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16일 금요일

임무 수행중인 고양이

지난 주의 어느 새벽, 내가 겨우 잠이 들었는데 자꾸만 꼬맹이 녀석이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급하게 뛰는 소리도 들렸다. 결국 그 소리에 소파에서 일어났다. 꼬맹이는 베란다 구석에서 큰 거미 한 마리와 다투고 있었다.

일부러 고양이에게 무슨 일을 시키거나 한 적은 없었지만, 여름철에 집안에 들어오는 벌레를 보면 언제나 붙잡는 짓을 하길래 칭찬을 해줬었다. 그랬더니 이제 벌레를 보면 그걸 잡는 일이 자신의 일인 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꼬맹이에게 공격을 당하는 작은 벌레들은 무기력하게 숨지거나 심지어 먹혀버리기도 하지만, 조금 큰 벌레들을 보면 일단 구석으로 몰아놓고는 소리내어 사람을 부르곤 한다. 반드시 다가가서 칭찬을 해주지 않으면 고양이는 책꽂이 위에 올라가 벽을 보고 돌아누워 토라져있기 때문에, 단 몇 마디라도 잘했다~라고 해주고 있다.
우리는 대부분 벌레를 구출해서 창 밖으로 보내주고는 있는데, 무당벌레, 거미, 딱정벌레, 그리고 뭔지 모를 요상한 산벌레들이 가끔 집안에 잘 못 들어와 괴물을 만나 고난을 겪다가 풀려나고는 했었다.

그런데 이번엔 창문 밖에 집을 지었던 거미가 배짱이 두둑해졌는지 집으로 들어와서 멋대로 가족들도 꾸리고 집을 지으려 했던 모양이다. 거미가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아직은 죽이거나 거미집을 없애거나 하고 있지는 않지만, 사람 대신 고양이 꼬맹이가 공사중인 거미집을 훼손해주고 거미를 쫓아내거나 한다.

다른 모든 사람과 고양이들이 비몽사몽 쿨쿨 잠들어 있는 새벽 시간에 저 혼자서 낑낑대며 맡은 일을 하고 있었다니 기특해서 잠결에 다가가 마구 주물럭거려줬다. 작년에 병을 얻어 큰일 날 뻔 했던 것을 아내가 지극정성으로 보살펴 고쳐놓았더니 이렇게 건강하게 살고 있어줘서 고맙기만 하다.
계속 벌레도 쫓고 즐겁게 놀며 지내라, 고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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