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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16일 금요일

음악


 스물 한 살 어느 봄날 아침에 나는 시외버스를 타고 고속도로 위를 지나가는 중이었다. 제 2중부고속도로, 영동고속도로를 지나면서 나는 내 인생의 그 시간이 허비되고 있는 중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푸념만 차창 유리에 뿌옇게 끼고 있었다.

자주 가던 레코드 가게에서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클래시컬 음악 카세트 테이프를 한 개 샀었다. 니콜로 파가니니 현악 4중주라는 것 정도만 알아 볼 수 있었다. 버스에서 카세트테이프의 비닐포장을 벗기고 처음 들어보았다. 그 음악이 이어폰에서 흘러 나오자마자 나는 그 소리가 좋았다. 음악을 들으며 창밖을 무심하게 보면서 지금 이 시간이 그렇게까지 쓸모 없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지난 몇 주 동안 애플뮤직에서 파가니니 쿼텟의 음반을 여러 장 듣고 있는 중이다.

2023년 12월 31일 일요일

올해 들었던 음악들

2월에 소니에서 나온 워크맨 (음악파일 재생기기) 을 사고, 헤드폰과 이어폰도 새로 샀다. 맨 처음엔 신이 나서 그동안 보관했던 낮은 비트율의 파일들은 지우고 가지고 있는 시디들을 열심히 무손실 음원으로 새로 저장했었다. 그것도 나중엔 힘이 들어서, 생각 날 때에 한 두 장 정도 변환하거나 했다. 그래도 좋은 음질로 하루 종일 음악을 들으며 다니는 것이 참 좋았다.

일상 중에 가장 자주 듣는 음악은 보통 오래된 음악들이다. 수 없이 반복하여 들어 왔어도 또 찾아 듣게 되는 음악들은 빼고, 올해에 새로 듣게 되었던 음반들을 정리해 봤다.


이 앨범은 작년에 나왔던 것인데 나는 올 봄이 되어서야 듣게 됐다. 빌 프리셀의 기타와 제럴드 클레이튼의 피아노가 조화롭고, 그레고리 타디의 테너 색소, 클라리넷이 아름답게 들렸다. 이제 제법 나이 든 조나단 블레이크의 드럼도 좋았다. 다섯번 째 곡 Waltz for Hal Willner를 여러 번 들었다.

어우, 메탈리카의 72 seasons 앨범이 나온 날부터 시작하여 몇 달 동안, 정말 어린 아이처럼 좋아하며 이 앨범을 들었다. 걸으면서 듣고 운전하며 듣고 잠깐 쉴 때에 한 곡씩 들었다. 더 좋아진 앰프 톤도, 곡과 앨범의 구성도 전부 다 좋았다. 한 시간 이십 분 정도인 길이가 길지 않게 느껴졌다. 투어가 시작된 후에는 한동안 그들이 유튜브에 올려주는 라이브 영상을 꾸준히 보았다. 과거에 냅스터와 소송도 했던 메탈리카가 매우 좋은 품질로 자신들의 라이브 현장을 보여주고 있으니 세월의 차이를 느끼기도 했다.
일흔 두 번의 계절은 햇수로 18년. 그들의 인연을 이야기 하는 이 앨범제목과 상관 없는 이야기이지만 내가 김창완밴드의 리더님을 만나 처음 연주했던 것이 18년 되었다. 그분과 나는 열 여덟살 차이가 나니까, 그 때 리더님의 나이는 지금의 내 나이였다. 시간이 너무 빠르다.

밥 제임스의 새 앨범은 일종의 예의로 몇 번 들었다. 죄송하지만, 이 분은 Fourplay 이후 몇 년째 동어반복 중인 것 같다. Chuck Loeb이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Fourplay 활동이 계속 이어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고, 밥 제임스는 그 포맷으로 아직 더 들려줄 것이 많이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화가 중에도 같은 주제로 계속 똑같아 보이는 그림을 그리는 경우가 있듯이, 동어반복이라고 해도 항상 새로운 느낌을 주는 음악가 중에 Jeff Lorber 가 있다. 그는 작곡, 연주, 녹음 등에 있어서 언제나 적절한 선을 유지하고 있다. 지미 하슬립과 함께 하는 것이 더 할 나위 없이 좋고, 몇 곡에서는 제프 로버 본인이 리듬 기타를 치고 있는데 그 연주도 좋다. Marc Lettieri의 기타 연주도 좋았다. 드럼은 게리 노박.

제스로 툴의 새 앨범이라니, 깜짝 놀랐다. 제목은 독일어처럼 조어해 놓았지만, 누가 보아도 Rock Flute 이다. 이안 앤더슨은 뭐 다른 의미가 있다고 말했던 것 같은데, 잊어버렸다. 열 두 곡 모두 이안 앤더슨의 작곡과 노랫말로, 첫 곡의 나레이션을 듣고 나면 두번째 곡부터 '록 플룻'이 펼쳐진다. 전조, 변박, 연극같은 구성은 여전하고, 노인이 된 록커가 이제 힘을 빼고 편안하게 노래하는 목소리는 매력적이다. 여름까지 메탈리카의 앨범과 함께 가장 많이 듣고 있었다.

