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31일 토요일

한 해가 끝났다.


 올해 2월부터 쓰기 시작한 공책 열 권에 글을 가득 채웠다. 일 년짜리 다이어리 책에도 거의 모든 기록과 메모를 빼곡하게 적었다. 컴퓨터로 글을 써왔을 때와 달리 나중에 다시 기록을 찾아볼 때 검색어를 입력하여 원하는 것을 볼 수 없기 때문에 공책마다 끝 장엔 날짜별로 키워드를 적어 정리해뒀다. 그것을 죽 훑으면 지나보낸 한 해의 일들이 순서대로 보였다. 한 달에 한 권씩이라고 생각하면 매년 열두 권의 공책이 필요한 셈이니 미리 공책들과 잉크를 주문하기로 했다.

전염병이 돌아 거의 아무 일도 못했던 두 해를 보낸 뒤, 올해에는 그나마 일을 할 수 있었다. 장거리 운전은 전보다 쉽지 않았지만 옴짝달싹 못했던 앞 해의 일을 생각하면 고맙게 느껴졌던 시간이었다.

새해를 맞는다고 하여 무슨 특별한 느낌 같은 것은 없다. 기껏 나이가 느는 일이 이렇게 고될 일인가 하였다. 달력의 맨 끝 날짜에 서서 곧 시작할 새 연도를 생각하면 거의 모든 것에 희망도 기대도 갖기 어려운 기분만 든다. 


2022년 12월 30일 금요일

올해 들었던 음악들

 2022년에 나온 앨범 중에서 자주 들었던 음반들을 모아봤다.


Falling Grace. 로맹 필롱, 요니 젤닉, 제프 발라드 트리오의 연주는 공간이 많아서 듣기 시작하면 긴장이 풀리는 기분이 든다. 세 사람의 연주가 다 좋지만 드러머 제프 발라드의 안정감이 이 트리오를더 중요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네번째 곡 Lament 를 한동안 매일 들었다.


노인이 된 싱어송라이터의 노래가 값지다. 여전하지 않고 변해진 목소리가 근사했다. 세번째 곡 Stranger 가 좋아서 가사를 보면서 더 들었다. 미국인이 노래할 수 있는 멋진 내용이군, 했다. 누알라 케네디와 듀엣으로 부른 네번째 곡 Swannanoa 도 듣기 좋았다. 


키스 자렛이 2016년에 프랑스에서 했던 공연 녹음이 올해 앨범으로 나왔다. 열 세곡의 수록곡들은 제목 대신 로마숫자로 붙여진 번호다. 모두 즉흥 연주이기 때문이다. 쾰른 콘서트 앨범을 처음 들었을 때 이후로 이런 음반을 들을 땐 나에게 인상적으로 들렸던 곡에 나만의 제목을 붙여보기도 했었다. 번호도 제목일 수 있을텐데 신기하게도 나름의 이름을 붙이면 생각이 나서 찾아 들어볼 때 기분이 다르다. 그런데 이젠 그런 일도 그만 뒀다. 매번 남의 연주에 내멋대로 이름을 붙여보는 것도 에너지가 너무 드는 일이다. 이 앨범은 한 시간 십분 분량이어서 두어 번에 나누어 잠들기 전에 듣곤 했다.

이 미국인 피아니스트의 연주는 처음 들었다. 에리크 사티와 로베르트 슈만의 곡과 François Couperin, Philip Glass 의 음악을 연주했다. 나는 쿠페렝이라는 작곡가의 음악을 이 음반으로 처음 들어보았다. 아무 정보 없이 듣기 시작했다가 그날 종일 틀어두고 있었던 앨범이다. 수록곡의 순서도 좋았다.

기타리스트 로맹 필롱의 또 다른 트리오는 드러머 브라이언 블레이드와 함께 하는 팀이다. 제프 발라드와 함께 했던 앨범 Falling Grace 는 밤중에 많이 들었다면 이 앨범은 아침 시간이나 장거리 운전을 할 때 자주 들었다. 로맹 필롱, 제프 덴슨, 브라이언 블레이드 트리오의 앨범은 2019년에 나왔던 Between Two Worlds가 있는데, 그것도 꽤 좋았다.

듀란듀란만큼 꾸준한 밴드도 드물다. 이 앨범은 분명히 올해 시월에 나온 것인데 몇 곡은 마치 듀란듀란의 옛 앨범 중에서 들어봤던 것처럼 들렸다. 그러고보니 이 밴드처럼 꾸준하게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팀도 많지 않다. 두번째 곡 All Of You와 여섯번째 곡 Beautiful Lies가 맨처음 좋았었다.

이 기타리스트는 유튜브에서 펠릭스 파스토리우스와 연주하고 있는 영상을 본 뒤에 검색하여 찾아 들었다. 스탠다드 곡들인데 전부 진지하고 내용이 알차다. 열 곡을 순서대로 몰입하여 듣게 됐었다. 끝 곡 Solar가 인상 깊었다.

왜 제목이 연주자의 이름인가 하면, 존 스코필드 혼자 연주했기 때문이다. 이 앨범도 들어보기 전에 유튜브에서 그가 앰프 두 개를 사용하여 연주하고 있는 영상을 먼저 보았다. 어쩐지 뭔가 다른 일을 할 때에 틀어놓았던 경우가 많아서 잘 집중하지는 못했던 앨범이었다. 좋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이 앨범에 대한 이야기도 써둔 적이 있었다. 이 쿼텟이 내한한다면 반드시 구경하러 갈 것이다.

재즈라고 한다면 할 수 있겠는데, 그래서 재즈가 아니라고 우겨도 된다고 생각한다. 음악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내 감성으로는 자리를 잡고 앉아 성의있게 듣지 못했다. 그런데 문득 그 분위기가 떠오를 때가 있었어서, 가끔씩 한 두 곡을 골라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 리스트에 빼먹지 않고 넣은 이유다.

나는 오르간 트리오는 잘 듣지 않는데, 이 앨범은 제외다. 래리 골딩스의 오르간도, 피터 번스타인의 기타도 정말 좋았다. 빌 스튜어트는 말할 필요도 없다. 앨범 전체가 다 좋았다. 세 사람이 삼십년 전에 냈었다는 앨범도 찾아서 들어보고 싶어졌다. 

