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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30일 월요일

진주에서 공연

 

1월 29일에 진주 경남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을 했다.

리허설을 시작하기 전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지난 몇 주 동안 나는 다시 이펙터들을 새로 배열하고 페달보드 위에 연결하여 한참을 연습했다. 전에는 해보지 않았던 순서로 꾸며 보았다. 이것들을 통과한 악기 소리가 항상 좋을 수 있도록 오래 준비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악기를 조율하고 소리를 내보는 순간 제대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컴프레서 페달의 소리가 영 이상했다. 재빨리 노브를 조정하면 금세 해결할 수 있는 일이기는 했지만, 그렇게 하려면 납득할 이유가 필요했다. 내가 집에서 시간을 들여 맞춰두었던 것이 틀렸었던 것인지, 케이블 어딘가에 이상이 생긴 것인지, 극장에 놓인 앰프와 모니터 스피커 때문인지를 판단할 수 있어야 새로 조정하는 값을 신뢰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은 내가 나를 신뢰할 수 있느냐의 문제였을 수도 있겠다.

결국은 컴프레서의 아웃/인 노브를 대충 다시 만져서 소리는 잘 나오게 해두고 시작할 수 있었다. 나머지 페달들도 연습했던 그대로 좋은 소리를 내줬다. 어찌어찌 공연은 마쳤지만 왜 그런 문제가 생겼는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좀 더 공부해서 내가 원하는 소리를 항상 얻을 수 있도록 하고 싶어졌다.

공연을 삼십분 앞두고 나는 무대에서 내려가 객석 사이의 통로를 따라 맨 위에 있는 콘트롤룸에 찾아갔다. 엔지니어를 찾아 리허설을 할 때에 내가 듣고 있던 음향 상황을 설명하고 두세 가지를 다시 주문했다. 그가 빠르게 알아듣고 내가 원하는대로 해주었던 덕분에 편안한 상태에서 두 시간 공연을 마칠 수 있었다. 이런 일도 예전엔 귀찮아서 하지 않았었다. 지금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 없으니, 가능한 최적의 상태에서 가장 좋은 소리를 내며 연주하고 싶다.


2022년 12월 19일 월요일

월드컵, 녹음실

자정에 월드컵 결승중계를 보기 시작할 때엔, 중계가 끝난 후 두 시쯤 잠들면 아침에 일찍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르헨티나와 프랑스의 결승 경기는 예상보다 더 대단한 게임이었다. 서로 두 점씩 얻고 연장전에서 다시 한 골씩 넣어 또 한 번 동점, 결국은 승부차기까지. 세 시간짜리 스포츠 픽션을 보는 기분이었다. 결국 시상식까지 다 보고... 네 시 반이 넘어서야 잠들었다.

도로가 막힐 것이라고 내비게이션이 겁을 주길래 알람을 조금 더 이르게 맞춰두고 깨었다. 녹음을 해야 하는데 잠이 모자라 집중력이 흐려질까봐 평소보다 진하게 커피를 마셨고, 배가 부르면 안 될 것 같아서 음식은 조금만 먹고 출발했다.



녹음하는 동안엔 커피를 석 잔 더 마셨다. 녹음할 내용을 준비할 시간이 넉넉했던 덕분에 그동안 집에서 예습을 많이 할 수 있었고 그것이 도움이 되었다. 세 개의 악기를 곡마다 어울리게 맞추어 사용했다. 가습기를 새로 구입하여 악기를 잘 관리했던 보람이 있었다. 악기들 상태가 좋아서 연주하는 데 불편하지 않았다.

나는 오늘 내가 맡은 부분을 모두 완성할 수 있었다. 다시 악기들을 메고 들고 집으로 왔는데 밤 아홉시에 이미 지하주차장엔 자리가 없었다. 야외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가방 두 개에 악기가방 세 개를 동시에 짊어지고 걷고 있었더니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고 있던 이웃사람들이 내가 지나가는 모습을 구경하였다.

집에 오는 중에 한 곡을 다른 버젼으로 한 번 더 녹음해보자는 연락을 받았다. 내일은 좀 여유있게 가도 될 것이니 오늘은 깊이 잠들 수 있으면 좋겠다. 잠이 부족하여 힘들었지만, 심야에 보았던 월드컵 결승 경기는 생중계로 보았던 보람이 있었다.



2022년 12월 7일 수요일

한 해를 마치는 공연

 


화요일에 올해의 마지막 공연을 했다. 2019년에 이곳에서 송년 공연을 한 뒤에 판데믹 두 해 동안 하지 못했다가 이번에 다시 연주할 수 있었다.

악기를 두 개 가져가서 리허설을 해보고 한 개만 사용하기로 했다. 패시브 악기의 네크 상태가 약간 안좋았기 때문이었다. 자동차에 악기를 다시 가져다 두고 오는 나를 함께 갔던 아내가 이상하게 보는 것 같았다. 쓰지도 않을 것을 무겁게 왜 들고 온 건가, 했는가 보다.

