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월 29일 월요일

안될거야.



며칠 전 이곳에서 맥주를 먹고 있는데, 베이스를 연주한다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친구가 가까이 다가왔다.
다른 인사는 없었다. 그는 내 곁에 와서 앉자마자 나에게 몇 개의 스케일에 대하여 질문을 했다.
워낙 붙임성이 좋아서 가능한 일인 것인가, 생각했다.
나는 기꺼이 설명해줬다. 하지만 어쩐지 알아 듣는 것 같지 않았고 그 친구는 점점 인상만 쓰고 있었다.
설명이 끝났기 때문에 나는 다시 살짝 돌아 앉아서 남은 맥주를 입에 털어넣었다. 그때 그 친구가 무표정한 얼굴로 종이와 펜을 내밀었다.
'후치쿠치맨이라는 곡 베이스 타브TAB 좀 그려주세요. 그냥 그거 보고 할래요.'

그래서 나는,
안그려줬다.
걘 안돼.


2007년 1월 28일 일요일

내 고양이 순이.


그 동안 나는 이 핑계 저 핑계로 청소도 설거지도 하지 않고 집안을 방치해뒀다.
약간의 몸살 기운이 모든 것을 귀찮게 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완전히 나아진 것 같았다.
그래서 오늘은 벌떡 일어나 빨래를 하고 진공청소기를 움직였다.
그러던 사이에 고양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청소를 멈추고 집안을 돌아다니며 찾아다녔다.


순이는 소란스럽고 번잡한 것은 다 싫다는 듯 책상 위의 좁은 구석에 틀어 박혀 길게 늘어져있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나는 순이를 손가락으로 쿡쿡 찔러보고 머리를 툭툭 쳐봤다. 
순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내가 집안 정리와 청소를 다 마칠 때 까지 고양이 순이는 같은 자세로 자고 있었다.
덕분에 책상 정리는 또 다음으로 미뤘지. (핑계)




.

복장.


일주일 전의 어느 무대에서의 사진.
벽에 그려진 드러머의 시선이 나를 보고 있어서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모자를 벗고 저렇게 입은 채로 집을 나서면 평소에 반말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존대말을 하기도 한다.

어휴...




.

2007년 1월 25일 목요일

고양이에게 미안했다.


또 아침이 다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순이가 반갑게 문앞까지 달려나와 인사를 했다.
기지개도 한 번 펴고, 눈을 마주치며 연신 야옹거렸다.
어.. 그래, 그래... 하며 대충 대답해주고 나는 주섬 주섬 짐을 내려 두고 옷을 벗고 욕실에 들어가 문을 닫고 말았다.
특별히 피곤했어서 그랬던 것도 아니었고, 특별히 기분이 우울해서도 아니었고, 급하게 볼일을 보아야했어서도 아니었다. 그냥 평소에도 집에 돌아오면 나는 그렇게 움직여 왔었다.

화장실에서 나온 뒤 나는 생각 없이 옷을 갈아입고 악기의 줄을 교환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메일들을 읽고 뉴스를 보았다.
한참을 그렇게 하고 있는데, 문득 고양이 순이에 대한 생각이 났다.
뒤늦게 순이를 쳐다 보았다... 순이는 삐쳐 있었다.
언제부터 저렇게 하고 있었는지, 내쪽은 절대 돌아보지 않고 같은 자세로 꼼짝 않고 앉아 있었다.
이름을 불러도 돌아보지 않고, 쓰다듬으려 손을 뻗으면 고개를 돌려 피한다.
가까이 다가가 얼굴을 보려하면 다른 곳을 돌아 봤다.
하지만 다른 곳으로 가지도 않고 계속 저렇게 앉아만 있었다.
생선을 주겠다고 말해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쓰다듬고 인사해주는 것을 잊어서 미안하다고, 억지로 끌어 안아 쓰다듬고 볼을 부비고 달래어 주었다.
한참을 사과하며 안아줬더니 순이의 기분이 풀렸다.
많이 미안했다.

고양이가 혼자 집을 보게 만들지 않도록 신경을 쓰겠다고 생각했다.

2007년 1월 22일 월요일

자살.

잠깐 방심했더니 그만 나는 몸살에 걸리고 말았다.

정확히는 토요일부터 시작되었다.
앓다가, 괜찮아졌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열이 조금 있을 때에 효과적이라고 여겼던 찬물로 샤워하는 일도 이제는 만만하지 않았다.
차가운 물방울을 손끝에 대보면서 망설이다가 그만두고 말았다.
그러다가 열만 내려 준다면 두통도 불편함도 사라질 것 같아서, 이를 악물고 냉수마찰을 하고 훌러덩 벗은채 잠을 청해봤다.
그랬더니 열만 내려갔고 감기증상이 심해졌다.
몸이 아프면 같이 사는 고양이에게도 민폐를 끼친다. 물을 얼마나 끓여마셨는지 뱃속이 출렁거린다. 나는 고양이 순이의 밥 그릇을 자주 살피고 물 그릇을 자주 확인했다. 내가 그만 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인터넷 뉴스 사이트에 온통 여자가수의 자살에 관련된 기사가 넘치고 있었다.
나는 그까짓 열좀 나고 몸이 조금 으슬거린다는 것만으로도 살아남으려고 혼자 별 짓을 다했던 밤을 보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내 홈페이지에 적어둔 어떤 글 때문에, 이곳을 검색을 통해 찾아오는 분들 중에는 '죽고싶을때'라는 문장을 찾다가 여기에 들러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살이라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충고, 권고, 경고, 분석을 하고는 있겠지만 어쨌거나 그런 것들은 모두 자살하지 않은 사람들의 말일 뿐이다. 자신을 스스로 죽인 사람의 입장에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당연히 그것을 설명하고 써 내려가는데에는 한계가 있을 것 같다. 
죽은자와 남은자의 의사소통은 어느 쪽이 되었든 일방적이다. 대부분 더 이상 말없는 사람쪽이 더 폭력적이다. 그들은 설명도 대꾸도 해주지 않을테니까.