손열음이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열 여덟 곡을 담은 앨범을 녹음했다는 기사를 읽었었다. 작년에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녹음했고, 올해에 앨범이 공개됐다. 전부 여섯 시간 반 정도 되는 길이이다. 나는 순서대로 며칠에 걸쳐 듣고, 한동안 뭔가를 쓰고 있을 때 계속 틀어두고 있었다. 내 편견이지만, 최근 인기 있는 남자 연주자들의 연주보다 손열음의 피아노가 훨씬 좋다고 생각한다.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트리오 실내악 음반을 찾다가 이 트리오의 앨범들을 듣고 있게 됐다. 브람스 Opus 8과 에른스트 크레네크의 곡이 담겨있다. 46분 길이로, 듣기에 편안하고 듣고 나면 조금 착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브래드 멜다우의 클래시컬 음악 앨범이다. 영국 테너 가수 이안 보스트릿지와 듀엣으로 연주했다. 멜다우의 작곡은 재즈일 수도 클래시컬일 수도 있는데, 테너의 목소리가 섞이니 쟝르의 경계 어딘가에 있는 세계 같았다. 노랫말은 블레이크, 예이츠, 셰익스피어, 괴테 등의 시에서 가져왔다. 노랫말이 함께 제공되지 않아 음악을 들으며 가사를 볼 수 없었지만, 가사를 읽으며 듣는다고 해도 내가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지 자신 없었다.
이 음반은 멜다우가 직접 밝히길, 'MeToo의 시대에 성적인 자유의 제한'에 대한 앨범이다. 이 음반에 관한 한글 기사라고 할 것은 읽어볼 수 없었다. 어차피 나처럼 그 시어를 제대로 읽고 듣지 못하니까 국내의 음악 글 쓴다는 사람들도 주목하지 않은 것이거나, 섹슈얼 프리덤이니 하는 말은 지금의 시대에 하지 않는 것이 낫기 때문에 아무도 안 쓰는 것 아닐까.

여름부터 가을까지는 이 앨범으로 보냈다.
유월에 써둔 것이 있으니 그것으로

에릭 클랩튼의 21세기 첫 십년 사이의 Rarities 앨범이 나왔고, 듣고 있는 동안 눈이 동그랗게 되어 있었다. 첫 곡이 무려 Johnny Guitar 였다. 그 뒤로 이어지는 블루스 음악이 갑자기 나를 과거의 어디로 데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곡마다 각각 다른 시기에 따로 녹음한 것인데 어떻게 한 것이길래 마스터링이 완벽한 걸까, 하고 놀라기도 했다. 기타 연주도, 노래도, 다른 악기들의 입체감도 매우 좋았다.
그리고 돌아가신 Jeff Beck과 함께 연주했던 Moon River가 애니메이션 비디오와 함께 공개되었고, 하루 이틀 동안은 그것을 여러 번 돌려보고 다시 들었었다.

쳇 베이커, David Liebman과 연주했던 피아니스트 Richie Beirach 가 아직도 연주하고 있었는지 몰랐다. 검색해 보니 David Liebman 과 그는 한 살 차이였다. 두 분 모두 이제 일흔 후반 정도이니까, '아직도' 라는 말은 삼가야 옳겠다. 오래 전부터 활동했던 음악인들을 떠올리면 막연히 여든 아흔 가까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이 앨범은 사실 드러머 빌리 하트의 이름이 있어서 얼른 골라 들어보았는데, 알고 보니 무려 이십년 전에 나왔던 음반이 애플뮤직에 무손실 음원으로 새로 올라와 있는 것이었다. 나는 이 앨범이 있는 줄 몰랐었으니까, 올해 처음 들어본 음악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리치 베이릭 (이렇게 발음하는 것 같다)이 쉰 다섯이었을 때에 녹음한 것이므로 이것은 그의 젊은 시절 연주라고 해도 좋겠다. 음원의 음질이 좋고, 스탠다드 넘버들이 듣기 좋다. 바이올린이 추가된 트랙도 있다.
이 분은 작년에도 솔로 피아노 음반을 냈다고 하는데, 그것은 들어보지 못했다. 2018년에 나왔던 David Liebman과 듀엣으로 녹음한 앨범 Empathy 는 참 좋았었다.

갑자기 ECM에서? 라는 의문으로 존 스코필드의 새 앨범을 듣기 시작했다. 앨범 제목은 Grateful Dead의 곡 제목이고, 수록곡들은 밥 딜런, 닐 영, 레오나드 번스타인, 마일스 데이비스의 넘버들까지 분별이 없... 아니지, 다양하다. 빌 스튜어트의 드럼이 듣기 좋았다. 존 스코필드의 기타 연주는, 이젠 저 위의 경지라는 것에 가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이 앨범을 많이 듣지는 않았다. 어쩌다가 생각이 나면 랜덤 플레이로 놓고 틀어두는 정도였다. 좋은 앨범인데 올해엔 자주 들을 앨범이 아니었나 보다. 지금은 그냥 두고, 나중에 더 들어보고 싶다.

