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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18일 수요일

엉터리 기억

 


기억은 불성실하다.
애플뮤직에서 Gary Burton의 앨범 중에 Pat Metheny가 참여했던 것을 찾고 있었다. 나는 개리 버튼의 앨범을 LP나 시디로 샀던 적이 없었다. 카세트 테이프로 한 두 개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생각이 났을 때 앨범들을 찾아두고 죽 이어서 듣고 싶었다. 그래서 찾은 것이 The New Quartet이라는 앨범이었다. 1973년에 발매되었다고 써있기 때문에, Bright Size Life가 1975년에 나왔으니까, 그것을 녹음하기 전에 Pat Metheny가 개리 버튼의 앨범에서 연주했던 것이겠지, 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 앨범에서 기타를 연주한 사람은 Mick Goodrick이었다. 알고보니 개리 버튼이 Pat Metheny를 자기의 퀸텟에 고용했던 것은 1974년의 일이었다.
Pat Metheny는 자신의 그룹을 결성하여 1977년에 개리 버튼 팀에서 나갔다. 그 후에 다시 개리 버튼의 앨범에 세션으로 참여했었는데 그것이 1989년 앨범 Reunion이었다. 이것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을 하여 듣고 다녔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앨범을 친구를 통해 알게 되었었다. 그렇다면 분명 1990년에 처음 이 앨범을 들었던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 친구에게 내 기억이 맞는지 문자를 보내어 물어 보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자기는 그 앨범을 샀던 적이 없고, 거기에 있는 한 두 곡을 나중에 컴필레이션 앨범에서 들어봤을 뿐이라고 했다.
겨우 삼십여년 전 일인데, 맞는 기억이 하나도 없다. 도대체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 중에서 어떤 것이 사실이고 어떤 것이 내가 지어낸 것인지 모르겠다.
내가 카세트 테이프에 담아서 듣고 다녔던 앨범은 Passengers 였던 것 같다. (자신은 없지만)
기억은 불성실하다. 아니면, 그냥 내가 불성실한 것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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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k Goodrick 아저씨는 두 달 전에 파킨슨씨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2022년 9월 23일 금요일

청주에서 잤다.

 


공연 하루 전날 청주로 가서 하루를 잤다.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도로가 오래 정체되어 중평 톨게이트를 통해 빠져나와 깜깜한 국도를 달렸다. 숙소 부근 빵집을 찾아 급하게 먹을 것과 커피를 사고, 호텔에 체크인을 하자마자 방에 들어가 TV를 켰다. 축구 국가대표 친선경기가 이제 막 시작하고 있었다. 샐러드와 샌드위치를 전반전이 진행되는 동안 먹고, 보온병에 담아 아직도 뜨거웠던 커피는 손흥민 선수가 프리킥을 찼을 때에 마셨다. 경기는 재미있었지만, 그 종편 채널을 이용해야만 하는 것이 거북했다. 축구 중계가 끝나자마자 텔레비젼은 끄고, 아이패드로 음악을 틀었다.



생각해둔 것을 글로 옮기는 것에 한계를 느껴서 틈나는대로 아이폰의 노트 앱에 메모를 해두고, 여전히 그중에 여전히 쓸 것이 있으면 쓰기 시작하기로 하고 있다. 메모는 넘치고 숙소의 통나무 의자는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어서 수시로 일어나 몸을 움직여야 했다.
잠시 일어난 김에 유튜브에서 음악 라이브 영상을 고르다가 Rodney Jones가 판데믹 기간 동안에 연주했던 것을 보게 되었는데 그 쿼텟에서 피아노를 맡고 있던 류다빈 씨라는 피아니스트를 알게 됐다. 그는 매우 좋은 연주를 하고 있었다. 로드니 존스의 연주를 일부러 들어본 것은 아주 오래 전 일이었다. 구글의 인공지능 덕분에 가끔 행운처럼 건져지는 것들이 있다.
영상을 보는 바람에 한 시간을 그대로 지나보내고 결국은 아주 늦게 잠들었다. 이래서야 공연 하루 전에 힘들여 운전하여 온 보람이 없는 것 아닌가 생각했지만, 그래도 토요일에 시계를 보며 초조해하면서 공연장으로 달려가는 것 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2022년 9월 20일 화요일

좋은 음악

조슈아 레드맨과 그의 친구들이 새로 낸 앨범이 좋아서 여러번 들었다. 지난 십년 동안 새로 등장하여 활동하는 재즈맨들의 재즈와 격이 다른 앨범이다. 그나마 진지한 재즈를 하고있는 거의 끝 세대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재즈의 과거를 만들어왔던 연주자들과 비교하면 근래에 등장한 세대들의 연주는 어쩐지 오래 듣고있지 않게 된다. 다양한 스타일들이 자연스럽게 섞이다보니 더 깊은 사색은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심도 든다. 그런 중에 오십대에 접어든 연주자 네 명이 녹음한 앨범 LongGone이 반갑다. 러닝타임이 47분인데 앨범의 제목에 EP라는 표시가 있었다. 스트리밍 시대엔 오십여분 되는 분량도 EP인건가.