연주를 하지 못하고 지냈던 기간이 그렇게 길어질줄은 몰랐었다. 다시 공연을 하러 한 해 동안 여러 지역을 다니는 일은 피로했지만 힘들게 여겨지지 않았다. 리허설을 하면서 우리가 특별하지도 않은 일상을 유지하는 것이 대수로운 일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두 시간 공연을 마치고 아내와 함께 집에 돌아올 때에 어딘가 정신이 멍해져서 두 번이나 길을 잘못 들었다.

2022년 11월 26일 토요일

광주에 다녀왔다

 


광주 5・18 기념문화센터에서 공연을 했다. 왕복 여덟 시간 운전하는 일이, 이젠 솔직히 힘이 들었다. 리허설을 마친 뒤에 자동차 안에서 삼십분 동안 얕은 잠을 잤다. 짧은 휴식이었지만 나에게 도움이 되었다. 함께 갔던 아내는 그곳에 전시 중이었던 사진전을 보고 주변의 거리를 산책하기도 했다. 나는 도로와 공연장 대기실 외에는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 하루를 보냈다.


공연은 두 시간을 넘게 이어졌다. 나는 공연의 절반 동안은 높은 의자에 앉아서  연주했다. 의자가 준비되었던 덕분에 더 집중할 수 있었고 덜 힘들어할 수 있었다.

부친의 입원과 수술을 위해 병실에서 이틀 밤을 새웠던 이후, 집에 돌아와 제대로 잠을 못 자고 있었다. 고약한 꿈을 꾸고 깨어나 다시 잠들지 못한 적이 많았다. 스트레스에 취약하여 몸이 힘든 것인지 체력이 부족하여 스트레스를 더 심하게 겪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안정을 취하고 쉬고 싶었다.

공연을 마친 후 곧 출발하여 집에 돌아왔을 때엔 자정이 넘었다. 다음 날 아침에 건강검진이 예약되어 있었기 때문에 물도 마시지 않아야 했다. 완전히 지쳐서 아침까지 잘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또 다시 나쁜 꿈을 꾸고 새벽에 깨어나버렸다. 건강검진을 하러 가서는 몽롱한 상태로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도 잘 생각이 나지 않는 오전 시간을 보냈다. 내 시력이 전 보다 더 나빠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밤중에 운전하는 일이 유난히 힘들었던 것은 아마도 눈이 더 나빠졌기 때문이었나 보다. 새 안경을 사야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 달의 일정들이 거의 끝나가고, 이제 곧 십이월이 된다. 한 해가 다 지나갔다. 시간은 점점 더 빠르게 달려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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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17일 목요일

철원에서 공연.

 

지난 달 마지막 날에 철원에서 공연을 했었다. 그리고 두어 주 넘게 시간이 흘렀다.

공연은 월요일이었고, 이틀 전 밤중에 끔찍한 참사가 일어났었기 때문에 거리엔 무거운 분위기가 가득했다. 원래의 연주할 목록을 전부 바꾸어 어쿠스틱 기타 위주로 차분한 곡들을 새로 골라 연주하기로 했다. 의자에 앉아서 공연 전체를 연주해본 것은 몇 년 만의 일이었다. 작은 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도 비슷한 마음이었던 것 같았다.

세월호를 기리는 실리콘으로 만든 노란 리본을 악기 가방에 매달고 다닌지 여덟 해가 지나가고 있다. 악기 가방에 붙어있는 노란 리본이 유난히 기운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2022년 10월 22일 토요일

문경에서


도로가 막힐 것을 걱정하여 서둘러 문경으로 출발했다. 오래 운전하여 멀리 가서 연주하고 바로 돌아오는 일정일 땐 속이 더부룩한 것이 싫어 거의 굶는다. 밥을 먹지 않고 다녔던 덕분에 몸은 가벼웠는데 밤중엔 정말 배가 고팠다. 나는 내가 원해서 굶었다고 하지만 오랜만에 함께 따라왔던 아내는 나 때문에 밤까지 같이 굶어야했다. 그대신 돌아오는 길에 휴게소에서 첫끼를 먹고 아내가 고르는대로 간식을 사줬다. 집에 도착할 때 보니 간식들은 전부 빈 봉지만 남아있었다.

옷을 잘 챙겨 갔었다. 분명 해가 지면 추워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후 세 시에 리허설, 네 시 반에 공연이라는걸 뒤늦게 알고 셔츠 한 장만 입고 무대에 올라갔다가 추워서 덜덜 떨었다. 리허설을 할 땐 더웠었는데... 하며 억울해했다. 계절이 바뀌는 것을 오래 겪어보았는데도 얻는 교훈과 지혜가 없다니. 손이 시려워 감각이 없었다.

리허설 직전에 오래 전 학교 학생이었던 정석원으로부터 메세지를 받았다. 우리가 도착하기 직전 같은 무대에서 앞 순서로 연주하고 동료들과 함께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서로 어긋나 만날 수 없었지만 반가와서 문자를 남겨줬다는 그에게 고마왔다. 나는 그와 만나지 못하고 지냈지만 인터넷으로 그가 활동하는 것을 자주 지켜보고 있었다. 연주도 잘하고 마음이 고와 늘 기억하고 있는 친구였다. 오래 만나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을 적어두었다가 시간을 내어 찾아다니기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낮에 나뭇잎들이 물드는 것을 보며 리허설을 했었다. 집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려보니 후드 틈새에 낙엽이 끼워져 있었다. 너는 어디에서부터 타고 온거니, 하고 조심히 꺼내어 화단에 앉혀줬다.



