 이전에는 갖지 않았던 필요가 새로 생기는 것이다. 풍습이란 원래부터 그렇게 살아왔던 것이 아니라 어느날 누군가들에 의해 시작되어 다수의 동의를 얻거나 다수에게 강제해 오면서 반복되었던 것이다. 유래를 알면 물건이 생겨난 시대를 이해할 수 있다. 과거의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이 지금 여기에 있는 자기와 타자를 바르게 알 수 있게 해 준다.

역사를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현대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에 대해서도 무지하다. 무지한 채로 수명을 연장한다고 하여 특별히 잘 못 될 일은 없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지금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런 인생을 사는 사람에게 고양된 정신이나 철학은 사치이다. 매일 먹고 놀고 즐기는 것 외에 가치라고 할 것이 없는 삶을 사는 것이고, 알고 보면 굳이 문명의 울타리 안에서 살 이유도 없는 인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