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31일 금요일

순이는 일곱 살.


이제 곧 여덟 살, 내 고양이, 순이.
고양이 식구들이 늘어날 때 마다 샘이 더 많아지고 토라지기도 잘 했다.
그런데 털 색이 하얗거나 노랗거나 간에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 서로 그루밍을 해줄 수 있다면 그게 가족일테니까...
새해에는 다른 고양이들과 서로 좋아하고 예뻐하며 잘 지내면 좋겠다.
건강해라 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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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30일 목요일

동료분들.

한 해 마무리를 하며 골라 본 멤버분들의 사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사진에는 그날 이 공간에 있던 멤버들 네 명의 얼굴이 조각 조각 담겨있다.
오후에 연습을 마친 후 커피집에 들어와 앉아 있었던 장면이다.
올해에는 윤기형님과 다시 만났던 것도 특별한 일이었고, 함께 스무 번이 넘는 공연을 했던 것도 즐거운 경험이었다.
모두 몸도 마음도 건강히 새 해를 준비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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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27일 월요일

마지막 리허설

올해 마지막 리허설이었다.
참 숨가쁘게도 지내왔던 한 해였다.
공연을 마치면 이제 며칠은 여행을 떠나서 약속 없이 느긋하게 돌아다니며 아무 때나 기대어 자고 그래야지... 라는 것은 달콤한 상상일 뿐이다.

내일 부터 또 즐겁게 일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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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24일 금요일

착한 고양이

집안의 막내 고양이 이지는 천성이 착하다. 바보처럼 착해서 자주 안스럽다. 불편하고 위험을 느낄 때 하악질을 하는 것도 요즘이 되어서야 겨우 배웠다. 그나마 그것도 어설프다. 이 고양이의 주된 표현 방법은 가늘게 우는 소리를 하거나 미안해하거나 동그랗게 눈을 뜨고 올려다보는 것이다. 화가 나기라도 하면 그냥 도망을 가버린다. 뜻대로 되지 않으면 짧은 한숨을 쉬는 것이 전부이다.
나이 많은 고양이들이 심통을 부리고 힘이 약해서 억울한 일을 겪어도, 그저 상대방을 핥아주거나 말없이 물러난다.

고양이 이지는 우리가 그 쬐그만 앞발을 꼭 쥐고 집으로 데려오기 전 까지 동물병원의 좁고 인정없는 쇠창살에 갖힌채로 내일이 분명하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도 세상에 대한 아무런 적의가 없다.
다만 아내를 진짜 엄마로 여기고 있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어서 나는 고양이에게 자주 아내와 너는 종이 다르다는 사실과 그에 관련된 진화론적인 설명을 해주고는 있지만, 한 번도 귀담아 듣지를 않았다.

새벽에 텔레비젼을 틀었다가 사람들이 돼지와 소를 죽여 땅에 퍼담아 파묻고 있다는 뉴스가 나와버렸다. 어리고 착한 녀석이 곁에 앉아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려 나는 텔레비젼의 전원을 끄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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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17일 금요일

학기를 마쳤다.

지난 주에 학기의 마지막 수업을 마쳤다.
졸업하는 학생들과 사진을 찍기도 했고 첫 학년을 마친 이들과 손뼉을 마주치며 인사하기도 했다.
대부분이 귀가하고 다시 고요하게 비어버린 복도와 레슨실 마다, 무슨 영혼들처럼 악기 소리의 흔적들이 떠다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들에게 많은 말을 하느라 바빠서, 그들의 말을 들어야할 시간을 놓친 것이 아까왔다.
머지않아 공연장에서, 대기실에서, 무대 위에서 만날 수 있을 사람들이 그들 중에도 나오겠지.

케이블을 감고 악기를 가방에 챙기면서 퀘퀘한 지하실 냄새를 맡았다. 어딘가 썩고 있는 것 같은 우중충한 습기의 냄새가 풍기는 클럽들, 카페들의 기운. 나는 그런 곳들을 기웃거리고 다니며 나이 많은 어른들의 연주와 생활을 구경하느라 스무 살 무렵을 보내고 있었다.

하루를 보내고 뒤돌아보면서, 내가 배우며 나아갈 수 있도록 해주셨던 그 형님들에게 고마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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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12일 일요일

나는 멍청하다.

공연 날. 제 시간에 알람 소리 듣고 일어나서 고양이들 밥도 주고... 여유 부리며 더운 물로 샤워도 하고... 
그러나 타고난 멍청함을 발휘, 고속도로 진입로에서 반대 방향으로 쾌활하게 돌진. 그놈의 하이패스 톨게이트를 피한다는 것이 그만....
다급해졌을 때는 이미 춘천 방면으로 신나게 가고 있던 중이었다. 결국 열차 시간 놓치고 전속력으로 서울역 도착, 다음 열차 표를 사고 났더니 입에서 단내가 났다.

커피를 사들고 트위터를 열어 보았더니 열차 안에서 멤버들이 방금 남긴 글들이 보였다. 침울하게 사과의 답글들을 남기고 커피 한 모금을 입에 털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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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29일 월요일

나와 고양이

아내가 그려준 그림.
마누라 분이 열심히 집안 일을 하고 있을 동안에 나와 고양이 순이는 늘 저런 자세라고 했다.
뭔가 더 묘사하고 싶어도 보이는 모습은 맨날 요런 상황이었나 보다.
작가의 고충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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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20일 토요일

세월이 빠르다.

한 해가 다 지나갔다.
정말 빠르다.
악기점에 들른 김에 악기에 새 줄을 감아줬다.
작업을 해주고 있던 락건의 한 마디. "브릿지는 교체해야겠는데요."
녹이 슬어서 나사 머리들이 대부분 삭아 부러졌다.
플렛도 많이 주저 앉았다.
악기가 원래 그런거지 뭐. 사람도 늙는데 너라고 별 수 있니. 세월이 지나도 닳은 흔적이 없으면 그게 이상한 것이지.
....라고 말해보았자 그다지 위로는 되지 않는다. 수 년 동안 부지런하게도 다녔는데, 나는 뭔가 해놓은 일이 하나도 없다.
다음 달은 바빴던 한 해의 결정판이 될 것이다. 마지막 한 바퀴를 남겨둔 경주마처럼 콧김을 뿜으며 겨울의 도로 위에서 뜀박질 하게 되겠지.
내년에는 쉬는 날들을 만들 여유가 생기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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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16일 화요일

쉽게 절망한다.

