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22일 토요일

문경에서


도로가 막힐 것을 걱정하여 서둘러 문경으로 출발했다. 오래 운전하여 멀리 가서 연주하고 바로 돌아오는 일정일 땐 속이 더부룩한 것이 싫어 거의 굶는다. 밥을 먹지 않고 다녔던 덕분에 몸은 가벼웠는데 밤중엔 정말 배가 고팠다. 나는 내가 원해서 굶었다고 하지만 오랜만에 함께 따라왔던 아내는 나 때문에 밤까지 같이 굶어야했다. 그대신 돌아오는 길에 휴게소에서 첫끼를 먹고 아내가 고르는대로 간식을 사줬다. 집에 도착할 때 보니 간식들은 전부 빈 봉지만 남아있었다.

옷을 잘 챙겨 갔었다. 분명 해가 지면 추워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후 세 시에 리허설, 네 시 반에 공연이라는걸 뒤늦게 알고 셔츠 한 장만 입고 무대에 올라갔다가 추워서 덜덜 떨었다. 리허설을 할 땐 더웠었는데... 하며 억울해했다. 계절이 바뀌는 것을 오래 겪어보았는데도 얻는 교훈과 지혜가 없다니. 손이 시려워 감각이 없었다.

리허설 직전에 오래 전 학교 학생이었던 정석원으로부터 메세지를 받았다. 우리가 도착하기 직전 같은 무대에서 앞 순서로 연주하고 동료들과 함께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서로 어긋나 만날 수 없었지만 반가와서 문자를 남겨줬다는 그에게 고마왔다. 나는 그와 만나지 못하고 지냈지만 인터넷으로 그가 활동하는 것을 자주 지켜보고 있었다. 연주도 잘하고 마음이 고와 늘 기억하고 있는 친구였다. 오래 만나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을 적어두었다가 시간을 내어 찾아다니기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낮에 나뭇잎들이 물드는 것을 보며 리허설을 했었다. 집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려보니 후드 틈새에 낙엽이 끼워져 있었다. 너는 어디에서부터 타고 온거니, 하고 조심히 꺼내어 화단에 앉혀줬다.



2022년 10월 17일 월요일

아내의 그림


 아내가 집에서 그려왔던 그림들 중 한 점이 그림전시회의 벽면에 걸렸다. 집에서는 아무렇게나 바닥에 쌓아둔 그림들 틈에 있던 고양이 에기의 초상이 전시되어있는 곳에 아내와 함께 갔다.

아내의 그림은 공간 안에서 가장 깊숙한 곳에 마땅한 조명도 없이 걸려있었다. 큐레이터 역할을 맡은 그림 선생이 처음엔 아내의 그림을 더 좋은 위치에 전시하도록 했었는데 어느 남자노인이 그 자리에 제것을 걸겠다며 성을 내고 떼를 써서 아내가 양보해줬다고 했다. 잘한 일이다. 그런 정도의 내면을 가진 분의 소원 쯤은 들어줘도 된다.

후미진 구석 그림자 진 벽 위에 우리와 함께 살았던 고양이 에기가 생전 모습 그대로 늠름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아내의 그림은 그곳에서 쉽게 눈에 띄었다. 나는 그림 옆에 쑥스러워하는 작가를 서게 하고 사진을 찍었다.

붓을 잡지 않고 지냈던 시간이 많았지만 아내는 그림 그리는 일을 멈추지는 않았다. 일부러 말을 꺼내어 그림에 대한 대화를 해본 적은 없다. 오가다 그림이 보이면 잠깐 서서 구경하곤 했을 뿐. 그의 기억, 감정, 느낌들이 꽃이 되거나 고양이로 변하여 여전히 방구석 여기저기에 놓여져 있다. 지난 주엔 큰 화방에 들러 캔버스와 붓 몇 개를 사고, 나는 연필 세 자루를 샀다.

그리고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고 있다.



2022년 10월 16일 일요일

금천구 축제에서


 금천구청역 뒤에 안양천이 흐르는 작은 광장에서 연주했다. 하천 건너에 구름산 숲이 좋다고 들었는데 한번도 가보지는 못했다. 그 근처엔 산이 많아서 삼성산, 비봉산 등에 숲과 공원이 잘 꾸며졌다고 했다. 언젠가 한번 가볼 생각이다. 깜깜한 안양천 깊은 밤 사람들이 무대 앞에 가득 모였고 공연을 보며 즐거워하는 표정들이 가까이에서 잘 보였다.