이번 쿼텟의 멤버들인 브라이언 블레이드, 크리스챈 맥브라이드, 브래드 멜다우 모두 조슈아 레드맨이 데뷔할 때에 함께 했던 친구들이다. 90년대에 그들이 등장했을 때에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젊은 그들에게 환호했었다. 삼십여년 동안 그들은 이제 각자의 위치에서 중요한 연주자가 되었다. 그들이 함께 연주한 앨범이 좋지 않다면 그게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생각이 나서, 똑같은 쿼텟 편성으로 1987년에 브랜포드 마살리스가 녹음한 앨범 Random Abstract를 찾아 들어보았다. 나는 그 앨범을 과거에 CD로도 구경해보지 못했다가 애플뮤직에서 발견하여 얼른 보관함에 담아두었었다.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케니 커클랜드가 참여했던 음반이었다. 삼십년 전 마살리스 형제들이야말로 재즈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젊은 재즈맨들이었다. 앞의 것과 비교하자면 그 어린 나이에 브랜포드 마살리스가 발표했던 35년 전 앨범이 지금 막 나온 현재의 거물 재즈맨들의 것보다 (적어도 나에게는) 훨씬 뛰어나게 들렸다. 브랜포드 마살리스 쿼텟을 듣고 난 뒤엔 이 앨범이 재즈이고 조슈아 레드맨 쿼텟의 앨범은 재즈로부터 태어난 어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이것은 연주자의 재능과 기술의 문제가 아닌 모양이다. 시대가 만드는 변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음악이 연주되어지고 녹음되어졌던 시간이 만들어낸 간격이고, 고작 몇 십년이라는 차이는 나중엔 아무 차이도 아니게 될 것이다. 나중이 되면 그냥 좋은 음악과 아닌 음악의 차이만 남겠지.



2022년 4월 30일 토요일

재즈

 


(4월 29일 금요일 밤)

내일 연주할 곡들을 계속 연습하다가 유튜브에서 유명한 연주자들의 라이브를 구경하고 있었다. 이번에 연주할 곡들은 내가 외우고 있는 곡들이 대부분이어서 조금 더 음악적인 것에 집중을 하고 싶었다. 오랜만에 재즈 연주 영상들을 찾아 보고 있으니 잊고 지냈던 스윙 리듬의 기분이 돌아오고 있다.

Arturo Sandoval 의 십년 전 연주 영상을 보면서 아주 옛날 대학로에 매주 구경하러 가서 라이브를 보며 혼자 공부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당시에 나는 막막했던 미래에 대한 걱정, 무엇부터 먼저 시작해야 좋은지 알 수 없는 때였다. 아무라도 악기를 다루는 사람을 보면 다가가 인사를 하고 대뜸 질문을 해대었다. 내 성격에, 좀처럼 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그 연주자 선배들은 뭔가를 묻고있던 어린애가 기특했는지 귀찮아하지 않고 나에게 뭐라도 알려주고자 설명하곤 했는데, 문제는 그들은 자기가 알고있는 것을 가르쳐 본 경험이 없어서 쉽게 설명하지 못했고 나는 너무 아는 것이 없어서 그분들의 친절한 설명을 알아듣지 못했다. 리얼북 한 권을 제본하여 들고 다니며 연주자들 앞자리에 책을 펴놓고 소절을 따라가며 보고있기도 했다. 요령도 없이 무식하게 혼자 배우고 있었던 시절의 기억이 갑자기 많이 떠올랐다.

(4월 30일 토요일 밤)

서교동 골목의 가게에서 연주를 했다. 어제 악보를 보며 연습해두길 잘했다. 오랜만에 비좁은 공간에서 베이스 헤드를 드럼의 라이드 심벌에 부딪히며 워킹을 할 수 있었다. 낯설은 장소, 부자연스런 무대였는데도 재미있었다. 오랜만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다른 것을 잠시 잊고 베이스만 칠 수 있어서 좋았다.

그 동네는 이제 판데믹이 끝나버린 것처럼 사람들이 많이 다녔다. 연주를 마치고 얼른 악기를 챙겨 부모님 집에 들러야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Romain Pilon 의 몇 년 전 앨범을 들으며 운전했다.



2022년 3월 12일 토요일

자코 부트렉


 애플뮤직에 웬 Jaco Pastorius 앨범이 새로 나왔다며 추천음반으로 보여졌다. 또 이곡 저곡 붙여둔 엉터리인건가 보다 하고 듣지 않고 있었다. 사실, 며칠이 지나도록 음악을 집중하고 들을만한 기분이 아니었다.

수상한 앨범의 곡명을 보다가 내가 모르는 타이틀이 있어서 들어보기 시작했다. 이 앨범에 대한 아무 정보도 없어서 알 수는 없지만 특이한 녹음이었다. 음질도 나쁘지 않고 악기 소리 외에 잡음도 없는데 그렇다고 제대로 믹싱을 거치지 않은 듯 밸런스가 좋지 않은 곡도 있었다. 이건 부트렉 같은 것일까.

자코의 연주도 특이했다. 솔로의 구성이 엉성하고 간혹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부분도 들리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함께 연주하는 연주자, 편곡, 자코의 솔로 등은 클래스가 높았다. (당연하잖아) 두 곡을 이어붙인 트랙은 라이브 연주이거나 공연을 위해 리허설을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정식으로 발매했던 앨범에서 들었던 자코의 완성도 높은 연주가 아니라고는 해도 무시무시한 테크닉은 분명했다. 이런 녹음은 누가 어떻게 보관하고 있었던 걸까. 플렛리스 베이스의 슬러를 사용한 인토네이션은 자코의 지문처럼 그 사람만 낼 수 있는 아름다운 사운드 그대로였다. 말끔한 구성은 아니고 반복되는 프레이즈를 계속 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본녹음이나 공연을 앞두고 꼭 연습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솔로인데도 어느 부분도 화성적으로 틀리거나 이상한 음이 없다. 망설이는 것처럼 들릴 때에도 음악적인 손버릇으로 빈 곳을 메우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 음색이 대단하다. 



2022년 2월 17일 목요일

밥 제임스 트리오

 


지난 연말에 이 앨범이 나온 후 몇 주 동안 계속 들었다. 유튜브에 있는 그의 채널에 스튜디오 라이브 레코딩 영상이 올려졌다. 여러 번 반복하여 보았다.

세련되고 고급스럽다. 깔끔한 보이싱에 완벽한 편곡이다. 그것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녹음 기술, 모든 것이 좋았다.