새벽, 잠들기 전에 푸념이 잔뜩 담긴 글들을 읽었다. 뭐라고 해도 그것은 그냥 세상에 대한 짜증일 뿐이었다.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 떼를 쓰는 방법만 배웠기 때문이다. 스스로 일어나려 하지 않는다면 주위에서 손을 내민다고 해도 결코 팔을 뻗어 쥐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운좋게도, 주변에 자신의 힘으로 자수성가한 친구들이 여럿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강인하다는 것이 아니었다. 세상을 향한 마음이 너그럽고 자신이 이룬 소박한 결과물에 대견해할줄 안다는 것이었다. 부모님이 차려주시는 밥을 얻어먹고 성장한 나는 그들 앞에서 부끄러웠다.

대개 불평과 불만의 화살을 타인에게 쏘아대고 채워지지 않는 욕심을 환경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은 작은 고통에 취약하다. 어떤 이들은 이를 악무느라 잇몸이 문드러져도 힘들다고 징징거리지 않는다. 몸에 구멍이 나고 뼈가 부러진 것도 아니라면 그만 울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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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2일 화요일

추위

올 겨울이 유난히 추워질 조짐인 것이어서 내가 이렇게 미리 추워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지금 속으로 골병이 들어서 햇볕에 있어도 으슬으슬 추운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이 블로그와 내 트위터에 지긋 지긋하게 많이 등장하는 단어들은 피로, 피곤, 방전, 지침, 고단... 그런 것들이었다.
이런 생활을 오래 해왔더니 이제 조금만 잠을 못자면 몸이 삐그덕 거린다. 잇몸이 붓고 얼굴도 붓는다. 손가락 통증은 팔목이 저리고 시리는 증상으로 옮겨갔다.
이렇게 나이 먹을 생각은 없었다.

호기를 부리며 셔츠 한 장을 입고 가방과 악기를 들고 현관을 나섰다가, 다시 들어와 오리털 외투를 주섬 주섬 입고 다시 집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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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23일 토요일

이렇게 지냈다.

이렇게 지내고 있었다.
월요일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에 레슨을 했다. 공연 때문에 미뤄진 경우엔 일요일에도 레슨을 했다.
김창완밴드 외에 5인조의 퓨젼재즈밴드 Second Nature, 그리고 스탠다드 재즈 위주의 기타트리오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합주 연습 시간은 보통 정오가 아니면 자정 무렵이 되었다.
보통 새벽 2시 즈음 집에 왔다.
남편보다는 고양이들과 결혼생활중인 아내와 가끔 밖에서 메신저로 안부를 묻는 생활이었다.

내 능력의 한계를 나는 대충 알고 있다. 나는 한 가지 일을 하려면 남들 보다 더 많은 준비 시간이 필요하다. 딴엔 성실하게 한다고 했지만 결국 시간이 모자라게 된다.
나는 조금 더 효율적으로 살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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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11일 월요일

해바라기

일을 마치고 잠시 들렀던 식당에 주차를 했는데 해바라기와 눈이 마주쳤다. 자동차의 불빛을 비춰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열 한 살이었던 해의 여름에는 집앞에 해바라기가 껑중 모여 있었다. 자전거 뒷자리에 여동생을 태우고 다니며 해바라기를 꺾어 씨를 까먹기도 했었다.
해바라기가 옥수수보다도 키가 커지면 허우대만 멀쩡한 총각처럼 하는 일도 없이 종일 건들거리고 서있는 것 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도 맨날 하는 일 없이 걷기도 하고 비도 맞으며 여름을 까먹고 있었다.

아직 꼭대기에 쇠로 만든 녹이 슨 종이 달려있던 진짜 교회당에서 정말 종소리가 울려퍼지기도 했었다. 눈을 크게 뜨고 멀리 바라보면 빨갛게 물든 저녁 하늘과 잡초만 자라던 낮은 언덕의 경계에 해바라기 몇 놈이 비틀거리며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시골냄새 나던 그 동네에서 해바라기와 함께 보냈던 여름이 지나고, 그 해 겨울에는 우리집에서 밤 사이 강아지들이 죽어버리는 일이 있었다. 나는 아버지와 함께 해바라기들이 서있던 근처 어딘가에 강아지들을 묻어줬었다. 묵직하고 차가왔던 강아지들 곁에 무릎을 대고 앉아 흙을 조금씩 한참 동안 덮어줬었다.

함께 노닥거렸던 동네의 친구들 이름도 얼굴도 잊었지만 열 한 살 무렵의 그 해 여름과 겨울의 일들은 떠올리기 쉬웠다. 더 강한 인상으로 남았을 것이 분명할 다른 해의 일들 보다도, 훨씬 더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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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9일 토요일

잠시 머무는 고양이

길에서 주워져 동물병원에서 보호중이었던 어린이 고양이.
보름의 날짜를 다 채워버려 '처분'의 대상이 되어버린 녀석을 아내의 친구분이 거두어 좋은 곳으로 입양 보낼 때 까지 맡기로 했다. 고양이를 만져본적도 없었다는 그 분의 두 팔에 버젓이 안겨서 엄마를 만난듯 냐옹거리던 어린 사내 고양이 녀석이 우리집에 며칠 머물고 있는 중이다.
입양하시겠다는 분으로 부터 소식을 받은 모양인데 신중한 아내는 고양이의 새 가족을 까다롭게 선택하고 있다. 그 덕분에 잠시 머물 예정인 어린이 고양이는 난생 처음 멍멍이 형들, 고양이 누나들과 정말 신나게 뛰어놀고 있다.
아침에 소파 위에 웅크리고 햇빛을 잔뜩 받으며 깊이 잠든 고양이 꼬마를 보고 조심 조심 사진 몇 장을 찍었다. 깨우지 않으려고 나는 살금 살금 걸어다녔다.

조용한 아침, 집안의 고양이들이 그르릉거리는 소리가 음악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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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14일 화요일

감전.

앰프에 연결된 악기를 안은채로, 아이팟 터치를 컴퓨터에 연결하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드는 전기 충격을 느꼈다.
손에 쥔 것을 빨리 내려놓지 못하고 몇 초간 전기를 더 받아들였다. 팔을 흔들어 기계를 떨구고 정신차려보니 한쪽 발로 9볼트 어댑터 끄트머리를 밟고 있었다. 괜히 혼자 엄살을 부린 것 같았다.

콧속에서 머리카락 타는 냄새와 함께 양쪽 눈에서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는 것은 물론 거짓말이지만, 어휴, 내가 전기를 얼마나 싫어하는데.

그 바람에 세수 한 번 더 하고, 하던 것을 주섬주섬 정리하고, 알람을 맞춰두고, 내일의 긴 일정을 구구단 외듯 한 번 죽 읊어보았다.
오늘도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전기충격으로 기절했다면 아마 푹 잤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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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10일 금요일

이가 아프다.

