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29일 일요일

광주에서 공연

 

14:30 광주 예술의 전당 대극장에 도착했다. 어제 안양에서 연주할 때 마이크로 신스 페달을 다시 조정할 필요를 느꼈다. 마침 리더님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오전에 문자 메세지를 보냈었다. 악기를 설치하고 페달보드 앞에 앉아서 리허설 전까지 새로 소리를 만들고 있었다.

리허설을 마치고 공연 시작을 기다렸다.

며칠 사이 내가 지나온 일정들이 꿈을 꾼 것처럼 여겨졌다. 공연 직전에 커텐 뒤에 서서 어깨와 무릎을 돌려보았다. 관절마다 끔찍한 소리가 나고 있어서 얼른 그만 두었다.

하루 전보다는 나은 상태로 공연을 마칠 수 있었다. 이것으로 올해 가장 바빴던 시월의 일정을 다 끝냈다. 

20:40, 모든 것을 끝내고 집으로 가기 위해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긴장이 풀렸기 때문인지 계속 졸음이 쏟아졌다. 양쪽 종아리엔 자꾸 쥐가 났다. 휴게소에 몇 번 멈춰서 시트를 젖히고 쉬기를 반복해야 했다.

30일 1:28, 집에 도착했다. 보통 이 시간에 아파트 주차장엔 자리가 없어서 이중주차를 하여야 했는데, 지하주차장에 한 자리가 비어 있었다. 이번 일정은 마지막까지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기운이 없어서 악기들은 그대로 차 안에 두고 가방 두 개, 신발 주머니, 편의점에서 구입한 것들이 담긴 비닐백만 들고 집에 올라왔다. 






안양 공연, 그리고 광주로

 

나는 졸지는 않았지만, 아마 반쯤은 자고 있었던 것 같다. 연주하는 내내 소리가 가까와졌다 멀어졌다 했는데, 내 컨디션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루 전에 일본의 어느 동네에서 연주하고 있었는데 지금 안양에 와서 공연을 하고 있다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20:40 공연을 마치고 광주로 출발했다. 어지럽고 졸음이 밀려와서 휴게소와 졸음쉼터에 몇 번 멈춰 서야했다. 
29일 1:05, 광주 중흥동에 도착했다. 심야에 문을 연 식당을 발견하고 들어가 콩나물국밥을 먹었다.

29일 1:30, 예약되어 있던 모텔에 도착했다. 아뿔싸, 모기에 잔뜩 물리고 나서 벌떡 일어나 불을 켜고 모기 사냥을 했다. 모기 열 마리를 때려 잡고 시계를 보니 네시였다. 인근 다른 모텔에 전화를 해보았는데, 방이 없다고 하더니, 다시 전화가 와서는 주말요금을 적용해야 하니까 7만원을 내라고 했다. 나는 사양하고 전화를 끊었다. 모텔 방 안에 뿌리는 모기약이 비치되어 있었다. 처음엔 그것이 왜 있는 것인지 몰랐다. 모기약을 잔뜩 분사하고, 이불을 얼굴까지 덮고 잠들었다.
그래도 나는 어떤 실수 없이 이번 일정을 다 마쳤다.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다. 아마 그래서 푹 잘 수 있었나보다.





2023년 10월 28일 토요일

다시 김포공항으로

 



언제나 그랬지만, 다섯시부터 오분 간격으로 맞춰둔 알람은 하나도 듣지 못했다. 왜냐면 알람이 울리기 이십분 전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일어나자마자 미리 챙겨둔 가방을 어깨에 메고 체크아웃한 다음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따라 컵에 덮개를 씌워 들고 호텔에서 나왔다.

