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2월 6일 화요일

절이 싫으면 떠나는 것.

새벽에 눈보라를 뚫고 얼어붙은 고속도로를 질주하면서 내가 고민했던 것은 더 참을 것인지 아닌지가 아니었다.
명분, 실리라는 것은 사람들이 제 입맛에 맞도록 만들어내면 그만인 것이다.
그런 것은 계산에 넣을 수도 없었다.
나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위대한 일 정도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부끄럽거나 수치스러운 짓은 아니기를 원했다. 그것이 생각의 시작이었다.
지난 주말 공연을 최고로 만들기 위해 나는 노력했다.
며칠 동안 시간을 들이고 밥을 굶고 비용을 썼다.
집에 돌아와 낯선 앰프의 매뉴얼을 읽고 스무 곡 남짓 악보를 완벽히 외느라 오래 집중했다.
실수할 가능성이 있는 부분은 체크하여 필기해뒀다.
공연장에 있는 메인콘솔을 카메라에 담아와서 세세한 모양을 익혔다.
엔지니어에게 공연시 내가 원하는 사운드에 대해 말하고 의견을 구했다.
일주일도 되지 않았던 베이스 줄을 새것으로 교환했다. 그리고, 리더 때문에 속상해있는 다른 멤버들을 챙기느라 애썼다.

그 결과 공연의 질은 매우 좋았다.
관객들의 반응도 좋았다.
나는 나 혼자만의 시험을 잘 치렀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밴드의 리더가 투자한 것에 비하면 가격대비 최상의 공연이었다.
며칠 후 돌아온 것은 터무니없는 액수의 연주료와 비상식적인 변명이었다.
그는 함께 연주하는 사람들을 폄하했다. 그의 언어에 치졸한 욕심이 드러나고 있었다.
보통 사람들은 떳떳하지 못할 때에 당당한 태도를 보인다.
겁을 내면서도 잔인해지는 것과 비슷하다.
나는 그래서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겨우 나와 같은 연주자가 그 밴드를 그만두는 일이 그렇게 심각한 것이었나.
꼬리를 물고 걸려오는 동료들의 전화와 질문들에 당황스러웠다.
회유도 있고 걱정해주는 말도 있었다. 동조하거나 칭찬하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갑자기 그만두는 바람에 몇 사람들에게 급박한 전화들이 걸려온 모양이었다. 순조로울 수도 있었던 다음 공연들이 위태롭게 되었던 것이었을까. 벌써부터 들려오는 협박과 비난의 단어들. 내가 매장될지도 모른다는 공갈.
어리석은 행동은 몇 번의 반복만으로 악행이 된다.

내가 남에게 어떻게 살아야 옳은가를 말해준다는 것은 시건방진 일이다.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것 아니냐와 같은 말도 하면 안 된다.
그런데 그런 말을 나 자신에게는 매일 해야만 한다.
조금 숨을 돌리고, 충전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지금은 좋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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