미련한 습성은 나이 먹는다고 배워지고 배워지는 것이 아니다. 
나는 미련 곰탱이임에 틀림 없다. 
그저 피곤이 쌓여서 잇몸이 부었나 했더니 지금 하루가 넘게 치통에 시달리는 중. 
예기치 못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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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9일 목요일

어린 연주자

한 번 좋은 것의 맛을 보게되면 그것이 그대로 기준이 되어버린다.
그동안 운 좋게 좋은 드러머 분들을 겪어오다보니 음악도 모르고 아직 갈 길이 먼 어린 드러머 친구와 연주하는 것은 마치 힘겹게 언덕을 오르는 기분이 든다.

그래도, 내 어릴적에 나를 토닥거려주시던 선배 분들을 떠올리며 어떻게든 내가 밀고 끌고 올라가보아야 직성이 풀리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적어도 음악을 연주하려 한다면 음악을 사랑하는 법 부터 배우면 좋겠다. 음악을 말과 글로 배우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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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6일 월요일

개꿈을 꾸었다.

늦은 밤 저녁식사 후 기절하듯 쓰러져 세 시간을 자고 일어났다. 꿈에서 옷을 홀랑 벗고 동네를 뛰어다녔다. 이건 무슨 개꿈인걸까.

커피를 만들으려다 그릇을 닦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큰 쓰레기 봉투를 수거장에 내려다 놓았다. 집 밖은 고요하고 시원했다.

다시 커피를 만들어 마시려다가 이번엔 전기 주전자를 닦고, 내친 김에 주방청소를 해버렸더니 땀이 흠뻑 났다. 아이폰의 할 일 목록을 읽고, 시간을 계산해보고, 큰 숨 한 번 쉬고 샤워를 했다.
나는 일과를 시작하려고 했던 것인데, 잠에서 깨어난 고양이들이 아내를 깨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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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사의 장면.

새벽에 집에 돌아왔다. 
외곽순환도로를 달리던 중 처참하게 부서진 자동차가 넓은 핏자욱과 함께 치워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위로 밤하늘은 무심하게 내리고 있었다.
산의 내장을 후벼 파 놓은 긴 굴을 지나니 하루의 끝이 보였다. 그 순간 좋아하는 음반의 마지막 곡이 절묘하게 끝났다.

오후 부터 이어지는 개인레슨... 이제 8시에 올 학생 한 명만 남았다. 지치지 않기 위해 잠시 담배 두 개비를 연거푸 피웠다.  몸이 지쳐오긴 하지만 비바람을 맞으며 악기를 들고 온 학생들의 성의가 고맙다.

트위터를 보다 보면 합리적인 이성, 수학적인 사고를 해야 마땅할 직업의 종사자들이 객관적 사실과 자신의 취향을 혼동하는 것도 모자라 그것을 바탕삼아 타인을 훈계하려 하는 꼴을 매일 본다. 
이것은 요즘만의 일이 아니라 고래로 부터 내려오는 인간사의 장면이어서, 오히려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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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5일 일요일

광주에서 공연

4:00 AM
오늘은 몇 주 만에 다시 광주에서 공연을 한다. 
이동하는 버스에서 잠을 자면 될 것이라는 대책없는 마음가짐으로 밤을 새우는 중이다. 
맥북은 또 두 번 자동으로 꺼졌다. 기계나 주인넘이나 잠이 모자란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러다 나도 픽 하고 꺼져 버릴지도 모르겠다.

11:00 AM
지금 김창완 밴드는 승합차에 멤버들이 함께 타고 광주로 가는 중이다. 운전은 제일 연장자... 리더분이 하고 계심. 11인승 승합차를 오토바이가 질주하듯이 운전하고 계심... 
앞 자리에 앉은 나는 집에서 책상정리라도 해놓고 올걸... 고마왔던 분들에게 편지라도 남겨둘걸...하고 있는 중이다.


2:20 PM
김창완 밴드. 전원 무사히 광주에 도착. 예쁜 동네의 식당에 들어왔다.



11:00 PM
무사히 공연 잘 마치고 돌아가는 길. 운전은 상훈씨가 하고 있다.
이제 나는 앞 자리에서 생명의 위험 없이 조금 졸다가 운전을 교대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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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3일 금요일

피로가 쌓일대로 쌓였다.

오후에 화장실에서 손을 씻다가 거울을 보고는 흠칫 놀랐다. 눈 밑에 검은 그림자가 문신이라도 한 것 처럼 진하게 드리워져있었다. 좀비가 되어 하루를 보내고 이제 무사히 집에 돌아왔더니, 창 밖으로 빗줄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허기는 참겠지만 위통을 견디지 못하여, 운전하다가 멈춰서 음식을 사 먹었다.
기운 없이 움직이다가 그만 테이블 위의 간장통을 쓰러뜨려 다 쏟아지게 하고 말았다. 점원 분에게 사과를 드렸더니 넉넉하게 웃어주며 다른 자리를 권해줬다... 너무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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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북이 말썽이다.

내일의 일을 준비하던 중 맥북이 저절로 두 번이나 꺼져버렸다. 
무엇을 의심해야하는지 생각해내거나 유닉스 모드로 들어가서 복구를 해보거나 하는 것이 당연할텐데 그냥 넋을 놓고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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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2일 목요일

밤을 새웠다.



애플 키노트를 보지 말았어야 했다. 
아무 것도 못하고 새벽시간이 다 지났다. 
아이팟 시리즈는 그냥 한 개 씩 다 사두고 싶어졌다.

생각하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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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1일 수요일

위통

급체로 여겨지는 위통 때문에 저녁 시간을 누워서 보내버렸다. 
나는 내 속의 장기들에게 너무 못할 짓을 하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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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 29일 일요일

각성상태...

지나치게 말똥 말똥. 잠을 잘 수 없다. 
이번엔 피곤해서가 아니라 친구가 만들어 주는 진하디 진한 에스프레소를 몇 컵 그냥 마셔버렸기 때문이다.
계속 각성 상태이다. 친구가 뜨거운 물을 섞어서 마시라고 곁에 주전자도 가져다 줬었는데, 나는 생각없이 원액에 가까운 커피를 벌컥 벌컥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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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 28일 토요일

고양이 화장실

왼쪽은 암고양이 화장실, 오른쪽은 숫넘 고양이 화장실.
(거짓말. 그런게 있을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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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 16일 월요일

비오는 날

구름 속을 걷는 듯, 습기가 가득했던 하루였다. 결국 공연 시간에 맞춰 폭우가 쏟아졌다. 얼굴에 뿌려지는 빗방울들이 시원했다. 마이크에 입술이 닿으면 지지직 따갑고 아픈 전기가 흘렀다.
비오는 날의 야외공연, 홈빡 젖어버리는 것이 연주를 방해했던 것은 아니었다. 소리와 음악에 존경심이 없는 사람들이 기계를 다루는 바람에 사운드가 나쁘기는 했지만, 그건 어쩔 수 없었던 일이었다.
집에 돌아와 냉방기계를 틀어놓고 악기들을 말렸다. 내일도 야외공연이고 비가 내릴 확률이 높다고 했다.

