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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19일 금요일

다 나은 고양이


한 해 전만 해도 구내염이 심하여 많이 아팠던 고양이 이지는 병이 다 나은 후 어릴적 그랬던 것처럼 자주 장난을 친다. 새로 바꾼 이불의 느낌이 마음에 들었는지 하루에도 몇번씩 침대에 올라가 구르고 뛰며 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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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1일 월요일

칠월.


병원에 입원 중이었던 분이 퇴원하셨다. 아내가 집에 돌아오자 고양이들이 활기를 띠고 있다.
검은 고양이 깜이가 하도 귀엽게 굴어서 웃었다.

지난 밤에 나는 순이가 나오는 꿈을 꾸다가 별안간 깨어버렸다.
꿈의 내용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하지만 기록해두고 싶지 않다.
그렇게 잠에서 깨어난 후 커피를 내리고 청소를 하면서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날씨가 좋은 월요일이었다.
벌써 칠월이 되었구나, 하며 아무 것도 적어놓지 않은 비어있는 달력을 넘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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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25일 화요일

고양이 이지.


두 시간 자고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났다.
다시 병원.
순서대로 환자분의 진료를 다 마치고 났더니 오후가 되어있었다.
나도 아내도 거의 스무 시간째 굶고 있었다.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집에 돌아와 청소를 하고, 다시 쓰러져 잠을 자버리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하루를 다 소모했다.
내일은 내 부모 두 분을 모시러 아침 일찍 나가야 한다.
잠깐이라도 할 일을 하고싶었다. 컴퓨터를 켜고 악기 가방에서 수첩을 꺼내느라 방안의 불을 켰더니 고양이 이지가 기타 케이스 위에 앉아 나를 보고있었다. 아내가 집을 오래 비웠던 동안에 이지는 나와 조금 더 가까와진걸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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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2일 일요일

일요일.


오전에 고양이 꼼이가 나를 깨워줬다. 기특했다.
그릇에 사료와 물을 채워줬다. 고양이 이지는 아내가 집에 없어서인지 간식을 내어줘도 좀처럼 먹지 않고있다.
아내는 부친이 입원해있는 병실에서 지내고 있다.

청소를 하고 수건을 세탁했다.
오후에 아내에게 가져다줄 물건들을 챙기고 옷을 갈아입고 있는데 친구가 전화를 했다. 일을 하러 외국에 가있었는데 순조롭지 않은 상황이 되어서 예정보다 일찍 귀국을 할 것 같다고 했다.

고양이 꼼이와 깜이는 창가에 날아와 앉은 비둘기를 구경하며 시간가는 줄 몰라했다.
나는 조용히 집에서 나와 병원으로 향했다.


2019년 5월 26일 일요일

비둘기와 고양이, 공연.


일부러 일찍 일어나 준비했는데 그만 리허설 시각에 맞춰 도착하지 못했다. 도로에 차가 너무 많았다. 홍대 앞에도 사람이 가득했다. 처음 만나는 에이퍼즈 밴드 멤버들에게 지각을 하여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다.

에이퍼즈 팀은 아주 좋았다. 유튜브에서 그들의 연주를 찾아 여러번 봤었다. 기회가 되면 다음에는 그들의 공연을 보러 가고 싶어졌다.

연주를 마치고 자리에 남아 동료들과 시간을 보냈다. 집에 돌아오니 한 시가 넘어있었다.




내가 살고있는 아파트의 다른 집 어딘가에 비둘기 둥지가 있는 모양이다. 비둘기가 자주 베란다에 찾아와 아내가 마련해준 먹이를 먹곤 한다. 오늘은 집안의 고양이들이 전부 새를 구경하느라 모여있었다.

가족들이 아프지 않고, 생활이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가면 좋겠다. 자주 연주를 하고 고양이들과 뒹굴며 게으름도 피울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아직은 먼 일인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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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8일 월요일

하루.


