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 16일 금요일

환자들의 하룻밤.


감기 기운이 가득했는데 며칠 불량한 수면을 취했던 것이 좋지 않았다.
이 정도의 기온에 두꺼운 옷을 입는 것도 거추장스러워서 부실하게 입고 다녔던 것도 나빴다.
감기 몸살 때문에 힘이 빠졌다.

밤중에 나는 어린 고양이의 몸에 상처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큰 고양이들에게 두들겨 맞아서 생긴 상처인줄 알았다. 자세히 보니 피부 안쪽에 염증이 생긴 것 같았다. 급히 병원에 데리고 가서야 피부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종양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갑작스런 일이었지만 24시간 동물병원이 그나마 있었다는 것에 고마와했다.


혈액검사를 하도록 허락하고 수술을 위해 입원을 시켰다. 이 꼬마 고양이가 그동안 얼마나 아팠을까. 신경이 많이 쓰였다. 고양이를 병원에 둔 채로 돌아오는 길에 맥이 풀렸었는지 몸살이 심해졌다. 환절기마다 감기로 고생을 했다가 올해엔 그럭 저럭 넘어가는 것 같았어서 너무 방심했었던 탓이다.

아내가 죽을 만들어줘서 겨우 배를 채우고 일하러 나갈 수 있었다. 밤중에 일을 마치고 고양이를 데려오기 위해 다시 병원으로 갔다. 아내는 주기적인 통증이 심하여 힘들어하고 있었고 나는 감기 몸살에, 어린 고양이는 4cm가 넘는 피부종양 수술을 마친 뒤 기운이 빠진채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꼬마 고양이 녀석은 병원의 의사 앞에서는 힘 없이 축 늘어진채로 불쌍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자동차에 데리고 올라타자마자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불평을 하는 정도였다. 자동차가 달리기 시작하자 그것이 심한 불만이 섞인 목소리로 바뀌었다.
나중에는 아예 욕설을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자동차 안에서 난동을 피우기 시작했다. 운전하기에 위험할 정도였다. 아내는 안간힘을 쓰며 꼬맹이를 달래려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우리는 꼬마 고양이가 왜 그러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고양이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뒤이어 아내가 조용한 목소리로 새로운 소식을 말해줬다.
"얘가 아무래도 오줌을 누고 있는듯한 기분인데... "
자동차를 잠시 세우고 실내등을 켰다. 뒤를 돌아보았더니 과연 졸졸졸 아내의 바지 위에 오줌을 누고 있는 중이었다.
꽤 많은 양의 오줌을 누고있던 어린 고양이의 얼굴에는 긴장과 갈등이 해결되는 다양한 표정이 지나가고 있었다.
생리욕구를 해결하자 금세 다시 수술을 마치고 하루를 굶은 어린 고양이로 돌아와 축 늘어져서 금세 졸기 시작했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그 난리를 떨었던 것을 우리 두 사람은 알아들어주지 못하고 있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꼬마 고양이는 두 손으로 어떻게든 머리에 씌어진 기구를 벗겨내려 애를 쓰다가, 화를 내며 고양이 화장실에 가서 한 번 구르고는 그 꼴을 한 채로 졸졸졸 뛰어가 밥그릇을 찾았다. 내일 아침까지는 더 굶어야 한다는 의사의 처방이 있었으므로 밥그릇을 빼앗았다. 솜에 물을 적셔 조금 먹도록 한 다음, 더 뛰어다니다가 수술한 상처가 덧나기라도 할까봐 고양이 이동장 안에 넣어주었다. 그 안에서 얌전히 있을 꼬맹이 고양이가 아니겠지만, 어쨌든.

다른 고양이들은 그들대로 감정이 상한 녀석, 일상이 깨어져 뭔가 불안한 녀석, 어린 놈이 아파하는 것 같아 걱정해주는 녀석으로 나뉘어 집안을 정신없게 했다. 그리고 아내는  통증으로 고생을 하고 나는 감기 몸살이었다. 아내는 고양이 이동장을 끌어다놓고 제일 심한 환자인 꼬맹이를 지켜보랴 다른 고양이들 돌봐주랴 고생스러웠던 밤을 보냈다.

이쯤되면 좀 누워서 엄살을 부리며 몸살을 앓고도 싶긴 한데, 종일 죽만 먹었더니 배도 고프고 잠들어버리기엔 시간이 아까왔다. 이런 저런 환자들의 만 하루가 지났다. 꼬맹이 고양이는 곧 건강해질테고 나머지 고양이들의 기분도 이내 풀어지면 좋겠다. 나는 내일 낮이 되도록 나아지지 않으면 병원에 다녀와야 할 것 같다.

이제야 고양이들은 각자 자리를 잡고 누워 잠을 자기 시작했다. 집안은 새근 새근 조용한 숨소리로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