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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24일 토요일

여덟 달.

펜더 베이스 건전지를 교환했다.

 


지난 주 밤중에 오랜만에 합주를 했는데, 도중에 악기의 소리가 사라졌다. 급히 패시브로 바꾸고 연주를 계속 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확인해보니 다시 소리가 나고 있었고, 그 다음 날 학교에서 수업을 할 때에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수업을 마칠 무렵 액티브 소리가 희미해지더니 완전히 사라졌다. 건전지를 다 쓴 것이다.

바로 다음 날 밤, 공연에서는 다른 악기로 연주했다. 연주를 시작한 뒤 한참이 지나서야 무대 위에 서있는 것이 덜 낯설어졌다. 무대에 오르고 공연을 하는 것이 일상이었던 적이 먼 옛날의 일 처럼 여겨졌다.

오늘 아침, 열흘만에 여섯 시간 이상을 자고 일어났더니 몸이 개운했다. 악기를 뒤집어 건전지를 새 것으로 교환했다. 액티브 악기에 건전지를 넣을 때에는 날짜를 써두는데, 적어둔 날짜를 보니 지난 번에 건전지를 넣은 이후 여덟 달이 지났다. 지난 2월에 건전지를 교환하고 악기를 정비해 둘 때에는 약속되어 있었던 모든 공연들이 취소될 것이라는 것을 몰랐다. 전염병이 세상 사람들의 일상을 바꿔버린 것이 여덟 달이 지난 것이다. 그런데 마치 그 보다 훨씬 더 긴 세월이 지난 것만 같다.

내가 쓰고 있는 이 악기의 전기 부분이 특별히 건전지 소모를 덜 하는 것이어서 여덟 달 만에 건전지를 교환하게 된 것은 아니다. 올해 내내 그만큼 공연할 일, 연주할 일이 없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언제 다시 연주를 하러 다니는 생활을 할 수 있을지 이제는 알 수가 없다.

다음 건전지를 교환할 날짜가 금세 다가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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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6일 월요일

병원 응급실.


지난 밤에 아무래도 기분이 좋지 않아서, 조금 전 친오빠와 전화를 끊은 아내를 독촉하여 아내의 본가로 달려갔다. 도착해보니 장인이 매우 위급한 상황이었다. 아내가 구급차를 부르고, 나는 따로 출발하여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새벽 한 시 반, 부친에게 발열이 있어서 코로나 바이러스 검사를 위해 선별진료소로 모시고, 아내는 발열 없음으로 체크가 완료되었다. 노인은 몸을 가누지 못하고 얼굴에 열꽃이 피어 있었다.

두시 오십 분. 환자는 흉부 방사선 촬영 후 계속 휠체어에 앉아 대기 중이었다. 선별진료소에서 그렇게 기다리다가 응급실 침상으로 이동했다. 보호자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나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세 시 이십 분. 아내와 의논하여 나는 혼자 집으로 출발했다. 집에 가서 고양이들을 살피고, 아내의 옷가지와 필요한 것들을 챙겨 다시 병원으로 돌아오면 된다. 아내는 불편한 곳에서 불편하게 밤을 지낼 것이다. 우리는 각각 서로 이런 일들을 반복하여 겪고 있다.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할 수 있는 일이 되었다.
아내는 끝이 나지 않을 것처럼 이어지는 불행한 상황들, 사람과 고양이를 돌보느라 돈과 기운을 소모하고 있는 상황이 나쁘다고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아내에게 말했다. 그래도 한번에 몰아서 닥쳐오지 않은 것을 고마와하는 편이 낫다고. 그것은 진심이다. 동시에 고양이가 위독했고, 노인이 위급했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네 시 오십 분. 집에 도착하여 고양이 세 마리에게 깡통 한 개를 열어서 나눠 줬다. 고양이 화장실을 청소했다. 내다 버릴 쓰레기 봉투를 한 손에 들고, 아내의 옷과 충전기 등을 챙겨 가방에 담아 다른 손에 들었다.

날이 밝았다. 긴 대기 시간. 다행히 장인어른은 코로나 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나왔다.
응급실에 도착한지 열 네 시간만에 노인은 심혈관 병동 3층 시술실로 들어갔다. 중재술실이라고 적혀 있었다. 위중한 상태였어서 시술 후에 중환자실로 옮기겠다고 담당의사가 말해줬다. 중환자실에는 지금 보호자도 들어갈 수 없으므로 보호자 역시 집에 가서 전화를 기다리라고 했다.

지금은 오후 네 시. 아내는 내 옆의 의자에서 졸고 있다. 상황 모니터에는 계속 '시술 중'이라고 표시되고 있다.

졸음을 이기려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다가, 문득 문득 이제 죽고 없는 고양이 꼼이를 보고싶어했다. 지금은 가엾게 죽어버린 고양이를 그리워하고 슬퍼할 여유 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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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25일 토요일

나쁜 봄.


몇 달 만에 미용실에 갔다. 점심시간이라고 입구에 손으로 쓴 안내문이 붙여져 있었다.
가게 바깥에 의자 두 개가 보였다. 나는 그곳에 앉아 음악을 들었다.

잠시 후 직원이 문을 열고 나오더니 나에게 뭐라고 말을 했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어서 정확히 듣지 못했지만 음식 냄새가 나고 있으니 조금 후에 들어오라고 했던 것 같았다.

