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9월 30일 토요일

고요한 바닷가.


한참만에 다시 찾은 강릉.
옥계에 들렀을때 가을 바닷가의 고요함에 충격을 받았다. 언제나 소리에 시달리며 살다가, 더할 나위 없이 조용한 바닷가 해송들 사이에 서서 잠깐 아득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집에 항상 책상앞에 앉을때 편안하게 몸을 쉬던 바퀴달린 철제 의자가 있었다. 어제 아침에 잠시 앉았다가 일어서려는데 거짓말처럼 목이 부러지고 말았다. 무거운 쇠붙이 의자가 칼로 베어버린듯 부러질 수 있는건가.
만일 생각없이 의자에 앉으려했을때 부러졌다면, 그리고 그 아래에 (자주 그랬었으니까) 고양이라도 누워있었다면 큰일이 날뻔했다.

의자가 툭 부러져버렸지만 나는 많이 놀라지 않았다. 황당한 우연이 반복되다보면 점점 살면서 놀랄 일들이 적어지는 것 같다. 그런식으로, 아무 인과관계도 없이, 내가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어떤 우연으로 해송들이 촘촘히 서있는 이런 바닷가에 숨어들어와 살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옥계는 지난 봄에 돌아가신 할머니의 고향이었어서 갔던 것이었다. 옥계의 고즈넉한 바닷가 국도를 따라서 안목을 지나 주문진항에 들렀다. 길을 따라 계속 고요한 바다, 조용한 파도가 이어졌다. 여름내내 수영복 차림의 사람들이 온갖 배설의 장소로 사용했을 모래밭 위에는 갈매기들이 이제야 좀 살만하다라는 투로 떼지어 앉아있었다. 같은 자세로 같은 방향을 향해 조용히 앉아있는 수백마리의 갈매기들을 보고 있자니 어지러워졌다.

우리나라 해변에서는 아직도 오징어를 이까라고 부른다고 들었다. 강릉이 고향인 내 아버지도 오징어 보다는 이까라는 말을 먼저 배우셨겠지. 같은 대상을 부르는 같은 말이지만 일본인들의 일본어 이까와 동해 앞바다 주민들의 일본어 이까는 다른 느낌이다. 흐릿한 날씨의 그날 바닷가에는 주렁주렁 내장이 뽑혀진 오징어들이 같은 모양으로 펼쳐진채 말려지고 있었다. 주문진 식당에 들어가 강원도 소주에 몹시 신선한 회를 먹었다. (정말 맛있었다.)


세 시간도 못잔 상태에서 차를 타고 멀리 돌아다녔더니, 다시 집에 돌아와 밤중의 일정을 시작하기가 힘들었다. 잠들 수 있었는데, 한 시간 간격으로 전화를 받다가 그만 다시 잠들지 못했다. 결국 새벽에 전화를 받고 집을 나와서 아침에 돌아오게 되었다. 피로하고 몸도 아픈 것 같이 여겨졌다.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닌데... 집에 돌아오는 길에 음악도 듣지 않고 바람소리가 싫어서 창문도 단단히 닫은채 운전을 했다. 고요한, 끝없이 고요한 그날 낮의 옥계의 바닷가가 계속 생각이 났다.

2006년 9월 17일 일요일

말 좀... 좀.

예전에 나이 드신 분들은 기타를 '키타'라고 말했었다.
그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것을 발음할때에, 기타아-(강세가 뒤에 있다)를 기타라고 말하는 것보다 키타라고 말하는 것이 더 분명하고 쉽게 발음되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그것은 외국의 말을 우리식으로 말하기 편하도록 발음했을뿐이어서 키타라고 부르는 것이 기타를 지칭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의 어린 친구들은 기타라는 말의 철자를 알고 있을텐데도 엉뚱한 말을 사용한다.
최근 돌아다니다보면 여기저기서 쉽게 듣고 있는 말중의 하나인데, 전기기타를 '일렉'이라고 말해버리는 것이다. 나는 이런 일이 반갑지 않다.

이런 식의 줄임말이나 조어들은 아무래도 일본어투의 습관이 우리말로 다시 옮겨온 것 같다. 아무렇게나 단어를 자르고 끊어서 그냥 새로 만들어버리는 일. 그렇게 만든 짧은 단어는전문적인 말이나 은어가 되어 사람들 사이에서 쓰이게 된다. 

