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9일 화요일

내가 아끼는 음반.


우연하게 좋은 음반을 발견할 때가 있다. 아무 정보도 가지고 있는 것이 없어서 고민을 하다가, 직감을 믿어보자, 하고 덜컥 사버리는 경우이다. 어차피 확률은 반이다. 좋거나 나쁘거나.

무려 15년도 더 전의 일이었다. 재즈 음반을 많이 가지고 있던 단골 레코드점에서 스웨덴의 색소폰 연주자 Arne Domnérus와 그의 기타리스트 Rune Gustafsson의 듀엣 음반인 Sketches of Standards를 골랐을 때에, 나는 한참을 망설였다. 음악을 많이 알고 있던 직원 분은 마침 자리를 비우고 없었고, 누구에게 이 음반에 대하여 물어볼 수가 없었다. 연주자들의 이름은 발음하기도 어려운 먼 이국의 것들이고 거기에다 이렇게 마이너 레이블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자켓이라니.
그런데도 골라서 손에 쥐고 망설이고 있었던 이유는 뒷면에 적혀있던 열 세 곡의 곡명들 때문이었다.

한참 재즈를 배우고 싶어 안달이 나있었지만 도움을 받을 사람이 없었던 나는 거의 대부분의 용돈을 시디를 구입하는데에 다 써버리기 일쑤였다. 우선은 스탠다드 곡들이 많이 담긴 음반을 고르는데에 열중하고 있었는데, 이 값싸보이는 음반에는 재즈 스탠다드가 가득 담겨있었던 것이다.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첫번째 트랙인 Blowing In The Wind로, 밥 딜런의 노래였다. 그 곡을 기타와 색소폰이라는 악기 두 개로 연주했다... 궁금해서 견딜 수 없어하고 있었다.

아직도 이 두 연주자에 대해서 자세히는 알지 못한다. 겨우 인터넷의 도움으로 몇 개의 사이트를 찾아 읽었을 뿐이고, 이미지 검색을 통해 그동안 두 분 모두 많이 늙어버린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연주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Rune Gustafsson을 Arne Domnérus의 기타리스트라고 했던 이유는, 그가 Arne 아저씨의 밴드에서 오랜 기간 연주를 했던 파트너였기 때문이다.
두 사람 모두 1950년대 초반 부터 밴드의 리더로서, 세션 연주자로서 활동해왔으므로 능숙한 연주는 비길데 없다. 밥 딜런의 곡 외에 Rune Gustafsson의 오리지널 곡이 한 곡, 그 외엔 모두 듀크 엘링턴의 음악들 위주의 스탠다드 재즈 넘버들로 채워져있다. 여유롭고 따뜻하며 능글맞을 정도로 원숙한 두 연주자의 조화로운 멜로디를 들으며 눈을 감으면, 오래된 살롱에서 실내악을 듣는 것 같기도 하다가, 한 여름에 풀밭에 누운채 거리의 악사들이 연주하는 음악을 듣는 것 같기도 하다.
모든 곡이 아름답게 표현되고 살랑거리고 있으면서도 스윙하고 있다. 색소폰 연주자 Arne는 자주 클라리넷으로 바꿔 불기도 하고 있는데 그 음색과 호흡이 사람을 편안하게 하고 슬프게 한다. 화음과 워킹베이스, 솔로 멜로디를 자유롭게 오가며 연주해주고 있는 Rune Gustafsson의 기타는 노련하지만 상냥하기 그지 없다.

생각난 김에 이 음반에 대하여 알고 싶어서 검색을 해보고 있었는데, 덴마아크에서 만든 이 음반은 이제 더 이상 재고가 없는 모양이었다. 아마 처음부터 많은 갯수의 카피를 찍어두지도 않았던 것 같다. 두 사람의 다른 음반이 보이던데 역시 리뷰의 평도 좋고 음질도 좋다고 하여, 구입할 음반 목록에 넣어두었다.
안개가 자욱했던 밤길, 귀가하며 기억해낸 이 음반을 시디플레이어에 걸어두고 볼륨을 높였더니 몸과 마음이 푸근해져왔다. 한 시간 가까이의 조용한 기쁨이 필요하면 다시 걸어둘 음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