5:00 코엔지역 파출소 앞 승차장에서 택시를 탔다. 어제 저녁에 미리 외워둔 일본어로 공항에 데려다달라고 주문했다. 서울에 도착하면 곧장 안양으로 가서 오늘의 밴드 공연을 준비해야 하는 일정이기 때문에, 비싼 택시비는 아깝지 않았다. 체력을 아끼며 공항이 혼잡하기 전에 비행기 탑승구 앞에 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5:43 하네다 공항 3 터미널에 도착했다. 아직 오가는 사람이 없었다. 항공권은 어제 모바일 앱으로 체크인 했고, 출국심사도 빠르게 마쳤다.
6:05 탑승구로 가는 길에 화장실에 들렀다가 호텔에 치약과 칫솔을 두고 온 것을 알았다. 아마 어제 밤 짐을 챙기고 있던 과거의 나는 내가 아침에 일어나 호텔을 나오기 전에 양치를 할 것으로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근처에 있는 상점은 일곱시에 문을 연다고 써있었다. 가까운 곳에서 국수 한 그릇을 사 먹고 일곱시가 되어 칫솔과 치약을 구입했다.

8:00 터미널 한쪽 맨 끝이 내가 탈 비행기의 탑승구였다. 먼 거리였다. 거기까지 걷는데 이미 몸이 너덜너덜해져서 기운이 없었다. 조금 전에 먹었던 국수 때문에 더 졸리웠던 것이었나 보다. 눈앞에 보이는 터미널 내부의 구조가 스탠리 큐브릭 영화 스틸처럼 보였다. 거의 사흘 내내 수면부족 상태로 일단 여기까지는 왔으니, 오후에 안양에 도착하기만 하면 안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11:57 김포공항에 돌아왔다. 던킨도우넛에서 찬 커피를 사고, 주차비로 오만원을 낸 뒤, 곧장 안양으로 출발했다. 음악을 틀지도 않고 막히는 도로를 앞만 보며 움찔움찔 가고 있었다.

13:40 안양아트센터에 도착했다. 페달보드와 악기를 설치하고 튜닝을 했다.차에 실어뒀던 것 치고는 악기 상태가 아주 좋았다. 주차장의 기온과 습도가 적당했었나 보다.
공연장 대기실에 샤워실이 있어서 냉큼 수건을 챙겨들고 들어갔다가,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그대로 다시 나왔다. 어째서 더운물이 나오는지 미리 확인하지도 않고 부랴부랴 옷부터 벗었던 걸까. 
화장실에 가서 머리를 감고 대기실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었다.
14:30 밴드 멤버들이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 리허설을 할 때에, 아무래도 오늘은 연주 도중에 살짝 졸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2023년 10월 27일 금요일

일본에서 연주

 

호텔 안내문에 건물전기장치 문제로 새벽 세시 경에 잠깐 정전될 수 있다고 적혀있었다. 에어컨을 켜둔채로 잠들었다가 툭 소리와 함께 전기가 나갔을 때 잠을 깨어버렸다. 그 뒤로 오전까지 뒤척이기만 했을 뿐 잠을 잘 수 없었다. 나는 다음날 아침에 제 때에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으로 돌아가 안양 공연장에 도착해야 하는 일에 온 신경이 쓰여서 여전히 긴장과 각성상태였다.

결국 정오가 지났을 즈음 호텔을 빠져나와 동네를 돌아다니기로 했다. 산책을 한다거나 하는 한가로운 목적은 아니었다. 아내가 나카노역 앞에 있는 대형상점에 가서 고양이들에게 줄 간식을 사오라고 했었다. 그런데 내 상태가 지금 어딜 다녀올 정도로 멀쩡하지 않았다. 호텔 부근에도 상점이 있을테니 고양이 간식 정도는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한참을 걸으며 기웃거렸다.