고양이 짤이는 천성이 착하다. 워낙 순한 성격이어서 다른 고양이들이 시비를 걸어도 좀처럼 화를 낼 줄 모른다. 욕실 바닥의 타일 위를 뒹굴며 혼자 노는 것을 좋아한다. 뚱뚱한 짤이가 몸을 굴리며 기분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겨우 숨을 돌리고 있다.

나와 아내는 고인의 사십구재와 같은 것에 아무런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러나 이 땅의 사람들이 관습처럼 여기는 일이니까, 오전에 일찍 추모관에 가서 돌아가신 아내의 어머니를 찾아뵈었다.
이틀 전 밤에 갑자기 연락을 받고 아내와 나는 세브란스 병원으로 달려갔다. 아내의 부친이 응급실로 실려갔기 때문이었다. 만 하루 가까이 기다린 끝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밤을 새운 바람에 낮 동안 계속 돌아가니는 것을 버티지 못하고, 영등포 어느 곳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나는 잠을 자고 말았다. 땀을 흠뻑 흘렸으나 깊은 잠을 잘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전혀 개운해지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정비소에 들러 자동차의 엔진오일, 미션오일, 에어컨 필터와 타이어를 교환했다. 오늘이 아니면 시간을 낼 수 있는 날이 없을 것 같았다.

고등학교, 대학교 선배인 해룡이형의 부친상 연락을 받았다. 누워 잠들고 싶지만, 날이 밝으면 그곳까지 다녀오느라 긴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지금 세수를 하고 다녀오는 편이 좋겠다.


2019년 3월 17일 일요일

오랜만에 잠을 잤다.


몇 달 동안 부족했던 잠을 몰아서 잤다. 꿈을 많이 꾸었던 것 같은데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다.
세수를 하고 고양이들의 그릇에 사료와 물을 채워줬다. 커피를 내려 의자에 앉아 했던 일과 해야할 일들을 정리했다. 문득 침대 위를 보니 어느새 고양이들이 자리를 잡고 쿨쿨 자고 있었다.

며칠 사이에 악기 한 개를 수리점에 맡기기도 했고, 불필요한 일들을 정리하고, 새로 준비하는 밴드의 합주와 하루짜리 공연을 위한 다른 팀과의 합주를 하러 다녔다.
목요일에는 하루 동안 열 시간 정도 베이스를 쳐야 했다. 손가락이 너덜너덜한 느낌이었다. 아마도 피곤하여 감각이 과장되었을 것이다.

이틀 전에는 비가 오고 눈도 조금 내렸다.

진공청소기로 바닥을 청소하고 물걸레질을 했다. 고양이들의 화장실을 청소했다. 유리창을 열어 한참동안 환기도 하였다. 매일 여덟시간씩 잠을 잘 수 있다면 세상의 조금 더 평화롭게 보이겠구나, 하였다.

2019년 3월 1일 금요일

동물병원.


고양이 이지의 진료가 예약되어있었다.
이지가 많이 건강해졌기 때문에 병원에 가는김에 그동안 검진을 해보지 못했던 꼼이도 함께 데려갔다.
검진결과 이지는 과연 건강해졌다. 용량을 줄여 복용하고있는 약도 머지않아 그만 먹을 수 있다고 했다. 고양이 꼼은 몇 년만에 검사를 해본 것인데 모든 수치가 정상 이상으로 좋다고 했다. 오른쪽 어깨에 상처가 아물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도 치료를 받았다.

작년 가을부터 수개월동안 불행한 일들을 계속 겪었다.
오늘 나이 많은 고양이들이 건강하다는 말을 들으니, 작은 위로를 받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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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27일 일요일

이지와 동물병원에.


오래 기다려왔던 주사를 다 맞췄다.
담당 수의사선생님이 백밀리리터 팩에 수액을 담아오더니 고양이에게 먹일 수 있도록 준비했다며 우리에게 건네어줬다. 복용하는 방법으로도 좋은 예후가 있었다고 했다.

