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26일 화요일

음악


아침에 병원에 다녀와서 세 시가 다 되어 첫 끼를 먹었다.
일찍 일어났더니 잠이 모자라 두어 시간 낮잠을 잤다.

저녁에 학교 학생들의 정기공연, 졸업공연이 있었다. 서교동까지 가는 길에 자동차가 빼곡했다. 오랜만에 찾아간 동네엔 울긋불긋 낯선 간판들이 가득했다.
학생들의 연주를 주의 깊게 보았다. 나는 지난 주 작은 공연을 제대로 잘 하지 못했던 것이 아직 마음에 남아있다. 자신들이 공들여 준비한 음악들을 한 곡 씩 연주하는 학생들의 표정에는 강한 자의식이 보였다. 대부분은 과잉된 기분으로 보였지만, 그 사이에 시선을 멈출만한 미래의 연주자들도 있었다.



공연장에서 십여분 걸어서 오늘 약속되어 있던 녹음실에 도착했다. 스무 살 많으신 음악선배 형님은 벌써 도착하셔서 녹음을 진행하고 있었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얼마 전 그 분의 노래 두 곡을 녹음했다. 오늘 녹음을 끝으로 이제 후반 작업만 남았고 아마도 새해 초에 음원이 나올 것 같다.

깊은 밤 동네에 돌아오니 입김이 보였다.
이제 겨울은 시작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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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23일 토요일

멍하게 하루를.


사진 속의 검은 고양이 깜이의 모습은 며칠 전 아침에 찍은 것이다.
베란다에 햇볕이 드는 시간에 나왔다가, 그늘이 지면 다시 방에 들어간다.
대부분 햇볕을 쬐며 드러누워 자고 있지만 가끔은 저렇게 강을 바라보며 멍하니 있을 때가 있다.

토요일이었던 오늘, 하루 종일 나도 책상 앞에서 뭔가 멍한 채로 있었다. 계속 악기를 들고 정해둔 루틴대로 연습을 하기는 했는데 특별한 생각은 없었다.
어제 저녁에 친구들과 공연을 했다. 그 공연을 잘 하고 싶었기 때문에 나는 혼자 연습을 많이 했었다. 아이디어도 많았다. 그런데, 어제 나는 연주를 잘 하지 못했다. 한 번 제대로 되지 않은 다음에는 모든 것이 꼬여가기 시작했다. 거의 곡 마다 틀렸고 나 때문에 음악이 끝나지 못하고 더 이어지기도 했다.

새벽까지 내가 망쳐버린 공연 생각에 열중하다가 자고 일어난 뒤로는 그만 정신이 멍해졌다.
무엇이 가장 문제였고 어떤 것에서 내가 잘못 판단했던 것인지 알고 싶었다. 어제 오전에 괜히 네크의 트러스로드와 브릿지를 조정했기 때문이었을까, 줄의 게이지를 바꿨던 것이 나빴던 것일까, 앰프를 잘 못 조작했던 탓이었을까 등등... 어딘가 기운이 빠져서 종일 축 늘어져 있었다.

다시 깊은 밤. 고양이 깜이는 한참 동안 놀아달라고 조르다가, 이제는 잠을 자러 가자고 투정을 부리고 있다. 저 고양이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나를 따라다니는 것인가. 다른 고양이들은 아내의 방에 모여 각자 자리를 잡고 쿨쿨 자고 있다.
나는 고양이의 성화를 받아주는 체 하며 이제 일부러라도 편안하게 자고 일어나 일요일 만큼은 덜 멍청하게 보내려고 한다. 망쳐버린 공연은 할 수 없는 일이다. 가까운 시일 안에 내 스스로 그 기억을 만회할 기회가 생기길 바란다.

음악을 랜덤으로 틀어보았더니 한참 동안 템포가 빠른 피아노 곡이 재생되고 있다. 모두 꺼두고, 오늘은 좀 깊이 잠들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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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18일 월요일

뮤지션과 음악팬

뮤지션과 음악팬

10월에 Sting 이 한국에 와서 공연을 했다. 그 날은 서초동 집회가 한참이었던 토요일이었고, 같은 날 나는 밴드 공연을 하느라 정읍에 다녀왔었다. 그의 홈페이지를 보니 지난 일요일 필라델피아 공연을 끝으로 올해의 투어를 마무리한 모양이었다. 내년 1월에 로스앤젤레스를 시작으로 다시 미국 투어 일정이 적혀있었다.

유튜브에 스팅의 한국공연, 일본공연 영상들이 여러 개 올려져 있었다. 모두 관객이 찍은 것들이므로 앵글이 조금 불안정하고 사운드가 곱지는 않았지만, 직접 보지 못한 공연의 모습을 구경하기에 충분했다.
올 해의 스팅 투어에도 그룹 폴리스 (The Police) 시절의 곡들이 많았다. 셋리스트의 절반은 'The Police Cover'로 채워졌다. 'Message In A Bottle'로 시작하는 무대의 모습은 거친 영상으로 보아도 멋있었다. '51년생이니 이제 곧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인데도 꾸준한 운동으로 다듬어진 다부진 몸에 '57년 프레시젼 베이스를 걸치고 무대에 등장하는 스팅은 여전한 록스타의 모습 그대로였다.