몇 년 전 쉬지 않고 비가 내리던 밤에 급조된 비닐 지붕 아래에서 공연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연주하는 내내 비닐과 처마, 사람들의 우산, 나뭇잎에 소란스럽게 떨어지던 빗물의 소리가 함께 섞였었다. 아무리 잘 녹음을 해도 재현될 수 없을 것 같았던 소리의 경험이었다. 한 곡이 끝날 때 마다 빗소리가 빈 곳을 가득 메워주던 그날 밤이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예정보다 몇 분 앞당겨 공연을 마치고 다시 비에 흠씬 두들겨 맞으며 악기를 챙겨 공연장을 빠져나와 차에 올라탔다. 그랬더니 거짓말 처럼 비가 멈췄다.
아직도 가방은 덜 짜서 널어둔 빨래처럼 축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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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 12일 목요일

운수 좋았던 날

어제 아침, 잠이 덜 깬 채로 아이팟과 이어폰을 찾고 있었다. 이어폰의 모양이 약간 어색...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끊어져 있었다. 무슨 일인지 생각해내려는 중에 곁에 따라왔던 막내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는데, 이 녀석이 갑자기 무서워하며 꼬리를 감고 도망을 쳤다. 으악, 이뇬....!
가장 애용하던 이어폰이었는데, 이 전과자 고양이는 벌써 이어폰만 두 개 째 끊어놓았다. 그것도 비싼 것으로만!

낮에는 갑자기 분주한 일이 생겨 허둥대던 중에 담배불을 붙이다가 그만 라이터를 잘 못 켜서 엄지 손톱이 또각, 부러졌다. 이거 뭔가 운수가 나쁜 날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지.

오후에는 강변북로 원효대교에서 마포대교 방향으로 진행 중에 갑자기 앞서 가던 큰 트럭에서 알 수 없는 물체가 내 앞에 떨어졌다. 청명한 소리를 내면서 자동차 앞유리에 뭔가가 부딪혔는데 처음엔 유리가 멀쩡한 줄 알았다. 5분이나 지났을까, 운전 중인 내 눈에 자동차 유리가 조금씩 갈라지고 있는 것이 느린 속도로 보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완전히 금이 가버렸고 점점 그 금은 길어지고 있었다. 그것을 보며 잠깐 신기해하다가, 오늘 정말 제대로 나빠지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끝내주는 하루였다. 아이팟을 엉뚱한 걸 들고 나오는 바람에 들었어야 할 음악을 못 들었고, 담배는 떨어졌는데 새 것을 살 틈도 없이 밤 열 시 까지 견뎌야했고, 따라 마시려던 커피를 엎질러 청바지를 적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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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 7일 토요일

반가왔던 비

무덥고 음습한 여름이다.
버럭 쏟아졌던 소나기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자동차 지붕 위에 물방울들이 기분좋게 부딪혔다.

몸은 눅눅하고 마음도 축축하다.
순조롭다라는 말과는 거리가 먼 인생이란걸 진작 알아뒀던게 다행이지. 일상 속에 강약이 있고 엇박자가 난무하니 재미있다. 재미없어도 뭐 어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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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 3일 화요일

카세트 테이프

에릭 사티를 나에게 소개해줬던 친구가 있었다. 나는 그의 이름도 얼굴도 잊고 말았다.
음악을 녹음한 카세트 테이프를 빌려주면서 ' 원판을 크롬 테이프에 담은 것이니까 흠집 내지 말고 돌려달라' 라고 말했다.

그런 말을 듣고서야 마음이 쓰여서, 원... 앞면을 들어보고 다음 날 돌려줘버렸다.
그리고 명동까지 가서 겨우 비닐판을 한 장 사가지고 돌아왔었다. 디아파송이었던가.

이제는 이름도 얼굴도 기억이 안나는 그 친구는 나에게 짐노페디가 무슨 뜻인지 아느냐며 우쭐대기도 했었던 것 같은데. 걔는 아직도 음악을 들을까. 그다지 궁금하지는 않지만. 문득 그 녀석에겐 에릭 사티 음악 '원판 ' 같은 것은 처음부터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이제서야 들었다.

어디에 음반 소개를 할 일이 있어서 브래드 멜다우의 음반을 여러번 듣고 있었다.
낮에 방정리를 하느라 시디를 이리 저리 뺐다 꽂았다 했더니 연상이 되었던 것인지, 갑자기 에릭 사티의 음악이 생각이 났는데 지금 나에겐 음반이 없다. 모리스 라벨도 없다. 다 어디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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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22일 목요일

편안해 보이는 고양이들.

겨우 누워 자려고 했더니... 이런 상황이 되어버렸다.
털옷 입은 녀석들이 덥고 습한 날씨에 고단했는지 쿡쿡 찔러도 버티고 일어나지 않는다.
소파 앞에 아무렇게나 앉아서, 편안하게 잘 자는 모습을 한참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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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21일 수요일

광주에 다녀왔다.

광주 문화방송의 난장 콘서트에 다녀왔다.

고속열차를 타고 아침에 출발했다. 새벽 두 시에 집에 돌아왔다.
지금은 새벽 다섯 시.
몸이 고되다.
커피 콩을 조금만 덜어 한 잔 분량을 만들고, 이것만 마시며 남은 일을 하고 곧 자버릴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어차피 다 해버릴 수도 없고 끝을 보지도 못할테니까 딱 커피 마실만큼의 시간만 더 하고 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정오까지 오늘의 일터로 가서, 저녁엔 다른 곳으로 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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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20일 화요일

무선 키보드

어제 에이샵에 갔다가 무선 키보드를 덜컥 집어와버렸다.
진열되어 있는 것이 없길래 별 생각없이 '재고가 있나요'라고 물어봤더니 직원분이 벌크제품이라며 찾아줬다. 많이 싼 값이어서 쉽게 결정하고 사왔다.

iOS4인 아이폰 3GS에 달라붙듯이 연결되더니 기능키의 모든 조절까지 가능했다. 밝기조정, 아이팟 플레이, 볼륨 등등...

저녁 합주연습때에 드러머 윤기형님에게 보여드렸더니, '얼마냐' '어디서 샀냐' '나도 사러 간다.'라고 하셨다... 뭘 보여드리기가 겁이 난다. 나이드신 어른이시지만 새로운 것에 전혀 거부감이 없으시고, 무엇이든 직접 해보려고 하는 분이다. 놀랍게도 그 대부분의 것들을 빨리 배우고 익히는 사람.