일본인들이 일렉트릭 피아노, 키보드를 엘렉톤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런 말을 흉내내서는 안되는 것 아닌가. 일본인들은 일렉트릭 베이스를 '이레베''에레베'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본어는 원래 신속한 조어가 가능한 말이이므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전기기타'의 '전-'쯤에 해당하는 '일렉'이라는 말만으로 '일렉트릭 기타'를 지칭한다는 것이 조악하다고 여겨졌다.. 

그리고 점점 인터넷에, 음악학원의 간판에, 아무데나 '일렉강사' '일렉레슨' 과 같은 글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게 되었다. 나는 어째서 통기타 강사를 뜻하는 '통선생', '어쿠레슨'이라는 말들이 아직 안만들어졌는지 잘 모르겠다.

2006년 9월 16일 토요일

iTunes

여러 사람들의 블로그에서 새 iTunes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더 이상 아이튠스와 아이팟은 매킨토시 사용자들만의 궁금거리가 아닌 것이 되었다. 이런 현상이 내 눈에는 아직 낯설게 보였다.

지금은 80기가의 하드디스크에 음악을 넣어두고 있다. 그 파일들은 내 아이팟에도 담겨 있다. 음악을 잘 분류하기 위해서 파일 마다 장르를 분류해 뒀다. 머리를 굴려 선택한 방법은, 재즈, Rock, 그 외의 어중간한 것들은 모두 뭉뚱그려 Pop, 우리말 가사인 곡들은 다 모아서 그냥 가요, 그리고 Classical... 이렇게 설정했다. 그렇게 해버린 바람에 메탈리카와 카디건즈가 Rock 안에 모여 지내고 있고 Scott Hederson 과 Jim Hall 이 나란히 Jazz 안에서 살고 있게 되었다.

어디에도 구겨 넣을 수 없는 음악들도 있다. Béla Fleck & the Flecktones 의 음악을 어느 장르에 넣어둬야 좋을지 아직도 결정을 못했다.

2006년 9월 13일 수요일

명상 중인 고양이


동이 틀 무렵 물을 마시기 위해 냉장고를 향해 가다가 멈칫했다. 내 고양이 순이가 창가에 앉아 어딘가를 응시한채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가까이 가면 방해가 될 것 같아서 그냥 되돌아 왔다.
한참 후에 다시 일어나 보았더니 여전히 저렇게 하고 있었다.

내가 늘 밤을 새우는 바람에 고양이도 해가 뜨면 자는 것으로 한 것인지, 아니면 원래 고양이와 나의 시간은 남들과 반대였던 것인지.

이제 내가 잠들기 위해 누우면 곁에 와서 먼저 골골거리며 잠을 잘 것이다.
나와 내 고양이는 서로에게 잘 적응하며 살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2006년 9월 12일 화요일

녹 슬었다.


작년 10월의 베이스 브릿지 모습이었다. 이 때에도 녹이 슬어있군, 하며 사진을 찍어 뒀었다.

내 손과 발은 일년 내내 뜨겁다. 언제나 손바닥에 열꽃이 필 정도로 뜨거워져 있어서 여름철에 운전하는 것이 위험했던 적도 있었다. 손이 뜨거우니 땀도 많이 나는 바람에 운전대에서 손이 미끄러지거나 했기 때문이었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베이스 줄이 내 손 때문에 금세 못쓰게 되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다.
낮에 오랜만에 브릿지를 조정할 필요가 생겨서 브릿지의 나사를 돌려보았다. 그런데 그만 나사의 대가리 일부가 투두둑, 가루가 되어 떨어져 버렸다.


오늘 낮의 베이스 브릿지 모습이었다. 이제 그냥 빨갛다.

나는 자주 브릿지에 손뼘을 대고 연주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이 빈티지 스타일의 브릿지가 좋아서 녹슬지 않는다는 다른 브릿지는 쓰고 싶지 않다. 이 브릿지의 가장 큰 단점은 너무 빨리, 많이 녹슬어버린다는 것이다.

라이터용 휘발유로 잘 닦아서 말려두고 있다. 머지 않아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면 전체를 교환하는 수 밖에 없을 것이다.