 

그날 나는 편안하게 연주할 수 있었는데, '꼬마야'님이 찍어주신 사진을 보고 내가 편안할 때의 표정은 저런가 보다, 했다. 토요일 오후에 도로는 극심하게도 막히더니 돌아올 땐 강변북로를 시원하게 달려올 수 있었다. 계획했던대로 집에 돌아와 라면과 김밥으로 오늘의 두번째 식사를 하고 토트넘과 에버튼이 겨루는 축구중계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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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14일 금요일

낮에 했던 일

 

낮에 세 가지 일을 하려고 외출했다. 정비소에 가서 우선 자동차 전조등을 교환했다. 정비공장 사장님은 무척 빠르게 전구를 갈아줬다. 13년이 된 자동차는 그동안 고장 한 번 없이 나를 잘 태우고 다녀준다. 몇 개의 부품을 교환하고 정기적으로 정비해준 것 밖에 없는데 아무 것도 속썩이는 일이 없는 차여서 아주 정이 들었다.

그 다음엔 머리를 깎으려고 했는데 미용실에 사람이 많았다. 잠시 주차해두고 기다릴만한 곳도 없었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오며 전화를 걸어 아내를 불러냈다. 가을, 초겨울에 입고 다니던 옷이 십일년이 되었는데 많이 낡지 않아서 한참 더 입을 수 있지만 너무 무거웠다. 가벼우며 보온이 되는 옷이 필요했다. 내일과 다음 주 토요일엔 밤 시간에 야외에서 연주해야 하니까 악기를 메어도 불편하지 않은 외투를 한 벌 사기로 했다.

아내와 국수집에 들러 늦은 점심을 먹고 (아내는 나 때문에 물감이 묻은 붓들을 세척하고 나와야 했다) 아웃렛 매장을 돌아다니며 펠트 재질로 된 운동화와 외투 한 벌을 샀다. 신발도 옷도 가볍고 따뜻할 것 같았다. 함께 가준 아내가 내 마음에 들만한 것을 나보다 먼저 발견해줬다.

내일은 많이 추운 기온은 아니라고 했다. 공연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늦어도 자정 무렵일 것이고, 집에 와서 저녁을 먹은 후 축구중계를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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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4일 화요일

가을

 



비가 그치더니 갑자기 추워졌다. 나는 언제나 가을을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하는데, 내 부모가 나이 많은 노인이 되니 가을공기를 마시는 기분이 이전과 같지 않다. 모친은 작년에도 빛바랜 나뭇잎을 보며 탄식같은 한숨을 쉬었었다. 외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난 뒤에 내 모친의 등과 어깨는 전보다 더 쇠약해진 것 같기도 하고 어딘가 무거웠던 것을 내려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지난 주에 노인은 혼자 하는 말처럼, "벌써 단풍이 들면 어떻게 해"라고 했다.

이 홈페이지, 혹은 블로그는 이제 이십년이 되었다. 나는 이십년 전 가을을 기억했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즈음의 기억들이 어디론가 휘발된 것처럼 부분부분 지워져 버린 것을 알게 됐다.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았던 다양한 부정적 감정이 가득한 그 가을에 대한 기억이 어찌된 일인지 더듬어보아도 서로 연결되지 않고 순서대로 떠오르지도 않는다. 괴로움, 외로움, 상실감, 배신감, 분노, 슬픔, 불안 같은 것이 내 속에 단단하게 뭉쳐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여름이 지나고 찬바람 냄새를 맡을 즈음이면 한동안은 그 시절 그 감정의 흔적이 흉터처럼 만져지곤 했다. 이제는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혼자 멍하니 앉아 노란 단풍잎의 빛을 쬐던 가을날 오후의 세상만 기억 속 어딘가에 남았다. 감정이 무뎌지니까 계절을 다시 만나도 전과 같지 않고 서로 서먹하다.