피아니스트의 완벽한 편곡과 연주로 꾸미는 음악이기 때문에 리듬 파트의 모든 부분도 잘 짜여진 편곡 안에서 움직인다. 트리오 편성을 기타를 포함시켜 쿼텟으로 만들고, 일렉트릭 베이스로 악기를 바꿔 놓으면 그대로 Fourplay의 음악이다. 세 악기의 인터플레이도 전부 피아니스트의 편곡에 따라서 간다. 세련되고 고급스러우며, 통제 범위의 안쪽에서 연주한다.

예전에는 이런 종류의 음악적 통제의 느낌이 답답했었다. 일부러 라이브 음반을 듣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오히려 잘 고르고 다듬은 스튜디오 앨범이 더 좋을 때가 많아졌다.

이 앨범은 유튜브에 올려진 영상 그대로 스튜디오 라이브이다. 재즈 앨범을 감상하고 그 연주가 녹음되는 현장도 구경할 수 있으니 참 좋다고 생각했다.



2021년 12월 20일 월요일

스티브 스왈로우

 


기타리스트 존 스코필드의 2020년 앨범 Swallow Tales를 한 해가 지난 이 즈음에야 듣고있었다.

기타리스트의 기타 트리오 편성 음반이지만 이 앨범의 주인공은 베이시스트 스티브 스왈로우이다.  아홉개의 오리지널 곡은 모두 스티브 스왈로우 작곡이다. 믿음직한 드러머 빌 스튜어트의 완벽한 리듬연주 앞에서 선생과 학생으로 만나 수십년 동안 우정을 가꿔온 두 명인의 연주를 듣다보면 50여분이 언제 흘러갔는지 모른다. 세 사람의 연주는 튀어오르지도 너무 가라앉지도 않으면서 모든 곡에서 깊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듣다보면 저절로 탄식이 나오는 순간이 많은 앨범이다.

세 사람은 같은 또래의 동료들은 아니다. 스티브 스왈로우는 '40년생, 존 스코필드는 '51년생, 빌 스튜어트는 '66년생이다. 스티브 스왈로우는 존 스코필드의 1980년 앨범 Bar Talk 이후 스코필드의 앨범 여서 일곱 장에서 베이스 연주를 했다. 빌 스튜어트는 스물 네살 때에 존 스코필드의 Meant To Be 앨범에 참여한 이후 스코필드의 앨범 열 다섯 장에서 함께 연주해왔다. 이 앨범은 스왈로우 선생님과 각별한 친분이 있는 존 스코필드가 오랜 세월 자기들끼리만 연주해보았던 스티브 스왈로우의 곡을 녹음하자고 제안하여 만들어졌다고 한다. 앨범 전체가 차분하고 정갈한 기분이 드는데 그것은 혹시 ECM에서 만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선곡과 연주가 담백하여 ECM에서 내기로 한 것일지도.

베이시스트 스티브 스왈로우에게는 어떤 신비로움 같은 것이 있다. 그가 아주 젊은 시절에 이미 '잘 나가는'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였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나는 그가 '70년대 중반 이후 악기를 바꿔 연주해온 것을 들으며 나이를 먹었다. 긴 세월 내내 그는 어떤 범주에 집어넣기 힘든 고유한 일렉트릭 베이스 연주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가진 일렉트릭 베이스기타에 관한 관점이나 생각에 동의하지 못한다. 굳이 새로 고안하여 이상한 모양의 악기를 완성하고 직접 연주하고 있는 것에도 나는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그의 연주를 따라해보거나 솔로를 듣고 베껴 연주해볼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언제 어느 음반에서나 그의 연주는 특별하다.  그의 연주를 듣고 있으면 매순간 스왈로우 세계의 어떤 풍경이 새롭게 펼쳐진다. 완벽하고 아름다운 triad 사용법이라던가, 그가 기타피크를 쥐고 탄현하는 길고 짧고 세고 여린 모든 음들이 들려주는 깊이라던가 하는 것은 다른 누구에게서도 들어볼 수 없는 소리이다. 나는 아마 그의 연주를 따라해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그런 일을 시도해볼 엄두를 내본 적이 없었던 것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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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23일 목요일

기타 트리오


 

지난 해에 세 장의 앨범을 냈기 때문에 금세 또 새로운 녹음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었다. 부지런한 파스콸리 그라쏘의 새 앨범은 듀크 엘링턴의 곡들을 연주한 것이었다.

이번 앨범도 물론 정말 좋다. 그는 이제 내 마음 속에서 믿고 듣는 기타리스트로 되어 있다. 기타 트리오를 기본편성으로 구성한 것도 좋았다. 트랙 사이에 기타 솔로로 연주한 곡도 있고 기타와 베이스 듀엣으로 연주한 곡도 있다. 이 앨범을 들으며 나는 1957년에 바니 케슬이 레이 브라운, 셜리 만과 함께 녹음했던 Poll Winners 앨범을 떠올렸다. 짐 홀, 조 패스, 탈 팔로우도 생각이 났고 오래 전 평일 저녁에 야누스에서 지혁이 형이나 방병조 형님이 연주하는 것을 혼자 구경했던 것도 기억 났다. 왼쪽에 베이스, 오른쪽에 드럼이 나오도록 스테레오 패닝을 해둔 것도 좋았다. 이제는 흘러간 옛날의 유산처럼 여겨졌던 담백하고 활력이 넘치는 스탠다드 기타 트리오 사운드를 새것으로 들을 수 있다니, 듣는 내내 고마왔다.

파스콸리 그라쏘의 연주에는 결점이 없는 것 같다. 음색과 테크닉은 말할 것도 없다. 그가 곡을 해석하는 것과 연주로 풀어내는 이야기에는 어두운 면이 없거나 암울한 장면도 밝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 앨범을 듣고 있으면 계속 기분이 좋아져서 56분의 시간이 금세 지나가버리는 것 같았다.

올해 초에 Samara Joy 라는 스물 한 살의 가수가 앨범을 냈었는데, 그 음반의 세션을 파스콸리 그라쏘가 맡았었다. 베이스는 파스콸리 트리오의 Ari Roland 였고, 드러머는 무려 케니 워싱턴이었다. 젊은 보컬리스트의 노래도 좋았지만 뒤에 흐르는 파스콸리의 기타가 좋아서 즐겨 들었었다.

