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1월 29일 화요일

고작 피눈물인가.


부모가 성당에 다니고 있어서, 어릴적에 영세를 받았던 나에게 아직도 종교적인 경험의 기억은 남아 있다.
지금은 더 이상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 그런데 언젠가 우연히 어느 성당에 들어가 미사에 참여했어야 할 일이 생겼었다. 함께 동행했던 친구가 남들이 하는 일을 따라하느라고 자신있게 영성체를 받아 먹는 것을 보았다. 그는 영세를 받지 않은 사람이었다. 나는 그가 영성체를 받아 먹는 것을 보는 순간 멈칫했었다. 내가 왜 그랬을까. 전혀 그럴 이유가 없었다. 나와 상관 없는 일 아니었나. 내가 무슨, 그 친구를 가로막고 서서 영성체는 아무나 받아 먹을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해줘야 할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또 얼마 전에는 일 때문에 부득이 어느 교회의 예배시간에 끝까지 앉아 있어야 했다.
갑자기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성당의 그것과 닮은 밀가루 조각들을 들고 와서 한 사람씩 나눠주는 것이었다. 그 다음에는 손톱만한 플라스틱 컵에 포도주를 담아와서 사람들에게 먹이는 것도 보았다. 근거도 이유도 없는 허식이었다.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면 천주교회에서의 영성체는 우스꽝스럽지 않은 것일까. 어쩌면 양쪽이 크게 다르지 않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절에서 우담바라가 피었다며 법석을 떤다.
인도의 전설에서 여래나전륜성왕이라는 존재가 나타날 때 피어난다는 꽃이 우담바라라고 들었다. 그것의 실체가 사실은 잠자리 알이거나, 아니면 무슨 곰팡이이거나 간에, 사람들의 불심을 자극하고 마음 따뜻해지는 설화로 사람들의 마음에 옮겨 다니는 것 자체는 고운 일이다. 그런데 그것을 붓다의 계시인양 광고를 하고 등을 판매하고 신자들에게 돈을 걷는 것을 보면 속이 메슥거린다. 원래 사찰에서 하는 일이라는 것이 그렇기는 했다. 사주를 보고 중매를 서주며 등값을 걷어 테니스장을 만드는 일 아니었던가.

지금 미국의 어느 베트남계 성당에 있는 마리아상에서 피눈물이 흐르고 있다는 뉴스가 나온다. 그 소식을 듣고 그곳에 사람들이 줄지어 모이고 있다고 했다.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성모상의 눈에서 붉은 액체가 흐르고 있으니 구경거리이긴 하겠다.
신을 믿는 사람들의 마음에 잔향이 이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하다.
그런데, 그래... 고작 전지전능한 유일신의 체현이 시멘트 조각상에서 피눈물을 나게 만드는 것이란 말인가.
기껏 종교라는 것이, 고작 그런 것인가.
약을 파는 것이 낫지 않겠나.
고작, 고작 피눈물인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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