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월 28일 월요일

손으로.


평소엔 학생들에게 컴퓨터로 악보를 출력하여 나눠준다. 그런데 컴퓨터에서 만든 악보는 바보스러워서, 속도는 빠르고 힘이 덜 들지만 학생들에게 나눠준 뒤 설명하고 수정해주느라 바빴다.

학생들의 공연을 위해 몇 곡을 새로 편곡하여야 해서, 오선지를 쌓아두고 악보를 그리기 시작했다. 한 곡에 쓰여질 악기별로 모든 악보를 손으로 그렸다. 내가 이것을 맨 처음 했었을 때가 생각났다. 오래전에 다음날 연주할 클럽에서 쓰일 곡 하나를 악기별로 한 장씩, 내딴엔 열심히 악보를 그려서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들고 갔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미처 리허설을 할 시간이 없었어서 그저 테이블에 앉아 고개를 뜨덕이며, 음, 여기에서는 이렇게 하면 된다는 말이지? 어쩌구... 하면서 사람들과 의논만 했다. 그리고 무대에 올라갔을때에,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었다. 
내가 그려간 것이 얼마나 엉터리 악보였는지, 도저히 음악이라고 할 수 없는 소음만 나고 있었던 것이었다. 동료들의 임기응변으로 곧 악보를 무시하고 눈치껏 곡을 끝낼 수 있었지만, 나는 창피하고 화도 나고 부끄러워서 죽고 싶었다. 그 다음날 기보법 책을 몇 권 사서 한참을 넘겨보며 공부했었다. 그래도 그날의 망신이 두려워서 한동안은 악보를 그려서 가지고 나갈 생각을 못했었다.

나처럼 음악교육을 받지 않은 연주자들이 더러 있을 것이다. 실제 나의 rocker 친구들은 악보를 전혀 쓰지도 보지도 않으면서도 복잡하고 긴 여러 곡들의 전체를 다 암보하고 있다. 그들의 연주를 보면 즐거워지고 감탄하게 된다. 왜냐면 이미 악보라는 것에 의존하지 않으므로 연주하는 음악의 본 모양을 제대로 외고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소리와 기분에 훨씬 더 충실해질 수 있으므로 악보를 펴두고 연주하는 이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feeling이 있다.

나의 경우에도 악보는 시놉시스 정도의 개념일 뿐, 기본적으로는 음악을 외는 것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공연중에 악보를 읽으며 연주한다는 사람들을 불신하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악보에 충실해야하는 클래시컬 음악과 같이 광대하고 드넓은 음의 바다를 헤엄치는 것도 아니면서, 길어야 몇 분 되지 않는 곡들 조차 일일이 악보에 의존하는 사람들은 험하게 말하자면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런데 좋아하는 음악, 몸담고 있는 밴드에서만 연주하며 지낸다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직업연주자에게는 악보를 읽어내야만 하는 것이 생활이 된다. 아무 것도 모르던 시절, 방송 연주에 불려갔을때에 많이 당황했었다. 방송사에서 내민 악보에는 코드 네임이 없었다. 베이스의 음들을 전부 음표로만 그려놓은데다가 분명히 컴퓨터 따위로 출력했던 모양이어서, 네 줄의 베이스에서는 낼 수 없는 낮은 C음이 마구 찍혀 있었다. 부랴 부랴 리허설 도중 각 마디의 첫 음을 유추하여 대충의 코드를 그려놓고, 몰래 화장실에 가서 자세한 코드 네임을 또 그려놓았다. 그러나 방송 녹음이 시작되기 직전에 또 한 번 큰 낭패를 보았었다. 그 사이에 몇 가지가 수정되어서 새 악보를 나눠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결국 나는 코드네임 없이 초견으로 연주해야했다. 그날의 연주는 TV에서도 방영되었는데, 나는 그것을 시청한 후 심각하게 자살을 고려할 뻔 했었다. 아무도 몰랐을지도 모르지만, 내 베이스 소리는 주눅이 잔뜩 든채로, 거의 모든 부분에서 틀리게 연주되어지고 있었다.

나이 많은 선배형님들에게 참 많은 것을 배웠다. 평생 연주해온 그 분들은 심지어 빈 오선지를 가져다놓고 둘러 앉아서, 각자의 맡은 부분을 의논하며 몇 개의 음표를 그려놓는 것 만으로도 리허설이 가능했다. 여러 분의 선배형님들과의 연주를 거치면서 나는 슬쩍 슬쩍 그분들의 악보를 얻어와서는 집에와서 열심히 베껴그리는 것을 수업으로 삼았다. 그런 덕분에 이제는 겨우 읽고 쓰는 것이 가능한 악보문맹 신세를 벗은 모양이 되었다.

학생들에게 줄 악보들을 그리면서도 나는 복잡해졌다. 악보가 연주될 음악의 모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줘야 하기도 하고, 동시에 작곡/편곡자의 의도에 충실해야 할 의무도 말해줘야 한다. 그들중 대부분은 귀찮아하고 어려워한다. 귀에 의존하고 feeling에 따라야 한다면 뭐하러 이런 악보를 나눠주는거냐고 묻는 친구도 있고, 음표를 정확히 읽겠다고 어설픈 배우가 희곡을 읽는 것 처럼 바보같은 연주를 하는 아이들도 있다. 그래서 개인이 알아서 해야할 부분을 항상 비워두며 그려주는데, 용케도 이것을 간파하는 학생들을 만날 때도 있다.

지난 해 마지막 달에, 친구가 프로듀스한 음반을 녹음하러 갔을때에 그가 나에게 보내준 악보들이 기억났다. 가장 친절하고 세심하게 그려진 악보였는데, 보내준 악보들을 보며 연습을 해서 녹음실에 갔다. 그런데 녹음을 시작하기 직전 내 친구가 넌지시 말해줬다. '알지? 악보는 됐고, 잘 알아서 만들어 쳐보라구.'
부담은 몇 배로 증가했지만, 듣기 좋은 요구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