두 명의 기타리스트 중 어린 연주자는 '85년생인 Rufus Miller 로, 3년 전 스팅의 앨범 '57TH & 9TH' 에 참여한 이후 계속 투어 활동을 함께 하고 있다. 그는 무대 가운데에 밴드 마스터인 스팅을 두고 서로 나란히 서있는 Dominic Miller 의 아들이다. 도미닉 밀러의 딸은 기타 치며 노래하는 문신 많은 가수 Misty Miller 이다.

도미닉 밀러가 스팅을 만나 함께 하기 시작했던 것은 1991년 부터이다. 이제 28년이 다 되었다.  1985년 스팅의 첫 솔로음반 부터 함께 했던 Kenny Kirkland 가 세상을 떠나버린 '98년까지, 도미닉 밀러와 케니 커클랜드는 각각 스팅 밴드의 록과 재즈 스타일의 양쪽 축이었다. '96년에 올림픽 공원에서 그 두 사람이 스팅과 함께 무대위에 있었던 공연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야외공연 도중에 둔촌동 일대의 아파트 주민들이 항의하는 바람에 PA 시스템의 볼륨을 줄였어야 했던 그 공연이었다. 당연히 무대 앞의 사운드도 매끄럽지 않았지만 그런 것은 아무 상관 없었던 강한 음악적 경험이었다.

폴리스는 '84년까지 활동했고, 스팅의 솔로 앨범이 나오면서 일 년 쉬었다가 '86년에 한 번 더 활동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해체했다. 약 9년 남짓 기간 동안에 정말 많은 명곡들을 남겼다. 도미닉 밀러는 그 후 폴리스의 활동기간의 세 배 정도를 스팅과 함께 해왔다.
그런데 아직도 가끔은 유튜브나 해외 게시판 등에서, '어째서 폴리스의 곡을 연주할 때에 도미닉 밀러는 앤디 서머즈처럼 하지 못하는가' 라는 댓글을 본다. 아마 그런 음악팬들에게 연주자라는 인격체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세션 연주자란 팬들의 기억 속에 아름답게 각인된 명곡들을 충실하게 재연해야하는 피고용인일 뿐이라는 느낌일까. 지금은 많이 없어졌지만, 스팅의 솔로 작업들은 도미닉 밀러 마음대로 연주하더라도, 폴리스 곡들 만큼은 앤디 서머즈를 공부했어야 했다, 라는 식의 글들은 이십 년 전에도 볼 수 있었다.

올해의 스팅 투어에 Shane Sager 라는 하모니카 연주자가 참여했다. 나는 유튜브에서 그가 스팅과 함께 Fields of Gold 를 연습하는 장면을 구경한 적이 있다. 이번 공연에서 그는 'Englishman In New York' 의 인트로와 간주를 훌륭하게 연주했는데, 그가 불과 몇 달 전까지는 블루스 하프만 연주했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놀랍다. 스팅의 요구로 석 달만에 12음계 하모니카를 연습해야 했다고 그는 말하고 있었다. 그는 이번 투어에서 여러 곡에 하모니카 연주를 곁들이며 좋은 음악을 들려줬다.

그런데 아무도 스팅에게 하모니카는 집어치우고 브랜포드 마살리스의 색소폰을 돌려달라고 요구하지는 않는다. 왜냐면 음악팬들은 한 사람의 뮤지션을 솔로 가수와 록밴드 멤버 시절의 록스타로 나누어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에게는 편곡이 가능한 곡이 따로 있고, 훼손하면 안되는 경전과 같은 음악이 따로 있는 모양이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Hired Gun 들의 처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음악팬들은 스팅이 이제 더 이상 폴리스 시절처럼 피크로 펜더 재즈 베이스를 튕기며 무대 위에서 높이 뛰지 않는다고 불평하지는 않는다. 자연스럽게 나이가 들면서 폴리스 시절의 곡들은 조금씩 템포가 느려졌고, 그의 보컬은 힘을 빼는 대신 그윽해졌다. 그의 베이스 라인은 더 단순해졌으나 견고해졌고, 엄지손가락으로 연주하는 베이스의 음색은 점점 더 아름다와졌다. 훌륭한 뮤지션과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행복은 그런 것을 목격하는 것에서 더 많이 얻어질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2019년 11월 8일 금요일

실수


악기를 넘어뜨렸다. 그만 오래된 악기의 네크에 큰 흠집이 났다. 부러지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려고 했지만... 그렇게 해본다고 기분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십여 년 사용해온 기타 스탠드가 모두 고장이 났다. 두꺼운 나사를 찾아 겨우 고정시켜 놓았었다. 어제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후에 허리 통증이 다시 심해졌다. 일찍 잠들었다가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내일 공연에 쓰일 악기들을 점검했다. 작은 렌치로 브릿지를 조정하는데 눈이 침침했다. 안경을 꺼내어 쓰고 방 안에 불을 밝혀야 했다. 아무리 자세를 고쳐 앉아도 허리가 아팠다. 여전히 어깨와 팔은 저리고 손가락 서너 개는 감각이 무뎠다.
나는 두 개의 악기를 모두 손 본 후에 스탠드에 악기를 세우려다가 그만 허리가 아파 악, 소리를 냈다. 그 때문에 몸을 움츠리다가 들고 있던 악기를 기타 스탠드에 제대로 걸지 못했고, 임시방편으로 고정시켜뒀던 나사가 스탠드에서 빠지면서 베이스가 그대로 넘어져버렸다.