드러머 윤기형님과 기타리스트 광석형님
7년 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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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16일 금요일

임무 수행중인 고양이

지난 주의 어느 새벽, 내가 겨우 잠이 들었는데 자꾸만 꼬맹이 녀석이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급하게 뛰는 소리도 들렸다. 결국 그 소리에 소파에서 일어났다. 꼬맹이는 베란다 구석에서 큰 거미 한 마리와 다투고 있었다.

일부러 고양이에게 무슨 일을 시키거나 한 적은 없었지만, 여름철에 집안에 들어오는 벌레를 보면 언제나 붙잡는 짓을 하길래 칭찬을 해줬었다. 그랬더니 이제 벌레를 보면 그걸 잡는 일이 자신의 일인 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꼬맹이에게 공격을 당하는 작은 벌레들은 무기력하게 숨지거나 심지어 먹혀버리기도 하지만, 조금 큰 벌레들을 보면 일단 구석으로 몰아놓고는 소리내어 사람을 부르곤 한다. 반드시 다가가서 칭찬을 해주지 않으면 고양이는 책꽂이 위에 올라가 벽을 보고 돌아누워 토라져있기 때문에, 단 몇 마디라도 잘했다~라고 해주고 있다.
우리는 대부분 벌레를 구출해서 창 밖으로 보내주고는 있는데, 무당벌레, 거미, 딱정벌레, 그리고 뭔지 모를 요상한 산벌레들이 가끔 집안에 잘 못 들어와 괴물을 만나 고난을 겪다가 풀려나고는 했었다.

그런데 이번엔 창문 밖에 집을 지었던 거미가 배짱이 두둑해졌는지 집으로 들어와서 멋대로 가족들도 꾸리고 집을 지으려 했던 모양이다. 거미가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아직은 죽이거나 거미집을 없애거나 하고 있지는 않지만, 사람 대신 고양이 꼬맹이가 공사중인 거미집을 훼손해주고 거미를 쫓아내거나 한다.

다른 모든 사람과 고양이들이 비몽사몽 쿨쿨 잠들어 있는 새벽 시간에 저 혼자서 낑낑대며 맡은 일을 하고 있었다니 기특해서 잠결에 다가가 마구 주물럭거려줬다. 작년에 병을 얻어 큰일 날 뻔 했던 것을 아내가 지극정성으로 보살펴 고쳐놓았더니 이렇게 건강하게 살고 있어줘서 고맙기만 하다.
계속 벌레도 쫓고 즐겁게 놀며 지내라, 고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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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7일 수요일

공감 공연

스페이스 공감 공연이었다.
리허설을 마치고 무대를 둘러보았다.
오늘은 뭔가 잃어버리지 않도록 정신차리자고 생각했다.
리허설 중에 페달보드 가방 안에서 잃어버린줄 알았던 9볼트 아답타가 나왔다.
두어 주 전 분실했던 케이블도 나와줬으면 더 좋았을텐데... 라고 생각했다.

이 공연과 녹화는 담당하시는 분들의 큰 배려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
관객들은 환호해주고 즐겨줬다. 그러나 공연이 백점짜리여서 갈채를 보내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한다. 조금 더 준비했어야 좋았다. 군데 군데 실수와 임기응변으로 넘겼던 공연이었다. 그다지 좋은 연주가 아니었다.
그렇긴 하지만 마음이 편했고 사운드가 좋았다. 방송 녹화용이 아니었다면 더 즐거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기분좋게 연주했다.
사용한 도구는 물론 프레시젼과 펜더 재즈였다.

공연을 마치고 악기 정리를 하려고 할 때에 다시 손가락에 심한 통증이 생겼다. 연주 도중에는 그것을 잊고 있었던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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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28일 월요일

분실

방송사의 복도 끝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날씨는 좋았고, 리허설을 마치고 늦은 점심식사를 하러 가던 길이었다.
그리고 그날의 녹화를 잘 마치고 난 다음, 집에 돌아와서 짐을 풀어놓으면서야 비로소 수 년 동안 잘 써왔던 케이블을 그곳에 두고 와버린 것을 알았다.
그 바로 전 날, 다른 공연장에서 연주를 마치고 늘 지니고 다니던 케이블을 잃어버리고 와서 평소 아끼던 다른 것을 가지고 나갔던 참이었다. 이틀 사이에 자주 사용하던 케이블 두 개를 홀라당 분실하고 말았다.

시간을 다투는 상황이 되거나, 조금만 다급해지면 덜렁거리고 뭔가를 잃어버린다. 어릴 때에도 그랬다. 주변의 스탭들이 빨리 빨리를 자꾸 말하고 있으면 그들에게 피해를 줄까봐 서두르게 된다. 이런 일들은 여러번 있었다. 앰프 위에 담배와 지갑을 두고 와버린 적도 있었고 패치 케이블 잃어버리긴 일쑤였고 심지어 자동차 열쇠를 두고 온 적도 있었다. 대부분은 다시 되찾을 수 있었지만 이번엔 포기했다.

이제부터 주위에서 아무리 서둘러달라고 해도 느릿 느릿 내 할 일 다하고 움직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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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20일 일요일

중앙박물관 공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공연을 했다.
넓고 탁 트인 공간이었다. 소리도 좋았다.

그곳에는 아직도 되돌려받아야 할 땅이 많이 남아있다.
그것이 너무 먼 이야기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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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18일 금요일

태안 공연

무대 위에 스모그를 잔뜩 뿜어놓았고 조명은 어두웠다.
습한 바닷바람이 살에 닿았다.
풀벌레 소리가 듣기 좋았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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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13일 일요일

양귀비

집 앞 강가에 양귀비 꽃이 피었다며 아내가 사진을 찍어 왔다. 꽃을 보고는 잘 모르고... 잎을 보고서야 알아보는 나라는 넘은 정말이지... 답이 없다.

오래 전 화천의 어느 군 부대에서 한 여름에 훈련을 받고 있었다. 그날은 덥기도 무척 더웠는데, 기억나지는 않지만 무슨 일이었는지 강도 높은 훈련을 받고 있었다. 훈련병 시절의 거의 마지막 즈음이었던가.
진흙탕을 구르고 땀에 적셔진 옷이 다시 마를 무렵 갑자기 소나기가 왔었다. 어찌나 시원했던지. 곁에 있던 나이 든 하사관 한 사람이, "이게 양귀비다. 이쁘냐?" 라고 물었었다. 꽃이 예쁜지를 묻는 것인지 내눈에 그 꽃이 예쁘게 보이는지를 묻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꽃이니까 예쁘겠지 뭐... 그렇게 중얼거리며 허락도 없이 젖은 담배를 피웠던 것 같다.