고양이 이지는 놀랍게도 병원에서 돌아오자마자 눈에 띄게 편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주사를 처음 맞았던 날부터 아내의 곁에 다가가 잠을 자기도 하고 움직임도 활발해졌다.
표정도 더 밝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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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25일 금요일

아버지 퇴원.


오늘은 조금, 힘들었다.
퇴원수속이 약간 늦춰지고 있었다.
상태를 조금 더 확인하고 퇴원시키겠다는 담당 선생님의 의견에 의해 한 번 더 검사를 해야하기도 했다.

나는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더 참았다가는 내가 쓰러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버지를 집에 모셔다드리고 떠나올 때에 약을 손에 쥐어주고 어깨를 몇 번 쓸어보고 나왔다.
집에 돌아왔더니 오후가 되었다.

집에 돌아와 오래 머물지 못하고 이번엔 동물병원으로 갔다.
고양이 이지에게 인터페론 오메가를 주사하는 첫날이었다. 카데터를 꽂은 가느다란 고양이의 다리가 안스러웠다. 어제 밤새 아버지의 야윈 팔에 꽂혀있던 카데터와 겹쳐져 보였다.

이 주사로 고양이가 다 나았으면 좋겠다. 완치를 보장하지 못하지만 지금보다 훨씬 좋아질 것이라고 담당 선생님이 말해줬다. 내일과 모레에 남아있는 주사를 다 맞추는 것으로 투약은 끝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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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7일 월요일

이지와 병원에.


동물병원에 다녀왔다.
이지는 게속 아프다. 스테로이드가 담긴 약을 먹이고 있는 것으로 겨우 유지되고 있는 형편이다. 그나마 남아있는 앞쪽의 이빨이 다시 흔들린다고 했다. 담당 선생님은 발치를 해야한다고 말하면서, 마취의 부담이 있으니 나머지 이빨을 모두 뽑아줄 것인지 아닌지를 우리에게 판단하여 알려달라고 했다.
이지는 허리디스크도 함께 앓고 있는 중이다. 나이를 먹었고, 병을 지녔으니 고통스러울 것이다. 부쩍 혼자 있으려고 하고 간섭을 받기 싫어한다. 요즘은 내가 있는 방에 찾아와 잠을 자곤 한다. 다른 고양이들이 방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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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12일 수요일

고된 것.


소박한 일상의 연속이 행복이라고 했다. 전보다 더 마음에 와닿는 말이다.
부모 두 분이 동시에 아픈 일은 남들의 집에도 흔한 일이다. 생색내어 힘들다고 할 일은 아니다. 엄마는 퇴원했지만 앞으로도 절대안정이 필요한 상태이고, 아버지는 또 다른 것이 발견되어 두 번의 수술을 연달아 받아야하게 되었다.
월요일에 이어 오늘도 아버지와 병원에 다녀왔다. 끝없이 막히는 도로를 지나 아버지를 다시 집에 모셔다드릴 때까지 긴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 다시 레슨을 위해 정체가 심한 도로 위에서 시간을 보냈다.

컴퓨터로 해야 할 일들을 작업실에서 마무리하고 싶었다. 집에 돌아와 다시 컴퓨터를 켜지 않고 잠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집에 돌아왔더니 이미 자정이 다 되었다.
그런데 지하주차장 입구에 주차한 자동차들이 가득 있었다. 겨우 주차장 안으로 들어갔더니 온 동네 자동차들이 모두 모인 것처럼 빈틈이 없었다. 이중 삼중으로 주차해놓은 자동차들 때문에 다시 빠져나올 때엔 후진을 해야했다. 거리가 먼 다른 동 앞의 야외주차장에 가봤더니 빈 자리가 많았다. 그곳에 주차를 할 때까지 나는 그 이유를 몰랐다.
내일의 날씨를 확인하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됐다. 경기 중부지역에 눈이 많이 내릴 것이고, 오후부터 더 추워질 것이라는 소식이었다. 그러니까 지하주차장에 멋대로 세워져있는 그 자동차들은 모두, 눈을 피하고 추위를 피하여 모여든 것들이었다.
이기적이고 염치없는 일이지만,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모두 다 하는 일이니까 죄의식도 없다. '다 그런 것 아니냐'라는 인식, 나는 아직도 여전히 역겹다. 타인의 불편에 신경쓰지 않는 태도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못배우겠다. 그냥 내가 좀 더 걷고, 내가 약간 손해를 보고 마는 것이 낫다.