사마라 조이는 "Pasquale Plays Duke" 앨범의 네번째 트랙에서 'Solitude' 를 불렀다.

그런데 이 앨범의 일곱번째 곡을 노래한 가수는 Sheila Jordan 이다. 이분은 1928년생이니까, 아흔 세 살이시다. 재즈의 역사와 함께 늙으신 분이나 다를 바 없다. 베이스와 보컬 스캣 듀엣을 처음 시도했던 가수로 알려져있기도 하다. 사마라 조이와는 거의 한 세기 정도 나이차이가 나는 셈이다. 파스콸리 본인도 음반으로 접했을 역사 속의 재즈 거장들과 함께 노래했던 이 보컬리스트가 이 앨범에서 불러준 곡은 'Mood Indigo' 이다. 이제까지 들어보았던 Mood Indigo 중 최고라고 하기에는 두렵지만, 정말 아름다왔다. 민망하지만 조금 과장하여 표현하자면 그가 끝 부분에 가성으로 처리한 높은 Bb 음이 귀에 들어와 콕 박혔다. 노래 두 곡과 열 곡의 기타 연주. 내 취향으로는 최근에 나온 스탠다드 재즈 앨범 중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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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에 블로그에 썼던 글에서는 기타리스트의 이름을 파스쿠알레라고 표기했었는데, 아무래도 그 이름을 어떻게 읽는지 궁금하여 검색해보았더니 '파스콸리(아)' 정도가 가장 흡사한 표기 같았다.

2021년 8월 30일 월요일

알랑 카론, 듀엣 앨범


 캐나다의 베이시스트 알랑 카론은 좋은 연주자이고 선생님이며 작곡가이다. 그것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유튜브에서 구경할 수 있는 그의 연주 영상 대부분은 여섯줄 베이스로 16비트 슬랩 테크닉을 쉴 새 없이 보여주거나 악기 편성이 가득차서 세고 질량감이 높은 라이브들이었다. 이전에 그의 앨범 몇 장을 들어보았던 나의 인상은 그 정도에 머물고 있었다.

2007년에 나왔던 베이스와 피아노 듀엣으로만 구성한 이 앨범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이 연주자의 참모습을 구경한 것 같았다. 열 두 곡 중 두 곡에서는 멀티 연주자 Jean St-Jacques의 비브라폰과 둘이 연주했고, 나머지 열 곡은 네 명의 피아니스트와 번갈아 연주한 앨범이었다. 베이스와 건반악기의 듀엣이라니, 바람직하다. 알랑 카론은 플렛리스 베이스로 연주하고 있는데, 건반과 베이스 두 악기만의 사운드로 한 시간 십오분 동안 마음껏 스윙한다. 모든 베이스 라인이 아름답고 솔로의 구성은 풍부하다. 이렇게 좋은 연주자였다니, 감탄하며 감상할 수 있었다.

열 곡은 알랑 카론 자신의 오리지널, 나머지 두 곡은 찰리 파커의 스탠다드와 이반 린스의 곡이다. 셀린 디온의 앨범에 참여했던 멀티 연주자 - 키보드, 비브라폰, 베이스, 기타 신디사이저를 다루는 Jean St-Jacques 가 버드의 Confirmation를 함께 연주했다. 자신과 비슷한 또래인 캐나디언 피아니스트 François Bourassa, Lorraine Desmarais, 베네수엘라 피아니스트 Otmaro Ruíz 와 연주한 곡들도 훌륭했다. 내가 뽑고 싶은 가장 좋은 넘버 두 곡은 캐나다의 전설같은 피아니스트 Oliver Jones와 함께 연주한 Strings of Spring과 Scrapper이다. 클래시컬이나 재즈 쪽의 거장 피아니스트들은 고희를 넘긴 나이가 되면 그 사람 자체가 피아노로 변해버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정교하지만 서두름이 없고 날이 서있는데도 따뜻하다. 피아니스트들의 맞은편에서 음반 전체의 사운드를 결정해주고 있는 알랑 카론의 음악적 능력은 대단하다. 그는 어째서 이 앨범 이후 다시 이런 시도를 해주지 않는 것인지.

따스하고 조용한 분위기 때문에 자려고 누웠을 때에 이 앨범을 머리맡에 틀어두었다가 몇번 낭패를 보았다. 음악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잠이 깨어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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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29일 화요일

John Pizzarelli, Better Days Ahead

 


존 피자렐리의 새 앨범 Better Days Ahead를 듣고 있다. 제목을 보고, 아직 부제로 붙어있는 내용을 읽기 전에 나는 이미 이 음반이 팻 메스니의 곡을 연주한 앨범이라는 것을 알았다. 지난 밤에 잠을 청하며 무선 이어폰으로 듣고 있을 때에는 리버브가 너무 많은 것 아닌가 따위의 불평을 하며 듣다가 잠이 들었었다. 오늘 깨어나 커피를 마시며 맑은 정신으로 스피커 앞에 앉아 다시 들으면서는 기분이 좋아졌다. 오후에 치과수술을 위해 병원에 다녀오는 길에도 도로 위에서 계속 듣고 있다가, 지금 굳이 블로그에 써두고 있는 중이다.

작년 4월에, 아흔살이 넘었던 그의 부친 버키 피자렐리가 그만 코로나바이러스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이 지독한 전염병 기간 중 많은 희생자들이 생겼다. 유명한 사람들도 판데믹 기간 동안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의 부친은 오래 활동한 기타리스트이기도 했고, 아흔이 넘도록 연주활동을 멈추지 않았던 음악가였다. 존 피자렐리의 새 앨범 표지는 기타를 안고있는 그의 얼굴에 마스크가 씌워져 있다. 나는 그 앨범 자켓이 시대를 반영하고 있기도 하거니와, 그의 돌아가신 부친에 대한 생각도 있었을 것 같다고 혼자 상상해봤다.