2022년 10월 16일 일요일

금천구 축제에서


 금천구청역 뒤에 안양천이 흐르는 작은 광장에서 연주했다. 하천 건너에 구름산 숲이 좋다고 들었는데 한번도 가보지는 못했다. 그 근처엔 산이 많아서 삼성산, 비봉산 등에 숲과 공원이 잘 꾸며졌다고 했다. 언젠가 한번 가볼 생각이다. 깜깜한 안양천 깊은 밤 사람들이 무대 앞에 가득 모였고 공연을 보며 즐거워하는 표정들이 가까이에서 잘 보였다.

 

그날 나는 편안하게 연주할 수 있었는데, '꼬마야'님이 찍어주신 사진을 보고 내가 편안할 때의 표정은 저런가 보다, 했다. 토요일 오후에 도로는 극심하게도 막히더니 돌아올 땐 강변북로를 시원하게 달려올 수 있었다. 계획했던대로 집에 돌아와 라면과 김밥으로 오늘의 두번째 식사를 하고 토트넘과 에버튼이 겨루는 축구중계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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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24일 토요일

청남대에서 공연을 했다.

 


해가 진 후 금강이 굽이쳐 돌고 있는 청남대의 공연장 대기실 천막 주변은 공기가 서늘했다. 저녁으로 도시락을 먹고 났더니 추위와 함께 피로를 느꼈다. 지난 밤에 일찍 잠들지 않았던 탓이었다. 공연 전에 주차해 둔 차에서 시트에 기대어 잠깐 눈을 붙였다.


한 시간 동안 연주를 했다. 강과 넓은 잔디와 나무들이 있어서 소리가 좋았다. 두 시간 넘는 공연을 이어오다 보니 한 시간 동안 연주하는 것이 짧게 느껴졌다.

2022년 9월 17일 토요일

부산에서 공연

 


부산문화회관에서 공연을 했다. 장소는 1988년에 개관했던 대극장이었다. 크루들이 잘 준비해준 무대는 쾌적했고 소리도 좋았다. 리허설을 할 때에 잔향이 많은 것 같아서 앰프의 낮은 쪽을 평소보다 더 줄여놓은 대신 볼륨을 조금 더 크게 해놓았다.

피곤하지 않은 상태로 쾌적하게 연주하고 싶은 생각으로 하루 전날 도착하여 숙박을 했던 것인데, 낮 시간에 아내와 친구와 함께 점심을 먹을 때 예상하지 못했던 일로 시간을 허비하는 바람에 여유있게 공연장에 도착하지 못했다. 게다가 며칠 장거리 운전을 계속했더니 어깨에 경련이 생겼고 담이 결렸다. 아니나 다를까 연주하는 내내 조금만 자세를 바꾸면 온몸에 통증이 심해져서 아주 애를 먹었다. 공연을 마치자마자 다시 집을 향해 달려오느라 중간에 과속단속 카메라에 사진도 찍혀버리고 말았다. 하루 전에 공연장 근처에서 숙박까지 했던 보람이 없어져버렸다. 집에 돌아와 고양이들을 살피고, 손흥민 선수가 해트트릭을 하는 경기의 후반전을 실시간으로 보고 난 뒤에 그만 기절하듯 잠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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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28일 일요일

성남에서 공연

 

성남시 분당중앙공원. 7년 만에 다시 가보았다. 2015년 5월 9일에 그곳에서 공연했었다. 그날에 나는 리허설을 마치고 그 동네가 집이었던 친구 동우를 만났었다. 암 투병 중이었던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 반가와 하며 함께 밥을 먹었다. 나는 모밀국수를 주문했었고 그는 국물이 있는 무엇인가를 먹었었다. 나는 많이 야위어 있던 그에게 뭔가 더 먹이고 싶었는데 그는 주문했던 것도 다 먹지 않고 남겼었다. 그는 그날 밤중에 있을 공연을 구경하고 싶어했지만 항암 치료 중에 체력이 너무 나빠져서 피로해했다. 그래서 식사 후 곧장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나에게 잘 먹었다고 말하며 "다음엔 내가 밥을 사겠다"라고 했었다. 그리고 두 해가 지난 뒤 그는 세상을 떠났다.

리허설을 하면서 나는 내 모니터 스피커에서 베이스 소리를 줄이고 전체 음량도 더 내려주기를 부탁했다. 무대가 넓지 않아서 무대 위의 사운드와 베이스 앰프 소리만으로도 연주하기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밤이 되어 공연을 시작하고 첫 곡의 E 음을 누르자 마자, 나는 내가 잘못 판단했다는 것을 알았다. 베이스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무대 앞으로 드넓게 트인 잔디마당이 펼쳐져 있었는데 낮에는 고요하여 다 들리고 있었던 소리가 공간을 가득메운 관객들이 들어차자 마치 증발이라도 된 것처럼 아무 소리도 안 들렸다.