겨울이니까 춥겠거니 하면 그만일 수준의 날씨라고 하여도, 해마다 추워지면 거리에 살고 있는 고양이들을 걱정한다. 지금 나와 함께 살고있는 고양이들 모두 길에서 만나 식구가 되었다. 독한 겨울이 지나가면 언제나 길고양이 몇은 더 이상 보이지 않고, 다른 몇은 병에 걸려있다. 다시 봄이 되면 살아남은 길고양이들은 소박한 일상의 연속을 잠시 누린다. 모든 생(生)이 아름다운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모든 삶이 고되다는 것은 이제 잘 알 것 같다.

긴 하루를 보내고 삶은 고구마 한 조각으로 허기를 채웠다. 식탁에 앉아 식은 커피를 마저 마신 후 올려다 보았더니 고양이 꼼이 냉장고 위에 올라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곁에 모여 앉아 서로를 쳐다보는 고양이들을 한 마리씩 쓰다듬어주고 나는 등받이가 있는 의자에 걸터 앉았다.

내일은 눈이 쌓인 길을 운전하는 것으로 시작할 것이다. 아주 느린 음악들을 미리 골라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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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22일 목요일

식구.


검은고양이 까미가 우리집에 '제 발로' 들어와 눌러앉아 살은지 두 해가 되었다.
집안을 휘젓고 다니며 종일 까불고, 나이 많은 고양이들에게 달려들어 놀아달라고 조르는 것을 매일 본다. 볕이 좋으면 베란다에 자리를 잡고 졸다가 햇빛이 사라지면 이불을 찾아 드러눕는다. 이 고양이가 처음 내집에 들어왔을 때에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사흘 동안 잠만 잤던 것이 기억난다. 추웠던 그 해 십일월에, 바깥에서 고생을 했었으리라.

고양이 순이가 떠난지 두 해 넉달이 지났다. 검은 고양이 까미는 순이가 하던 짓을 신기하게 재연할 때가 많다. 나는 까미를 보다가 순이 생각을 했다. 까미를 쓰다듬다가 순이가 떠오르기도 했다. 한밤중에 내가 자리에 누우면 검은 고양이가 조용히 다가와 내 팔을 베고 나란히 눕는다. 나는 깜박하고 검은 고양이의 이마를 만지며 '순이야', 하고 불러버린 적도 있었다.

다시 겨울이 시작되었다. 겨울동안 내 식구들이 사료를 잘 먹고, 군것질도 적당히 하고, 내가 없는 동안에도 집안에서 편안하고 즐겁게 지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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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13일 목요일

일상.


오전에 볕이 가득한 베란다 창가에는 고양이들이 모여 자리를 잡고 햇빛을 쬔다. 그늘이 움직이면 자다가도 슬며시 움직여 볕이 드는 바닥이 좁아질 때까지 쉰다.
그루밍을 하고 하품도 하다가 창밖으로 새라도 날면, 꼭 해야할 일이 생긴 것처럼 일제히 귀를 쫑긋한다. 그러나 그것 뿐, 잠시 잠을 깬 고양이들은 먼지 없는 하늘을 보다가 아래쪽에 지나다니는 사람과 자동차를 구경하며 오전을 보낼 때가 많다.


집안의 고양이들은 함께 무더운 여름을 또 한 개 지나보냈다. 계절은 갑자기 변하고 세월은 나는 듯 달려간다. 까망이 막내 고양이는 꿈이라도 꾸는지 잠꼬대를 하며 늘어지게 자고 있었다.

