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26일 목요일

일본으로

 

이 블로그에 자주 써오고 있었다시피, 나는 멍청하다. 기본적으로 셈을 못하고, 빠르게 상황에 대처하지도 못한다. 겸양이나 수사가 아니라, 정말 그러하고, 아주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그랬다.

자신이 둔하고 멍청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이 나의 몇 안되는 장점이다. 늘 배우는 데 느리고, 남보다 더 애쓰지 않으면 남이 하는만큼 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번 일본행과 안양, 광주 공연으로 이어지는 사나흘 동안의 여행을 위해 미리 많이 공부했다.

구글 지도를 열어놓고 일본어를 전혀 알지 못하는 나 혼자 어떻게 목적지까지 잘 찾아 갈 것인지, 움직일 경로를 찾았다. 경로와 교통편을 정한 다음엔 구글 맵을 몇 주 동안 반복하여 보면서 길을 외웠다. 스트릿 뷰 기능이 매우 유용했다. 혼자 외국에 가는 것도 처음이고, 빠듯한 시간 안에 반드시 돌아와야 하는 일정을 해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사진으로 지형지물을 외우고, 지도를 보며 길을 머리 속에 담아둔 다음 지난 10개월 사이에 웹에 올려진 정보를 취합하여 나에게 필요한 것들을 전부 메모했다.

6:20 새벽에 한 번 깨었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고양이 깜이가 곁에 다가와 내 베게에 기대어 같이 잠들었다. 어둠 속에서 깜이가 나를 보는 표정이 어쩐지 걱정하는 얼굴 같았다. 저 인간이 제대로 잘 할 수 있을까, 라고 하는 것이었을까.

13:10 김포공항 국제선 주차빌딩에 주차를 했다. 나흘 전부터 예약할 수 있는 자리는 없었다. 집에서 출발할 때 지하주차장은 '만석'이라고 내비게이션 앱이 알려준 덕분에 망설이지 않고 주차빌딩으로 갔는데, 마침 자리를 떠나는 차량이 있었다. 일층에 여유롭게 주차하고 공항으로 들어가 출국수속을 했다. 오늘의 첫끼는 탑승구 근처 커피집에서 당근샌드위치와 찬 커피로 먹었다.
미리 신청해둔 로밍 서비스를 확인하고, 일본에 도착하여 해야하는 일과 움직일 동선을 다시 체크했다. 그런데 이미 너무 여러번 복습을 해버려서 다시 확인할 것들이 별로 없었다.
16:20 비행기 이륙. 17:35 교토와 나고야 사이를 지나가고 있었다. 기내식으로 나온 밥, 돼지고기, 빵, 과일조각과 오렌지 쥬스를 먹었고, 닭고기는 남겼다. 17:40 겨우 5분 사이에 해가 지고 창밖이 어두워졌다. 동남쪽으로 날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19:00 일본에 도착했다. 입국수속과 세관수속은 미리 등록해둔 QR코드로 통과했다. 입국수속 창구에서 나오자마자 오른쪽 화장실 앞에 Aeon Bank ATM이 있다고 했다. 과연 거기에 기계가 있었다. 트래블월렛 카드를 넣고 미리 담아두었던 엔화를 인출했다.
19:23 하네다공항 3터미널 일층, 리무진 버스 타는 곳에 도착했다. 우선 승차권부터 사는 것이 순서였을텐데, 눈앞에 흡연실이 제일 먼저 보였다. 나는 아이코스를 사용하는데, 일본어를 쓰는 노인과 영어를 쓰는 백인 청년이 번갈아 가며 문을 열고 나에게 라이터가 있는지 물었다. 일본인 노인에게는 영어로 대답하고 두번째 다가온 백인 청년에게는 나도 모르게 '스미마셍'이라고 해버렸다. 과연 멍청하지 않은가 하였다.

나카노역까지 가는 승차권도 샀고, 자동판매기에서 물도 한 병 사서 마셨다. 아내가 집에서 챙겨준 엔화 동전들이 유용했다. 승차권은 정류장 앞에 있는 자동판매기에서 구입했다.
20:10 리무진 버스 출발.

몇 년 전 와보았던 신주쿠 거리를 지나고.
21:12 나카노역 남쪽 광장에 도착. 이곳에서 대각선으로 길을 건너면 나카노역이 나온다. 구글맵을 하도 보았더니 엊그제 와보았던 곳처럼 익숙했다.

21:18 나카노 역에서 승차권을 사고, 한 정거장 지나 내렸다. 

21:26 코엔지 역에 도착. 이 날 '중앙선'이 지연되고 혼잡했다고 하더니 늦은 시각인데도 사람이 많았다. 

21:40 예약해둔 호텔에 도착했다. 무인시스템으로 체크인. 집에서 출발한지 아홉시간 사십분 만에 숙소에 들어갔다. 이것으로 첫날 내가 해야했던 일은 끝. 아내에게 전화하여 잘 도착했다고 알려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