 


연주를 하면서 몇 번이나 앰프의 노브를 돌려 음량을 올렸다. 앰프에 Limit 경고등이 나올 정도로 볼륨을 올렸는데도 베이스 소리는 공기 중으로 휘발되어 사라지는 것 같았다. 리허설을 할 때에 베이스 음량을 줄여달라고 부탁하지만 않았어도 괜찮았을 일이었다. 결국 상상력을 동원하여 연주하기로 했다. 내가 줄을 건드릴 때에 어떻게 소리가 나는지 나는 잘 알고 있으니 하던대로만 잘 연주하면 관객들을 향하는 사운드는 엔지니어들이 알아서 잘 해줄 거라고 생각했다. 의식적으로 몸에 힘을 빼고, 과잉된 연주를 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공연을 마쳤다. 끝나고 나서 구경했던 분들에게 물어 보았더니 베이스 소리가 아주 좋았다고 했다. (나빴다고 말해줄 리는 없지만...) 

내 소리를 듣지 못한 채로 한 시간 동안 공연해보는 경험을 하였다. 8월의 투어를 모두 마쳤다.



전주 공연

 

1980년 5월 2일, 전북대학교 학생 천 명이 거리로 나와 경찰과 맞서 돌을 던지며 대치 중이었다. 비상계엄을 해제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최루탄 가스를 발사하는 지프차를 전복시켰다. 전북대학교 정문 앞에도 오백여명의 학생이 경찰과 대치하고 있었고 시내로 들어온 학생들은 종합경기장 공사용으로 놓아둔 토관을 굴리며 도로를 차단하고 애국가를 부르며 싸우고 있었다. 그로부터 이십여일 후에 광주... 그리고 새 군부독재의 노골적인 시작. 다섯 달 뒤에 전국체전이 시작했고 이제 막 개장된 종합경기장에 대한 기사가 언론에 매일 나왔었다. 마치 세상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 처럼, '3만명을 수용하는, 엄청난 비용을 들인, 최대이며 최신인 종합경기장.'

1963년에 지어져 1980년에 대대적으로 증축한 나이 많은 덕진 종합경기장에 공연을 하러 갔다. 공연 전에 경기장 바깥을 걸으며 긴 세월을 지나보낸 콘크리트 건물들을 구경했다.

아침 일찍 집에서 출발하여 긴 시간 운전을 하고 한숨도 잠을 못 잤다. 길고 길었던 대기시간. 예정되었던 것보다 한 시간이나 지나 공연을 시작했다. 집에서 나온지 열 네 시간 만에 무대 위에 올랐던 것. 비몽사몽인 상태로 첫 곡을 시작했다. 이미 밤 열시 삼십분이었다. 관객들을 보면서 저 분들은 집에 가는데 지장이 없나,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연주를 시작하니 선선해진 밤 공기 때문인지 넓은 공간 덕분인지 소리가 아주 좋았다. 집중하며 연주할 수 있었다. 그렇긴 한데 역시 반쯤 자고 있는 것과 같았기 때문에 공연을 하고 다시 집에 돌아오며 고속도로를 달렸던 것들이 한데 섞여 기억이 뒤죽박죽이 되었다.

집에 돌아오자 그대로 드러누워 자버렸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정신이 맑아졌는데 제일 먼저 기억 났던 것은 전주에서 먹었던 육회비빔밥과 생선구이 정식이었다. 일부러 가장 평점이 낮은 식당을 골라 찾아간다고 해도, 전주에서 먹는 음식은 전부 다 맛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2022년 8월 20일 토요일

안산, 달맞이 극장

 

안산 문화예술의 전당에서 공연을 했다.

여기에는 7년 전에 왔던 적이 있었다. 그 땐 객석이 천 육백석이었던 해돋이 극장이었다. 이번에는 칠백여석 규모인 달맞이 극장에서 연주했다. 오늘은 날씨 때문이었는지 평소보다 더 졸음이 쏟아져서 혼이 났다. 리허설을 마치고 비어있는 대기실을 찾아내어 잠깐 누워있어야 했다. 몸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정신을 차리느라 고생했다. 리허설을 할 때에 앰프의 음량이 점점 줄고 있어서 원인을 알아내느라 시간을 허비했다. 알고 보니 내 페달들을 연결하고 있는 케이블이 접촉불량이었다. 오래 사용하지 않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케이블과 악기의 잭 등에 접점부활제를 뿌려 잘 닦아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도 펜더 엘리트 모델은 패시브 모드로만 사용했다. 앰프는 암펙 SVT- 4 Pro 였다. 그 앰프가 나에게 익숙했기 때문에 연주하기에 편했다.

집에 돌아왔을 땐 그대로 누워 잘 생각이었는데 그만 축구중계가 생각나고 말았다. 졸음을 참으며 전반전의 끝 부분과 후반전을 보고 나서, 깊이 잠들었다가 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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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14일 일요일

원주 치악체육관 공연

 

 

18년 만에 치악체육관에 가보았다. 나는 잘 못 기억하고 있었다. 치악체육관에서 연주했던 것이 2003년인 줄 알았는데, 2004년 1월의 일이었다. (2004 1월...)