솔로기타로 연주했고 모두 열 세곡이 담겨있는 이번 팻 메스니 특집(?) 앨범은 훌륭하다. 그냥 훌륭한 뮤지션의 음악을 커버한 수준이 아니라, 팻 메스니의 음악을 정말 좋아했던 것이 분명한 이 기타리스트의 예술적인 해석이 잘 담겨있다. 그는 이 앨범에서 대부분 팻 메스니 그룹으로 발표됐던 곡들을 연주했는데 그룹 편성으로 이루어진 원곡의 섬세한 부분들을 빼먹지 않으면서도 한 개의 기타로 표현할 수 있는 음악적 재미를 고루 담았다. 예를 들어 Last Train Home, April Wind/Phase Dance와 같은 곡에서는 베이스 라인과 특정한 화음들이 아주 잘 살아있는데, 그것은 피자렐리가 그의 7현 기타를 멋지게 활용하고 있는 덕분이다. 저음 한 줄을 추가하여 일곱줄로 되어있는 기타를 사용한 것은 그의 부친 Bucky Pizzarelli가 먼저였다. 버키 피자렐리는 같은 고향인 뉴저지 출신 선배 기타리스트 George Van Eps로부 7현 기타를 배우고 계승했다.

과거의 Pat Metheny Group 편성이 아닌 곡으로는 앨범 Secret Story에 실렸던 Antonia와 작년에 발매된 팻 메스니 앨범의 타이틀 곡인 From This Place가 수록되었다. 좋은 작곡에 훌륭한 원곡, 그리고 아름다운 재편곡과 해석으로 아주 듣기 좋았다.

존 피자렐리는 수십년 동안 다른 거장들의 음악을 커버하여 연주해왔다. 냇 킹 콜, 폴 매카트니와 비틀즈,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 등의 음악을 연주한 앨범들이 있었는데 나는 그 음반들을 그다지 꾸준히 듣고있지 않았다. 나의 취향 탓이겠지만, 어쩐지 팻 메스니 특집인 이번 앨범은 유난히 밀도가 높고 좋아서, 아마도 앞으로 계속 듣고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아예 아이폰에 저장해뒀다. 애플뮤직에서 무손실 음원으로 지원하고 있으니까 유선 헤드폰이나 오디오 장치로 꼭 들어보길 권하고 싶다.

이 음반 덕분에 이어서 Pat Metheny Group의 Still Life (Talking) 앨범을 듣고 있다. 애플뮤직에 팻 메스니 그룹 시절의 부트렉들이 계속 업로드 되고 있는데, 예전과 달리 그런 것에는 점점 관심이 없어진다. 잘 만들어 놓았던 본래의 앨범들이 완성품처럼 느껴지고, 그 사운드를 좋은 음질로 다시 듣거나, 좋은 연주자가 잘 해석해놓은 새 앨범을 듣고 있는 것이 지금은 더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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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20일 토요일

Dave Grusin

 


내가 스무 살, 이십대 초반에 들었던 음악 중에는 그 무렵 인기 있었던 GRP 레이블의 음악이 많았다. 당시 새로운 기술이었던 디지털 레코딩, 디지털 믹싱, 디지털 마스터링으로 제작했다고 하여 시디에 DDD 마크를 표시해두기도 했던 레이블이었다. 나는 나보다 음악을 많이 알고 있었던 친구집에 찾아가 음악을 듣기도 하고 LP나 시디를 빌려오기도 했었다. 그 중에 데이브 그루신의 1977년 앨범 One Of A Kind 도 있었다. 데이브 그루신은 그 이듬해인 1978년에 Larry Rosen 과 함께 GRP Records 를 시작했다. 나는 이 앨범을 친구가 가지고 있었던 LP로 빌려와서 카세트 테잎에 담아 카세트 플레이어로 들으며 다녔었다. 그 음반은 1984년에 GRP 에서 다시 발매했던 리이슈였다. 

그 즈음 어디에선가 우연히 만났던 여자아이가 한 명 있었다. 그 친구는 자신이 음악을 아주 좋아한다면서, '가요'는 안 듣는다고 했었다. 보사노바 얘기를 하고 스팅을 좋아한다고 했었는데, 어느 날 내가 그에게 데이브 그루신의 Modaji 를 들려줬었다. 음악이 시작된 후 1분 쯤 지났을까,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노래는 언제 나와?' 라고.

그 다음에 한 번 더 만났었는지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한 것으로 보아 아마도 서로 별로 호감이 없었던 것 같다. 어쨌든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 그 친구는 나에게 '가요를 싫어하며 데이브 그루신 음악에 노래가 없어서 실망했던' 사람으로 남았다.

빌려왔던 LP를 카세트 테잎에 옮겨 담은 다음 친구에게 음반을 돌려줬다. 그래서 오래도록 그 앨범을 들었으면서도 앨범에 참여했던 연주자들을 알지 못했었다. 알려고 했다면 찾아볼 수 있었을텐데 나는 귀찮았던 모양이다. 이십년 전에 나온 데이브 그루신의 베스트 앨범을 듣다가 생각이 나서 '노래가 나오지 않는' Modaji 의 베이스 연주자를 검색해봤다. 프란시스코 센테노라는 사람이었는데 나에게는 낯선 이름이었다. 이미지 검색을 해보니 오래 전 대학로 카페에서 틀어주던 뮤직 비디오에서 봤던 연주자였다. 유튜브 링크를 찾아보니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함께 연주하며 노래도 하던 그분이었다.

앨범 One Of A Kind 에 수록되어 있던 다른 곡 중 Playera 의 베이스는 론 카터였다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됐다. 드럼은 스티브 갯. 나는 그 베이스 소리가 론 카터였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린 시절 그 곡을 들으며 그 베이스 사운드는 분명 일렉트릭 플렛리스 베이스일 것이라고 상상했었다. 그 앨범의 베이스 연주자는 프란시스코 센테노와 론 카터 두 사람이 맡고 있었다. 드럼은 모두 스티브 갯, 색소폰은 그로버 워싱턴 쥬니어였다. 