'모든 이의 상처와 고통은 지문처럼 독특하다'라는 말에 나는 동의했다. 
나는  '정말 큰 고통 앞에서는 오히려 살아남으려 애쓰게 되므로, 죽고싶다는 생각은 여전히 사치'라고 썼던 적이 있었다. 여전히 그 생각은 변함이 없으나, 지금에 와서더 생각해 본다면 결국 자살하지 않은 녀석의 고백일 뿐이었다.

사람에게는 '존재했어야할 자기'와 '실제로 존재하는 자기'가 늘 서로 실랑이를 하기 마련이다. 
현실의 분열적인 상태의 자기를 물리적으로 제거한다고 해서 '있어야할 자기'로 그 자리를 메울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모든 존재는 행복하려고 사는 것이다.
나는 아무도 다치지 않고 아무도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2007년 1월 19일 금요일

공연 사진 중...


이것은 실내에서 했던 공연 사진 중 한 부분.


이것은 다른 날 야외에서 했던 공연 사진 중 한 부분.


2007년 1월 18일 목요일

플렛리스 베이스.




몇 년 전 사용하던 플렛리스 베이스를 처분한 뒤에, 소리 좋은 플렛리스를 가지고 싶어 안달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충동적으로, 62년 프레시젼 베이스의 플렛을 제거하기로 맘 먹었다.
그리고 그 길로 평소 잘 알던 공방에 가져다가 덜컥 맡겨버렸다.
작업을 맡아주신 분의 정성 덕분에 마음에 쏙 드는 플렛리스 베이스를 가지게 되었다.


내가 원했던대로 플렛이 있었던 자리는 거의 보이지 않도록 되었고, 질좋은 에폭시를 여섯 번 거듭 발라서 완성되었다. 표면의 기포는 전혀 없고, 바라던 것보다 더 멋있는 상태로 돌아왔다.


아주 자세히 들여다보면 플렛이 있었던 흔적이 보인다.
에폭시 도료가 올려졌지만 네크의 느낌은 전혀 위화감이 없었다.
나는 밤 새 악기를 만지며 좋아하고 있었다.


2007년 1월 17일 수요일

나는 배운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서 배웠던 적이 없는 주제에 지금 악기 레슨을 하고 있다.
방학이 되면서 인원이 늘었다. 오후 부터 밤 까지 쉴 새 없이 레슨을 하고 나면 기운이 빠질 때가 있다.
말을 많이 해서 힘들다. 그러나 눈을 반짝거리며 열심히 배우고 있는 학생들을 마주 보면 나는 약장수 처럼 잘도 떠들어댄다.
좋은 기운도 얻어 온다.
나는 오히려 그들로 부터 다시 배우고 있다고 생각했다.


2007년 1월 16일 화요일

맛있게 빵을 먹었다.


춥지 않은 겨울 날씨가 계속 되고 있었다.
그래도 겨울인데, 나는 날씨를 얕잡아 보았다.
얇은 옷을 입고 외출을 했다가 몸이 추워져서 떨었다.

편의점에 들어가 담배 한 갑을 사려 했는데 데워지고 있는 빵 냄새에 이끌려 두유 한 병과 빵 한 개를 사 먹었다.

맛있게 빵을 먹었다. 다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더니 입김이 훅 하고 공중에 퍼졌다.



2007년 1월 7일 일요일

고양이와 겨울을 보내고 있다.


집에서 나올때엔 환기를 좀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창문을 열어뒀었다.
그런데 밖에서 오래 머물게 될 줄을 미처 몰랐다.
영하로 뚝 떨어진 기온, 눈가루를 함께 날리던 차가운 바람을 얼굴에 맞으며 난방장치도 꺼두고 나온 집안에 혼자 있을 고양이를 많이 걱정했다.
아침 해가 밝아서야 집에 돌아가면서 몹시 과속을 했다. 내 고양이가 추워서 웅크린채 밥을 굷고 있을 것 같았다.

집에 돌아와 고양이를 불렀더니 가늘게 야옹하는 소리만 들렸다.
보통은 내가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달려와 발 앞에서 한 바퀴 몸을 굴리는데,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순간 또 걱정을 했다.

알고보니 고양이 순이는 내가 켜두고 나갔던 전기담요 위에서 등과 배를 잔뜩 지지며 잠만 잤던 모양이었다. 어루만지고 안아주려는데 털이 따끈따끈했다.
가습기 가까운 곳에 누운채 몸을 일으켜 인사를 하는체 하더니 이내 다시 옆으로 누워 힐끗거리면서도 자던 잠을 더 자려고만 했다. 잠에 취한 것 처럼 보였다.
다행이다, 다행이다.
겨우 마음을 놓았다.
나는 고양이에게 미안하다고, 여러 번 말해줬다.


2007년 1월 2일 화요일

한 해를 떠나 보냈다.


연말 공연들의 사진들을 받아 보고 정리해 뒀다.
이제야 비로소 무엇인가 끝이 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 해 동안 내가 걷던 길에서 이리 저리 엉켰던 인연들, 나란히 걸어줬던 사람들에게 고마왔다.


연말 공연 리허설.


따뜻하게 입고 있었는데도 넓은 극장은 추웠다.
리허설을 하는데 손이 시려웠었다.

사흘 동안의 공연들은 매일 조금씩 달라졌었다. 곡이 바뀌었고 편곡이 그 자리에서 수정되었다. 하지만 함께 했던 사람들은 모두 차분하고 여유로왔다.

기분 좋은 사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