공연장에 가면 그 건물에 대해 읽어보는 것이 습관인데, 이곳은 1980년에 개장했다고 적혀있었다. 문득 어딘가에 갔을 때에도 같은 해에 완공된 건물이라고 했었는데... 하다가, 여의도 KBS 별관이었다는 것이 기억났다. 동양방송에서 세워 4월부터 새 건물을 본사로 삼아 사용하다가 그 해 11월에 언론통폐합으로 빼앗겼던 그 건물이었지, 따위의 쓸모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치악체육관은 붉은색 벽돌이 인상적이었다. 이십여년 전에 왔을 땐 눈이 많이 내렸었는데, 그 때에도 붉은 벽돌과 지붕이 기억에 남았었다. 대기실로 사용하는 방의 문앞 복도에 반짝 하고 햇살이 들어오는 것이 보여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한 시에 모여서 음향과 장비를 체크하고, 두 시에 리허설을 시작하기로 되어 있었다. 음향 등을 확인한 뒤에 잠시 쉬며 리허설을 기다리고 있을 때 공연장 메인 믹싱콘솔 앞에서 음향을 담당하는 음향감독님이 나를 찾아와 자기소개를 하며 나에게 내 액티브 베이스에서 고음쪽 노이즈가 생기고 있다고 알려줬다. 그 잡음을 없애지 못하여 상의를 하러 일부러 말을 해준 것이었다. 나는 리허설을 할 때 악기 프리앰프의 트레블을 줄여보겠다고 대답했다. 리허설을 하는 도중에 무대 위의 사람을 통하여 음향감독님에게 노이즈 여부를 다시 확인해보았다. 돌아온 대답은 '연주가 시작되면 괜찮다'는 것이었다.

리허설을 마치고 잠이 부족했던 나는 우선 자동차 뒷자리에 몸을 접고 누워서 토막 잠을 잤다. 자동차 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막 잠이 들 때에 어떻게 하면 노이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답을 찾은 것 같았다.

무대 위에는 Aguilar 앰프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런데 무려 DB751 하이브리드 헤드가 와있었다. 750와트를 내주는  앰프였다.나는 앰프의 게인과 마스터 볼륨을 1 이상 올릴 수도 없었다. 그만큼 출력이 세었기 때문이었다.

네 시 반에 잠을 깨고 대기실에서 펜더 엘리트 베이스의 프리앰프 노이즈에 관한 글들을 검색하며 도시락을 먹었다. 도움이 되는 글은 찾을 수 없었다.




문제는 노이즈가 생기고 있다는 것만이 아니었다. 리허설을 하는 동안 내내 악기의 톤을 정돈할 수 없었다. 이런 상태면 그냥 한 개의 악기만 쓰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오늘은 내 자리가 유난히 좁고 베이스 앰프가 워낙 세기 때문인가 하였다. 가깝게 놓여있는 모든 스피커와 마이크가 액티브 모드일 때 악기의 픽업을 타고 잡음을 유발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향감독님이 '음악이 진행되는 동안엔 괜찮다' 라고 말했던 것의 의미는 여전히 노이즈가 있지만 연주하는 동안엔 음악소리에 묻혀서 감추어지는 정도라는 뜻이었을 것이었다. 그것을 해결해주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공연 시작 직전에, 나는 자동차에서 잠을 청할 때에 떠올랐던 생각대로 악기를 패시브 상태로만 연주하기로 결정했다. 노이즈 문제도 사라질 것이고, 베이스의 톤은 가지고 갔던 MXR 페달로 쉽게 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운드 체크를 할 때에 듣기 싫은 소리를 발견하면 욕심을 버리고 가능한 거슬리지 않는 톤을 사용하는 것이 언제나 정답이었다. 그래서 베이스의 스위치를 끄고 전부 패시브 모드로만 연주하였더니, 그 결과가 아주 좋았다. 공연 내개 마음에 드는 톤이 나와주고 있었고, 두 악기의 음량 차이도 적어서 편하게 연주할 수 있었다. 일부러 찾아와 의논해준 젊은 엔지니어 덕분이었다. 공연이 끝난 후에는 혼잡하여 미처 그분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지 못하고 집에 돌아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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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고양이와

 



원주 공연에 액티브 베이스와 패시브 베이스를 모두 가져가기로 하고 미리 가방에 악기를 넣어두었다. 공연장으로 갈 준비를 마쳤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새벽에 갑자기 생각이 났다. 페달을 한 개만 가지고 가려 했었는데 그러면 곤란하다는 생각이었다. 베이스를 공연 도중에 바꾸려면 잠시 뮤트해주는 역할을 할 페달이 필요했다. 페달튜너를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하드케이스 더미 아래에 끼워 넣어뒀던 페달보드를 꺼냈다.