소총에 군복, 땀냄새와 맛대가리 없는 양배추 김치, 사내들의 호르몬 과잉, 욕설과 음담들이 뒤섞인 여름날이었다. 소나기를 피하며 담배를 물고 물끄러미 바라보던 꽃 한 송이가 예뻐보이는 건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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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공연 리허설을 마치고 담배 한 개비 입에 문 채 건물 밖에 나왔더니 태극기가 비를 맞으며 펄럭이고 있었다.
원래의 일정에서 조정되어 우연히 오늘이 되어버린 공연이었다. 새벽에 빗소리를 듣고 자다가 일어나서 상쾌해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기분좋게 집을 나서는데 엘리베이터에서 이웃을 만났다. 그분들이 인사차 나에게 건네는 말씀이,
"어디 응원하러 안가시고 일하러 가시나요?"

축구 경기를 응원하는 일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 이상할 것도 없는 지금의 상황이지만 뭔가 소외감마저 생겼다.

나는 내 나라가 존재만으로 사랑할만한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올림픽과 월드컵도 좋지만 그냥 내 나라의 풀 한 포기, 사람들과 공기의 냄새가 너무 좋아서 국가란 것이 무엇인지도 그만 잊을만큼이 되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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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8일 화요일

고양이의 인사

밖에서 공연 리허설을 하는 도중에 아내가 집에서 사진을 보내줬다. 자랑하려고 보내온 사진이었다. 앉아 있던 아내에게 순이가 뛰어올라와 한참 동안 그르릉거리며 좋아해주고 있었다고 했다.

고양이와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겪는 일일텐데, 하루에도 몇 번씩 서로 인사를 주고 받는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면 처음 눈이 마주친 고양이 순서로 다가와 한 마리씩 몸을 부비고 인사를 해준다. 눈을 지긋이 감고 다가와 코를 비비기도 한다. 눈을 마주쳐 얼굴을 올려다보며 갸르릉 소리를 낸다. 이럴 때 세심하게 대답해주지 않으면 다음부터는 그만 무시를 당하기도 한다. 대충 넘어가면 한동안 개 혹은 돌 취급을 당한다. 마주쳐도 비켜 가버릴때도 있다.

소파에서 잠들었다가 고양이들 중 누군가가 깨워서 일어날 때도 있다. 복잡하고 다양한 이유로 깨운다. 고의성 없이 깨울 때도 있다. 그곳에 누워보고 싶으니까 좀 비켜달라, 라고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런 경우엔 그날 아침에 내가 인사를 성의없이 했던 것은 아닌지 기억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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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

연습실에서 합주를 하던 장면이다.
나는 나 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과 주로 작업하고 연습해왔다. 언제나 귀한 경험이었고 행복했다고 과장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나이 많은 분들과의 인연이 많았다.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여겨지지만 그렇다고 당연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자주 배웠고 고마운 가르침을 얻어왔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어떤 음악을 함께 연주하고 있으면, 그 공간 안에는 사람 숫자 만큼의 시간들이 돌아다닌다고 생각했다. 그윽해질 때까지 담궈져있던 각자의 과거들이 소리로 변해서 나오는 것 같다.

윤기형님은 이제 아이폰 '주물럭거리기'에 완전히 익숙해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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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6일 일요일

그게 뭐냔 말이다.

이해해주기 어려운 일이 있다.
많은 연주자들을 불러 모아 큰 규모의 공연을 만드는데에 얼마나 많은 수고와 돈이 드는지 짐작이 간다. 그 안에는 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땀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해하기가 어렵다.

두 개의 서로 다른 무대를 굳이 가깝게 붙여놓고 각각의 공연을 동시에 진행하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옆 무대의 소리가 다 들리고 있어서 이쪽에서 한 곡이 끝나면 잠시 이웃무대의 음악을 감상할 수 있었다. 멀티태스킹 콘서트인가.

공연 아홉 시간 전에 리허설을 했다. 좋은 공연을 만들기 위해 긴 시간을 배려하며 노력한 결과로 언제나 본공연 때에는 모니터가 엉망인 까닭은 무엇인지. 뮤지션들이 열악한 상황에 익숙해지도록 돕고 싶어서인가.

방송에 쓰일 화면이 필요한 것은 잘 알겠다. 카메라맨은 언제나 드럼세트 곁에 다가가 카메라를 빙빙 돌리다가 연주를 방해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스네어드럼을 접사촬영해야 한다는 방송사의 사내규정 같은 것이 있는 것일까.
드럼세트가 놓여진 단을 밟고 서는 바람에 무대가 기울어졌고 흔들렸다. 연주하는 사람이 어떤 스트레스를 받는지 고려해주지 않는 배짱은 무엇인지. 그 정도의 적극성이 있다면 지금 소리를 내고 있는 연주자가 누구인지 리허설 때에 왜 미리 알아두지 않는다는 말인가.

이런 일들은 작년에도 있었고 그 전에도 그래왔다.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다. 이제는 정말 그냥 원래 그런 것인가보다, 하고 순응하면 안되는 것 아닐까. 우리들의 선배들이 그런 것에 신경을 쓸 수 없는 시절을 보내느라 좋은 시스템을 물려주지 못했다면 지금의 우리들이라도 달라져야 옳지 않은가.
그런 상황에서 안간힘으로 연주되는 음악이 입장료를 지불한 관객에게 어떻게 전달되고 있을 것인지는 뻔한 것 아닌가. 그 값 비싼 장비들을 들여놓고서 고작 그것이 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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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5일 토요일

Time To Rock 공연

작년에 이어 다시 참여했던 공연이었다. 낮 한 시에 리허설을 했고 출연 시간은 밤 열시 반이었다.

가능하면 낮에 다시 동네로 돌아와 두 시간 짜리 일을 하고 다시 공연장으로 가려고 했다. 금요일 밤의 재즈 연주도 구경하러 가지 못했다. 도로는 끔찍하게 막히고 있었다. 어디로 이동을 할 용기를 낼 수 없었다.

그리고 많이 피곤했던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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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3일 목요일

밤 새워 지켜봤다.

많이 피곤했다.
개표방송을 시작한다는 아나운서의 말을 들으며 방에 들어가 잠을 자고 나왔다. 밤 열시에 다시 일어나서 그 후로 계속 선거결과를 보고 있었다.
트위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TV 앞에 앉아서 악기를 안은채 틱 증후군처럼 줄을 두드리고 있었다. 담배도 피웠다.