그리고 Incognito의 새 앨범이 등장했다. 이렇게까지 부지런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꾸준하고 여전한 팀이다. 인원이 많아서 움직이기 무거울텐데 라이브 연주도 일년 내내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자주 내고 있는 앨범마다 몇 곡은 또 훌륭하다. 일제 베이스를 쓰는 프란시스 힐튼의 연주는 언제 들어도 기분 좋다. 어쩜 이렇게 안정적으로 잘 치는 거지.
그러나 노래가 있는 이런 류의 팝 음악을 자주 듣지 않게 되어 많이 들어보진 않았다. 최근에 블루투스 수신기를 새것으로 바꾸고 나서 장거리 운전을 할 때에 큰 음량으로 몇 번 들었었다. 좋긴 좋은데, 열 여섯 곡은 너무 많은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

마지막으로, 약간 부끄럽지만, 친구들과 함께 하고 있는 밴드의 새 음원 두 곡이 나왔다. 9월에 녹음했고 겨울에 발매했다. 이번엔 산울림의 곡들이어서 올해 초에 밴드 리더님에게 우선 말씀을 드리고, 녹음을 한 뒤에 '개작동의서'를 내밀며 서명도 받았다. "재미있게 했더라"라고 서너 번 말씀해주셨는데, 윤병주는 좀 더 강한 추천의 말씀을 요구해보라고 하기도 했다. 내 생각엔 원작자가 이렇다 저렇다 언급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 (아닌가)











 



2023년 10월 8일 일요일

인천 공연



영종대교 앞 드림파크에서 열린 행사에 참여하여 공연을 하고 왔다. 내비게이션의 예측과 달리 외곽순환도로에 정체가 심했다. 다행히 약속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었다.

작은 규모의 공연이었고 리허설 시간이 되었을 때 비로소 악기와 음향장비가 막 설치되는 중이었다. 사람들이 아주 짧은 시간에 모든 것을 설치하고 준비해야 했다. 무대 위에서 음향을 조정하느라 뛰어다니던 청년은 혼자 분주하게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땀을 흘리며 무대 위와 아래를 번갈아 다녔던 그 스탭 덕분에 정해진 시간에 맞춰 리허설을 하고 공연도 진행할 수 있었다. 일부러 그에게 다가가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공연을 마친 뒤에도 한번 더 했다.

가까운 곳에 조성된 야생화 공원에 꽃이 잔뜩 있었다던데, 아쉽게도 구경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2023년 10월 7일 토요일

강화도 전등사


 두 시간도 못 자고 아침에 깨어버렸다. 고양이 이지에게 밥을 먹이기 위해 아내가 내는 그릇소리에 깬 것이 아니었다. 어떤 꿈을 꾸다가 혼자 벌떡 일어나 앉았다. 토요일에 길이 많이 막힐 것이었기 때문에, 잠이 모자란 상태로 일찌감치 강화도로 출발했다.

이 곳에서 공연했던 것이 십일년 전 시월이었다. 그날의 공연은 잘 생각나지 않았다. 사찰을 둘러보면서도 처음 와보는 기분이 들었다. 리허설을 한 뒤에 멀찍이 숲에 세워둔 자동차에 들어가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잠을 청했다. Simon & Garfunkel의 Bookends 앨범을 들으며 잤는데, 깨어났더니 몸이 가뿐해졌다. 어두워진 밤하늘 아래 공기가 상쾌했다.

조용한 산사에서 열 곡을 연주하고, 두어 곡을 더 한 후에 공연을 마쳤다. 무대에서 내려와 아시안게임 축구 결승 중계를 틀어보았더니 한 점을 잃고 지는 중이었다. 아이폰 화면에 축구 중계를 틀어놓고 아나운서의 말을 들으며 운전했다. 전반전에 동점이 되고, 후반전에 대표팀이 한 골 더 넣는 것을 들으며 집까지 왔다. 막 경기가 끝났을 때 나는 집에 도착하여 주차장에 들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올해 전등사 공연은 잘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2023년 10월 4일 수요일

리코딩


 명절 연휴 전날에는 의뢰를 받은 베이스 녹음을 집에서 했다. 데모를 여러 번 들어보고 연습을 많이 해보았다. 머리 속에서 정리가 끝난 뒤에 일부러 스튜디오에 출근하듯 방문을 닫고 앉아서 점심은 먹지 않고 밤까지 작업하여 일을 마쳤다.

완성된 음원을 보내고 나서 연휴 동안에는 언제라도 수정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오면 녹음을 이어가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연락이 오지 않아서 나 혼자 다른 악기로 재녹음을 해보기도 했다. 녹음에 썼던 베이스를 치고 있으면 그 사이에 줄이 닳아서 음색이 달라질까봐 줄을 풀어놓고 기다렸다. 휴일이 끝날 무렵, 다행히도 내가 보낸 베이스 트랙을 그대로 사용하여 그 음악의 믹싱을 마쳤다는 소식을 전달 받았다. 그제서야 긴장이 풀렸다. 녹음실에서는 짧은 시간 집중하여야 해서 일을 마치면 몸이 지치곤 했는데, 집에서 녹음해야 할 때엔 '됐다'라는 연락을 받을 때까지 긴 시간 강박을 느끼는 것 같다.

Recording 은 '리코딩'으로 발음하는 것이 맞지만 오래도록 우리말 표기는 '레코딩'이었다. 영어 발음이야 어떻거나 간에 레코딩으로 쓰고 말하는 것이 철자를 떠올리기도 편한 것 아니냐,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최근 우리말 사전에 등재된 외래어 '레코딩'에는 "'리코딩'의 비표준어"라는 설명이 붙어있었다. 놀랍게도 '리코딩' 항목이 따로 생겨있었다. 좋은 것일 수도 있고, 이상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3년 8월 13일 일요일

펜타포트 페스티벌

 



일주일 전에 펜타포트 페스티벌의 마지막 무대에서 연주를 하고 왔다. 아주 더웠고 습한 날이었다. 사흘 내내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은 분명히 체중이 줄었을 것 같았다.