코엔지역 북쪽을 한 시간이나 돌다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을 때, 거기에 있는 수퍼마켓에서 고양이 간식들을 발견했다. 어째서 가장 가까운 곳부터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그랬다면 체력을 조금이라도 아꼈을 것이다. 그러나 그대신에 낯선 거리를 한 바퀴 돌아볼 시간을 가지진 못했겠지, 라며 마음 속으로 내 행동을 두둔했다.
고양이들을 위한 간식을 사면서 수퍼마켓에서 팔고 있는 샐러드 등을 사서 호텔방에서 먹고, 곧장 오늘 연주할 장소로 갔다. 약속시간 십오분 전에 도착했다. 잠시 후 한 사람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에게 악기를 빌려주기로 한 아카이 씨에게 답례를 하고, 베이스를 받아 내가 가져온 스트랩을 걸었다. 오래된 일제 펜더 재즈베이스였다. 주인에게 양해를 구하여 브릿지 높이를 조정하고 튜닝을 마쳤다. 
집에서 유튜브로 이 장소에서 했던 공연 영상을 몇 편 보았을 때 베이스 사운드가 좋다고 생각했다.  직접 와서 보니 역시 500와트 암펙 앰프의 소리가 무척 좋았다.
16:00 두 시간 가까이 연주 준비를 하고, 리허설을 했다.
당장이라도 어디 누울 곳이 있으면 쓰러져 자버리고 싶을 정도로 피곤했다. 공연 시간까지는 멀었는데 자꾸 눈이 감기고 정신이 몽롱했다. 병주와 함께 근처 커피집에서 찬 커피를 주문하여 먹었는데, 그 커피 덕분에 정신을 차렸다.
19:40 앞 순서 팀의 연주를 보면서 잠깐 정신을 놓았다가 눈앞에 있던 시멘트 기둥에 쿵 하고 머리를 박고 말았다. 아직 우리의 연주 순서가 되려면 멀었는데 정신이 맑지 못하여 어쩌지, 걱정하다가, 약간 몽롱한 상태로 집중해보면 어떻게든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동안 그랬던 적이 이미 여러번 있었지 않았나, 하면서.
22:40 연주를 다 마쳤다. 빌어 쓴 악기를 잘 닦아 가방에 넣어주고 옷과 가방을 챙겨 클럽 밖으로 나와서 사람들과 인사를 한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호텔에 돌아와 무엇을 어떤 순서로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새벽 다섯시부터 오분 간격으로 알람을 열 두 개 맞춰두고 잠들었다. 열 두번째 알람을 듣고 일어나면 이미 낭패일테지만 반드시 제 때에 공항에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만 하면서 침대에 누워버렸다.






친구들과 만남

 

나보다 앞서 와있던 병주가 구글맵 주소를 보내주며 오라고 했다. 대충 세수를 하고 아이폰을 들여다보며 그 장소로 찾아갔다.

그곳은 HOWL the Field 라는 이름의 술집이었다. 병주와 경묵형, 그리고 오래 전부터 알고있었지만 처음 만나는 두 분과 다음날 같은 곳에서 연주할 일본인 두 분이 있었다. 나는 카레라이스를 주문하여 허겁지겁 먹었다.
자정이 다 되어 그 가게에서 나올 때에 가게주인이 콜트레인의 Giant Steps 를 틀어줬다. 오디오의 음질도 좋았고 마침 그런 사운드를 듣고 싶었기 때문에 반가왔다.
편의점에 들러 물과 빵 한 개를 사서 숙소에 돌아왔다. 아내와 한 번 더 통화했는데 우리 동네엔 우박을 동반한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다고 했다.
아까 술집에서 들었던 존 콜트레인 음악이 생각나서 Tommy Flanagan 의 Giant Steps를 들으며 드러누웠다. 살짝 잠이 들었다가 세 시 쯤 깨어버렸다.


2023년 10월 26일 목요일

일본으로

 

이 블로그에 자주 써오고 있었다시피, 나는 멍청하다. 기본적으로 셈을 못하고, 빠르게 상황에 대처하지도 못한다. 겸양이나 수사가 아니라, 정말 그러하고, 아주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그랬다.

자신이 둔하고 멍청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이 나의 몇 안되는 장점이다. 늘 배우는 데 느리고, 남보다 더 애쓰지 않으면 남이 하는만큼 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번 일본행과 안양, 광주 공연으로 이어지는 사나흘 동안의 여행을 위해 미리 많이 공부했다.