이 달에는 공연들이 많다. 레슨도 많다. 규모가 큰 음악공연들과 입시시장의 제물이 되고 있는 학생들을 번갈아 접하다 보면 세상의 일에 더 민감해진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주제여서 지켜보는 일이라도 게을리하지 않고 싶다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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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1일 화요일

헤이리 공연

비가 온다는 예보가 살짝 비켜가준 덕분에 공연을 무사히 마쳤다.
일기예보는 늘 살짝 비켜가주고 있다.

처음 가본 헤이리에서의 야외공연이었다.
가족모임처럼 놀러가면 좋겠다는 발상으로 오랜만에 아내도 함께 갔었다.
상훈씨네 가족이과 미국에서 우연히 날짜 맞춰 귀국하신 둘째형님도 뵈었다.
공연시간 한 시간 전에 전화연락이 되었던 동생네 식구들이 놀라운 속도로 도착, 연주 도중에 조카들과 가족들의 얼굴도 보게 되었다.

'다음 번엔 놀러오자~'라는 리더분의 말씀에 모두들 좋다고 대답은 했지만, 모두 일에 쫒기는 사람들... 그다지 가능성 없는줄은 알고 있다.

소풍이 될 줄 알았던 하루였는데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공연날이었다.
모처럼 함께 왔던 아내는 카페의 터줏대감 고양이와 삽살개랑 시간을 다 보냈던 일이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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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리의 모모

우리 고양이가 어떤 품종이고 얼마짜리이고... 이런 말을 하는 분들은 스스로의 가치도 품종과 가격으로 매겨두고 있을지 모른다. 고양이의 가격이 하락하거나 하면 아마 사료값부터 아낄 분들이다.

헤이리에서 만난 고양이 모모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지어지기 전 부터 그곳에서 살고 있었는데, 익숙하고 평화로운 그곳을 떠나는 것 보다는 함께 사는 것이 행복할 것이라고 여긴 새 주인분들이 그대로 맡아서 지금까지 같이 살고 있다고 했다.
"거두어 주신 거군요~"라고 인사말을 드렸더니, 그 아주머니 하시는 말씀,

"얘가 우리를 거둔 거지요."

함께 사는 고양이로부터 힘이 들 때 마다 얼마나 위로를 받았는지 몰라요, 라고 했다.
담장도 없는 곳에서 풀밭을 마음대로 뛰어 놀도록 내버려둘 수 있는 이유를 알았다. 모모는 그분들을 데리고 평생 거기에서 살겠지. 종자를 따지고 가격이 얼마이고를 말하는 분들은 그것이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마누라님은 삽살개와 장난하다가 고양이와 부비며 놀다가를 반복했다. 고양이 모모는 아내의 품에 안겨 골골거리고 어깨를 타고 뛰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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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31일 월요일

카페에서 연주

나는 처음에 일어서면 천장에 머리가 닿는 작은 카페에서 연주를 시작했었다.
그 때는 그런 곳이 지금보다 많았다. 연주하다 보면 내 무릎에 손님의 발 끝이 닿거나 하는 정도의 공간이었다. 지금도 나는 매일 그런 곳에서 연주하면서 지내고 싶다.
오래된 친구와의 연주라면 더없이 좋다.

다만 악보를 보며 서로 소리내어 책을 읽듯이 하고 있는 것이 답답했다. 다 외버리면 제일 좋겠지만 잘 알지 못하는 분과 함께 하다보면 익숙하지 않은 곡들이 더러 있어서 어쩔 수 없다... 가능한 지난 번에 한 번 해봤던 것은 외우고 있는 것으로 하고 있는데, 사실은 나의 기억력을 그다지 신뢰하지 못하여 또 책을 펴놓게 되고 만다. 쳐다보지 않더라도 앞에 두고 있으면 안심이 된다는 느낌 때문이다.
자주 하고 싶지만 시간이 없어서 여의치 않다. 이런 곳에서 자주 연주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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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30일 일요일

'라이브 세션'

몇 주 전에 녹화했던 어느 프로그램이 방송되기 시작했다.
인터넷 방송으로 모바일 서비스를 하는 것이 주목적이라고 했는데, SK의 서비스이니 아이폰에서는 보지 못하는 것이었다. 컴퓨터로 볼 수 있다고 했었어서 '티스토어' 사이트에 가보니 회원가입을 요구했다.
가입해버릴까 생각해봤지만 PC매니저가 있어야 다운로드가 가능하다고 써있었다. 매킨토시에서는 가입도 할 수 없었다.
옛 '하나TV"가 SK의 B TV로 변해서 셋탑으로 볼 수 있을 줄 알았더니 거기엔 아예 프로그램 업데이트가 되지 않고 있었다.
이 날의 연주가 궁금한 이유는 윤기형님이 합류하자 마자 첫 번째 대외적인 연주의 기록이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유튜브에서라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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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29일 토요일

5월도 지나갔다.

블로그에 글을 거의 써놓지 못했던 이유는 트위터에 매일 끄적이는 낙서들과 잡담 때문이기도 했고, 아이폰으로 대부분의 소비활동을 하다보니 컴퓨터를 잘 열지 않게 되어졌어서였기도 했다.

그리고 그동안 읽은 것이 너무 없었다.

매일 마주치게 되는 새로운 진상들, 찌질이 여러분들에게 몸에 배인 친절을 언뜻 비췄다가 혼자 돌아서서 민망해하기도 했다.

나도 누군가들에게는 진상짓, 찌질이의 모습을 보이며 나이 먹어왔을테지. 그들을 거울 삼아 매무새를 다듬으며 살면 되겠지, 이런 생각을 하다가 아뿔싸 이런 식으로 나이들며 무감각해져버리는 건가하여 흠칫 놀라기도 하고.

읽다가 멈춰둔 책은 딱 읽은 곳 까지만 책장이 벌어져서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오면 그 부분만 팔랑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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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28일 금요일

아이폰 뻘짓.

작년 겨울에 JK형님이 선물로 주셨던 아이폰 스킨을 붙였다.
탈옥한 아이폰은 무엇을 새로 해보려고만 하면 먹통이 되고는 했다.

새로 도착한 콩을 갈아 커피를 마시며 웨스 몽고메리와 지미 스미스의 음반을 들었다.
담배를 연달아 피우고 다시 방에 돌아와 처음 부터 다시 복원, 복구를 반복....
이번엔 전화기가 활성화 되지 않는다는 불안한 메세지가 보였다.

몇 달 전 내 정보가 KT에서 다 사라져버리고 말았을 때 내가 했던 뻘짓을 기록해둔 것이 기억나서 그것을 다시 읽어보고,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았다) 다시 커피 한 컵 더 마시고 AccuRadio에서 Kurt Rosenwinkel의 음악을 한 곡 들었다.
아침 여덟시에 모든 설정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아이폰을 주물럭거리며 안경테를 고치거나 TV 리모콘을 만지듯 뚝딱 뚝딱 잘도 고치고 바꾸고 하는 재근형님이 생각났다. 