펜타포트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건 오랜만이었다. 나는 해가 진 다음에 도착했는데 행사장 주변에서 아지랑이가 필 만큼 열기가 느껴졌다. 무대 뒤에 있는 대기실 컨테이너들이 친숙하게 보였다. 공연 직전에 사운드 체크를 할 때엔 그 사이 아파트가 많이 생긴 것이 낯설긴 했지만 익숙하고 아늑한 기분이 들었다.

펜스에 팔을 걸치고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지쳐보였다. 무대 위에선 많은 사람들이 공연을 위해 일하고 있었다.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여 연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스탭들이 믿음직스러웠다. 리허설을 더 짧게 할 수도 있었는데 중간에 문제가 생겼다. 그 때문에 시간을 다 써버려서 공연 직전에 화장실도 다녀오지 못했다. 괜찮아, 물을 안 마시면 되지, 라고 생각했다.



무대 앞에 사람들이 가득 모이고 우리는 약속했던 시간에 연주를 시작했다. 관객이 많으면 많을수록 연주하기에 편안한 마음이 든다. 페스티벌의 맨 끝 무대에 공연을 봐주러 모인 사람들은 조건 없는 호의를 베풀 준비를 마친 사람들이다. 그들은 아직 힘이 빠지려면 멀었다는 듯이 환호해 줬다. 음향도 좋았고 앰프의 사운드도 좋았다. 시간은 느리게 흘렀고 공연을 즐기며 연주할 수 있었다. 끝나고 났더니 너무 짧게 한 것 같았다. 보통 두 시간씩 공연을 하다가 한 시간 이십분을 연주했으니 짧게 느껴졌을 것이다. 거기에다 연습 때에 가늠해뒀던 시간보다 일찍 셋리스트 전체를 마치게 되었는데, 아마 앞 부분의 너댓곡을 너무 빠른 템포로 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았다.

예상은 했었지만, 마지막 곡을 마치고 대기실로 향하던 멤버들이 무대 뒤에서 일제히 뒤돌아 걸어왔다. 나는 내가 마시던 물병을 챙기느라 맨 뒤에 따라가다가 1차선에서 유턴을 하듯 그들을 따라 다시 무대쪽으로 걸었다. 소음이 많아서 무슨 곡을 더 할지 말해주는 것을 정확히 듣지 못했다. 어차피 인트로가 시작되면 금세 연주할 수 있으니까 별 상관은 없었다. 조바심도 없고 큰 긴장도 없는 것. 오래 해서 좋은 점은 여유롭게 할 일을 할 수 있는 것 정도다.

연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하루, 이틀, 그리고 목요일까지 할 일을 하고 나서야 천천히 그날의 일을 검색도 해보고 그 공연을 즐겼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읽었다. 모든 것이 엉망진창인 시절이지만, 그날 그 시간에 거기에 있던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올해의 여름 한 조각이 귀여운 모습으로 기억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일요일 밤에 밴드의 리더님이 이전보다 더 정성껏 연주하는 것을 곁에서 보았다. 그는 바쁜 일정 속에서 공연을 준비할 때에도 성의를 다 해서 연습하고 고민했다. 현장에 있던 관객들이 보내준 환호는 리더님의 정성에 대한 화답처럼 들렸다. 록페스티벌에서 순서와 시간이 주어졌다면 호응해줄 준비, 즐길 준비를 먼저 마친 쪽은 언제나 관객이다. 공연의 절반은 청중들이 해주는 것이다. 공연하는 사람은 정성껏 연주한 뒤에 겸손하면 된다.



2023년 7월 29일 토요일

촬영


낮에 어떤 촬영을 위해 너댓곡을 라이브로 연주했다. 만두를 꺼내기 위해 냄비 뚜껑을 막 열었을 때와 같은 온도와 습도가 용산 근처에 자욱했다. 촬영장소엔 에어컨 덕분에 시원했지만 연주하는 동안 땀이 흐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 쇼의 설정에 따라 작은 음량으로 연주해야 했다. 그것 때문에 우리가 불편해 할까봐 제작팀 쪽에선 마음을 써주셨다. 음색과 톤 때문에 감쇄기를 써야 했던 민열이의 입장과는 달라서, 나는 작은 앰프와 소박한 드럼세트에서 나오는 사운드가 편안하게 느껴졌다. 예상했던 시간보다 촬영을 일찍 마쳤다.

 

2023년 2월 3일 금요일

커피

 

지하철을 타고 혜화동에 가서 몇 년 만에 친구와 만났다.

집에서 매일 아침에 커피를 내려 마시고 있지만 외출하여 커피집에 앉아 잔에 담긴 커피를 맛보는 건 오랜만에 해보는 일이었다. 마침 새로 다운로드 하여 지하철에서 듣고 있던 음악은 1994년에 나온 데이빗 베누아와 러스 프리맨의 앨범이었다. 구십년대 후반 어느 겨울날에 나는 지금 앉아있는 커피집 길건너에 있던 레코드점에서 GRP 컴필레이션 시디를 한 장 샀었는데, 그 안에 있던 한 곡이 바로 The Benoit / Freeman Project 앨범 수록곡 중 하나였다. 그 당시엔 이 앨범을 구하지 못하여 궁금해했었다.