구글 지도를 열어놓고 일본어를 전혀 알지 못하는 나 혼자 어떻게 목적지까지 잘 찾아 갈 것인지, 움직일 경로를 찾았다. 경로와 교통편을 정한 다음엔 구글 맵을 몇 주 동안 반복하여 보면서 길을 외웠다. 스트릿 뷰 기능이 매우 유용했다. 혼자 외국에 가는 것도 처음이고, 빠듯한 시간 안에 반드시 돌아와야 하는 일정을 해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사진으로 지형지물을 외우고, 지도를 보며 길을 머리 속에 담아둔 다음 지난 10개월 사이에 웹에 올려진 정보를 취합하여 나에게 필요한 것들을 전부 메모했다.

6:20 새벽에 한 번 깨었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고양이 깜이가 곁에 다가와 내 베게에 기대어 같이 잠들었다. 어둠 속에서 깜이가 나를 보는 표정이 어쩐지 걱정하는 얼굴 같았다. 저 인간이 제대로 잘 할 수 있을까, 라고 하는 것이었을까.

13:10 김포공항 국제선 주차빌딩에 주차를 했다. 나흘 전부터 예약할 수 있는 자리는 없었다. 집에서 출발할 때 지하주차장은 '만석'이라고 내비게이션 앱이 알려준 덕분에 망설이지 않고 주차빌딩으로 갔는데, 마침 자리를 떠나는 차량이 있었다. 일층에 여유롭게 주차하고 공항으로 들어가 출국수속을 했다. 오늘의 첫끼는 탑승구 근처 커피집에서 당근샌드위치와 찬 커피로 먹었다.
미리 신청해둔 로밍 서비스를 확인하고, 일본에 도착하여 해야하는 일과 움직일 동선을 다시 체크했다. 그런데 이미 너무 여러번 복습을 해버려서 다시 확인할 것들이 별로 없었다.
16:20 비행기 이륙. 17:35 교토와 나고야 사이를 지나가고 있었다. 기내식으로 나온 밥, 돼지고기, 빵, 과일조각과 오렌지 쥬스를 먹었고, 닭고기는 남겼다. 17:40 겨우 5분 사이에 해가 지고 창밖이 어두워졌다. 동남쪽으로 날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19:00 일본에 도착했다. 입국수속과 세관수속은 미리 등록해둔 QR코드로 통과했다. 입국수속 창구에서 나오자마자 오른쪽 화장실 앞에 Aeon Bank ATM이 있다고 했다. 과연 거기에 기계가 있었다. 트래블월렛 카드를 넣고 미리 담아두었던 엔화를 인출했다.
19:23 하네다공항 3터미널 일층, 리무진 버스 타는 곳에 도착했다. 우선 승차권부터 사는 것이 순서였을텐데, 눈앞에 흡연실이 제일 먼저 보였다. 나는 아이코스를 사용하는데, 일본어를 쓰는 노인과 영어를 쓰는 백인 청년이 번갈아 가며 문을 열고 나에게 라이터가 있는지 물었다. 일본인 노인에게는 영어로 대답하고 두번째 다가온 백인 청년에게는 나도 모르게 '스미마셍'이라고 해버렸다. 과연 멍청하지 않은가 하였다.

나카노역까지 가는 승차권도 샀고, 자동판매기에서 물도 한 병 사서 마셨다. 아내가 집에서 챙겨준 엔화 동전들이 유용했다. 승차권은 정류장 앞에 있는 자동판매기에서 구입했다.
20:10 리무진 버스 출발.

몇 년 전 와보았던 신주쿠 거리를 지나고.
21:12 나카노역 남쪽 광장에 도착. 이곳에서 대각선으로 길을 건너면 나카노역이 나온다. 구글맵을 하도 보았더니 엊그제 와보았던 곳처럼 익숙했다.

21:18 나카노 역에서 승차권을 사고, 한 정거장 지나 내렸다. 

21:26 코엔지 역에 도착. 이 날 '중앙선'이 지연되고 혼잡했다고 하더니 늦은 시각인데도 사람이 많았다. 

21:40 예약해둔 호텔에 도착했다. 무인시스템으로 체크인. 집에서 출발한지 아홉시간 사십분 만에 숙소에 들어갔다. 이것으로 첫날 내가 해야했던 일은 끝. 아내에게 전화하여 잘 도착했다고 알려줬다. 