고양이들의 위치를 모두 확인하고, 밤중에 돌아올테니 집안의 불 하나는 켜두었다. 그릇에 사료와 물을 채워주고 소리를 내지 않으려 신발은 현관문 밖에서 신었다.

6번 국도를 타고 동쪽으로 달려가는 아침, 차창을 열었더니 바람이 찼다.
이제 곧 완전히 가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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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29일 수요일

형, 동생.


나이가 제일 많은 하얀 고양이가 바구니에 들어가서 잘 자고 있었다.
제일 어린 까만 놈이 굳이 그곳에 비집고 들어가더니 자리를 빼앗아 앉았다.
늘 함께 놀아주는 큰 고양이도 고맙고 동생처럼 어리광부리며 잘 놀고 있는 막내도 귀엽다.
나란히 바구니에 앉아 있으니 정말 형, 동생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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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27일 월요일

꽃 냄새, 바람.


폭염을 잘 견디고, 고양이가 이른 아침 창가에서 꽃 내음, 바람 냄새를 맡고 있었다.
어린 고양이에게는 태어나서 가장 더운 여름이었을 것이다.
조금 선선해지니 고양이는 다시 칭얼거리며 마주칠 때 마다 놀아달라고 조른다.

2018년 8월 9일 목요일

컴퓨터를 바꿨다.


어제 아침에 컴퓨터의 스위치를 눌렀더니 딸깍거리는 소리를 내며 부팅 도중에 멈춰버렸다.
그 후 몇 번 같은 동작을 반복한 뒤 아예 켜지지 않게 되었다.
완전히 멈추기 전에 유닉스 명령어로 확인한 것은 디스크를 포함한 여러가지 에러였다. 알 수 없는 문자들이 줄지어 나오더니 그나마 reboot 명령도 듣지 않았었다. 역시 지난 번 고장을 일으켰던 것은 기계가 마지막 안간힘을 써보았던 것이었나 보다.



예정에 없던 지출을 해야했다. 만 하루 동안 다른 방법들을 시도해보다가 역시 새 맥을 구입하는 편이 낫다고 결론을 내렸다. 공부해야할 것들을 찾아서 여러 번 읽고, 매장에 가서 새 아이맥과 필요한 어댑터들을 구입해왔다.

타임머신으로 새 맥에 자료를 옮기고, 등록된 프로그램들 마다 새 컴퓨터를 인증해주는데에 네 시간이 걸렸다. 목과 허리가 뻐근하여 자리에서 일어났더니 고양이 이지는 곁에서 책을 베고 잠들어있었다. 숨소리가 고르고 편안하게 들렸다.

커피를 한 잔 더 만들고 싶었는데 고양이들이 잠에서 깰까봐 나는 그냥 물을 마시고 창문 앞에 잠시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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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7일 화요일

열 살 차이.


고양이 둘은 열 살 차이가 나는데, 단짝 친구처럼 자주 함께 논다.
어린이는 응석을 부리고 어른 고양이는 예민하다.
둘이 함께 더운 햇빛을 받으며 쉬고 있었다.
나는 다가가 손을 뻗어 고양이들을 쓰다듬어줬다.
뜨거워진 타일 바닥이 고양이들이 내는 그르릉 소리로 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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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20일 금요일

까만 고양이.


내가 사는 집은 낮에는 햇빛을 잔뜩 받아 덥고 밤에는 개천과 강물 덕분에 습기가 가득하다.
이렇게 더운데 까만 고양이는 언제나 내 곁에 바짝 붙어서 지낸다.
내가 집에 오래 머물고 있으니 좋아하는 것 같다.
잠을 자다가 푹신한 것이 느껴져서 깨어나보면 언제나 까만 고양이가 있다. 내 다리를 껴안고 자거나 발목을 베게삼아 베고 잔다. 며칠 전에는 꿈에서 구덩이에 발이 빠져 애를 먹었었다. 고양이가 베고 자는 바람에 발이 저렸었던 것이었다.

