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2월 17일 토요일

혀 끝에 피가 맺혔다.

나에게만 일어나는 일들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나에게만 어쩐지 기이한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 같기도 하다.
초자연적이거나 기적적인 일들이 생기는 경우는 절대로 없다. 그냥 뭔가 이상한 일들이다. 그런 이야기들을 늘어놓자면 꽤 많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 막 기억나는 일 중에는 군대에서 부대배치를 받았던 직후, 누군가가 트럭 위에서 쇠파이프를 던지다가 그만 내 얼굴에 명중시켰던 일이었다. 다행히도 오른쪽 눈과 귀 사이에 맞았다. 얼굴이 많이 찢어졌었다. 피를 흘리고 있었다. 곧 치료를 받았고 붕대를 감은채로 며칠 고생을 했다. 만약 날아온 쇠파이프를 눈에 맞았다면 분명 실명했을 것이다. 귀에 맞았다면 지금쯤 나는 음악일은 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기이하다기 보다는 천만다행이었던 일이었다. 그런데 나에게는 기이하게 여겨진다. 나는 그 때 걸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쇠파이프를 던졌던 사람이 정확하게 내 광대뼈 뒷쪽을 겨냥하여 명중시키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우연과 실수와 운이 잘 섞였던 것이리라.

군대에서 몸을 많이 상하였다. 얼굴의 반쪽만 괴상하게 부어오르는 증상도 겪었다. 이것이 발전되어 몇 시간 만에 온몸의 절반만 엄청나게 부어올랐다. 병원에 실려갔다. 아무도 그 원인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아무런 치료도 조치도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사흘 수에 그냥 정상으로 돌아왔다. 똑같은 일이 수 년 후에 또 있었다. 그 때엔 병원에 가서 피검사를 했는데, 아무런 이상을 발견할 수 없었다.

또 언젠가는 늦가을에, 어느 산에 올라가 잠시 앉아서 쉬고 있을 때에 뱀 한 마리가 내 발 위를 지나간 적이 있었다. 게다가 그 뱀은 온몸이 하얀 백사였다. 처음 뱀의 존재를 느꼈을 때에 이미 뱀은 내 왼쪽 신발 위에 대가리를 올려두고 혀를 낼름거리고 있었다. 너무 너무 느리게 다른쪽 발 위로 이동하고 있는 동안 나는 온몸이 얼어붙어버렸다. 나는 뱀을 무서워하기 때문이었다. 식은땀이 났다. 그런데 내가 뱀을 무척 싫어했는데도, 그 순간 코 앞에서 내 발 위를 지나가고 있는 하얀뱀의 아름다움에 잠시 넋을 잃을 뻔 했다. 우아하고 편안해 보였다. 그 색감과 피부의 질감, 그리고 가느다란 소리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뱀이 내 곁을 떠나서 숲 사이로 사라져간 다음에도 나는 일어날 생각을 못했다. 가을 산바람에 섞인 냄새가 구수하다고 생각했다.
산을 내려와 사람들에게 얘기했더니 가을뱀은 모두 독사라고 하거나 발 위를 지나가는데도 물지도 않았다니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나에게 핀잔만 줬다. 게다가 하얀 백사였다고 말했을 때엔 더 이상 내 말을 믿으려 하지도 않는 것 같았다.
그렇겠지, 믿어줄 리가 있나. 너무 이상한 일이었잖아.

조금 전 새벽의 일이다.
어쩌다 보니 약속이 이상하게 되어서 두어 시간 동안 친구를 기다렸다.
겨우 만나서는 몇 분 이야기를 하고 금세 헤어졌다.
이미 시간이 너무 늦어져서 그냥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주 들르는 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다. 밥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식당 아주머니가 얼굴이 창백해져서 어쩔 줄 몰라했다. 식당의 돈을 넣어두는 금고가 송두리째 없어져버렸다는 것이다. 신고를 받고 경찰이 왔다. 그 아주머니는 상황 설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내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서 경찰관에게 주고, 새벽 세 시 이후의 상황과 실내에 있었던 사람들의 인상착의를 설명해줬다.
그리고 그 식당을 나서자마자 담배를 한 개비 피웠고, 자동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그런데 어쩐지 혀 끝이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조금 전까지 멀쩡했던 혀에 뭔가가 달라붙은 것 같았다.
집에 돌아와 거울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혀의 끝에 피가 잔뜩 맺혀서, 까맣게 부풀어올라있었다.
이것을 뾰족한 것으로 터뜨릴까 망설이다가, 그만뒀다.
혀는 입술처럼 혈관덩어리여서 피를 흘리기 시작하면 잘 멎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었다.

이런 일들이 왜 나에게 생기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