2023년 10월 25일 수요일

여행이거나 출장


 하루 앞으로 다가온 며칠 간의 여행이거나 출장. 집을 떠나 외국과 지방을 다니는 거니까 여행이긴 한데 아무런 여가 시간을 갖지 못할 업무의 연속이기 때문에 출장일 뿐이기도 하다.

일본엔 짐을 줄이기 위해 악기를 가지고 가지 않기로 했다. 악기 두 개와 페달보드는 자동차 트렁크에 실어두고 공항 주차장에 이틀 동안 놓아둘 예정이다. 지난 주에 프리앰프를 빼고 코러스 페달 한 개를 추가해뒀었다. 이번엔 코러스 페달을 한 개 빼어내고 몇 년 만에 마이크로 신스 페달을 넣었다. 주말 이틀 동안의 공연에서 새 노래를 연주할 예정이고, 그 곡에서 쓰일 베이스 소리가 필요했다. Electro-Harmonix 베이스 마이크로 신스 페달은 2009년에 로스앤젤레스에서 샀었다. 그 후 지금까지 페달 바닥에 있는 고무받침을 떼어내지 않고 써오고 있었다. 이번엔 고무를 떼어내고 벨크로 테잎을 붙여서 페달보드에 부착했다. 보드가 단정해지고 더 가벼워졌다.

두 개의 가방에 짐을 싸고 있다. 한 개는 일본에 다녀오기 위한 것이고 한 개는 안양과 광주 공연을 위해 꾸리는 것이다. 나는 토요일 아침에 일본에서 출발하여 낮에 김포공항에 제대로 도착하는 데에 온 신경을 쓰고 있다. 도착하자마자 안양 아트센터에 가서 리허설을 하고, 안양에서 공연을 마치자마자 광주로 간다. 일요일에 광주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을 끝내고 나면, 아마 고속도로 어느 휴게소에 멈춰서 코를 골며 자고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

2023년 10월 24일 화요일

고양이 식구들

 

고양이 이지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다녀왔다. 이지의 당뇨증세는 다 낫지 않았지만 아주 호전되었다. fructosamine 수치도 많이 낮아졌다. 우리는 이 정도만으로도 감사해 하며 병원에서 돌아왔다. 이지도 편안한 얼굴로 어슬렁거리며 집안을 다녔다.

열세살 고양이 짤이도 보름 동안에 많이 좋아졌다. 기침도 하지 않고 다시 그르릉거리기도 하며 지낸다. 이지와 병원에서 돌아올 때에 짤이에게 먹일 약 일주일 분을 더 사왔다. 두 마리 모두 스스로 먹으려 하지 않아서 아내는 하루 종일 고양이에게 먹일 사료를 가공하고 번갈아 손으로 떠먹이느라 고생하고 있다. 


어른 고양이들을 돌보느라 일곱살 고양이 깜이에게 소홀하였다. 깜이는 다가가 안아주고 쓰다듬어주면 귀찮아하지 않고 기분 좋아한다. 조용히 곁에 와서 몸을 기대었다가 그대로 졸기도 한다. 언니들을 간병하고 있다는 걸 알아주는 것 같았다.


2023년 10월 22일 일요일

함께 나이 들었다.


 유월부터 열네살 고양이 이지의 당뇨병을 치료하고 간병하며 돌보기를 다섯달 째. 나는 일을 하기 위해 밖으로 돌아다니는 일이 잦았고 아내는 혼자서 잠을 못자며 고양이를 보살폈다. 올해의 여름은 아내에겐 없었던 계절이 되었다. 

이지의 혈당수치가 점점 정상 범위를 유지하고, 인슐린 주사를 매일 하지 않아도 될 즈음에 이번엔 열세살 고양이 짤이가 눈에 띄게 안 좋아보였다. 잘 먹지 않고 움직임이 둔해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딘가 표정도 밝지 않았다. 짤이를 동물병원에 데려가 종합검사를 했다. 다른 수치는 건강하게 나오고 있었지만 폐에 침윤이 있었고 만성췌장염 증상이 발견되었다. 비장에 의심스러운 것이 초음파 촬영으로 보였다고도 했다. 약을 사고, 수액과 나비침, 주사기를 사와서 짤이를 돌보기 시작했다.