나는 현악 사중주의 연주를 직접 본 적이 한번도 없다. 슈베르트 음악을 검색하다가 들어볼 수 있었던 앨범인데 듣고 있다가 급히 헤드폰을 쓰고 처음부터 다시 들었다. 그리고 아직 끝까지 다 못들어봤다. 쉰 다섯 곡이 여섯 시간 이십분 동안 이어지는 앨범이기 때문이다. 어디에서 멈췄는지 기억했다가 다음 주에 다시 이어서... 라는 방법으로 듣고 있다. 아름답고, 뭔가 의욕을 일깨워 주는 연주였다.

처음 Eddie 라는 노래가 싱글로 먼저 공개되었을 때 듣고 깜짝 놀라며 좋아했다. 나는 RHCP 의 팬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 이 앨범은 꽤 여러 번 들었고 들을 때마다 즐거웠다. 솔직히 이 정도면 베이스를 연주하는 사람을 위한 앨범 아닌가. 마이클 피터 발자리 선생님, 존경합니다.

세 곡 짜리라서 여러 번 들었다. 더 길었다면 많이 듣지 않았을 것이다. 연주도 녹음도 전부 완벽하다. 완벽한데, 많이 듣지는 못하겠다. 크리스챤 맥브라이드 탓은 아니다. 마이크 스턴 때문이었을까. 이 EP는 24-bit/192kHz 로 녹음했다는데 음질이 좋은 것은 좋지만 음량이 너무 크다.

이 기타리스트의 이름은 줄리앙 라즈라고 발음하는데, 한글로 검색하면 '라게'라고 써둔 것만 보인다. 앨범 전체를 들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작년에 나온 앨범은 아직 못 들어보았고 그 전 해에 나왔던 Love Hurts는 듣다가 그만뒀었다. 이 앨범은 좋았다. 작곡을 잘 하는 기타리스트이다. 빌 프리셀이 코드를 연주해준 것도 좋았다.

9년 전 A Rise in the Road 앨범부터 이 밴드는 뭔가 달라졌다. 나는 지미 하슬립의 연주를 좋아하지만 어쩐지 그가 팀을 떠난 이후 이 쿼텟의 음악이 더 좋아진 기분이다. 거의 2년 간격으로 꾸준히 앨범을 내주고 있는 것이 대단하다. 베이시스트 데인 앨더슨의 연주도 많이 좋다.

봄에 나왔던 재즈 앨범 중 제일 좋았다. 사실 이 기타리스트의 연주를 집중해서 오래 듣고 있으면 기운이 빠진다. 완벽한 연주가 주는 감동이라는 것도 있긴 하지만 도무지 틈이 없다. 듣다보면 어느 순간 따라가기 힘들어지는 순간이 온다. 그래서 제일 좋았는데, 여름 이후 거의 들어본 적 없게 되었던 앨범이다. 그래도 시디를 모으듯이 앨범을 낼 때마다 다운로드해두는 뮤지션이다.



2022년 12월 19일 월요일

월드컵, 녹음실

자정에 월드컵 결승중계를 보기 시작할 때엔, 중계가 끝난 후 두 시쯤 잠들면 아침에 일찍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르헨티나와 프랑스의 결승 경기는 예상보다 더 대단한 게임이었다. 서로 두 점씩 얻고 연장전에서 다시 한 골씩 넣어 또 한 번 동점, 결국은 승부차기까지. 세 시간짜리 스포츠 픽션을 보는 기분이었다. 결국 시상식까지 다 보고... 네 시 반이 넘어서야 잠들었다.

도로가 막힐 것이라고 내비게이션이 겁을 주길래 알람을 조금 더 이르게 맞춰두고 깨었다. 녹음을 해야 하는데 잠이 모자라 집중력이 흐려질까봐 평소보다 진하게 커피를 마셨고, 배가 부르면 안 될 것 같아서 음식은 조금만 먹고 출발했다.



녹음하는 동안엔 커피를 석 잔 더 마셨다. 녹음할 내용을 준비할 시간이 넉넉했던 덕분에 그동안 집에서 예습을 많이 할 수 있었고 그것이 도움이 되었다. 세 개의 악기를 곡마다 어울리게 맞추어 사용했다. 가습기를 새로 구입하여 악기를 잘 관리했던 보람이 있었다. 악기들 상태가 좋아서 연주하는 데 불편하지 않았다.

나는 오늘 내가 맡은 부분을 모두 완성할 수 있었다. 다시 악기들을 메고 들고 집으로 왔는데 밤 아홉시에 이미 지하주차장엔 자리가 없었다. 야외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가방 두 개에 악기가방 세 개를 동시에 짊어지고 걷고 있었더니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고 있던 이웃사람들이 내가 지나가는 모습을 구경하였다.

집에 오는 중에 한 곡을 다른 버젼으로 한 번 더 녹음해보자는 연락을 받았다. 내일은 좀 여유있게 가도 될 것이니 오늘은 깊이 잠들 수 있으면 좋겠다. 잠이 부족하여 힘들었지만, 심야에 보았던 월드컵 결승 경기는 생중계로 보았던 보람이 있었다.



2022년 12월 16일 금요일

새 펜, 올해의 마지막 펜

 


