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9년 11월 18일 월요일

뮤지션과 음악팬

뮤지션과 음악팬

10월에 Sting 이 한국에 와서 공연을 했다. 그 날은 서초동 집회가 한참이었던 토요일이었고, 같은 날 나는 밴드 공연을 하느라 정읍에 다녀왔었다. 그의 홈페이지를 보니 지난 일요일 필라델피아 공연을 끝으로 올해의 투어를 마무리한 모양이었다. 내년 1월에 로스앤젤레스를 시작으로 다시 미국 투어 일정이 적혀있었다.

유튜브에 스팅의 한국공연, 일본공연 영상들이 여러 개 올려져 있었다. 모두 관객이 찍은 것들이므로 앵글이 조금 불안정하고 사운드가 곱지는 않았지만, 직접 보지 못한 공연의 모습을 구경하기에 충분했다.
올 해의 스팅 투어에도 그룹 폴리스 (The Police) 시절의 곡들이 많았다. 셋리스트의 절반은 'The Police Cover'로 채워졌다. 'Message In A Bottle'로 시작하는 무대의 모습은 거친 영상으로 보아도 멋있었다. '51년생이니 이제 곧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인데도 꾸준한 운동으로 다듬어진 다부진 몸에 '57년 프레시젼 베이스를 걸치고 무대에 등장하는 스팅은 여전한 록스타의 모습 그대로였다.

두 명의 기타리스트 중 어린 연주자는 '85년생인 Rufus Miller 로, 3년 전 스팅의 앨범 '57TH & 9TH' 에 참여한 이후 계속 투어 활동을 함께 하고 있다. 그는 무대 가운데에 밴드 마스터인 스팅을 두고 서로 나란히 서있는 Dominic Miller 의 아들이다. 도미닉 밀러의 딸은 기타 치며 노래하는 문신 많은 가수 Misty Miller 이다.

도미닉 밀러가 스팅을 만나 함께 하기 시작했던 것은 1991년 부터이다. 이제 28년이 다 되었다.  1985년 스팅의 첫 솔로음반 부터 함께 했던 Kenny Kirkland 가 세상을 떠나버린 '98년까지, 도미닉 밀러와 케니 커클랜드는 각각 스팅 밴드의 록과 재즈 스타일의 양쪽 축이었다. '96년에 올림픽 공원에서 그 두 사람이 스팅과 함께 무대위에 있었던 공연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야외공연 도중에 둔촌동 일대의 아파트 주민들이 항의하는 바람에 PA 시스템의 볼륨을 줄였어야 했던 그 공연이었다. 당연히 무대 앞의 사운드도 매끄럽지 않았지만 그런 것은 아무 상관 없었던 강한 음악적 경험이었다.

폴리스는 '84년까지 활동했고, 스팅의 솔로 앨범이 나오면서 일 년 쉬었다가 '86년에 한 번 더 활동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해체했다. 약 9년 남짓 기간 동안에 정말 많은 명곡들을 남겼다. 도미닉 밀러는 그 후 폴리스의 활동기간의 세 배 정도를 스팅과 함께 해왔다.
그런데 아직도 가끔은 유튜브나 해외 게시판 등에서, '어째서 폴리스의 곡을 연주할 때에 도미닉 밀러는 앤디 서머즈처럼 하지 못하는가' 라는 댓글을 본다. 아마 그런 음악팬들에게 연주자라는 인격체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세션 연주자란 팬들의 기억 속에 아름답게 각인된 명곡들을 충실하게 재연해야하는 피고용인일 뿐이라는 느낌일까. 지금은 많이 없어졌지만, 스팅의 솔로 작업들은 도미닉 밀러 마음대로 연주하더라도, 폴리스 곡들 만큼은 앤디 서머즈를 공부했어야 했다, 라는 식의 글들은 이십 년 전에도 볼 수 있었다.

올해의 스팅 투어에 Shane Sager 라는 하모니카 연주자가 참여했다. 나는 유튜브에서 그가 스팅과 함께 Fields of Gold 를 연습하는 장면을 구경한 적이 있다. 이번 공연에서 그는 'Englishman In New York' 의 인트로와 간주를 훌륭하게 연주했는데, 그가 불과 몇 달 전까지는 블루스 하프만 연주했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놀랍다. 스팅의 요구로 석 달만에 12음계 하모니카를 연습해야 했다고 그는 말하고 있었다. 그는 이번 투어에서 여러 곡에 하모니카 연주를 곁들이며 좋은 음악을 들려줬다.

그런데 아무도 스팅에게 하모니카는 집어치우고 브랜포드 마살리스의 색소폰을 돌려달라고 요구하지는 않는다. 왜냐면 음악팬들은 한 사람의 뮤지션을 솔로 가수와 록밴드 멤버 시절의 록스타로 나누어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에게는 편곡이 가능한 곡이 따로 있고, 훼손하면 안되는 경전과 같은 음악이 따로 있는 모양이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Hired Gun 들의 처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음악팬들은 스팅이 이제 더 이상 폴리스 시절처럼 피크로 펜더 재즈 베이스를 튕기며 무대 위에서 높이 뛰지 않는다고 불평하지는 않는다. 자연스럽게 나이가 들면서 폴리스 시절의 곡들은 조금씩 템포가 느려졌고, 그의 보컬은 힘을 빼는 대신 그윽해졌다. 그의 베이스 라인은 더 단순해졌으나 견고해졌고, 엄지손가락으로 연주하는 베이스의 음색은 점점 더 아름다와졌다. 훌륭한 뮤지션과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행복은 그런 것을 목격하는 것에서 더 많이 얻어질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