일주일 동안 사료와 약을 먹여주고, 매일 피하수액 주사를 해줬다. 우리는 꼼이를 떠나보내기 전에 이미 피하수액 주사를 해본 경험이 있었다. 그래도 잘 하고 싶었기 때문에 동영상을 찾아보고 알아야 할 것을 검색하여 열심히 읽었다. 그 다음 주에 진료를 받았고, 폐침윤이 사라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침도 하지 않았고, 췌장염 수치도 미약하나마 좋아졌다. 주치의는 비장에 세침흡인검사를 해볼 것을 권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다시 약을 사고, 수액을 사서 짤이를 데리고 집에 돌아왔다.

아직 고양이 짤이는 스스로 사료를 먹지 않아서 아내가 나이 든 두 마리 고양이를 하루 종일 시간 맞춰 밥을 먹여주고 있다. 수액을 주사할 땐 두 사람이 함께 고양이 곁에 앉아 쓰다듬어주며 천천히 주사해줬다. 며칠 동안 내가 밖에서 머물러야 했기 때문에 그것도 아내 혼자 수액의 양을 나누어 놓아주고 있었다. 짤이는 금세 회복하고 있다.

우리와 함께 나이 들어버린 고양이들이 쇠약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무쪼록 고양이들이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


2023년 10월 21일 토요일

바쁜 시월



어제 하루 여덟 시간 반 동안 운전을 했다. 오늘 새벽 두 시 반에 집에 도착하여 주차를 하고 (운 좋게 비어있는 자리가 있었다) 베이스를 꺼내어 어깨에 메고 집에 올라왔다.

삼십년 전에 나는 악기 가방을 메고 걸어다니느라 양쪽 어깨에 피멍이 사라지지 않았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초조했던 시절, 나는 훗날 연주를 하면서 살 수 있다면 아무리 힘들어도 베이스를 등에 메고 얼마든지 걷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한 주 전에 시골집에서 고구마를 캐고 상자를 실어 날랐던 뒤로 허리 통증이 재발했다. 밤중에 집에 도착하면 차에서 악기 한 개를 꺼내어 드는 것이 힘이 들 정도였다. 나는 타협하고 게을러져서 지난 화요일 이후 악기와 페달보드를 자동차에 실어둔 채로 매일 다녔다. 오늘 새벽 한 주의 일정을 마친 뒤 드디어 차에서 악기를 꺼내어 짊어지고 페달보드는 트렁크에 옮겨 실었다. 이제 목요일에 일본에 다녀와 토요일에 안양, 일요일에 광주 공연을 할 때까지 다시 나흘 동안 악기들은 차에 실려져 있게 될 것이다. 그러면 바빴던 시월 일정들이 끝난다.

울주에 다녀왔다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었다.

네 시간 반 동안 달려 울주에 도착했다. 고속도로를 달리며 셀 수 없이 많은 산등성이를 보았다. 산이 만든 곡선들이 유난히 예쁘다고 생각했다. 차에서 내려서는 예상 못했던 추위를 느끼고 옷을 얇게 입고 온 것을 후회했다.

울주 산악영화제에는 몇 번 왔었다. 마지막은 2018년이었다. 태백산맥의 끝단 산바람은 언제나 상쾌한 공기가 떠다닌다. 연주를 시작하기 직전에 바깥에서 밤공기를 들이마셔 보았다.


2023년 10월 17일 화요일

하루 종일


아침 열시 반에 광명역 맞은편 행사장에 도착했다. 가을하늘은 푸르고 높았다.

