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23일 목요일

아내의 그림

책꽂이 위에는 우리와 함께 살았던 고양이들이 있다. 모두 아내가 그린 그림들이다. 낡은 종이 냄새가 나는 수십 년 된 책을 한 권 꺼내어 보다가 내가 아직 이것을 왜 가지고 있는가, 생각했다. 몇 권은 버려도 된다. 사실 거의 다시 펼쳐보지 않는 책들은 모두 버려도 되는 것 아닐까. 어디 책 뿐인가, 저기에 있는 플라스틱 CD들이나 손 댈 일이 없는 오래된 물건들도 마찬가지다. 그것들을 나는 한 개도 버리지 못하고 집안 가득 두고 앉아 있다.

감정, 느낌, 그리움은 기억 속에 있다. 어느날 자아를 잃으면 기억은 그 모든 마음들을 다 끌어 안고 사라질 것이다. 나는 그 형체도 없는 지나 온 세월들을 품에 품고 싶은 것인지.  그것들이 물건 속에 담겨 있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벌써 오래 전에 떠나버린 고양이들이 아직도 선반 위에 뛰어 오르고 볕이 가득한 날엔 베란다 타일 위에서 뒹굴거린다. 한 집에 오래 살고 있다보니 집안 구석 어디에도 고양이들이 없는 자리가 없다. 이제는 보이지 않는 식구들이 이 방 저 방 어디에나 있다. 그러다가 문득 아내가 그린 고양이들이 눈에 들어 오면, 아, 그렇지, 쟤들이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건 아니지, 라고 생각하곤 한다.