그러고보니 나는 데이브 그루신의 GRP 음반인 조지 거쉬윈 커넥션이라는 앨범도 가지고 있었는데, 시디와 함께 들어있던 두꺼운 책자와 종이로 되어있는 겉표지만 있고 플라스틱 케이스와 시디는 보이지 않고있다. 봄이 되면 방안의 물건들을 모두 끄집어 내어 꼭 한번 정리를 해야겠다.


2021년 3월 19일 금요일

Chrlie Parker Jam Session


 나는 이 음반을 26년 전에 샀다. 아무 정보 없이 음반가게에서 시디를 고르다가 겨우 네 곡이 들어있는 이 앨범을 보자마자 얼른 구입했다. 겉면에 어마어마한 연주자들의 이름이 빼곡히 들어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이 녹음 시리즈에 대해 읽고, 나머지 음반들을 구하기 위해 돌아다녔는데 결국 찾지 못했다. 그 후에는 그것에 대해 잊고 지내다가 얼마 전에 생각이 나서 시디를 꺼내어보았다. 그런데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시디가 훼손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됐다. 시디의 뒷면에 흠집이 크게 났는데 첫번째 트랙에서 계속 튀는 잡음이 들리고 있었다. 왜 그랬는지 이 음반은 그동안 컴퓨터에 옮겨 담아둔 적이 없었다. 아마 시디에 상처가 난 것이 먼저였고, iTunes 가 등장한 것이 그 이후였기 때문이었을 것 같다.

혹시 음악파일로 변환을 하면 괜찮아지지는 않을까 기대했는데, 그럴 리가 없었다. 나머지 곡이라도 음원파일로 바꾸어 컴퓨터에 넣고, 애플뮤직에 이 음반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처음에는 발견할 수 없었다. 역시 없는 것인가 생각하다가, 내가 계속 찰리 파커의 이름으로만 검색하고 있었던 것을 알았다. Norman Granz 의 이름을 검색했더니 애플뮤직에 이 녹음의 전체 시리즈가 쨘, 하고 나타났다. 급히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틀었다. 선명한 모노 사운드가 멋지게 들리고 있었다.

이 녹음은 한반도가 전쟁으로 망가지고 있던 1952년 7월에 로스앤젤레스에서 진행되었다. 노만 그란쯔는 수완이 좋은 프로듀서였을 뿐만 아니라 당시의 연주자들에게 깊은 신뢰를 얻고 있었던 사람이었나 보다. 이 연주자들을 동시에 모아놓고 녹음을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 레코딩에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재즈의 전설들이고, 그 무렵에도 이미 각 악기의 최고들이었다. 그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한 것이 스스로도 꽤 자랑스러웠던지 노만 그란쯔가 쓴 음반해설을 보면 신이 나있다. 애플뮤직에 음원들이 모두 있는 덕분에 며칠은 이 시리즈들을 계속 듣고 있는 중이다. 앨범 표지 그림이 내가 가지고 있는 시디보다 조금 못난 것을 빼면, 곡마다 참여한 뮤지션들의 이름을 모두 잘 적어놓은 점도 좋았고, 내 시디보다 음질도 좋았다.

애플뮤직에서 찾은 같은 앨범.

그래서 플라스틱 상품인 내 오디오시디는 기념품처럼 벽 한 구석에 다시 놓여지고, 69년 전의 기념할만한 녹음을 방금 다운로드한 음원으로,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꽂고 기분좋게 듣고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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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서야 이 시리즈들을 모두 듣고 보니 네 장의 디스크마다 블루스가 있고, 모든 연주자가 한 곡씩 골라 솔로를 진행하는 긴 발라드 메들리도 두 트랙이나 더 있었다. 누군가 도중에 엎질렀는지 물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여유롭게 연주하고는 있지만 무서운 실력자들끼리의 긴장감도 느껴진다. 템포가 빠른 곡에서 각자 네 마디씩 순서대로 주고받는 솔로는 매우 즐겁다. 어느날 오후 내내 옛 재즈를 쉬지 않고 듣고 싶다면 추천할만하다. 

2020년 12월 24일 목요일

옐로우재킷과 빅밴드

 


몇 년 전 펠릭스 파스토리우스의 후임으로 옐로우재킷 멤버가 된 Dane Alderson은 훌륭한 베이시스트이다. 그의 연주가 좋아서 여전히 나는 앨범으로, 동영상으로 옐로우재킷의 음악을 꾸준히 보고 들었다. 올해 연말이 다 되어, 지난 달 첫째 주에 옐로우재킷의 스물 다섯번째 앨범이 나왔다. 그동안 유튜브에서 녹음과 연주 장면이 담긴 짧은 영상을 보아왔는데 드디어 음원이 공개되었다. 기다리고 있던 앨범이어서 반가왔다.

앨범의 제목인 Jackets XL의 XL은 로마숫자 표기로 40이라는 의미이다. 이 밴드의 4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독일 Cologne을 기반으로 오래 활동하고 있는 WDR Big Band와 협연했다. 옐로우재킷의 리듬섹션에 빅밴드 브라스 섹션이 더해졌다. 그리고 열 곡 중 일곱 곡은 바로 멤버인 Bob Mintzer가 편곡하였다. 한 곡은 창단멤버인 Russell Ferrante가, 나머지 두 곡은 Vince Mendoza가 맡았다.

Bob Mintzers는 2016년부터 이 WDR Big Band의 지휘를 맡고 있다. 그리고 이 빅밴드는 작년에 피아니스트 Fred Hersch의 앨범에 참여했는데, 당시 빅밴드의 편곡과 지휘를 맡은 사람은 Vince Mendoza였다. Fred Hersch와 WDR Big Band의 앨범 Begin Again도 아주 좋은 앨범이었다.