삼십여년이 지난 뒤 겨울 오후에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받으며 앉아서 그때 사지 못했던 음반을 이제서야 들어보고 있었다. 커피는 식기 전에 마셨다. 그리고 일몰 시간이 되기 전에 집에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2023년 1월 30일 월요일

진주에서 공연

 

1월 29일에 진주 경남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을 했다.

리허설을 시작하기 전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지난 몇 주 동안 나는 다시 이펙터들을 새로 배열하고 페달보드 위에 연결하여 한참을 연습했다. 전에는 해보지 않았던 순서로 꾸며 보았다. 이것들을 통과한 악기 소리가 항상 좋을 수 있도록 오래 준비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악기를 조율하고 소리를 내보는 순간 제대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컴프레서 페달의 소리가 영 이상했다. 재빨리 노브를 조정하면 금세 해결할 수 있는 일이기는 했지만, 그렇게 하려면 납득할 이유가 필요했다. 내가 집에서 시간을 들여 맞춰두었던 것이 틀렸었던 것인지, 케이블 어딘가에 이상이 생긴 것인지, 극장에 놓인 앰프와 모니터 스피커 때문인지를 판단할 수 있어야 새로 조정하는 값을 신뢰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은 내가 나를 신뢰할 수 있느냐의 문제였을 수도 있겠다.

결국은 컴프레서의 아웃/인 노브를 대충 다시 만져서 소리는 잘 나오게 해두고 시작할 수 있었다. 나머지 페달들도 연습했던 그대로 좋은 소리를 내줬다. 어찌어찌 공연은 마쳤지만 왜 그런 문제가 생겼는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좀 더 공부해서 내가 원하는 소리를 항상 얻을 수 있도록 하고 싶어졌다.

공연을 삼십분 앞두고 나는 무대에서 내려가 객석 사이의 통로를 따라 맨 위에 있는 콘트롤룸에 찾아갔다. 엔지니어를 찾아 리허설을 할 때에 내가 듣고 있던 음향 상황을 설명하고 두세 가지를 다시 주문했다. 그가 빠르게 알아듣고 내가 원하는대로 해주었던 덕분에 편안한 상태에서 두 시간 공연을 마칠 수 있었다. 이런 일도 예전엔 귀찮아서 하지 않았었다. 지금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 없으니, 가능한 최적의 상태에서 가장 좋은 소리를 내며 연주하고 싶다.


2023년 1월 18일 수요일

엉터리 기억

 


기억은 불성실하다.
애플뮤직에서 Gary Burton의 앨범 중에 Pat Metheny가 참여했던 것을 찾고 있었다. 나는 개리 버튼의 앨범을 LP나 시디로 샀던 적이 없었다. 카세트 테이프로 한 두 개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생각이 났을 때 앨범들을 찾아두고 죽 이어서 듣고 싶었다. 그래서 찾은 것이 The New Quartet이라는 앨범이었다. 1973년에 발매되었다고 써있기 때문에, Bright Size Life가 1975년에 나왔으니까, 그것을 녹음하기 전에 Pat Metheny가 개리 버튼의 앨범에서 연주했던 것이겠지, 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 앨범에서 기타를 연주한 사람은 Mick Goodrick이었다. 알고보니 개리 버튼이 Pat Metheny를 자기의 퀸텟에 고용했던 것은 1974년의 일이었다.
Pat Metheny는 자신의 그룹을 결성하여 1977년에 개리 버튼 팀에서 나갔다. 그 후에 다시 개리 버튼의 앨범에 세션으로 참여했었는데 그것이 1989년 앨범 Reunion이었다. 이것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을 하여 듣고 다녔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앨범을 친구를 통해 알게 되었었다. 그렇다면 분명 1990년에 처음 이 앨범을 들었던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 친구에게 내 기억이 맞는지 문자를 보내어 물어 보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자기는 그 앨범을 샀던 적이 없고, 거기에 있는 한 두 곡을 나중에 컴필레이션 앨범에서 들어봤을 뿐이라고 했다.
겨우 삼십여년 전 일인데, 맞는 기억이 하나도 없다. 도대체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 중에서 어떤 것이 사실이고 어떤 것이 내가 지어낸 것인지 모르겠다.
내가 카세트 테이프에 담아서 듣고 다녔던 앨범은 Passengers 였던 것 같다. (자신은 없지만)
기억은 불성실하다. 아니면, 그냥 내가 불성실한 것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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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k Goodrick 아저씨는 두 달 전에 파킨슨씨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2022년 12월 19일 월요일

월드컵, 녹음실

자정에 월드컵 결승중계를 보기 시작할 때엔, 중계가 끝난 후 두 시쯤 잠들면 아침에 일찍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르헨티나와 프랑스의 결승 경기는 예상보다 더 대단한 게임이었다. 서로 두 점씩 얻고 연장전에서 다시 한 골씩 넣어 또 한 번 동점, 결국은 승부차기까지. 세 시간짜리 스포츠 픽션을 보는 기분이었다. 결국 시상식까지 다 보고... 네 시 반이 넘어서야 잠들었다.

도로가 막힐 것이라고 내비게이션이 겁을 주길래 알람을 조금 더 이르게 맞춰두고 깨었다. 녹음을 해야 하는데 잠이 모자라 집중력이 흐려질까봐 평소보다 진하게 커피를 마셨고, 배가 부르면 안 될 것 같아서 음식은 조금만 먹고 출발했다.