생각난 김에 선물로 주셨던 Gela Skins 붙여놓고 배경화면도 바꿔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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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14일 금요일

순이는 변신 중

이런 일이 흔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지난 번 수술 후에 고양이 순이의 눈가에 밝은 색 털이 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이 점점 번지면서 얼굴 전체가 밝은색으로 변하고 있는 것. 짧은 털이 아닌 것으로 보아 새로 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얼굴 부분만 털의 색상이 변하고 있는 중인 것이었다.
호르몬의 작용이라거나... 그런 것이 이유인걸까. 아직은 알 수가 없다.
다시 토실 토실 살이 오르고 표정은 편안한데 전보다 자주 어리광을 부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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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5일 수요일

아이폰 완전탈옥

아이폰의 오에스를 3.1.3으로 업데이트하고 다시 탈옥을 해봤다.
이번엔 완전탈옥이라고들 말하는, 아이폰의 전원이 꺼져도 별도의 수작업이 필요없이 다시 켜서 사용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일을 해보는 이유는 아마도 아직은 정식 OS가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작년에 전화기의 모든 정보가 KT의 서버에서 사라져버렸었다. 내 잘못이었다. 그때에 큰 곤란을 겪었던 일로 수 십번 재 설치를 거듭하여 겨우 복구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항상 백업을 해왔다. Cydia를 통한 것들은 Apt Backup을 사용했는데 이번에 그 덕을 봤다. 백업해둔 설정까지 말끔히 복원할 수 있었다. 시스템의 설정들을 잊을까봐 그림 파일로 남겨뒀던 것도 시간을 허비하지 않게 해줬다.
탈옥이 필요 없게될 오에스는 언제쯤 나와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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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2일 일요일

편안하고픈 고양이

우리집 연장자 고양이는 다른 고양이들이 귀찮게 하는 것이 싫다.
그냥 조용하고 따뜻한 곳이면 좋으니까 성가시게 하지 말아주길 바란다. 그런데 젊고 어린 냥이들은 도무지 공경할줄 모르고 놀자고 덤비고 장난을 거느라 괴롭힌다.
어제도 셋째 꼬맹이 넘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등이며 옆구리를 맞고 물렸다고 했다.

큰 언니 고양이를 괴롭힌 꼬맹이는 그만 큰 언니 발톱에 맞아 코에 상처를 입었다.
집에 들어오니 사람 아내가 또 기운이 쪽 빠진채로 앉아있었다.
고양이와 아내가 스트레스 없이 편안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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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1일 토요일

순이가 나았다.

아픈 곳이 다 나은 후 순이는 하루 종일 칭얼거리며 종알 종알 뭐라고 말을 하고 있었다. 알고보니 닭고기 캔을 원했던 것이었나보다.
수술 후 체중이 줄었는데도 사료를 조금만 먹고 있어서 걱정했었다. 그러다 닭고기 사료를 줬더니 한 그릇을 뚝딱했다고 들었다. 깨끗하게 폭식을 한 뒤 세수하고 쿨쿨 자고. 그 후로 칭얼 칭얼이 멎었다.

표정은 밝고 눈망울은 초롱 초롱. 이제야 조금 안심이 되었다. 아내가 찍어놓은 사진을 보니 고양이 눈동자에 아이폰이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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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레슨을 준비했다. 아내가 갈아서 준 삶은 콩을 한 컵 마시고 밴드 합주를 하러 나갔다. 오후 네 시 다 되어 겨우 한 끼 식사를 했다. 그리고 다시 긴 시간 운전을 했다. 저녁의 일은 밤 열 시에 끝이 났다. 배가 무척 고팠다.
현관문을 열고 막 집으로 들어왔다. 집안 공기가 상쾌하고 좋은 냄새도 났다. 설거지대 앞에서 그릇을 씻고 있는 아내의 얼굴을 보고는, 할말을 잊었다. 눈 아래에 짙게 그늘이 생겼고 하루 사이에 야위어진 모습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수술받은 고양이 순이는 하루 종일 종알거리며 쫓아다니고 수다를 떠는데 잠시도 조용하지 않고, 뭘 요구하는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고 했다.
큰 언니 고양이는 아내가 조금만 자리를 비워도 악을 쓰며 울어댔다. 그렇다고 품에 안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막내 고양이는 잠깐 한 눈을 판 사이에 그만 깨끗하게 청소를 한 뒤 푸른색 세정액을 풀어놓은 변기 속에 빠져서 꽥꽥거리며 허우적대더라는 것. 뛰어가 고양이를 꺼내어주고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셋째 고양이가 눈을 희번득 거리며 다른 사고를 쳤단다.

막내 고양이를 구출하여 난데없는 목욕을 시작하려는데, 야단맞을까봐 겁이 났었는지 물 세례에 놀랐었는지 꼬마 냥이는 발톱을 휘둘러서 그만 아내의 입술에 피가 흐르는 상처까지 내고 말았다.

아침 부터 시작한 청소는 그 덕분에 밤이 되어서도 끝나지 않았고. 설거지통을 보니 한숨만 나오고.
아내의 얼굴을 보니 이건 뭐 마치 잘못을 한 것 처럼 미안했다.
내가 집에 왔을때에는 고양이들이 조용히 각자 자리잡고 잠을 자고 있었다. 하루종일 난리를 떨며 놀았으니 그들은 아마도 잠을 푹 잘것이었다.
지쳐버린 아내는 엎드린채 잠들어버렸다. 나는 아내가 그 와중에 만들어 놓은 음식을 먹고 조용히 집안을 걸어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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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을 쬐며 커피 한 잔

합주를 마치고 늦은 점심을 먹었다.
오후, 밖은 바람이 불고 꽃들이 얻어맞는듯 흔들리고 있었다. 햇빛이 눈부시게 비추고 있는 탁자 위에 커피 한 잔이 올려졌다.
흰 커피 잔과 스푼이 부록으로 따라온, 햇빛 가득한 오후의 몇 분이 하도 눈이 부셔서 나는 실눈을 뜨고 코를 벌름거리며 한 모금씩 천천히 마셨다.
조금 전 우연히 흘러나왔을 One More Cup of Coffee는 왜 몇 십년을 들어도 나머지 가사는 외우지 못했느냐는 생각도 해보고,
힘든 노동을 해본 적 없는 내 못생긴 손가락은 옆자리 음악선배의 굵고 세월로 주름진 손에 비해 꽤나 형편없다는 생각도 해봤다.

왼손에 만지작거리던 아이폰, 다음 일정을 재촉하는 알람 소리가 울렸다.
아직 따뜻한 커피를 털어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나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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