스테인레스 닙 펠리칸을 한 개 더 사고 싶어서 그동안 몇 번 거래를 시도했었다. 사고 싶은 색상은 품절이었고 간혹 중고로 M200이 나오긴 했지만 내가 원하는 닙 사이즈가 아니었다. 당근마켓에서 드디어 한 개 거래할 수 있게 되어 약속을 하고 나갔더니, 펜에 판매자의 이름이 각인되어있던 적도 있었다. 한 개 더 있으면 좋겠다는 이유로 해외에서 주문을 하기엔 반 년 사이에 환율이 너무 나빠져 있었다. 이미 만년필은 여러 개 있으니까 급한 일도 아니어서 가을 쯤 부터는 검색해보는 일도 그만 두고 있었다.
수요일 아침에 펜가게에서 알림 문자가 왔다. 이게 웬일, 모르는 사이에 펠리칸 한정판 M205가 새로 나왔다는 것이다. 새벽에 월드컵 경기들을 보느라 비몽사몽인 상태에서 서둘러 주문을 했다. 내가 원하는 F닙만 남아있었고 다른 닙들은 이미 품절이었다.
헐레벌떡 주문, 결제를 마치고 나서야 조금 느긋하게 방금 내가 산 것이 어떤 모델인지 살펴봤다. 이미 구월에 펠리칸에서 발표를 했고 유명한 분들이 소개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발매는 지난 달에 시작, 이제서야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 내가 만년필에 관련된 기사들을 찾아 읽어보지 않은 것이 대략 여름이 지날 무렵부터였구나.
펜을 쥐고 불빛에 이리저리 비추어보았다. 나는 데몬스트레이터 모델에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직접 내 손으로 만져보고 나서야 이것이 매력이 있는 모델이라는 것을 알았다. 투명하게 속이 비치는 모델은 처음엔 판매 영업사원이 펜의 구조를 설명하기 위해 판매하지 않는 것으로 만들어보았던 것이었는데, 지금은 여러 색상으로 스페셜 버젼이 나와있다.
이 펜은 에델슈타인 잉크에 맞춰 색상을 정한 것이라고 했는데 나는 Caran D'Ache Blue Alpin 잉크를 넣어보았다. 신기할 정도로 잉크와 펜의 색상이 서로 잘 어울려서 재미있어했다.
올해의 마지막 펜이다. 진짜 더는 안 사려고 하는데, 장담하진 못한다.





2022년 12월 15일 목요일

눈이 내렸다

 



지난 밤에 바람이 습하더니 아침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도로는 미끄러웠고 눈은 하루 종일 날리듯 내렸다. 날씨가 잘 어울리는 날이라고 생각했다.
조금 일찍 출발하여 주유소에 들러 연료를 가득 채웠다. 워셔액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주유소에서 워셔액을 사려고 했는데 망설이다가 사지 않았다. 차에서 잠시 내려 후드를 열고 닫는 것이 귀찮았기 때문이었다.
하루에 마시는 커피 양을 많이 줄였다. 일부러 집에서 커피를 내리지 않고, 그대신 빈 텀블러를 들고 나왔다. 새벽에 모로코와 프랑스가 벌인 월드컵 4강전 경기를 보느라 잠이 조금 모자랐다. 커피는 학교에 도착하여 로비에 있는 커피집에서 샀다. 그 커피가게 커피는 맛있었다. 그동안 고맙게 잘 마셨습니다, 라고 마음 속으로 인사했다. 텀블러 뚜껑을 열어 커피를 식히면서 눈이 쌓이는 모습을 구경했다.
집에 돌아올 땐 워셔액이 바닥나버려서 조금 고생스러웠다. 어제 주문했던 만년필이 도착해있다는 소식에 즐거운 마음으로 눈길을 달려왔다.

2022년 12월 8일 목요일

생일 케이크

 


아내의 생일이었다. 나는 어제 집에 돌아오는 길에 생일 케이크를 샀다. 지나다니면서 봐두었던 '베이커리 카페'들이 팔당대교 부근에 몇 군데 있었다. 빵이라는 말도 외래어인데... 강을 따라 주욱 베이커리 카페들만 있었다. 빵카페는 없었다. 그 중 한 군데에 들렀더니 하루 전에 주문을 하면 케이크를 살 수 있다고 했다. 다른 곳엔 케이크로 보이는 것이 있긴 했지만 너무 단 것들로 만들어져서, 한 입 베어 먹는 즉시 신장의 부신 시스템에 이상이 생길 것 같았다. 날은 저물었고 동네는 가까와져서 할 수 없이 어떤 빵집에서 케이크를 샀다. 불매운동이 계속 중이어서 빵집엔 손님이 없었다.

아침에 아내와 함께 미역국과 케이크와 샐러드를 먹었다. 이상하게 보이긴 했겠지만 꽤 조화로운 조합이었다. 물론 나만 그렇게 먹었고 아내는 밥과 국을 먹었다. 나가기 전에 볕이 드는 곳에서 고롱거리며 자고있던 고양이 짤이를 쓰다듬었더니 두 앞발로 내 손을 살며시 잡고 핥아주었다. 시계를 보며 고양이들을 어루만져주다가 집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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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7일 수요일

한 해를 마치는 공연

 


화요일에 올해의 마지막 공연을 했다. 2019년에 이곳에서 송년 공연을 한 뒤에 판데믹 두 해 동안 하지 못했다가 이번에 다시 연주할 수 있었다.

악기를 두 개 가져가서 리허설을 해보고 한 개만 사용하기로 했다. 패시브 악기의 네크 상태가 약간 안좋았기 때문이었다. 자동차에 악기를 다시 가져다 두고 오는 나를 함께 갔던 아내가 이상하게 보는 것 같았다. 쓰지도 않을 것을 무겁게 왜 들고 온 건가, 했는가 보다.

연주를 하지 못하고 지냈던 기간이 그렇게 길어질줄은 몰랐었다. 다시 공연을 하러 한 해 동안 여러 지역을 다니는 일은 피로했지만 힘들게 여겨지지 않았다. 리허설을 하면서 우리가 특별하지도 않은 일상을 유지하는 것이 대수로운 일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두 시간 공연을 마치고 아내와 함께 집에 돌아올 때에 어딘가 정신이 멍해져서 두 번이나 길을 잘못 들었다.

2022년 11월 26일 토요일

광주에 다녀왔다

 


광주 5・18 기념문화센터에서 공연을 했다. 왕복 여덟 시간 운전하는 일이, 이젠 솔직히 힘이 들었다. 리허설을 마친 뒤에 자동차 안에서 삼십분 동안 얕은 잠을 잤다. 짧은 휴식이었지만 나에게 도움이 되었다. 함께 갔던 아내는 그곳에 전시 중이었던 사진전을 보고 주변의 거리를 산책하기도 했다. 나는 도로와 공연장 대기실 외에는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 하루를 보냈다.


공연은 두 시간을 넘게 이어졌다. 나는 공연의 절반 동안은 높은 의자에 앉아서  연주했다. 의자가 준비되었던 덕분에 더 집중할 수 있었고 덜 힘들어할 수 있었다.

부친의 입원과 수술을 위해 병실에서 이틀 밤을 새웠던 이후, 집에 돌아와 제대로 잠을 못 자고 있었다. 고약한 꿈을 꾸고 깨어나 다시 잠들지 못한 적이 많았다. 스트레스에 취약하여 몸이 힘든 것인지 체력이 부족하여 스트레스를 더 심하게 겪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안정을 취하고 쉬고 싶었다.