녹음하는 동안엔 커피를 석 잔 더 마셨다. 녹음할 내용을 준비할 시간이 넉넉했던 덕분에 그동안 집에서 예습을 많이 할 수 있었고 그것이 도움이 되었다. 세 개의 악기를 곡마다 어울리게 맞추어 사용했다. 가습기를 새로 구입하여 악기를 잘 관리했던 보람이 있었다. 악기들 상태가 좋아서 연주하는 데 불편하지 않았다.

나는 오늘 내가 맡은 부분을 모두 완성할 수 있었다. 다시 악기들을 메고 들고 집으로 왔는데 밤 아홉시에 이미 지하주차장엔 자리가 없었다. 야외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가방 두 개에 악기가방 세 개를 동시에 짊어지고 걷고 있었더니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고 있던 이웃사람들이 내가 지나가는 모습을 구경하였다.

집에 오는 중에 한 곡을 다른 버젼으로 한 번 더 녹음해보자는 연락을 받았다. 내일은 좀 여유있게 가도 될 것이니 오늘은 깊이 잠들 수 있으면 좋겠다. 잠이 부족하여 힘들었지만, 심야에 보았던 월드컵 결승 경기는 생중계로 보았던 보람이 있었다.



2022년 11월 17일 목요일

철원에서 공연.

 

지난 달 마지막 날에 철원에서 공연을 했었다. 그리고 두어 주 넘게 시간이 흘렀다.

공연은 월요일이었고, 이틀 전 밤중에 끔찍한 참사가 일어났었기 때문에 거리엔 무거운 분위기가 가득했다. 원래의 연주할 목록을 전부 바꾸어 어쿠스틱 기타 위주로 차분한 곡들을 새로 골라 연주하기로 했다. 의자에 앉아서 공연 전체를 연주해본 것은 몇 년 만의 일이었다. 작은 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도 비슷한 마음이었던 것 같았다.

세월호를 기리는 실리콘으로 만든 노란 리본을 악기 가방에 매달고 다닌지 여덟 해가 지나가고 있다. 악기 가방에 붙어있는 노란 리본이 유난히 기운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2022년 10월 16일 일요일

금천구 축제에서


 금천구청역 뒤에 안양천이 흐르는 작은 광장에서 연주했다. 하천 건너에 구름산 숲이 좋다고 들었는데 한번도 가보지는 못했다. 그 근처엔 산이 많아서 삼성산, 비봉산 등에 숲과 공원이 잘 꾸며졌다고 했다. 언젠가 한번 가볼 생각이다. 깜깜한 안양천 깊은 밤 사람들이 무대 앞에 가득 모였고 공연을 보며 즐거워하는 표정들이 가까이에서 잘 보였다.

 

그날 나는 편안하게 연주할 수 있었는데, '꼬마야'님이 찍어주신 사진을 보고 내가 편안할 때의 표정은 저런가 보다, 했다. 토요일 오후에 도로는 극심하게도 막히더니 돌아올 땐 강변북로를 시원하게 달려올 수 있었다. 계획했던대로 집에 돌아와 라면과 김밥으로 오늘의 두번째 식사를 하고 토트넘과 에버튼이 겨루는 축구중계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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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24일 토요일

청남대에서 공연을 했다.

 


해가 진 후 금강이 굽이쳐 돌고 있는 청남대의 공연장 대기실 천막 주변은 공기가 서늘했다. 저녁으로 도시락을 먹고 났더니 추위와 함께 피로를 느꼈다. 지난 밤에 일찍 잠들지 않았던 탓이었다. 공연 전에 주차해 둔 차에서 시트에 기대어 잠깐 눈을 붙였다.


한 시간 동안 연주를 했다. 강과 넓은 잔디와 나무들이 있어서 소리가 좋았다. 두 시간 넘는 공연을 이어오다 보니 한 시간 동안 연주하는 것이 짧게 느껴졌다.

2022년 9월 20일 화요일

좋은 음악

조슈아 레드맨과 그의 친구들이 새로 낸 앨범이 좋아서 여러번 들었다. 지난 십년 동안 새로 등장하여 활동하는 재즈맨들의 재즈와 격이 다른 앨범이다. 그나마 진지한 재즈를 하고있는 거의 끝 세대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재즈의 과거를 만들어왔던 연주자들과 비교하면 근래에 등장한 세대들의 연주는 어쩐지 오래 듣고있지 않게 된다. 다양한 스타일들이 자연스럽게 섞이다보니 더 깊은 사색은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심도 든다. 그런 중에 오십대에 접어든 연주자 네 명이 녹음한 앨범 LongGone이 반갑다. 러닝타임이 47분인데 앨범의 제목에 EP라는 표시가 있었다. 스트리밍 시대엔 오십여분 되는 분량도 EP인건가.