옐로우재킷의 스물 다섯번째 앨범은 두 곡을 제외하고 모두 지나온 그들의 앨범 수록곡들을 다시 편곡, 연주한 것이다. 러셀 퍼렌티는 그 중 아홉번째 곡 Coherence를 편곡했다. 이 곡은 옐로우재킷의 2016년 앨범 타이틀곡이었다. 빅밴드 편성으로 다시 연주한 음악 중 가장 정갈하고 숨막히는 편곡이었다. 아름답고 담백하지만 연주자의 입장에서 들어보면 정말 어려운 변박이 군데 군데 나타나고 있었다. 러셀 퍼렌티는 빅밴드 작곡/편곡/지휘자이며 피아니스트인 Maria Schneider 의 편곡을 가져와 사용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것을 위해 그는 마리아 슈나이더의 웹사이트에서 'Hang Gliding'의 악보 패키지를 구입했고, 그것으로 공부하고 연주 동영상을 찾아 보았다고 했다. 이 곡에서는 밥 민처가 실제 소프라노 색소폰을 연주하고 있고, 러셀 역시 신디사이저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정교하게 편곡한 이 음악을 들으며 아주 인상적이고 아름다운 곡으로 변했다고 생각했다.

밥 민처는 대학을 졸업한 뒤 Buddy Rich 빅 밴드와 공연하는 것으로 음악활동을 시작했었다. 80년대에 그는 브렉커 형제와 윌 리, 피터 어스킨, 로저 로젠버그 등과 함께 당시 젊은 재즈 올스타로 구성된 빅 밴드 활동을 했다. 이후 Thad Jones / Mel Lewis Orchestra와 자코 파스토리우스의 Word of Mouth 빅 밴드 멤버로도 활동했다. 빅 밴드 편성으로 이루어진 옐로우재킷의 앨범이라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는 이유이다.

밥 민처는 수십년 동안 EWI도 연주해왔다. 신디사이저 관악기인 이 전자악기(사실은 콘트롤러)를 사용하는 것을 두고 어떤 재즈팬들은 '그것은 재즈가 아니다'라는 말도 해왔다. 전자악기를 사용하는데에 적극적이었던 옐로우재킷의 음악도 '재즈가 아닌' 어떤 것으로 분류하기 좋아했던 그 재즈팬들에게도 이 앨범을 추천해주고 싶다.

이 앨범의 두번째 곡 Dewey는 마일즈 데이비스의 이름 Miles Dewey Davis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 곡에서 들을 수 있는 뮤트 트럼펫 멜로디는 바로 밥 민처가 EWI로 연주한 것이고, 곡의 중간에 나오는 플룻 연주는 그가 EWI의 플룻음색으로 연주한 것을 빅 밴드 멤버들의 실제 플룻 사운드와 섞은 것이다. 러셀 퍼렌티의 신디사이저 솔로가 아주 좋고, 리듬이 현대적으로 바뀐 것도 좋다. 2020년의 빅 밴드 사운드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데인 앨더슨의 베이스 솔로가 빛나는 곡은 첫번째 수록곡 Downtown이다. 알토 색소폰 솔로는 빅밴드 멤버인 Johan Hörlen의 연주이다. 윌 케네디의 드럼 브레이크가 후반부에 나오는데 그 부분도 아주 좋았다. 윌 케네디는 빅 밴드와의 연주를 위해 22인치 베이스드럼을 사용했다고 했었다. 최근 팝음악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라우드 마스터링 - 음량을 크게 하여 음원을 완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앨범의 수록곡들은 상대적으로 볼륨이 작다. 나는 아마도 그 덕분에 드럼의 공간감이 더 좋게 들리고 있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지난 40년 동안 스물 다섯 장의 앨범을 발표했고, 재즈, 팝, 퓨젼, OST, 가스펠 등을 연주해온 옐로우재킷은 맨 처음 기타리스트 로벤 포드의 밴드로 시작했었다. 여전히 그들을 재즈 그룹으로 생각하지 않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도, 이제 옐로우재킷은 역사 속의 어떤 재즈 쿼텟보다도 오랜 기간 활동해온 재즈 밴드가 되었다. 긴 시간 동안 음악활동을 통하여 업적을 이루어 온 이 4인조 그룹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며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더 앨범을 들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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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20일 일요일

재즈 기타 앨범


 

작년에 애플뮤직에서 하모니카 연주자 Toots Thielemans 을 기리는 듀엣 앨범을 발견했다. 이 듀엣 앨범에 담겨있는 연주들이 좋아서 한동안 자주 듣고 있었다. 한동안  새로운 재즈 연주자를 모른채 지냈었다. 자주 찾아보지 않으면 새로운 음악인들의 이름을 하나도 모르게 된다. 나에게는 Yvonnivk Prene이라는 하모니카 연주자의 이름도 생소했지만 기타리스트 Pasquale Grasso 도 낯설었다. 그 음반을 시작으로 나는 이 기타리스트의 연주를 좋아하게 되어 가끔 앨범들을 찾아 들어보고 있었다.

올해에 나왔던 좋은 재즈 음반들 중에서 솔로 기타 연주로 열 두 곡이 담겨있는 Pasquale Grasso 의 이 앨범 Solo Masterpieces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음악을 듣다 보면 특정한 쟝르 음악 연주자에게 매료되는 순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쟝르만의 언어를 그대로 이어 받으면서 자신의 음악성과 악곡에 대한 새로운 태도가 드러나는 연주를 마주치게 되면 조금 바쁜 일이 있어도 우선 잠자코 앉아서 음악이 끝날 때까지 듣게 된다.  이 앨범의 모든 곡이 그랬었다. 파스쿠알레 그라소의 테크닉도 놀랍지만 스탠다드 재즈 음악들을 해석하는 그의 연주는 재즈 기타라고 하면 떠올릴 수 있는 모든 연주자들의 좋은 점을 모아 놓은 것 같았다.