공연을 마친 후 곧 출발하여 집에 돌아왔을 때엔 자정이 넘었다. 다음 날 아침에 건강검진이 예약되어 있었기 때문에 물도 마시지 않아야 했다. 완전히 지쳐서 아침까지 잘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또 다시 나쁜 꿈을 꾸고 새벽에 깨어나버렸다. 건강검진을 하러 가서는 몽롱한 상태로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도 잘 생각이 나지 않는 오전 시간을 보냈다. 내 시력이 전 보다 더 나빠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밤중에 운전하는 일이 유난히 힘들었던 것은 아마도 눈이 더 나빠졌기 때문이었나 보다. 새 안경을 사야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 달의 일정들이 거의 끝나가고, 이제 곧 십이월이 된다. 한 해가 다 지나갔다. 시간은 점점 더 빠르게 달려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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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17일 목요일

철원에서 공연.

 

지난 달 마지막 날에 철원에서 공연을 했었다. 그리고 두어 주 넘게 시간이 흘렀다.

공연은 월요일이었고, 이틀 전 밤중에 끔찍한 참사가 일어났었기 때문에 거리엔 무거운 분위기가 가득했다. 원래의 연주할 목록을 전부 바꾸어 어쿠스틱 기타 위주로 차분한 곡들을 새로 골라 연주하기로 했다. 의자에 앉아서 공연 전체를 연주해본 것은 몇 년 만의 일이었다. 작은 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도 비슷한 마음이었던 것 같았다.

세월호를 기리는 실리콘으로 만든 노란 리본을 악기 가방에 매달고 다닌지 여덟 해가 지나가고 있다. 악기 가방에 붙어있는 노란 리본이 유난히 기운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2022년 10월 22일 토요일

문경에서


도로가 막힐 것을 걱정하여 서둘러 문경으로 출발했다. 오래 운전하여 멀리 가서 연주하고 바로 돌아오는 일정일 땐 속이 더부룩한 것이 싫어 거의 굶는다. 밥을 먹지 않고 다녔던 덕분에 몸은 가벼웠는데 밤중엔 정말 배가 고팠다. 나는 내가 원해서 굶었다고 하지만 오랜만에 함께 따라왔던 아내는 나 때문에 밤까지 같이 굶어야했다. 그대신 돌아오는 길에 휴게소에서 첫끼를 먹고 아내가 고르는대로 간식을 사줬다. 집에 도착할 때 보니 간식들은 전부 빈 봉지만 남아있었다.

옷을 잘 챙겨 갔었다. 분명 해가 지면 추워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후 세 시에 리허설, 네 시 반에 공연이라는걸 뒤늦게 알고 셔츠 한 장만 입고 무대에 올라갔다가 추워서 덜덜 떨었다. 리허설을 할 땐 더웠었는데... 하며 억울해했다. 계절이 바뀌는 것을 오래 겪어보았는데도 얻는 교훈과 지혜가 없다니. 손이 시려워 감각이 없었다.

리허설 직전에 오래 전 학교 학생이었던 정석원으로부터 메세지를 받았다. 우리가 도착하기 직전 같은 무대에서 앞 순서로 연주하고 동료들과 함께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서로 어긋나 만날 수 없었지만 반가와서 문자를 남겨줬다는 그에게 고마왔다. 나는 그와 만나지 못하고 지냈지만 인터넷으로 그가 활동하는 것을 자주 지켜보고 있었다. 연주도 잘하고 마음이 고와 늘 기억하고 있는 친구였다. 오래 만나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을 적어두었다가 시간을 내어 찾아다니기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낮에 나뭇잎들이 물드는 것을 보며 리허설을 했었다. 집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려보니 후드 틈새에 낙엽이 끼워져 있었다. 너는 어디에서부터 타고 온거니, 하고 조심히 꺼내어 화단에 앉혀줬다.



2022년 10월 17일 월요일

아내의 그림


 아내가 집에서 그려왔던 그림들 중 한 점이 그림전시회의 벽면에 걸렸다. 집에서는 아무렇게나 바닥에 쌓아둔 그림들 틈에 있던 고양이 에기의 초상이 전시되어있는 곳에 아내와 함께 갔다.

아내의 그림은 공간 안에서 가장 깊숙한 곳에 마땅한 조명도 없이 걸려있었다. 큐레이터 역할을 맡은 그림 선생이 처음엔 아내의 그림을 더 좋은 위치에 전시하도록 했었는데 어느 남자노인이 그 자리에 제것을 걸겠다며 성을 내고 떼를 써서 아내가 양보해줬다고 했다. 잘한 일이다. 그런 정도의 내면을 가진 분의 소원 쯤은 들어줘도 된다.

후미진 구석 그림자 진 벽 위에 우리와 함께 살았던 고양이 에기가 생전 모습 그대로 늠름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아내의 그림은 그곳에서 쉽게 눈에 띄었다. 나는 그림 옆에 쑥스러워하는 작가를 서게 하고 사진을 찍었다.

붓을 잡지 않고 지냈던 시간이 많았지만 아내는 그림 그리는 일을 멈추지는 않았다. 일부러 말을 꺼내어 그림에 대한 대화를 해본 적은 없다. 오가다 그림이 보이면 잠깐 서서 구경하곤 했을 뿐. 그의 기억, 감정, 느낌들이 꽃이 되거나 고양이로 변하여 여전히 방구석 여기저기에 놓여져 있다. 지난 주엔 큰 화방에 들러 캔버스와 붓 몇 개를 사고, 나는 연필 세 자루를 샀다.

그리고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고 있다.



2022년 10월 16일 일요일

금천구 축제에서


 금천구청역 뒤에 안양천이 흐르는 작은 광장에서 연주했다. 하천 건너에 구름산 숲이 좋다고 들었는데 한번도 가보지는 못했다. 그 근처엔 산이 많아서 삼성산, 비봉산 등에 숲과 공원이 잘 꾸며졌다고 했다. 언젠가 한번 가볼 생각이다. 깜깜한 안양천 깊은 밤 사람들이 무대 앞에 가득 모였고 공연을 보며 즐거워하는 표정들이 가까이에서 잘 보였다.

