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 29일 토요일

대화.


며칠 전 새벽, 편의점 점원이 뜬금없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음악을 참 좋아하시나봐요'

나는 적당한 간격을 두고 (내 생각에는), 짧고 정중하게 대답했다.
'예'
'잔돈입니다'
'고맙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그 장면이 어쩐지 자꾸 기억이 났다. 그 질문이 좀 많이 이상했다.
점원분은 뭔가 따분해하면서도 성의를 보이고 있다는 느낌의 목소리와 말투였다.
아마 늘 내가 귀에 이어폰을 꽂은채 계산대 앞에 서있는 것이 보기에 거슬렸나보다 싶기도 하고. 혹시 내 모습이 보기에 좋지 않았던가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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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월 26일 수요일

순이는 따뜻한 것을 좋아한다.


고양이 순이가 잠들어 있었다.
불편할텐데 혹시 커피냄새를 좋아해서 저렇게 다가와 있는 것인지, 아니면 나에게 정이 들어서 곁에 있고 싶어하는 것인지를 생각하다가... 쓰다듬어 주면서 그제서야 알아차렸다. 외장하드 디스크가 따뜻해서 순이는 주머니 난로처럼 외장하드를 사용하는 중이었나보다.

문을 열면 선뜻, 추운 냄새가 난다.
고양이 순이와 만난 것도 한 해가 지났다. 순이의 나이도 한 살.
그리고 나에게는 온전히 혼자 지나보내는 세 번째 가을.
코를 풀면 끈적한 테스토스테론 덩어리가 나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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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월 23일 일요일

순이가 성가셔한다.


순이는 성가셔한다.
조용한데 갑자기 소음이 들리거나, 소음이 지속되다가 갑자기 조용해지거나 하면 잠들었다가 문득 깨어 두리번거린다.
선반 위에 올라가 자다가 영 신경이 쓰이는지 냉장고 위로 옮겨 갔다가 하고 있었다.
도저히 못참겠다고 생각하면 내 어깨 위에 올라와 칭얼대며 아무 일도 못하게 하곤 한다.
그럴 때엔 정말로 불을 끄고 잠들어야 한다.

순이와 지내면서 고양이와의 대화를 많이 배웠다.
길에서 다른 고양이를 만났을 때에, 고양이들의 언어를 내가 알아듣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좋아했다.

방금 사진을 찍으려 하자 순이는 '방해하지마'라고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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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것이 좋다.


점점 더 혼자만의 시간이 귀하다.
새벽 네 시, 내가 악기를 건드리지 않으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시간이다.
고요하고 참 좋다고 생각했다.
날이 추워져서 모든 창문을 닫았더니 아주 조용해졌다.
고양이 순이는 선반 위에서 잠을 자다가, 내가 연습을 멈추면 무슨 일인가 싶어 눈을 뜨고 고개를 내밀어 구경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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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월 5일 수요일

녹슬었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겠지만 연주 도중에 내가 저지르는 실수의 약 90 퍼센트는, 손에 땀이 너무 많이 나서 손가락이 줄 위에서 미끄러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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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좀 궁색하긴 하다.

내 악기의 부품은 벌겋게 녹이 슬어버렸다.
오른손을 자주 브릿지에 대고 연주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저런 부품들을 구입하기 쉬워졌다. 그것은 다행이다.
조만간 새 것으로 바꿀 생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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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상자.


약간 좁아 보인다.
그런데도 고양이 순이는 몸을 잘도 구부려 들어가서, 낮 동안 계속 자고 있었다.
어찌나 깊이 잘 자는지 깨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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