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29일 화요일

가을비 오다 말다.



지난 주에 검지 손가락의 손톱이 들려버렸다. 일주일 내내 너무 무리를 했다.
그것을 핑계로 주말의 이틀 동안 악기를 만지지 않았고, 어제는 신인밴드 심사의 일로 악기에 손댈 시간이 없었다. 다행히 손톱은 아물었다. 뻣뻣해진 손가락을 펴느라 새벽 부터 연습을 했더니 아침. 일하러 나갈 시간이 다 되었는데 지쳤다. 날씨도 좋아서 마른 이불 속에 들어가 빗소리 들으며 잠이나 자고 싶다.

커피를 죽처럼 진하게 내려서 한 주전자 들고 운전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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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28일 월요일

어릴적 나에게.

이 사진을 며칠 전에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으로 걸어뒀다. 그 후 질타와 핀잔을 받았다. 현재의 모습과 너무 다르지 않느냐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십육년 전의 사진이다. 내 방은 옥탑방이었다. 그날 오후에 옥상 위 방문 앞에서 친구와 둘이 몇 장의 사진을 찍었었다. 누군가로부터 음악을 하도록 도와줄테니 사진을 찍어오라는 주문을 받았었다. 처음엔 당돌하게도 '사진이라면 나를 만났을 때에 지들이 찍으면 될 것이지'라고 했다가, 그래도 뭔가 앞의 일을 도움 받을 것 같아서 이런 찌질한 일도 했었다. 그리고 결과를 말하자면 당시에 음악 일을 하기 위한 도움은 어느 누구에게서도 받지 못했다.

요즘은 연말이고 학기말이다. 졸업을 앞둔 학생들로부터 듣는 한숨과 푸념 중에는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고민이 많았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냉정하고 밥맛 없을테지만, 자신이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고 있다면 누구도 자신에게 무엇을 하면 좋다고 조언해줄 수가 없다. 그게 사실이다. 스스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모르는데 뭐라고 말해줄 수 있을까. 그 앞에서 만일 이렇게 저렇게 하면 된다라며 아는체 하고 훈수를 두는 사람이 있다면 경계하거나 무시해도 좋다. 사기꾼이다.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아는 것은 처음에는 어려운 일처럼 보인다. 하고 싶다는 생각의 본질이 바로 그 일이 맞는지, 그 일을 하는 것으로 얻어질지도 모른다고 믿고 싶은 어떤 보상인 것인지를 처음에는 스스로 알지 못한다. 어느쪽이라고 해도 제일 좋은 일은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작하지 않은채로 세월을 보내다 보면 하고 싶어하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도 나중에는 잊게 되어 버린다.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하면 주변의 대부분이 제약이 되고 벽이 되어버리는 것 투성이이지만, 그래서 어쩌면 매일 좌절하고 자주 무너지겠지만, 시작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알 수 없는 것들을 배우게 된다. 하고 싶었던 일의 실체가 알고 보니 허상이었다거나, 재미가 없어졌다거나 하여 그만둔다고 하더라도 아예 해보지도 않았던 것 보다는 낫다고, 저 시절의 나는 생각했었다.

사진을 찍었던 그날 오후 이후 지금까지, 나는 참 여러 갈래의 길을 빙빙 돌았다. 바보같은 판단으로 일을 그르치기 일쑤였고, 어리숙하여 억울한 일을 당하는 일이 많았다. 능력이 모자라 길바닥에 주저 앉아 고개를 떨궈야 했던 날들도 많았다. 여전히 그렇지만 재빠르지 못하여 부당한 일을 겪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도 자주 벽에 부딪혀 인상 쓰며 올려다보고 한숨을 쉰다. 결핍이 많고 모자란 녀석이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결국 똑같다. 다만, 십육년 전 막연히 꿈꾸었던 그 일만은, 하고 있게 되었다.

부끄러운 이십대 시절의 사진을 꺼내어 두고, 나는 과거의 나에게 미안해했다. 과거의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도 못했다. 그러나 아직 계속 열심히 하고 있는 중이니까, 라고 변명을 하고 싶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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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12일 토요일

부산역

10일, 목요일.
새벽에 출발하여 오전 열 시에 부산역에 도착했다.
지난 밤에 일찍 잠들면 푹 자고 나올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일찍 잠드는 바람에 너무 일찍 깨어버렸다. 결국 밤을 새우고 운전. 어둠이 걷히면서 드러나는 하늘 빛이 예뻤지.

부산역 광장에는 바람이 불어서 낙엽이 나이먹은 순서대로 떨어져 날리고 있었다.
비둘기 몇 마리가 노숙인들의 근처를 희롱하듯 놀며 다니고 있었다.
이곳에서 기차를 타고 도착할 동료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잠이 쏟아졌다.
하루 전에 미리 도착해있던 상훈씨가 나타나 손을 흔들며 다가오는 것을 보기 전 까지 몽롱하고 어질어질한 상태로 상체 하체를 잘 가누지 못했다.

낮의 리허설을 마치고 부산의 밀면을 한 그릇 먹고 있을 때에 김진숙 씨가 무사히 크레인에서 내려오셨다는 소식을 읽었다.

2011년 11월 10일 목요일

편안한 새벽

일찍 잠들었다가 새벽에 일어났더니 책상 앞의 자리를 차지하고 고양이들이 잠들어 있었다. 손을 뻗어 쓰다듬으면 그르릉 거리며 좋아한다. 나는 좀 비켜달라고 했던 것이었는데 그르릉만 하고는 두 놈 모두 다시 잠들어버렸다.

동이 트기 전에 공연을 위해 부산으로 출발할텐데, 아이팟에 담긴 음악들을 정리하고 몇 장의 음반들을 새로 집어 넣었다. 먼 길을 혼자 운전하며 왕복하는 하루를 보내고 난 후엔 뭔가 마음 속이 정리정돈할 수 있으면 좋겠다.

밤중에는 돌아와서, 나도 고양이들 처럼 몸을 말고 자버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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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9일 수요일

녹음실에서.

indie2go from Instagram
11월 7일, 벨벳 녹음실에서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를 녹음했다.
산울림 헌정 음반에 이 곡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김창완밴드의 트랙으로 수록될 예정이다.
리더님의 새로운 구상에 따라 편곡을 바꾸어 연습해 본 것이 두어 번. 그것을 공연할 때에 무대 위에서 해 본 것이 서너 번... 이 날 실제 녹음 시간 두 시간, 연주는 합주로 세 번이었다. 마지막 것으로 테이크했다.
베이스는 앰프 없이 Moollon의 D.I.와 컴프레서, EQ, 시그널 부스터만 사용했다.

새 편곡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뭔가 더 덧입히려고 애쓰는 것 보다는 더 이상 빼거나 생략할 것이 없을 때에 진솔해진다. 음악도 인간관계도 비슷하다.


녹음은 쾌적하고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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