이번 쿼텟의 멤버들인 브라이언 블레이드, 크리스챈 맥브라이드, 브래드 멜다우 모두 조슈아 레드맨이 데뷔할 때에 함께 했던 친구들이다. 90년대에 그들이 등장했을 때에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젊은 그들에게 환호했었다. 삼십여년 동안 그들은 이제 각자의 위치에서 중요한 연주자가 되었다. 그들이 함께 연주한 앨범이 좋지 않다면 그게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생각이 나서, 똑같은 쿼텟 편성으로 1987년에 브랜포드 마살리스가 녹음한 앨범 Random Abstract를 찾아 들어보았다. 나는 그 앨범을 과거에 CD로도 구경해보지 못했다가 애플뮤직에서 발견하여 얼른 보관함에 담아두었었다.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케니 커클랜드가 참여했던 음반이었다. 삼십년 전 마살리스 형제들이야말로 재즈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젊은 재즈맨들이었다. 앞의 것과 비교하자면 그 어린 나이에 브랜포드 마살리스가 발표했던 35년 전 앨범이 지금 막 나온 현재의 거물 재즈맨들의 것보다 (적어도 나에게는) 훨씬 뛰어나게 들렸다. 브랜포드 마살리스 쿼텟을 듣고 난 뒤엔 이 앨범이 재즈이고 조슈아 레드맨 쿼텟의 앨범은 재즈로부터 태어난 어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이것은 연주자의 재능과 기술의 문제가 아닌 모양이다. 시대가 만드는 변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음악이 연주되어지고 녹음되어졌던 시간이 만들어낸 간격이고, 고작 몇 십년이라는 차이는 나중엔 아무 차이도 아니게 될 것이다. 나중이 되면 그냥 좋은 음악과 아닌 음악의 차이만 남겠지.



2022년 9월 17일 토요일

부산에서 공연

 


부산문화회관에서 공연을 했다. 장소는 1988년에 개관했던 대극장이었다. 크루들이 잘 준비해준 무대는 쾌적했고 소리도 좋았다. 리허설을 할 때에 잔향이 많은 것 같아서 앰프의 낮은 쪽을 평소보다 더 줄여놓은 대신 볼륨을 조금 더 크게 해놓았다.

피곤하지 않은 상태로 쾌적하게 연주하고 싶은 생각으로 하루 전날 도착하여 숙박을 했던 것인데, 낮 시간에 아내와 친구와 함께 점심을 먹을 때 예상하지 못했던 일로 시간을 허비하는 바람에 여유있게 공연장에 도착하지 못했다. 게다가 며칠 장거리 운전을 계속했더니 어깨에 경련이 생겼고 담이 결렸다. 아니나 다를까 연주하는 내내 조금만 자세를 바꾸면 온몸에 통증이 심해져서 아주 애를 먹었다. 공연을 마치자마자 다시 집을 향해 달려오느라 중간에 과속단속 카메라에 사진도 찍혀버리고 말았다. 하루 전에 공연장 근처에서 숙박까지 했던 보람이 없어져버렸다. 집에 돌아와 고양이들을 살피고, 손흥민 선수가 해트트릭을 하는 경기의 후반전을 실시간으로 보고 난 뒤에 그만 기절하듯 잠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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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20일 토요일

안산, 달맞이 극장

 

안산 문화예술의 전당에서 공연을 했다.

여기에는 7년 전에 왔던 적이 있었다. 그 땐 객석이 천 육백석이었던 해돋이 극장이었다. 이번에는 칠백여석 규모인 달맞이 극장에서 연주했다. 오늘은 날씨 때문이었는지 평소보다 더 졸음이 쏟아져서 혼이 났다. 리허설을 마치고 비어있는 대기실을 찾아내어 잠깐 누워있어야 했다. 몸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정신을 차리느라 고생했다. 리허설을 할 때에 앰프의 음량이 점점 줄고 있어서 원인을 알아내느라 시간을 허비했다. 알고 보니 내 페달들을 연결하고 있는 케이블이 접촉불량이었다. 오래 사용하지 않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케이블과 악기의 잭 등에 접점부활제를 뿌려 잘 닦아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도 펜더 엘리트 모델은 패시브 모드로만 사용했다. 앰프는 암펙 SVT- 4 Pro 였다. 그 앰프가 나에게 익숙했기 때문에 연주하기에 편했다.

집에 돌아왔을 땐 그대로 누워 잘 생각이었는데 그만 축구중계가 생각나고 말았다. 졸음을 참으며 전반전의 끝 부분과 후반전을 보고 나서, 깊이 잠들었다가 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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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19일 화요일

강릉에서.


 강릉에 일요일에 갔다가 월요일에 공연을 하고 돌아왔다. 출연하는 팀들이 많았고 긴 시간이 필요한 공연이었다. 일요일에 리허설을 하기 위해 강릉에 가서 초당동 해안길에서 하루를 묵었다.

강릉 공연에는 펜더 재즈를 가지고 갔다. 이번에는 낮은 D음을 쓸 곡이 없었기 때문이었기도 했고, 몇 달 전 이 악기의 상태가 나빴던 것을 그동안 잘 고쳐놓았기 때문에 큰 공간에서 소리를 확인하고 싶었다. 공연을 만든 방송사 쪽에서 무대 위에서 입을 의상의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을 때 나는 십 년 전에 검은색 반팔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공연했던 사진을 골라서 보내줬다. 그 옷차림은 이렇다 할 색감이 없으니 펜더 재즈 베이스의 선버스트 바디가 의상의 일부로 보여지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페달은 MXR 프리앰프/드라이브 한 개를 가져갔다. 페달 보드를 들고 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베이스의 소리가 자연스럽게 들리기를 원했다. 그나마 가져갔던 페달은 두 곡에서만 썼다. 