 

그날 나는 편안하게 연주할 수 있었는데, '꼬마야'님이 찍어주신 사진을 보고 내가 편안할 때의 표정은 저런가 보다, 했다. 토요일 오후에 도로는 극심하게도 막히더니 돌아올 땐 강변북로를 시원하게 달려올 수 있었다. 계획했던대로 집에 돌아와 라면과 김밥으로 오늘의 두번째 식사를 하고 토트넘과 에버튼이 겨루는 축구중계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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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14일 금요일

낮에 했던 일

 

낮에 세 가지 일을 하려고 외출했다. 정비소에 가서 우선 자동차 전조등을 교환했다. 정비공장 사장님은 무척 빠르게 전구를 갈아줬다. 13년이 된 자동차는 그동안 고장 한 번 없이 나를 잘 태우고 다녀준다. 몇 개의 부품을 교환하고 정기적으로 정비해준 것 밖에 없는데 아무 것도 속썩이는 일이 없는 차여서 아주 정이 들었다.

그 다음엔 머리를 깎으려고 했는데 미용실에 사람이 많았다. 잠시 주차해두고 기다릴만한 곳도 없었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오며 전화를 걸어 아내를 불러냈다. 가을, 초겨울에 입고 다니던 옷이 십일년이 되었는데 많이 낡지 않아서 한참 더 입을 수 있지만 너무 무거웠다. 가벼우며 보온이 되는 옷이 필요했다. 내일과 다음 주 토요일엔 밤 시간에 야외에서 연주해야 하니까 악기를 메어도 불편하지 않은 외투를 한 벌 사기로 했다.

아내와 국수집에 들러 늦은 점심을 먹고 (아내는 나 때문에 물감이 묻은 붓들을 세척하고 나와야 했다) 아웃렛 매장을 돌아다니며 펠트 재질로 된 운동화와 외투 한 벌을 샀다. 신발도 옷도 가볍고 따뜻할 것 같았다. 함께 가준 아내가 내 마음에 들만한 것을 나보다 먼저 발견해줬다.

내일은 많이 추운 기온은 아니라고 했다. 공연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늦어도 자정 무렵일 것이고, 집에 와서 저녁을 먹은 후 축구중계를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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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4일 화요일

가을

 



비가 그치더니 갑자기 추워졌다. 나는 언제나 가을을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하는데, 내 부모가 나이 많은 노인이 되니 가을공기를 마시는 기분이 이전과 같지 않다. 모친은 작년에도 빛바랜 나뭇잎을 보며 탄식같은 한숨을 쉬었었다. 외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난 뒤에 내 모친의 등과 어깨는 전보다 더 쇠약해진 것 같기도 하고 어딘가 무거웠던 것을 내려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지난 주에 노인은 혼자 하는 말처럼, "벌써 단풍이 들면 어떻게 해"라고 했다.

이 홈페이지, 혹은 블로그는 이제 이십년이 되었다. 나는 이십년 전 가을을 기억했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즈음의 기억들이 어디론가 휘발된 것처럼 부분부분 지워져 버린 것을 알게 됐다.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았던 다양한 부정적 감정이 가득한 그 가을에 대한 기억이 어찌된 일인지 더듬어보아도 서로 연결되지 않고 순서대로 떠오르지도 않는다. 괴로움, 외로움, 상실감, 배신감, 분노, 슬픔, 불안 같은 것이 내 속에 단단하게 뭉쳐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여름이 지나고 찬바람 냄새를 맡을 즈음이면 한동안은 그 시절 그 감정의 흔적이 흉터처럼 만져지곤 했다. 이제는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혼자 멍하니 앉아 노란 단풍잎의 빛을 쬐던 가을날 오후의 세상만 기억 속 어딘가에 남았다. 감정이 무뎌지니까 계절을 다시 만나도 전과 같지 않고 서로 서먹하다.

여전히 가을이면 외롭고 멀리 떠난 고양이들을 그리워하고 뵐 수 없는 분들을 생각하며 슬퍼하긴 하지만, 우울했던 세상 가운데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알 수 없는 감정, 이유없이 안심하던 낙천적인 기분은 없어졌다. 내 부모는 많이 늙었고 나도 스스로 나이들었다고 여기기 시작했다. 추운 겨울은 오지도 않았는데 창문을 드나드는 바람소리에 지레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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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3일 월요일

늙고 낡은

 리디북스에서 소설 한 권을 구입했다. 리디북스는 앱스토어를 통해 결제하고 그것을 자기들 포맷의 캐시라는 이름의 통화로 바꾼다. 그러면 내가 결제한 돈의 일부를 차감한 금액이 그 '캐시'로 충전되는 방식이다. 구입한 책값은 만 이천원이었지만 실제로 결제한 금액은 만 사천오백원이었다. 알라딘 앱에서 한번 더 검색해 볼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기기와 프로그램이 오래 유지되어야만 구입한 책을 가지고 있을 수 있는 시대. 가능한 종이책은 그만 사겠다고 결심한 대신 감당해야 하는 일이다.

집안의 가구를 정리정돈하기 위해 아내는 오래된 오층장을 현관 가까이에 밀어 놓았다. 그것은 내가 여서일곱살 무렵에 모친이 금호동 가구공장에 주문하여 샀던 것이다. 오래되고 낡아져서 이젠 겨우 틀만 남았다. 문짝도 여기 저기 파손되었다. 장 뒷면 얇은 합판은 힘주어 밀면 뻥 뚫어질 지경이 되었다. 오십여년 가까이 이사를 할 때마다 옮겨지길 반복했던 낡은 가구가 이제 없어질 준비를 하고 있다.

늙고 낡은 가구를 버리고 새로 가구를 사는 것만으로는 정리정돈이 다 되진 않는다. 집안에는 지난 사십여년, 삼십여년 동안 한번도 펼쳐보지 않은 책들이 잔뜩 있다. 그동안 많이 버렸는데도 아직 많다. 책을 버리는 것이 왜 그렇게 아깝고 어려운지 모르겠다. 책 뿐이 아니라 플라스틱 더미도 쌓여있다. 더 이상 사용하지 않을 것이 분명한 음악 CD들과 DVD들을 모두 버려야 마땅할텐데 여전히 어떻게 하지 못하고 쳐다보고 있다. 기술은 발전했고 시간과 비용을 들여 모았던 미디어들은 쉽게 버리지 못하는 짐이 되어버렸다.

