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23일 목요일

흐리고 비.

 


잔뜩 흐리고 비가 내렸다.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 대한 생각들, 일에 관련된 생각들로 새벽에 잠을 깬 후 계속 깨어 있었다.

그리고, 순이가 죽은지 네 해가 되었다. 이제 곁에 고양이 꼼이도 없는 장마철을 보낸다.

어릴 적 부터 어떤 우연이 반복되어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되고 관심을 기울였던 것에 접근하는 경험을 해왔다. 올해에 모든 공연들이 취소되고 더 이상의 음악 일정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더니 악기를 쥐고 무엇을 연습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린 시절 음악에 빠져들었을 때의 곡들을 다시 듣기 시작했다. 임시로 플레이 리스트를 만들어 두고 반복하여 들었다.

며칠 음악을 듣다가 우연히 그 음악에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찾게 되기도 하고 악기를 점검하려고 렌치를 찾다가 엉뚱한 곳에서 오래된 CD를 찾게 되기도 했다. 그런 것이 사소한 것을 다시 배우게 하고 나에게 동기를 주기도 한다.

손톱을 깎고 오래 그냥 세워져 있었던 악기를 집어 들었다. 손가락을 풀기 위해 연습을 시작했다. 
조용했던 집안에 악기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니 고양이 깜이가 내 얼굴을 올려다 보며 표정을 살폈다. 마주 앉아 잠시 쓰다듬어줬다. 고양이는 금세 골골 소리를 내며 드러누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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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22일 수요일

비가 내린다.


순이가 떠난지 네 해가 되는 날이었다.
꼼이가 단짝이었던 순이를 따라 가버린지 겨우 이십여일이 지났다.
바람이 불고 비가 많이 내리기 시작했다. 창문을 닫고 집안을 청소하는데, 구석마다 떠나고 없는 고양이 두 마리가 마치 조금 전까지 드러눕거나 뛰어 놀았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이제 실없는 농담으로 웃고 아무 음악이나 틀어두고 흥얼거리기도 한다.
다시 만날 수 없는 고양이들을 보고싶어도 하고 가끔 아무 것도 없는 곳을 향해 없어진 고양이의 이름도 불러 보았다.
같이 있을 동안에 힘주어 행복하려고 하고, 헤어진 후에는 적당히 슬퍼한 후 오래 그리워하면 되는 일이다. 오늘은 그런 생각을 더 많이 했었다.

2020년 7월 11일 토요일

세브란스 병원.


지난 새벽에 아내를 위해 병원에 갔다가 딴지 총수가 모친상을 치르고 있는 장례식장까지 갔었다.
사실은 나 혼자 들렀다가 집에 가려고 했던 것이었는데 종일 부친의 병간호만 하느라 심심했던 아내가 따라 왔다. 장례식장 로비에 있는 화장실에 들러 볼일만 보고, 나는 아내에게 그냥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무엇을 구실삼아 이유를 말하지는 않았다. 나 혼자였다면 모를까, 아는 사이도 아닌 사람의 모친상에서 아내의 시선 앞에 내 감정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아내와 벤치에 앉아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혼자 집으로 돌아왔다.

아침에 알람소리를 들은 고양이 깜이가 깨워줘서 일어났다. 나는 이제 세 마리만 남은 고양이들에게 사료와 물을 챙겨주고 서둘러 다시 병원으로 갔다. 오늘 아내의 부친은 퇴원하시게 되었다. 두 번의 수술을 받았고, 며칠 사이에 많이 회복을 하셨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올 때에 차가 많이 막혔다. 토요일 오후 경기도 외곽 도로는 지독하게 막혔다. 사람들이 과연 전염병에 대한 경계심을 가지고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생각하다가, 반대로 그 전염병 때문에 일부러 자가운전을 많이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봤다.

고양이들이 한참만에 다시 만나는 아내를 일제히 반겨줬다. 나는 서둘러 청소를 하고 커피를 새로 내려 놓았다.
오랜만에 식탁에 마주 앉아 늦은 점심 한끼를 먹었다. 나는 침대에 드러누웠다. 고양이 깜이가 얼른 달려와 내 곁에 베개를 함께 베고 누웠다.

평화로운 순간은 언제나 짧다. 지금은 이 고요함을 고마와하며 한숨 자고 일어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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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6일 월요일

병원 응급실.


지난 밤에 아무래도 기분이 좋지 않아서, 조금 전 친오빠와 전화를 끊은 아내를 독촉하여 아내의 본가로 달려갔다. 도착해보니 장인이 매우 위급한 상황이었다. 아내가 구급차를 부르고, 나는 따로 출발하여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새벽 한 시 반, 부친에게 발열이 있어서 코로나 바이러스 검사를 위해 선별진료소로 모시고, 아내는 발열 없음으로 체크가 완료되었다. 노인은 몸을 가누지 못하고 얼굴에 열꽃이 피어 있었다.

두시 오십 분. 환자는 흉부 방사선 촬영 후 계속 휠체어에 앉아 대기 중이었다. 선별진료소에서 그렇게 기다리다가 응급실 침상으로 이동했다. 보호자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나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세 시 이십 분. 아내와 의논하여 나는 혼자 집으로 출발했다. 집에 가서 고양이들을 살피고, 아내의 옷가지와 필요한 것들을 챙겨 다시 병원으로 돌아오면 된다. 아내는 불편한 곳에서 불편하게 밤을 지낼 것이다. 우리는 각각 서로 이런 일들을 반복하여 겪고 있다.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할 수 있는 일이 되었다.
아내는 끝이 나지 않을 것처럼 이어지는 불행한 상황들, 사람과 고양이를 돌보느라 돈과 기운을 소모하고 있는 상황이 나쁘다고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아내에게 말했다. 그래도 한번에 몰아서 닥쳐오지 않은 것을 고마와하는 편이 낫다고. 그것은 진심이다. 동시에 고양이가 위독했고, 노인이 위급했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네 시 오십 분. 집에 도착하여 고양이 세 마리에게 깡통 한 개를 열어서 나눠 줬다. 고양이 화장실을 청소했다. 내다 버릴 쓰레기 봉투를 한 손에 들고, 아내의 옷과 충전기 등을 챙겨 가방에 담아 다른 손에 들었다.

날이 밝았다. 긴 대기 시간. 다행히 장인어른은 코로나 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나왔다.
응급실에 도착한지 열 네 시간만에 노인은 심혈관 병동 3층 시술실로 들어갔다. 중재술실이라고 적혀 있었다. 위중한 상태였어서 시술 후에 중환자실로 옮기겠다고 담당의사가 말해줬다. 중환자실에는 지금 보호자도 들어갈 수 없으므로 보호자 역시 집에 가서 전화를 기다리라고 했다.

지금은 오후 네 시. 아내는 내 옆의 의자에서 졸고 있다. 상황 모니터에는 계속 '시술 중'이라고 표시되고 있다.

졸음을 이기려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다가, 문득 문득 이제 죽고 없는 고양이 꼼이를 보고싶어했다. 지금은 가엾게 죽어버린 고양이를 그리워하고 슬퍼할 여유 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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