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21일 금요일

바람부는 날의 음악.


사진은 최근 경매사이트에 올라와있던 카세트테이프의 표지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난 고양이가 창가에 앉아서 하염없이 하늘을 보고 있길래 무엇을 하는가 했더니, 바람에 이리 저리 날리고 있는 나뭇잎들이 보였다. 고층의 아파트 유리창에 와서 부딪히고는 다시 날려가버리는 나뭇잎들.

낙엽 落葉 이라고 해버리면 ‘떨어지는 잎사귀’일텐데, 이것은 쏘아올려지듯 속절없이 빙글 빙글 돌며 날려지고 있는 중이어서 나뭇잎이라고만 해야하는가, 따위의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고양이와 나란히 앉아 미칠듯이 쏘아올려지고 있는 나뭇잎들을 구경하다가, Brian Melvin의 음반을 틀어두었었다. 그날 이후 두 주일 가까이 계속 그 음반을 듣게 되고 있다.
드러머 브라이언 멜빈의 음반이라고는 하지만 Jaco Pastorius, Jon Davis가 함께 연주한 트리오 앨범이어서 오히려 자코라는 연주자의 이름으로 더 알려져있는지도 모른다.

십여년 전 피아노를 치는 친구가 어느날 이 음반을 알려줬을 때에야 겨우 듣게 되었던 나는 여기에 담겨있는 자코의 연주를 듣고 놀랐었다. 기뻐했었다.
이 앨범은 자코가 녹음한 음반들중 제일 명료한 음질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좋은 소리가 담겨있는 음반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스탠다드 재즈로 채워져있어서 언제나 아끼는 앨범이 되었다.
게다가 자코가 이 앨범에서 연주하고 있는 것은 플렛이 있는 베이스이다. 그의 디스코그래피를 모두 뒤져도 찾기 어려운 플렛티드 베이스의 음색인데, 처음에는 아무 신경도 쓰지 않고 듣고 있었다. 자연스럽고, 착하고, 행복하게 연주하고 있는 느낌이다. 현실로 말하자면 심하게 망가져있었던 심신이었을 무렵의 그였지만, 브라이언 멜빈의 설명처럼 이 음반을 녹음할 무렵 만큼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마치 ‘드럼과 피아노를 위해서 연주하러 왔어’, 라고 말하고 있는 것 처럼 따뜻하고 충실하게 연주하고 있는 음반이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녹음했던 음반이었고 사망했던 이듬해에 발표되었었다.

그가 죽은지 20년도 더 지나버렸다. 그가 남겨준 음악을 들으며 바람이 몹시도 부는 아침에 나는 겨우 기운을 얻는다. 부쩍 추워진 요즘에, 이 음반은 온기를 느끼게 해주고 웃을 수 있게도 해줬다. 거위털 외투보다도 고마운 음악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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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레코드가게에서 지구레코드에서 나왔던 이 음반의 한국산 라이센스반을 보았었다. 그 레코드는 어찌 어찌 흘러서 그곳까지 가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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