두 해 전 11월 말에 나와 아내는 아파트 현관 앞에서 이 어린 고양이를 만났다. 꽤 추운날 밤이었다. 고양이 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봤더니 작고 까만 고양이가 웅크리고 있었다. 우리와 눈이 마주치자 고양이는 남은 힘을 다해서 더 크게 울며 다가왔다. 고양이는 우리들의 바지춤과 신발을 움켜쥐고 떨어지려 하지 않았었다.

고양이를 안고 집으로 들어와 몸을 따뜻하게 해주고 먹을 것을 내어줬다. 하지만 무려 사흘 동안 고양이는 물과 사료를 먹지도 않고 쿨쿨 잠만 자고 있었다.
어린 고양이와 함께 살기로 결정한 다음 고양이를 씻기고 털을 말려주었더니 갑자기 집안의 고양이 사료 그릇을 돌아다니며 비우기 시작했다. 얼마나 고되고 배고팠었으면 그랬을까 하여 안스러웠다.

까만 고양이 까미는 우리와 만났을 때부터 한쪽 귀가 꺾여 있었고 한쪽 다리는 부러졌던 흔적이 있었다. 고양이 자신으로서는 누구라도 붙잡고 '나를 좀 키워라' 하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혹시 하필 그날 밤 늦게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우리와 만나게 될 줄을 알고있었던 것일까.

고양이들과 살면서 처음으로 털을 깎아줬다. 조금이라도 덜 더워할까 하여 얼굴만 남기고 이발을 했다. 침대에 새 이불을 깔았더니 까미는 새벽부터 낮까지 이불 위에서 뒹굴며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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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13일 금요일

오랜만에.


비가 그쳤으니 오늘이 딱 좋은날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오랜만에 자전거를 가지고 나갈 준비를 하려니 여러가지가 서툴었다. 타이어에 공기를 채우는 데에도 오래 걸렸다.

강을 따라 달려 팔당교 아래에 섰다. 기온 때문인지 자전거 때문인지 옷이 젖도록 땀이 났다.
팔당교 밑 벤치에 앉아서 물을 마셨다. 이 년 반만에 이 자리에 나와 앉아 본다.

자전거를 사고 한참을 미친듯 타고 다닐 때가 있었다. 나는 무척 즐거워했다. 매일 자전거를 탔고 그동안의 스트레스를 모두 버리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었다. 얼굴에 부딪는 바람, 풀냄새와 강비린내, 자전거 바퀴가 바닥을 지나는 소리들이 모두 기분좋게 느껴졌었다. 나는 최소한 그 몇 해 동안 자전거를 타는 순간만큼은 행복해했다.

그리고 내가 행복해하는 사이에 내 고양이는 죽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몰랐다.
순이가 이미 죽음에 임박했을 때에야 나는 뒤늦게 한탄했다. 그리고 이 년 전 그날 새벽 한 시 반에, 순이는 내 품에서 마지막 숨을 쉬더니 액체가 된 것처럼 몸이 흘러내렸었다. 그 다음은 빠르게 식어가고, 굳어갔다.

팔당교 아래 벤치 주변은 변한 것이 없었다. 강변도 그대로이고 노을이 지는 하늘도 변함없었다. 내 고양이 순이만 이젠 없구나, 했다.
그  때에 내가 자전거에 미쳐있지 않았었다면 집에서 내 고양이를 더 자주 보았을 것이고 아픈데는 없는지 더 살펴볼 수 있었을 것이었다. 나는 순이를 어쩌면 더 빨리 병원에 데려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놀고' 있던 동안에 내 고양이는 죽어가고 있었다.
순이가 죽은 후 지난 이 년 동안 나는 자전거에 손도 대지 않았었다.

기어를 느슨하게 해두고 천천히 달렸다. 바람도 햇빛도 까불며 눈앞을 스쳐가는 새들도 이제 예전과 같지는 않았다. 나는 어쩌면 더 조용해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집에 돌아와 반겨주는 고양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한 마리씩 머리를 쓰다듬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