미용실 의자에 앉기 전에 마스크를 벗었다. 갑자기 다양한 냄새가 느껴졌다. 음식 냄새는 잘 모르겠고, 어떤 기억들을 순서 없이 불러 모으는 냄새가 났다. 마스크를 착용하는 생활 덕분에 후각이 둔감한 나는 외출하여 마스크를 벗을 때가 생기면 새로운 냄새를 접하는 기분이 든다.

짧게 머리를 깎았다.
경기도에서 지급해준 재난지원금을 다 썼다.

고양이 짤이가 봄볕을 느끼며 드러누워 뒹굴고 있었다.
따뜻한 봄이 되었지만 마음은 춥다.
올해의 봄은 나쁜 봄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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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10일 금요일

온라인 수업



바이러스, 전염병...
이렇게까지 심각하고 기간이 길어질 것을 예상 못했다.
결국 4월 한 달 동안 '비대면 수업'이라는 명목으로 온라인으로 수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처음에 유튜브 스트리밍을 준비했다가, 그것은 결국 나 혼자 동영상을 만들어 배포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zoom.us 를 이용하기로 했다. 아마 그 회사는 이번에 수요가 아주 많아졌을 것 같다.

수업자료를 만들고 원고를 썼다. 처음 해보는 일이기도 했고 영상을 통해 수업을 진행할 때에 시간을 허비하면 안된다는 생각에 더 신경을 써야만 했다.
사용한 플랫폼은 화상회의 전체를 녹화해주는 기능이 있었다. 수업을 마칠 때 마다 기록된 영상을 확인하고 iMovie 로 편집하여 용량을 줄였다. 학교 측에서 증빙자료로 삼아 영상파일을 정해둔 곳에 올려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학생들에게 제공할 PDF 파일도 따로 만들었다. 음원 샘플을 조각 조각 만드느라 시간을 많이 보냈다. 학생들에게 과제를 내주고, 첫 주의 온라인 수업을 마쳤다.
뒷정리를 하며 생각해보니, 그냥 출퇴근 하는 것 보다 더 일이 많았다. 책상 위에 기기들이 어지럽게 굴러다녔다. 모든 사람들이 이전에 없었던 경험을 하고 있는 시기일 것이다.

다음 주 수업 시간은 선거일과 겹친다. 행정지침에 따르면 온라인 수업은 임시휴일이라고 해도 진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했다. 학생들에게 투표하는 데에 지장이 없는지 확인해달라고 메세지를 보냈다. 나는 사전투표를 하기로 했다. 나는 항상 선거일에 투표를 했었기 때문에, 이것도 처음 해보는 일이다.

2020년 3월 8일 일요일

어려운 시절.


새해의 첫달에는 그동안 읽으려 기록해뒀던 책들을 주문했었다. 책상 한쪽에 책을 쌓아놓고 음반을 한 장씩 틀어둔 다음, 책을 읽다가 앨범 한 개가 끝이 나면 잠시 일어나 쉬며 소일했다.

그런데 전염병이 시작되었고, 매일 뉴스를 보면서 점점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할 즈음 2월의 공연은 취소되었다. 언론은 스포츠 중계를 하듯 공포를 퍼뜨리고 있었다. 이제 학교의 개강은 무려 한 달이나 미뤄졌다. 3월에 약속되었던 공연이 다시 취소되었다. 나는 아무런 일을 하지 못한 채 새해의 첫 석 달을 수입 없이 보내고 있다. 이렇게까지 어려워질 것을 나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한가롭게 음악을 틀어두고 책이나 읽고 있었을 무렵에는 이제 곧 다시 바빠질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분들의 소식을 들었다. 그들 중 어떤 이는 나와 똑같이 당장 일거리가 없어져 곤궁해진 사람도 있었다. 어떤 분은 사업을 시작하였다가 지금 큰 낭패를 겪는 분도 있었다. 남의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큰 금액의 월세를 당장 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니까, 무슨 고생이라고 말을 할 수준이 되지 못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공연과 합주가 취소되고 연초부터 말로만 약속했던 모임도 소식이 없어졌다. 집 근처에서 한 번 만나자던 사람들에게는 지금의 감염병이 잠잠해지면 보자고 했다. 매일 외출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을 자주 대하는 일과도 없으므로 나는 마스크 따위를 새로 구입하지 않았다. 다만 평소 보다 더 자주 손을 씻고 있다. 하도 자주 손을 씻어서 그만 손이 건조해졌다. 손이 끈적거리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로션을 발라본 적이 없었는데 요즘은 손에 땀도 나지 않고 있어서 피부가 갈라지는 기분이 든다.
고양이 꼼이가 아파서 동물병원에 급히 데려갔다가, 입원도 시켰어야 했었다. 집에 사뒀던 일회용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 고양이는 입원 후 어느 정도 회복은 되었지만 아직 다 낫지 않고 있다. 병원에 계속 데리고 다니는 중이다. 아내는 일정한 시각에 고양이에게 물에 개인 사료를 먹이기 위해 몇 주 동안 긴 잠을 자보지 못하고 있다. 나는 아내가 고양이를 돌보기 위해 공책에 기록해둔 시간을 확인하며 약을 먹이거나 다른 고양이들의 간식을 챙겨주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는 전염병 보다도 고양이 꼼이 어서 말끔히 낫는 것이 더 중요한 듯 보인다.
더 어려운 시절을 맞지 않으면 좋겠다. 아마 모든 사람이 바라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