피크와 손가락을 동시에 모두 사용하는 그의 주법은 특별하거나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파스쿠알레 그라소는 완벽한 연주자들이 그렇듯 현을 퉁기는 모든 피킹이 다 자연스럽다. 그는 오른손 새끼 손가락까지 자유롭게 사용할뿐더러 그 힘이 센데, 그 덕분에 순간 순간 더 풍부한 기타 화성을 들을 수 있는 것 같다. 그가 사용하는 기타가 특이하여 검색을 해봤다. 프랑스의 기타 장인인 Bryant Trenier라는 사람이 만든 것이었다. 고전적인 설계로 보이는 외관에 모두 수작업으로 악기를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파스쿠알레 그라소가 사용하는 기타는 트레니에가 그를 위해 만들어 준 파스쿠알레 그라소 모델 (Modello Pasquale Grasso)이었다. 핑거 레스트가 없는 대신에 콘트롤 노브가 브릿지 부분에 달려있는 점이 좋아 보였다. 바디에 따로 구멍을 뚫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간단한 수리가 필요할 때에도 편리할 것 같았다.  http://www.trenierguitars.com/

파스쿠알레 그라소는 2019년 하반기 동안 솔로 기타 음반으로만 네 개의 디지털 EP 를 발표했었다. 그 후에 세 장의 음반들이 더 나왔다고 했다. 나는 아직 전부 다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각 앨범의 제목을 보니 모두 스탠다드 재즈와 위대한 연주자들의 작품들을 연주한 것 같다. 올 겨울에는 그의 연주들을 모두 다 들어보고 싶다. 나는 솔로 기타로 연주되는 재즈 음악은 어쩐지 겨울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왔는데, 그것은 아마 내가 처음 Wes Montgomery의  CD를 구입하고 재즈 기타에 깊이 빠져들었던 계절이 겨울철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파스쿠알레의 이 앨범은 녹음된 전체 사운드도 좋고 악기의 음색도 좋다. 그 사운드는 조 패스처럼 너무 날카롭지도 않고 짐 홀처럼 너무 슬프지도 않다. 어느 날 하루를 골라 스피커로 크게 틀어두고 들어보고 싶은 앨범이다. 그의 스탠다드 시리즈들은 오래된 재즈팬 뿐 아니라, 이제 막 재즈 기타를 듣기 시작했거나 스탠다드 재즈 음악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도 아주 좋은 음반들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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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항상 그랬었지만 음반이나 음원을 유통하는 회사는 일을 대충 하는 경향이 있다. 지니뮤직에서 위의 음반은 '애시드/퓨젼'으로 표시되고 있었다. 틀린 분류이다.

2020년 8월 23일 일요일

쿼텟

 


Joshua Redman 쿼텟의 새 음반을 들었다.
사진은 그의 트위터에서 가져온 것이다. 나는 애플뮤직으로 듣고 있다.
과거의 명반을 다시 발매하는 것 말고, 새로 만들어지는 음반들 중에서 좋은 것을 찾는 것이 점점 어렵다. 재즈 뿐만이 아니라 다른 쟝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앨범은 정말 좋았다. 조금 과장하면 감격같은 기분이 들었다.

1993년에 조슈아 레드맨의 두번째 앨범이 나왔을 때에 무척 놀라고 좋아했었다. 나는 군복무 중 휴가를 나왔을 때에 대학로에 있었던 레코드가게에서 그 음반을 샀다. 음반이 나온지 2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처음에는 Pat Metheny와의 라이브 트랙들이 포함되어 있어서 얼른 CD를 집어들었던 것이었는데, 이내 젊은 색소폰 연주자의 멜로디에 사로잡혔다. 그 이듬해에 조슈아 레드맨 쿼텟이라는 이름으로 다음 앨범 MoodSwing 이 나와있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그 음반은 내가 군복무를 마친 후에 살 수 있었다.  그 쿼텟의 앨범을 들으며 나는 재즈라는 것이 전설로 남아있는 나이 많은 연주자들의 유산에 그치지 않는, 계속 진행하고 있는 음악이라고 확신했었다. 당시 네 명의 젊은 연주자들의 연주는 이미 노인이 된 베테랑들의 그것과 닮아있으면서도 동시에 새로왔다. 그래서 그 이후에도 계속 그 멤버들 그대로 쿼텟이 유지되기를 바라기도 했었다. 그 두 장의 앨범은 Pat Metheny Group의 Imaginary Day와 함께 나의 기억 속에서 '90년대 말의 풍경 중 하나였다.

그 후 스물 여섯 해가 지났고, '94년의 그 앨범 구성원이 다시 모여 연주한 것이 새 앨범 RoundAgain 이다. 네 명이 한 앨범을 위해 모두 모인 것은 MoodSwing 이후 처음이다. 이미 어렸을 때에도 좋은 연주자들이었던 그들의 연주는 이제 어떤 수준 위를 날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 완전히 무르익은 연주를 듣다가 가끔 정신을 차리면 그제서야 연주자들의 테크닉이 들린다.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고 잔가지를 모두 쳐내어 완벽하게 다듬어진 나무들이 조화를 이룬 정원을 구경하는 것 같았다.

세 곡은 조슈아 레드맨, 두 곡은 Brad Mehldau, 나머지 두 곡은 한 개씩 Christian McBride와 Brian Blade가 썼다. 수록된 모든 곡이 좋지만 Brad Mehldau의 Moe Honk 와 조슈아 레드맨의 곡 Silly Little Love Song 이 제일 먼저 좋아졌다. 지금의 재즈음악이 어떻길래 그러느냐고 물으면 잘 표현할 수는 없는데, 이 앨범은 어쩐지 이십여년 전의 향수같은 것도 느껴졌다. 2020년에 나오고 있는 재즈음반들에서는 들어보기 힘든 공기가 그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