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31일 월요일

병원 다니던 날.


바보같이 눈길에 발을 헛디뎠다. 금세 부어오르고 통증이 심했다.
집에 돌아와 더운 물에 담갔다가 주물러보기도 했지만 견딜 수 없이 아팠다.
자고 일어났더니 웬걸, 한 걸음 옮기기도 힘들었다.
전부터 계속 아프고 있던 왼손의 손가락도 치료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병원에 가기로 결심했다.
쌀쌀해진 일요일 오전에 옷을 차려 입고 뒤뚱거리며 문을 연 정형외과를 찾아갔다.
친절함을 배우기엔 평일의 업무가 너무 힘들었다는듯, 일요일에 출근해서 창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여기라는듯, 퉁명스럽기 그지 없는 병원 직원들의 말투가 거슬려서 하마트면 아픈 발로 아무데나 걷어차줄뻔 했다. 접수창구의 여자아이는 원래 교육을 그렇게 받은 것인지, 사람을 바라보지도 않은채 중얼거리며 물었다. "뒷자리요."
나는 정말 못알아들어서, 뒷자리에 함께 와준 아내를 돌아보았다. 그랬더니 두 번째엔 내 얼굴을 쳐다보며, 그러나 여전히 중얼거리듯, 주민번호 뒷자리요, 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겨우 발목을 삐끗했을뿐이지만, 정말 고통을 견디며 병원을 찾아와 접수를 하려는 환자에게도 그렇게 대하고 있었을테니, 원.


말씨가 빠른 의사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발목의 엑스레이 사진을 찍고, 처방을 받았다. 몹시 아픈 주사를 맞았고, 약도 받아 먹었다. 손가락의 문제는 심각하다고 겁을 주고 있었다.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에게나 테니스 선수들에게 흔히 있는 무엇무엇이라는 증상일 확률이 있으니 심하면 수술을 해야 좋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 정밀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고 했다. 몹시 아픈 주사를 맞은 쪽의 궁둥이를 문지르면서 발목의 처치에 대한 값만 치르고 병원을 나섰다.
몇 주 만에 부모님 댁에 들러서 함께 점심을 먹었다. 결국은 어머니의 강한 확신과 막무가내에 이끌려 침을 놓아주는 집에 가게 되었다. 마침 오늘 침놓아주는 집에 가기로 되어있었던 어머니를, 그저 태워다드리고 도망쳐오고 싶었는데,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나는 침을 꽤 무서워한다.) 역시 함께 동행한 아내는, 자신의 살에 스테인레스 재질의 가느다란 쇠꼬챙이가 찔려 박히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생글 생글 웃으며 구경하고 있었다.


어릴 적 부터 발목을 자주 다쳤어서, 침을 맞았던 일이 몇 번 있었는데도 나는 여전히 그것을 두려워한다. 침이라는 것을 두려워한다기보다는 시술을 하는 사람을 미더워하지 않는 것 때문일 것이다. 대부분 자세히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주지도 않을뿐더러, 아파서 찾아온 환자보다 수백명의 살에 침을 찔러본 내가 더 잘 알거든? 이라는 식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침대에 누워 발목과 손가락에 침을 맞기 시작했다. 고통스럽지 않아서 깜박 잠이 들 정도였다.


침을 맞고 집에 돌아왔더니 졸음이 쏟아져서 세 시간을 잤다.
자고 일어났더니 목이 말라서, 부엌으로 가서 물을 한 잔 가득 따라 마시고, 담배를 한 개 들고 재떨이를 찾아 다녔다. 문득, 어랍쇼, 통증을 느끼지 못한채 걸어다니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완전히 나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침의 상태와 비교하면 거의 다 나은 느낌이었다.
저녁을 먹은 후에는 네크의 상태가 많이 나빠져 있던 베이스 기타를 손보았다. 다시 조립하고, 조율한 뒤에, 조금 전까지 연습을 해보고 있었는데, 신기하다. 손가락의 통증이 없어졌다. 부어있던 왼손도 가라앉아서 이제 오른손과 비슷해졌다. 팔목도 멀쩡하고 움직임도 편하다. 그것참... 진통의 비결이 궁금하다.


정형외과의 주사도 맞아뒀고, 왼발과 왼손에 여러개의 침도 맞아두었으니 이제 곧 낫겠지.
모처럼 추운 겨울날씨가 반갑다. 몸이 나아지니까 반가와진다. 아침 무렵만 하더라도, 뭐가 이렇게 추운 것이냐고 투덜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