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월 6일 일요일

순이는 졸고 있었다.


순이는 악기 곁에서 졸고 있다.
나는 쓰는 일이 뜻대로 안되어 머리속이 엉킨듯 하더니, 그만 잠시 엎드려 졸고 말았다.

저녁에, 학생들의 단체학습 - 앙상블 수업을 마치고 다음 약속시간이 빠듯하여 서둘러 주차장에 나왔다. 문득 아이팟을 지하연습실에 두고 온 것을 깨닫고, 시동을 걸어둔채로 뛰어 올라가 열쇠를 빌려 지하로 뛰어내려갔다. 허둥지둥, 이중으로 되어있는 쇠문을 열고 닫으며 물건을 찾아서, 다시 2층으로 뛰어가 열쇠를 돌려드리고,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차문을 열고 자동차에 올라타려다, 이번엔 케이블을 두고 나온 것이 생각났다.

다시 뛰어올라가 열쇠를 빌려서 뛰어내려가 문을 두 개 열고 케이블을 챙겨들고 또 뛰어가서 열쇠를 돌려주고... 헉헉거리며 주차장으로 돌아왔더니 몸이 더워졌다. 출발한 후에는 결국 복사해뒀던 악보를 몇 장 잃어버린 것을 알게되었다. 나는 기운이 빠졌다. 클러치를 밟다가 통증을 느껴서, 그제서야 아직 다 낫지 않은 발목으로 계단을 뛰어다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자꾸만 기억력은 떨어지고, 언제나 물건을 잃어버리고, 나빠지는 머리때문에 손과 발이 고생을 하는 것이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글을 쓰거나 단순한 문장들을 옮기는 일도 쉽게 망쳐버린다. 쓰고 나서 확인해보면 문장도 안되고, 윗줄과 아랫줄의 내용이 연결도 되지 않는다. 무의식의 흐름도 아니고 원... 분열증에 가까운 상태다. 악보를 그릴때엔 어디에 넋을 놓고 있는 것인지 높은음자리표에는 베이스를 그리고 낮은음자리표에는 멜로디를 그린 적도 있다. 허무한 실수의 반복으로 시간을 잡아먹은후 비로소 뭔가 시작하려고 하면 진이 빠지고 머리속은 텅 비어버린다.

순이는 여전히 곁에서 불편하게 졸고 있다.
내가 일찍 잠을 잤으면 순이도 편한 자리에서 몸을 펴고 잘 자고 있었을 것이다.
고양이에게 미안하고, 언제나 고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