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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20일 금요일

오후에 친구와.

 


서정원을 만났고, 커피를 주문하여 자리에 마주 앉자 그는 자기가 직접 만든 쿠키를 주머니에서 꺼내어 내밀었다. 맛있었다. 그가 혼자 집에서 빵과 과자를 만들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직접 맛보기는 처음이었다. 나는 하지 못하는 일이어서 여러번 감탄해주고 있었다.

친구로부터 그가 최근에 보았던 과학 다큐멘터리의 내용을 들었다. 뇌과학에 관한 이야기였다. 사람이 도덕, 규율, 인간성을 배반하는 선택을 반복하다보면 그런 결정이 유발할 수 있는 죄의식이나 미안한 감정에 스스로 무뎌지도록 뇌가 작용하기 시작한다는 이야기였다. 죄의식이라는 감정은 결국 뇌의 주인을 괴롭게 만드는 부정적인 것이기 때문에 뇌에서는 그 반응을 무디게 만들어 자신을 보호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과학의 성과라고 하니 과연 그랬었군, 하며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조금 더 생각해보면 과학이 밝혀내어 알려주기 이전에도 인간이 그런 형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류는 아마 고대로부터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외에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철학, 규범, 종교의 모습으로 자연이 지닌 본래의 이기심에서 진보하고자 하는 노력은 더디지만 멈춘 적이 없었다. 그렇게 애쓴 결과 겨우 요만큼일 뿐이지만 여기까지라도 온 것 아닐까. 가장 쉽고 무책임한 행위는 그저 남을 탓하는 것이라고 생각해보게 되었다.

올해가 되어 처음 만났던 오랜 친구로부터 얻게 되었던 교훈이었다. 그리고 쿠키는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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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22일 금요일

밤중에 옥상 위에서.

 


부평에 있는 어느 극장의 옥상에서 연주했다. 부평 뮤직플로우 페스티벌이라는 새로운 음악 축제에 참여하는 것이었는데, 친구들과 함께 연주하는 것을 촬영했다. 우리는 지난 해에 이정선 형님과 그분의 노래를 다시 녹음했었다. 오늘은 그분을 가운데에 모시고 두 곡을 연주했다.

금요일 저녁에 도로 정체가 심할 것을 각오는 했었다. 하지만 정말 막혀도 너무 많이 막혔었다. 한참 동안 외곽순환도로를 지나 부평에 도착했지만 그곳에서부터 약속장소까지 가는 데에 다시 한 시간이나 걸렸다. 두 시간 반을 운전하여 겨우 부평 문화센터에 도착했다.

무대를 마련하고 촬영과 녹음을 맡은 스탭들이 어두운 옥상 위에서 분주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낮부터 계속 촬영이 이어지고 있었다고 들었다. 옥상 위에는 바람이 많이 불었다. 나는 당연히 외투를 벗고 연주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웃옷을 벗었고, 촬영이 끝날 때까지 벌벌 떨며 연주했다. 며칠 전 전주에서 야외공연을 했던 것보다 더 추웠다. 손가락 끝에 감각이 없었다.


일을 마치고 짐을 챙겨 주차장으로 향하면서 이 장면을 찍었다. 춥고 손이 시려워 고생스러웠지만 연주하며 밤하늘에 떠있는 고운 달을 계속 볼 수 있었다. 달무리 주변에 별도 빛나던데, 하늘이 맑았던 모양이었다. 모든 일이 끝난 뒤 어둡고 고요한 옥상 위에서 부지런히 정리하고 짐을 챙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움직이는 그림자들처럼 보였다.

집에 돌아올 때에는 강변북로를 따라 쾌적하게 달려올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작은 사고들이 많아서 다시 도로 정체를 경험했다. 그래서 돌아올 때에도 다시 두 시간 가까이 운전. 그런데 생각해보면 길 위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평범한 일상이었던 때가 있었다. 다시 악기를 싣고 운전하고 연주하러 다닐 수 있는 것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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