2006년 9월 11일 월요일

구 일일.

수 년 전 그날, 뉴스를 지켜 보고 있었다. 희생자들에게 애도를 표했다...라고 쓰고 싶지만, 누구에게 애도를 표현해야 할 지 몰라서 혼자 애도했다.
그 사건이 나기 아홉 달 전에, 미국인들의 이상한 대통령선거에서 고어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법원의 판결에 반대하지만 받아들이겠다고 했던가, 그런 말이었던 것 같다.

고어가 대통령이 되었다면 그 9월 11일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그 후 기다렸다는 듯 이어졌던 이라크 침공도 없지 않았을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 즈음 나는 자코 파스토리우스의 전기를 읽고 있었다. 그 해의 9월에 영주 형님의 스튜디오에 인터넷 방송을 하러 다니고 있었는데 마이크 앞에 앉아서 음악을 틀어놓고 프린트 된 자코의 이야기를 보다가 1987년 9월 11일에 그가 나이트 클럽 앞에서 두개골이 부서진 채로 발견되어 병원에 옮겨졌다는 부분을 읽고 있었다. 무서운 뉴스가 나오고 있던 9월 11일에 비범했던 연주자의 어이없는 죽음과 관련된 오래 전의 9월 11일 이야기를 읽고 있었다는 것이 신기하였어서 그 일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다.

또 9월 11일이라고 하면, 3년 전 그날 하루 아침에 내 세간살이가 모두 다른 곳으로 옮겨진 후 텅 비어있는 집안에 남겨졌던 일이 (아무리 기억하지 않으려 해도) 기억이 난다. 정확히는 9월 1일의 일이었고, 내가 완전히 망가져있다가 비로소 밥을 챙겨 먹으며 어떻게든 살아봐야겠다고 분주하게 돌아다니기 시작했던 날이 열흘 뒤인 11일의 일이었다. 이 홈페이지의 기록을 다시 보니 12일에 '모든 일을 다시 시작...' 어쩌고 라며 써두었던 기록이 있었다.

서로 전혀 관계없는 9.11 이야기, 끝.


2006년 9월 6일 수요일

내 고양이의 생일.


샴고양이 순이가 두 살이 되었다.
세상에 태어난 직후의 모습은 본 적이 없지만 나와 함께 살기 직전의 모습을 담아뒀던 것이 있어서 꺼내어 보았다.


그 겨울밤을 기억한다.
우연하고 즉흥적인 동기로 어린 고양이를 외투 주머니에 넣어 집에 돌아왔었다. 그 때엔 몰랐었는데, 내가 고양이 순이를 데려 온 것이 아니라 내 고양이 순이가 나를 선택했던 것이었다. 고양이와 함께 살 아무런 마음의 준비가 없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조그만 고양이가 나를 졸졸 따라와서 물끄러미 올려다보더니 내가 내민 손 위에 뛰어 올랐던 것이었다. 내 몸과 마음이 피폐했던 시절을 반대로 틀어 놓는 시작이 되었던 눈 내리는 겨울밤이었다. 내 외투의 주머니에서 고개만 빠금 내민채 내리는 눈을 신기하게 바라 보던 고양이 순이의 모습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순이는 많이 컸다. 점점 더 칭얼대고 다양한 요구를 하고 있다.
심술도 부리고 가끔씩 짜증을 내기도 한다. 그런데도 어딘가 (나와는 다른) 의젓함을 잃지 않는다. 고양이를 먼저 길러 보았던 야옹이 선배들의 증언들이 모두 옳았다. 고양이는 길러지는 동물이 아니라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동거생물이었다.


순이에게 두 살 생일을 축하해주면서 간식 깡통을 따주었다.
내가 멍청하고 앞가림을 하지 못하는 것이 불안하므로, 부디 내 고양이가 스스로 알아서 건강하고 즐겁게 지내주면 좋겠다.


나는 고양이 순이에게 고마와 하며 한쪽 팔에 순이를 안은채 방 안을 돌아다녔다.
순이, 생일 축하.