보드 위에 있던 것들을 떼어내고 프로비덴스 코러스와 MXR 프리앰프/드라이브, 그리고 페달튜너를 붙였다. 가장 깔끔하게 들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 한참 그것을 하고 있었는데 고양이 깜이가 자다 말고 신이 나서 가까이 오더니 냉큼 가방을 깔고 누워버렸다. 쓰다듬어주고 달래어 간신히 가방 덮개를 덮고 잠그었는데, 이번에는 다시 그 위에 뛰어 올라가서 발톱을 세워 움켜쥐고 내려가지 않으려고 했다. 그 장난을 하는 꼴이 꼭 순이를 닯기도 했고 꼼이를 떠올리게도 하여 귀엽고 예뻐보였다. 그대로 두고 외면하면 모처럼 장난을 치고 싶었던 고양이가 실망할까봐 깜이의 엉덩이를 밀어보기도 하고 머리통을 움켜쥐며 실랑이를 하는 체 하면서 조금 더 놀아줬다.

아무튼 갑자기 페달보드 생각이 나지 않았다면 기껏 두 개의 악기를 들고 가서 한 개만 사용했을 뻔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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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6일 토요일

세종로, 사직동 길

 

몹시 더웠다. 습도가 아주 높았다. 세종로 지하주차장에 세워둔 자동차의 온도계에는 섭씨 35도가 표시되고 있었다.

서울시가 주관한 광화문 행사를 위해 시내에 갔었다. 행사와 연주에 관한 이야기는 적어둘 것이 없다. 보기 드물게 수준이 낮은 관제행사였다. 열심히 행사를 준비하고 섭외되어 출연한 사람들만 고생했다.

리허설을 마치고 에어컨이 충분하게 틀어져 있는 대기실 테이블 위에 악기를 꺼내어 놓았다. 리허설을 할 때에도, 밤에 연주를 할 때에도 악기의 네크에서 물이 뚝뚝 흘렀다. 에어컨 바로 앞에 악기를 눕혀 잘 마르도록 해두고, 나는 경복궁 역 앞에 있는 펜가게에 구경을 하러 갔다. 올해 초에 명동 판가게에 구경하러 갔을 때에 경복궁 역 앞의 상점도 가보고 싶었는데 그땐 코로나 방역 때문에 매장문을 열지 않고 있었다. '찌는 듯한' 이라는 진부한 표현이 딱 맞는 기온과 습도 속에서 오랜만에 세종로와 사직동 길을 걸어서 펜가게에 도착했다. 안에 들어가 혼자 두리번거리며 구경을 했다. 내가 관심을 가질만한 것은 없었다. 나는 아무튼 거의 모든 것에 대하여 너무 취향이 고정되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다시 대기실로 사용하는 세종문화회관 건물로 돌아갈 때에는 이십대 시절에 다녔던 골목길을 찾아 걸었다. 길이 없어진 것 같기도 하고 새로 생긴 것 같기도 하여 조금 당황했다. 내가 맞게 걷고 있는지 잠시 멈추어 지도 앱을 열어 확인을 해봐야 했다.

대기실에 돌아오니 염민열의 기타와 내 베이스가 보송보송한 상태로 변해 있었다. 줄을 닦고 다시 조율한 다음 그대로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연주 순서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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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19일 화요일

강릉에서.


 강릉에 일요일에 갔다가 월요일에 공연을 하고 돌아왔다. 출연하는 팀들이 많았고 긴 시간이 필요한 공연이었다. 일요일에 리허설을 하기 위해 강릉에 가서 초당동 해안길에서 하루를 묵었다.

강릉 공연에는 펜더 재즈를 가지고 갔다. 이번에는 낮은 D음을 쓸 곡이 없었기 때문이었기도 했고, 몇 달 전 이 악기의 상태가 나빴던 것을 그동안 잘 고쳐놓았기 때문에 큰 공간에서 소리를 확인하고 싶었다. 공연을 만든 방송사 쪽에서 무대 위에서 입을 의상의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을 때 나는 십 년 전에 검은색 반팔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공연했던 사진을 골라서 보내줬다. 그 옷차림은 이렇다 할 색감이 없으니 펜더 재즈 베이스의 선버스트 바디가 의상의 일부로 보여지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페달은 MXR 프리앰프/드라이브 한 개를 가져갔다. 페달 보드를 들고 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베이스의 소리가 자연스럽게 들리기를 원했다. 그나마 가져갔던 페달은 두 곡에서만 썼다. 


발왕산 동쪽 해안 도시의 기후는 종잡을 수 없다. 경포 호숫가에 차려진 무대는 저녁이 되어 기온이 내려가도 습도가 높았다. 악기를 잡으면 나무에서 물기가 배어나왔다. 바람도 불었다. 물기를 머금은 바람이 베이스 줄과 손가락 끝을 괴롭게 하더니, 결국 또 손톱 끝이 조금 들려버렸다. 그런 일이 생길지도 몰라 피크를 두어 개 챙겨 갔었다. 내 손가락 끝은 언제나 말썽이다. 소리는 좋았다. 넓은 장소와 기온과 습도, 그리고 관객들 덕분에 공연 내내 모든 음악들의 소리가 좋았던 것 같았다.



2022년 6월 28일 화요일

고양시, 제주시에서 공연.