낡은 것들을 미련 없이 버리고 새 것을 사뒀거나, 내 눈이 여전히 좋고 몸이 아프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생각은 쓸모가 없다.
악기의 네크에 깊이 파인 상처를 나는 아무 소용 없을 줄 알면서도 손으로 문지르고 있었다. 어떤 생각이 새로 생겼다.
이제 지금까지 습관 들여 살았던 것 보다 더 조심해야 하겠구나. 무심코 하던 행동들을 더 주의하지 않으면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것은 이상하거나 서운한 일이 아니라, 그냥 자연스러운 것이다.

내일 공연으로 분주했던 두어 달의 일정이 끝나간다. 내가 신경을 쓰며 악기를 점검하는 유난을 떨고 있는 이유는 지난 주의 공연이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일 공연을 완벽하게 하고 싶은 것은 맞다. 그렇지만 콘서트는 나 혼자 하는 것도 아니고, 이제는 사소한 것에 몰두하여 쓸데 없는 강박 같은 것은 가지지 말아야겠다.

오늘은 푹 자고, 내일은 고요한 마음으로 연주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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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4일 월요일

기운이 없었다.


며칠이 지나서야 생각을 정리해 볼 수 있었다.
지난 주 수요일에 경주에서 공연을 했다. 리허설을 마친 후에 나는 그날의 공연이 모두 순조로울 것으로 생각했다. 무대는 잘 준비되어 있었다. 친숙한 음향 팀은 완벽하게 소리를 만들어줬다. 전부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첫 곡을 시작할 때 부터 내 악기에서 예상하지 못한 소리가 나왔다. 아주 거칠고 메마른 소리였다. 나는 그것이 악기의 탓인지 앰프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모니터 스피커는 리허설을 할 때 보다 음량이 커져있었는데, 그것 역시 정말로 음량이 세어진 것인지 아니면 리허설 때에 내가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것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악기의 줄을 건드릴 때 마다 신경이 쓰였다. 나는 위축되어서 악기의 볼륨 노브를 돌려보기도 하고 모든 이펙터를 꺼보기도 했다. 아무 소용이 없었다.

순서에 따라 악기를 바꿨을 때에도 몹시 당황했다. 갑자기 소리가 작아졌고 원하는 음색을 낼 수 없었다. 여전히 무엇이 원인인지도 나는 파악할 수 없었다. 가능한 연주 도중에 앰프나 이펙터의 노브에 손을 대는 것을 삼가려 했는데, 그 날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연주하는데에 편안한 소리를 내보려고 애썼지만 하나도 제대로 되어지지 않았다.
그럭 저럭 공연을 마치고, 나는 대기실로 돌아가는 대신 공연장 밖으로 나가버렸다.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잠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나, 내가 너무 안일했던 것인가, 공연 직전에 손톱을 한 번 더 다듬었어야 좋았을까, 아니면 멤버들과 저녁을 먹을 때에 나 혼자 끼니를 거르지 않았어야 옳았나.

다른 사람들이 다 떠난 뒤에, 나는 힘이 빠진 채로 느릿 느릿 악기를 챙겨 차에 싣고 심야의 고속도로를 달렸다. 뭔가 일을 바르게 해내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에 기분이 나빴다. 졸립지도 않았다.

그 다음 날에는 학교에서 수업을 했다. 수업과 수업 사이에, 나는 계속 전날의 공연을 떠올리며 기초적인 연습을 다시 해봤다. 여전히 기분이 가라앉고 있지만 어쩌다 잘 되어지지 않는 날도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자신이 무엇인가 잘못하여 일을 망쳤다고 여겨질 때에, 나는 심하게 자책을 하는 경향이 있다. 스스로 뛰어나지도 완벽하지도 못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생긴 습관일 것이다. 엉뚱한 생각이 들어 한 번도 사용해보지 않았던 악기들을 검색하여 자세히 살펴보기도 했다. 나를 탓하기 싫으니 악기 탓을 해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지나고 보면, 내가 나를 책망하는 것이 나중의 일에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주말 동안 먹고 자는 시간 외에는 계속 연습을 했다. 연습이 지나간 일을 보상해주지는 않지만, 비슷한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것을 줄여주기는 할 것이다.

돌아오는 주말에 다른 공연이 기다리고 있다. 그 공연을 아주 잘 해내면 기분이 나아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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