애플뮤직, 유튜브와 넷플릭스, 전자책을 사용하는 시대이니까 불필요한 것은 버리기로 하고 정돈된 실내에서 일상을 보내는 것이 옳다. 쓰레기가 되어버린 물건들과 함께 기억과 이야기까지 버려져 잊어버린다고 해도 뭐 어떤가, 하는 마음이 들도록 자기를 설득해야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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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1일 토요일

시월

 


시월이 되었고 밤엔 춥다. 가을이 문앞에 와있다.

수요일에 시골집에 가는 길엔 벼를 모두 베어버린 텅빈 논을 보았다. 노란 빛을 띠는 들판도 보았다. 시골집 뒤뜰엔 밤이 잔뜩 떨어져 있었다. 밤나무에서 떨어진 밤송이들이 수염을 깎지 않은 남자의 입처럼 헤벌레 벌어진 채로 별 뜻 없는 말을 하듯 밤알들을 뱉어 놓고 있었다.

무덥고 습했던 여름날에 나는 머지않아 더위가 끝나고 찬 바람이 불 것을 알고는 있었다. 쉰 번을 넘도록 겪어온 가을이 막 시작하려는 지금, 어쩐지 처음 당해보는 슬픔 같은 감정을 느낀다. 계절을 마주하는 일은 어쩔 수 없는 것인데 여전히 서글픈 이유는 결국 해내지 못한 일들만 지나온 길에 줄지어 떨어져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뒤돌아보면 이루지 못한 일들이 여기 저기 버려져 있다.

해가 지는 것을 보며 아내와 국도를 달릴 때 하늘빛이 처연하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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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24일 토요일

청남대에서 공연을 했다.

 


해가 진 후 금강이 굽이쳐 돌고 있는 청남대의 공연장 대기실 천막 주변은 공기가 서늘했다. 저녁으로 도시락을 먹고 났더니 추위와 함께 피로를 느꼈다. 지난 밤에 일찍 잠들지 않았던 탓이었다. 공연 전에 주차해 둔 차에서 시트에 기대어 잠깐 눈을 붙였다.


한 시간 동안 연주를 했다. 강과 넓은 잔디와 나무들이 있어서 소리가 좋았다. 두 시간 넘는 공연을 이어오다 보니 한 시간 동안 연주하는 것이 짧게 느껴졌다.

2022년 9월 23일 금요일

청주에서 잤다.

 


공연 하루 전날 청주로 가서 하루를 잤다.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도로가 오래 정체되어 중평 톨게이트를 통해 빠져나와 깜깜한 국도를 달렸다. 숙소 부근 빵집을 찾아 급하게 먹을 것과 커피를 사고, 호텔에 체크인을 하자마자 방에 들어가 TV를 켰다. 축구 국가대표 친선경기가 이제 막 시작하고 있었다. 샐러드와 샌드위치를 전반전이 진행되는 동안 먹고, 보온병에 담아 아직도 뜨거웠던 커피는 손흥민 선수가 프리킥을 찼을 때에 마셨다. 경기는 재미있었지만, 그 종편 채널을 이용해야만 하는 것이 거북했다. 축구 중계가 끝나자마자 텔레비젼은 끄고, 아이패드로 음악을 틀었다.



생각해둔 것을 글로 옮기는 것에 한계를 느껴서 틈나는대로 아이폰의 노트 앱에 메모를 해두고, 여전히 그중에 여전히 쓸 것이 있으면 쓰기 시작하기로 하고 있다. 메모는 넘치고 숙소의 통나무 의자는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어서 수시로 일어나 몸을 움직여야 했다.
잠시 일어난 김에 유튜브에서 음악 라이브 영상을 고르다가 Rodney Jones가 판데믹 기간 동안에 연주했던 것을 보게 되었는데 그 쿼텟에서 피아노를 맡고 있던 류다빈 씨라는 피아니스트를 알게 됐다. 그는 매우 좋은 연주를 하고 있었다. 로드니 존스의 연주를 일부러 들어본 것은 아주 오래 전 일이었다. 구글의 인공지능 덕분에 가끔 행운처럼 건져지는 것들이 있다.
영상을 보는 바람에 한 시간을 그대로 지나보내고 결국은 아주 늦게 잠들었다. 이래서야 공연 하루 전에 힘들여 운전하여 온 보람이 없는 것 아닌가 생각했지만, 그래도 토요일에 시계를 보며 초조해하면서 공연장으로 달려가는 것 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2022년 9월 20일 화요일

좋은 음악

조슈아 레드맨과 그의 친구들이 새로 낸 앨범이 좋아서 여러번 들었다. 지난 십년 동안 새로 등장하여 활동하는 재즈맨들의 재즈와 격이 다른 앨범이다. 그나마 진지한 재즈를 하고있는 거의 끝 세대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재즈의 과거를 만들어왔던 연주자들과 비교하면 근래에 등장한 세대들의 연주는 어쩐지 오래 듣고있지 않게 된다. 다양한 스타일들이 자연스럽게 섞이다보니 더 깊은 사색은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심도 든다. 그런 중에 오십대에 접어든 연주자 네 명이 녹음한 앨범 LongGone이 반갑다. 러닝타임이 47분인데 앨범의 제목에 EP라는 표시가 있었다. 스트리밍 시대엔 오십여분 되는 분량도 EP인건가.

이번 쿼텟의 멤버들인 브라이언 블레이드, 크리스챈 맥브라이드, 브래드 멜다우 모두 조슈아 레드맨이 데뷔할 때에 함께 했던 친구들이다. 90년대에 그들이 등장했을 때에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젊은 그들에게 환호했었다. 삼십여년 동안 그들은 이제 각자의 위치에서 중요한 연주자가 되었다. 그들이 함께 연주한 앨범이 좋지 않다면 그게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생각이 나서, 똑같은 쿼텟 편성으로 1987년에 브랜포드 마살리스가 녹음한 앨범 Random Abstract를 찾아 들어보았다. 나는 그 앨범을 과거에 CD로도 구경해보지 못했다가 애플뮤직에서 발견하여 얼른 보관함에 담아두었었다.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케니 커클랜드가 참여했던 음반이었다. 삼십년 전 마살리스 형제들이야말로 재즈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젊은 재즈맨들이었다. 앞의 것과 비교하자면 그 어린 나이에 브랜포드 마살리스가 발표했던 35년 전 앨범이 지금 막 나온 현재의 거물 재즈맨들의 것보다 (적어도 나에게는) 훨씬 뛰어나게 들렸다. 브랜포드 마살리스 쿼텟을 듣고 난 뒤엔 이 앨범이 재즈이고 조슈아 레드맨 쿼텟의 앨범은 재즈로부터 태어난 어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이것은 연주자의 재능과 기술의 문제가 아닌 모양이다. 시대가 만드는 변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음악이 연주되어지고 녹음되어졌던 시간이 만들어낸 간격이고, 고작 몇 십년이라는 차이는 나중엔 아무 차이도 아니게 될 것이다. 나중이 되면 그냥 좋은 음악과 아닌 음악의 차이만 남겠지.



