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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25일 토요일

나쁜 봄.


몇 달 만에 미용실에 갔다. 점심시간이라고 입구에 손으로 쓴 안내문이 붙여져 있었다.
가게 바깥에 의자 두 개가 보였다. 나는 그곳에 앉아 음악을 들었다.

잠시 후 직원이 문을 열고 나오더니 나에게 뭐라고 말을 했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어서 정확히 듣지 못했지만 음식 냄새가 나고 있으니 조금 후에 들어오라고 했던 것 같았다.

미용실 의자에 앉기 전에 마스크를 벗었다. 갑자기 다양한 냄새가 느껴졌다. 음식 냄새는 잘 모르겠고, 어떤 기억들을 순서 없이 불러 모으는 냄새가 났다. 마스크를 착용하는 생활 덕분에 후각이 둔감한 나는 외출하여 마스크를 벗을 때가 생기면 새로운 냄새를 접하는 기분이 든다.

짧게 머리를 깎았다.
경기도에서 지급해준 재난지원금을 다 썼다.

고양이 짤이가 봄볕을 느끼며 드러누워 뒹굴고 있었다.
따뜻한 봄이 되었지만 마음은 춥다.
올해의 봄은 나쁜 봄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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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10일 금요일

온라인 수업



바이러스, 전염병...
이렇게까지 심각하고 기간이 길어질 것을 예상 못했다.
결국 4월 한 달 동안 '비대면 수업'이라는 명목으로 온라인으로 수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처음에 유튜브 스트리밍을 준비했다가, 그것은 결국 나 혼자 동영상을 만들어 배포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zoom.us 를 이용하기로 했다. 아마 그 회사는 이번에 수요가 아주 많아졌을 것 같다.

수업자료를 만들고 원고를 썼다. 처음 해보는 일이기도 했고 영상을 통해 수업을 진행할 때에 시간을 허비하면 안된다는 생각에 더 신경을 써야만 했다.
사용한 플랫폼은 화상회의 전체를 녹화해주는 기능이 있었다. 수업을 마칠 때 마다 기록된 영상을 확인하고 iMovie 로 편집하여 용량을 줄였다. 학교 측에서 증빙자료로 삼아 영상파일을 정해둔 곳에 올려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학생들에게 제공할 PDF 파일도 따로 만들었다. 음원 샘플을 조각 조각 만드느라 시간을 많이 보냈다. 학생들에게 과제를 내주고, 첫 주의 온라인 수업을 마쳤다.
뒷정리를 하며 생각해보니, 그냥 출퇴근 하는 것 보다 더 일이 많았다. 책상 위에 기기들이 어지럽게 굴러다녔다. 모든 사람들이 이전에 없었던 경험을 하고 있는 시기일 것이다.

다음 주 수업 시간은 선거일과 겹친다. 행정지침에 따르면 온라인 수업은 임시휴일이라고 해도 진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했다. 학생들에게 투표하는 데에 지장이 없는지 확인해달라고 메세지를 보냈다. 나는 사전투표를 하기로 했다. 나는 항상 선거일에 투표를 했었기 때문에, 이것도 처음 해보는 일이다.

2020년 3월 8일 일요일

어려운 시절.


새해의 첫달에는 그동안 읽으려 기록해뒀던 책들을 주문했었다. 책상 한쪽에 책을 쌓아놓고 음반을 한 장씩 틀어둔 다음, 책을 읽다가 앨범 한 개가 끝이 나면 잠시 일어나 쉬며 소일했다.

그런데 전염병이 시작되었고, 매일 뉴스를 보면서 점점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할 즈음 2월의 공연은 취소되었다. 언론은 스포츠 중계를 하듯 공포를 퍼뜨리고 있었다. 이제 학교의 개강은 무려 한 달이나 미뤄졌다. 3월에 약속되었던 공연이 다시 취소되었다. 나는 아무런 일을 하지 못한 채 새해의 첫 석 달을 수입 없이 보내고 있다. 이렇게까지 어려워질 것을 나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한가롭게 음악을 틀어두고 책이나 읽고 있었을 무렵에는 이제 곧 다시 바빠질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분들의 소식을 들었다. 그들 중 어떤 이는 나와 똑같이 당장 일거리가 없어져 곤궁해진 사람도 있었다. 어떤 분은 사업을 시작하였다가 지금 큰 낭패를 겪는 분도 있었다. 남의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큰 금액의 월세를 당장 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니까, 무슨 고생이라고 말을 할 수준이 되지 못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공연과 합주가 취소되고 연초부터 말로만 약속했던 모임도 소식이 없어졌다. 집 근처에서 한 번 만나자던 사람들에게는 지금의 감염병이 잠잠해지면 보자고 했다. 매일 외출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을 자주 대하는 일과도 없으므로 나는 마스크 따위를 새로 구입하지 않았다. 다만 평소 보다 더 자주 손을 씻고 있다. 하도 자주 손을 씻어서 그만 손이 건조해졌다. 손이 끈적거리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로션을 발라본 적이 없었는데 요즘은 손에 땀도 나지 않고 있어서 피부가 갈라지는 기분이 든다.
고양이 꼼이가 아파서 동물병원에 급히 데려갔다가, 입원도 시켰어야 했었다. 집에 사뒀던 일회용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 고양이는 입원 후 어느 정도 회복은 되었지만 아직 다 낫지 않고 있다. 병원에 계속 데리고 다니는 중이다. 아내는 일정한 시각에 고양이에게 물에 개인 사료를 먹이기 위해 몇 주 동안 긴 잠을 자보지 못하고 있다. 나는 아내가 고양이를 돌보기 위해 공책에 기록해둔 시간을 확인하며 약을 먹이거나 다른 고양이들의 간식을 챙겨주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는 전염병 보다도 고양이 꼼이 어서 말끔히 낫는 것이 더 중요한 듯 보인다.
더 어려운 시절을 맞지 않으면 좋겠다. 아마 모든 사람이 바라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