발왕산 동쪽 해안 도시의 기후는 종잡을 수 없다. 경포 호숫가에 차려진 무대는 저녁이 되어 기온이 내려가도 습도가 높았다. 악기를 잡으면 나무에서 물기가 배어나왔다. 바람도 불었다. 물기를 머금은 바람이 베이스 줄과 손가락 끝을 괴롭게 하더니, 결국 또 손톱 끝이 조금 들려버렸다. 그런 일이 생길지도 몰라 피크를 두어 개 챙겨 갔었다. 내 손가락 끝은 언제나 말썽이다. 소리는 좋았다. 넓은 장소와 기온과 습도, 그리고 관객들 덕분에 공연 내내 모든 음악들의 소리가 좋았던 것 같았다.



2022년 6월 28일 화요일

고양시, 제주시에서 공연.

산매 꼬마야 님이 찍어주심.

 토요일에 고양시에서, 일요일에는 제주도에서 공연을 하고 왔다. 저녁이 아니라 낮 시간에 시작하는 공연들이었다. 두 시간이 넘는 공연 시간 동안 큰 통증 없이 잘 했다. 이제 괜히 긴장하고 걱정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다만 잠을 못 자서 힘이 들었다. 이틀 공연하는 내내 눈이 감기고 심지어 무대 위에서 여러 번 하품도 하였는데 공연 후에 생각해보니 관객들에게 하품하는 모습이 다 보였을 것 같았다. 내가 그런 것을 조심하지 못할 만큼 피곤했었던 것 같다. 이미 보인 거야 뭐 할 수 없지만 주의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제주 공연장은 몇 번째 가본 곳이어서 리허설을 마친 후 비어있는 대기실을 찾아 혼자 한 시간 정도 잠을 잤다. 그 시간이 없었다면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프로비덴스 코러스는 제 역할을 잘 해줬다. 고양시에서 공연할 때에 팝업 노이즈가 심했던 것이 신경 쓰였는데 제주에서는 페달을 밟았을 때 잠깐 소리가 나지 않는 증상이 있었다. 전류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역시 오래 쓰지 않은채 서랍에 넣어둔 탓에 풋스위치에 녹이나 먼지때가 끼였기 때문인 것 같다. 소리가 나오지 않았던 문제는 소란스런 곡을 연주할 때 여러번 스위치를 밟는 방법으로 해결했다.

제주 공연장은 매진이라고 하더니 과연 관객석에 빈 자리가 없었다. 공연 시작 한 시간 전부터 사람들이 공연장에 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청중들이 가득 찬 극장에서 연주하는 것이 기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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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12일 목요일

노원문화예술회관 공연.

 


3년 전에는 대구에서 공연을 했었다. 그 즈음 나는 계속 불면에 시달렸다. 그날 알람을 듣지 못하고 늦게 일어났고, 집에서 서울역으로 가는 것보다 고속도로를 달려 대구로 가는 것이 더 빠를 것 같았다. 대구에 잘 도착하여 공연을 마치고 밤에 돌아올 때에는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러 잠을 잤던 기억이 떠올랐다. 2019, 11/May
요즘은 일부러 잘 자두고 있다. 수면 시간이 모자라면 쪽잠을 자는 것으로 가능한 그 시간을 채우는 중이다. 판데믹 기간 동안 하지 못하고 있던 두어 시간의 단독공연을 준비하러 일찍 공연장으로 갔다.
공연을 만든 분들이 무대에 공을 많이 들였다. 멤버들에게 적당한 넓이의 자리를 따로 마련해준 것이 인상적이었다. 음향도 운영도 모두 좋았어서 편하게 연주할 수 있었다.
공연 하루 전까지 페달보드를 열어두고 여러가지 조합을 고민했었다. 가장 단순하고 음의 손실이 없는 정도면 좋겠다고 생각하여 MXR의 베이스 D.I. 한 개만 사용하기로 했다. 그 페달이 기대했던 역할을 잘 해줬다.

내 몸이 완전히 멀쩡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공연 도중에 알았다. 한 시간 쯤 지날 무렵 갑자기 통증이 시작되었다. 센 곡들을 연주할 순서였는데 나는 곡의 인트로를 치면서 돌발상황이 생길 경우 모니터 스피커 옆으로 발을 두고 드러누우면 대충 괜찮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가능한 태연하게 드러누우면 사람들이 누군가 갑자기 쓰러졌다며 놀라지는 않을 것 같았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어떻게 눕더라도 큰 민폐가 될 뻔했다. 게다가 연주자의 자리에 높은 단까지 설치되어 있었으니, 보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가관이었을 것이다. 다행히 잘 버텼다.
일부러 공연을 준비할 때에도 일어선 채로 셋리스트 전부를 합주해보았었다. 그 때는 견딜만 했었다. 공연을 마칠 때까지 통증이 없어지지 않아서 진땀이 났다. 무대에서 내려오자 마자 눈에 보이는 의자에 기대어 긴 호흡을 했다. 통증이 약해지고 시력도 조금 회복되었다. 아직 완전히 나은 것이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많이 좋아진 것이다. 집에 돌아올 때에 자동차의 창문을 열어두고 바람을 쐬며 운전했다. 공연장이 집에서 멀지 않았던 것도 다행이었다. 다음 달에 약속된 공연들도 잘 할 수 있도록 운동도 하고 체력도 잘 유지해야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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