산매 꼬마야 님이 찍어주심.

 토요일에 고양시에서, 일요일에는 제주도에서 공연을 하고 왔다. 저녁이 아니라 낮 시간에 시작하는 공연들이었다. 두 시간이 넘는 공연 시간 동안 큰 통증 없이 잘 했다. 이제 괜히 긴장하고 걱정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다만 잠을 못 자서 힘이 들었다. 이틀 공연하는 내내 눈이 감기고 심지어 무대 위에서 여러 번 하품도 하였는데 공연 후에 생각해보니 관객들에게 하품하는 모습이 다 보였을 것 같았다. 내가 그런 것을 조심하지 못할 만큼 피곤했었던 것 같다. 이미 보인 거야 뭐 할 수 없지만 주의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제주 공연장은 몇 번째 가본 곳이어서 리허설을 마친 후 비어있는 대기실을 찾아 혼자 한 시간 정도 잠을 잤다. 그 시간이 없었다면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프로비덴스 코러스는 제 역할을 잘 해줬다. 고양시에서 공연할 때에 팝업 노이즈가 심했던 것이 신경 쓰였는데 제주에서는 페달을 밟았을 때 잠깐 소리가 나지 않는 증상이 있었다. 전류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역시 오래 쓰지 않은채 서랍에 넣어둔 탓에 풋스위치에 녹이나 먼지때가 끼였기 때문인 것 같다. 소리가 나오지 않았던 문제는 소란스런 곡을 연주할 때 여러번 스위치를 밟는 방법으로 해결했다.

제주 공연장은 매진이라고 하더니 과연 관객석에 빈 자리가 없었다. 공연 시작 한 시간 전부터 사람들이 공연장에 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청중들이 가득 찬 극장에서 연주하는 것이 기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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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12일 목요일

노원문화예술회관 공연.

 


3년 전에는 대구에서 공연을 했었다. 그 즈음 나는 계속 불면에 시달렸다. 그날 알람을 듣지 못하고 늦게 일어났고, 집에서 서울역으로 가는 것보다 고속도로를 달려 대구로 가는 것이 더 빠를 것 같았다. 대구에 잘 도착하여 공연을 마치고 밤에 돌아올 때에는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러 잠을 잤던 기억이 떠올랐다. 2019, 11/May
요즘은 일부러 잘 자두고 있다. 수면 시간이 모자라면 쪽잠을 자는 것으로 가능한 그 시간을 채우는 중이다. 판데믹 기간 동안 하지 못하고 있던 두어 시간의 단독공연을 준비하러 일찍 공연장으로 갔다.
공연을 만든 분들이 무대에 공을 많이 들였다. 멤버들에게 적당한 넓이의 자리를 따로 마련해준 것이 인상적이었다. 음향도 운영도 모두 좋았어서 편하게 연주할 수 있었다.
공연 하루 전까지 페달보드를 열어두고 여러가지 조합을 고민했었다. 가장 단순하고 음의 손실이 없는 정도면 좋겠다고 생각하여 MXR의 베이스 D.I. 한 개만 사용하기로 했다. 그 페달이 기대했던 역할을 잘 해줬다.

내 몸이 완전히 멀쩡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공연 도중에 알았다. 한 시간 쯤 지날 무렵 갑자기 통증이 시작되었다. 센 곡들을 연주할 순서였는데 나는 곡의 인트로를 치면서 돌발상황이 생길 경우 모니터 스피커 옆으로 발을 두고 드러누우면 대충 괜찮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가능한 태연하게 드러누우면 사람들이 누군가 갑자기 쓰러졌다며 놀라지는 않을 것 같았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어떻게 눕더라도 큰 민폐가 될 뻔했다. 게다가 연주자의 자리에 높은 단까지 설치되어 있었으니, 보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가관이었을 것이다. 다행히 잘 버텼다.
일부러 공연을 준비할 때에도 일어선 채로 셋리스트 전부를 합주해보았었다. 그 때는 견딜만 했었다. 공연을 마칠 때까지 통증이 없어지지 않아서 진땀이 났다. 무대에서 내려오자 마자 눈에 보이는 의자에 기대어 긴 호흡을 했다. 통증이 약해지고 시력도 조금 회복되었다. 아직 완전히 나은 것이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많이 좋아진 것이다. 집에 돌아올 때에 자동차의 창문을 열어두고 바람을 쐬며 운전했다. 공연장이 집에서 멀지 않았던 것도 다행이었다. 다음 달에 약속된 공연들도 잘 할 수 있도록 운동도 하고 체력도 잘 유지해야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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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5일 목요일

악기

 




