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 15일 목요일

고양이 순이의 고독.

집안에 고양이가 득실(겨우 네 마리이지만)거리다보니 가끔은 발에 치인다.
사실은 서로 조심하며 살고 있어서 심각하게 부딪히거나 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살다보니 밖에서 돌아오면 한 녀석씩 이름을 불러보며 멀쩡한지를 살피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꼬맹이의 수술에서도 확인했지만 고양이들은 매우 아픈 것이 아니면 통증을 호소하지 않는다. 커텐의 줄을 가지고 놀다가 다리에 감겨 위험할 때도 있고 뛰어다니다가 타박상을 입는 것은 일상다반사이다. 전기줄을 가지고 장난을 한다거나 악기들이 세워진 틈을 뛰어다닌다거나 하는 것을 목격한 이후로는 언제나 걱정이 많다. 한 녀석도 아프지 않고 게으름 피우며 잘 살아줬으면 좋겠다.

밖에서 돌아오면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달려나와 반겨주는 고양이가 한 마리 있다.
내 고양이 순이이다.
내가 집에 오면 방구석에서 잠을 자다가도 뭐라고 웅얼거리며 뛰어나와 맞아준다. 다른 고양이들은 내가 들어오든 나가든 그다지 반응하지 않는다.

순이 때문에 내가 양쪽 어깨에 악기를 걸쳐메고 가방이나 무거운 이펙터 케이스라도 들고 있을 때엔 현관 앞에서 집안으로 들어가는 일이 어려울 때가 있다. 신발도 벗지 못하고 이 녀석을 안아올려 아는체를 해주지 않으면 이내 곧 엘리베이터까지 뛰어나가 응석을 부리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 둘이서 살고 있던 순이에게는 몇 년 사이에 가족이 많아졌다. 당연히 온 집안이 혼자만의 공간이었던 시절은 지나가버렸다. 점점 자신만의 영역이 좁아지더니 지나치게 활발하게 싸돌아다니는 꼬마 고양이까지 들어온 다음에는 아예 은둔자의 모습처럼 되어버렸다. 가장 어두운 구석으로 숨어들어가기도 하고, 뭔가 표정에 넉넉함이 사라졌다. 눈빛은 자주 불편해지기도 하고 만족스럽지 않은 고개짓도 하기 시작했다.
워낙 질투가 많은 샴고양이였는데 이제는 시샘을 드러내는 일도 사치가 되어버렸다.

나는 어쩌다가 고양이 네 마리와 여자 한 분과 살게 되었으며, 순이는 어쩌다가 고양이 세 마리와 사람 둘과 지내게 되었는지는 불가사의한 일이다. 모든 일들은 우연이거나 인연의 연속이었다. 동물들에게 헌신적인 아내의 덕분으로 이들은 모두 평화롭게 뒹굴며 먹고 자고 노닐고는 있지만, 고양이 순이에게는 점점 자신의 것을 잃은 느낌이 되었다.

소외감을 느꼈을 순이는 사뭇 어른이 되어버린 얼굴로 변해졌다. 걷는 모양과 사소한 몸짓도 어딘가 의젓해졌다. 아기처럼 굴던 응석도 그만둔 모양이다. 언제나 뛰어나와 나에게 반가운 인사를 해주는 일 정도는 가끔씩 잊어도 좋으니 나는 순이가 부디 건강하고 행복한 고양이의 일생을 누려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고양이, 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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