여전히 가을이면 외롭고 멀리 떠난 고양이들을 그리워하고 뵐 수 없는 분들을 생각하며 슬퍼하긴 하지만, 우울했던 세상 가운데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알 수 없는 감정, 이유없이 안심하던 낙천적인 기분은 없어졌다. 내 부모는 많이 늙었고 나도 스스로 나이들었다고 여기기 시작했다. 추운 겨울은 오지도 않았는데 창문을 드나드는 바람소리에 지레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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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3일 월요일

늙고 낡은

 리디북스에서 소설 한 권을 구입했다. 리디북스는 앱스토어를 통해 결제하고 그것을 자기들 포맷의 캐시라는 이름의 통화로 바꾼다. 그러면 내가 결제한 돈의 일부를 차감한 금액이 그 '캐시'로 충전되는 방식이다. 구입한 책값은 만 이천원이었지만 실제로 결제한 금액은 만 사천오백원이었다. 알라딘 앱에서 한번 더 검색해 볼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기기와 프로그램이 오래 유지되어야만 구입한 책을 가지고 있을 수 있는 시대. 가능한 종이책은 그만 사겠다고 결심한 대신 감당해야 하는 일이다.

집안의 가구를 정리정돈하기 위해 아내는 오래된 오층장을 현관 가까이에 밀어 놓았다. 그것은 내가 여서일곱살 무렵에 모친이 금호동 가구공장에 주문하여 샀던 것이다. 오래되고 낡아져서 이젠 겨우 틀만 남았다. 문짝도 여기 저기 파손되었다. 장 뒷면 얇은 합판은 힘주어 밀면 뻥 뚫어질 지경이 되었다. 오십여년 가까이 이사를 할 때마다 옮겨지길 반복했던 낡은 가구가 이제 없어질 준비를 하고 있다.

늙고 낡은 가구를 버리고 새로 가구를 사는 것만으로는 정리정돈이 다 되진 않는다. 집안에는 지난 사십여년, 삼십여년 동안 한번도 펼쳐보지 않은 책들이 잔뜩 있다. 그동안 많이 버렸는데도 아직 많다. 책을 버리는 것이 왜 그렇게 아깝고 어려운지 모르겠다. 책 뿐이 아니라 플라스틱 더미도 쌓여있다. 더 이상 사용하지 않을 것이 분명한 음악 CD들과 DVD들을 모두 버려야 마땅할텐데 여전히 어떻게 하지 못하고 쳐다보고 있다. 기술은 발전했고 시간과 비용을 들여 모았던 미디어들은 쉽게 버리지 못하는 짐이 되어버렸다.

애플뮤직, 유튜브와 넷플릭스, 전자책을 사용하는 시대이니까 불필요한 것은 버리기로 하고 정돈된 실내에서 일상을 보내는 것이 옳다. 쓰레기가 되어버린 물건들과 함께 기억과 이야기까지 버려져 잊어버린다고 해도 뭐 어떤가, 하는 마음이 들도록 자기를 설득해야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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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1일 토요일

시월

 


시월이 되었고 밤엔 춥다. 가을이 문앞에 와있다.

수요일에 시골집에 가는 길엔 벼를 모두 베어버린 텅빈 논을 보았다. 노란 빛을 띠는 들판도 보았다. 시골집 뒤뜰엔 밤이 잔뜩 떨어져 있었다. 밤나무에서 떨어진 밤송이들이 수염을 깎지 않은 남자의 입처럼 헤벌레 벌어진 채로 별 뜻 없는 말을 하듯 밤알들을 뱉어 놓고 있었다.

무덥고 습했던 여름날에 나는 머지않아 더위가 끝나고 찬 바람이 불 것을 알고는 있었다. 쉰 번을 넘도록 겪어온 가을이 막 시작하려는 지금, 어쩐지 처음 당해보는 슬픔 같은 감정을 느낀다. 계절을 마주하는 일은 어쩔 수 없는 것인데 여전히 서글픈 이유는 결국 해내지 못한 일들만 지나온 길에 줄지어 떨어져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뒤돌아보면 이루지 못한 일들이 여기 저기 버려져 있다.

해가 지는 것을 보며 아내와 국도를 달릴 때 하늘빛이 처연하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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