나는 웬만하면 학생들의 악기에 관심을 두지 말고, 거슬리는 것이 보여도 상관하지 말자고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전에는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가져오는 악기의 상태가 나쁘거나 하면, 굳이 내가 직접 조정해주거나 손봐줘야 직성이 풀리곤 했었다. 십 년 이십년 어린 학생들의 세대가 바뀌면서 베이스줄 조차 스스로 교환하지 못하는 학생까지 목격하게 된 이후 나는 학생들의 악기는 그들 스스로 알아서 해야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원하지도 않았는데 남이 나서서 뭔가를 바로잡아주면 그들은 스스로 배울 기회를 만들지 못할 것 같기도 하고, 사람에 따라 연주하는 것 외에 악기의 유지 관리같은 것에는 신경을 쓰고 싶지 않은 경우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주에는 내가 오래 쓰고있는 펜더 재즈를 가지고 다녔다. 지난 달 방송촬영 때에 이 악기를 들고 갔었는데, 하루 전에 네크를 조정했는데도 휨 정도가 완벽하게 돌아오지 않았어서 연주할 때에 애를 먹었다. 그 전 여섯 달 동안 이 악기를 케이스에서 꺼내지 않았던 탓에 상태가 나빠졌던 것은 아니었나 싶어 악기를 다시 분리하여 트러스로드를 조이고, 브릿지의 녹을 닦아내고, 새들을 움직여 피치도 조정해뒀다. 넥과 바디를 조립하면서 조인트를 고정하는 나사 중 한 개가 헛돌고 있는 것을 알았다. 워낙 많이 분리 조립을 반복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음 주 밴드의 공연에서 이 악기를 쓰려고 한다. 손에 다시 익숙하게 하고 싶어서 일주일 내내 이 악기로 연습하고 있다.

수업시간에 학생 중 한 명의 악기에 톤 노브가 없어진 것이 눈에 보였다. 학생에게 노브를 분실하였느냐고 물어보니 그는 가방에서 주섬주섬 그 부품을 꺼내며, '며칠 안에 악기점에 가져가서 맡기려고 한다'라고 했다. 맙소사.

나는 내 가방에서 도구를 꺼내고 학생에게 악기를 건네어 받아, 프레시젼 베이스의 톤 노브의 나사를 조여 다시 부착해줬다. 악기를 구입하고 한 번도 '셋업'을 하지 않았다고 하길래 줄 높이를 조정해주고, 열 두번째 플렛에서 하모닉스를 내어보며 새들을 앞 뒤로 움직여 만져줬다. 베이스를 다시 받아든 학생이 연주해보더니 좋아하며 웃었다. 나는 그 학생이 언젠가는 스스로 정보를 찾아보고 공부하여 대수술이 필요한 것이 아닌 이상 자기의 악기를 스스로 관리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펜더 재즈는 금세 내 손에 익숙해졌다. 악기의 상태도 좋고, 연주하기에 아무 무리가 없다. 연습하면서 오랜만에 패시브 톤이 정겹게 느껴지고 그동안 이 악기와 함께 다녔던 수많은 장소들이 드문드문 떠오르기도 했다. 다가오는 공연은 좋은 소리로 연주할 수 있을 것 같다.



2022년 4월 30일 토요일

재즈

 


(4월 29일 금요일 밤)

내일 연주할 곡들을 계속 연습하다가 유튜브에서 유명한 연주자들의 라이브를 구경하고 있었다. 이번에 연주할 곡들은 내가 외우고 있는 곡들이 대부분이어서 조금 더 음악적인 것에 집중을 하고 싶었다. 오랜만에 재즈 연주 영상들을 찾아 보고 있으니 잊고 지냈던 스윙 리듬의 기분이 돌아오고 있다.

Arturo Sandoval 의 십년 전 연주 영상을 보면서 아주 옛날 대학로에 매주 구경하러 가서 라이브를 보며 혼자 공부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당시에 나는 막막했던 미래에 대한 걱정, 무엇부터 먼저 시작해야 좋은지 알 수 없는 때였다. 아무라도 악기를 다루는 사람을 보면 다가가 인사를 하고 대뜸 질문을 해대었다. 내 성격에, 좀처럼 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그 연주자 선배들은 뭔가를 묻고있던 어린애가 기특했는지 귀찮아하지 않고 나에게 뭐라도 알려주고자 설명하곤 했는데, 문제는 그들은 자기가 알고있는 것을 가르쳐 본 경험이 없어서 쉽게 설명하지 못했고 나는 너무 아는 것이 없어서 그분들의 친절한 설명을 알아듣지 못했다. 리얼북 한 권을 제본하여 들고 다니며 연주자들 앞자리에 책을 펴놓고 소절을 따라가며 보고있기도 했다. 요령도 없이 무식하게 혼자 배우고 있었던 시절의 기억이 갑자기 많이 떠올랐다.

(4월 30일 토요일 밤)

서교동 골목의 가게에서 연주를 했다. 어제 악보를 보며 연습해두길 잘했다. 오랜만에 비좁은 공간에서 베이스 헤드를 드럼의 라이드 심벌에 부딪히며 워킹을 할 수 있었다. 낯설은 장소, 부자연스런 무대였는데도 재미있었다. 오랜만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다른 것을 잠시 잊고 베이스만 칠 수 있어서 좋았다.

그 동네는 이제 판데믹이 끝나버린 것처럼 사람들이 많이 다녔다. 연주를 마치고 얼른 악기를 챙겨 부모님 집에 들러야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Romain Pilon 의 몇 년 전 앨범을 들으며 운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