2022년 9월 17일 토요일

부산에서 공연

 


부산문화회관에서 공연을 했다. 장소는 1988년에 개관했던 대극장이었다. 크루들이 잘 준비해준 무대는 쾌적했고 소리도 좋았다. 리허설을 할 때에 잔향이 많은 것 같아서 앰프의 낮은 쪽을 평소보다 더 줄여놓은 대신 볼륨을 조금 더 크게 해놓았다.

피곤하지 않은 상태로 쾌적하게 연주하고 싶은 생각으로 하루 전날 도착하여 숙박을 했던 것인데, 낮 시간에 아내와 친구와 함께 점심을 먹을 때 예상하지 못했던 일로 시간을 허비하는 바람에 여유있게 공연장에 도착하지 못했다. 게다가 며칠 장거리 운전을 계속했더니 어깨에 경련이 생겼고 담이 결렸다. 아니나 다를까 연주하는 내내 조금만 자세를 바꾸면 온몸에 통증이 심해져서 아주 애를 먹었다. 공연을 마치자마자 다시 집을 향해 달려오느라 중간에 과속단속 카메라에 사진도 찍혀버리고 말았다. 하루 전에 공연장 근처에서 숙박까지 했던 보람이 없어져버렸다. 집에 돌아와 고양이들을 살피고, 손흥민 선수가 해트트릭을 하는 경기의 후반전을 실시간으로 보고 난 뒤에 그만 기절하듯 잠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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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16일 금요일

부산으로.

 



공연은 다음 날인 토요일. 하루 전에 부산으로 가서 하루를 자기로 했다. 단독공연에 가지고 다니는 악기와 짐이 많아져서 모두 자동차에 싣고 아내와 함께 출발했다.

우리가 고양이들을 집에 남겨둔채 하루 이상 집을 비웠던 것은 3년 전에 딱 한 번이 전부였다. 사료와 물을 충분히 마련해주고 집에서 나왔지만 나이든 고양이들이 빈 집에서 잘 있을지 계속 걱정하고 있었다.

숙소에 도착하여 짐을 들여놓고 근처에 있는 아내의 친구집으로 향했다. 아내는 그곳에서 하룻밤 묵기로 되어 있었고 나는 호텔에서 푹 쉰 다음 공연장으로 가려는 계획이었다. 장거리 운전을 했더니 다시 운전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아내와 함께 걷기로 했다. 친구의 집은 그곳에서 1킬로미터 거리에 있었다.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느릿느릿 걷기 시작했을 때 갑자기 피로가 풀리며 기분이 상쾌해졌다.

나 혼자 다시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해가 저물고 있었다. 시간과 비용을 들여 굳이 하루 전에 먼길을 왔으니 다음날 공연을 좋은 몸 상태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뜨거운 커피를 마시고 피로를 풀며 가지고 간 공책과 펜으로 글쓰기를 하다가 깊은 밤이 되었다. 허기를 느껴서 잠을 못자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와서 먹은 것이 그만 배탈이 나버렸다. 새벽에 잠을 설치고 창 밖을 보면서 집에 두고온 고양이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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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4일 일요일

시골에서 만난 고양이

 


시골집에 아내와 함께 가서 몇 시간 밭일을 하고, 노인 두 분과 함께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주차를 할 때 나이 지긋한 고양이 한 마리가 입구에 앉아 있었다. 차에서 내렸더니 건물 가까이에 어린 고양이들이 몇 마리 모여 놀고 있었다. 모시고 간 부모 두 분은 이미 들어가서 주문을 하는 중에 나와 아내는 자동차 대쉬보드에 넣어뒀던 고양이 간식을 뜯어 나눠주고 있느라 시간 가는줄 몰랐다. 식당주인이 그것을 보더니 저쪽에 몇 마리가 더 있을 것이라고 했다. 건물 뒷편에 더 많은 고양이들이 일광욕을 하고 있다가 조심성 없이 다가갔던 나 때문에 후다닥 흩어졌다. 식당주인의 말에 따르면 나이 많은 고양이를 시작으로 하나 둘 모이던 고양이들이 이제는 아예 자기들의 마을처럼 여기며 식당 주변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퉁명스러운 식당 아저씨의 말투와 건물 주변에 가지런히 놓여진 고양이 사료 그릇, 물 그릇들이 대조를 이루어 어울리고 있었다.

어린이 고양이 두 마리가 가까이 다가간 나를 보고 있었다. 호기심이 많았던 한 녀석과 상자 뒤에서 눈만 내밀고 있던 다른 한 놈이 가장 친해 보였다.

날은 습하고 무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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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29일 월요일

여름이 다 지났다

 

 

여름이 지나가고 밤 기온은 섭씨 19도. 수요일엔 17도까지 내려간다고 예보에서 들었다.

여기의 여름은 언제나 심하게 더웠다. 20년 전, 30년 전에도 독하게 더웠고, 태풍이 지나갔고, 큰 비가 내렸었다. 사람들은 더위가 점점 지독해지고 비도 이상하게 내린다는 말을 하는데, 5년 전, 10년 전에도 지독했고 이상했다. 겨울이 지나가고 다시 옷이 가벼워질 때가 되면 사람들은 방금 지나온 겨울을 몇 년 동안 살아온 듯 말하며 무더위를 과장하는 것 같다. 나는 끔찍하게 더웠던 여름을 수 십 번 겪은 것 같은데.