밴드의 연주 순서는 오후 다섯 시였다. 리허설을 열한 시에 해달라고 했던 모양이었다. 사운드체크 정도만으로 리허설을 일찍 끝낼 수 있었다. 열두 시에 대기실에서 도시락을 먹고, 나는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 안에서 조금 잠을 잤다. 지난 주에 시골집에 가서 일을 좀 했는데 그 뒤로 허리통증이 도졌다. 순서가 될 때까지 자동차 시트를 눕혀 드러누운채로 시간을 보냈다.


행사는 정해진 시간을 잘 지켜 진행되었다. 준비에 공을 들이고 돈을 아끼지 않은 티가 났다. 진행을 맡은 팀은 규율이 잡혀 있고 엄격하게 일을 잘 하는 듯 보였다. 그런데, 맡은 바를 잘 해내는 것과 자기들이 꾸민 각본을 고루하게 밀어붙이는 것은 서로 다른 일이다. 오늘 보았던 그 팀은 고압적이고 무례했다. 그것이 그 기업의 태도를 대변하는 것처럼, 나는 느꼈다.
아픈 허리를 문지르며 정체가 심한 퇴근길을 열심히 달려 집에 왔다. 대표팀과 베트남의 축구 평가전이 시작하기 직전에 도착할 수 있었지만 통증 때문에 악기는 그대로 차에 실어둔 채 집에 올라왔다. 내일은 친구들 밴드 합주가 있다. 다음 주 일본에 가기 전 유일한 합주연습이다. 차에 실어둔 악기를 가지고 갈 작정이다.


2023년 10월 14일 토요일

춘천 공연


전날 밤에 페달보드에서 MXR 프리앰프를 제거하고 보스 코러스 옆에 코러스 페달을 한 개 더 붙여 놓았다. 패치 케이블은 전부 빼어서 접점부활제로 잘 닦고 전원 연결선도 깔끔하게 새로 정리했다. 코러스 페달은 각각 다른 용도로 쓰기 위해 함께 담았던 것인데, 나는 그 제조사를 아무 생각 없이 엉뚱한 회사의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잘 보이는 곳에 버젓이 상표가 붙어있었는데도. 공연을 다 마친 뒤에 염민열과 대화를 하다가 비로소 Providence 상표라는 것을 다시 알았다. 그렇게 오래 사용하고 있는 물건의 이름 조차도 제대로 기억하지 않고 있었다니. 생각을 게으르게 하면 안되는데.

공연장에 도착해서 우리 공연을 준비해주는 팀의 스탭 중 한 분이 하루 전날 돌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가장 젊은 직원이었다. 리허설을 할 때에 모니터 음향의 상태가 완벽하진 않았지만 나는 따로 아무런 요구를 하지 않고 연주하기로 했다. 우리는 밴드의 이름으로 따로 조의를 표하기로 했다. 무대 위에서 사고가 났거나 했던 일은 아니라고 해도 함께 일하며 많은 장소를 다녔던 분의 일이었기 때문에 마음이 어두웠다.

이상한 기분을 갖고 공연을 시작하기 전에 왜 그랬는지 물 한 병을 다 마셨다가, 겨우 두어 곡 지날 무렵부터 오줌이 마려워서 아주 힘들었다. 마지막 곡을 연주하고 무대인사까지 잘 마친 뒤에 화장실까지 냅다 뛰어갔다. 이번 춘천공연은 그런 일들로 기억에 남게 되었다.


2023년 10월 13일 금요일

비몽사몽


친구가 진행하는 팟캐스트에 나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녹음을 하고 왔다.

나는 알고보면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즐긴다. 그렇긴 하지만 수면부족 상태로 여러 잔의 커피를 마신 상태에서 비몽사몽, 너무 쓸데없이 많이 말하고 온 것 같아 창피했다.

구청에 주차를 했는데, 철거인 단체들이 농성을 하는 것을 보았다. 그동안 내가 그곳에 일이 있어서 지날 때마다 보았던 십년 전 이십년 전의 일이 여전히 진행 중인 것을 잠시 서서 지켜보았다. 집에 돌아와 세 시간 남짓 잠을 자고 일어났다. 아직 시월이 절반 넘게 남았는데 피로가 풀리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