2006년 9월 5일 화요일

재즈 공연

Linley Marthe

빅터 우튼의 공연이 식상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올해 자라섬 페스티벌은 가보지 않아도 되겠다고 마음 먹었었다. 그런데 태선이의 배려로 티켓이 생기고... 랜디 브레커 밴드의 드럼 세션으로 스티브 스미스가 오신다는 소식에 마음이 흔들리던 중이었다.
드러머가 스티브 스미스라면 그 밴드의 베이스 세션은 James Genus 일 가능성이 컸다. James Genus 는 매력있는 베이스 연주를 하는 사람이다. 그의 솔로도 훌륭하지만 워킹베이스도 좋다.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기대가 더 크다.

그런데 정말 볼만한 것이 더 있었다. 조 자비눌 어르신의 Zawinul Syndicate의 공연이 마지막 날 밤에 준비되어 있다고 했다.
베이스를 연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빅터 우튼의 쇼를 놓지고 싶어하지 않겠지만, 내 생각에는 그 보다도 이번 페스티벌에서 현재 Zawinul Syndicate 의 베이시스트인 Linley Marthe 의 연주를 볼 수 있으면 행운이다. 아직 이번 공연에 그가 참여하는지는 모르고 있지만.

조 자비눌이 그동안 고용했던 베이시스트들은 모두 최고의 연주자들이었다. 말 할 필요 없이 Jaco Pastorius 가 있었고, Victor Bailey, Gerald Veasley, Miroslav Vitous, Jimmy Haslip, 그리고 Richard Bona의 동향 출신 선배인 Etienne MBappe 가 있었다. Etienne MBappe 의 후임으로 리차드 보나가 참여했던 것이었고, 그 후에 합류하게 되어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는 사람이 Linley Marthe이다.

Linley Marthe의 연주는 비교적 전통적이고, 약간은 노골적으로 보일만큼 자코의 것을 가져와 쓰고 있다. 피크가드를 떼어내고 Badass 브릿지를 부착한 '70년대 펜더 재즈베이스를 사용하고 있다. 그의 동영상을 구경한 적이 있는데 무서운 테크닉이었다.
지금 Zawinul Syndicate의 편성은 키보드 외에 기타, 보컬, 드럼, 두 명의 타악기 연주자까지 있어서 그의 베이스만을 듣고 즐기기엔 버거울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번에는 꼭 찾아가서  직접 공연을 보고 싶어졌다.

매년 가을 초엽에 며칠 동안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재즈 페스티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2006년 9월 4일 월요일

잡지를 구경하다가...

2006년 9월호 베이스플레이어지에 리차드 보나의 기사와 인터뷰가 실렸다. 사진에서 보이는 마흔 살의 보나는 훨씬 더 원숙해지고 자유롭게 보인다.
인터뷰 내용에 흥미로운 것들이 가득해서 보나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선물이 될 것 같다. 올 여름의 빅터 우튼 베이스캠프에도 참여했었고, 뉴욕 대학에 강의를 하기 시작했다는 내용도 있다. 또 그의 팬들이 서로 억측을 주고 받으며 궁금해하던 악기와 보컬과 음악에 대한 이야기들도 있었다. 내가 멋대로 추측했던 내용들이 사실과 달랐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앨범 Tiki에 실려있는 Ba Senge라는 곡에 사용된 베이스를, 나는 의심하지도 않고 당연히 포데라 임페리얼 5의 소리라고 믿고 있었다. 그의 공연에서 들었던 소리와 똑같으니까,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가 밝히기로는 그 앨범에서 그 곡만 '66년도 펜더 재즈베이스로 연주했다는 것.

bassplayer.com


우리는 잠꾸러기


내 우울한 증세는 회복이 더디다.
종류가 다른 스트레스들 때문인지 잠을 길게 못 자고 있다.
날씨가 조금 선선해졌다고, 고양이는 새벽 마다 침대에 숨어 들어와 수건이나 이불을 둘둘 말은채로 잠을 잔다.

오늘은 아침 일찍 일어나 세수를 하고 돌아왔더니 저 모습으로 앉아서 여전히 졸고 있었다.
일어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아직 잠이 깨지 않았거나, 더 자고 싶은데 내가 부스럭 거리는 바람에 선잠을 깨었던 것이었나 보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웃을 참다가 그만 터뜨리고 말았다.

고양이 순이는 결국 이불을 몸에 감은채로 한참을 더 자다가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