기온이 내려가니 여름 내내 맨 바닥에 길게 늘어져있던 고양이들이 각자 적당한 공간을 찾아 들어가 눕기 시작했다. 사십여년 된 낡은 가구는 캣타워로 변해버렸다. 이제 학교는 새 학기를 시작했고 열흘 쯤 지나면 추석이다. 무더위는 이상하지 않은데 시간이 점점 더 빠르게 흐르는 것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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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28일 일요일

성남에서 공연

 

성남시 분당중앙공원. 7년 만에 다시 가보았다. 2015년 5월 9일에 그곳에서 공연했었다. 그날에 나는 리허설을 마치고 그 동네가 집이었던 친구 동우를 만났었다. 암 투병 중이었던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 반가와 하며 함께 밥을 먹었다. 나는 모밀국수를 주문했었고 그는 국물이 있는 무엇인가를 먹었었다. 나는 많이 야위어 있던 그에게 뭔가 더 먹이고 싶었는데 그는 주문했던 것도 다 먹지 않고 남겼었다. 그는 그날 밤중에 있을 공연을 구경하고 싶어했지만 항암 치료 중에 체력이 너무 나빠져서 피로해했다. 그래서 식사 후 곧장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나에게 잘 먹었다고 말하며 "다음엔 내가 밥을 사겠다"라고 했었다. 그리고 두 해가 지난 뒤 그는 세상을 떠났다.

리허설을 하면서 나는 내 모니터 스피커에서 베이스 소리를 줄이고 전체 음량도 더 내려주기를 부탁했다. 무대가 넓지 않아서 무대 위의 사운드와 베이스 앰프 소리만으로도 연주하기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밤이 되어 공연을 시작하고 첫 곡의 E 음을 누르자 마자, 나는 내가 잘못 판단했다는 것을 알았다. 베이스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무대 앞으로 드넓게 트인 잔디마당이 펼쳐져 있었는데 낮에는 고요하여 다 들리고 있었던 소리가 공간을 가득메운 관객들이 들어차자 마치 증발이라도 된 것처럼 아무 소리도 안 들렸다.

 


연주를 하면서 몇 번이나 앰프의 노브를 돌려 음량을 올렸다. 앰프에 Limit 경고등이 나올 정도로 볼륨을 올렸는데도 베이스 소리는 공기 중으로 휘발되어 사라지는 것 같았다. 리허설을 할 때에 베이스 음량을 줄여달라고 부탁하지만 않았어도 괜찮았을 일이었다. 결국 상상력을 동원하여 연주하기로 했다. 내가 줄을 건드릴 때에 어떻게 소리가 나는지 나는 잘 알고 있으니 하던대로만 잘 연주하면 관객들을 향하는 사운드는 엔지니어들이 알아서 잘 해줄 거라고 생각했다. 의식적으로 몸에 힘을 빼고, 과잉된 연주를 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공연을 마쳤다. 끝나고 나서 구경했던 분들에게 물어 보았더니 베이스 소리가 아주 좋았다고 했다. (나빴다고 말해줄 리는 없지만...) 

내 소리를 듣지 못한 채로 한 시간 동안 공연해보는 경험을 하였다. 8월의 투어를 모두 마쳤다.



토요일 아침

 

자고 일어났더니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 허리 통증이 재발되어 이 방에서 저 방으로 가는 길에 두 번이나 갑자기 드러누웠다. 조심 조심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었다. 바깥의 도로 사정을 볼까 하여 베란다에 가보았더니 고양이 깜이가 바람을 쐬며 햇볕을 쬐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고양이는 눈을 꿈벅거리며 잘 잤느냐고 묻고 있었다.



새벽에 집 주차장에 도착한 뒤 애플워치를 들여다 보았더니 여러 개의 경고가 화면에 보여지고 있었다. 세 시간 전 무대 위에서 소음 레벨이 100 데시벨에 다다랐었다는 경고였다. 그랬었나, 그렇게 소란스러웠던 것 같지 않았는데.

정오가 되기 전에 밥을 차려 먹고 또 한 번의 공연을 위해 성남으로 출발했다.




전주 공연

 

1980년 5월 2일, 전북대학교 학생 천 명이 거리로 나와 경찰과 맞서 돌을 던지며 대치 중이었다. 비상계엄을 해제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최루탄 가스를 발사하는 지프차를 전복시켰다. 전북대학교 정문 앞에도 오백여명의 학생이 경찰과 대치하고 있었고 시내로 들어온 학생들은 종합경기장 공사용으로 놓아둔 토관을 굴리며 도로를 차단하고 애국가를 부르며 싸우고 있었다. 그로부터 이십여일 후에 광주... 그리고 새 군부독재의 노골적인 시작. 다섯 달 뒤에 전국체전이 시작했고 이제 막 개장된 종합경기장에 대한 기사가 언론에 매일 나왔었다. 마치 세상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 처럼, '3만명을 수용하는, 엄청난 비용을 들인, 최대이며 최신인 종합경기장.'

1963년에 지어져 1980년에 대대적으로 증축한 나이 많은 덕진 종합경기장에 공연을 하러 갔다. 공연 전에 경기장 바깥을 걸으며 긴 세월을 지나보낸 콘크리트 건물들을 구경했다.

아침 일찍 집에서 출발하여 긴 시간 운전을 하고 한숨도 잠을 못 잤다. 길고 길었던 대기시간. 예정되었던 것보다 한 시간이나 지나 공연을 시작했다. 집에서 나온지 열 네 시간 만에 무대 위에 올랐던 것. 비몽사몽인 상태로 첫 곡을 시작했다. 이미 밤 열시 삼십분이었다. 관객들을 보면서 저 분들은 집에 가는데 지장이 없나,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연주를 시작하니 선선해진 밤 공기 때문인지 넓은 공간 덕분인지 소리가 아주 좋았다. 집중하며 연주할 수 있었다. 그렇긴 한데 역시 반쯤 자고 있는 것과 같았기 때문에 공연을 하고 다시 집에 돌아오며 고속도로를 달렸던 것들이 한데 섞여 기억이 뒤죽박죽이 되었다.

집에 돌아오자 그대로 드러누워 자버렸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정신이 맑아졌는데 제일 먼저 기억 났던 것은 전주에서 먹었던 육회비빔밥과 생선구이 정식이었다. 일부러 가장 평점이 낮은 식당을 골라 찾아간다고 해도, 전주에서 먹는 음식은 전부 다 맛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